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황제-78화 (78/146)

드래곤 로드.

태초부터 존재한 지고의 존재.

스스로 자각하여 깨달은 자이며 십이주신조차도 쉬이 범접할 수 없는 격을 지닌 그녀지만, 바로 전에 만났던 그 기묘한 이가 묘하게 신경을 거슬린다.

‘이상하구나.’

정말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녀는 모든 용의 기억을 훑어볼 수 있는 권한을 지녔다. 망각하지 않는 용의 기억을 들여다본다는 건 용의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다는 말과도 같았다.

파악하고 지배하며 군림하는 게 로드의 역할이다.

하여, 용인 이상 그녀의 신경을 거슬리게 할 수는 없었다.

거슬린다는 건 순순히 받아들여 지지 않는 감정. 하지만 정점에 있는 그녀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감정이나 기억 따위가 있을 리 없잖은가.

그런데 거슬린다. 계속해서 눈에 밟힌다.

‘북부의 용······.’

북부의 용. 성지에 봉인되어 천 년을 지내 변화를 겪었다. 그의 기억은 혼란스러움 그 자체였다. 인간에게 패배한 뒤 끊임없이 방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라면 자신이 받아들이지 못할 리 없다.

‘이질적이다.’

그제야 로드는 북부의 용에게서 느꼈던 거슬림의 정체를 깨달았다.

끝으로 치달을수록 북부의 용이 가진 기억에 손상이 있다. 뱉어내는 감정이 한 차례 여과되어 나오는 것만 같았다. 마치 중간지점에 무언가가 있는 느낌이다.

말피엘과는 다르다.

말피엘은 목적을 숨기고 있었지만 스스로 가면을 쓴 것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 북부의 용은 두꺼운 갑옷을 몇 겹으로 입은 것 같다.

그러나 갑옷은 보통 한 겹만 입기 마련이다. 누군가가 억지로 갑옷을 입히지 않는 한 몇 겹이나 두를 이유가 없었다.

‘여태껏 이런 느낌을 준 자는 손에 꼽았거늘······.’

태초부터 존재해온 그녀에게 이만한 거슬림을 선사한 존재는 손에 꼽는다. 모든 위업을 달성한 용들조차도 그녀에게 이 정도로 감정의 골을 만들어내진 않았다.

물론 용이 용을 잡아먹으며 기억을 계승하는 일이 없진 않다. 하지만 잡아먹은 용은 자신의 주체를 지키기 마련이다.

북부의 용은 주체로서 존재하고 있었다.

‘혼란스러운 건 북부의 용이 아니라 나였던가?’

그녀는 북부의 용에게 혼란스럽냐고 물었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북부의 용을 마주한 뒤 그녀가 더욱 큰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혼란을 주는 존재, 혼돈(Chaos)이었다.

화아악.

그녀가 손을 휘젓자 곧 하늘이 열리며 우주가 나타났다.

우주의 별 두 개가 새로이 빛나고 있었다.

수천, 수만년간 빛나지 않았으나 빛나는 순간 세상을 어지럽히리라 전해지는 별들이었다.

‘천살성과 자미성.’

하늘을 죽이는 별과 별을 지배하는 별.

두 별이 같은 시대에 빛나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천상설과 자미성의 힘을 이어받은 자는 한 명도 빠짐없이 세상에 풍파를 일으켰다. 특히 천살성의 경우 마지막 위업과 함께 등장하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

세상을 멸하고, 그리하여 새롭게 신이 되는 자.

그녀는 말피엘을 천살성의 주인이라고 판단했다.

13번 째 신이 될 재목인 것이다.

하지만 자미성은······ 예측할 수 없다. 그야말로 혼돈이다.

그럼 북부의 용이 자미성의 주인이란 말인가?

그 역시 알 수 없다. 어쩌면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그러나 확실한 건, 로드인 그녀에게 혼란을 가져다줄 존재라면 저 두 별의 주인들뿐이라는 것이다.

