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황제-67화 (67/146)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리온이 나를 지목하자 분위기가 묘하게 돌아갔다.

“리온. 라인하르트 전하가 왜 조상님이라는 거니? 그리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4황비가 재차 물었다.

라인하르트를 형이라고 부르는 거라면 모를까 조상님이라니.

애당초 4황자와 라인하르트는 접점이 없었다.

리온이 태어났을 때부터 라인하르트는 이미 궁에 칩거한 상태였다.

그러니 부딪힐 일이 없었고, 라인하르트의 광증에 대해 알고 있었기에 굳이 마주치게 하지도 않았다.

리온과 라인하르트가 만난 횟수는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저 용이 공격해왔어요.”

“용이라고?”

4황비가 시선을 돌렸다.

몸만 남은 괴물의 시체.

용하면 떠오르는 거대한 외관은 아니지만, 분명한 건 이 사건의 원흉이 바로 저 용이라는 것이다.

무너진 궁.

널브러진 기사의 시체들.

대참사의 현장이었다.

4황비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벌어진 일.

수도를 공격하던 괴물들이 전부가 아니었다. 설마 궁 안쪽까지 침입할 줄이야.

리온이 계속해서 말했다.

“조상님께서 지켜주지 않았다면 얼음이도 저도 죽었을 거예요.”

중간과정이 상당히 생략된 말이었다.

여전히 ‘왜 라인하르트를 조상님이라고 부르는가’에 대한 답은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라인하르트가 리온을 살렸다는 것이다.

‘라인하르트가 리온을?’

4황비는 다른 황비들과 달리 딱히 라인하르트에 대해 악감정은 없었다.

아예 관심이 없었다는 표현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

4황비 자체가 황실의 입장에선 ‘굴러온 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이해가 안 된다.

아무리 미쳤다고 해도 라인하르트는 황실 황가의 적통이었다.

반면 자신과 리온은 과거 ‘북부의 마왕’이라 불렸던 가프의 후손이다.

서로가 죽든 말든 관심 자체를 갖지 않았건만 불현듯 나타나 리온을 구했다. 기사들도, 마법사들도 어쩌지 못한 괴물로부터.

“감사합니다, 라인하르트 전하. 리온을 잃었다면 어찌 됐을지······ 생각만으로도 끔찍합니다.”

“리온부터 챙기시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4황비와는 굉장히 어색한 사이였다.

껄끄럽다고 해야할까.

과거에도 네 명의 황비들 중 유일하게 내게 공격적이지 않았던 여자다.

그렇다고 호의적인 것도 아니었다.

철저한 무관심.

그녀는 처음부터 황태자의 자리를 취하는데 관심이 없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카를로스 대공쪽의 사람이었다.

만약 내게 문제가 생기면 나를 대신할 존재로 카를로스 대공은 리온을 점찍고 있었다.

그녀와 리온이 내 자리에 관심이 없더라도, 카를로스 대공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다툼이 생길 수밖에 없는 위치인 것이다.

―왜 제국은 우리를 가만히 놔두질 않는 것입니까?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아가고 싶다는 게 그리도 큰 죄인지요?

북부의 피를 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오랜시간 그녀의 가문은 제국으로부터 핍박받았다.

데우스에게도 팔려오듯 시집왔으니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좋든 싫든 제국의 중앙정계에 들어온 이상 바람 잘 날이 없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적응하지 못해도 도망칠 수 없다.

죽어야만, 죽어서도 나갈 수 없는 게 이곳이었으니.

‘리온의 신력은 위험했지.’

리온은 신력을 타고났다. 가프의 피를 진하게 잇고 있었다.

하여 과거의 나로선 죽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와 리온이 내 자리에 별 관심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주변에서 가만히 놔두질 않았기에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더불어 리온이 지닌 신력은 나이를 먹을수록 강력해졌다.

괴력을 넘어서는 가공할 힘. 앞으로 2년만 지나면 강철을 접고 산을 부술 것이었다.

성인이 되면 얼마나 강해질지 상상조차 힘들다.

그래서 죽였다. 4황비와 리온을.

‘벌써 다 나았군.’

리온은 멀쩡했다. 언제 아팠냐는 듯 활기를 띠고 있었다.

발뭉에게 차여 다쳤던 상처가 벌써 말끔해졌다.

인간을 초월한 신체능력.

마왕 가프의 환생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리온을 외면한 채 아렐에게 말했다.

