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황제-88화 (88/146)

악마교단.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하여 대륙을 뒤흔든 악마들의 집합소.

그들은 피를 사용하는 혈법과 시체를 소생시키는 암흑마법을 필두로 빠르게 세를 넓혀나갔다.

악마의 속삭임과 같은 마약을 유통시켜 천문학적인 금액을 벌어들였으며 ‘종말론’을 퍼트려 신도의 숫자가 한때 100만을 넘겼다.

가만히 놔두면 대륙 전체를 좀먹는 악성집단이 되리라 판단하고 제국과 신성교가 힘을 합쳐 대대적인 소탕작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에도 진행 중이다.

무려 30년 동안이나.

작금의 세상은 ‘악마사냥’과 ‘마녀사냥’이 당연시 여겨지는 세상이었다.

악마교단과 관련되어있다고 판단되면 신성교는 즉결처분권을 발동해 처분시킬 수 있다. 국적과 계급에 상관없이 말이다.

설령 제국이라 할지라도, 황실조차도 의혹이 있다면 피해갈 수 없다.

만약 황제가 악마교단과 관계되어있다는 게 명확해지면 황제 또한 처분의 대상이 된다.

어떤 미친놈이 감히 제국의 황제를 처단하겠냐 묻겠지만 신성교는 그러고도 남을 놈들이었다.

유일하게 제국과 전면전을 펼칠 수 있는 집단이 바로 신성교인 탓이다.

‘··· 악마교단의 전신이 대죄종과 칠죄종이지.’

나는 그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악마교단의 진짜 이름이 ‘대죄교’라는 것도.

그들의 교리와, 그들의 목적 또한.

―대죄종이 탄생하면 세상은 종말하며 오직 교단을 믿는 자만이 새로운 세계의 주민이, 천사가 될 수 있다.

칠죄종은 대죄종의 힘을 나눠 받은 존재들이며, 칠죄종들이 한데 모이면 대죄종이 탄생해 세상을 종말로 이끈다.

칠죄종의 ‘대천사’들은 교만, 인색, 시기, 분노, 음욕, 폭식, 나태로 이루어져 있으며, 교단은 오직 이 칠죄종의 인도에 따라 모든 의사를 결정한다······.

한 마디로.

‘미친놈들이지.’

종말론을 믿는 정신 나간 것들이다.

피와 시체를 이용해 부리는 것도 악마로 규정하기에 딱 맞았다.

대죄종이니, 칠죄종이니, 제정신이 박혀있다면 믿지 않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믿었다. 그 숫자가 한때 백만을 넘겼으니 말은 다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세를 완전히 박멸하지 못했다.

심지어 북방에서 처단한 ‘데이몬’도 악마교단의 잔재였으니.

카를로스 대공이 사용한 마약 ‘악마의 속삭임’을 대량유통한 것도 그가 악마교단과 접점이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아직도 악마교단은 건재하다.

단지, 전과 달리 더 깊숙이 숨어서 활동하고 있을뿐.

내가 황제로 즉위한 이후에도 대놓고 영향력을 행사한 적은 없으나, 악마교단이 개발한 수많은 병기와 기술들은 확실하게 제국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폭식을 지닌 가프가 칠죄종이었다니.’

그 가프는 지금 내가 흡수했다.

그리고 실버팽은 칠죄종 중 분노였다.

실버팽은 단번에 폭식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심지어 ‘천 년’이라는 시간까지 언급한 걸 보면 가프와도 안면이 있는 듯싶었다.

실버팽은 A.I다. 에픽이다. 그것도 태고의 에픽이라 칭해질 수준의 강자다.

하지만 가프는 인간이었다.

‘칠죄종의 유무는 에픽이냐 인간이냐로 따지는 게 아니라 권능으로 정해지는 건가 보군.’

칠죄종의 권능을 지닌 자가 칠죄종이다.

가프는 인간이지만 폭식을 지녔기에 칠죄종이었다.

그리고 그 폭식을 거머쥔 나도 마찬가지로 칠죄종이다.

‘제국의 황태자가 악마교단의 칠죄종이라.’

알고서 가프를 흡수한 건 아니지만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들키진 않았지만 만에 하나 이게 공론화된다면 황제도 나를 감쌀 수 없다.

신성교는 성명을 발표하고 들고 일어나 제국의 영토 내에서 내 목을 잘라갈 것이다.

자르고, 부수고, 갈아서 나를 욕보일 것이었다.

‘신성교에서 성기사와 성녀를 보낸 게 우연은 아니라는 건가.’

생각이 많아졌다.

자스민은 리겔 왕국의 왕녀임과 동시에 신성교의 성녀이기도 했다.

