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몬이 몸을 갈아타는 방식은 제법 흥미로웠다.
눈을 마주친다는 전제조건이 필수인데, 해골병사는 보다시피 뼈밖에 없는 존재다.
눈이 없는데 마주칠 수 있을 리 없다. 그럼에도 옮겨갈 수 있다는 건 ‘눈’으로 인식되는 부위만으로 충분하다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머리를 폭파시켰다.
사이오닉 에너지는 인간의 뼈 정도는 손쉽게 가루로 내어버릴 수 있었다.
헌데, 머리를 폭파시켜도 놈은 몸을 갈아탔다.
‘눈을 마주친다는 것 자체가 조건이 아닌가보군.’
과연, 이해했다.
눈을 마주치는 행동 자체는 속임수였다.
그럼에도 그러한 행위를 하는 건, 상대를 속이기 위해서일는지.
생각을 달리했다.
어쩌면 그러한 행동 자체가 ‘지배력’을 돋우는 술수일 수도 있었다.
언데드를 제외한 생물이 아닌 것에 몸을 옮기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터.
‘눈을 마주치면 상대는 인식을 한다.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인식을.’
다른 조건을 떠올린다.
상대가 자신을 인식하게 만드는 게 발동조건인 건 아닐까?
순간의 강렬한 인식으로 말미암아 몸을 차지하는 것이라면?
그야 자신이 만든 언데드를 인식시키는 건 일반 생물체를 인식시키는 것보다 쉬울 것이다.
지배범위 내에만 존재한다면 마음껏 몸을 갈아탈 수 있다.
나는 이미 한 번 경험했다.
제로의 도움도 있지만, 경계하고 있는한 이전보다 강한 ‘인식’은 하지 않기 마련이다.
처음부터 경계하니 놈의 지배력이 낮아질 수밖에.
‘그렇군. 상대방이 자신을 인식하는 게 조건이다.’
얼마나 강하게 인지하고 인식하느냐에 따라 몸을 갈아타는 조건이 완성된다.
인식하는데 눈을 마주치는 것만큼 쉬운 것은 없었다.
“나를 너무 우습게 보는구나, 신성군주여.”
갑자기 데이몬이 의기양양해졌다.
주변 해골들의 뼛조각들이 부서지고 모이더니 거대한 거인의 형상을 만들었다.
본골렘.
골렘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건 8서클의 마법사만 가능하다.
마나를 보다 쉽게 조종할 수 있게 해주는 ‘스피릿’ 상태에서 만들어야만 골렘의 형체가 흐트러지지 않는다.
게다가 무영창이었다.
에디스도 짧게나마 영창을 해야 만들 수 있는 골렘을, 데이몬은 아무런 지시없이 만들어냈다.
“A.I들은 무영창이 기본인가보군.”
“A.I?”
못 알아듣는다.
하기야 자신을 가짜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을 테니.
“살아생전 할 수 없었던 무영창의 마법을 죽어서 한다니, 참으로 공교롭지 않느냐?”
“두려워서 미친 거냐? 헛소리를 내뱉는구나.”
쿵!
바닥을 벅차고 다가온다.
압도적인 크기의 차이.
놈은 나에게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
나를 더 강하게 ‘인식’시키기 위한 행동이다.
만약 데이몬을 강력하게 인식한다면 소드마스터의 몸조차 빼앗을 수 있을 것이다.
데이몬은 눈을 마주치는 것 외에도, 또 다른 인식으로서 군림하고 있었다.
그것은 ‘공포’다.
죽음을 다스리는 절대자의 권위와 공포로 지배력을 키웠다.
세계제일의 강자가 데이몬을 두려워할 리 없겠지만 그게 가능하다면 데이몬은 그자의 몸조차도 마음껏 다룰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문제는 내게 공포란 단어는 없어진지 좀 오래 되었다는 것이었다.
‘진짜로 자신을 데이몬이라 생각하나보군.’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그나마 카이첼의 탈을 쓴 바알은 자신을 에픽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제로도, 용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데이몬은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자신을 가짜가 아닌 진짜라고 여겼다.
너무나도 인간 같은 행동들은 그게 아니라면 설명이 불가하다.
내게서 아무런 반응도 없자 데이몬이 진로를 바꿨다.
“죽어라.”
후우우웅-!
거대한 주먹이 나를 향해 직격했다.
콰득!
하지만, 닿지 않는다.
용갑주. 거미줄처럼 쳐진 나노머신의 줄기가 본골렘의 타격을 그대로 흡수해버렸다.
내 미간 바로 앞에서 주먹이 멈춰섰다.
아무리 힘을 줘도 그 이상으로 들어올 일은 없었다.
“뭐냐, 이건? 마나결계?”
데이몬은 내심 인상을 구겼다.
마나결계인 듯하지만 그게 아니다.
마나결계가 쳐져있었다면 자신이 못 알아볼 리도 없었다.
게다가 그런 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장력이 자신을 튕겨내고 있었다.
투둑.
그 순간이었다.
