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은 망설였다.
지도를 켜면 황궁에 용들이 쳐들어올 것이다.
그 패악한 놈들이 자신을 찾고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랐다.
“그랬다간 용들이 궁을 넘볼 것입니다, 전하.”
궁이 불타고 자신은 기억을 빼앗긴 채 사라지리라.
그 공포는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있었다.
에픽의 소유자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원초적인 두려움이었다.
“그깟 용들 몇 마리로는 궁을 넘볼 수 없으니 걱정하지 마라.”
물론 유진의 걱정을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곳은 황궁. 제국의 심장이다.
과거의 용들도 제국을 대놓고 공격해오진 못했다.
대륙의 절반을 정복한 시점에서도 황제였던 내가 용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다.
에픽만이 아니라 용들 역시도 노출되는 걸 극도로 꺼리고 있는 게다.
‘얼굴이 노출되면 노려지기 쉬울 테니.’
용이라고 무적은 아니다.
놈들도 분명히 죽는다. 성지의 용을 통해 그를 증명했다.
‘용의 얼굴만 알 수 있으면 대비할 수도 있겠지.’
십이주신이 자신의 얼굴을 본 따 만든 게 용이었다.
말피엘과 성지의 용은 두 번째 주신 ‘베타’의 얼굴을 한 채였다.
마찬가지로 다른 용들 역시 자신이 따르는 신의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다.
열두 개의 얼굴만 파악할 수 있다면, 숨어있는 놈들을 끄집어내어 공격하는 것조차 가능할 터.
‘다른 용의 얼굴에 대한 데이터는 없었다. 성지의 용은 다른 용과 교류가 없었던 게다.’
같은 에덴의 세계수에서 태어났으나 성지의 용은 다른 신들의 얼굴도, 용의 얼굴도 알지 못했다.
용은 숫자가 적지만 모두 경쟁자다.
아마도 창조될 때부터 의도적으로 다른 용의 얼굴을 알지 못하게 한 것이리라.
나름의 공정한 경쟁관계의 구축 때문이겠지.
그래도 기껏해야 수십 마리다.
말피엘 같은 괴물만 없다면 낙승이다.
물론 도박수다.
미친 용들이 에픽탐지기를 찾고자 혈안이 되어 궁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도 있었다.
말피엘 같은 괴물이 아예 없으리라 못 박을 수도 없었다.
성지의 용은 10개의 시련을 완료했지만, 마왕 가프에 의해 힘이 거의 손상된 상태였다. 하반신이 잘려 천 년간 힘의 원천인 방사능을 내뿜었으니.
유진이 두려움에 떨며 말했다.
“그건 전하께서 용의 무서움을 몰라서 하는 말씀이십니다.”
“이미 죽여봤다.”
“······ 예?”
“혹, 마을에서 본 용 중에 이와 같은 얼굴을 한 자가 있었더냐?”
[‘용’의 이미지를 가져옵니다.]
[홀로그램을 실행합니다.]
스으으.
눈앞으로 성지에서 본 용의 얼굴이 떠올랐다.
놈에 대한 데이터는 모두 압축한 상태였다. 원한다면 이처럼 홀로그램으로 띄울 수도 있었다.
그것을 본 유진의 동공이 커졌다.
마법은 아니다.
그의 머릿속에 있는 에픽도 비슷한 현상을 일으킬 순 있지만 그것을 라인하르트가 해낼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본 적 있느냐?”
“모르겠습니다. 모든 용들이 가면을 쓰고 있었습니다.”
유진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용들끼리 모였는데도 가면을 쓴다?
용들은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아는 것조차 꺼리고 있다.
말피엘 같은 정신나간 관심종자가 아닌 이상에야 인간사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드러낸다면 그것은 에픽을 사냥하거나 위업을 달성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도를 켰을 때 마을에 모인 용은 총 몇 마리였지?”
“여섯이었습니다.”
“최초로 지도를 켠 장소는?”
“··· 제가 황궁마법사로 있었던 시절이니, 당연히 황궁 내였겠지요.”
“용들은 궁에 나타나지 않고 네가 마을 가까이에서 다시 켰을 때 나타났다. 그것도 고작 여섯 마리가 전부였다. 무슨 뜻인지는 알겠느냐?”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100%확신할 수는 없는 정보였다.
“용은 궁을 침범하지 못한다··· 맞습니까?”
“맞다. 그리고 지도를 켜도 근처의 용만 알아차릴 수 있다. 그것도 꽤 시간차를 두고 벌어지는 것 같군.”
용들끼리 얼굴을 보는 것도 금기시할만큼 스스로의 보안에 철저한 녀석들이다.
궁에 들어올 수 있을 리가 없고, 있더라도 가면을 쓴 채로는 입장할 수 없을 것이었다.
몰래 들어오려면 궁의 결계를 깨야만 하는데, 말피엘 같은 괴물이나 결계의 약점을 아는 놈이 아니라면 절대로 몰래 들어올 순 없었다.