그녀가 불현듯 이곳에 성기사를 대동하고 나타난 게 우연은 아니라는 뜻이다.

나는 실버팽을 바라봤다.

그 옆에서 아게우스의 늑대는 나를 적대적으로 노려보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내가 너를 먹으라는 말이냐?”

“그렇다, 폭식이여! 내 ‘분노’를 계승해다오. 대죄종의 인도자가 되는 거다!”

“대죄종이 되는 게 아니라 대죄종을 인도할 인도자가 되어라?”

“그렇다. 칠죄종은 대죄종이 될 수 없으니! 허나, 걱정마라. ‘대죄종의 씨앗’은 내가 지키고 있었으니!”

아게우스의 늑대.

에픽들은 공주라 부르는 늑대 소녀.

저 소녀가 바로 ‘대죄종의 씨앗’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지금 나한테 부모를 먹고 그 아이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라는 것이다.

아이의 관점에서 나는 부모를 먹어치운 원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소녀의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

······ 이건 개의치 않을 수가 없다. 악마도 울고 갈 일이었다.

“팽. 제발 그런 소리 하지 마. 내가 지킬 거니까. 절대로 팽이 죽게 놔두지 않아.”

“헬라. 머지않아 나는 죽는다.”

“안 죽어! 내가 죽게 놔두지 않을 거야.”

소녀가 울부짖었다. 헬라. 아게우스의 늑대의 이름이었다.

하지만 죽음은 피해갈 수 없다. 실버팽의 전신에선 썩은내가 진동하고 있다. 두 눈동자는 이미 탁해서 보이지도 않을 것이었다.

특히 가슴팍에 난 상처.

심장부근이 찢기고 지져졌다.

말피엘이다. 놈이 전격으로 실버팽을 공격한 것이다.

‘결국 말피엘의 위업은 대죄종의 씨앗을 생포하라는 것. 하지만 세계의 위협이 될 씨앗이라면 제거하면 그만일 터.’

생포해야만하는 이유를 여전히 모르겠다.

곧이어 헬라를 스캔한 제로가 내게 말했다.

[해석불가.]

[해석이 불가능한 ‘버그의 집합체’입니다.]

[‘버그’라고 규정했으나 주변 나노머신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특수한 ‘핵’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진화의 핵과는 전혀 다른,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핵입니다.]

진화의 핵 역시 나노머신이 일으킨 버그로 발생한 핵이다. 헬라가 지닌 핵도 비슷한 유형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진화의 핵과는 달리 주변에 크게 영향을 끼친다.

늑대들이 강해지고, 에픽들이 강해지는 게 바로 그런 이유인 듯싶었다.

그저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영향을 끼치다니. 이 얼마나 엄청난 능력인가.

[‘핵’에 영향을 받은 나노머신들이 비정상적인 분열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영향을 받은 나노머신들이 ‘핵’에 종속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핵’의 영향에서 최대한 멀리 벗어나는 것을 권고합니다.]

일종의 여왕벌이다.

헬라는 그저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위험한 존재들을 끌어들인다.

그들을 종속시키고, 떠받들게 만든다.

문제는 그로 인한 싸움이다.

독점하기 위해 에픽들의 대장인 칼바나스처럼 비뚫어진 욕망을 지니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도 그런 영향을 받을 수 있으니, 멀어지라는 건데.

‘생포해서 해부라도 하겠다는 건가.’

과연. 새로운 핵이라면 연구할 가치가 있다.

왜 생포하라는 위업이 말피엘에게 도달했는지 알 것 같다.

“폭식의 인도자여.”

헬라를 품에 안은 실버팽이 나를 향해 말했다.

나는 천천히 활시위를 내렸다. 어찌됐든 실버팽은 적이 아니다. 이미 죽어가는 놈을 상대로 쏠 생각도 없었고.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라도 있나?”

실버팽이 몸을 일으켰다.

곧이어 그의 전신이 그림자처럼 까맣게 매몰되기 시작했다.

“‘분노’의 사용법을 보여주마.”

“팽! 하지마. 그러다가 진짜 죽어!”

“헬라. 늑대는 절대로 적을 앞에두고 쓰러지지 않는다.”

새까맣게 물든 실버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분노다. 저항하기 위한 힘. 불의에 맞서는 폭력.

“마지막은 용을 죽이는 데 쓰고 싶었으나······.”

인간들이 숲을 어지럽히고 있다.

늑대들이 죽어가는 중이다.

이대로 놔두면 계곡까지 침투하리라.

각성한 실버팽이 동굴을 나섰다.

아우우우우우!

세상을 향한 분노의 표효.

곧 실버팽이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그가 다시 나타난 건 전장의 한복판.

자스민 왕녀의 앞이었다.

*

신이 말했다.

