“······.”
카를로스 대공은 침묵했다.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달리 다른 반응을 보일 여유조차도 이제는 사라졌다.
드예프의 목이 날아가는 순간, 카를로스 대공은 앉아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혹여나 잘못 본 게 아닐까 싶었지만 몇 번을 확인해도 현실은 변함이 없었다.
단 한 합.
검을 휘두르고, 죽었다.
목이 잘려 그대로 즉사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드예프가, 역전의 용사가.
발할라 대영웅들의 선택을 받은, 성좌에 의해 천명(擅名)되었던, 그가 가장 아끼는 자식이······!
“약속은 지킬 것이라 믿는다, 카를로스 대공.”
불안함을 떨치지 못하던 황제 데우스는 온데간데없었다.
지금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이겼다. 승리했다.
이제 약속을 지킬 차례였다.
하지만 카를로스 대공이 순순히 잡혀줄 리 만무.
패배의 충격이 가시기 전에 빠르게 행동해야만 한다.
데우스가 뒤에 있는 총사령관에게 눈짓하였다. 그러자 총사령관을 비롯한 기사들이 카를로스 대공을 빙 둘러싸기 시작했다.
“······ 저를 재판에 세운다고 무엇이 달라질 것 같습니까, 폐하.”
카를로스 대공의 얼굴에 한기가 스쳤다.
그의 주변으로 ‘성역’이 발동되었다.
드예프가 죽고, 휘슬도 곧 죽을 위기였다.
순식간에 두 자식을 잃었으니 이 어찌 참담하지 않으랴.
“크게 달라지진 않겠지.”
데우스도 인정했다.
단순히 재판에 세우기만 해서는 달라지는 게 없을 것이다.
카를로스 대공이 두려운 것은 그에게 결집해있는 귀족의 무리다. 황실과 대척하는 귀족들은 그가 재판에 서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지 않을 것이었다.
하물며 그가 죽기라도 한다면 그 즉시 북방에 있는 모든 병력이 반군으로 무장하여 황실을 공격해올 건 뻔한 상황.
재판을 이겨야 한다.
그리하여 구심점을 없애버려야 했다.
적법한 법에 따라 심판을 받는 순간 대공을 따를 명분이 사라지는 셈이었다.
공판에 대해 널리 알리면 제국의 시민들도 등을 돌릴 터.
“허나 앞으로의 세상은······ 짐의 아이들에 의해 달라질 것이다.”
라인하르트.
라우넬.
카잔.
카르몬.
리온.
이 다섯 아이가 앞으로의 세상을 변화시키리라.
데우스는 그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니 구시대의 산물들은 이제 자리를 비켜줄 때가 되지 않았는가.
“··· 이 세상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폐하.”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카를로스 대공은 성역을 풀었다.
여기서 공격하는 건 자살행위다.
수많은 이들이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하물며 사전에 ‘서로가 죽여도 책을 잡지 않는다’고 공언하지 않았던가.
여기선 한발 뒤로 물러나는 게 상책이다.
대공은 이를 갈며 순순히 ‘특급죄수동’으로 이동했다.
*
콜로세움 바깥으로 카를로스 대공이 연행되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병사들이 움찔했다.
“어찌하여 대공각하를 연행하는 것이냐!”
“당장 풀어주지 않으면······!”
촤악!
피가 튄다. 검을 뽑으려던 기사의 손목이 그대로 잘려나간 탓이다.
“아아악!”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 일.
손목이 잘린 기사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 앞으로 크로프트가 나섰다.
“카를로스 대공이 제국의 법을 위법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바, 재판이 진행될 동안 임시로 ‘특급죄수동’에 수용될 것이다.”
제국의 병사들이 대공이 이끌고 온 병사들을 단번에 제압했다.
숫자도 숫자지만 이미 승기는 황실 쪽에 있었다.
황금의 용이 나타나고 드예프가 패배한 순간 대공측의 병사들은 이미 모든 전의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임시로 ‘특급죄수동’에 수용시킨다니! 이미 범죄자 취급을 하는 것 아니냐!”
맞다. 특급죄수동에는 귀족 죄수들, 그것도 중범죄를 저지른 자들만 갇히는 곳이다.
그곳에 ‘임시’로 가둔다고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인가.
이미 범죄자 취급을 받고 있다는 말과 다를 게 없었다.
