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수도를 공격한 마물들을 뒤에서 조종하는 자가 있다는 소문이.
암중의 세력이 제국을 공격하고자 결계마저 해체시켰다는 이야기는 순식간에 제국 전역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수도가 공격받은 건 데우스 황제께서 즉위하시고 처음 있는 일 아닌가?”
“어디 수도만 공격당했겠나. 궁까지 타격을 입었다는군.”
“아무리 성왕이라 불리는 현황제라지만 이번만큼은 쉬이 넘어가지 않을 것 같던데.”
“내 말이. 뭐, 어차피 북방의 야만인들이 저지른 짓 아니겠나?”
“휴전협상도 지지부진하다는데 뒤로 이런 짓을?”
“괘씸한 야만인 놈들!”
물론 그 범인이 내심 ‘북방의 야만인’들일 것이라고 사람들은 지레짐작하고 있었다.
로카리 산맥의 마물들을 암중 조종할 수 있는 건 그들밖에 없었다.
겉으로는 휴전협상을 하는 척, 뒤로는 이런 수작질을 부리는 것이다.
평화의 수호자라 불리는 데우스가 무슨 판단을 내릴지 초유의 관심이 집중됐다.
더불어 주변국들은 바짝 엎드렸다.
자칫 잘못 엮였다간 먼지처럼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누가 칼을 쥘지도 중요하지.”
“칼? 무슨 칼?”
“이 사람아. 감히 황실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을 가했으니, 조사단이 꾸려지지 않겠나? 철저하게 색출하고 관련된 자들은 죄다 목을 베어버려야지.”
“성왕께서 그러시겠나?”
“그러니까 다른 사람에게 칼을 쥐어주겠지.”
“그럼 뭐 보나마나 라우넬 황자님이겠지.”
“아니야. 내가 듣기론 후보에 라인하르트 황태자도 이름이 올랐다는군.”
“그럼 피바람이 부는 거 아닌가?”
황제가 누구에게 칼을 쥐어주느냐에 따라서 부는 바람의 세기가 달라질 것이다.
라우넬 황자는 원리원칙에 따라서 처리하겠지만, 라인하르트 황태자에게 칼을 쥐어주면 정말로 피바람이 불 수도 있었다.
수도는 연일 습격에 대한 이야기로 시끄러웠다.
모든 신문이 황실의 이야기로 도배되고 있었다.
― 마물의 습격. 배후는 누구? 『하나일보』
― 황실, 칼을 빼들다. 『중앙지』
― 로드 슬레이어의 탄생. 『피닉스 신문』
― 카잔 황자전하와 마법병단의 대활약! 『수호의 기자들』
······.
···.
*
세 명 중 한 명을 조사단장으로 임명한다.
하지만 쉽게 정할 수도 없는 사안이다.
데우스의 독단으로 처리한들 황실의 힘만 분산될 것이었다.
그래서 필요한 게 ‘합의’였다.
누가 조사단장이 되더라도 힘을 실어주겠다는 합의.
정확히는 황비들의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셋 중에 둘을 정하여 내게 알려주시오. 황비들의 의견을 참고하겠소.”
황실의 힘을 합쳐 이 난관을 타개해야할 때였다.
라인하르트, 라우넬, 카잔.
그중 둘을 골라 더 적합한 이를 조사단장으로 임명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런 데우스의 발언에 움직이는 건 황비들뿐만이 아니었다.
귀족들은 더욱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황비님. 라인하르트 황태자가 조사단장으로 임명되는 것만은 반드시 막아야합니다.”
1황비의 눈가에 그늘이 졌다.
황제 데우스는 조사단장을 임명해 철저하게 조사하겠다고 발표했다. 관련 된 모든 자들을 발본색원하여 본보기를 보이겠다는 것이다.
그 단장의 후보로 라우넬, 카잔과 라인하르트가 지목되었다.
귀족들이 몰려와 1황비에게 시위하듯 이야기하고 있었다.
“황태자가 칼을 쥐면 피바람이 불겁니다.”
“이번 일은 그냥 자연재해 같은 겁니다. 자연재해가 일어난 죄를 인간에게 묻겠다는 꼴 아닙니까?”
