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황제-65화 (65/146)

‘이제는 안 뚫릴 거다.’

황궁마법사 제네릭은 궁의 결계를 손보며 자신했다.

두 번이나 결계가 뚫리며 그의 자격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제네릭은 더욱 완벽하게 결계를 보완할 수 있었다.

‘취약점이 있을 줄이야.’

결계의 취약점.

몇몇 부위의 마나 이음새에서 취약 부분이 발견됐다.

하지만 모두 이전보다 더욱 단단하게 결속시켜 놓았으니 다시 뚫릴 일은 없을 것이다.

이 결계의 보완, 보수를 위해 동원된 마법사만 백에 달했다.

“제네릭님. 더 이상 손 볼 곳이 없을 정도로 완벽합니다.”

“마왕이나 용이 쳐들어 와도 결계를 뚫지는 못할 겁니다.”

제네릭의 제자들이 완성된 결계를 보며 앞다퉈 칭찬했다.

다른 마탑들에서 지원한 고서클의 마법사들과 그의 제자들이 합심해 밤잠을 설쳐가며 지어낸 결과물이었다.

들어간 인적자원만 봐도 놀라울 따름이지만 물적자원은 상상을 초월한다. 마나를 지속하기 위한 최상급의 마정석만 여타 다른 나라의 몇 년 치 예산만큼 들어갔다.

마왕이나 용?

그들의 할아버지가 와도 결계는 못 뚠다.

‘두 번이나 수모를 당했으나, 세 번은 없다.’

빠드득, 이를 갈았다.

황궁마법사가 된 뒤 이런 수모는 처음이었다.

처음 정령이 뚫고 들어왔을 땐 ‘신비’니까 그러려니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두 번 째 ‘신성군주’에게 뚫리고선 그의 자격에 대한 논란이 점화됐다.

그러나 결계에 관해선 제네릭이 최고다. 그를 대처할 수 있는 인물이 있을 턱이 없다.

‘약점을 정확히 파고들었더구나. 망할 신성군주놈.’

자신도 몰랐던 약점을 어떻게 파고들었을까.

하지만 덕분에 결계의 취약점을 완벽하게 파악했다.

제네릭이 흐뭇하게 결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흐뭇한 표정은 삽시간에 경악으로 변했다.

“저게······ 무엇이냐?”

“수도가 왜 불타고 있죠?”

부우우우우-!

수도의 성벽 곳곳에 세워진 감시탑에서 위험을 알리는 나팔이 분다.제국의 수도가 공격받고 있었다.

벽이 허물어지고 도시가 불탄다.

궁에서 보일 정도의 거대한 불길이 도시를 좀먹는 중이었다.

이토록 갑작스러운 공격이라니.

불가능한 일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제국의 수도를 공격한다고?

설령 한다손 치더라도 수도에 닿기 전에 알았어야만 했다.

제네릭은 수도를 공격한 이들의 정체를 눈치채곤 소리쳤다.

“마물······ 마물들이 쳐들어왔구나!”

*

“로카리 산맥의 마물들이 대거 몰려왔다?”

황제 데우스가 보고를 듣곤 인상을 찌푸렸다.

제국과 인접한 로카리 산맥은 마물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땅이다.

북방과 제국을 나누는 경계.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미지의 세계다.

마물들은 끊임없이 번식했지만 산을 내려오지는 않았다.

로카리 산맥은 풍부한 먹거리 역시 제공했기에, 굳이 인간과 영역을 다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예, 폐하. 추정되는 숫자는 오천에 달하며 마법을 사용하는 마물도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상한 일이로군. 근 백년간 산맥에서 마물들이 내려온 경우는 없을진대?”

“얼마 전 레드후드 도적단이 증발한 것과 연관이 있는 건 아닐는지요.”

십여일 전 레드후드 도적단이 증발했다.

산의 정상부분은 마치 폭격을 맞은 것처럼 황폐하기 그지없었다.

그 일로 인해 마물들이 자극을 받았고, 수도를 공격하는 건 아니겠느냐는 의견이었다.

데우스가 질책하듯 말했다.

“로카리 영지의 영주는 뭘 하고 있었지?”

로카리 산맥의 마물들을 견제코자 로카리 영주는 많은 군사권을 보장받았다.

