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황제-71화 (71/146)

98.2 : 1.8

라우넬 황자의 승리를 점치는 비율이다.

콜로세움이 열리며 암암리에 도박꾼들이 판을 치기 시작했다.

예로부터 콜로세움과 도박은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관계였으므로.

하지만 도박 자체가 성립하기 힘들 정도로 압도적인 라우넬의 우세가 점쳐지고 있었다. 그나마 1.8이 나온 것도 라인하르트 황태자가 ‘정령’의 주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라우넬 황자님은 어지간한 소드마스터도 한 수 접어주는 강자라고.”

“아무리 그래도 ‘강자 서열첩’ 94위에 랭크되신 분 아닌가.”

강자 서열첩이라 불리는 책은 각국의 강자들을 나름 객관적인 기준으로 서열화하여 소개해놓은 서적이었다.

그중 100위권 안에 든다는 건 엄청난 강자라는 뜻이다.

어지간한 소드마스터나 대마법사도 실질적인 전투능력이 뒷받침되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게 강자 서열첩인 탓이다.

그곳에서 라우넬은 무려 94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100위권 내에 들어간 인물들 중에선 최연소다. 아직 소드마스터는 아니지만 피닉스 심법을 활용한 전투능력 자체는 이미 소드마스터의 수준을 넘어섰다는 평이 자자했다.

수도가 습격받을 때 ‘오크로드’를 사냥하며 그 실력을 증명하지 않았던가.

“반면에 라인하르트 황태자께선······.”

“정령의 주인이 됐으니 그래도 좀 할만하지 않을까?”

역으로 배당을 건 사람들이 희망의 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전투의 실력적인 측면에서 그간 라인하르트가 보여준 건 없었다.

허나 실력이 출중했다면 진즉에 대서특필되어 사람들에게 알려졌을 것이다.

알려지지 않았다는 건 검술실력 자체는 형편없다는 뜻이었다.

그나마의 희망이라면 ‘정령’의 주인이 되었다는 것.

하지만 역으로 배당을 걸었던 이들의 희망은 삽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오, 오러! 오러다!”

“라우넬 황자님께서 소드마스터가 되셨다!”

불과 같이 타오르는 선명한 오러!

라우넬을 얽메던 벽이 허물어졌다는 방증이다.

오러를 방출하기 전부터도 이미 소드마스터를 넘어섰다는 평이 자자했던 라우넬이었다. 그런 그가 오러를 깨달아 벽을 넘었으니, 경기는 더 보나마나였다.

“저만큼이나 선명한 오러라니. 제국의 복이시구나.”

“결판났군.”

라우넬의 표정에서도 자신감이 넘쳐났다.

반면에 라인하르트에겐 악재인 소식이었다.

“여기서 라인하르트 황태자가 패배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공개적으로 라우넬 황자님만 띄워준 꼴이니······.”

“황태자가 교체되는 경우도 있나?”

“자격론이 불거지면 가능은 하겠지. 조사단장이 되어 권력까지 손에 쥐시면 뭔들 불가능하겠나.”

황태자로 책봉됐으나 인물이 교체된 사례가 없지는 않다.

허나 그 대부분은 ‘반란’에 의해서였다.

반란이 아닐 경우 황제가 귀족들의 압박을 못이겨 현 황태자를 폐위시키고 교체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였다.

아마도 라우넬이 이기면 후자의 수순대로 흘러갈 것이다.

조사단장이라는 칼까지 쥐었으니, 라우넬을 황태자로 책봉시키려는 움직임이 더욱 격하게 일어날 게 자명했다.

“자격 없는 보물만큼이나 위험한 건 없다더니······.”

“맞지 않는 옷을 입었으니 벗어야하지 않겠나.”

“라인하르트 황태자도 불쌍하군. 천재같은 동생이 있으면 그야 미칠만도 하겠어.”

라우넬 같은 악마적인 재능의 동생이 있다면, 그야 매일 전전긍긍할만 했다. 언제 뒤쳐질지 모른다는 압박감에 미쳐버리는 것도 이해가 됐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한 법이다.

