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잠시 지켜보다가 엄지손가락을 척 세웠다.
엄밀히 따져보면 용병으로서 어떻게 행동하라는 지침은 세워준 바가 없다.
게다가 아렐을 혼자 두고 숲에 갔으니,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으리란 생각을 하지 않은 내 책임이다.
꾸벅!
칭찬으로 알아들었는지 아렐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미묘하게 입꼬리도 올라간 것 같은데.
그동안 쌓인 게 많았던 걸까?
······ 그래. 잘했다.
*
아렐을 혼자 용병들의 숙소로 보낸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괴물 늑대를 처리한 아렐에 대한 소문이 이미 용병들 사이에서 파다하게 퍼진 것이다.
고작 B급 용병이 괴물 늑대를 처리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 용병들이 시비를 걸었고, 그 결과가 바로 이 대참사다.
“일어나셨습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이른 아침.
물에 젖은 빵처럼 얼굴이 부푼 용병들이 계단을 내려오는 아렐을 향해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주먹 하나로 용병들을 평정한 아렐은 이미 전설처럼 취급받고 있었다.
명실상부한 서열 1위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살짝 당황한 아렐이 엉거주춤한 자세를 지어 보였다. 얻어터진 용병들이 이토록 깔끔하게 굴복하리란 생각은 못 해본 듯싶었다.
“아렐님! 식사하시겠습니까?”
“자리는 비워두었습니다!”
아렐을 향한 용병들의 열렬한 구애가 이어졌다.
고작 B급 용병이 괴물 늑대를 처리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 용병들이 시비를 걸었고, 그 결과가 바로 이 대참사다.
주먹 하나로 용병들을 평정한 아렐은 이미 전설처럼 취급받고 있었다.
“일어나셨습니까!”
명실상부한 서열 1위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좋은 아침입니다!”
살짝 당황한 아렐이 엉거주춤한 자세를 지어 보였다. 얻어터진 용병들이 이토록 깔끔하게 굴복하리란 생각은 못 해본 듯싶었다.
이른 아침.
물에 젖은 빵처럼 얼굴이 부푼 용병들이 계단을 내려오는 아렐을 향해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아렐님! 식사하시겠습니까?”
어제의 대참사가 무색하게 1층의 넓은 홀은 말끔하게 청소가 되어있었다.
부분부분 핏자국이 보이지만 애써 무시했다.
용병들의 세계에선 강한 자가 곧 우두머리다. 이런 시원시원한 반응은 도리어 기껍다. 내가 아니라 아렐에게 시선이 몰린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인도된 자리는 홀에서 가장 큰 식탁이었다. 빵과 스프가 전부지만 향기는 나쁘지 않았다. 어색하게 아렐이 앉자 그 옆에 내가 자리했다.
그러자 나를 보며 용병들이 한 마디씩 떠들었다.
“그런데 그 남자는 시종 아닙니까?”
“시종이 주인과 한 식탁에서 밥을 먹다니, 예의를 다시 가르쳐야하는 것 아닌지?”
하룻밤사이에 열렬한 추종자라도 된 모양이다.
잘나가는 용병이 시종을 데리고 다니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실력자는 최소 한 명 이상의 시종을 대동하며 잡일을 시킨다. 용병의 직업특성상 장거리를 이동할 때가 많다보니 본임무 외의 일을 처리해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고 용병이 귀족도 아닌지라 겸상을 못할 건 없지만, 돈이 오가는 모든 일은 무릇 고용자가 갑이 되기 마련이었다.
아렐의 눈빛이 내게 향했다.
어찌해야하냐는 눈빛에 나는 알아서 하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자 아렐은 묵묵히 빵을 먹었다.
뭐, 굳이 대답을 해줄 필요는 없으니까.
‘맹물과 다를 바가 없군.’
스프를 한 숟갈 입에 넣자 절로 인상이 구겨졌다.
빵은 딱딱하고 스프는 아무런 맛이 없다.
그래도 명색이 리겔왕국 아니던가.
좋은 작물이 많이 자라는 나라이나, 시민들의 식탁에도 같은 음식이 올라가진 않는 듯하다.
나는 한 모금씩 먹고는 그대로 내려놨다.
입맛만 버렸다.
‘제르민이라면 없는 재료로도 최상의 맛을 낼 텐데.’
북방을 돌며 이런 식사가 어느정도 익숙해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북방에선 제르민과 크로프트가 함께 했다.
재료를 공수해오면 제르민이 최대한 맛을 내며 요리를 해온 것이다.
제르민은 특급 집사였다. 요리도 일가견이 있었다.
하지만 이곳엔 제르민이 없다.
아렐도······ 요리와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그러고 보니 아렐이 무언가를 조리해 먹는 건 본 적이 없었다.
