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데우스는 복잡한 눈빛으로 라인하르트를 바라봤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 믿고 맡겼더니 도대체 어딜 다녀온 게냐?”
조사단장의 직무를 저버린 채 사라진 게 거의 40여 일이다.
그 시간 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간 제국은 초비상 상태였기 때문이다.
크로프트도, 집사 제르민조차도 라인하르트의 행방을 모른다.
납치라도 당한 건 아닌지, 어딘가 오지에서 무슨 작당을 벌이고 있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제국의 모든 정보망을 총동원했음에도.
마치 증발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급히 볼 일이 있었습니다.”
“······ 너를 찾고자 사용된 황실의 재원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느냐?”
“저를 찾으셨습니까?”
나는 의외라는 눈빛으로 데우스를 바라봤다.
라우넬에 이어, 황제마저도 자신을 이토록 애타게 찾았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불 같이 화를 내며 경을 치면 차라리 마음이 편했을 것이다.
그런데 황제의 눈빛엔 알다가도 모를 걱정이 한켠에 숨어있었다.
나를 향해 황제가 저런 눈빛을 하는 건······ 처음이다. 적어도 내 기억상에는 없다.
“그럼 제국의 황태자가 사라졌는데 찾지 않는단 말이냐?”
“찾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나에 대한 평가가 바뀐 건 안다.
직접 나 자신을 수차례 증명했으니 바뀌지 않을 수는 없었을 터다.
하지만 평가가 바뀌었다고 인식마저 바뀌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솔직히 찾지 않을 줄 알았다.
어쨌든 데우스의 입장에서 나는 사고뭉치일 테니.
“··· 황태자의 모든 행사는 명명백백해야 하는 법. 그 급한 볼일이라는 게 무엇이었는지 한 번 들어나 보자꾸나. ”
하지만, 다르다.
오늘의 데우스는 내 기억상의 그와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었다.
예전이었다면 찾기는커녕 관심조차 주지 않았을 것이다. 설령 관심을 주더라도 그것은 사고를 친 것에 대해 벌을 주려는 것일 터였다.
들어본다. 나의 말을.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들어보고’ 결정하겠다······.
전생과 이번생을 통틀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는 알아서 판단하고 벌을 내릴뿐인 존재였으니까.
‘어찌한다.’
어렵다. 어려웠다.
차라리 불같이 화를 냈다면 벌을 받으면 그만일 뿐이다.
오랜시간 조사단장의 직무를 도외시한 채 바깥을 나돈 건 분명한 잘못이었다. 그만큼 ‘업적강탈’에 눈이 돌아갔다는 방증이기도 했지만.
덕분에 업적도 강탈하고, 말피엘도 죽인데다 원죄까지 품게 되었다.
허나 그러한 사실들을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지 않나.
신분을 숨긴 채 리겔왕국에 다녀왔다······ 고 할 수는 없지 않나.
“리겔 왕국에서의 소식은 들으셨습니까, 폐하?”
“대죄종이 나타났다는 것 말이냐? 안 그래도 그 일로 신성교에서 사람을 보내오기로 하였다. 혹, 그 일과 관계가 있더냐?”
데우스의 표정에 변화가 생겼다.
그것은 순수한 분노며 멸시다.
그래도 한 번 물어는 보았다.
“어쩌실 계획입니까?”
“말을 돌리려는 게냐? ······ 당연히 적극적으로 참가할 것이다. 악마교단의 뿌리를 뽑는 건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일일 터이니.”
악마 교단과 관계 있는 모든 것은 반드시 말살(抹殺)해야만 한다.
하물며 칠죄종도 아닌 대죄종이라니.
그런 황제의 의지를 돌릴 수는 없을 것 같아 보였다.
‘사실대로 말했다간 그대로 폐위당하겠군.’
제가 악마교단의 대죄종입니다. 하고 말하는 순간 어떻게 될지 미래가 보인다.
죽이거나, 폐위하거나, 여하간 좋은 결과로 대두될 미래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일하게 걸리는 건 자스민 성녀였다.
플릭이야 정신을 놓은데다 용언으로 세뇌시켰으니 큰 걱정은 없다지만, 자스민 성녀는 분명하게 내 얼굴을 보았다.
