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야~? 다크엘프~?”
투구를 벗긴 소마가 의외라는 목소리로 말했다.
설마 대죄종을 지키는 하수인이 소수종족인 다크엘프일 줄이야.
“나랑 똑같네~”
소마가 씽긋 웃어 보였다. 다크엘프는 세계에서 사라져가는 종족이다. 소수민족인 그녀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렇다고 측은지심이 든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도리어 그 반대다.
소마가 입맛을 다셨다.
“맛있는 냄새가 나. 다크엘프는 처음 먹어보는걸~”
“소마 성녀. 그 다크엘프에겐 물어볼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자스민이 소마를 말렸다.
다크엘프 기사.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 들었던 탓이다.
“넌 분명히 ‘늑대소탕’을 위해 용병으로 참전했을 텐데. 처음부터 대죄종의 하수인이었나?”
용병의 거주지에서 보았던 용병대장.
그가 분명하다. 다크엘프 여자일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저 기사복장은 확실히 눈에 띄는 것이었다. 잊을 리가 없다.
대죄종의 하수인이 늑대소탕을 위해 토벌에 참전한 이유가 뭘까.
정작 아게우스의 늑대와 괴물늑대들도 도망치는 것을 도왔다.
“흠. 토벌이 목적이 아니었군. 대죄종이 이곳에서 탄생할 것을 알고 있었어.”
“그럼 악마교단에서 나왔다는 소리~?”
소마의 말에 자스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퍼즐이 맞춰진다.
악마교단은 처음부터 이곳에서 대죄종이 탄생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칠죄종인 괴물늑대의 우두머리와 함께 대죄종을 빼낼 궁리를 하던 게 분명했다.
자스민이 검을 들어 아렐의 목에 겨눴다.
“저 검은 알 속에 대죄종이 있는 거겠지. 그래서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걸 테고······ 목적지가 어디냐?”
저들이 향하는 목적지만 알아내면 잡는 건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대죄종과 악마교단의 본거지를 소탕하는 것이었다.
필시 악마교단의 본거지로 향하고 있을 터. 그곳만 소탕할 수 있다면 수천년간 이루지 못한 신성교의 위업을 그녀가 이루게 되는 것이다.
“······.”
아렐이 입을 닫았다.
허나 자스민은 추궁하지 않았다.
“가둬라. 내가 직접 캐낼 테니.”
“그럼 나는~?”
“··· 넌 대죄종을 쫓아라.”
“좋아~”
다크엘프를 먹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대죄종을 먹을 수 있다면야 이 정도는 양보할 수 있었다. 도리어 대죄종을 독식할 수 있다는 생각에 소마는 흥분하는 중이었다.
‘하수인마저도 맛있는 냄새가 나는데, 그 악마는 얼마나 맛있을까?’
상상만으로도.
아니, 상상조차도 가지 않는 황홀한 맛이리라.
성녀들 중 누구도 맛보지 못한 극한의 진미일 테니.
소마가 성기사들과 함께 대죄종을 쫓았다.
남겨진 성기사들과 자스민은 반쯤 탈진한 아렐을 바라보았다.
“얌전히 말한다면 목숨만은 건지게 해주마. 나는 저 식인종과 달리 품격이 있어서 말이다.”
소마는 소수민족 출신이지만 그녀는 엄연한 왕족 출신이었다.
품격 없는 소마와 달리, 자스민은 약속을 지킨다.
“······ 죽여.”
“얌전히 말해줄 생각은 없나 보군.”
자스민은 어깨를 으쓱했다.
얌전히 말해줄 거라는 기대는 애당초 하지도 않았다.
“쉽게 죽일 순 없지. 어차피 너는 다 털어놓게 되어있다.”
다크엘프는 탈탈 털어서 말라 비틀어 죽게 될 것이다.
그리고 냄새가 났다.
이건 단순한 사건의 냄새가 아니다.
‘분명히 이년을 따르던 종이 하나 있었을진대······.’
그 종이 없어졌다.
눈앞의 다크엘프가 더더욱 기억나는 이유는 바로 그 종 때문이었다.
몸이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자.
그 정도로 완벽한 몸은 처음 보았다.
하물며 옷차림만 허름할 뿐 특유의 분위기는 결코 평범한 사람일 수가 없었다.
왕족이며, 동시에 성녀인 자스민은 그것이 ‘절대자’에게서 기인하는 분위기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런 이를 종으로 부리는 용병대장이 잊힐 리 없었다.
그런데 사라졌다.
처음부터 함께였다면 그 종도 악마교단의 잔재라는 뜻.
다크엘프와 아게우스의 늑대는 알을 지키며 도망치고 있는데 그 종만 사라졌다면 더욱 중요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걸 캐내야 한다.
