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황제-79화 (79/146)

“이대로 가만히 두고만 보실 겁니까, 실비아 황비님?”

“황태자의 횡포가 도를 넘어섰습니다. 벌써 세 명이 처형당했어요. 묵시했다간 저 칼이 어디까지 향할지 모르는 일입니다.”

귀족들이 1황비, 실비아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황태자 라인하르트가 궁에서 자리를 비웠다는 소식이 퍼지고 하루만의 일이었다.

7일간 라인하르트에게 처형당한 귀족만 벌써 셋이었다. 심지어 그 셋 모두 정계에 잔뼈가 굵은 귀족들이었기에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 셋 모두 실비아 황비의 최측근이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놈이 내 목을 칠 거다.’

그들을 노린다는 건, 그녀를 노린다는 말과도 같았다.

당장은 엮지 못하고 있으나 이렇게 하나, 둘 쳐내다가 어느 순간 돌변해 그녀의 목을 조여오기 시작할 것이었다.

수를 내야만 했다. 이대로 가만히 당해줄 순 없었다.

그래서 무력시위를 택했다. 라인하르트의 세력 자체는 볼품이 없었다. 하여 기사들과 귀족들을 이끌고 대화를 주도하면 기를 누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와이번이라니?’

와이번은 절대로 인간이 기를 수 없다. 길들일 수 없다. 이미 일반상식처럼 여겨지는 일이었다.

백 년 전 제국이 전력을 기울여 도전했으나 실패한 일화는 대륙 전역에 정설처럼 퍼져있었다.

인간에 대한 공격성을 제거할 수 없고, 와이번은 특성상 자신의 등 뒤로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조차도 피하는 탓이다.

하물며 등에 인간을 태우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새끼 때부터 키워도 본능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그게 당연한 일이고 상식이다.

지금 그녀는 면전에서 상식을 부정당하고 있었다.

‘배를 끄는 와이번이 열 마리라니······!’

등에 사람을 태운 것조차 아니다.

와이번이 이동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말이 마차를 끌 듯이 와이번들이 거대한 배를 이끌며 나타난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사람을 보면 공격부터 하고 보는 게 와이번이다. 사냥감, 먹이 이상으로 여기질 않으니 공존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와이번들은 온순하기 그지없었다. 주변에 놓인 무수히 많은 먹잇감을 보고서도 본체만체하고 있었다.

수호의 성벽을 담당하는 사령관과 그의 병사들이 안전을 위해 둘러싸며 이동하고 있음에도 와이번들은 콧방귀만 뀌고 있었다.

자그마치 열 마리가 전부.

한 마리면 몰라도 열 마리가 동시에 저러고 있으니, 그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와이번을 저토록 온순한 모습 자체를 처음봤다. 포악하기 그지없는 마물을 뽑으라면 항상 제일 앞에 오는 게 와이번이다.

제국이 달려들어 실패한 일을 성공시켰다.

이게 알려지면 난리가 나리라.

문제는 와이번을 타고 온 사람이다.

척 보기에도 호화로운 배 위에, 라인하르트가 있었다.

“나를 환영하는 인파가 이리도 많을 줄은 몰랐군.”

“어, 어딜 갔다가 와이번들을 끌고 돌아오신 겁니까?”

제르민이 물었다. 아무도 모르게 궁을 나간 것도 큰일이지만 심지어 와이번을 끌고 왔으니 더더욱 큰일이었다.

와이번의 대부분은 남부에서 서식한다. 무덥고 습기마저 없는 사막의 높은지대에서 살아가는 게 와이번이었다.

당연히 제국과는 한참이나 떨어진 곳이다. 일주일만에 다녀올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이자르와 아렐 역시 궁금증 가득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출처가 문제로군.’

용이 선물로 줬다고 한들 믿지 않을 눈치다.

하기야 입장을 바꾸면 나부터도 믿지 않을 것 같았다. 용이 와이번을 열 마리나 선물로 줬다하면 미친놈 소리가 먼저 튀어나가겠지.

마물을 궁에 들이려면 정확한 출처가 있어야 한다. 와이번 같은 괴물을 들였다가 사람이라도 잡아먹으면 그 책임을 져야하는 탓이다.

결국,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나는 제르민과 눈을 마주쳤다.

“내가 몰래 기르던 녀석들이다.”

“······ 제가 못 보던 사이에 많이 자랐군요.”

제르민이 받았다.

역시나 노련한 집사다웠다.

내 의도를 정확히 꿰뚫어봤다.

궁에 칩거한 황태자가 몰래 와이번을 기를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제르민이 증언해준다면 그럴 가능성이 0은 아닌 게 된다.

