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인 하르트······
휘슬은 죽지 않았다. 하지만 정상은 아니었다.
찬란한 적성을 지녔던 휘슬은 이제, 마법을 쓸 수 없는 몸이 됐다.
땅과 호흡하며 그의 자식 중에서도 유일하게 마법을 사용할 줄 알았던 아이.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자식에게 유독 더 눈길이 갔다.
그래서 아꼈다. 배움에 모자람이 없도록 최선을 다했다.
황실과 달리 대공은 마탑과 연이 없었다.
하지만 휘슬의 공부를 위해 그는 유명하다는 모든 마탑을 돌았다.
능력 있는 마법사라면 가리지 않고 초청했고, 원하는 게 있다면 만금이라도 내어줬다.
‘그것을, 고작 한 순간에.’
잃었다.
심장을 두른 마나의 띠가 망가졌으니 다시는 마법사 행세를 하진 못하리라.
평생을 마법사로 살아온 휘슬이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건 사형선고에 가깝다.
차라리 죽는 게 마음이 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죽음의 선택권 정도는 휘슬에게 주었다.
어차피 쓸모가 없어졌으니, 더는 신경쓰지도 않을 테니.
‘자격도 없는 놈을 그 자리에 앉혀줬건만.’
그러나 아무 것도 알아내지 못한 건 아니다.
휘슬이 정신을 잃기 전 호명한 이름.
······ 라인하르트.
마지막으로 만난 게 황태자라.
그렇다면 라인하르트가 휘슬에게 고독을 심었단 말인가.
어이가 없다.
자격도 없는 놈. 무능하기 짝이 없는 녀석.
그런 녀석을 황태자로 책봉시킨 건 자신이다.
꼭두각시로 부리려고.
손과 발을 묶은 채 노예처럼 쓰려고 말이다.
그런데 라인하르트는 보란 듯이 북방에 나타나 테베우스를 죽였다.
자신과 전쟁을 하겠다는 선전포고와도 다름이 없었다.
허나 살려주었다.
테베우스는 이미 포기한 자식이었고, 황태자는 아직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쓸모없는 자식보단 쓸 수 있는 황태자가 나았으니까.
‘감히······!’
그런데 감히.
하늘 높은 줄도 모르고 소환장을 보냈다.
자신에게. 제국의 기둥인 대공에게!
이를 어찌 받아들여야겠는가.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그 행보 역시 심상치 않았다.
어쩌면 광증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아니다.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다.
이 모든 걸 이루어내고자 연기를 한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테베우스를 죽이고, 이제 휘슬에게 고독을 심었다는 의심까지 생겼다.
‘죽여라.’
분노로 가득 찬 눈빛으로 드예프를 마주했다.
드예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버지.”
드예프.
다른 자식 중에서도 유일하게 대공을 ‘아버지’라 부르는 게 허락됐다.
그만큼 드예프는 가장 ‘예술적인’ 재능을 지녔다.
천재라는 말로도 부족한 신비에 가까운 영역.
소드마스터가 아닌 시절에 이미 소드마스터를 죽였다.
선택받은 자였으며 신수의 주인인 드예프는 대공이 만들어낸 극상의 예술품이다.
특히 전투의 센스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으며, 강자를 만나면 더욱 강해지는 면모 역시 지니고 있었으니.
지지 않는다. 어떻게 질 수가 있겠는가.
제아무리 황태자라고는 하나, 가면을 쓰고 있었다고는 하나, 벌레처럼 발악해도 드예프의 검을 막지는 못할 터.
드예프가 밟으면 터져야만 하는 게 놈의 운명이다.
그깟 황태자의 직함이 목을 훑는 검까지 빗겨나가게 할 수는 없으므로······ 그 결과는 죽음으로 귀결될 터.
더는 봐주기 어렵다.
라인하르트 황태자는 이제 더는 꼭두각시가 아니다.
‘이제부터 너는 나의 적이다.’
적.
반드시 짓밟고 멸해야 할 존재.
추상이 아니라, 상상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될 것이다.
설령 전성기의 크로프트가 건재하다 할지라도, 드예프라면 죽일 수 있으니.
*
―무패(無敗).
―역전의 용사.
―완성형.
―발할라의 영웅.
―인외의 괴물.
―백마 탄 초인.
······.
드예프를 수식하는 수많은 칭호와 보고들.
