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황제-110화 (110/146)

‘선각자(先覺者)는 말했다. 절대자여, 제국의 건국자이자 수호자인 황금빛의 용이여.’

제국의 수많은 비사(祕史).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혹은 숨겨야만 했던 내용들.

그것들을 엮어놓은 서적은 오로지 황제만이 열람할 수 있다.

황제 데우스는 그중 ‘선각자’라 불리었던 천 년 전 9서클 마법사가 적어놓은 수기를 떠올렸다.

‘이 부질없는 멸망 속에 한 줄기 빛을 창조하는 창조주여······.’

절대자라 불린 존재가 건국한 제국.

하지만 그 ‘절대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황실에조차도 남아있는 내용이 손에 꼽힐 정도다.

하지만 절대자의 존재를 추측할 수 있는 선각자의 저 말에 따라, 제국은 황금의 용을 제국의 수호자로 정하고 받들어왔다.

그리고 지금, 데우스의 앞에 황금빛을 띠는 용이 있었다.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찬란한 황금빛의 물결.

천 년 전 사라진 7대 신비.

물론 저 용이 절대자는 아닐 터이나.

‘라인하르트.’

저 황금의 용을 불러낸 존재가 다름아닌 라인하르트임은 확실했다.

심지어 단순히 불러낸 것조차 아니다.

용을 다루고, 용이 따르고 있다.

보고도 믿을 수가 없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

유니콘 역시 다크엘프처럼 거의 사라져가는 종이나 ‘7대 신비’에 들어가진 않았다.

신비란 말 그대로 아예 사라져버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으므로.

그로므로 그 희소성과 희귀성만을 따져보아도 유니콘은 용에 비하지 못한다.

하물며······ 존재의 ‘격’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면 그 자체로 비교불가다. 비교하는 것 자체가 우스울 지경이다.

그 어떤 것에 빗대어도 용만 할까.

신성군주가 다루었던 본 드래곤조차도 놀라울 지경이건만, 저것은 살아있는 용 아닌가.

“······ 용이라.”

황금의 용 위에 올라탄 라인하르트를 바라보며 카를로스 대공이 침음을 삼켰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리라는 걸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는 듯이.

하기야 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나.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무능력한 황태자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있던 게 라인하르트였을진대.

‘혹, 북방에서?’

카를로스 대공의 표정이 절로 굳었다.

문득 북방에서의 기억이 떠오른 탓이다.

북방의 성지에 용이 있다고 확신했으나 결국 손에 넣지 못했다.

‘놈이 북방에 모습을 드러낸 그 때부터 모든 게 꼬이기 시작했다.’

이제와서 드는 생각은 우연의 일치치고는 너무나도 정교하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질 수 없는 전쟁이었다.

북방의 성지만 정복하면 분열된 군주들을 공격해 큰 피해 없이 승리하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라인하르트가 등장한 직후부터 전쟁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첫 발단은 ‘악마의 죽음’이 모조리 불태워진 일이다.

조사 끝에 그 과정에서 라인하르트와 크로프트가 연관되어 있다는 게 밝혀졌지만 상식적으로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이란 말인가.

‘악마의 죽음이 숨겨진 장소는 극비 중에서도 극비였다. 그 장소를 마치 전부 알고 있다는 듯이 빠르게 행동했지.’

악마의 죽음.

추운 북방의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 병사들에게 투여할 마약이었다.

허나 그것이 한순간에 사라진 덕에 전쟁이 지연됐다.

‘내가 전선을 물리는 사이 신성군주가 나타나 북방을 일통했다.’

공교롭다.

이보다 더 공교로울 수가 없다.

성지를 두른 전선을 물리자마자, 성지에서 신성군주가 나타났다.

말하자면 신성군주는 성지가 아닌 외부에서 유입된 존재라는 의미다.

전선이 물려질 것을 알고 성지로 입성한 자.

악마의 죽음을 불태워 전선을 물리게 한 사람······.

‘그럼 라인하르트가 신성군주라는 뜻인가?’

허나, 그게 가능한가?

놈은 성지에 있을 용을 취해 신성군주가 됐다.

파간들을 치료하고 북방의 군주들에게 충성을 받으며 순식간에 전쟁을 압도했다.

그만한 전술, 전략······ 신성군주는 전쟁에 일통한 놈이 확실하다.

