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슬이······ 폭주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는 말이냐?”
콜로세움 가득한 열기.
승리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카를로스 대공은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러운 휘슬의 소식 탓이었다.
“예. 각하. 상태가 심각합니다.”
휘슬의 상태를 전달한 기사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폭주 현상. 자세한 내용을 말하지 못할 만큼 심각하다.
‘대결은 여유롭게 승리했을 텐데?’
카잔을 상대로 상처 하나 없이 낙승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갑자기 마나폭주 현상이라니?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 다음 경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돌아오겠습니다, 폐하.”
결국, 직접 확인코자 카를로스 대공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참담한 데우스의 표정을 더 감상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
휘슬은 죽은 테베우스와 달리 그가 아끼는 자식이었다.
기사들 무리에서 유일하게 마법의 적성을 보인 아이.
자식들에게 무심한 대공도 눈여겨볼만큼 찬란한 재능을 지녔건만.
기사들의 안내를 받으며 내려가, 휘슬이 있는 방에 도착하자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끄어어어어억!!”
울긋불긋 포진이 일어난 피부.
강력한 독소로 머리카락을 비롯한 모든 털이 녹아내리고 있다.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틀어댄다. 상태가 호전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단순한 마나 폭주가 아니다.
중독(中毒)이었다.
급작스럽게 이러한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독은 한 가지뿐이다.
카를로스 대공은 휘슬의 손목을 낚아챘다.
‘고독.’
역시나.
하지만 의아한 일이다. 고독을 다룰 수 있게 철저히 훈련받은 휘슬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역으로 고독에 중독될 수 있다는 말인가.
게다가 독소가 퍼지는 속도가 상상을 초월했다.
기존의 고독보다도 훨씬 강력한 독소에 의해 신체가 망가지고 있었다.
“각하. 성수도, 해독제도 들질 않습니다. 고독에 의한 독성 같아 살충약도 먹여봤습니다만······.”
그 옆에선 의원이 고개를 저었다.
고독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자였으나 준비한 약조차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준비한 고독이라면 약에 의해 죽일 수 있다.
하지만 죽지 않는다.
해독되질 않았다.
그보다 더욱 강력한 독과 생명력을 지닌 충이 휘슬을 죽이고 있었다.
카를로스 대공은 침착하게 물었다.
“어떠한 경로로 감염되었는지 알겠느냐?”
“손에서부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미약한 상처를 통해 흡입된 고독이 순식간에 전신에 독을 퍼트리고 있는 겁니다.”
“손에서?”
손바닥을 펼치자 정말로 작은 상처 하나가 나 있었다.
육안으로 확인하기 힘들 정도로 작은 이 상처를 통해 고독이 들어갔다는 뜻이다.
유입경로는 알았으나 역시나 이상한 일이다.
입이나 코, 눈과 같이 들어갈 수 있는 경로는 많다.
그런 구멍을 통해 유입되는 게 고독의 본능이다.
굳이 손바닥에 있는 상처를 통해 고독이 절로 들어가지는 않을 터.
‘아무리 작은 상처라도 손바닥이라면 모를 수가 없을진대.’
통점이 모여있는 손바닥의 상처는 아무리 작아도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극도로 감각이 예민하게 단련된 휘슬이다.
이는 누군가가 손바닥에 미세한 상처를 내어, 고의적으로 고독을 침투시켰다는 의미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끄으으으으!”
게거품을 흘리며 눈을 뒤집어 깐 휘슬은 곧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강제로 벌레를 죽이면 어찌 되겠느냐?”
“독이 이미 뇌간까지 퍼졌습니다. 운이 좋아야 백치입니다.”
“허.”
어이가 없다.
제대로 된 해독 없이는 백치가 된다.
여유롭게 이겨놓고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고독의 종류 또한 내가 준비한 게 맞다.’
카를로스 대공은 휘슬의 신체로 마나를 흘려 넣었다. 좁쌀보다 작은 벌레 한 마리가 심장에 붙어있는 게 느껴졌다.
자신이 준비한 고독이 맞았다.
허나 애당초 카잔에게 심었어야 할 고독이다.
고독은 적당하게 독소를 뿜어내어 몸과 정신을 병들게 만든다. 미리 준비한 약을 처방해 고독의 독소를 조절하며 카잔을 자신의 쪽으로 끌어들이려는 계획이었다.