“아렐. 남아서 상황을 정리하거라.”

“예.”

이 상황을 설명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영원궁에서 일어난 폭발 탓에 기사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모든 상황이 종결된 것은 아니었다.

‘결계석이 결국 깨졌군.’

결계가 깨졌다.

그와 동시에 비행형 마물들이 하나, 둘 궁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물론 드러내는 족족 마궁사들에게 사살당하고는 있다지만 혹시나 발뭉처럼 미친척하고 달려드는 용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자리를 이동한 나는 황룡궁의 꼭대기로 올라갔다.

그리고 성벽의 너머, 불길이 치솟는 수도를 바라보며 겨울의 활을 꺼내들었다.

*

1황자 라우넬은 기사들을 대동한 채 수도의 첫 번째 성벽으로 향했다.

도착했을 땐 거대한 마물들이 수호의 성벽을 부수며 민가를 공격하고 있었다.

‘로드급의 마물이 저놈인가?’

라우넬은 단번에 마물의 우두머리를 알아보았다.

오크지만 평범한 오크보다 족히 세 배는 큰 거구.

오크 로드가 분명하다.

아마도 로카리 영지를 몰살시킨 게 저놈인 듯싶었다.

로드급의 마물이 출현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나타나면 나라를 멸망시킬 정도로 빠르게 세를 확장시키는 게 저들이다.

로드급의 마물은 소드마스터도 상대하기 쉽지 않은 괴물이라고 들었다.

실제로 본 것은 라우넬도 처음이다.

하여, 라우넬은 검을 들었다.

놈을 죽이면 다른 마물들도 구심점을 잃고 흩어질 것이다.

로드급의 마물을 죽여 ‘로드 슬레이어’의 칭호를 가질 기회이기도 하였다.

‘지금이라면.’

라우넬의 전신으로 불길이 치솟았다.

키아아아악!

거대한 피닉스의 형상이 그의 위로 떠올라 울부짖었다.

연공법을 대성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

리치에게 몸을 빼앗긴 이후 라우넬은 자신의 잠재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이 현상은 그때의 북방에서의 기억이 단순한 ‘꿈’이나 ‘착각’이 아님을 말해주는 증거였다.

‘소드마스터를 넘어선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소드마스터의 벽을 넘고, 그보다도 더 높이 올라가 완성되리라.

라우넬은 피닉스와 함께 오크로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강해, 보이는, 인간이군.”

오크로드가 미소와 함께 자신의 몸통만한 도끼를 휘둘렀다.

콰아아아아아앙!

저택이 단번에 박살날 정도의 위력.

하물며 거구의 괴물답지 않게 빠르다.

라우넬은 틈을 노려 오크로드의 옆구리를 베었다.

‘가죽이······!’

베었다고 생각했으나, 작은 생체기조차 나지 않았다.

엄청난 방어력이다. 기사와 마법사들이 고전하는 이유를 알겠다.

하지만 아무리 방어력이 높다고 해도 라우넬은 강림상태였다. 잠재력을 격발시켜 단순 위력만 따지자면 소드마스터조차 넘어서는.

키아아아악!

피닉스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어댔다.

라우넬은 이를 악물었다.

자신의 마나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

피닉스가 자신의 의지에 따르지 않는다.

위력 자체는 올라갔지만 그것을 컨트롤하지 못하면 모두 부질없는 짓이다.

“뭐, 냐. 장난이냐?”

간지럽다는 듯 오크로드가 콧방귀를 뀌었다.

느껴지는 힘 자체는 다른 인간들보다 우월했건만, 막상 검이 부딪히자 웬만한 기사보다도 못하다.

“실망, 이군.”

오크로드가 혀를 차며 도끼를 휘둘렀다.

이후의 전투는 그야말로 일방적이었다.

‘대체 왜!’

일방적으로 두드려맞던 라우넬은 지금의 상태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히 힘은 넘치는데 그 힘을 사용할 수가 없다.

궁에서 깨어난 이후 계속되는 현상이었다. 마치 마나가 따로 노는 느낌. 전투에 나서면 달라지리라 생각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물론 짐작가는 건 있었다.

리치에 대한 공포······.

아마도 그 때문이리라.

아직, 라우넬은 북방에 갇혀있었다.

몸은 이곳에 있지만 그의 정신은 리치의 감옥에 머문 채였다.

그때 느낀 악몽과 무력감을 아직도 떨쳐내지 못한 것이다.

“이제, 죽어라.”