“지금 재판 중인 귀족들의 입지도 더욱 좁아질 겁니다. 재판장들이 황태자의 눈치를 보겠지요. 아니될 일입니다.”
귀족들이 몰려와서 항의를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특급 죄수동과 관련되어 현재 구류, 재판 중인 귀족들 때문이다.
그 숫자가 한, 둘이 아니었다. 오랜 폐단으로 엮인 귀족만 50명이 넘었다. 특히 그들 중 대부분이 1황비에게 속한 귀족들이었다.
재판을 진행하는 재판장들 역시 귀족이다.
하여, 귀족끼리는 어느정도 편의를 봐주게 되어있었다.
궁 내에서 별다른 입지도 없는 라인하르트 황태자가 지시한들 눈가리고 아웅하면 그만인 것이다. 적당한 처벌만 주고 치워버리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라인하르트가 조사단장으로 임명되는 순간 모든 판도는 바뀐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1황비가 입을 열었다.
“걱정마세요. 황제폐하께서 생각이 있으시다면 황태자를 조사단장으로 임명하시진 않을 겁니다.”
적임자는 라우넬밖에 없었다.
제아무리 라인하르트가 변했다고 한들 아무런 지지기반도 없는 그에게 수사권을 쥐어줄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 불안감은 뭐란 말인가.
‘다른 황비들과도 이야기를 해봐야겠구나.’
황비들이 뜻을 합쳐 움직이면, 황제도 라우넬을 임명할 수밖에 없을 터.
1황비는 황비들의 모임을 소집했다.
*
네 명의 황비가 티타임을 가졌다.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는 건 오랜만이로군요.”
1황비가 입을 열었다.
황비들이 회동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행사다.
하지만 모일 수밖에 없었다.
“이번만큼은 그대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라우넬을 조사단장의 자리에 앉혀야만 이번 일이 평탄하게 지나가지 않겠습니까?”
“······ 이번만큼은, 동의하지요.”
2황비가 그녀의 의견을 지지했다.
2황자인 카잔은 조사단장의 성격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라우넬이라면 적어도 황실에 피바람을 불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조세핀 황비, 리아 황비. 제 의견에 동의하십니까?”
3황비 조세핀과 4황비 리아의 동의만 얻으면 이를 빌미로 라우넬을 강력하게 밀 수 있다.
하지만 둘의 반응이 영 싱거웠다.
특히 조세핀 황비가 적대적이었다.
“카르몬과 리온 황자가 어려서 이번 후보에서는 제외된 걸로 압니다만, 그것이 제가 라우넬 황자를 밀어줘야하는 것에 대한 이유는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만······?”
조세핀 황비는 다른 황비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특히 자신을 ‘시골출신’이라며 무시하는 1황비와 2황비는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기도 싫을만큼 질색이었다.
1황비의 표정이 굳었다.
“그럼 황태자를 지지하겠다는 겁니까?”
“왜요, 그러면 안 됩니까?”
“그의 광증이 얼마나 심한지 정말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까?”
“글쎄요, 그것도 그냥 소문 아닙니까? 제가 보았던 황태자 전하는 무척이나 정상적으로 보였습니다.”
1황비의 자식인 라우넬을 밀 바엔 조세핀의 입장에선 라인하르트가 조사단장이 되는 게 나았다.
게다가 라인하르트는 그녀의 자식인 카르몬 황자를 폭주에서 구해준 전적도 있었다.
달갑지는 않아도 생명의 은인인 셈이니, 거들먹거리는 1황비의 자식인 라우넬보다는 백배 천배 나으리라.
“늦게 궁에 들어와,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궁에 오래 계셔서 참으로 좋으시겠습니다?”
“······ 조세핀 황비. 내게 하는 소리입니까?”
쾅!
조세핀 황비가 자리를 벅차고 일어났다.
“하! 그게 동의를 구하는 사람이 하는 태도입니까? 최소한의 성의조차 없이 강요를 할 생각이라면 저는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할 말을 쏘아낸 조세핀 황비가 자리를 떠났다.
원래부터 사이가 좋지는 않았지만 이토록 싸가지가 없을 줄은.
‘천한 것이······.’
1황비는 화를 억눌렀다.