데우스는 그에 대해 진즉에 알고 있었다.
알 수밖에 없었다. 듣기 싫어도 들리고, 보기 싫어도 보이니까.
승전보가 울리면 항상 카를로스 대공과 함께 선두에 있는 자.
수많은 전장에서 맹위를 떨쳤다.
이길 수 없는 전쟁을 역전하였고,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을 숱하게 이겨왔다.
그야말로 세상을 평정하는 영웅의 면모다.
그걸로도 모자라 발할라 대영웅들의 목소리를 듣는 ‘선택받은 자’라지.
만약 라우넬이 드예프를 만났다면 몇 합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한 격차였다.
그러니 라인하르트가 라우넬에게서 승리를 따냈다고 하더라도······.
‘결국··· 여기까지 왔구나.’
데우스는 카잔과 라우넬이 이기는 그림을 그렸다.
마지막 경기까지 갈 필요가 없도록.
드예프는 상종하기 싫은 괴물이니, 아예 출현조차 시키지 않을 계획이었다.
그런데 카잔이 휘슬에게 패배하며 그림이 찢어졌다.
라우넬이 값진 승리를 일구어냈다 하더라도······ 결국 여기까지다.
라인하르트를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상대가 너무 나빴다.
“힘이 들면······ 패배를 선언하여도 된다. 너를 책하지 않으마.”
경기가 시작하기 전에, 황제 데우스는 라인하르트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이길 수 없는 대상을 상대로 패배를 선언하는 건 창피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현명한 일이다.
만용을 부리는 것보단 스스로를 파악하고 아는 게 훨씬 중요하다.
비록 카를로스 대공을 잡지는 못할 테지만 또 다음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물론 더 많은 대비를 하고, 더 심하게 압박을 해올 테지만, 그래도 괜찮다.
살아만 있으면.
건재하기만 하다면, 필시 기회는 올 것이다.
“걱정되십니까?”
그런데······ 걱정 되느냐고?
저 미소. 아까의 광기어린 그 미소가 아니다.
저것은 황후가 떠오르는 미소였다.
그가 사랑하고 아끼었던.
아직까지도 그러워하고 있는 그녀의 미소가, 라인하르트에게서 보였다.
이윽고 라인하르트는 이상한 말을 남기며 거부했다.
“그래 봤자, 인간입니다.”
······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틀린 말은 아니지만 라인하르트도 인간이지 않은가.
마치 자신은 인간이 아니라는 듯, 혹은 인간은 자신을 헤할 수 없다는 듯.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는 말을 남겼다.
그때였다.
경기장이 소란스러워진 것은.
“유니콘이다!”
“미친. 진짜 유니콘이라고?”
“저게 그 드예프님의 애마?”
뿔과 두 장의 날개를 지닌 순백의 백마가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유니콘이 어떤 존재던가.
그 역시 사라진 신비이자 신화였다.
전설 속에서만 등장하는 유니콘은 이미 사라진 종(種)이다.
그런데 그 유니콘이 경기장에 나타났다.
심지어 유니콘의 위에는, 드예프가 앉아있었다.
느긋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여유 가득한 미소로!
발할라 대영웅들에게서 선택된 진정한 영웅의 모습이다.
신성하기 짝이 없는 유니콘을 다룬다면 그 자체로 이미 황실의 권위조차 넘보고 있는 셈이다.
“저분이야말로 진정한 대영웅 아닌가.”
“신비······ 아니, 신성하군.”
“눈이 멀어 버릴 것 같아.”
사람들은 환호했다. 몽롱한 눈빛으로 유니콘을 바라보면서, 황홀한 유니콘의 자태에 푹 빠져버렸다.
저 신성한 존재에 타고있는 드예프는 더욱 완벽한 신과 같이 보일 따름이다.
감히 어느 누가 저 신적인 존재에 맞서겠는가.
라인하르트? 황태자가 아무리 대단해도 유니콘만 하겠나.
황실?
황실의 누가 저보다 더 신성할 수 있겠는가.
없다. 그런 인간은, 그런 존재는 이곳에 없다.
“라인하르트!”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
콜로세움을 넘어 수도 전역에까지 퍼져나갈 것만 같다.
귀가 먹어버릴 것만 같은 위용.
마나의 웅장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지니고 있는 마나조차도 그 질과 양이 대마법사를 웃돈다는 증거였다.