전쟁을 알고, 전쟁을 지휘할 줄 알며, 수없이 이겨본 적이 있는 자였다.

그게 아니고선 그만한 대병력을 차질없이 전개하는 건 불가능하다.

‘······ 라인하르트는 전쟁에 대해 모른다.’

궁에만 처박혀 있던 놈이 전쟁을 어찌 알겠는가.

가면을 쓰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전쟁을 겪어보진 않았을 터.

책으로 공부했다고 해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설령 크로프트가 옆에서 도왔다고 한들, 크로프트가 전쟁에 마지막으로 참여한 건 수십년도 더 된 일이었다.

무엇보다 누군가의 조력을 받는다면 그만한 카리스마를 발휘하긴 힘들다.

결정적으로 신성군주는 본 드래곤을 타고 있었다.

살아있는 용이 아닌, 죽은 용의 뼈대만 이용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저 용은 대체 어디서 나타났단 말인가?

“······ 선택받은 것이다.”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하듯.

황제 데우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황금의 용과 라인하르트를 향해 양 손을 올렸다.

“천년 제국의 수호자, 지고한 황금의 용이 황태자를 택했다!”

그의 목소리가 콜로세움을 넘어 수도 전역에 퍼져나간다.

데우스는 전율하고 있었다. 격양된 표정과 몸짓으로 환호하고 있었다.

황금의 용에게. 그 용을 다루는 라인하르트에게!

“이는 제국의 영광이자 희망일지니!”

희망. 앞으로도 계속 번영하리라는 약속과도 같은 말.

이제 더 이상 유니콘과 드예프에게 관심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모든 이들의 시선은 오로지 라인하르트와 용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 전에 느꼈던 신성하며 거룩했던 감정들?

지금 저 황금빛의 물결에 비하면 그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압도당하고 있으니까.

도저히 시선을 뗄 수가, 입을 열 수가 없었으니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전율을 합쳐도 지금 이 순간 느끼는 감정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리라.

“라인하르트. 유일무이한 용기사여.”

데우스는 말했다.

그로써 용에 대한 두려움을, 용에 대한 저 패악한 성질을 지워버렸다.

지금 저 용은 라인하르트를 장식해주는 수단일 뿐이다.

용이 아니라 용을 다루는 라인하르트가 그 주인공이 되어야만 했다.

그 작업을 지금 데우스가 하고 있었다.

“용기사여, 용맹함을 보여주거라. 그대를 보는, 그대를 믿는 모든 이들을 위해.”

*

‘미친······.’

데우스의 일장연설을 들으며 드예프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앞에서 느닷없이 영웅이 탄생하고 있었다.

그리고 유니콘을 이끌고 나타난 자신은 졸지에 악역이 되었다.

다 짜놓은 판이 뒤엎인 것이다.

하지만 드예프 역시도 용의 출현이 놀라운 건 매한가지였다.

크릉. 크르릉.

뒷발질을 하며 유니콘이 물러나려 하고 있었다.

용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 상위 포식자를 만난 두려움에 떠는 중이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항상 당당하던 유니콘이 저런 모습을 보인 것은.

말인 즉, 저 용은 허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진짜 용이었다.

천 년 전에 전부 사라졌다고 여겨지던 최강의 신비.

정령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지고의 존재!

‘이게 대체······.’

허나 그런 존재가 왜.

대체 왜 라인하르트를 따르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도리어 용에 걸맞은 건 자신이다. 그럴 자격은 라인하르트에게 없었다.

아무 것도 아닌 녀석에게 용은 과분하다.

자신이야말로, 수많은 전장을 돌며 승리를 거머쥔 자신이야말로 용의 주인으로 적합하다.

[확인 불가.]

[신원미상의 생명체.]

[정보를 읽어드릴 수 없습니다.]

[강력한 록(Lock)에 의해 잠겨있는 상태입니다.]

동시에 성좌(聖座)가 말했다.

드예프는 대공가의 식구들 중 유일하게 성좌의 선택을 받은 자였다.

성좌는 하늘너머 발할라에 존재하며 그에게 유용한 정보들을 전해주곤 하였다. 성좌가 모르는 내용은 거진 없다시피 했다.

자신의 시야를 공유하는 성좌는 보는 것만으로도 만물을 읽어낸다.

그런데 알 수가 없단다.