‘요리를 배워야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돈을 주고 음식을 사먹으면 그만인데 굳이?
아렐이 걱정스럽다는 듯 쳐다보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다.
아침 정도는 걸러도 된다.
무엇보다 공짜로 주는 음식의 질이야 거기서 거기일 터였다.
그래도 사람이 모여사는 영지다.
질 좋은 음식은 기대 안해도 먹을만한 음식을 팔기는 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하.”
마을을 돌아보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돈을 주고도 음식을 살 수가 없다.
그나마 용병들이 빵과 스프를 먹은 게 최선이다. 영주가 말했던 ‘좋은 숙소와 음식’이란 게 고작 저런 것들인가 싶었다.
‘영지 상태가 최악이군.’
영지민들은 착취당하고 있었다. 먹을 게 없어서 나무뿌리를 캐내 먹고 있다. 도저히 그 농작물이 풍부한 리겔 왕국의 한축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이다.
영지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황금의 물결과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그런데 영지 내부는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헐벗은 아이들과 아낙내들이 배를 굶주리며 죽은 땅을 갈고 있다.
제대로 개척조차 되지 않은 숲은 이들에게 지옥과도 같았다.
멀쩡한 방책도 없는 상황.
식량을 구하고자 숲에 들어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이들만 늘어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부모를 잃은 고아가 특히나 많았다.
마을을 한 바퀴 돈 뒤, 아렐이 말했다.
“······ 괜찮으십니까?”
“먹을 게 없다.”
“사냥을 해오겠습니다.”
고개를 저었다. 아렐이 아무리 강해도 이 마을 너머의 숲은 괴물들 천지다. 아렐이 감당하지 못하는 에픽들과 괴물 늑대들도 더러 있었다.
“머, 먹다 남은 빵조각이라도 괜찮아요. 제발 도와주세요.”
그때 한 아이가 다가왔다.
악취와 뗏국이 절절 흐르는 모습으로.
순간 아렐이 걱정스러운 눈빛을 지었다.
일반적인 귀족들은 이런 아이들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 심하면 때려서 죽이기까지한다.
고아를 죽였다고 귀족에게 책임을 물을 사람은 없으므로.
하물며 일반적인 귀족도 아니고 대륙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제국의 황태자다.
이 영지를 전부 몰살시켜버려도 리겔왕국은 책잡지 못할 것이다.
플릭 왕자의 혀를 뽑아버릴 때조차 아무런 말을 못 했다니까.
그러나 아렐의 예상과 전혀 다른 행동을 보였다.
품에서 아침에 한 모금 먹다만 빵을 꺼내 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내 부탁을 들어주면 빵을 주마.”
“무, 무슨 부탁인데요?”
“질문에 대답만 해주면 된다.”
“뭐든 물어보세요!”
“언제부터 왕국에서 보낸 보급품을 영주가 독차지한 거지?”
“처음부터요. 제대로 보급을 해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쯧. 혀를 찼다.
아게우스의 영지가 본격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건 광맥을 발견하면서부터다. 그때 취임한 영주가 지금껏 왕국의 보금품을 전부 독점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엄연한 불법이다.
왕국에서 보내온 보급품은 영주와 시민 모두에게 돌아가야만 한다.
심지어 이곳처럼 개척지인 경우 영주가 보급품을 전부 독차지 하는 경우는 없었다.
애당초 개척지는 위험을 안고 거주하는 곳이다. 최소한의 먹고살 걱정도 덜어주지 않으면 그 누가 위험한 개척지에 발을 들이겠는가.
덕분에 어른들만 죽어나갔다.
부모를 잃은 아이들도 굶주려 죽고 있었다.
물론 이것을 타국의 황태자인 내가 걱정하는 건 오지랖이겠으나······.
“받거라.”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약속대로 빵을 주자 아이가 연거푸 고개를 숙이곤 조심히 빵을 끌어안았다.
그리곤 주변 눈치를 살피다가, 조용히 돌아가 더 어린 동생에게 빵을 전부 넘겼다.
“오빤 안 먹어?”
“난 배불러. 너 많이 먹어.”
“그래도······.”
“빨리 먹어. 다른 애들이 보기 전에.”
우애좋은 남매다.
나는 잠시 저 모습을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빵이 더 필요하겠군.”
“··· 예?”
“생각이 바뀌었다.”
“······ ??”
*
“나 아니면 누가 이런 위험한 영지에 들어오겠나?”
“옳은 말씀입니다, 하이난 자작님.”
“이 영지의 광맥이 나를 백작으로 만들어 줄 거다. 그때 그대들의 노고를 절대 잊지 않으마.”
“믿고 있습니다, 하이난 자작님!”
하이난 자작이 녹인치즈에 말린 고기를 찍어먹으며 웃었다.