제국의 모든 시민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는 모욕이고 굴욕이었으나 이윽고 크로프트의 전신에서 오러가 피어오르자 그들도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검을 뽑는 자, 지시에 따르지 않는 자는 반역자로 간주하고 즉결처형하겠다.”
*
카를로스 대공이 특급죄수동에 수감되고, 그를 따르던 병사들 역시 임시수용소에 갇히는 신세로 전락했다.
속전속결로 진행한 덕에 반나절 만에 이루어진 성과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제국 전역은 라인하르트의 이야기로 떠들썩해지고 있었다.
“황금빛의 용이라면 제국의 상징 아닌가!”
“허, 살아생전 살아있는 용을 보게 될 날이 올 줄이야······.”
“라인하르트 황태자가 변한 건 그럼 그 용 때문이었나?”
“제국의 큰 복이로군.”
“용기사라니! 와이번을 사육한 것도 그러니 가능한 것이었겠지!”
“하기야 용도 사육했는데 와이번이라고 못할까.”
황태자 라인하르트에 관한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황금빛 용의 주인. 최초의 용기사가 탄생했으니 말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그럼 차기 황제는 라인하르트 황태자로 확정된 건가?”
“그렇겠지. 제국의 상징과도 같은 황금 용의 주인 아닌가.”
“라우넬 황자님이 조금 안타깝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황제가 하기 싫다고 해도 이제 억지로 앉혀놔야할 신세야.”
“크으······ 용기사 만세! 라인하르트 폐하 만세!”
*
“정말로 너희가 자랑스럽구나.”
황제 데우스는 미소와 함께 두 아들을 바라보았다.
라우넬, 그리고 라인하르트.
카잔이 없는 건 아쉽긴 하지만 상태가 상태인지라 어쩔 수 없었다.
“라우넬. 그 일당백의 타베론을 상대로 승리한 바, 기특하기 그지 없다.”
“감사합니다, 폐하.”
“원하는 게 있다면 말해보거라.”
“······ 없습니다, 폐하.”
“허어. 말해보래도.”
큰 일을 해냈으니 상을 주는 건 당연한 것이다.
라우넬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다시 고개를 저어보였다.
“폐하. 지금 당장 정해야만 하는 겁니까?”
“아니다. 원하는 게 생기면 그때 말해도 좋다.”
아무렴 어떤가. 보상을 미룬대도 데우스는 마냥 기뻤다.
항상 카를로스 대공과 비교당하던 그다. 하물며 자식들에 관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비교당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그의 자식들이 더 우월했음이 증명된 것이다.
데우스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라인하르트여.”
그의 두 눈에 라인하르트가 들어왔다.
가장 기쁜 게 무엇이냐 묻는다면 당연히 라인하르트의 존재일 것이다.
단순히 광증을 이겨내는 걸 넘어, 이 모든 상황이 가능토록 만들어준 주인공 아닌가.
“예, 폐하.”
“황금의 용은 어찌 된 것이냐?”
“우연히 얻었습니다.”
“용을 우연히 얻었다?”
“그렇습니다, 폐하.”
“으음.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것이겠지. 특별히 넘어가마. 혹, 원하는 게 있더냐?”
“있습니다, 폐하.”
오호라.
데우스가 허벅지를 손으로 때렸다.
라인하르트가 원하는 게 있다는 말이 이처럼 좋게 들릴 때가 없었다.
“말해보거라. 그게 무엇이든 들어줄 것이다.”
무엇이든 들어주겠다는 말은 빈 말이 아니다.
‘황제에 즉위하고 싶다 해도 충분히 고려할 것이다.’
설령 그게 황제의 자리라고 할 지라도 기꺼이 물려줄 것이다.
그만한 자격이 있었다.
여태껏 보여준 행보는 충분히 라인하르트 자신을 증명해왔으므로.
이 대결에서 마침내 쐐기를 박은 것이다.
그것을 라우넬도 느꼈기에, 라우넬의 시선 역시 라인하르트에게 향했다.
‘······ 내가 졌다.’
라우넬은 인정했다.
황금의 용과 드예프를 단번에 죽여버린 실력, 결단력.
그 무엇 하나 라우넬은 라인하르트를 이기는 게 없었다.
말을 바꿔 황제가 되겠다고 해도, 라우넬은 인정할 것이다. 인정할 수밖에 없으니.
곧이어 라인하르트가 입을 열었다.