본골렘을 이룬 뼈들 사이사이에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후두두두둑!
뼈들이 마치 비처럼 무너져내린다.
“이건 또 무슨······!”
데이몬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지금 겪는 모든 상황들은, 수백년을 살아온 그조차도 전부 처음 겪는 것들이었다.
주먹이 닿는 순간 제로가 기동하여 놈에게 심어둔 나노머신의 ‘킬코드’를 발동시킨 것이었다.
이내 마지막 남은 해골병사의 머리통 하나만 바닥을 뒹굴었다.
“나는 죽지 않는다!”
“질기군.”
폭식도 이놈을 먹지는 않았다.
맛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기준이 따로 존재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벌레처럼 살아있는 생존력 하나만큼은 인정해줘야겠다.
가까이 다가가, 발을 들었다.
파삭-!
나는 빠르게 발을 놀려 해골을 밟았다.
영원불멸치곤 생각보다 허무한 죽음이다.
[데이몬의 이동을 감지했습니다, 마스터.]
뭐?
주변에 있는 언데드는 더이상 없다. 옮겨갈 매체가 없는데 어디로 갔단 말인가.
설마 인식도 조건이 아니었나?
하지만 킬코드가 발동한 이상 죽음은 확정적이었을진대.
“이곳은 내 라이프 케슬이다. 이 안의 모든 것이 내 지배의 대상일지니.”
툭, 툭.
지하계단을 타고 누군가가 올라왔다.
익숙한 얼굴.
라우넬.
순식간에 라우넬의 몸을 차지한 데이몬이 크게 웃어보였다.
녀석을 너무 우습게 봤나보다.
이곳 전체가 놈의 라이프 케슬이고 인지 영역이었다. 눈을 마주치는 척, 시야가 한정되어 있는 척, 연기를 한 게다.
데이몬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아아! 강력하다. 실로 바다와 같은 힘이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야. 이렇게 황홀한 기분은!”
이전의 몸보다 훨씬 강력한 신체를 얻은 듯 기뻐했다.
[A.I ‘데이몬’의 고유코드가 변경되었습니다.]
[‘킬코드’의 작동이 강제중지되었습니다.]
여태껏 없었던 현상이었다.
라우넬의 몸을 차지하자, 킬코드의 작동이 멈췄다.
데이몬의 코드에 맞춰 만들어진 킬코드다. 헌데 데이몬이 라우넬의 몸을 차지하는 순간 놈의 고유코드가 변경됐다.
라우넬이 나와 같은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일까.
그래서 제로가 제대로 반응을 못하는 건지.
아니면 ‘피’자체에 무언가 다른 게 섞여있기라도 한 것인지.
‘초대황제의 피.’
만약 그렇다면 그건 초대황제, 절대자의 피 때문일 것이다.
성지의 용은 내가 용의 피를 이었다고 말했다. 초대황제 역시 위업을 달성한 용이라면, 다른 용들과 달리 정말로 ‘번식’이 가능했다면 가능한 일이다.
화르르르르륵!
라우넬의 몸을 차지한 데이몬의 전신에 불길이 치솟는다.
끼아아악!
피닉스다.
거대한 불사조가 모습을 드러냈다.
“느껴진다. 너와 이 몸은 같은 피를 이은 것 같군.”
데이몬이 잠재력을 격발시켰다.
라우넬이 시연식에서 보여줬던 힘과는 차원이 달랐다.
온전한 피닉스의 형태. 세상의 모든 것을 불태우는 진정한 불의 화신이다.
1군주가 보였던 용오름보다도 더 위압적이었다.
데이몬이 웃었다.
“신성군주가 제국의 황태자라는 것도 놀랍다만, 나를 죽일 수 있겠느냐?”
몸을 괴롭히던 놈의 지배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차지한 몸의 기억 또한 맛있기 그지없었다.
“너의 지배력도 이 몸에겐 통하지 않는다. 한없이 무력한 네놈이 무엇을 할 수 있지?”
확실히 상정외의 상황이다.
지배력도, 몸을 짓뭉게는 킬코드도 통하지 않는다.
데이몬이 불의 검을 쥐었다.
피닉스가 검에 깃들며 곧 그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화르르륵!
[특급 프로세스 ‘용갑주’가 발동합니다.]
[에너지가 손실되고 있습니다.]
[마스터. 후퇴를 권합니다.]
“크흐흐, 언제까지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말이 많군.”
지척에서 불의 검이 용갑주를 찢어내고 있었다. 강력한 장력으로 맞서고 있지만 피닉스는 모든 사사로운 기운을 태우는 권능과도 같은 힘을 지녔다.
아무리 과충전 상태라도 무한정 공격을 받아내기만 할 수는 없다.
짜증이 났다.
저놈의 입을 당장에라도 찢어버리고 싶었다.
‘검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건 검이었다.
지금까지는 제로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제로가 통하지 않는다면,
저 불의 검을 받아낼 검이 필요하다.
순간, 팔에 새겨진 시동어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 나는 빛을 꿰뚫고, 어둠을 물들이는 자.’”