나이도 어리고, 출신조차 천하니 황비라고 하여 같은 수준인 줄 아는 것 같았다.
머리가 나빠서 대세를 읽을 줄 모르기 때문이리라.
라우넬이 조사단장에 임명되면, 제국의 가장 강력한 칼을 쥐는 셈이다.
1황비의 위세 역시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 가서 후회한들 늦는다는 걸 조세핀 황비는 모르고 있는 듯싶었다.
“······ 리아 황비. 그대는 부디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랍니다.”
화를 죽인 1황비가 4황비인 리아 황비에게 말했다.
리아 황비가 되물었다.
“라우넬 황자 전하와 라인하르트 황태자 전하 중에 선택하라는 말입니까?”
“예. 그렇게 되겠지요.”
“제가 누군가를 선택해서 얻을 이득이 있습니까?”
“마물의 준동과 습격이 북부인들에 의해서라는 소문이 있다는 건 리아 황비도 알고 있을 겁니다.”
“그게 저랑 무슨 상관입니까? 제 조상이 북부인이었다고는 하나 까마득한 천 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리아 황비가 입술을 깨물었다.
짜증날 정도의 편견이었다.
천 년이면 북부인의 피가 희석되기엔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시간이다.
북부인의 피도 거의 사라져, 이제는 그들과 외관상의 차이가 없음에도.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직 그녀와 그녀의 가문을 ‘북부의 이방인’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정작 북부에선 ‘배신자’ 취급을 당한다는 게 더욱 웃기는 사실이었다.
‘저들은 내가 죽을 위기에 처하면 쳐다보기나 할까?’
쳐다보더라도 그저 비웃지 않을까. 깔깔대며 박장대소할지도 모른다.
영원궁이 용에게 습격당했을 때, 움직인 건 그녀뿐이었다.
이상한 낌새가 나고 있음에도 영원궁으로 움직이는 기사나 병사들은 없었다.
라인하르트가 아니었다면 리온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그는 낌새를 눈치채고, 직접 달려와 리온을 구했다.
양자택일을 해야한다면 적어도 눈앞의 황비들보단 라인하르트가 더 나았다.
아무리 라우넬 황자가 청렴결백하다 하더라도 1황비의 영향에서부터 자유로울 순 없을 테니.
“죄송합니다만, 이번 이야기에서 저는 빼주십시오.”
정중하게 거절한 뒤 리아 황비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진 풍파없이 조용하게 사는 게 그녀의 꿈이었다.
리온만 잘 커준다면 더할나위가 없었다.
이로써 3황비와 4황비가 모두 떠났다. 정확히 2:2로 나뉜 것이다.
1황비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결과였다.
‘라인하르트 황태자가 저 둘의 마음을 돌렸구나.’
아무리 멍청해도 공과 사는 구분할 줄 알아야만 한다.
그럼에도 거절했다는 건 저 둘의 마음에 라인하르트가 어느정도 자리잡았기 때문이리라.
3황비와 4황비 모두 황실에서 큰 영향력이 없다지만 가문 자체의 저력은 결코 작지 않았다.
저 둘이 라인하르트를 지지하면 그림이 이상해질 수도 있는 노릇이다.
1황비가 주먹을 움켜쥐며 몸을 떨었다.
*
조세핀 황비는 자리를 떠나며 후회했다.
‘망했다.’
워낙 화가 나서 지르긴 했는데, 생각해보니 라우넬 황자가 조사단장으로 임명됐다간 그대로 나락으로 꺼질 수도 있는 탓이다.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잘못했다고 빌까?
조세핀 황비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바엔 혀를 깨물고 죽고 말지.
궁으로 돌아가자, 짐을 옮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처음 보는 자들이 궁 안을 출입하고 있는 것이다.
유일하게 눈에 익은 이는 이자르였다.
이사벨라의 형제이며, 베르사유 백작가의 후계자.
“지금 뭘 하고 있는 게냐?”
“아, 황비님. 황태자 전하께서 보내시는 선물입니다.”
“뭐?”
조세핀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누구의 선물이라고?
‘안에 독이나 괴물이 들어있는 거 아니야?’
커다란 박스.
박스 안에 무엇이 들어있을지 모른다.