그의 콧대는 하늘까지 솟아있었다.
리겔 왕국의 왕정에서 이곳 영지에 거는 기대가 컸다.
광맥을 개발해 왕국의 약점을 탈피할 수만 있다면 왕은 그에게 백작위, 어쩌면 후작위까지도 줄지 모르는 일이다.
더 많은 영지를 하사받고 기사와 병사들을 육성해 왕에 버금가는 권력으로 키우는 것. 그게 하이난 자작의 꿈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늑대들의 토벌에 성공해야만 한다.
많은 돈을 주고 용병들을 끌어모으고 있는 건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이전 토벌에서 늑대의 숫자를 많이 줄여놨다. 이제 삼십마리 정도 남았겠지.’
이전에 왕국에서 파견한 소드마스터와 병사들이 늑대들의 숫자를 상당부분 줄여놨다.
비록 실패했지만 유의미한 결과다.
덕분에 남은 늑대의 숫자는 기껏해야 삼십 안팎으로 추정되고 있었다.
‘내가 직접 해결해서 영웅이 되어주마.’
그 숫자면 자력으로 해결할 수있다.
소드마스터도 이루지 못한 업적을 이루어 유능한 인삼을 심어주면 왕이 그를 직접 기용할 것이다.
“우리의 아름다운 미래를 위하여 한 잔 하지.”
“아름다운 미래를 위하여!”
핑크빛 미래를 그리며 하이난 자작이 와인잔을 들었다.
가신들도 와인잔을 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화르륵!
“······ 불?”
창밖에서 치솟아오르는 불길이 보인다.
동시에 문을 열고 들어온 병사들이 다급히 외쳤다.
“여, 영주님! 보급창고에 불이 나고 있습니다!”
“··· 어떤 미친놈이 불을 질렀단 말이냐?”
“모, 모르겠습니다.”
“이런 미친! 보고할 시간에 불부터 꺼라!”
“아, 옙!”
병사들이 급히 창고로 향했다.
하지만 치솟아오른 불길은 창고 전체를 태우고 있었다.
‘갑자기 불이라니?’
창고 안에는 그간 받고 쌓아둔 보급품들이 들어있었다.
주로 식량이다. 가장 중요한 보급품이 전부 타버렸다.
하이난 자작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창고를 바라봤다.
*
“돈은 됐으니 밥을 달라고!”
“빵 한 조각 안 주면 대체 어떻게 버티라는 거야!”
가장 먼저 들고 일어선 건 용병들이다.
식량 창고가 불타자 식량보급에 차질이 생겼다.
벌써 3일 차.
식량의 배급이 늦거나 없어지자, 참다 못한 용병들이 영주성에 모였다.
결국 영주 대리인이 나와선 상황을 정리했다.
“다음 보급품이 도착할 때까지만 기다려주십시오.”
“그니까 그게 언제냐고!”
“29일 뒤······.”
“그때까지 굶으란 말이냐!”
“······ 지만, 주변 영지에 도움을 청하면 식량문제는 해결될 겁니다.”
“주변 영지라고 해도 여기까지 들어오려면 시간이 꽤 걸릴 텐데?”
“최대한 조속하게······.”
“병사 먹일 음식은 있고 우리 용병들 먹일 음식은 없나보지?”
숲을 지나 영지로 들어오려면 아무리 빨라도 오일은 넘게 걸린다.
그 과정에서 늑대에게 습격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영주 대리인이 땀을 뻘뻘 흘리며 용병들을 진정시켰다.
비싼 돈을 들여 고용한 용병들이 비수가 되어 돌아왔다.
“그, 그렇지 않습니다. 식품은 아예 없······.”
“들어가! 진짜로 없나 보자고!”
“막아!”
“비켜, 이 새끼들아!”
병사들과 용병들이 한데 엉켰다.
다른 건 다 참아도 계약조건을 어기거나 배가 고픈 건 절대로 못 참는 게 용병들이다.
하물며 장기계약이나 토벌 같은 의뢰는, 의뢰인이 제대로 챙겨주지 않으면 강도로 변할 수도 있는 게 용병들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아렐이 있었다.
일반 병사들이 아렐을 막을 수 있을 리 만무.
순식간에 입구의 병사들을 허물고 영주성 안으로 들어간 용병들이, 영주의 방까지 들이닥쳐 식탁 위에 수북하게 쌓인 말린 고기와 빵을 발견했다.
“와, 이거 완전 개새끼였구만?”
“뭐, 뭐냐. 갑자기 왜 이러는 거냐! 기사들은 어디가고!”
하이난 자작의 눈동자가 격하게 떨렸다.
이백에 가까운 병사와 기사들이 고작 오십남짓한 용병들을 막지 못하는 게 말이 되는가.
굶주린 용병들의 눈에는 뵈는게 없었다.