가장 먼저 알고 막았어야 할 영지에선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기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로카리 영지는 어젯밤에 전멸했다고 합니다.”

“국경수호의 의무를 갖고 있는 로카리 영지가 전멸했다? 고작 마물들 따위에게?”

아무리 평화에 찌든 시대라지만 국경을 지킬 의무가 있는 곳이다.

특히 로카리 영주는 자기관리가 철저하기로 유명했다.

그가 훈련시키는 병사와 기사들은 충분히 정예라 불릴만 하였건만.

그런 곳이 고작 반나절만에 전멸했다?

어림잡아 오천은 넘겼을 숫자다. 성을 두르고 수비만 해도 족히 며칠은 버텨야 정상이었다. 그 시간이면 지원군이 출발하고도 남았을 터.

“생존자의 말에 따르면 로드 급의 괴물에 의해 전멸했다고······.”

보고하는 기사의 말이 가관이었다.

로드 급의 괴물.

말 그대로 마물을 군집시킬 수 있는 괴물이다.

로드 급의 괴물은 반드시 멸해야만 했다.

가만히 놔두면 계속해서 군집을 불려 수만, 수십만의 대군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생존자를 데려오라.”

“보고한 직후 발작을 일으키며 죽었습니다. 폐하.”

마지막 생존자마저 죽었단다.

데우스의 눈에 분노가 피어났다.

감히 마물 따위가 제국을 공격했다. 그것도 수도를.

“총력을 다해 마물들을 몰살시켜라. 단 한 마리도 살려보내선 안 될 것이다.”

*

“살려주세요!”

“제발, 제발 궁 안으로 들어가게 해주십시오!”

“이러다가 다 죽습니다!”

궁의 앞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수도에 기거하던 귀족들도 마차를 대거 이끌고 궁의 문을 두드렸다.

수도가 마물에게 공격당한 건 이례적인 일이다.

마물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가 그들을 겁먹게 만들었다.

“안심하십시오! 라우넬 황자님과 카잔 황자님께서 직접 병사들을 이끌고 마물들을 막으러 출발하셨습니다!”

“문을 열어라! 내가 누군지 알고 막는단 말이냐!”

병사들은 궁의 닫힌 문 앞으로 몰려드는 시민들을 보며 외쳤다.

수백에 달하던 숫자는 순식간에 네 자리수로 불어났다.

수도의 벽이 뚫렸으니 궁의 성벽 안에 있는 게 가장 안전할 것이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하지만 고작 수천의 마물로는 수도의 성벽조차 완벽하게 뚫어내지 못한다.

수도는 총 네 개의 성벽이 겹으로 이루어져있다.

수호의 벽, 인내의 벽, 통곡의 벽, 불멸의 벽.

지금 마물들이 공격해온 건 수도의 가장 외부인 ‘수호의 벽’이다.

그리고 황실을 지키는 최후의 수단인 이곳 불멸의 벽 안쪽으로 사람들은 대피하길 원하고 있었다.

수도의 중심부, 불멸의 벽은 제국이 건국되고 천 년간 단 한 번도 뚫린 적이 없었기에.

그리고 지금 성문 앞의 대부분은 통곡의 벽 안쪽의 안전지대에 사는 귀족이었다.

아직 수호의 벽조차 완전히 뚫린 상황이 아님에도 설레발을 치고 있는 게다.

“사령관님. 황제폐하께서 문을 열라고 하십니다.”

“끄응, 알겠다. 성문을 열어라.”

과연 성왕이라 불리는 황제 다웠다.

곧이어 성문이 열리자 성밖의 사람들이 우수수 안쪽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에는 발뭉도 있었다.

‘생각보다 쉽군.’

마지막 벽의 안쪽은 결계가 강하다.

유일하게 성문 쪽에만 결계가 쳐져있지 않았다.

하여 사람들을 선동하고 그 무리에 섞여 몰래 들어오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황실 안쪽에 탐지의 에픽이 있다. 그러나 그 전에······.’

발뭉이 하늘을 바라봤다.

성 전체를 두르고 있는 결계.

저 결계가 탐지의 에픽을 찾기 위한 수신호를 방해하고 있었다.

