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황제-82화 (82/146)

팔몬토 공방을 찾은 이유.

첫 번째 이유는 본 드래곤의 재생 때문이다.

용혈회의 본회의에 참석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인공생명’을 부여하기 위함이었다.

표면의식에 새로운 A.I를 탄생시켜 조종하는 건 데이몬의 방식이었고, 그 방식으로 인해 데이몬은 오랜 세월 용들의 추적을 피해왔다.

말하자면 용들조차도 표면의식에 새로운 A.I를 심으면 알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번 로드와의 대면을 통해 증명되었다.

제로 역시도 북부의 용을 표면의식에 떠올림으로써 의심을 피해가지 않았던가.

북방에서 데이몬을 상대한 덕분에 그 방식을 습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인공생명체에 북부의 용 A.I를 덧씌워, 제로가 지배할 수 있게끔만 만들 수 있다면 충분히 본회의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윈드러너는 말피엘을 방해하기 위해 필요하다.’

두 번째 이유.

윈드러너 자체가 목적이다.

‘말피엘은 현재 여섯 번째 위업에서 정체되어있다.’

드래곤 로드가 확인한 사항이다. 여섯 번째 위업을 깨지 ‘않고’ 있다는 것. 깰 수 있음에도 깨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말피엘은 앞으로 일 년 뒤 여섯 번째 위업을 달성하며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인간에 대한 혐오. 여섯 번째 위업을 달성하려면 그걸 극복해야 하니까.’

현재의 말피엘은, 인간에게 닿는 걸 극도로 꺼린다.

내 알맹이가 ‘용’임을 알고서도 닿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여섯 번째 시련은 닿아야만 깰 수 있다.

‘아게우스의 늑대를 생포하는 것. 그게 여섯 번째 위업의 내용이지.’

아게우스 계곡에서 살아가는 늑대를 칭하는 말이다.

하지만 그 늑대는 진짜 늑대가 아니라 인간이다.

괴물 늑대의 무리에서 키워진 인간.

최근 몇 년 사이 리겔왕국의 골칫거리가 된 존재였다.

아게우스 계곡에서 은광맥이 발견된 것이다. 하지만 개발을 위해 마을을 조성하려면 숲을 베고 길을 만들어야 된다.

그 과정에서 벌써 몇 년째 리겔왕국은 괴물늑대 ‘실버팽’의 무리와 부딪히는 중이었다.

아게우스의 늑대는 그 사이 유명해진 인간 늑대였다.

리겔 왕국의 소드마스터를 죽인 사건으로 말이다.

그만한 강자를 생포하려면 직접 만져야 하는데, 현시점에서 인간을 극도로 혐오하는 말피엘은 벌써 몇 년째 아게우스의 늑대를 방치하고 있었다.

‘말피엘이 직접 육탄전을 벌여야 할 정도의 상대다. 계곡의 지형도 한몫했겠지.’

용언이 통했다면 쉬웠을 것이나 말피엘이 고전하고 있다는 건 통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계곡의 복잡한 지형도 한몫하여 애를 먹고 있는 것이리라.

말피엘은 아게우스의 늑대를 죽이며 인간 세상에 자신을 알렸다. 그 과정도 어느 정도 공개되어 있었다.

‘내가 가로챈다.’

그러니 그 위업, 내가 가로챈다.

아게우스의 늑대를 죽이거나, 생포하지 못하는 상태로 만든다.

이때 필요한 게 윈드러너다.

계곡지형에 능하며 재빠른 상대를 잡으려면 나도 그만한 준비를 갖춰야만 했다.

[해당 신발에 접목된 기술은 ‘나노튜브’의 기초개념을 따르고 있습니다.]

[나노머신의 에너지를 순간적으로 증폭시켜 터트리는 개념으로, 공기를 박차 이동할 수 있게 만드는 목적을 띠고 있습니다.]

얼음의 활과 비슷한 개념이다.

얼음의 활보다는 낮은 영역의 기술이지만 비슷한 개념이 적용되었다.

설마 엘프가 이 개념을 접목한 기술을 실제로 완성해낼 줄이야. 팔몬토의 기술력이 확실히 범상치 않다는 건 인정해야겠다.

문제는 당연히 나노머신의 방전과 갑작스러운 이동의 적응이었다.

나노머신이 적거나, 익숙하지 않은 이가 사용하면 방전으로 인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그리고 사용한들 터지는 에너지의 압력을 몸이 받아내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윈드러너에 적응하기 위한 동작제어를 실행합니다.]

[근육의 밀도와 움직임을 제어해 ‘급속정지’를 실행합니다.]

