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황제-58화 (58/146)

예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확신은 하지 못했다.

과거의 나는 황제로 즉위하기 전까지 황궁비고에 들어갈 기회 자체가 없었던 탓이다.

황자들 조차도 쉬이 입장을 허락하지 않던 데우스가 미친 황태자를 황궁비고로 들일 리가 있겠는가.

안의 내용물은 오직 황제만 알고 있다.

천 년 제국의 결실.

보물 중에서도 압도적인 가치를 지닌 것만이 황궁비고에 들어올 수 있다.

‘과거에는 전쟁을 위해 죄다 팔아치웠다만······.’

페르세포 대공이 빚을 걷어간 덕분에 전쟁자금이 부족했다. 어쩔 수 없이 황궁비고의 보물들을 팔아치워 부족한 전쟁자금을 마련했다.

하지만 내가 황궁비고를 인계받았을 땐 눈에 띄는 보물은 없었다. 마치 중요한 보물만 쏙쏙 골라 빼낸 것처럼 비어있는 장소들이 있었다.

데우스가 미리 손을 쓴 것이다.

나, 혹은 카를로스 대공으로부터 지키고자.

예상은 했지만 막상 눈앞에 놓이니 넋을 잃었다.

‘삼신기(三神器) 겨울의 활.’

눈이 맺힌 듯 새하얀 활이 자태를 뽐내며 걸려있다.

삼신기라 불리는 무기들. 그중 하나인 겨울의 활이 황궁비고에 있다니.

삼신기란 현대의 인류가 만들어내지 못하는 기술로 만들어진 세 개의 무기를 일컫는 단어다. 정령무기와는 비교가 안 될만큼 정교하고 강력하여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국보급의 보물.

그중 하나, 겨울의 활은 ‘사계의 활’ 중 마지막 활이며 유일하게 겨울의 활만이 삼신기로 인정받고 있었다.

“허.”

기가 찼다.

삼신기 중 하나는 신성교에 있었고, 두 개는 행방이 묘연했다.

그중 하나가 설마 제국의 황궁비고에 있을 줄이야.

내가 몰랐다는 건 데우스가 숨겼다는 뜻이다.

하기야 삼신기가 카를로스 대공에게 흘러갔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삼신기는 상징성도 상징성이지만 사용할 경우 인간에게 초월적인 힘을 부여하기로도 유명했다. 무엇보다 이 역시 사라진 신비 중 하나인 ‘드워프’가 만들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했다.

신비가 만들어낸 신기. 대륙 전체를 뒤져봐도 이보다 뛰어난 활은 없으리라.

‘아름답군.’

거대한 장궁이다. 1.5m는 되어보이는 길이. 새하얀 순백의 나신은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하다.

그런데 활시위가 없다.

‘기록에 의하면 겨울의 활은 활시위가 필요 없다고 했지.’

삼신기에 대한 기록은 꽤 자세하게 남아있는 편이었다.

겨울의 활은 활시위가 없는 대신 마나를 장거리로 쏘아낼 수 있게 해주며, 그만큼 익히고 다루기가 힘들지만 파괴력은 하늘을 꿰뚫고 산을 부술만큼 발군이라 하였다.

마나. 그러니까 체내의 나노머신은 외부로 나가면 급속도로 에너지를 잃는다. 아무리 길게 나가야 수백미터 안팎이고, 이는 대마법사도 마찬가지였다.

마법을 사용해도 그 유효범위는 나노머신이 에너지를 잃는 지점까지가 전부라는 의미다. 하여 마법사의 실력을 확인하는 방법 중에는 ‘마법의 유효거리’를 보는 것도 있었다.

하여튼 겨울의 활은 그 유효거리를 몇 배로 늘려준다.

‘30km 바깥의 적을 맞췄다고 했나?’

기록을 떠올려본다.

솔직히 말이 안 되는 사거리다.

분명히 과장이 있을 것이었다.

‘마궁사가 쏘아낸 화살의 사정거리는 기껏해야 300m 수준이다. 특급의 마궁사도 1km 남짓이지.’