읽어나갈 때마다 해당하는 글자가 떠오른다.
데이몬이 비웃었다.
“이제와서 마법영창이라도 할 셈이냐? 소용없다. 이 불의 새는 모든 마법을 불태우는 힘일지니!”
“‘강철을 먹는 왕이며 신을 베어버리는 칼’.”
나는 한없이 진지하게 영창을 이어나갔다.
이윽고,
“칼리번.”
마지막 시동어를 입에 담았다.
바위에 꽂힌 칼.
“······ 서, 설마.”
데이몬의 두 눈에 불신이 새겨졌다.
마법을 발동한 게 아니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정령 소환······!”
의혹은 확신이 되었다.
이제 다 파악했다고 생각했는데, 끝이 아니었다.
같은 지배자의 싸움. 수를 모두 읽었으니 완전한 승리를 확신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도리어 간파당한 건 자신인 것만 같았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조차 불가능한 정령 소환을 어떻게 평범한 인간 따위가 해낸단 말인가.
천 년 전 사라진 그 신비를 대체 어떻게?
과거 천년 전 존재했다는 정령무기.
작금의 인류가 잃어버린 고대의 힘!
빛의 입자가 손에 모이더니 마침내 칼리번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
‘저 검이 왜······.’
라우넬은 꿈을 꾸었다.
지독한 악몽.
자신이 죽고, 어미가 죽고, 제국이 불타버리는 꿈.
모든 걸 잃으며 좌절하던 꿈을 미친 듯이 반복했다.
황제가 직접 라인하르트를 황태자의 자리에 책봉했던 그때의 기억도 무수히 반복되었다.
계속된 악몽 끝에 정신을 놔버리기라도 한 걸까?
칼리번이 나타난 순간 처음으로 라우넬은 각성했다.
정령. 황궁에 나타난 신비.
뽑는자만이 진정한 군주의 자격이 있다며, 모든 황자들이 도전하고 실패하였다.
라우넬도 마찬가지다.
궁을 개방한 뒤 수많은 이들에게 도전권을 부여했으나 한 명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바위에 꽂힌 검이, 지금 눈앞에 있었다.
‘라인하르트.’
그리고 그 검을 라인하르트가 쥐고 있다.
꿈이다. 악몽이다. 분명히 그럴 것이다.
라인하르트가 칼리번을 쥔 채 휘두르는 게 말이 되지않는다.
무재능.
검에 대한 재능 역시도, 볼품없었으니까.
라인하르트의 몸은 검술을 배울만큼 건강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지금, 자신의 몸을 차지한 데이몬을 압도하고 있었다.
현실이 아니다.
현실이라면, 너무 잔인하지 않나.
‘나는 네가 부럽다.’
라인하르트는 모든 것을 가졌다.
아무런 노력도 없이, 일구어낸 것조차도 없이.
모두가 황태자의 자리로 라우넬을 점지했지만, 단순히 조금 더 빨리 태어났다는 이유로 라인하르트는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그럼에도 라우넬은 남의 탓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부족해서라고 여기고 더 노력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닿지 않는 게 있다는 것을 결국 깨달았다.
‘너는 조금만 노력해도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는 자리에 있지.’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황태자.
그가 조그마한 성과를 낼 때마다 백배천배로 부풀려지며 관심을 받는다.
반면 자신은 조그마한 실수만 해도 더 많은 지탄을 받는다.
라인하르트는 안하무인했지만, 자신은 청렴결백함을 강요받으며 자랐다.
라인하르트로 인해 황실의 소문이 바닥을 길 때, 사람들을 돌보며 대외적으로 시민들의 시선을 돌려놓은 것도 자신이었다.
그래도 괜찮다고 여겼다.
싫지 않았으니까. 사람을 품고 이끄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결국, 정령 역시 라인하르트를 선택한 것이다.
진정한 군주의 자격은 그가 아닌 라인하르트에게 있다고 세상이 선언해버린 것만 같았다.
“크으윽?!”
돌연 데이몬이 몸을 비틀었다.
“이, 이건 또 뭐냐! 내 지배력을······!”
지금까지와 비교도 안 될 수준의 당황스러움이 역력하다.
허나, 데이몬의 발악은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그 자리를 다시 라우넬이 차지했다.
뚝, 뚝.
라우넬의 두 눈에서 피눈물이 떨어진다.
끼아아아아악!
피닉스가 울부짖고 있었다.
폭주현상이다.
그것도 여태껏 겪은 그 어떤 폭주보다도 격렬했다.
“나는 너를 증오한다. 라인하르트.”
멈추지 않는다.
더욱 거세게, 라우넬은 라인하르트를 밀어붙였다.
*
거친 숨소리.
흐르는 땀을 닦아낼 생각조차 못한 채 나는 시선을 돌려, 바닥에 쓰러진 라우넬을 바라봤다.
그 순간 제로가 말했다.
[A.I ‘데이몬’을 제거하시겠습니까?]
[A.I ‘라우넬’을 제거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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