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데우스의 변화는 급진적이었다.
총사령관에 크로프트를 임명하고 병사와 기사들을 일으켜 세웠다.
황실의 모아둔 힘을 총결집시키고 있다.
마치 전시태세처럼.
마물들에게 수도가 공격당했을 때도 이 정도의 준비를 갖추진 않았건만.
“전쟁이라도 나는 거 아니야?”
“에이, 설마. 데우스님께서 그러시겠나?”
“오늘만 해도 2만이 넘는 병사가 궁으로 집결했다고 들었어. 전쟁준비가 아니라면 그 많은 병사가 왜 필요해?”
궁의 분위기가 얼어붙자 그 여파를 시민들도 격감할 수 있었다.
조사단장이 귀족들을 재판대에 세우고 처형시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황명으로 인한 결집이었다.
허나 평화를 사랑하는 성왕 데우스가 이만한 병사를 모을 일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악마 교단 때문 아니겠나?”
“아아······ 리겔 왕국에서 대악마가 부활했다지?”
“신성교가 대대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던데. 제국도 거기에 발맞추려는 거겠지.”
이야기를 듣던 다른 남자가 끼어들었다.
“내가 듣기로는 카를로스 대공과의 마찰 때문이라던데······.”
“카를로스 대공?”
“북방에서 내려오고 있다는군. 라인하르트 황태자가 직접 카를로스 대공을 소환했다는 것 같아.”
“소환했다고? 미친 거 아닌가?”
“조사단장이 무슨 황제보다 높은 직위라도 된대?”
“허어······ 그럼 카를로스 대공이 직접 궁 안에 들어가는 건가?”
라인하르트 황태자가 카를로스 대공을 소환했다!
이 파장은 결코 작지 않았다. 저 멀리 동쪽에 있는 리겔 왕국에서 일어난 일 보다야 이곳 수도에서 일어날 일이 시민들에겐 더욱 중요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태풍을 몰고 다니던 그 라인하르트 황태자 아니던가.
조사단장으로 있을 때 하루에 최소한 한 명 이상의 귀족이 목이 잘렸다.
기습적으로 습격해 그간 저질렀던 비리들을 탈탈 털어버렸다. 오죽했으면 귀족들이 단체로 몰려가 항의를 했을 정도다.
하지만 황태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도리어 항의를 한 귀족들을 더 철저하게 조사했다.
결국 귀족들은 숨을 죽인 채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철혈의 황태자라 할지라도 이번에는 대상을 잘못 골랐다.
“잠시 수도를 떠나있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군······.”
“황태자의 목이 역으로 잘리는 거 아닌가 싶은데······.”
썩은 귀족들과 카를로스 대공은 격이 다르다.
제국을 넘어 대륙 전역에서 ‘범접할 수 없는’ 영역에 있는 존재가 바로 카를로스 대공이었다.
그야말로 성역 같은 존재다.
절대로 건드릴 수 없고, 건드려서도 안 되는.
그를 건드리고 살아남은 자는 없었다. 그의 심기를 건드린 모든 자가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카를로스 대공이 어떤 존재던가.
기사왕. 파멸왕. 도살자 등등 그를 수식하는 단어는 셀 수가 없을 지경이다.
젊었을 시절의 그는 수많은 전장에서 ‘악귀’로 불릴 만큼 악명이 높았다.
전성기의 크로프트와도 항상 비교되곤 하였으나 은퇴한 크로프트와 달리 카를로스 대공은 지금까지도 전장을 휘젓고 다녔다.
그의 자식들은 또 어떤가.
하나같이 천재가 아닌 자식이 없었다.
찬란하기 그지없는 미래. 황실과 항상 비교되고는 하는 카를로스 대공은 살아있는 권력 그 자체였다.
······ 한데, 살아있는 권력 그 자체인 카를로스 대공을, 이제 막 부화한 햇병아리 라인하르트 황태자가 ‘직접’ 소환했다?
아무리 조사단장의 권위가 막중하다고는 하나 상대는 카를로스 대공이다. 그를 소환하고 조사하는 건 황제도 쉽게 하지 못할 일.
“허어, 앞으로 어찌 될지······.”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다.
