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황제-54화 (54/146)

황제 데우스는 자연사했다.

그렇게 알려졌다.

카를로스 대공이 북벌을 성공시키고, 대흉년까지 겪자 권세가 급속도로 약화 된 데우스는 자신의 권좌를 내려놓았다.

이후 지병을 앓다가 고요하게 죽었다.

‘타살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정보다.

적어도 나는 타살을 확신하고 있었다.

가장 의심스러운 건 카를로스 대공이었다.

그가 고용한 용병왕 카르발이라면, 크로프트와 그림자들의 눈을 피해 충분히 황제암살을 기도할 수 있었다.

하물며 데우스가 죽은 시기도 공교로웠다.

크로프트가 곁에 없을 때 벌어진 사단이다.

‘모두가 황제 데우스의 죽음을 원하고 있었다.’

카를로스 대공과 카르발은 유력한 용의자다.

하지만 범인이라고 확정 지을 순 없었다.

데우스는 자신이 머지않아 죽으리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허나 그를 죽이려는 사람은 너무나도 많았다.

상징성. 평화의 수호자라는 그 이름값은 모두의 행보에 걸림돌이 된다.

나부터도 그랬다. 내가 황제에 즉위한들 데우스가 살아있다면 그를 옹호하는 이들과 항상 대립할 수밖에 없다.

카를로스 대공이야 두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고, 페르세포 대공 역시 독립을 위해서라면 데우스는 반드시 죽여야만 하는 존재였다.

페르세포 대공의 억제력 또한 데우스였던 탓이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데우스가 죽은 뒤 황실의 빚을 모조리 환수해간 걸 보면 모종의 계약이라도 한 듯싶은데.

‘두 대공만이 아니지.’

나는 아니다. 그럴만한 정신머리도 없었다.

하지만 용의자는 두 대공 외에도 많다.

그중 하나가 신성교였다.

데우스는 신성교를 국교(國敎)로 인정하지 않았다.

신성교의 힘이 너무 커지면 제국조차 휘두를 수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국에서 그들이 활개치지 못하도록 데우스는 그들 또한 억제시키고 있었다.

아무튼······ 용의자는 많다.

모두가 필요에 의해, 황제 데우스를 죽이고 싶어한다.

하지만, 지금의 대륙에 데우스는 필수불가결한 존재였다.

그가 죽으면 걷잡을 수 없는 균열이 생긴다.

도미노처럼 무너진 힘의 균형은 오랜 평화의 종결을 가져올 것이다.

그러니, 내가 제대로 된 자격을 갖추고 모두를 아우를 힘을 얻기 전까지 데우스가 죽어선 안 된다.

그리고 카르발은 직접적으로 황제 시해를 했을 가능성이 높은 자였다.

“귀족이 아닌 자가 황녀의 성인식이 초대되다니, 특이하군.”

카르발의 눈빛이 떨렸다.

설마 내가 다가오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한 듯싶었다.

찰나와 같은 순간에 번뜩인 살의를 내가 읽지 못하리라 생각한 걸까.

“······ 용병들을 대표해서 자리했을 뿐입니다, 전하. 보기 싫으시다면, 자리를 피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다. 용병왕 카르발이라면, 충분히 귀족과도 같은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지.”

그의 실력은 크로프트가 각성하기 전보다 강했다.

1군주와 비슷하며 지금의 크로프트와도 어느정도 견줄만 하였다.

정면대결이라면 말이다.

게다가 이만한 강자는 계급에 얽메이지 않는다. 특히 용병왕 카르발은 계급이 아닌 돈에 움직이는 자였다.

가면을 써서 얼굴을 가렸음에도 알아본 게 의아한지 카르발이 물었다.

“저를 아십니까?”

“용병들을 대표할 이가 용병왕을 제외하면 또 있느냐?”

그것도 그렇다.

자신의 입으로 신상을 밝혔으니 맞추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보통 용병의 대표라 하면 ‘용병협회’의 회장 따위를 떠올려야 정상 아닌가?

‘눈썰미가 대단하군.’

카르발은 생각했다.