읽을 수조차 없단다.

용도.

······ 라인하르트도.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성좌가 읽어내지 못하는 것은 여태껏 존재하지 않았다.

[후퇴하는 것을 권합니다.]

뿐만이 아니다.

성좌는 읽는 것만이 아닌 조언 역시도 해주었다.

그런 성좌의 조언 역시 여태껏 틀린 적이 없었다.

“넌 누구냐. 내가 알던 라인하르트가 맞는 거냐?”

드예프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도저히 믿기지가 않아서다.

자신이 알던 라인하르트는 항상 대공가를 피해왔다. 약해빠진 주제에 제정신도 아니라 언제나 논외의 대상이었다.

그냥, 상대할 가치가 없었다.

라인하르트는 그저 웃어보였다.

대답할 가치가 없다는 듯.

이에, 드예프는 쐐기를 박았다.

“용에게 의지해 나를 직접 상대할 용기가 없는 건 아니겠지?”

겁쟁이처럼 용의 뒤에 숨지 마라.

직접 붙자는 말이다.

툭-.

라인하르트가 용위 위에서 내려왔다.

드예프는 미소를 지었다.

‘용만 아니면 라인하르트 자체는 별 볼일 없을 것이다.’

용을 직접 상대하는 것만 아니라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인간과 인간의 싸움에서 드예프는 져본 적이 없었다.

애당초 성좌의 조언도 저 용을 포함한 대결이었으리라.

라인하르트 자체는 별 볼 일 없으리라고 확신했다.

‘오히려 잘 됐다.’

드예프는 여유를 되찾았다.

용기사라고?

지금 이곳에서 라인하르트를 죽여, 저 용조차 차지하는 것이다. 황금의 용을 자신이 빼앗아 대공가가 황실가보다 뛰어남을 증명하겠다.

보물을 가진 자는 그 보물을 지킬 힘도 지녀야 한다.

보물을 지키지 못한다면 결국 갈취당할 뿐이다.

헌데 라인하르트는 분에 넘치는 보물을 가졌으니.

‘빼앗아주마.’

빼앗기는 것 역시 당연했다.

[동기화 완료]

[해당 반경의 움직임을 계산합니다.]

[모든 경우의 수를 판단하여 최적의 경로를 연산합니다.]

경기가 시작되고, 드예프는 영역을 전개했다.

반경 6m 안에 들어온 모든 것을 말살시킬 수 있다.

안 그래도 초월적인 감각은 성좌와 동기화하며 확대된다.

움직임도, 반응속도도.

인간의 한계를 순식간에 뛰어넘는 것이다.

그리고 라인하르트는 이미 자신의 영역 안에 있었다.

‘멍청한 놈.’

용에서 내려온 시점에서 놈의 패배는 결정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일순간 드예프의 눈에 경로가 보였다.

성좌가 연산한 최적의 경로.

상대를 죽이는 가장 확실한, 예외란 존재할 수 없는 수.

드예프가 사슬검을 크게 휘둘렀다.

좌아악!

오러로 인해 길게 늘어난 사슬검이, 정확히 라인하르트의 안면부를 강타했다.

너무나도 싱겁게.

‘닿았다!’

닿았다.

분명히 닿았다.

하지만 날아간 것은 라인하르트의 머리가 아니었다.

“뭣······?”

··· 이상하다.

날린 것은 틀림없이 놈의 머리일진대, 왜 자신의 시야가 계속해서 낮아지는지.

왜 땅바닥에 처박히는 게 자신인 건지.

[방화벽이 돌파당했습니다.]

[보호단계를 격상합니다.]

[돌파당했습니다.]

[백신을 가동합니다.]

[돌파.]

[모든 연결을 종료······.]

왜 성좌는 저 따위 말을 지껄이고 있는 것인지.

그 무엇 하나도 알 수가 없었다.

*

드예프의 목을 날린 순간, 하늘의 별 하나가 반짝였다.

[연관된 ‘인공위성’의 주파수를 포착해냈습니다.]

[주파수를 해킹하여 위성에 접근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지구 방위 드워프 16호’의 해킹을 완료했습니다.]

[위성 내부에서 생명신호를 감지했습니다.]

[내부 환경에 연결을 시도합니다.]

[엑세스 완료.]

[확인 하시겠습니까?]

< 조우(7)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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