오크로드가 도끼를 들었다.

그 순간.

퍼엉!

오크로드가, 터졌다.

아무런 기척도 없이 갑작스럽게 폭발했다.

“이게, 뭐냐?”

오크로드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가슴팍을 내려다봤다.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을 확인한 오크로드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쿵!

지면을 들썩이며 쓰러졌다.

어이가 없는 건 라우넬도 마찬가지였다.

화살이 날아온 것도 아니다. 그냥 갑작스럽게 폭발이 일어나며 오크로드의 가슴팍이 꿰뚫렸다.

웬만한 마법에도 저항력을 갖고 있는 두꺼운 피부다.

그것을 이토록 깔끔하게 뚫어버리다니.

하지만 주변을 둘러봐도, 날아온 방향을 살펴봐도 보이는 건 없었다.

“보아라! 라우넬 황자님께서 오크로드를 쓰러트리셨다!”

“라우넬 황자님 만세!”

“마물들을 몰아내라!”

구심점을 잃은 마물들이 당황하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단 한 마리도 살아서 도망간 마물은 없었다.

순식간에 상황을 정리되자, 기사와 병사들이 오크로드를 물리친 라우넬을 칭송하였다.

“로드 슬레이어!”

“로드 슬레이어!!”

착각이다.

저들은 제대로 착각하고 있었다.

“······ 내가 죽인 게 아니다.”

라우넬이 사실대로 말했으나, 민중은 전혀 다르게 받아들였다.

“겸손까지 갖추셨다!”

“역시 라우넬 황자님!”

“제국의 희망이라 불리는 분 다운 인품이십니다!”

*

“······ 이 시체가 정말 ‘용’이란 말인가?”

황제 데우스의 물음에 모두가 침묵했다.

이미 몇 번이나 확인한 사실이다.

유일한 생존자인 리온은 저 시체를 용이라고 말했다.

신화나 전설로 전해지는 거대한 사족보행의 괴물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처음보는 유형의 형태였다.

특히 비늘.

정말 용의 비늘이라 칭할 정도로 단단했다.

하지만 용의 시체보다도 더욱 중요한 건 용의 의도였다.

용이 마물을 일으켜 수도를 공격하고, 궁에 침입하여 결계석을 부쉈다.

“그대들의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말해보라.”

데우스가 묻자 지켜보던 대신들과 사령관들이 입을 열었다.

“용치고는 너무 작지 않습니까?”

“게다가 라인하르트 전하께서 용을 사냥하신다는 게······ 크흠!”

“그보단 대대적인 침공의 징후가 아닐는지요?”

아무리 봐도 용은 아닌 것 같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인 건 확실했다.

그 장본인을 라인하르트가 처단한 것도 사실이니.

데우스는 이마를 짚었다.

제국의 수도가 공격당했다.

마물이 황실까지 넘보며 결계석을 부쉈다.

의도가 있다고밖엔 보여지지 않는다.

‘마물을 뒤에서 조종하는 자가 있다?’

천년 제국이다.

상대는 대륙의 패자인 제국을 공격할 정도로 대담함을 지니고 있었다.

결계석이 깨졌으니, 정말로 쳐들어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궁의 경계 수준을 더욱 높여야만 한다.

제아무리 성왕이라 불리는 데우스라도 이번 건은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이번 일은 철저하게 조사할 것이다. 또한 이 습격과 티끌만큼이라도 관계되어 있다면 그 뿌리까지 색출하여 멸할 터.”

“그렇다면 조사를 누구에게 맡기실 생각이시옵니까?”

모두의 시선이 황제의 입으로 모여들었다.

결코 벌어져선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관계되어 있다면 삼족을 멸해도 부족함이 없을만큼 파장이 큰 일이었다.

하지만 황제가 직접 조사할 수는 없다.

황제를 대신해 이번 일을 철저하게 조사할 인물이 필요하다.

황제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사건의 온상을 파헤치고 관련 된 모든 것을 엄벌에 처할 수 있는 강단이 있는 사람이어야만 했다.

조사를 진행하는 자는 그만한 권력 또한 갖게 될 터.

“라우넬과 카잔을 불러오거라.”

가장 믿을 수 있는 두 아들.

황권을 온전히 실어줄 수 있는 그 이름을 호출했다.

그러다가, 이내 생각이 바뀐 듯 데우스가 마저 말했다.

“그리고··· 라인하르트도 들라 하라.”

< 착각(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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