마나로 가속도를 붙여 영역 바깥의 적을 맞춘다.

마궁사만이 가능한 기예다.

그래봐야 대마법사의 영역과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설령 30km를 쏘아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정확히 명중시키는 건 차원이 다른 난이도였다. 그러나 겨울의 활은 그조차도 가능케 만들어준다 하여 삼신기로 불렸다.

‘가볍다.’

걸려있는 겨울의 활을 쥐어보았다.

거대한 크기와는 다르게 가볍다.

말도 안 될만큼 가벼운 소재다. 정말 깃털을 들고 있는 기분이었다.

제로가 말했다.

[오버테크놀로지가 접목된 저격용 무기입니다.]

[나노튜브기술로 나노머신의 활용을 극대화시켜주는 장치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초합금을 사용해 경량화에 성공한 개체입니다.]

[제작자 미상. 고유코드 ‘드워프’가 새겨져 있습니다.]

오버테크놀로지?

이 시대의 평균적 기술을 훨씬 웃도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초월적인 기술력이 이 활 하나에 집합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고유코드 드워프라.

그렇다면 사라진 드워프는 시대를 한참 앞서는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단 말인가?

그런 기술력을 가지고도 왜 사라졌을까.

그들 역시 ‘위업’으로 선정되어 멸족당한 것일는지.

정확한 사유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이 만든 최고의 작품들은 아직 남아있었다.

겨울의 활 역시 그중 하나였다.

‘드워프는 나노머신의 존재를 알고 있다.’

나노머신의 활용성을 극대화시키는 나노튜브 장치를 무기에 삽입했다. 말인 즉, 나노머신 자체를 깨닫고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의미다.

지금의 마법사들처럼 두루뭉술하게 ‘마나’로 퉁치는 게 아니라 나노머신 자체에 집중하여 고도로 기술을 발달시킨 종족.

“제로. 박문식 박사가 드워프더냐?”

제로는 한국과학기술원의 박문식 박사에게서 만들어졌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이라는 나라도, 박문식이라는 이름도 내게는 생소했다.

오버테크놀로지를 다루는 종족이라면 한국은 드워프의 나라 이름이고, 박문식은 드워프일 수도 있는 것이다.

[드워프 종족에 관한 데이터가 부족합니다. 하지만 박문식 박사의 종족은 인간이며 생물학적 명칭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입니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직역하면 슬기롭고 슬기로운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마스터. 현생 인류와 약간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무슨 차이가 있다는 거지?”

[관리자 권한의 등급이 격상하며 생긴 ‘스캔’의 기능을 활용한 결과, 현생의 인류는 나노머신을 저장하고 활용할 수 있게끔 생체적으로도 진화했습니다. 이만한 진화과정을 보이기 위해서 필요한 자연선택적 진화의 추정시간은 최소 15만 년입니다.]

“······ 박문식 박사가 15만년 전의 인간이라는 거냐?”

[존재하는 데이터만으로는 대조가 불가능합니다. 다만, 현인류의 dna를 분석한 결과 그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것이라고 추정할 뿐입니다.]

그러니까 제로는 15만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것도 최소치로 잡아서 15만년이었다.

제국이 세워지고 천 년이 지났는데 150번은 반복해야 되는 경이로운 숫자였다.

하지만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네가 15만년 전에 만들어졌다면 그간의 데이터는? 최초로 깨어난 게 내가 아닐 텐데?”

[기억장치에 저장된 이전의 기억데이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저장된 최초의 기록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16년 전이며, 그 위치는 마스터의 대뇌였습니다.]

“기억장치가 고장나거나 일부 소실됐을 가능성은?”

[불가능합니다. 소실되거나 삭제되었다면 그와 관련된 백업데이터가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가만히 턱을 쓸었다.

제로는 자신의 기억장치가 잘못되었을 리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15만년이다.

우연에 우연이 겹쳐 내 머릿속에서 15만년만에 깨어났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를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니, 우선은 겨울의 활에 집중했다.