어쩌면 그 종은 종이 아닐지도 모른다.
더 중요한 존재일 가능성이 컸다.
“‘진실의 약’을 가져오도록. 전부 불면 그때엔 네놈들 마음대로 다뤄도 좋다.”
성기사들의 눈빛이 빛났다.
품격있는 그녀가 남자들을 다루는 법이었다.
*
헬라는 처음으로 무력감을 느꼈다.
리겔 왕국에서 병사들과 소드마스터를 상대할 때도 이런 무력감은 느껴본 적이 없건만.
“네가 늑대들의 공주야~? 생각보다 평범한데~?”
“미친년.”
헬라가 입으로 피를 뱉었다.
속도라면 자신 있었지만 소마는 그녀보다 더 우위였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소마의 손과 발이 늑대의 그것처럼 변해있었다.
“그런데 늑대는 맛이 없더라~?”
“······!”
헬라의 눈이 순간 검게 물들었다.
늑대를, 그녀의 가족을 먹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저 손과 발은 먹은 늑대들의 것이었다. 성녀는 악을 먹어치우며 그 힘을 사용할 수 있다지만, 설마 저런 형태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헬라가 단검을 꺼냈다.
순간 공간을 뛰어넘어 소마의 바로 앞에 나타난 헬라가, 단검을 휘둘러 소마의 목줄기를 노렸다.
“공간이동~? 그런 것도 쓸 줄 알아~?”
예상할 수 없는 수이건만 소마가 그 공격을 가볍게 피했다.
놀라운 듯, 그리고 놀리는 듯한 태도로 받아치며 비웃을 뿐이다.
그녀는 200년을 산 성녀였다. 수많은 악마교단과 대악마들을 퇴치하며 잡아먹은 괴물이었다. 그중에는 칠죄종도 있었다.
“넌 대체 뭐야~? 칠죄종도 아니고, 대죄종도 아니고, 그런데 엄청나게 맛있는 냄새가 난단 말이지~”
하여 더욱 확실하게 분별할 수 있었다.
아게우스의 늑대라고 불리는 헬라는 대죄종도, 칠죄종도 아니다. 하지만 그들 못지않은 맛있는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뭘까. 무슨 맛일까?
“먹어보면 알 수 있을지도~”
어차피 먹이일 따름이다.
늑대공주를 먹고, 저 검은 알 속의 대죄종까지 먹어치우면 그녀는 ‘진화’할 것이다. 성녀를 뛰어넘어 교황조차 우스워하는 존재가 될 터였다.
이런 맛있는 기회를 자스민에게 넘길 수는 없는 노릇.
스팟!
“큿······!”
순간 소마의 손이 공간을 뛰어넘어 헬라의 목을 쥐었다.
소마의 손은 검게 물들어 있었는데 어딜보나 악마의 것이었다.
“공간이동은 너만 쓸 수 있는 게 아니란다~”
이 검은 팔은 예전에 공간의 악마 ‘둠’을 먹어치우며 얻었다. 공간을 뛰어넘어 상대방을 공격할 수 있었기에 요긴하게 사용하는 중이다.
소마가 먹어치운 대악마는 수십마리였다.
칠죄종과 같은 급의 대악마도 상당수였다.
대악마들의 온갖 기능과 권능을 그녀의 몸 하나에 안고 있는 셈이다. 당연히 공간이동과 같은 부류의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
‘왜 나는 이렇게 나약한 거지?’
의식이 흐릿해져가는 와중, 헬라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대죄종의 씨앗이라면서 막상 할 줄 아는 건 도망치는 것뿐이다.
정작 대죄종과 같은 힘도, 능력도 없었다.
반쪽이라 하였으나 결국 혼자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게다.
심지어 제대로 도망치지도 못했으니 이 얼마나 무능력한가.
“무슨 맛일까~”
“미친······ 년!”
헬라가 이빨로 팔을 물었다. 하지만 대악마의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소마의 미소가 짙어졌다.
대죄종을 먹기 전에 에피타이저로 이만한 먹이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음식다운 음식을 먹은 게 얼마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름답기까지 하니까. 씹으면 씹을수록 과일 향이 날 거야~’
헬라는 아름다웠다. 건강했으며 육체의 발달도 훌륭했다.
저것을 취하면 더 젊고 더 아름다워 질 수 있다.
그 생각만으로도 행복하기 그지없다.
지척으로 다가온 소마가 입을 벌렸다.
그러자 양쪽 입꼬리에서 검은 균열이 길게 벌어지며, 얼굴 반쪽이 거대한 입이 되었다. 날카로운 이빨과 저 얼굴은 도저히 ‘성녀’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았다.
“잘 먹겠습니다!”