[관절의 탄성을 일시적으로 증가시켜 더욱 유연한 움직임이 가능케하도록 합니다.]

허나, 그 문제도 제로가 해결했다.

불가능한 근육의 움직임, 관절의 꺾임 등을 미세하게 조절해 에너지의 반발에서부터 몸을 지키고 있었다.

덕분에 움직임이 자연스러워졌다.

허공을 박차고 달린다. 사이오닉 에너지로 물체를 이동시키는 건 가능하지만, 육체를 허공에 띄워 움직이려면 소모가 장난이 아니다.

하지만 윈드러너는 얼음의 활과 마찬가지로 나노머신의 에너지를 증폭시키는 개념을 탑재하고 있었다.

적은 에너지로 더 자유로운 움직임이 가능하다.

원할 때 에너지를 팽창시켜 그 반탄력으로 공격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발에 한정되지만 이 기술을 전신에 적용할 수 있게 된다면?

‘나노아머라.’

윈드러너를 신은 다크엘프 군단이 전장을 휩쓴 것처럼, 나노아머를 두른 병사들이 전장에 참가한다면 그 위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으리라.

그야말로 전율의 전장이다.

“······ 계속 저를 놀라게 만드시는군요.”

페르세포 대공의 놀라움이 여기까지 전해진다.

그와 아렐, 그리고 대장장이들도 말을 못 잇고 있었다.

바닥에 내려온 나는 고개를 저었다.

“조금 더 연습은 해봐야겠다.”

“비법을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사실 비법이라고 할 게 없다.

제로가 조정해주면 내가 타는 것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그 미묘한 움직임에 대해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슬쩍 운을 뗐다.

“제법 쓸만한 물건 같다만······.”

“드리겠습니다.”

“대, 대공님! 그만한 완성품은 아직 하나밖에······!”

대장장이들이 만류했지만, 페르세포 대공의 의지는 확고했다.

“노하우를 공유하는 게 훨씬 중요합니다.”

마나의 조절과 윈드러너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 이미 한 번 만들었으니 세부조정만 하면 두 개라고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원하는 걸 얻었으나, 어깨를 으쓱하며 물었다.

“이만한 작품을 내게 유출해도 되겠나?”

“팔몬토의 설계도가 없으면 어차피 흉내내지도 못할 겁니다.”

유출해봤자 비슷하게도 만들 수 없을 거라는 자신감.

동의한다. 사라진 드워프가 아니고서야 이 기술을 흉내낼 자는 인간 중엔 없다.

그래도 엘프 기술의 총아를 내게 넘기는 셈이다. 단순히 노하우의 공유라고 했지만,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닐 터.

‘내게 줄을 댔다.’

여태껏 페르세포 대공은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중이었다.

이후 모든 걸 계산한 뒤 내게 줄을 대고자 하고 있었다.

친애의 의미로 윈드러너는 건넸으니, 나도 하나를 건네야 한다.

내가 진정으로 ‘친애’하겠다는 증명이 필요하다.

“오늘 하루는 이곳에서 쉬어가도록하지.”

“환영합니다, 전하.”

페르세포 대공이 미소를 곁들였다.

엘프와 다크엘프들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섬.

이곳이 페르세포 대공의 심장이었으므로.

*

“아렐. 얘기해봐. 황태자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야?”

늦은 저녁.

오랜만에 다크엘프들이 아렐을 중심으로 모였다.

이미 술을 한잔 한 그들의 볼은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다같이 파자마를 있고 아렐의 침대에 모인 채, 강제로 파자마가 입혀진 아렐의 입가로 집중하고 있었다.

이윽고 아렐이 입을 열었다.

“······ 무서운 사람입니다.”

“무섭다고? 어떻게?”

“당연히~ 침대에서겠지~”

“웩! 야, 아렐한테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상대는 인간이라고.”

“맞아. 우리 작고 귀여운 아렐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어.”

이들은 아렐에게 있어선 자매와도 같았다.

아렐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침대에서 무섭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아······.”

“아직 안 해봤구나?”

“여전히 아렐은 천연이네, 천연이야.”

여자들이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예나 지금이나 아렐은 검밖에 몰랐다.

“그럼 뭐가 무섭다는 거야?”

주제를 돌렸다. 아렐은 눈을 몇 번 깜빡거리다가, 낮게 침음을 흘렸다.

라인하르트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녀가 본 인간 중에서 가장 무서운 인간이었다.

“끝을 알 수 없습니다. 한계가 없는 것 같습니다.”