활은 다뤄본 적이 거의 없지만, 무려 삼신기다.

본 이상 안 가져갈 수는 없었다.

“이건?”

겨울의 활에 신경이 팔려, 그 옆에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이 구역은 오직 겨울의 활을 보관하고자 따로 만들어진 장소였다.

겨울의 활만 있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살펴보자 그 옆에 전시된 물건이 하나 더 있었다.

둥그렇고 까만 상자 하나가.

그것도 매우 작은 반지상자였다.

반지상자를 열자, 실제로 투명한 반지 하나가 놓여있었다.

혹시 몰라 껴봤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흠.”

겨울의 활과 같이 놓을 정도면 어마어마한 물건일 텐데, 이건 오버테크놀로지가 아닌 건가?

그런 내 마음을 대변하듯 제로가 말했다.

[락이 걸려있습니다.]

[락을 해제했습니다.]

[오버테크놀로지가 접목된 아공간(亞空間)의 반지입니다.]

[특수한 공간에 물건을 보관하고, 빼내는 기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제작자 미상. 고유코드 ‘드워프’가 새겨져 있습니다.]

락이 걸려있다.

해제하지 않으면 내용물을 알 수 없게끔.

하지만 제로는 단번에 락을 해제시켜버렸다.

이름과 반지의 쓰임에 대해선 알아냈지만, 아공간이라니.

스으으윽.

반지에 나노머신을 투여하자, 내 뒤로 검은 공간이 생겨났다.

‘저 검은 공간 안이 아공간이라는 건가?’

손을 집어넣었다.

다시 빼내자, 아무런 일도 없었다.

나는 황궁비고에서 아무 보물을 잡아 아공간 안에 넣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손을 넣어봤지만 잡히지 않았다.

‘완전히 들어가면 사라진다?’

허나 분명히 빼내는 기능이 있다고 했다.

빼낼 방법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번엔 확실한 목적을 갖고 손을 집어넣었다. 이전에 넣은 물건을 떠올리며 휘젓자 손에 무언가가 잡혔다.

“안에 있는 물건을 떠올려야 빼낼 수 있나보군.”

아공간 안에 물건을 집어넣고 까먹으면 영영 빼낼 수 없다는 뜻이다.

어쩌면 이 안에는 내가 인식하지 못한 물건이 많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모르니 꺼낼 수가 없다.

“제로. 이 공간 안에 있는 물건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느냐?”

[완전히 분리된 공간입니다. 기술적인 해체를 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합니다.]

기술적인 해체의 기능은 제로에게 없는 것이었다.

제로도 알아낼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미소지었다.

‘엄청난 걸 얻었군.’

어쨌든, 겨울의 활과 아공간을 얻었다.

이 두 물건 이상의 보물은 황궁비고에도 없었다.

그나마 몇몇 정령무기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칼리번처럼 성하진 않은 상태였다.

‘그래도 여기까지왔는데 이거 두 개만 가져가긴 아쉽지.’

어차피 이곳의 보물은 내것이나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아공간에 넣어 기억할 숫자의 보물만큼은 쓸어담아가야겠다.

황제가 되기 전에 미리 조금 빼 쓴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

이후 궁을 벗어나 몇몇 실험을 이어나갔다.

우선 아공간의 내부에는 생명이 살 수 없다.

벌레를 넣어봤더니 죽어서 나왔다. 3분가량은 살아있었으나 그 이상은 여지없이 죽어버렸다.

아공간의 내부에는 공기가 없다.

그래도 짧게나마 생존은 가능하다.

이에 모험적으로 아공간 안으로 발을 옮겼지만, 정말 어둠뿐이었다.

안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내가 떠올리는 물건만이 나타나고 사라지길 반복했다.

또한 내용물을 얼마나 넣던 떠올릴 수만 있다면 무게나 부피에 제한은 없는 것 같았다.

‘본드래곤을 숨겨둘 장소가 애매했는데, 잘됐다.’