악이 잉태하고 있으니, 악을 죽이라고.

자스민 왕녀는 신의 부름에 따라 아게우스 영지까지 한걸음에 달려왔다.

악마교단의 잔재가 이곳에 있다면 영지 전부를 태워서라도 없애야만 한다.

‘악마의 힘을 이어받은 늑대들이로군.’

괴물 늑대들의 상태는 누가봐도 이상했다.

단순한 마물로 취급하기엔 너무 강하다.

하나, 하나가 어지간한 로드급의 괴물이다.

게다가 느껴지는 기운도 심상치 않다. 단순한 마나가 아니다. 마나들이 이상폭증하고 있었다. 성녀인 그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저 늑대들의 우두머리는 필시 악이리라고.

“신이시여!”

“마를 제거할 힘을 제게 주소서!”

성기사들이 신의 거룩한 힘을 이어받았다.

전신이 찬란하게 빛나며 하나, 둘 늑대들을 처단해갔다.

늑대가 아무리 강해도 이천이 넘는 병사와 성기사들을 상대할 순 없다.

아우우우우!

저 멀리서 들려오는 포효.

소리가 들려왔을 땐, 거대한 검은색의 늑대가 전장을 휘젓고 있었다.

검은 먹물 같은 늑대의 이마 위로 붉은 눈물을 흘리는 세 번째 눈이 개안되어 있었다.

“칠죄종······!”

성녀인 그녀는 그것이 칠죄종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칠죄종. 분노다.

반드시 제거해야만 하는 일곱 개의 대죄!

대죄는 몸을 옮겨가며 기생한다.

지난 30년 동안 신성교가 죽인 대죄인의 숫자는 열이 넘는다.

그리고 그 하나하나가 가공할 힘과 권능을 지녔었다.

놈들을 죽이며 죽어간 성녀의 숫자도 셀 수가 없었다.

허나 칠죄종이 모이면 대죄종이 탄생하여 세상을 악으로 물들인다.

그러니 발견하는 족족 반드시 멸해야만 하는 것이다.

성녀는 오직 칠죄종을 죽이는 사명을 타고났다.

자스민.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악을 멸하는 빛이여!”

그녀의 검이 잘게 울었다.

비탄의 성검. 비록 삼신기(三神器)에 이름을 올리지는 못했으나 그 바로 아랫단계인 오성검(五聖劍)이라 칭해지는 마를 멸하는 무기였다.

신성교의 성녀 중에서도 선택받은 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성검.

아무리 상대가 칠죄종이라 한들 이 성검이라면 단칼에 잘라낼 수 있으리라.

카오오오오오!

실버팽은 병사들을 물어죽였다. 성기사의 검도 통하지 않았다. 오로지 악을 제거하고자 만들어진 성법도 피해를 주지 못했다.

눈깜빡할 사이에 오십이 넘는 병사가 실버팽의 제물이 됐다.

“끄아아아악!”

성기사 중 한 명도 비명을 내지르며 목이 뜯겼다.

성법으로 신체를 강화하고 보호받음에도 칠죄종의 공격은 버텨내질 못하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건 피다.

병사들이, 성기사가 흩뿌린 피가, 실버팽의 세 번째 눈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어 눈에 모여든 피가 파악! 터지며 전장의 전역에 빗물처럼 떨어졌다.

“아악!”

“뭐, 뭐야!”

“내 몸! 내, 내 몸이!”

피에 닿은 모든 게 녹는다.

순식간에 모든 것을 녹이며 지운다.

혈법이다.

그 어떤 보호 수단도 필요 없었다.

푸욱!

그 사이, 비탄의 성검이 실버팽의 목을 찔렀다.

유일하게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았던 자스민 왕녀가 유효타를 먹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죽였······!’

카오오오오!

하지만 목을 턴 실버팽이 입을 벌렸다.

그리고 비탄의 성검과 자스민 왕녀의 오른쪽 어깻죽지를 단번에 삼켜버렸다.

“큽!”

순간적인 기지로 몸 전체가 먹히는 건 막았다.

하지만 성검과 오른손을 단번에 잃었다.

자스민 왕녀가 입술을 깨물었다.

“성녀님. 물러나셔야 합니다.”

“칠죄종이라면 교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성기사들이 다가와서 그녀를 부축했다.

맞다. 칠죄종이라면 이 정도 숫자로는 부족하다.

이런 곳에 칠죄종이 숨어있을 줄은 몰랐지만, 일보 전진을 위해 일보 후퇴를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하물며 아게우스의 늑대도 나타나 판을 치고 있었다. 이대로 싸우면 전멸이다.

자스민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 물러난다.”

*

그 짧은 순간에 삼백이 넘는 정예병사가 죽었다.