뭐, 용이 직접 길들여서 준 선물이니, 문제를 일으키진 않을 것이다. 아돌프가 와이번의 공격적인 부분을 어느정도 거세시킨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모여있는 귀족들을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실비아 황비. 귀족들을 끌고 내게 볼 일이라도 있소?”

1황비의 이름을 거론하자 실비아 황비가 입술을 깨물었다.

‘하필이면 왜 지금······!’

왜 지금 타이밍에 와이번들을 끌고 나타난단 말인가.

귀족들과 함께 압박을 주려고 했지만, 와이번의 위용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제국의 숙원을 황태자가 풀었으니 저 와이번의 날개처럼 훨훨 날아가리라.

“와이번을 제대로 길들인 게 맞느냐?”

“왜? 공격이라도 할까봐 두려워서 그렇소?”

“궁 내에서 사람을 공격하면 어쩌려고 그러지? 그럴 위험이 다분한 괴물을 궁 내로 들일 수는 없느니라.”

“걱정도 많군. 내게 책임지면 될 일을.”

무력시위가 먹히지 않는다고 판단해, 와이번 자체를 공격하고 있다.

속이 너무 뻔히 보이는 작태다.

나는 배에서 내렸다.

이후 선두에 선 와이번의 턱을 쓰다듬었다.

“와이번이 고양이도 아니고······.”

“허! 오래살다 볼 일이군.”

귀족들이 감탄했다.

와이번이 민가에 나타나면 그 마을은 한 달 내내 비상이 걸린다. 정규 기사집단이 아니면 상대를 할 수조차 없는 괴물 중의 괴물이다.

그런 와이번이 사람의 손길을 거부감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사람을 공격할지 말지 한 번 시험해 보시겠소?”

실비아 황비가 눈에 불을 켜며 말했다.

“지금은 말을 듣지만 사람의 피맛을 보면 돌변하는 게 마물들의 특징 아니더냐? 와이번이라고 다를 리는 없지.”

“그럼 사람의 피맛을 보고도 가만히 있는다면 이 아이들에게 사과하시겠소?”

“······ 좋다. 어디 피맛을 보고도 가만히 있는지 보자.”

실비아 황비는 자신했다.

아무리 길들인 마물이라도 결국은 마물이다.

피맛을 보면 돌변하는 건 본능적인 것이었다.

특히 오로지 육식만을 하는 와이번이 인간의 피를 맛보고서 얌전할 턱이 없었다.

공격성을 드러내면 자신의 승리다. 와이번이 완전히 길들여지지 않았음을 선포하고 도륙내버릴 것이다.

그때였다.

“저, 전하! 무슨 짓입니까!”

라인하르트의 돌발적인 행동에 제르민이 경악하며 소리를 질렀다.

돌연 팔을 걷더니, 오러로 자신의 팔에 상처를 내어 그대로 와이번의 입 안에 넣었기 때문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짓이다.

뚝, 뚝.

핏방울이 거대한 와이번의 입 안에 떨어졌다.

그르르.

하지만 미약한 소리만 낼뿐, 와이번은 얌전했다. 날카로운 이빨로 팔을 물지도 않았다. 강철도 씹어먹는 저 턱과 이빨이 라인하르트의 앞에서 온순해진 것이다.

“또 시험해볼 사람이 있소? 직접 팔을 넣어볼 사람 말이오.”

“······.”

1황비 실비아를 포함한 모든 귀족들이 입을 닫았다.

기사들도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와이번의 입안에 팔을 넣다니!

심지어 피맛을 보고도 가만히 있는다.

아무리 하급의 마물이라도 피맛을 보면 돌아버리기 마련이다.

대체 어떻게 길들였기에?

하지만 시험해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 턱이 없다.

자살행위다. 아무리 온순하다고 해도 와이번은 와이번이었다.

기르던 개도 주인이 아닌 다른 사람은 무는 법이었다.

하물며 와이번은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감을 심어주는 괴물이다.

“내가 직접 해보마.”

모두의 예상을 깨고, 실비아 황비가 직접 나섰다.

“화, 황비님. 아니 될 일입니다!”

“기사들을 시키시지요!”

“잘못되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귀족들이 말려세웠다.

그녀가 직접 나섰다가 잘못되면 큰일이다.

너무 위험한 도박이었다.

‘네가 감히 내 위험을 방조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 이는 그녀로서도 회심의 한수였다.

주인인 라인하르트에게는 공격적이지 않지만, 만에 하나 와이번이 그녀를 공격하는 순간 궁이 뒤집어질 것이었다.

그러니 라인하르트는 자신을 시험대상으로 삼을 수 없었다. 거절하고 다른 대상을 내세우는 순간, 우겨서 무효화시켜버리면 그만이다.

없던 일로 만들고 라인하르트를 몰아세운다.