피바람이 분다면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피바람이 분다면, 그것은 역풍일 가능성이 컸다.
카를로스 대공의 목이 잘리는 것보다 황태자의 목이 잘리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높았다.
시민들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궁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
황제 데우스의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자신감’이 있었다.
‘황실의 권위를 바로 세울 때다.’
지금껏 데우스는 카를로스 대공과의 마찰을 피해왔다.
이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평생을 그와 비교당하며 살아온 게 데우스다. 황실의 저력과 카를로스 대공의 저력은 항상 저울 위에 올라가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게 부족하다고 여겼다.
믿음이 없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래서 결단하질 못했다.
그런 자신의 나약한 부분을 라인하르트가 해결해주었다.
‘크로프트도, 라우넬도, 황룡기사단도······.’
라인하르트는 결단력이 있었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달려나가는 기질이 있었다.
그로 인해 모두가 변했다.
라인하르트를 거치며 급격한 변화를 맞이했다.
크로프트는 벽을 넘었다.
라우넬 역시도 소드마스터를 넘어섰다.
대륙 전역으로 흩어진 황룡기사단도 모여들었다.
또한 와이번을 이용해 귀족들의 비리를 신속하게 털어버린 덕분에 중앙귀족들의 세가 급격하게 약화하였다.
세상에. 와이번이라니!
제국이 사육하는 걸 포기한 마물 아니던가.
억만금을 들여 도전했으나 결국 ‘사육’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은 야생의 괴물.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육하여, 기사들에게 나눠주기까지 하는 대범함을 보였다.
뿐만인가.
‘라인하르트. 너로 인해 변했다.’
데우스.
그 역시도 변하고 있었다.
외면하고 피해왔던 것을 정면으로 마주할 자신감이 생겼다.
이 모든 게 단기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모두 ‘라인하르트’가 깨어난 직후 벌어졌다.
라인하르트의 행보는 걷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기대가 되었다. 마치 대영웅의 서사를 직접 보고 있는 그런 기분이 들었으니까.
‘소중한 것은 없어지고 나서야 보인다더니.’
하지만 갑자기 사라졌다.
40여 일간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졌었다.
그전까지는 별반 감정이 없었으나, 라인하르트가 사라진 이후에야 황제 데우스는 라인하르트에 대한 감정을 깨달았다.
자신이 기대하고 있었다는 걸.
자신이 해내지 못한 것을 손쉽게 해내는 걸 보며 은근히 열광조차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부정했으나 이내 체념하였다.
받아들였다.
그의 자식 중에서도 라인하르트만은 궤가 다르다.
유일하게 파격적이고 거침이 없었다.
이런 이의 결말을 두 가지 중 하나였다.
혁신을 끌어내던가, 파멸하던가.
“······ 짐 역시도 물러서지 않으마.”
카를로스 대공과 마주하는 건 무척 오랜만의 일이다.
떨린다. 그의 눈을 마주할 생각에.
두렵지 않다면 거짓이리라.
하지만 물러서지 않는다.
연전연패하며 사라졌던 불꽃이 재차 타오르고 있었다.
패배에 절여져 계속해서 수그러들었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다를 것이다.
······ 앞으로도 무능한 아비로 남을 수는 없으니까.
*
카를로스 대공의 남하소식은 그 즉시 내 귀로 들려왔다.
소환장으로 진행한 도발이 먹혀들었다는 방증일 것이다.
아니라면 그냥 콧방귀를 끼고 무시하면 그만일 텐데.
“······ 문제는 감시가 너무 삼엄하다는 거로군.”
황제를 알현한 이후 나는 갇혀있었다.
삼엄한 경비에 의해 궁에서 꿈쩍도 할 수가 없었다.
카를로스 대공이 궁에 근접하면 할수록 경비는 더욱 삼엄해져갔다.
조사단장의 직무야 진즉에 내가 없이도 수행되고 있었으니, 굳이 손을 쓸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전하. 또 몰래 나가시면 아니 됩니다.”
집사 제르민이 강조하며 눈을 부라렸다.
갑자기 내가 사라져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는지 볼이 홀쭉해져 있었다.
더불어 궁을 지키는 병사들이 지천에 깔려있었다.