“열어보거라. 내용물을 확인해야겠다.”
“예. 열거라.”
이자르의 말에 따라 인부들이 상자를 열었다.
내용물을 확인한 조세핀 황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 이건··· 그림 아니냐? 도자기하고?”
“일전에 궁에서 부서트린 것에 대한 사죄라고 하시더군요.”
시연식 이후 카르몬 황자의 폭주를 치유하고자 라인하르트가 황금사자궁에 들어왔다.
그 과정에서 도자기와 그림이 파손된 적이 있었다.
설마 그게 미안해서 보내온 것이란 말인가?
“가만. 이, 이 도자기는······! 아틀뤼엥의 역작 ‘사자의 아침’ 아니냐?”
“정말로 구하기 힘들었습니다.”
“이 그림도! ‘생존과 파괴’! 돈으로도 못 구하는 작품들을 어찌?”
“정말 정말 힘들었습니다.”
이자르의 말마따나 구하는 게 거의 불가능한 작품들이다.
라인하르트가 부순 도자기와 그림보다 몇 배는 귀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 도자기와 그림의 소유자들은 돈이 궁한 자들이 아니었다.
하여 조세핀도 여러번 시도한 끝에 구하는 걸 포기했건만.
“이, 이걸 라인하르트 황태자께서······ 제게 보냈다는 겁니까?”
조세핀 황비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예. 부디 편히 받아주시길.”
명령을 한 건 라인하르트였지마, 직접 작품을 구한 건 이자르의 수완이었다.
조세핀 황비는 현기증이 나서 이마를 집었다.
‘라인하르트 황태자에게 이런 안목이 있다니.’
예술을 안다.
게다가 미안하다며 직접 보내온 물건들이었다.
라인하르트는 미치광이가 아니다.
‘그래. 라우넬 황자보다는 라인하르트 황태자가 낫다.’
이 물건들을 정말 미안해서 주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라인하르트는 성의라도 보일 줄 안다.
누구와는 다르게 말이다.
조세핀 황비는 마음을 굳혔다.
*
마물의 수도 습격, 발뭉의 황궁 침입.
결과적으로 이건 기회였다.
조사단장으로 임명되면 그만한 권력을 얻는다.
황실의 세를 등에 업으면 귀족들의 반발을 누르고 입지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
‘황실의 권력기반을 되돌려놓을 기회다.’
더 나아가 제국을 귀족의 것이 아니라 황실의 것으로 되돌려놓을 기회였다.
특히 카를로스 대공의 측근들을 잘라낼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였다.
‘황궁마법사 제네릭을 시작으로 카를로스 대공의 모든 팔과 다리를 자른다.’
궁의 곳곳에 카를로스 대공의 숨겨진 팔들이 존재한다.
귀족들도 마찬가지다.
황비에게 선을 대는 척 하고 있지만, 실체는 카를로스 대공에게 충성하는 귀족들이 더욱 많았다.
카를로스 대공이 북방과의 휴전협상으로 정신을 놓고 있을 지금이 아니면 이런 기회는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명분도 좋다. 황제 데우스의 의지도 확고했다.
‘양보는 못하겠군.’
데우스는 황비들의 의견도 수렴하겠다고 했다.
황비들은 아마도 나와 라우넬을 놓고서 선택할 것이다.
1황비와 2황비는 라우넬을 밀겠지만, 3황비와 4황비는 나를 선택할 여지가 있었다.
“황비들의 의견이 첨예하군.”
황가의 사람들이 한데 모였다.
데우스는 황비들의 의견을 수렴하곤 턱을 쓸었다.
정확히 2:2였다.
3황비 조세핀과 4황비 리아가 조사단장으로 라우넬이 아닌 라인하르트를 선택한 것이다.
“라인하르트, 그리고 라우넬.”
황좌에 앉은 데우스는 나와 라우넬을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제국이 공격당했다. 이런 때일수록 황실이 분열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하여.”
데우스가 재차 말했다.
“실력으로 증명해라. 둘 중 더 뛰어난 사람이 조사단장으로 임명될 것이다.”
······ 실력으로 증명하라니.
설마 치고받고 싸우기라도 하라는 말인가?
< 착각(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