이후 라인하르트 황태자를 제거하고 카잔을 황위에 올려놓는 게 모든 계획의 완성이었다.
그런데 시작부터 삐걱대는 것이다.
직접 키운 고독이 맞을진대, 준비해둔 약이 통하질 않는다니.
“한데, 카잔 황자는?”
“······ 멀쩡하다고 합니다.”
카잔은 멀쩡하다?
‘고독에 대해서 알고 있는 자가 있나?’
제대로 된 고독을 만드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아무리 대공인 그라도 몇 만들지 못할 만큼.
극비리에 진행되었고 그래서 아는 사람조차 없었다.
사전에 누군가에게 알려졌을 가능성은 전무하다.
그렇다면, 고독에 대해서 알고 있는 자가 미리 대처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만한 급성중독이라면 필시 조우한지 얼마 되지 않았으리라.
“휘슬. 경기가 끝나고 누구를 만났느냐?”
“으어어어!!”
발버둥 칠 뿐 제대로 된 대답조차 하지 못한다.
카를로스 대공의 표정은 점차 굳어갔다.
고독에 대해 알고 있는 제삼자가 있다.
다음 경기에서까지 위험을 안고 사용할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더 철저하게 살펴봐야 할듯싶다.
“어쩌시겠습니까?”
의원의 물음에, 대공은 휘슬의 팔목을 붙잡았다.
“벌레를 제거하겠다. ······ 내가 직접.”
동시에 그의 전신에서 은은한 오러가 흐르며 휘슬에게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단순히 몸을 살피는 정도가 아니라 마나로 벌레를 태워버릴 생각인 것이다.
그러나 타인의 신체에 마나를 흘려 넣어 직접 조종하는 것은 금기다.
특히 마나가 폭주한 대상을 상대로 이런 짓을 했다간 폭주한 대상이 죽을 가능성이 100%에 가까웠다.
마나를 흘려 넣은 대상도 무사하진 못하다.
‘휘슬에게 접촉해 고독을 심은 자를 알아내야만 한다.’
카를로스 대공은 그러한 사실들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변수는 제거해야만 한다.
휘슬이 죽더라도, 백치가 되더라도, 접촉한 자를 알아내고야 말겠다.
알아내거든.
‘죽인다.’
카를로스 대공의 눈이 심연처럼 가라앉았다.
*
“이 콜로세움 안에선 너도, 나도 같은 전사일 뿐이야. 그러니 말 놓을게?”
타베론이 검을 한바퀴 돌리며 이죽거렸다.
긴장감이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얼굴.
애들 장난처럼 이 대결에 임하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콜로세움의 경기장에서 타베론을 마주한 라우넬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어렸을 적, 라우넬은 놈에게 패배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10년도 더 된 일이었다.
그날 이후 라우넬은 단 하루도 단련을 쉰 적이 없다.
“너무 긴장한 거 아냐? 워워, 살살 해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이미 처녀는 아니잖아?”
이곳 콜로세움에선 계급과 나이를 따지지 않는다.
모두가 같은 전사일 따름이다.
그것이 제아무리 콜로세움의 규칙이라고는 하나, 그래도 명색이 대공가의 자식 아닌가.
“여전히 천박하군.”
“천박? 크하하! 어디 팔 하나 잘리고서도 같은 소리를 지껄일 수 있나 볼까?”
“진지하게 임해라. 죽기 싫으면.”
비록 녀석에게 패배한 건 충격적이지만 그런 충격 따윈 아무것도 아니었다.
라인하르트에게서 느껴왔던 충격에 비하면.
라인하르트가 주었던 수많은 충격들에 비하면 귀엽다.
그리하여 수없이 불타올라 재가 되었고, 그때마다 라우넬은 부활했다.
피닉스.
죽지 않는 새.
그 이름처럼, 라우넬은 절대로 쓰러지지 않으며 죽지 않는다.
‘보여주마.’
화아아아아아악!
순간 라우넬의 등 뒤로, 거대한 불의 날개가 펼쳐졌다.
“······.”
“저, 저게 뭐야?”
“이전에만 하더라도 저 정도 크기는······.”
관람객들을 포함한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또 한 번 벽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라우넬은 패배하면 패배할수록 더욱 강해졌다. 타오른 재는 이전보다 더욱 화려하게 불타오르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피닉스 연공법을 대성하였으나 라우넬은 그마저도 넘어섰다.
북방에서의 패배와 라인하르트에게서의 패배를 겪으며, ‘초월(超越)’하였다.