귀족들과 비슷한 옷을 입고 행동거지도 비슷하게 했는데도 황태자는 자신이 귀족이 아님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대화를 통해 자신이 용병왕인 것까지 유추해냈다.

어쩌면, 자신이 보낸 ‘살의’조차도 읽어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용병왕이자 암살왕인 그의 연기는 완벽하다. 자신이 보내는 살기를 감지하는 건 어지간한 소드마스터도 힘들어하는 일이다.

전성기시절 최강이라 여겨졌던 크로프트가 아닌 이상에야.

하지만 이곳엔 크로프트가 없다.

공을들여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끔 잠입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죽여야하나?’

자신의 정체를 안다.

애당초 용병업계에 황녀는 초대장을 보낸 적이 없다.

대충 얼버무렸지만 확인하고자 한다면 그다지 오래 걸리진 않을 터다.

그러나 자신이 마음만 먹는다면, 눈앞의 황태자조차도 단번에 죽일 수 있었다.

평생 도망다녀야 할테지만 이곳에서 둘러싸여 죽는 것보단 낫다.

‘임무는 실패로군.’

상대방이 자신을 알아봤다. 그 시점에서 임무는 실패다.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 지를 고민하던 중이었다.

“두 배를 주마.”

“무엇을 두 배를 주겠다는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나의 감시가 목적이겠지.”

그 주체가 카를로스 대공이든, 그 주변의 귀족이든, 용병왕 카르발은 나의 감시를 위해 대담하게 연회식에 잠입했다.

카르발만이 아니다.

나를 지켜보는 눈은 그 외에도 많았다.

“오해이십니다, 전하.”

“그런가? 내게 보낸 살의조차도 그럼 오해란 말인가? 멸문한 안단티노 가문의 마지막 생존자여.”

“······!”

안단티노 가문.

암살자의 혈족들이 모여있는 그 가문은, 평화의 시대가 시작되고 가장 먼저 숙청당한 곳이었다.

안단티노 가문의 존재는 황실의 치부와도 같았으니.

카르발이 데우스를 증오하는 이유는 명백했다.

필요할 땐 열심히 쓰다가 한순간에 버려지고 가족들이 몰살당했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세상에서 지워져버렸다.

그에게 황제는 씹어먹어도 부족함이 없을 존재.

그래서 카르발은 황제와 황실 전체에 분노하고 있었다.

내게 한순간이나마 살의를 내비춘 건 그때문일 터.

카르발이 물었다.

“그것을 알고도 저를 고용하시겠단 말씀입니까?”

“사람은 배신하지만 돈은 배신하지 않는다.”

이건 카르발의 신조다.

그저 복수에 눈이 멀었다면 용병왕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

현실을 인지하고 있다. 이런 신조를 지켜왔기에 여태껏 살아있는 셈이다.

“그러니 묻겠다. 두 배가 부족하면 세 배는 어떻더냐?”

딜을 했다.

만약 현재의 카르발이 카를로스 대공쪽과 연결되어 있다면, 자금사정이 그리 좋지 못할 테니 ‘감시’ 따위를 위해 일억만금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신성교나 다른 거대한 집단과 연결되어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반응을 보고 유추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물론 카르발이 황태자인 내 자체가 싫어서 모조리 거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그러진 않으리라 확신했다.

“고용자를 배신하라는 말이 아니다. 어차피 ‘감시’의 임무는 실패했다. 그러니 이후의 일을 내게서 받고 더 높은 비용을 청구하라는 말이다.”

용병은 소속되지 않는다.

돈을 많이 주는 쪽으로 움직이는 게 용병이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아군이 될 수 있는 게 그들이다.

“······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하.”

반의 동의다.

카르발의 이런 반응은 무척이나 고무적이었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천천히 물러나더니 이내 사라졌다.

‘내 움직임이 빨라질수록, 저들의 움직임 또한 빨라진다.’

변화가 생기고 있었다.

과거 이 시기에 나는 감시받을 일이 없었으니까.

카르발이 직접 나타났다는 건 그 이상의 것들이 언제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래도 사망의 변수에서 조금은 빠져나와서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어깨를 으쓱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

이사벨라가 화장을 고치고 돌아왔다.