특히 황실의 사람들은 권력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기로 유명하지 않나.

모두가 라우넬 황자를 상대하는 라인하르트에게 측은지심의 눈빛을 보냈다.

*

라우넬의 선명한 오러를 보며 놀란 이들은 관객들만이 아니었다.

“경하드리옵니다.”

“라우넬 황자님께서 소드마스터라니요!”

“황실의 큰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콜로세움의 정중앙.

경기장과 관람석이 한 눈에 들어오는 지대 위에 황실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그 뒤로 제국의 주요 직책에 앉아있는 자들이 황제 데우스와 1황비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다.

각 군의 사령관들을 비롯한 귀족들의 입발림에 1황비의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다 황제폐하께서 베푼 은덕 덕분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이를 황제의 훌륭함으로 치환하며 1황비는 겸손함을 보였다. 이미 결판이 난 것이나 다를 바가 없으니 마음이 여유로워진 것이다.

반면 그녀를 바라보는 3황비 조세핀의 눈가엔 그늘이 졌다.

여유가 사라졌다.

‘망했다.’

아무래도 줄을 잘못 선 것 같다.

조사단장을 정하는데 설마 이런 공개선상에서 대결을 붙일 줄은 전혀 예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온화한 황제가 형제들끼리 설마 칼부림을 부리게 놔두겠냐며 안일하게 생각한 게 문제였다.

심지어 라우넬은 소드마스터가 됐다.

세간의 주목과 권력을 동시에 등에 업은 1황비가 자신을 어찌 대할지 벌써부터 막막해지는 조세핀이었다.

황제조차 두려워지지 않는다면 자신을 축출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꼴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현기증이 났다.

조세핀 황비는 눈을 질끈 감았다.

“라우넬이······ 벽을 넘었구려.”

황제 데우스도 고개를 주억이며 라우넬의 오러를 바라보았다.

제국 역사를 따져봐도 라우넬의 나이에 소드마스터에 오른 이는 손에 꼽았다. 천재적인 재능과 노력이 뒷받침 되어도 가능할까 말까 한 일이었다.

불세출의 천재.

저 재능은 제국의 복이다.

허나 그간 라우넬은 벽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북방에 다녀온 뒤로는 계속해서 쳐져만 있었다.

리치에게 붙잡히고, 신성군주에게 구원받은 게 자존심의 상처가 된 듯했다.

하지만 지금 모습을 보아하니 그 역시 이겨낸 것 같았다.

‘자랑스럽구나.’

스스로의 상처를 딛고 홀로 일어났다.

이 얼마나 대견한 일인가.

오러조차도 불과 같다. 크로프트의 오러와 닮았으나 그보다도 붉었다.

크로프트의 오러는 약간의 주홍빛을 띠었으나, 라우넬의 오러는 불꽃보다도 더욱 붉게 타오르는 중이었다.

세상의 중심이 되는 색깔이다.

모든 이들이 쳐다볼 수밖에 없게 만드는 황홀한 빛이었다.

모두에게 이로울 소식이나, 단 한 명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었다.

라인하르트.

콜로세움의 중심에 선 라인하르트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아마도, 라우넬의 오러에 압도되었기 때문이리라.

‘기회를 주었으나 시기가 좋지 않았다.’

데우스는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라인하르트는 변했다.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며 도화지를 칠해가는 중이었다.

어떠한 그림이 완성될지 궁금해 데우스는 기회를 주었다.

다른 황자들과 똑같은 시선에서 바라보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너무 늦었던 것 같다.

하필이면 라우넬의 각성과 맞물릴 줄이야.

크로프트에게 듣기로, 라인하르트는 실력을 감추고 있었다고 하였다.

실제로 영원궁에 쳐들어온 마물을 죽여 어느정도 실력을 입증했다.

그게 진짜 용인지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나, 다수의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상대조차 되지 못한 채 죽어있었다.

라인하르트의 실력이 정예기사들보다도 뛰어나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 실력이 소드마스터에 비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물며 소드마스터가 되기 전부터도 이미 그를 넘어섰다 칭해지는 라우넬이다.