“라우넬을 북방의 ‘평화협정단’ 대표로 임명해주십시오.”
“······!”
데우스와 라우넬의 눈가가 떨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라인하르트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평화협정을 맺으며 동시에 카를로스 대공이 악마교단과 연관되어 있다는 증거를 그곳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게 가능한 건 라우넬뿐입니다.”
“으음. 의외로구나. 당연히 네가 가겠다고 할 줄 알았거늘.”
“저는 라우넬처럼 주변을 잘 둘러보질 못합니다. 제가 북방으로 향한다면 도리어 반발만 살 가능성이 높습니다.”
카를로스 대공이 갇혔다고 하더라도 북방에 남은 십만의 병사들은 그를 추종하고 따르는 광신도들이다.
만약 대공을 가둔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자신이 간다면, 반발을 살 수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 라우넬이 동의한다면, 너의 말대로 하마. 라우넬. 너의 생각은 어떻더냐?”
“맡겨주신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좋다. 평화협정단의 대표로 라우넬을 명하겠다.”
“감사합니다, 폐하.”
고개를 숙인 라우넬이 몸을 잘게 떨었다.
라인하르트는 약속을 지켰다.
말을 바꾸지도, 각색하지도 않았다. 정말 있는 그대로, 그것도 황제와 자신이 함께 있는 이곳에서 분명하게 피력한 것이다.
“허나 이것은 보상이라 할 수 없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말해보거라.”
데우스가 못을 박았다.
이건 보상이 아니라고.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이냐고.
그러자 라인하르트가 두 다리와 허리를 펴고 섰다.
황제 데우스와 정면에서 두 눈을 마주하며.
“폐하. 저는 황제가 될 생각이 없습니다.”
쐐기를 박았다.
*
폭풍과도 같은 소란이 지나간 뒤.
나는 드예프를 죽인 직후 제로가 전해준 말들을 떠올렸다.
‘지구방위 드워프 16호······.’
인류가 성좌라 부르는 하늘의 별.
발할라의 영웅들이라 칭해지는 그것의 정체는 인공위성이다.
우주를 떠도는 부유물, 인공위성이 인간과 연결되면 특별한 힘을 부여하게 된다.
하지만 연결되는 조건과 어떤 식으로 힘을 부여하는지는 제대로 알려진 게 없다.
내가 가진 ‘무궁화 18호’ 역시도 주변을 정찰하는 정도에 그쳤으니까.
그런데 지금 제로에 의해 강제로 연결된 위성은 달랐다.
‘모든 인공위성이 성좌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드예프가 가진 것처럼 성좌의 역할을 할 수 있는, 특별한 힘을 건네는 장치가 존재하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 차이가, 그 비밀이 풀리기 직전이었다.
지구방위.
그리고 드워프라는 이름.
드워프는 ‘삼신기’를 만든 장인들이다.
나노튜브와 같은 나노머신의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종족이었다.
그 종족의 이름을 본뜬 인공위성이 우주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 위성은 ‘성좌’의 역할을 하며 드예프에게 힘을 부여했다.
‘드예프의 실력은 과장된 면이 있었지. 성좌··· 인공위성의 도움이 없었다면 타베론과 다를 바 없어.’
실질적인 실력은 타베론과 동급이나 성좌에 의해 과대평가 받고 있었다.
저 ‘지구방위 드워프 16호’가 제로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며 타베론을 도운 덕이다.
수 없는 연산과정 끝에 최적의 경로를 선택해 검을 휘둘렀겠지만, 그 연산 능력조차도 제로를 따라올 순 없었기에 모조리 읽혔다.
하지만 궁금했다.
에픽도, 용도 아닌 인간을 성좌는 분명히 돕고 있었다.
성좌가 유독 인간들에게만 힘을 부여한다는 이야기는 오랜 시간 전승됐으므로.
‘······ 연결하지.’
확인해보자.
저 인공위성 안에서 감지된다는 생명 반응.
필시 드워프이거나 드워프와 관계된 자이리라.
[드워프 16호의 내부 카메라를 작동합니다.]
[카메라 영상을 홀로그램으로 재생합니다.]
곧이어 시야가 점멸하며 눈앞에 영상 하나가 떠올랐다.
‘허.’
영상이 비춰주는 위성의 안쪽.
안쪽에 있는 생명체를 확인한 나는 이맛살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 조우(8)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