‘혼란은 지워야 한다.’

동시대에 절대로 나타날 수 없는 두 별을 바라보며 그녀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

라인하르트가 조사단장에 위임된 지 정확히 보름이 지났다.

첫 일 주일은 그야말로 태풍이었다. 중앙정계의 귀족들이 바닥에 바짝 엎드려 숨을 쉬어야 했을 정도이니 그 위세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 소식은 당연히 카를로스 대공의 귀에도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라인하르트······!’

자신이 북방에 발이 묶여있는 사이, 라인하르트는 순식간에 중앙정계에 데뷔했다.

그걸로도 모자라 조사단장이라는 막강한 권력까지 손에 넣었다.

‘어이가 없군.’

하지만 라인하르트의 행보는 명백히 자신을 적으로 돌리는 행위다. 황궁마법사 제네릭을 비롯해 카를로스 대공이 궁의 요직에 앉힌 귀족들을 잘라내고 있었다.

은혜를 모르는 놈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라인하르트는 황태자는커녕 오래전에 죽었을 것이다. 빚을 갚지는 못할지언정 원한으로 되돌려주고 있었다.

북부에서 테베우스를 죽였을 때도 이만큼 분노하지는 않았다. 자식은 많았고 테베우스는 그의 아들 중에서도 가장 무능한 놈이었기에.

하지만 궁의 요직에 앉혀놓은 손과 발이 잘리는 건 이야기가 다르다.

이는 즉, 자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미친 황태자, 무능하기 짝이 없던 라인하르트가 어찌?

‘콜로세움에서 라우넬 황자를 이겼다.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

······ 자신이 속았단 뜻인가?

그저 미친 척, 무능한 척 연기를 하고 있었을 뿐이라고?

정신을 차린 그 순간부터 황태자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너무 빠르다. 권위를 되찾고 자신에게 칼을 겨누고 있다.

‘카르발······ 놈도 등을 돌렸다.’

심지어 황태자의 감시를 위해 보내놓은 용병왕 카르발에게서 연락이 끊겼다. 임무를 실패한 거로도 모자라 아예 등을 돌려버린 것이다.

이 역시 라인하르트가 수작을 부린 게 분명했다.

이대로 놔두면 저 칼이 자신의 심장을 후벼팔 수도 있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황태자를 죽여야겠다.’

카를로스 대공은 그제야 라인하르트 황태자를 인정했다.

그동안은 죽일 가치도 없었지만, 이제야 비로소 죽일 가치가 생겼다.

“교단에 연락을 넣어라. 이 웃기지도 않은 장난질을 끝낼 때가 됐다.”

*

발자크. 악마교단의 검인 그가 수도에 도착했다.

‘제국은 오랜만이로군.’

증오를 담아 주변을 둘러본다.

악마교단은 제국의 탄압으로 사라졌으나 이는 표면에 불과했다. 악마교단의 뿌리는 아직도 남아 세계 곳곳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발자크는 악마교단의 다섯 검 중 하나였다. 필살의 검이라 불리며 그가 노려서 죽이지 못한 대상은 없었다.

그는 수도에 들어온 즉시 황궁과 거래하는 상인 한 명을 죽였다. 이후 상인으로 위장한 채 황궁으로 입궁했다.

‘라인하르트 황태자가 없다?’

그런데 라인하르트 황태자가 궁에 없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체 어딜 가셨단 말인가?”

황룡궁. 황태자의 궁 내에서 산더미처럼 쌓인 문서를 빠르게 훑으며 볼맨소리를 늘어놓는 남자가 있었다.

“귀족들도 이상함을 눈치채고 결집하는 중이다. 결집하기 전에 부숴버려야 하건만······.”

그 남자는 이자르였다. 부조사단장의 역할을 위임받았으나 라인하르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조사단장을 맡은 즉시 빠르게 움직여서 부패한 귀족들을 일망타진해도 부족한 시간. 그런데 난데없이 라인하르트가 사라진 것이다.