하지만 실비아 황비가 잘못 생각한 게 있었다.

“좋은 생각이군. 그리하시오.”

······ 라인하르트는 언제나 그녀의 생각을 웃돌았다는 것이었다.

‘미친. 지금 뭐라고 한 거야?’

‘또라이.’

‘광증이 나았다더니 아직 완전히 나은 건 아닌가보구나!’

듣는 모든 이들이 경악했다.

실비아 황비가 도전했다고 그걸 정말로 받아들인다?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선택이다.

이는 실비아 황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빨에 닿지 않게끔 조심히 넣어야 할 게요. 혹여나 씹어버리면 큰일이니까.”

도리어 그녀를 향해 와이번의 입을 벌려주며, 친절하게 설명까지 한다.

실비아 황비의 눈빛이 흔들렸다.

마물의 입에 손을 넣다니. 평생 해본 적 없는 일이다.

곱게 자라 황실로 시집온 그녀가 마물을 직접 마주할 일이 몇 번이나 있겠는가. 그래도 황실에선 여걸이라 소문이 자자했으나, 직접 마주하는 건 아예 다른 일이었다.

‘내가 못할 줄 알고?’

황비가 이를 악물며 발걸음을 옮겼다.

소매를 펼쳐, 손을 넣으려고 하는 순간 와이번과 눈이 마주쳤다.

‘아······.’

기를 죽이려고 했으나, 도리어 기가 죽어버렸다.

무력시위는커녕 반대로 그녀가 시험을 당하고 있었다.

황비가 손을 뺐다.

“공격··· 은 안 하는 것 같구나.”

“내 허락없이 사람을 공격할 일은 없을 것이오.”

허락이 떨어지면 공격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럼 실비아 황비, 약속을 지켜야겠군.”

“······.”

실비아 황비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모멸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으나 현실이었다.

“약속을 안 지켜도 괜찮겠소? 보아하니, 이곳에 모인 귀족 대부분은 현재 조사중인 자들인데. 그렇다면 나도 저들의 생사를 약속할 수가 없을 것 같군.”

“······!”

대놓고 죽음을 말한다. 미치광이에게 칼을 쥐어주면 어떻게 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귀족들의 눈빛도 흔들렸다. 모인 게 도리어 독이 됐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다. 오히려 각인효과만 부추긴 셈이다.

여기서 사과하지 않으면 강도 높은 조사가 들어간다는 메시지였다.

자고로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귀족은 없다.

하물며 중앙정계에서 오래 지낸 귀족일수록 먼지는 더 많아지는 법.

즉결처형권한마저 지닌 라인하르트는 그들에게 악몽과도 같았다.

“의심해서 미안··· 하구나.”

“나한테 말고, 이 아이들에게 하라는 말이오.”

빠드득!

절로 이가 갈린다.

마물 따위에게 사과를 하는 황비는 제국의 역사상 없었다.

하지만,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결국 실비아 황비가 고개를 돌려 와이번들을 바라봤다.

“미······ 미안하다.”

마물에게 사과를 하다니.

그녀가 겪은 인생 최대의 굴욕이었다.

*

1황비, 실비아가 라인하르트 황태자에게 고개를 숙였다!

라인하르트 황태자가 와이번을 궁에 들였다!

순식간에 황실에 소문이 퍼졌다.

그 중심에는 단연 라인하르트가 있었다.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돌아온 라인하르트가 동시에 실비아 황비마저 고개를 숙이게 만든 것이다.

라인하르트가 조사단장직을 맡으며 그 권위가 하늘높이 치솟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제 그 누구도 조사단장의 역할에 토를 달지 못했다.

‘증거를 인멸해야 한다!’

결국 귀족들은 방향을 틀었다.

1황비마저 고개를 숙이게 만든 라인하르트다. 귀족들이 모여봤자 씨알도 안 먹힐 터. 귀족들은 방법을 바꿔 증거를 인멸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귀족들은 제국법을 크게 위반하는 사항에 대해 꼼꼼이 살피고 숨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준비하는 시간보다, 조사단이 들이닥치는 시간이 더 빨랐다는 것이다.

“황룡기사단이다!”

“여, 영주님, 황룡기사단이 와이번을 타고 날아오고 있습니다!”

엄청난 속도로 와이번을 타고 날아오는 황룡기사단을 대처할 수가 없었다.

수도와 떨어져있어도 안심할 수 없다.

백년 전 제국이 실패한 비룡기사단의 출현!

와이번을 탄 기사들의 움직임은 바람보다도 빠르고 날카로우니.

“페르세포 대공. 오랜만이군.”

페르세포 대공 역시, 조사의 칼날을 피해갈 순 없었다.

< 비룡기사단(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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