지금은 얼마나 강할지 상상초자 되질 않았다.

황제 데우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어 청중들을 둘러보았다.

만오천명이 들어올 수 있는 콜로세움은 만석이었다.

콜로세움 바깥에도 끊임없이 행렬하고 있다.

이 대결을 보고자 수도의 모든 시민들이 모여든 것이다.

“얼마 전, 제국이 공격받았다.”

그의 목소리가 증폭되어 콜로세움 전체에 퍼져나갔다.

시끄럽던 관객들이 다들 입을 다문 채 데우스에게 집중하였다.

“짐이 즉위한 이후 감히 그 누구도 제국의 영역을 공격하지 못했거늘. 이는 천년제국에게, 짐에게 도전장을 던지는 행위이다.”

데우스가 즉위한 후 제국은 태평성대였다.

수도가 공격당한 건 특히나 처음있는 일이었다.

“시민 437명이 죽고 500명이 넘는 자가 중상을 입었다. 이로 인한 피해는 백배, 천배 되갚아 돌려줄 것인즉.”

도합 천 명에 가까운 피해.

수시간만에 진압되긴 했으나 죽은 자들을 되살릴 방법 따윈 없었다.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다 전해지는 이곳 수도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으니.

수도의 공격은 시민들의 사기마저 저하시켰다.

그것을 알기에 데우스는 초강수를 내놨다.

“금지했던 콜로세움을 다시 열겠다. 제국의 강력함과 위대함을 잊은 자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함이다.”

관중들의 눈이 커졌다.

콜로세움은 데우스가 즉위한 이후부터 금지되어왔다.

하지만 콜로세움은 시민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오락거리임과 동시에, 사기를 돋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장치였다.

“또한, 이번 대결로 제국의 칼을 정하겠다. 칼은 우리를 공격한 간악한 무리들에게 벌을 주는 용도이며, 제국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한 도구이니, 지위를 막론하고 더 단단하며 날카로운 이가 칼로 선정되는 건 당연한 일.”

더 강한 자가 제국의 칼이 된다.

칼은 제국을 더욱 위대하게 만들 것이다.

이는 떨어진 제국의 기세를 단번에 올리기 위한 방법.

데우스가 라인하르트와 라우넬을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시작하라.”

“와아아아아!!!!”

“황제폐하 만세!!!”

“와아아아아아!!!”

콜로세움을 가득채운 함성과 함께, 대결이 시작됐다.

*

관객들 사이로,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들은 가면을 쓴 채 조용히 경기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북부의 용이 맞는 것 같나?”

“글세. 아직 모르겠군.”

“용의 냄새가 나는 것 같긴 하군. 그러나 북부의 용치곤 너무 미약하다.”

그들은 용이었다.

절대로 뭉치지 않고, 서로가 마주하면 전투부터 벌인다는 용들이 사이좋게 셋이나 모여있었다.

“인간의 몸을 차지한 건가?”

“제국 황태자의 신분으로 위장한 것일 수도 있다. ‘마인드 컨트롤’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그간 황태자는 얼굴이 알려져있지 않았으니.”

인간들의 일에 관심은 없지만 용들도 제국에 대해선 알고 있었다.

특히 제국의 황태자는 외부로 얼굴을 보인 적이 없다.

북부의 용이 그 신분으로 위장하여 활동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다.

얼마 전, 발뭉은 마지막 사념을 주변에 흩뿌렸다.

【북부의 용, 제국, 위험】

세 가지 사념이 전해졌으나 뭐라고 하는 건지 해석할 수가 없었다.

북부의 용이 제국에 있으니 위험하다는 말인가?

아니면 제국이 북부의 용에게 위험하다는 말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아예 다른 뜻일 수도 있다.

궁금증을 느낀 몇몇 용들이 제국으로 향했다.

발뭉에 의해 마물들이 움직인 낌새를 눈치챘고, 발뭉의 냄새를 따라가다보니 제국의 수도와 황궁이 나왔다.