단번에 남자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추근덕대는 그들을 내팽개치며, 이사벨라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용기를 내자. 자연스럽게 대화를 거는 거야. 친구잖아?’

친구가 되자고 한 것도 그녀가 아니라 라인하르트였다.

다가가서 말을 거는 게 이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이 아니면 또 언제 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 잘 어울렸지.’

재차 아렐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크엘프 여자가 설마 페르세포 대공의 양녀라니.

둘이 함께 입장하고, 춤까지 춘 걸 보면 아무것도 아닌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미래를 약속한 피앙세일까?

혼담이 오갔던 자신과는 친구로 지내자고 했으면서, 페르세포 대공과의 결합을 추친하고 있었던 걸까.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냥 자연스럽게 대화만 하는 거다.

그의 도움을 받은 것도 사실이니까.

고마움을 표현하고, 그간의 근황을 묻는 게 꼭 특별한 사이어야만 가능한 건 아니지 않은가.

‘어디갔지?’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라인하르트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는 걸 보면 이미 나간 것 같다.

다크엘프 아렐도 자리에 없는 걸 보니······.

‘인사만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빨리 라인하르트가 홀을 벗어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최소한 카르넬 황녀의 성인식이 진행될 동안은 있으리라 여겼건만.

“하하! 생각보다 취미가 맞군요. 저도 차르모텐 ‘봄’의 3악장이 가장 인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호호. 생각보다 훨씬 더 교양있으시네요.”

이자르는 열심히 영애들 사이를 오가며 추파를 던지는 중이었다.

놔두면 오늘 제대로 사고 칠 것 같다.

“하아······.”

이사벨라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

카르발은 위험한 사망변수였다.

그로 인해 내가, 혹은 황제 데우스가 죽을 수도 있었다.

절대로 안 되는 일이다.

내가 사는 건 당연하고, 데우스도 살려야 했다.

아무리 무능한 방관자라고 욕을 해도 그의 상징성만큼은 대륙 전체에 뻗어있었으니.

하물며 과거와는 전혀 다른 노선을 타고 있는 나다.

데우스가 죽으면, 나도 죽는다.

‘과거의 나는 굳이 죽일 필요가 없는 존재였지.’

이제는 다르다.

용병왕 카르발을 보내 감시를 시킬 정도로, 나는 ‘요주의 인물’이 되었다.

만약 감시가 아니라 ‘살해’의 임무였다면 무사하리란 보장은 못했을 것이다.

도리어 그를 알아보고 다가간 게 호재였던 셈.

하지만 언제까지고 요행을 바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크로프트의 곁에 있으면 안전하기야 하겠지만 그는 한 명이다.

게다가 그가 24시간 계속해서 나를 보호해주리라 생각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아렐?

카르발 같은 최강자가 죽이고자 한다면 시간을 끄는 게 전부다.

아렐은 아직 성장기였다.

성장의 잠재력을 따지자면 세계정상급이지만 아직 아렐이 ‘온전한 나의 것’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관계였다.

‘내가 강해져야 한다.’

그러니 나 스스로가 모든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져야만 했다.

궁에 있을 때야 안전하겠지만, 궁을 벗어나는 순간 어찌될지 모른다.

당장 ‘휴전 협정단’이 새로이 꾸려져서 대표로 나가게 된다면, 카를로스 대공이 내가 도착하는 걸 얌전히 기다려주겠는가?

내 인지도가 올라갈수록 나를 죽이려는 움직임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만이 아니라 외부에서도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할 터.

[증강현실 ‘딥드림’에 접속했습니다.]

[분해된 데이터의 ‘조각모음’이 완료되었습니다.]

[A.I ‘용’을 현상화합니다.]

딥드림에 접속하자, 내 앞에 용이 있었다.

성지의 용. 제로가 삭제시킨 그놈이.

A.I를 제거하며 조각난 용의 데이터를 다시 복구해낸 것이다.

한 마디로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용은 인공지능이 아니라 용의 데이터를 품고 있는 정보집합체였다.

“······.”

무표정하기 이를데 없는 얼굴로, 용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조각모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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