“내가 이기면 황룡기사단의 기사 한 명을 내어가마.”
그게 끝이 아니다.
드예프가 단상의 라인하르트를 향해 검을 겨눴다.
직속기사 한 명을 가져가겠다는 것.
명예를 실추시키겠다는 의도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드예프의 두 눈엔 욕망이 가득했다.
‘그 여자. 제대로 본 것은 아니지만, 확실하다.’
황룡기사단의 기사 중에 여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여자에게 유니콘이 반응한 것이다.
착각일 리는 없었다.
유니콘은 아름답고 순결한 여자에게만 반응한다. 단순히 아름답기만 해서는, 순결하기만 해서는 반응하지 않는다.
그 두 가지 모두를 갖춰야만 반응하며, 그러한 여자를 품을 때 드예프는 극상의 쾌락을 맛보았다.
하지만 흔치 않다.
여태껏 유니콘이 반응한 여자는 두 명뿐이었다.
그중 한 명은 품었으나 한 명은 잡지 못했다.
그 한 명을 품었을 때의 감각은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마약으로 맛볼 수 있는 그런 종류의 황홀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건······ 뭐라고 해야할까.
진리에 다가가는, 세상의 숨겨진 비밀을 맛보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무엇으로도 흉내낼 수 없는, 그야말로 신이 된 기분.
다시 맛볼 수만 있다면 목숨을 내어줘도 좋다.
그런데 전혀 기대도 안 한 황실에서, 그것도 라인하르트의 직속 기사단인 황룡기사단에서 찾아낸 것이다.
승리의 전리품으로 이보다 완벽한 게 또 있을까.
어차피 자신이 질 리는 없으므로.
패배를 모르는 그가, 완벽한 동기까지 갖췄다.
‘유니콘이라니. 그 보고가 사실이었단 말인가······.’
반면 황제 데우스의 표정은 더욱 참담해졌다.
드예프는 신화나 전설 속 유니콘의 주인이라는 보고가 있었다.
워낙에 과장되고 허황된 소문이 많았기에 애써 무시했다.
그런데 사실로 밝혀졌다.
그것도 하필 지금, 자신의 눈 앞에서.
아아······.
드예프 하나만도 벅차건만 유니콘까지 가세한다면 실낱같은 희망마저 사라진다.
이 콜로세움에서 길들인 야수를 사용할 수 없다는 규칙은 없었다.
드예프. 정말로 발할라의 영웅이란 말인가.
영웅들이 죽으면 향한다는 하늘 위의 세계, 발할라.
그곳에서 영웅들의 목소리를 듣는 자. 성좌의 선택을 받은 자를 ‘선택받은 자’라고 부르곤 하였다.
‘포기해야······.’
이길 수 없다.
데우스의 두 눈이, 황실의 모든 눈이 라인하르트에게로 향했다.
차라리 포기하는 게, 패배를 인정하는 게 낫지 않을까.
창피를 당하고, 어쩌면 죽을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단 그게 나을 터다.
그래봤자 인간이라고 했으나 저 유니콘은 아예 다른 존재이지 않나.
인간 이상의 존재다.
인간은 범접할 수 없는,
범접해서도 안 되는 최상위의 신수.
그것이 바로 유니콘이었기에.
툭-.
하지만, 라인하르트는 경기장으로 나아갔다.
평범하게 걸어서 향한 것은 아니다.
라인하르트는 단상의 위로 올라,
‘무언가’를 불렀다.
“― 발록.”
구오오오오오오오.
동시에, 바람이 불었다.
범상치 않은, 뜨거운 바람이 불어왔다.
모두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관객들도, 황실가와 대공가 모두의 눈이 하늘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
“아아······.”
할 말을 잃었다.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신성하지도, 그렇다고 황홀하지도 않은 존재였다.
그것은 그저 위압적이며 포악하기만한 포식자였다.
황금의 물결을 두른 거대한 동체.
도마뱀의 그것과도 같은 기괴한 눈.
세상을 오시하는 패악질스러운 자태에,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가공할 두려움을 양산하는 괴물에, 모두가 몸을 떨어댈 수밖에 없었다.
“황··· 룡······.”
용.
제국의 수호자, 전신(前身)이라 불리는 황금빛의 용이.
지금 이곳, 콜로세움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 조우(6)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