이에 귀족들이 뭉치고 있었다. 유력한 귀족 몇몇을 필두로 뭉쳐서 황실을 압박할 생각인 것 같았다.

‘흠. 진짜로 없나보군. 어딜 간거지?’

황태자가 궁에 없으면 어디 있단 말인가.

흔적을 좇으려면 단서가 필요하다. 발자크는 궁의 더욱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 누구?”

라인하르트의 방 앞을 기사 한 명이 지키고 있다.

아렐이다. 그녀는 계속해서 라인하르트의 방 앞을 지키고 있었다.

지난 7일간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허나 발자크는 믿기지가 않았다.

소드마스터의 기감으로도 잡아낼 수 없는 자신의 은신이다.

최강이라 일컬어지는 크로프트도 자신의 은신을 잡아내진 못할 것이다.

급히 물러나며 재정비했다.

‘내 은신을 눈치채다니, 제법이군.’

얕본 것 같다.

하기야 이곳은 제국의 심장부였다.

상상이상의 실력자가 몇 있어도 이상할 게 없는.

황태자궁에 저런 강자가 있을 수도 있었다.

방향을 돌려 올라가자, 한 남자가 발자크의 앞을 막아섰다.

“넌 누구냐?”

그는 유진이었다.

이곳 황룡궁은 이미 유진의 결계로 철통방어가 되고 있었다. 허락받지 않은 이의 움직임은 모조리 유진에게 파악당한다.

발뭉의 습격 이후 유진은 일시적이나마 궁정마법사에 복직했다.

궁의 결계를 제대로 완성하면 복직시켜주겠다는 황제의 명에 의해서였다.

비록 아직 결계를 완성하지는 못했으나, 황궁 전체가 이미 유진의 감각 내에 놓여있었다.

“······ 흡!”

발자크가 침음을 내뱉었다.

포박당했다. 보이지 않는 마력에.

‘무영창······?!’

영창도 없이 마법을 행사했다. 무영창의 마법이다.

낭패였다. 이런 마법사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다.

발자크가 손을 깨물었다.

푸슈슈슉!

이내 발자크의 신체가 녹아내렸다.

한순간 액체화되어 모든 마법으로부터 면역을 얻는 혈법.

포박에서 벗어난 직후 발자크가 빠르게 궁을 벗어났다.

“악마교단?”

저 혈법이 악마교단의 것이라는 걸 유진은 바로 알아보았다.

그것도 상당한 수준의 혈법이다.

스팟!

검의 궤적이 발자크를 노려왔다.

달아나는 발자크의 뒤를 황태자의 방문을 지키던 기사가 쫓았다.

‘빌어먹을! 이런 놈들이 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엄청나게 감각이 좋은 소드마스터급의 기사.

무영창의 마법사!

혼자서 동시에 저 둘을 상대하는 건 버겁다.

발자크는 가까스로 궁을 벗어나 도망칠 수 있었다.

“어쨌든······ 궁에 황태자는 없다. 황태자가 돌아오는 순간 죽일 수밖에.”

그렇게 발자크는 수도에 숨어 일주일을 보냈다.

그리고 보았다.

“뭐냐, 저건?”

하늘을 나는 배가 수도로 내려오는 걸.

그 배를 끄는 열 마리의 와이번을.

*

“저, 저게 뭡니까?”

“와이번 아닙니까?”

“미친! 와이번이 배를 끌고 내려오고 있습니다!”

수도를 지키는 첫 번째 성벽, 수호의 벽을 지키던 병사들이 경악하며 배와 와이번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와이번은 고산지대에 사는 비행종의 괴물이다. 숫자는 적지만 워낙에 강력해 적수가 없다고 알려진 마물 중의 마물이었다.

혼자서 어지간한 기사단 하나를 몰살시킬 정도며 간혹 민가에서 소를 물고 날아가는 와이번이 발견된 적도 있었다.