“신성교에서 누굴 보내기로 했습니까? 자스민 성녀입니까?”
“그렇다. 자스민 성녀와 아마르 추기경이다. ”
예상이 적중했다.
하기야 처음으로 교단에 언질을 한 것도 자스민 성녀였을 테니, 정해진 수순이다.
무리해서라도 죽이고 올 걸 그랬나?
아니다. 내심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간 아렐이 죽었을 것이다. 제로투가 깨어날 때까지 아렐의 근처에 있어야만 했던 탓이다.
문제는 자스민 성녀가 나를 보면 반드시 알아볼 텐데.
“그래서, 이 문제와 너의 가출이 연관이 있다는 소리렷다?”
데우스가 재촉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입을 열었다.
“상관이 없지는 않습니다.”
“흠······.”
데우스가 침음을 흘리며 턱을 쓸었다.
대죄종이 나타난 것과 상관이 있다면 결코 작지 않은 일이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폐하. 저는 악마교단이 준동하고 있는 것을 미리 알아차렸습니다.”
“어떻게?”
“암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
황제의 이맛살이 구겨졌다.
황태자궁을 습격한 암살자가 있었다는 말은 익히 들어 알고있었다.
그 전엔 4황자궁이 괴물에게 암습당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연달아 벌어진 것이다.
황제의 눈빛이 착찹해졌다.
그렇다면 라인하르트는 궁이 안전하지 않다고 여겨서 떠난 것이었나.
“발록.”
발록의 이름을 부르자, 곧 문이 열리며 발록이 한 남자를 손에 든 채 모습을 드러냈다.
축 늘어진 남자. 전신이 피투성이인 그를 보며 내가 말했다.
“암흑교단에서 보내온 암살자입니다. 암흑교단의 다섯 검 중 하나라더군요.”
“허어······ 저놈이?”
암흑교단이 보낸 암살자라니.
하지만 더욱 놀라운 건 발록이었다.
데우스가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황제로서 수많은 강자들을 보아온 데우스다.
제국만이 아니라 타국의 강자들도 익히 눈에 익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저 검은 갑옷과 투구, 망토를 두른 기사는 여태껏 보았던 어떤 강자들보다도 강렬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는 기분이라니.
일반인도 아닌 황제인 자신이 그렇게 느꼈다면 필시 대단한 기사일 터.
라인하르트는 저런 기사를 대체 어디서 구해온 걸까.
“이자는 악마교단과 카를로스 대공의 직접적인 연결고리입니다.”
“······ 카를로스 대공이, 악마교단과 손을 잡고 너를 죽이려 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폐하.”
데우스의 전신이 미묘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카를로스 대공이 악마교단과 접점이 있다는 심증은 있었다.
그러나 명백한 증거도, 증인도 없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악마교단의 암살자를 보냈다는 건 명백하게 선을 넘은 일이다.
그것도 제국의 황태자를. 후에 제국의 기둥이 될 사람을 죽이려 하다니?
‘감히······!’
꽈드득!
황좌가 우그러진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얼굴에 그려졌다.
데우스는 황제였지만 카를로스 대공과는 굳이 대립각을 세우지 않았다.
수많은 귀족들과 강력한 기사들을 등에 엎은 그와 내전을 벌였다간 제국이 멀쩡하게 남아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두렵기도 하였다.
카를로스 대공의 카리스마는 자신과도 대조되는 것이었기에.
하지만······.
악마교단과 손을 잡은 것도 용서할 수 없는 중죄일진대, 그들과 함께 라인하르트의 목숨까지 노렸다.
그것도 궁 내로 암살자를 들여가면서.
자신이 있는 이곳에서!
얼마나 자신을 무시했으면 이런 작당을 벌였겠는가.
아무리 숙이고 들어갔다고 한들 제국의 주인은 아직까지 자신이었다.
하물며 라인하르트를 암습했다는 건, 카를로스 대공과 라인하르트의 접점이 아예 사라져버렸다는 걸 뜻했다.
라인하르트가 황태자의 자리에 책봉된 건 카를로스 대공이 라인하르트를 꼭두각시 황제로 사용하기 위함이었으니.