내가 신성군주 행세를 하며 본드래곤을 타고 궁에 침입한 직후 그 약점도 어느정도 보완이 된 걸로 안다.
그러니 들어오려면 당당하게 자신을 밝힌 채 들어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도를 켜도 곧장 습격당하지 않았다.
몇 번이나 지도를 켜서 유진은 자신의 위치를 용들에게 알린 셈이다.
덕분에 마지막으로 마을 근처에서 지도를 켰을 때 모여들던 용들이 단번에 결집한 것이다.
그조차도 여섯 마리가 전부였다.
“모두 추정일뿐 확신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벨라의 복수를 하고 싶지 않느냐?”
“······.”
유진은 입을 꾹 닫았다.
하고싶다. 평생을 거짓으로 살았던 유진에게 벨라는 구원이었다. 자신이 자신으로 있을 수 있게 도와주는 동반자였다.
그라고 복수하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용들에게 벨라와의 행복했던 기억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그 기억이 저들에게 조롱당할 바에야 조용히 죽는 게 낫다.
“내가 도와주마. 너의 복수를.”
미친 발언이다.
······ 미친 황태자, 라인하르트 다운 소리였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황룡궁에 갇혀있었다.
황궁마법사로 있었던 시절에도 라인하르트를 볼 기회는 좀처럼 없었다.
데우스는 라인하르트의 어미가 죽은 이후 누구에게도 라인하르트를 보여주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진은 라인하르트의 어머니에 대해선 꽤 잘 알고 있었다.
‘아름답고, 어질며, 현명하셨지.’
그녀와 같은 사람을 유진은 살면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모든 이에게 사랑을 주고 받았다.
날개를 잃고 추락한 천사가 아닐까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또한, 그녀는 자신의 거짓까지 꿰뚫고 있었다.
거짓으로 점칠된 인생. 대마법사 흉내를 내며 추앙받았지만 사실 속은 텅텅 비어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있었다.
―유진. 고대어로 ‘귀족’이라는 뜻이죠. 본인이 지으신 건가요?
유진은 고아다. 마법사 행세를 하고자 고대어를 공부하며 알게 된 ‘유진’이라는 단어를 자신의 이름으로 새겼다.
잊힌 고대어라 아무도 몰라봤건만 그녀만은 단번에 알아차렸다.
황궁마법사로 임명된 첫날의 일이었다.
―그대는 본인의 격을 스스로 만든 사람이군요. 정말 흔치 않고 예쁜 이름이에요. 유진.
간파당했으나, 도리어 추켜세우고 칭찬받았다.
무뚝뚝한 황제 데우스가 왜 그녀에게 빠져있는지 알 것만 같았다.
황제의 의무로 어쩔 수 없이 다른 황비를 들이긴 했지만 적어도 그녀가 살아있을 때 데우스는 오직 그녀만 바라보고 있었다.
1황비, 라우넬의 어미인 그녀는 그래서 황후를 증오했다.
마찬가지로 라인하르트도 증오하고 있었다.
“··· 황후님과는 얼굴 빼곤 닮으신 게 없군요.”
“자주 들어본 말이로군.”
“심지어 황제폐하와도 전혀 닮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그것도 자주 들어본 말이다.”
작게 웃고 말았다.
황후와 나는 얼굴빼곤 닮은 게 없다.
귀가 닳도록 들어본 말이었다.
살아생전 어머니를 본 적은 없으나 그녀의 심성에 대해선 꽤 유명한 일화가 많았다.
황제 데우스가 나를 가둬만 두고 어찌하지 못한 건 그녀의 영향도 컸으리라.
과거 이사벨라와의 오찬에서 그녀의 호위가 내게 생채기를 내자 그녀의 가문을 몰락시킨 것도, 황후와 닮은 내가 다친 것을 보며 과거가 떠올랐기 때문은 아니었을지.
일종의 애증관계라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지도를 켜겠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던 유진이 마침내 결심했다.
황태자는 용에 대해 자신보다 많은 걸 알고 있었다.
정말로 복수가 가능하다면, 숨어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유진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허공의 무언가를 열심히 누르더니 이내 눈앞으로 거대한 지도가 펼쳐졌다.
나한테도 보였다.
지도 곳곳에 찍힌 붉은 점들이.
‘제로.’
[해당 지도를 이미지화 하여 저장했습니다.]
저장했다.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도록.
물론 실시간으로 저 점들이 움직이긴 할 테지만, 계속해서 유진에게 지도를 켜 놓으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상상 이상으로 많군.’
붉은점이 오백개는 되는 것 같았다.
“으음······?!”
그때, 유진이 크게 놀라며 신음을 흘렸다.
“이럴 리가 없는데······.”
“뭐가 이럴 리 없다는 거지?”
“그, 그게.”
유진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이어 다시 지도를 보곤 고개를 갸웃했다.