그런 와이번이 무려 열 마리.

공격을 하려고 했지만, 배를 몰고 있어서 공격하기가 애매했다.

저런 광경은 그들 모두 난생 처음보는 것이었다.

대체 누가 와이번이 끄는 배에 타고있단 말인가.

하물며 와이번은 인간이 사육하고 길들이는데 실패한 마물이다.

결국 성벽에서 마궁사들이 활시위를 겨눴다.

문앞의 병사들을 창과 검을 들고 다가오는 와이번을 경계했다.

“정지! 정지!”

“한 발자국만 더 다가오면 공격할 것이다!”

수호의 성벽을 지키는 사령관이 입술을 깨물었다.

괴물의 습격이 있은지 얼마나 지났다고.

“사람?”

“사람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곧이어 배에서 누구가가 내렸다.

“문을 열어라.”

“누구냐, 네놈은?”

못 알아본다.

······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급하게 나가느라 아무 것도 챙기질 못했다.

이대로 궁까지 날아갔다간 중간에서 공격당할 테니, 내려와서 성문을 두드린 것이다.

“라인하르트 황태자다.”

“미친새끼! 사칭을 해도 황태자 전하를 사칭해? 궁에 계시는 황태자 전하께서 와이번을 이끌고 올 리가 없지 않느냐!”

틀린 소리는 아니다.

하지만 곧이어 나를 알아본 몇몇 병사들이 귓속말을 시전했다.

“사령관님. 황태자 전하가 맞는 것 같습니다.”

“얼굴이 똑같은데요?”

“콜로세움에서 봤던 얼굴 그대롭니다.”

사령관의 표정이 굳었다.

저들은 콜로세움에서 경기를 직관한 병사들이었다.

만약 라인하르트 황태자가 맞다면, 지금 그는 황태자에게 ‘미친새끼’라며 욕을 한 것이다.

‘좆됐다.’

아무래도 좆된 것 같다.

“저, 정말 황태자 전하이십니까?”

“5초 안에 열지 않으면 혀를 뽑아버리겠다. 5, 4······.”

꿀꺽!

“무, 문을 열어라! 이 새끼들아! 당장 열란 말이다!!!”

*

수호의 성벽의 사령관과 병사들의 인도를 받으며 수도를 전진했다.

중간중간 와이번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눈에 경악이 그대로 묻어났지만, 곧 배에 있는 게 라인하르트 황태자는 걸 알아보곤 그 경악이 두 배가 되었다.

“황태자가 와이번을 길들였다!”

“백년 전에 제국이 실패한 일 아닌가?”

“와이번은 인간이 길들일 수 없다고 하던데······.”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소문이 궁까지 닿는데 몇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라인하르트 황태자가 와이번을 이끌고 나타났다고?’

1황비는 피식 웃었다.

와이번은 무슨 얼어죽을 와이번.

무지한 인간들이 착각한 것일 테다.

와이번을 길들이는 건 백 년전 제국이 총력을 기울여 진행한 숙원이었지만 처참하게 실패하고 말았다.

그것을, 난데없이 황태자가 성공했다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

“준비하거라. 이번 기회에 황태자의 기를 눌러줘야겠으니.”

“예.”

피닉스 기사단, 그리고 여타 귀족들을 대동한 채 1황비가 궁의 문앞으로 다가갔다.

황태자가 자리를 비운 지난 일주일간 귀족들은 결속했다.

1황비를 구시점으로 반격할 준비를 하였다.

제아무리 고삐 풀린 황태자라 할지라도 이만한 숫자의 귀족과 기사들을 보면 기가 죽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자신의 착각이라는 걸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황태자 전하 납시오!”

쿵! 쿵! 쿵!

저 멀리서, 거대한 동체의 와이번들이 배를 끌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배의 위에 라인하르트가 있었다.

‘미친······.’

그를 본 1황비의 눈빛이 거칠게 떨리기 시작했다.

< 비룡기사단(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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