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황제-41화 (41/146)

프렐류드의 숲에서 꼬리가 붙었다.

라인하르트에 관해 물어보고 다니는 이방인. 카를로스 대공 역시 노리고 있었는지 이곳저곳에 끄나풀을 심어둔 게다.

순례길에 오르던 도중 습격당했다.

라우넬 1황자가 지금 지하감옥에 갇혀있는 이유였다.

“걱정마십시오! 제 목숨을 다 바쳐서라도 빠져나가게하겠습니다.”

“분명히 기회가 올 겁니다!”

기사들이 희망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일부러다.

고의로 크게 말해 리치의 동태를 살피려는 것이다.

반응은 없었다.

허나 혹시 모른다.

라우넬이 손가락으로 바닥에 글씨를 적었다.

『놈은 눈을 마주치는 자를 조종할 수 있다.』

넋놓고 있을 순 없었다.

기사들은 그것을 확인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눈을 마주치고 기사 중 한 명이 스스로 목을 꺾었다.

리치의 눈에 정신을 헤집는 흑마법이 걸려있는 게 분명하다.

이어 기사들은 자신이 알고있는 내용을 바닥에 적어나갔다.

『출구까지 127보.』

『마나 회복 완료.』

『리치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지금 탈출하시겠습니까?』

모두 눈을 마주쳤다.

순간.

화르륵!

그들의 전신에 불길이 솟아올랐다.

피닉스 기사단 상위단원만 사용 가능한, 강림의 상태다.

강렬한 불길은 구속구를 태우고 저주를 없앴다.

지글거리는 상태로 철창을 잡자 그대로 녹아내렸다.

네명의 기사단원과 라우넬이 빠르게 감옥을 벗어나, 계단을 올랐다.

지나온 길을 그대로 거슬러 올라갔다.

하지만 이내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여긴······.”

“하늘?”

분명히 출구로 향했으나 있는 건 문이 아니었다.

바깥, 하늘이 보인다.

구름이 수놓인 이곳은 자신들이 잡혀온 북방과는 거리가 멀었다.

‘탑.’

거대한 탑.

하늘까지 치솟은 탑의 정상.

하지만, 이런 건축물은 본 적이 없다.

이렇게 높은 건축물은 생전 처음보는 것이었다.

이세상이 아닌 것 같다.

정신이 붕 떠 있는 기분.

“이곳은 내 ‘라이프 케슬’이다.”

목이 꺾인 시체가 다가왔다.

처음 리치에게 눈이 마주치고 목이 꺾인 기사단원이었다.

기괴하다.

죽은 자에 대한 모욕이었다.

리치에게 몸을 지배당한 그가,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너희는 절대로 이곳을 벗어날······.”

화르르륵!

화염의 검을 만들어낸 라우넬이 리치의 목을 베었다.

“··· 수 없다.”

그러자 이번에는 바로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리 고지했음에도 단원 중 한 명이 놈과 눈을 마주친 게 분명하다.

죽은 단원의 몸으로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던 탓이다.

“전부 눈 감아!”

“어둠 속에서 나를 상대하겠다는 거냐?”

어둠을 밝히는 불꽃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선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법.

닿지 않는다.

절망의 늪에 빠져버린 기분이었다.

라우넬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

‘더 좌절하고 더 절망해라.’

데이몬은 끊임없이 라우넬을 시험했다.

좌절과 절망의 힘은 데스나이트가 되는 원동력이다.

극한의 절망을 맛본 소드마스터의 시체는 구하기 힘들다.

그들의 정신은 그 격만큼이나 굳건하다. 그래서 죽을 때 그냥 얌전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다.

허나 끊임없는 시련은 정신을 마모시키기 마련.

데이몬의 앞에, 지하감옥이 있었다.

“사, 살려줘······.”

“용서해줘. 제발!”

모두가 잠이 든 채 악몽을 꾸는 중이다.

데이몬은 꿈과 현실의 경계를 교묘하게 조작하는 능력을 타고났다.

묘한 현실감과 상황은 그들을 더욱 큰 절망으로 몰고가고, 죽일 것이다.

‘최상급의 소재로군.’

데이몬이 탐욕스러운 눈으로 라우넬을 바라봤다.

생각보다 더 좋은 소재다. 쉽게 굴하지 않는 강철의 정신을 타고났다.

게다가 특이한 마나연공법으로 육체를 단련했다. 불로 담금질한 육체와 저 정신은 데스나이트가 될 수밖에 없는 소재였다.