“불의 화신······.”
“라우넬 황자 저하······.”
“아아. 찬란하군.”
피닉스 기사단들은 감격하며 몸을 떨었다.
눈물을 흘리는 자도 있었다.
그들 역시도 같은 피닉스 연공법을 익혔으나 저 정도로 완성하진 못했기에.
무한하게 타오르나 죽지 않는 자.
그야말로 불의 화신 같은 모습 아닌가.
‘또 한 번 이겨내셨다.’
이겨낸 게다.
패배를 극복한 것이다.
이 어찌 자랑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
자신들이 모시고 따르는 자의 눈부신 성장을.
그제야 타베론의 웃음기가 사라졌다.
온실 속의 화초인 줄로만 알았다. 라인하르트 따위에게 패배한 반푼이 자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화초가 아니라 잡초였군.’
끈질긴 놈이다.
밟아도, 밟아도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고야 만다.
타베론이 검 한 자루를 더 꺼냈다.
아무래도 더이상 장난으로 임할 수는 없을 것 같았으니.
*
타베론은 강자 서열첩 15위의 최강자였다.
반면 라우넬은 50위에 머무른 상태였다.
누가 봐도 승패가 정해진 싸움이다.
서열첩 20위 내의 인간들은 모조리 ‘괴물’ 취급을 받았으니까.
하지만 모두의 예상이 깨졌다.
“······.”
대결장 위에 우뚝 서 있는 한 사람.
30분이 넘도록 처절하게 사투를 벌인 끝에 마침내 타베론이 쓰러졌다.
“후우우우.”
라우넬도 멀쩡하진 못했다.
그러나 타베론은 전신이 타버렸다. 죽지는 않았으나 평생 상처를 달고 살아야 할 것이다.
“와아아아아!”
“라우넬 저하 만세!”
“만세!!”
황실가의 첫 승리.
휘슬이 승리했을 때보다 더욱 우렁찬 함성이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그들 역시 라우넬의 성장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도 했기 때문이다.
함께 성장해가는 그러한 느낌이 들어 라우넬에게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라우넬이 시선을 돌려 단상 위를 바라보았다.
황제 데우스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옆에, 라인하르트와도 두 눈이 마주쳤다.
“······.”
말은 필요 없었다.
승리를 따냈으니, 마지막 기회가 생겼다.
그러니 반드시 이겨야만 한다.
반드시.
*
타베론의 패배에 대공가는 충격을 금치 못했다.
“타베론님은 소드마스터 두 명도 충분히 상대하실 수 있는 강자인데······.”
둘째인 타베론의 강함이야 기사들도 모두 인정할 수준이다.
죽고 죽이는 싸움에서 더욱 강해지는 게 타베론이었다.
그런데 졌다. 고작 라우넬에게. 황자에게.
아무리 라우넬이 천재라고 불리우나, 타베론에 미치지는 못했다. 전장에서 구르며 집중적으로 키워진 학살자를 궁에서 자란 황자가 어찌 이긴단 말인가.
우연은 아니다.
그들은 우연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드예프님이라면 이겼을 것이다.”
“그래. 타베론님도 몇 수 접을 수밖에 없는 게 드예프님이니까.”
“라인하르트 황태자가 강해봤자 드예프님을 이길 순 없지.”
우연을 믿지는 않지만 실력에는 확신하는 편이었다.
드예프. 강자 중의 강자. 서열첩 10위 안에 항상 들어가는 괴물.
기사왕 카를로스 대공이 가장 애지중지하며 키운 무기 그 자체다.
인류최강으로 거듭나리라 확신할 수 있는 천재 중의 천재를 라인하르트 황태자가 이길 수 있을 리 없다.
불가능하다.
드예프의 전투 센스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므로.
이윽고 드예프와 라인하르트가 결투장에 올랐다.
“몇 초안에 끝날까?”
“드예프님은 1:1에서 30초 이상 걸린 적이 없지?”
“10초면 충분하겠군.”
“10초도 길다. 5초면 충분해.”
기사들은 확신했다.
라인하르트 황태자를 박살 내는 데에는 5초면 충분하다.
드예프는 1대1과 1대 다수 모두 강했다. 그에게 패배란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대결이 시작된 직후 그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기사들 뿐만이 아니다.
모든 관객들이, 황실가와 카를로스 대공 조차도.
“뭐, 뭐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 조우(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