방 문을 나가는 것만으로도 수십의 기사가 지켜보는 중이다.
또 갑자기 사라질 것을 염려하고 걱정하는 데우스의 특단의 조치였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조사하겠다고 했을진대······.”
“이번 건은 황제폐하께서 직접 진행하겠다고 합니다. 그때가지 전하께선 이곳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셔선 안 됩니다.”
제르민의 말마따나 카를로스 대공과 마주하는 건 내가 아니라 황제 데우스다.
그와 부딪히는 걸 무조건 피해만 오던 데우스가 무슨 심정의 변화인지 돌연 이렇게 통보해온 것이다.
허.
황제와 카를로스 대공이라······.
같이 앉아있는 그림조차 그려지지가 않는다.
카를로스 대공 역시 북방의 전력중 상당수를 대동한채 내려오고 있었다.
그의 자식들도 함께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자칫 잘못했다간 무력싸움으로도 번질 수 있는 일이다.
황실의 권위가 걸렸으니 쉽게 물러설 수도 없다.
“아렐도 황룡기사단에 회부했습니다. 이번엔 가만히 지켜만 보십시오.”
제르민의 눈이 용보다도 무섭다.
이런 때의 제르민은 예나 지금이나 말릴 수가 없다.
하물며 아렐은 내 ‘가출사건’에 공범으로 지목당했다.
하지만 아렐의 본래 위치는 황룡기사단의 견습기사단원이다.
크로프트에 의해 회부당했으니 지금쯤 미친 듯이 굴려지고 있으리라. 그나마 나를 곁에서 보좌했다는 이유가 어느정도의 면책사유는 되었다지만.
‘아무도 만나지 못하게 하다니.’
갑자기 황제가 이러는 게 적응이 되질 않았다.
이 정도면 감금이다. 그것도 예전과는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라면 의도일 것이다.
물론 내가 사고를 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는 건 똑같을 테지만, 불신과 걱정의 차이는 확연하게 느껴졌다.
문제는 나를 너무 싸고 돌고 있다는 것이었다.
데우스는 나를 명백히 ‘보호’하고 있었다. 다소 과하다 싶을만큼.
카를로스 대공이나, 악마 교단에서 어떤 수작을 부릴지 모른다는 명분이었다.
직접 한 말이 있으니 뭐라고 반박할 수도 없었다.
‘내가 신성군주이며 대죄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무슨 반응일지.’
보호가 필요없을만큼 나는 강해졌다.
하늘 아래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천적 말피엘도 죽였다.
어지간한 용보다도 강해졌지만 그것을 데우스는 모르고 있었다.
만약 내가 신성군주이며 대죄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때에도 같은 반응일까?
내심 고개를 젓는다.
아무리 황제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과 받아들일 수 없는 게 있는 법이다.
하물며 직접 소탕한 ‘악마교단’의 전신인 대죄종을 내가 흡수한 걸 알게되면 어떤 여파로 다가올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 때에도 나를 감쌀 것인지.
확신할 수가 없다. 그 반대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렇게 싸고 돈다고 나가지 못할 내가 아니지만······ 이런 처우가 처음인지라 당황하여 일단은 가만히 있었다.
물론 이미 위성을 통해 실시간으로 주변의 상황을 살피는 중이었다.
카를로스 대공이 지척까지 다가왔다는 사실도, 진즉에 파악한 뒤였다.
‘다 왔군. ’
부아아아아아아아앙!
그 순간, 저 멀리서 들려오는 나팔소리.
수도를 관통하여 수많은 병사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카를로스 대공의 상징인 독수리가 그려진 붉은색의 깃발.
“······ 마침내 도착했군요.”
그 깃발을 본 제르민이 숨을 삼켰다.
그의 표정이 비장해진다.
제르민만이 아니다.
바깥에 대기중인 기사들도, 병사들도 바짝 긴장하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살아있는 권력.
그가 궁에 직접 모습을 보이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으므로.
그리고 그가 나타날 때마다 격변이 있어왔으므로.
이윽고 제르민이 나를 보며 거듭 강조했다.
“전하. 절대로. 절대로 이곳을 빠져나가셔선 안 됩니다. 이번에는 가만히 지켜만 보셔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 조우(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