데스나이트는 소드마스터를 농락할 수준으로 강하다.

흑마법의 끝은 리치이고, 리치의 수준은 데스나이트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 없느냐로 갈린다.

‘잠재력까지 충만해. 여태껏 만든 데스나이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개체가 될 가능성이 있다.’

데이몬은 이미 여러번 데스나이트를 만들어보았다.

더 깊은 지하, 아껴두고 있는 ‘용’의 시체를 제외하면, 이놈은 최고다.

지이이이잉.

순간 들려오는 이명음.

데이몬의 표정이 굳었다.

‘뭐냐. 누가 내 영역에 침범했느냐.’

바깥에 걸어둔 경계마법들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해체되고 있었다.

비정상적이다.

애당초 이곳을 아는 사람은 카를로스와 그 휘하 몇밖에 없었다.

그들이 경계마법을 굳이 해체하며 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외부의 침입이라는 건데.

‘다가올수록 나이트 급의 언데드들이 즐비하다. 결코 뚫을 순······.’

지이이잉.

지이이이이잉!

쉴 새 없이 이명이 들린다.

뚫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순식간에. 어찌할 틈도 없이.

‘성지.’

이만한 화공을 퍼부울 수 있는 곳, 카를로스가 아니라면 성지밖에 없었다.

위치를 알아내고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데이몬이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허공에서 해골문양의 지팡이 하나가 솟아올랐다.

그것을 쥔 데이몬이 영창을 외웠다.

“일어나라, 소드마스터들이여.”

북방의 전장에서 죽은 카를로스 대공 휘하의 소드마스터들이 깨어났다.

“일어나라, 파간들이여.”

강력했던 파간들이 흉측한 모습으로 일어났다.

“일어나라, 죽음의 왕들이여.”

그리고 아껴두었던 보물을 꺼냈다.

죽음의 왕, 네 구의 데스나이트.

무적의 군단이 완성됐다.

절대로 질 수 없는 구성이었다.

이 정도면 왕국 하나를 지울 수 있는 전력이다.

‘쳐들어온 걸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죽이고, 모조리 시체로 사육해주마.

데이몬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

재밌는 걸 보았다.

처음에는 잘못 본 건 줄 알았다.

‘라우넬.’

왜 네가 거기 있는 것이냐.

궁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이어가야할 녀석이 북방에 왔다.

무엇을 위해?

‘북방의 변화를 살피고자 황제가 보낸 거겠지.’

그림자의 총괄인 크로프트가 이곳에 있다.

대대적으로 기사단을 파병할 수는 없으니 라우넬을 보낸 것이다.

항상 의지가 충만한 라우넬은 덥썩 물고 달려왔을 테고.

내 행적을 조사하던 중, 카를로스 대공에게 붙잡힌 모양이다.

‘너무 뻔하다.’

웃음이 나올 정도로 뻔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유일하게 이해가 안 가는 건 카를로스 대공이다.

평소의 그라면 절대로 라우넬을 데이몬에게 넘기는 짓을 하지 않았을 터.

라우넬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죽이려고 넘겼다.

‘흔들리고 있다.’

카를로스 대공.

그가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테베우스가 죽고, 계획이 틀어지자 조바심이라도 생긴 건지.

철혈, 철벽과도 같은 카를로스 대공도 결국 인간이라는 증거였다.

그가 흔들리고 있으니 좋아해야할 일이다.

분명히 좋아해야할 일인데.

‘기분이 나쁘군.’

과거, 나는 모든 형제들을 죽였다.

황비들과 함께 처형시켰다.

돌아왔다고 한들 그 사실마저 지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한 번 겪은 일.

기분 나쁠 것도 없었다.

그런데 기분이 더러웠다.

내가 아닌 남에 의해 죽는 게, 죽어야만 하는 게.

이익을 위해서라면 내버려두는 게 맞다.

계속해서 데이몬을 감시하며 카를로스 대공을 무너트릴 암초로 삼는 게 맞았다.

라우넬의 죽음?

같은 피가 흐른다고 할지언정 형제간의 우애조차 없는 사이 아닌가.

하지만, 이 죽음을 방치한다면 나는 결국 과거와 같아질 것이다.

죽여도 내가 죽인다.

살리는 것도 내가 살린다.

남에게 생사여탈권을 쥐여주는 건 말이 안 된다.

“죽으려고 혼자 기어들어왔구나, 신성군주여.”

리치 데이몬이 음습하게 말했다.

바깥은 이미 전쟁터다.

나 홀로 놈의 영역에 들어온 것이다.