본 드래곤과 관련된 일도, 이번 윈드러너도 마찬가지다.

해낼 수 없으리라 생각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낸다.

다 알았다고 생각하면 또 다른 게 나타난다.

까도 까도 끝이 없었다. 아직도 전부를 파악하지 못했다. 무한한 띠에 갇혀버린 느낌이다.

“의외네.”

“아렐이 무서워하는 건 처음 아니야?”

“긍정적인 신혼데?”

아렐이 무언가를 무서워하는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여자들은 그것을 긍정의 신호로 여겼다.

“한계가 없는 것 같아서 무섭다니. 그럼 존경한다는 말 아니야?”

“존경심이라······ 그럼 끌릴 수밖에 없지.”

존경심?

아렐은 고개를 저었다.

“존경심과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만······.”

와이번들을 이끌고 1황비의 고개를 숙이게 만든 일.

조사단장의 자리에서 귀족들을 피도 눈물도 없이 처형시켜버린 남자.

그야말로 냉혈인이다.

라인하르트 황태자가 부드러운 면모를 보인 적은 없었다.

‘아.’

아니, 한 번 있었던가?

카르넬 황녀의 성인식에서 춤을 출 때.

그때는 부드러웠다.

그러고 보니, 그가 부드러워 질 때가 있기는 있었다.

‘제르민 집사를 대할 때······.’

라인하르트가 유일하게 부드럽게 대하는 인간이 있다.

바로 제르민 집사다.

제르민 집사를 위해 마법을 가르치게 하고, 4서클에 오르자 파티까지 열었다.

그런 게 아니라도 라인하르트는 유독 제르민 집사를 대할 때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 있었다.

아마도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라 그런 게 아닐까?

그 외에는, 진심으로 믿지 않는다는 뜻일는지.

심지어 크로프트를 대할 때조차 완벽히 믿는 느낌은 아니었다. 신뢰관계는 쌓았지만, 근본적으로 서툴러하는 기색이었다.

‘집사 외에는 믿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걸까.’

그제야 아렐은 깨달았다.

라인하르트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사람을 대하는 게 어색하다.

제르민 집사를 제외하면 아무도 믿지 않기에 냉혈인처럼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춤을 출 때, 자신에게 호흡을 맡기라며 이야기 할 땐 부드러워졌다.

그것을 보면 완전한 냉혈인은 아닌 것 같은데.

‘모르겠어.’

그래서 무섭다.

예측을 할 수가 없어서. 아직은 어려웠다.

“제국 황실은 어때?”

“맞아. 황실의 인간들은 정말 하늘 위에서 살아?”

자매들의 물음에 아렐이 재차 고개를 저었다.

“지상에서 삽니다. 그리고 영원한 아군이 없는 곳 같습니다. 차라리 이 섬이 더 낫습니다.”

“에이~ 뭐야. 아무 것도 없는 이 섬이 황궁보다 더 낫다는 게 말이 돼?”

“예.”

아렐은 확신했다.

그리고······ 아마도 그래서일 것이다.

라인하르트가 사람을 제대로 믿지 않는 것은.

*

다음 날, 와이번을 타고 섬을 떠났다.

본 드래곤에게 생명을 부여하려면 시간이 걸리니 그 사이에 아게우스의 늑대를 처리하려는 것이었다.

‘문제는 늑대가 있는 곳이 리겔왕국이라는 건데.’

문제는 위치가 리겔왕국 내부라는 점이다.

정령무기 칼리번을 뽑을 때 리겔왕국 왕자의 혀도 같이 뽑아버렸다.

정식적인 요청을 하고 들어갈 순 없는 입장인 것이다. 그랬다간 들어가는 순간 가장 먼저 대면하는 게 나를 죽이려는 암살자 집단일 가능성이 높았다.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들어가서 늑대만 잡고 나온다.

이게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다. 시간도 절약할 겸.

“······ 이렇게 그냥 가도 되는 겁니까?”

나는 아렐과 함께 제도를 넘고 있었다.

리겔 왕국의 경계선에 도착한 순간 와이번에서 내려, 마차를 빌린 후 모험자 행색을 하고 있었다.

아렐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이자르에게 권한을 위임했으니 알아서 처리하겠지.”

급한 건 다 해결했다.

카를로스 대공의 끄나풀들을 제거했으니 알아서 몸을 사릴 것이다.

또한 페르세포 대공이 내게 줄을 댄 순간 이미 게임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마차에 몸을 싣고 너른 곡창지대를 바라보았다.

“리겔 왕국은 오랜만이로군.”

< 위업 강탈(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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