‘결계부터 없애야겠군.’

그러니 결계부터 무용지물로 만든다.

결계를 유지하는 결계석만 부수면 되는 간단한 일.

결계는 외부의 적을 막는 용도지, 내부로 들어온 이상 그를 막을 건 존재하지 않았다.

발뭉은 거침없이 결계의 마나가 응집되는 장소로 다가갔다.

*

유진이 몸을 떨었다.

비록 지도에 용의 위치를 잡아낼 순 없지만, 근처까지 온 이상 유진은 본능적으로 용의 기척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와, 왔습니다. 놈이······ 발뭉이 왔습니다.”

발뭉.

벨라를 죽인 원수다.

찢어 죽여도 시원찮은 놈이지만 용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나는 창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알고 있다.”

마물들을 부려 시선을 분산하고, 본인은 궁의 안쪽으로 사람들과 함께 침입했다.

얼추 이런 방식을 사용하리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바깥에서 결계를 깨는 건 불가능하다. 설혹 깼다고 하더라도 시선이 집중되어 목표를 이루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자신의 모습을 노출되는 걸 극도로 꺼리는 용이 전면에 나설 리도 없었으니.

‘엄청난 자신감이군.’

발뭉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내로라하는 강자들이 궁을 비운 틈을 타 순식간에 잠입했다.

보병사단과 마법병단들이 총동원되어 마물의 진화에 나선 지금.

고작 수천의 마물 따위야 몇 시간 내로 완전하게 진압될 것이다.

‘그 안에 탐지의 에픽을 빼앗을 자신이 있다······.’

하지만 유진의 정확한 위치는 모르고 있을 터.

알고 있었다면 지금쯤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야 정상이었다.

이는 먼저 궁 내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뜻이다.

[무궁화 18호가 확대한 이미지를 전송합니다.]

곧이어 내 시야의 앞으로 사진 한 장이 전송됐다.

무궁화 18호가 궁의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을 찍은 사진이다.

도합 1,090장.

천 구십명이 들어왔고 무궁화 18호가 그들을 한명 한명 스캔해 보내온 것이다.

‘저 안에 발뭉이 있다.’

얼굴을 가린채 들어올 순 없다.

저 천 명이 넘는 인원 안에 발뭉이 있다.

‘현재 모인 인원 중에 사라진 사람은?’

궁의 안으로 들어온 인원은 한데 모여 병사들이 관리하는 중이었다.

들어온 사람들이 궁의 내부를 마음껏 휘젓도록 놔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657’번 이미지의 사람이 사라졌습니다. 위치를 추적하는 중입니다.]

657번 째로 궁에 들어온 사람의 사진이 확대됐다.

‘찾았다.’

저놈이 발뭉이다.

말피엘이나 성지의 용처럼 베타의 얼굴을 이은 용은 아니었다.

허나 얼굴을 파악했으니 찾는 것은 더욱 쉬울 터였다.

인공위성을 활용해 광역스캔이 가능하리라는 건 예상조차 못하고 있으리라.

곧 제로가 추적 결과를 내뱉었다.

[궁 전체를 스캔한 결과 657번의 마지막 행선지는 이곳으로부터 북쪽으로 1,260m 떨어진 장소입니다.]

[이미지를 전송합니다.]

전송된 놈의 마지막 행적은 이곳 황룡궁이 아니다.

아예 다른 장소였다.

내가 있는 장소에서 북쪽으로 1km 바깥의 위치라면······.

‘결계석.’

결계석이 있는 곳이다.

결계의 심장. 외부에서 처리할 순 없으니 내부에서 부술 작정인 듯싶었다.

황궁마법사를 비롯한 몇몇만 아는 장소지만, 상대는 용이다.

마나를 본능적으로 다룰 수 있는 괴물이 결계의 심장을 못 알아볼 리 없다.

“아렐.”

“예.”

“영원궁으로 간다.”

황궁의 최북쪽, 4황비와 4황자가 기거하는 영원궁.

그곳에 결계의 심장이 있었다.

*

끼에엑!

얼음새가 울부짖었다.

이름 그대로 마치 얼음을 조각한 것처럼 생긴 새는 침입자를 노려보며 경고하고 있었다.