데이몬의 그림자를 통해 해골병사들이 기어나왔다.

“멍청한 녀석. 성황조차도 내 앞에선 벌벌 떨어야하거늘.”

“이상하군. 보통은 ‘왜’ 나 혼자 들어오게 된 건지 궁금해야 정상 아닌가?”

크로프트도, 융도, 에디스도 들어오지 못한 영역이다.

제아무리 바깥의 언데드가 많고 강하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목적은 나를 지키는 것이었다.

지켜야할 이들조차 들어오지 못한 결계의 안쪽을 ‘어떻게’, 혹은 ‘왜’ 나 혼자 들어왔는지 궁금해 해야 정상일진대.

리치가 되면서 뇌까지 썩어버렸는지 마냥 좋아만 하고 있었다.

“후후. 네놈이 뭐라 해도 변하는 건 없다. 이번에야말로 지배해주마.”

다른 중간매체를 통하지 않고 본체로 하는 혼령지배는 절대적이다.

설령 상대가 소드마스터라도 자신의 눈앞에서 지배력을 떨쳐낼 순 없었다.

게다가 눈이 마주쳤다.

이번에는 다르다.

그런데 느낌이 없었다.

‘통하지 않는다고?’

아예 통하지가 않는다.

마치 면역이라도 생겨버린 것처럼.

아니, 아니다. 이건 통하지 않는 게 아니다.

혼령지배 자체가 실행되지 않은 것이다.

‘내 오른쪽 눈이?’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의 오른쪽 눈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움직이고 있다는걸.

역으로 지배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데이몬은 당황하고 말았다.

“어, 언제부터냐?”

“처음부터다.”

어깨를 으쓱하며 답해주었다.

그제야 데이몬은 이해할 수 있었다.

대량의 언데드를 만들려는 공작이 전부 막힌 것도, 극비리에 존재하는 이 위치가 들통난 것도 모두 자신의 오른쪽 눈 때문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역시 지배계통의 에픽을 소유한 게 분명하다.

콰득!

데이몬이 스스로 오른쪽 눈을 파냈다.

지배당한 눈을 파냈으니 이제는 괜찮으리라.

“오냐, 네놈은 반드시 해부해주. 음?!”

눈앞이 까매졌다.

세상이 어둠으로 물들었다.

이번에는 왼쪽 눈이 지배당한 것이다.

‘한쪽 눈에 대한 지배였구나.’

특정한 눈이 아니라, 하나의 눈을 지배하는 것이었나보다.

조건을 알았으면 됐다.

자신이 눈을 마주해야 상대를 지배할 수 있듯이, 저 녀석도 특정부위를 지배할 수 있는 지배력을 지닌 게다.

‘내가 더 위다.’

몰랐다면 모를까, 알게 된 이상 당하지 않는다.

놈에게는 없고 자신에게만 있는 것.

같은 지배자의 힘이더라도 데이몬은 몸을 갈아탈 수 있었다.

살아있는 대상에게는 눈을 마주쳐야 하지만, 자신이 언데드로 만든 시체에 대해선 시야 내에만 있다면 마음껏 옮겨탈 수 있었다.

놈은 기껏해야 지배한 몸에 대해서만 유지가 될 터.

확실해졌다. 자신의 권능이 저놈보다 상위호환이다.

데이몬은 미련 없이 몸을 갈아탔다.

해골병사 중 하나로.

이제 놈도 자신을 어찌할 순 없으리라.

퍼엉!

그렇게 믿은 순간, 해골병사의 머리가 터졌다.

정확히 갈아탄 몸을 감지해내고 터트린 것이다.

그것도 무영창의 마법으로.

‘우연이다.’

그래. 우연이 확실하다.

데이몬이 다시 몸을 갈아탔다.

퍼엉!

순식간에 머리가 터졌다.

하나, 둘, 준비해둔 해골병사들의 머리가 죄다 터졌다.

남은 건 한구.

데이몬의 두 눈에 두려움이 가득찼다.

놈이 혼자서 들어온 이유를 이제 알겠다.

갈아탈 몸은 적을수록 좋으니까.

게다가 저 눈은 마치, 악귀와도 같지 않은가.

놈은 인간이 아니다.

“악마교단에선 리치를 불사신이라고 부른다지?”

나는 진정으로 궁금했다.

불사신. 절대로 죽지 않아서 그렇게 부를 터인데.

“어디 한 번 보자꾸나. 정말로 영원불멸한 존재인지.”

< 격이 다르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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