입을 벌려, 그대로 헬라의 얼굴을 입안에 쑤셔넣었다.
*
입안에 들어온 순간부터 소마는 황홀한 상상을 이어나갔다.
우걱우걱 씹으면 꽃이나 과일의 향이 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아무런 맛도 안 나?’
맛이 없다. 아예 아무런 말이 안 난다는 뜻이다.
“······?”
무언가가 잘못됐다.
돌이나 나뭇가지를 씹어도 맛은 나기 마련이었다.
곧이어 소마는 턱 아래가 허전한 것을 느꼈다.
“아······?”
잘려나갔다. 턱 아래가 정확하게 이등분됐다.
하지만 순식간에 재생됐다.
살과 뼈가 차오르며 원복되었다.
이어 소마가 시선을 돌렸다.
저 멀리, 대죄종이 있었다.
“도저히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재생력이군.”
알을 깨고 나온 건 분명히 대죄종이었다.
자신의 턱을 잘라낼 정도의 힘이라면 필시 분명했다.
하지만 소마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너······ 대죄종 맞아~?”
분명히 알인 상태에선 엄청나게 식욕을 돋우는 냄새가 났다.
그런데 알을 깨고 나오자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다.
무색무취. 대악마 중에서도 가히 최강이라 전해지는 대죄종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가장 달콤한 냄새가 나야 정상이다.
그렇다면, 눈앞의 존재는 대죄종이 아니다.
“넌 인간이 맞나? 얼추 200살 정도 되어보이는데. 그럼 할머니 아닌가.”
“내에가~? 이 얼굴이랑 피부가 어떻게 할머니라는 거야~?”
“나이는 부정하지 않는군.”
빠드득!
소마가 이를 갈았다.
소마의 앞에서 나이 이야기를 하는 건 금기 중에서도 금기다.
하물며 ‘할머니’라는 소리는 뒤에서도 하지 못할 이야기였다.
그게 누구라 할지라도 반드시 죽인다. 왕이든, 성녀든, 설령 교황이라 할지라도 죽일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저놈이 그 금기를 깼다.
“죽여버릴 거야!”
순간, 소마의 전신이 악마화 되었다.
어둠으로 물든 피부. 거대한 검은색의 불꽃. 각기 다른 악마들의 신체들은 차라리 돌연변이나 합성괴물처럼 보인다.
이 세상에서 소마가 본심으로 싸우는 걸 본 사람은 없다.
다 죽였고 죽었기 때문이다.
이 모습을 본 자는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지금 소마는 대악마 그 자체가 되었다.
신성교에서 소마를 파견한 진짜 이유다.
설령 상대가 진짜 대죄종이라 할지라도 지금 이 모습의 소마를 당해낼 순 없을 것이므로.
꿈틀!
그 순간이었다.
그녀의 피부가, 뼈가, 신체를 담당하는 모든 장기들이.
“어······?”
미친 듯이 꿈틀대며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내부에서 외부로, 외부에서 내부로.
모든 것들이 파괴되며 녹아내리고 있었다.
“뭐, 뭐야?”
당황한 소마가 자신의 몸을 돌아보았다.
갑자기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지 알 수가 없었다.
대악마들의 힘조차도 이 붕괴를 막아내진 못했다.
아니··· 대악마들의 힘이, 그들의 육체가 도리어 자신을 붕괴시키는 중이었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자신이 먹어치운 대악마들이 자처하여 무너진다.
그 힘들이 충돌하며 무너지고 있다.
스스로 무릎을 꿇은 것이다.
마치 진짜 대악마를 영접한 악마들처럼.
“아, 안 돼······!”
모든 악마들이 씻겨간 자리.
그곳엔 늙은 노인 한 명이 있을 따름이었다.
소마가 손을 들어 자신의 양쪽 뺨을 부여잡았다.
수많은 주름, 축 처진 피부.
저 남자가 자신의 모든 능력을 앗아갔다.
하지만, 어떻게?
“추하군.”
자신을 본 남자가 혀를 찼다.
“아······.”
부정하고 싶으나 부정할 수가 없다.
추하게 늙어버린 신체는 그녀의 나이를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었다.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이빨이 뽑히고, 뼈가 함몰되며, 머리카락도 새하얗게 샜다.
이윽고 소마의 신체가 바닥에 무너져내렸다.
*
『업데이트 완료.』
『신체능력이 향상됩니다.』
『나노머신의 지배력이 올라갑니다.』
『새로운 기능 ‘극멸신’이 추가됐습니다.』
『과업 달성률 1/12······.』
『‘메테리얼’의 분석이 완료되었습니다.』
『‘제로-Ver2’의 주인이 되신 걸 환영합니다.』
< 업데이트 완료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