그리고 저 황태자에게서 발뭉과 다른 용의 냄새가 나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최대한 멀리서 유심히 살폈으나, 어떤 용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허나 발뭉은 아니다.

발뭉이 아니라면 그나마 유력한 건 북부의 용이었다.

“발뭉 따위는 관심없지만, 북부의 용이라면 관심이 있지.”

“봉인을 깨고 나왔다면 포섭해야할 1순위다.”

“허나 우리 ‘용혈회’에 걸맞은 자인지 확인은 해야한다.”

용혈회.

절대로 모일 수 없는 용들의 모임.

평범한 용은 들어올 수조차 없는 곳이며, 오랜 과거로부터 끊임없이 ‘신’을 배출해온 명망있는 집단이었다.

그러나 자격 없는 용들은 그 존재조차 모른다.

자격이 있는 용들에게만 비밀리에 접근하기 때문이다.

열 개의 위업을 달성한 북부의 용이라면, 자격이 있었다.

그러나 인간에게 봉인된 뒤 그 자격을 박탈당했다.

만약 봉인을 깨고 활동을 시작한 것이라면 지켜볼 가치가 있는 것이다.

발뭉?

나름 봐줄만한 놈이지만 용혈회에 들기엔 너무 약하다.

위업을 많이 달성하면 강해지는 건 사실이지만, 꼭 위업의 달성률만이 용의 무력을 판단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되지는 못했다.

발뭉은 고작해야 해츨링이었다. 성룡도 되지 못한 어린놈이다.

반면 북부의 용이라면 성룡이었다.

성룡과 에이션트 사이의 급이나, 북부의 용은 천 년 전 열 번째 위업으로 에이션트 급의 용을 이미 살해한 전적이 있었다.

에이션트 급의 용을 살해한 북부의 용이 인간에게 당했다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다시 등장했으니 반드시 확인은 해야했다.

‘북부의 용치곤 냄새가 너무 미약하군. 고의로 숨긴 건가? 아니면······.’

그러나 의문이었다.

저 황태자가 북부의 용이라면 냄새가 너무 미약하다.

마나의 향이 짙지가 않았다. 성룡의 수준이라기엔 부족하다.

물론 고의적으로 숨긴 것일 수도 있다.

‘유희 중인가? 에픽화 된 인간의 몸을 차지한 것이라면 냄새가 얕아질 수 있지.’

용들은 십이주신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숨긴 채 살아간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 에픽화 된 인간의 몸을 차지하는 용들도 있었다.

용들은 그것을 ‘유희’라고 불렀다.

본체를 숨겨둔 채 인간의 몸으로 세상을 유희하는 것이다.

그러는 용들이 많은 건 아니지만 없는 것도 아니었다.

북부의 용에 대해선 알려진 게 거의 없으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 순간이었다.

쿠르릉!

바닥이 울렸다.

하늘이 떨렸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놀란 것은 용들이었다.

“이건?”

“··· 마왕의 발걸음이라. 북부의 용이 맞나보군.”

용들이 침음을 흘렸다.

순식간에 편견이 깨져버렸다.

라인하르트가 발을 구른 순간, 모든 마나가 일시적으로 힘을 잃었다.

방전된 것이다.

라우넬의 오러가 한순간 바람에 휘날리듯 사라졌다.

······ 저 발걸음은, 북부의 용을 봉인했다는 마왕의 주특기였다.

마왕의 발걸음이라 불리며, 단번에 반경의 모든 마나가 순간적으로 방전되게 만드는 특별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 주특기마저 북부의 용이 빼앗은 모양이다.

“하마터면 변신이 풀릴 뻔했군.”

“아아··· 조금 더 지켜보도록 하지.”

“재밌는 녀석이다. 인간의 기술마저 빼앗다니.”

본능적으로 본체가 튀어나올 뻔했다.

마나를 지배하는 용들에게 마나의 지배력을 빼앗아가는 마왕의 발걸음.

북부의 용이 그마저도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면, 용혈회에 들어올 자격이 있다.

용들은 더욱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대결을 지켜보았다.

< 착각(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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