자기 혼자 살겠다고 수북하게 음식을 쌓아놓는 꼴이라니.
빵 한 조각 나누지 않는 의뢰인을 용병들이 배려해야할 이유가 없었다.
“죽여!”
*
다행이 하이난 자작은 죽지 않았다.
대신 죽기 직전까지 얻어맞은채 눈물에 젖은 편지 한 장을 쓸 수밖에 없었다.
전서구를 통해 이틀만에 편지를 전해받은 왕정은 이 사안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보급품과 함께 더 많은 병사들을 출정시켰다.
‘은광맥을 마정석이 나오는 광맥으로 둔갑시키다니······.’
하이난 자작이 눈물을 흘리며 편지에 적은 내용은 간단하다.
광맥에서 마정석을 발견했다고 적은 게 전부다.
그와 함께 작은 마정석 덩어리를 라인하르트가 편지에 동봉시켰다.
최상급 마정석의 부스러기 같은 것이다.
왕정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오고 있는 이유다.
이미 한 번 대대적으로 실패해 사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져 전폭적인 지원은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마정석이 나온다면 몇 번을 부딪혀도 부족함이 없다.
―마정석을 발견하고 솔직하게 도움을 요청한 하이난 자작의 공을 높이 사, 일의 처리결과에 따라 그대를 백작위로 임명하겠다.
그러한 내용의 답장을 받은 하이난 자작은 울상이 되었다.
“이, 이게 거짓인 게 들통나면 저는 죽습니다!”
혼자 죽는 게 아니라 삼대가 멸족당할 일이다.
그만큼 큰 거짓말이었다.
리겔 왕국에서 대대적으로 대규모 지원을 약속했는데 이제 와서 무를 수도 없는 노릇.
직접 쓴 편지이니 더 돌아버릴 일이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거짓이 아니라면?”
하이난 자작의 표정이 굳었다.
‘거짓이 아니라고?’
진짜 마정석이 나온다고?
‘단순한 시종이 아니었나?’
정작 용병들을 주도한 용병은 뒤에있고, 시종인 척 조용히있던 자가 나서서 자신을 협박한다.
정체를 숨기고 있는 자가 분명하다.
하지만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침을 꿀꺽 삼킨 하이난 자작이 말했다.
“그럼 정말 광맥에 마정석이 있다는 말입니까?”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 말을 어떻게 믿습니까?”
“마정석이 나오는 광맥 근처의 마물들은 비약적으로 강해진다. 이곳의 늑대들처럼.”
없을 가능성이 더 높기는 하지만,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수많은 광산을 개발한 제국 수뇌부들끼리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마정석이 나오는 광산 주변의 마물들은 비약적인 힘을 얻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그렇더라’하는 추측성 가십일 뿐이지만.
나름의 판단기준까지 내세우자 하이난 자작의 눈에 이채가 뗬다.
“그, 그걸 저한테 알려주는 이유가 뭡니까?”
“백작이 되고싶지 않나?”
“······.”
당연히 되고싶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수렁이었다.
결국 자신의 말을 들으라는 것이다. 누군지도 모르는, 용병의 시종나부랭이를.
허나 그런 시종 나부랭이가 최상급의 마정석을 갖고 있었다.
쐐기를 날렸다.
“어차피 이제는 되돌릴 수 없다. 진짜 마정석이 있든, 없든.”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편지를 써서 보내는 걸 용병들이 전부 봤다.
내용은 모를 수도 있지만, 되돌릴 수 없다. 돌이키기엔 늦었다.
그렇다고 용병들에게 책을 잡혀 강제로 썼다고 말한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문제다. 자신의 무능함만 왕국에 알리는 꼴이었다.
‘어쩐지 얼굴은 빼고 때리더라니.’
한 마디로 얼굴마담이나 하라는 것이다.
‘창고를 태운 것도 그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하이난 자작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처음부터 결과는 정해져있었다.
마치 거미줄에 붙잡힌 하루살이가 된 기분이었다.
*
그로부터 5일이 더 지나자 왕정에서 보낸 병사들이 도착했다.
속전속결. 상상을 뛰어넘는 속도다.
혹여나 정보가 새어나가기 전에 빠르게 처리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숫자도 무려 이천을 넘겼다.
고작 숲과 계곡의 마물을 토벌하기 위한 숫자치고는 지나치게 많다.
곧이어 나팔수가 나팔을 불었다.
그 사이로 두 명의 남녀가 눈에 띄었다.
그 둘을 본 영주성의 병사들이 웅성거렸다.
“플릭 왕자님이시다!”
“자스민 왕녀님도 계셔!”
“두분이 직접 오셨다고?”
“이번에야말로 진짜 토벌하려고 작정했나보군!”
< 위업 강탈(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