사용할 수 없어지자 제거하려는 것일 터.
“신성교도 믿을 수 없습니다. 카를로스 대공의 끄나풀이 신성교에도 닿아있으니 조심하십시오.”
“······ 자스민 성녀와 아미르 추기경을 말하는 것이냐?”
고개를 끄덕인다.
아까 언급한 이름들.
불에 기름을 부었다.
의혹을 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카를로스 대공의 끄나풀이 신성교에 있다는 말도 사실이었으니 엄밀히 말하면 거짓은 아니다.
황제는 불같이 분노했다.
“결코······ 이 문제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향해서가 아니라, 카를로스 대공을 향해서.
처음으로 카를로스 대공과의 대립각을 첨예하게 세웠다.
나로서도 처음보는 것이었다.
과거에도 데우스는 대공을 두려워했다. 직접적으로 황실을 건드리지만 않으면 모든 걸 양보하고 내주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예상 외였다.
황제가 변했다.
그가 저토록 있는 힘껏 분노를 표출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내 권능 때문인가?’
물론 아무런 권능도 발현하진 않았다. 허나 은밀하게 권능이 새어나와 황제에게 영향을 끼친 것일지도 모른다.
‘권능··· 때문은 아니다.’
하지만 권능에 의한 변화를 내가 못 알아차릴 리는 만무했다.
저것은 순수한 분노다.
그러나 어느 부분에서 저렇게 화를 내는 것인지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카를로스 대공과 악마교단의 유착 때문에?
아니면 궁 내에 침입했던 암살자 때문에?
자신이 있는 이곳을 성역처럼 아끼는 그였으니, 두 번이나 연달아 생긴 암습이 신경이 쓰일 만은 하였다.
이어, 데우스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수고했다. 병사들과 함께 궁에 있거라. 나머지는 짐이 직접 해결할 터이니.”
직접 해결하겠다?
데우스가 직접 이런 문제에 나서는 것 역시 이례적인 일이었다.
게다가 수고했다는 저 말에도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저 눈빛.
저건 그간 고생했다는 투의 눈빛이었다.
설마 사십여일간 내가 악마교단을 피해 숨어있었다고 생각하는 건가?
“카를로스 대공도, 악마 교단도, 신성교의 끄나풀도, 그 누구도 이제 너를 건드리진 못할 것이다. 라인하르트. 이제 안심해도 된다.”
······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
혼자남은 데우스는 탄식했다.
‘암습을 받고도 말하지 않았다······ 도리어 숨어버렸다. 짐을 믿지 못했다는 것이다.’
얼마나 두려웠으면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 숨어버렸을까.
처음에는 화가 났으나 이제는 라인하르트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카를로스 대공, 악마 교단, 하물며 신성교까지. 그 거대한 세력들에게 압박되어 숨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리라.
누구도 믿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였다.
심지어 황제인 자신에게조차 그러한 믿음이 없었다.
당연한 것이다. 그간 자신의 행보를 보면 믿음이 생길 리 없었으니.
‘아무리 바뀌고 강한 척을 한다지만 아직 경험이 적지 않은가.’
라인하르트는 변했다.
강해졌다.
그러나 아직 어리다. 많은 경험을 하지 못했다. 하지 못하게 자신이 막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조사단장으로서 직책이 생겼다지만, 암살의 위협으로부터 얼마나 가슴을 조였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혼낼 게 아니라 보듬어줘야 한다. 지켜줘야 한다.
라인하르트의 눈부신 변화에 잠시 눈이 멀었던 모양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변하지 않았거늘.
아이를 지키는 건 아비의 당연한 의무다. 아무리 아픈 손가락이었다고 할지라도 라인하르트는 자신의 자식이었다.
그리고······.
‘카를로스 대공.’
데우스의 눈빛에 포악함이 서렸다.
성왕으로 이름이 드높은 그가 단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적의(敵意)다.
‘너는 건드려선 안 될 것을 건드렸다.’
선을 넘었다.
그러니.
“더 이상······ 참지 않을 것이다.”
데우스가 포효했다.
< 황제의 포효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