“모든 에픽의 위치가 나타나야하는데 전하의 위치는 지도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궁에 찍힌 붉은 점은 하나다.
바로 유진의 것이었다.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두 개여야만 한다.
제로 역시 에픽인 탓이다.
“그럼 모든 에픽을 알 수 있는 건 아닌 거겠지.”
“아닙니다. 제가 몇 번이나 확인한······ 아.”
유진은 침을 꿀꺽 삼켰다.
에픽의 위치는 모두 지도에 드러난다.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용뿐이었다.
오직 용만이 탐지를 피해갈 수 있었다.
‘설마?’
라인하르트를 흉내 내어 다가온 용인가?
그러고 보니, 마나의 움직임이 어쩐지 용과 비슷하다.
허무의 마법사는 마나를 느끼고 지배할 수 있다. 인간이 지배한 모든 마나는 심장을 필두로 모이기 마련인데 라인하르트의 마나는 전신에 고루고루 퍼져있었다.
신체의 모든 부위가 마치 마나를 저장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춘 것처럼.
이는 용들만이 가능했다.
허무의 마법사인 유진조차도 지배한 마나는 심장에 쌓아둔 탓이다.
“받아라.”
“이건 뭡니까?”
“포션이다. 잘린 힘줄을 다시 연결해줄 것이다.”
괴도를 치료한 포션.
그 효용에 대해선 이미 알고 있다.
이 포션이라는 것도 인세에는 없었던 보물이었다.
잘린 힘줄마저 연결해주다니.
하지만 괴도는 치료하고 쫓아가서 죽였다.
설마 황태자가 자신도 죽일 생각인 걸까.
“대비하고 있어라. 언제 어디서 용이 나타날지 모르니.”
“아······.”
“그 몸으로 싸울 수는 없지 않겠느냐?”
“감사합니다, 전하.”
그 말을 듣고, 유진은 모든 의심을 버렸다.
말마따나 복수를 위해선 몸을 치료하는 게 우선이었다.
무엇보다 라인하르트는 인간이다. 그것도 자신처럼 에픽을 지배하는 인간이었다.
헌데 그의 말들이 왜인지 무게감있게 들렸다.
‘황후님의 그 묘한 분위기 하나는 제대로 닮으셨군.’
행동이나 눈빛, 말의 어조 따위는 전부 다르지만 그것을 합치자 묘하게 둘이 닮은 게 느껴졌다.
혈연이란 게 이런 건지. 신기한 일이었다.
*
본드래곤을 아공간에 회수할 겸, 겨울의 활의 성능도 확인할 겸 나는 아렐을 데리고 궁을 나섰다.
당장 용들이 쳐들어오진 않을 테니 그 사이에 해야할 일들을 해놓을 생각이었다.
―특별한 접점은 없었다고 합니다.
카르발이 이자르를 통해 내게 임무를 보고했다.
괴도를 쫓는 아렐을 유심히 지켜봐달라는 값비싼 임무가 고작 한 마디로 종결된 것이다.
하지만 카르발이 ‘특별한 접점이 없다’고 할 정도면, 아렐이 페르세포 대공측에 내 정보를 전하지는 않았다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말도 잘 모는구나.”
“동물은······ 다 잘 다룹니다.”
마차를 몰며 아렐이 말했다.
적당히 위치만 정해주면 말들이 알아서 가는 느낌이었다.
당장 겨울의 활을 크로프트나 제르민에게 보일 수는 없는지라 급한대로 아렐만 끌고 목적지로 향하고 있었다.
“멈춰라. 이쯤이면 되었다.”
“예.”
제도를 벗어나 숲을 넘자 거대한 산맥이 보였다.
북방을 관통하는 로카리 산맥이다.
그리고 산맥으로 향하는 입구에는 유명한 도적단이 있었다.
‘레드 후드 도적단이었나?’
근처 상인들을 못살게 구는 도적단.
산에 숨어있어 소탕도 쉽지가 않다.
워낙 끈질긴 놈들이라 제국에서도 손을 놔버린 상태였다.
‘레드 후드 도적단의 본진에 에픽이 있다.’
더 공교로운 건 저 도적단의 근거지에서 붉은 점이 발현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아마도 레드 후드 도적단과 깊게 관련 된 자일 터.
나는 겨울의 활을 꺼내들었다.
반경 수십키로까지 날아간다고 했으니 파괴력이 상당할 건 자명했다.
‘일단 어느 정도나 날아가는지 확인부터 해야겠다.’
활시위 부위를 손에 걸었다.
그러자 손끝에서 묘한 느낌이 있었다.
활시위를 당기자, 급속도로 나노머신들이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음!”
소모가 엄청나다.
이대로 계속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간 탈진할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일단 레드후드 도적단이 있을 산을 향해 활시위를 놓았다.
그리고.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앙!
“······.”
“······.”
< 삼신기의 위력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