부화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기세가 범상치 않았다.

허나 그 주변으로 수많은 기사들이 죽어있었다.

시체들의 사이, 얼음새를 바라보는 발뭉의 눈에 이채가 뗬다.

“놀랍군. 멸족한 신수(神獸)가 왜 이곳에 있는 거지?”

얼음새는 용과 같은 신수다.

신이 직접 빚은 짐승이라는 뜻으로, 지금은 사라진 과거의 존재였다.

십이주신 중 하나가 창조한 짐승.

하지만 사라졌다.

용보다 덜 똑똑하고, 더 약했기 때문이다.

용과 달리 알을 낳아 번식할 수는 있지만 그뿐이었다.

용들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멸족한 비운의 짐승.

그 알까지 모조리 부숴버렸다고 들었는데 남은 알이 있었던 듯싶었다.

얼음새의 알은 몇 천년 뒤에도 조건만 갖춰지면 부화할 수 있었으니.

직접 본 것은 발뭉도 처음이었다.

“아······.”

얼음새의 뒤로 한 아이가 겁에 질린 채 굳어있었다.

궁의 주인인 4황자였다.

자신의 ‘용언’에도 저 아이는 버텼다. 얼음새가 용언을 비켜가게 만든 것이다. 용언을 막다니, 과연 신수라고 불릴 만은 했다.

불릴 만은 했지만.

쯧. 발뭉은 혀를 찼다.

“이게 전부라면 굉장히 실망이로구나. 한때는 그래도 용의 라이벌로 불렸던 신수였을진대. 아직 새끼라서 그런가?”

끼에에엑!

얼음새가 날개를 펄럭이자 방이 얼었다.

수증기가 얼어붙으며 송곳을 만들어냈으나 닿지도 못했다.

발뭉이 다가가자, 얼음새가 위축됐다.

도망치지 않는 건 뒤에 있는 인간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다.

기가 차는 일이었다.

신수가 인간을 지키다니.

끼이익······.

발뭉이 얼음새의 날개를 부여잡았다.

그러자 얼음새가 녹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4황자가 손을 뻗었다.

“아, 안돼······.”

“새끼부터 성장해야한다는 건 무척 번거로운 일이지. 나는 그래서 종족을 불문하고 새끼가 싫다.”

용에겐 성장기가 없다.

처음부터 완성된 존재인 탓이다.

어린시절, 새끼였던 그때의 기억이 용에겐 존재하지 않았다.

없던 것. 존재하지 않는 것.

그런 것들을 용들은 혐오했다.

특히 인간의 아이는 더더욱 껄끄럽다.

“얼음이를 죽이지마······!”

4황자가 용기를 내어 달려들었다.

하지만 달려드는 4황자를 발뭉을 발로 차버렸다.

“커헉!”

바닥을 구른 4황자가 피를 토했다. 발뭉은 4황자를 차낸 자신의 발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왜 인간의 아이는 닿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소름이 돋는 걸까.

“죽어라.”

용언이 발동했다.

얼음새의 보호를 받지 못하니 이제 즉사할 것이다.

헌데.

“······?”

살아있다.

기사들과 얼음새가 필사적으로 지키려했던 4황자가 죽지 않는다.

용언이 통하지 않았다.

마나결계도 없을진대, 왜?

‘오러?’

그제야 아이의 전신에 푸른 오러가 입혀져있음을 눈치챘다.

허. 어이가 없었다.

그렇다면 저 아이가 소드마스터라는 소리인가?

오러를 입은 소드마스터는 용언에도 저항할 수 있었으므로.

쉬이이이잇-!

순간 거대한 마나의 물결이 느껴졌다.

이만큼이나 정제된 기운이라면 오러다.

발뭉은 자신의 뼈로 만든 검을 치켜들었다.

촤앙!

튕겨냈으나, 손목이 저릿하다.

바닥에 검 한자루가 떨어졌다.

누군가가 오러를 담아 쏘아낸 것이다.

발뭉은 이맛살을 구긴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누구냐, 네놈은?”

그의 탐지에 걸리지 않고 다가온 인간남자가 한 명 있었다.

발뭉의 물음에 남자, 라인하르트가 답했다.

“용 사냥꾼.”

< 용 사냥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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