성기사도 명을 달리했으며, 성녀도 팔을 잃었다.

경이(驚異)였다. 보고도 믿기지 않을 만큼 압도적이었다.

다 죽어가는 상태로 이만한 이적을 발휘한 것이다.

‘악마교단의 혈법이 분노에게서 탄생한 것이었나.’

피를 이용한 술법.

악마교단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사술 중 하나인 혈법은 저 분노에서 탄생한 것이었다.

“쿨럭!”

계곡에 다시 내려온 실버팽이, 핏물을 토해냈다.

핏물과 함께 성검이 토해졌다.

성검이 목을 찔러 실버팽의 상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그 주변으로 남은 늑대들이 모여들었다.

서른이 넘었던 늑대도 절반이 줄어있었다.

그르르르!

늑대들이 적대적으로 나를 둘러쌌다.

그것을, 실버팽이 말렸다.

“그는 적이 아니다.”

그제야 늑대들이 이빨을 감췄다.

“팽. 괜찮아?”

“괜찮다. 아직은 때가 아니니 죽을 수 없지.”

실버팽의 상태는 전보다도 더 안 좋았다.

분노 상태일 때는 압도적이었으나, 지금은 그저 죽어가는 늑대 한 마리일 따름이었다. 이제는 정말 죽음이 눈앞에 보일 정도였다.

“폭식의 인도자여. 보았는가?”

“······ 잘 봤다. 인상적이더군.”

“그렇다면 나의 분노를 먹어 삼켜라. ‘폭식’의 까다로움은 알고 있으나, 나의 분노라면 그 조건에 들어맞을 것이다.”

맞다. 처음 볼 때부터 계속해서 손이 간질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폭식일 것이다.

북방의 용을 삼킬 때를 제외하고 이처럼 폭식이 의사를 드러내는 건 처음이었다.

혀를 날름거리며 입을 쩝쩝대고 있었다.

“폭식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지?”

“이상한 물음이구나. 허나······ 그래. 칠죄종 중 가장 까다로운 힘이다. 가장 강할 수도, 가장 약할 수도 있는 권능이지. 그렇기에 폭식만이 유일하게 대죄종의 ‘인도자’가 될 수 있다.”

먹을 땐 먹더라도 궁금증은 마저 풀어야겠다.

몇 가지를 더 물어보려고 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실버팽! 마지막 분노를 사용한 것 같군.”

칼바나스.

그리고 그의 일당들이 계곡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아마도 실버팽이 마지막 분노를 사용하기만을 기다린 것 같았다.

“약속대로 공주를 받아가겠다. 너는 저 용과 인간들로부터 공주를 지킬 수 없으니.”

크르르르르!

남은 늑대들이 칼바나스와 에픽들을 바라보며 다시 이빨을 세웠다.

아마도 헬라를 위해 약속을 한 모양이었다.

자신이 죽으면 저들이 헬라를 지키기로.

하지만 헬라도 인상을 구기는 걸 보면 마음에는 들지 않는 듯싶다.

저들이 이 시기에 찾아온 이유도 알겠다.

늑대들의 숫자도 줄어, 전면전으로 가면 이길 자신이 있기에 지금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저들이 헬라를 지키는 방식에 대해선 여러모로 할 말이 많았다.

늑대들과 함께 있는 나를 발견한 칼바나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음? 넌······?”

“오랜만이군.”

“네가 왜 이곳에 있는 거지?”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게 됐다.”

“나는 너를 좋게 보내줬는데, 끝내 배신을 하겠다는 거냐?”

이건 또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걸까?

배신이라는 건 서로가 믿거나 의지하는 상태에서 등을 돌린 사람에게나 사용하는 단어다.

애당초 믿은 적도 의지한 적도 없다.

이야기를 들어보고, 거지 같아서 나왔을 뿐이건만.

멋대로 나를 태고의 에픽이라 지레짐작해서 겁을 먹고 보내준 게 어떻게 좋게 보내준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두서가 없다. 자기들 마음대로다.

실버팽과 한 약속이라는 것도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이제 내 차례로군.’

실버팽은 의지를 보여줬다.

분노의 사용법을, 자신의 마지막을 내게 알렸다.

그러니 나 역시도 대답을 할 필요가 있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발을 굴렀다.

쿠르르릉!

계곡이, 숲이 흔들렸다.

천마군림보!

주변의 모든 나노머신들이 일순간 방전되었다.

다시 재가동 되는데 3초.

칼바나스와 에픽들은 당황했다. 예상한 반응이다.

[재부팅 완료되었습니다.]

허나, 나는 제로로 인해 재가동까지 1.5초면 충분하다.

그 사이 겨울의 활을 꺼내고, 활시위를 놓았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 칠죄종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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