본드래곤은 로카리 산맥에 있었다. 부르면 날아오긴 하겠지만, 필요할 때 바로 쓸 수 없다는 제약이 있었다.

본드래곤은 생명체가 아니니 아공간 안에 넣어도 별 탈은 없을 것이었다.

“······ 어이가 없군.”

고개를 돌리자, 긴 머리칼을 가진 마법사가 눈에 들어왔다.

“나를 이곳에 숨겨둔 의도가 뭐지? 라인하르트 황태자.”

이곳은 나의 궁 안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마법사를 특급죄수동에서 옮겨와 한동안 감금해놓았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다.”

“괴도처럼 쓰고 죽일 생각으로 말이냐?”

황궁비고의 지도를 그려준 괴도.

그 괴도에게 나는 자유를 약속했다.

포션으로 몸을 어느 정도 치료해주자 그는 곧장 수도를 벗어나 종적을 감췄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그는 잘 치료받고 도망쳤다만.”

“그럴 리가. 수도를 벗어나면 죽이라고 명령했겠지. 아니라면 네 옆에 항상 붙어있던 기사가 왜 지금은 안 보이는 거지?”

기사, 아렐을 말하는 게다.

“눈치가 빠르군.”

나는 가볍게 인정했다.

아렐은 지금 괴도를 쫓고 있었다.

수도를 벗어나는 즉시, 괴도를 죽이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이는 아렐의 반응을 보기 위함도 있었다.

그녀가 페르세포 대공에게 충성하는지, 오로지 내게 충성하는지를 말이다.

만약 전자라면 이 사실들을 페르세포 대공에게 알릴 것이다.

황궁마법사를 숨기고 비궁의 보물을 털려고 하는 중대사안.

페르세포 대공에게 충성한다면 반드시 알려야할 정보였다.

허나 후자라면 온전히 괴도만 죽이고 돌아올 것이었다.

이를 위해, 용병왕 카르발을 고용했다.

들키지 않게 최대한 멀리에서 아렐을 지켜봐달라고 말이다.

중간에 어디를 가고 누구를 만나는지.

‘크로프트는 몰래 숨는 재주가 없으니.’

카르발이 딱이다.

가격은 비쌌지만, 성과는 확실할 터.

나는 유진의 눈을 보며 입을 열었다.

“허무의 마법사, 유진.”

“······!”

유진의 눈이 한없이 커졌다.

그는 자신이 ‘허무의 마법사’임을 철저하게 숨겨왔다.

무영창의 마법을 쓸 수 있으면서도, 굳이 영창을 해가며 대마법사 행색을 해왔다.

사기꾼이 따로 없다.

하지만 아직 놀라긴 이르다.

“황궁마법사라는 명예로운 자리에 있으면서도 황실의 재물을 탐한 죄. 그로 인해 너는 특급죄수동에서 120년형을 보내게 되었다. 맞느냐?”

“······ 맞다.”

“하지만 이는 거짓이다. 너는 일부러 수감된 거다. 자신이 허무의 속성을 지녔다는 사실이 알려질까봐. 누군가에게 사냥당할까봐 말이다.”

“그게 무슨 소리······.”

“용.”

“······!!!”

용이라는 이름을 듣고 유진은 전신에 경련을 일으켰다.

역시나.

놈이 과거 나를 보며 비웃었던 이유도 알겠다.

자신처럼 나 또한 허무의 속성을 지녔으니, 용에게 사냥당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해 비웃었던 것이다.

나는 무릎을 굽히고 앉아, 녀석의 머리카락을 쥐며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녀석에게 알아내야할 게 많았다.

용과 관련된 정보 뿐만이 아니다.

내가 허무의 속성, 즉, 제로를 품고 있다는 것을 진즉에 알아봤다. 나도 회귀 후에야 알 수 있었던 것을 그저 보는 것만으로 알아낸 것이다.

유진은 에픽을 알아볼 수 있다. 거기서 더 나아가, 찾아낼 방법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살고 싶다면 전부 불어야 할 게다. 유진.”

< 삼신기(三神器)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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