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황제-39화 (39/146)

1황자 라우넬이 산맥을 넘어 북방에 도착했다.

은밀하게 움직이라는 황제 데우스의 명령에 따라, 최소한의 인원만 대동한 채 먼 길을 떠나온 것이다.

‘황제폐하께서 거는 기대가 크다.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

데우스가 이만한 중임을 맡긴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전장의 한복판. 태풍과도 같은 곳에 황자들을 보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북방에서 일어나는 일을 은밀하게 알아보거라.

아무도 모르게 정보를 수집하라는 뜻이다.

본래라면 그림자들이 처리해야할 문제이나, 그조차 여의치 않다는 의미였다.

데우스가 전장으로 황자를 보낸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만큼 자신을 믿고 있다는 방증일 터.

‘라인하르트와 크로프트가 북방으로 향했다.’

황제 데우스가 북방으로 자신을 보낸 이유.

별다른 설명은 하지 않았지만 라우넬은 이미 알고 있었다.

둘의 행방을 찾고, 카를로스 대공의 움직임을 살피기 위해서이리라.

라우넬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북방을 돌았다.

중립의 도시들을 지나며 정보를 수집했다.

이후 프렐류드의 숲에 도착했을 때 라우넬은 확신했다.

‘둘 다 이곳에 왔다. 브리저튼 후작을 처형하고, 악마의 죽음을 태웠어.’

악마의 죽음!

다루는 모든 이는 사형에 처하는 죽음의 마약.

그 이름을 듣고 라우넬은 주먹을 쥐어보였다.

브리저튼 후작이 혼자 저지른 짓일 리 만무하다.

분명히 카를로스 대공이 배후에 있다.

그러나 이는 황실에 보고된 바 없는 내용이다.

‘오만방자한놈. 반드시 죗값을 치루게 만들어주마.’

다른 이라면 문제삼지 못하겠지만 라우넬은 달랐다.

제국으로 돌아가면 기필코 카를로스 대공에게 죗값을 물을 것이다.

제아무리 그의 힘이 강력하다 할지언정, 지엄한 제국의 법은 모든 제국민 위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몰랐다면 모를까 알게 된 이상 가만히 넘어갈 수 없었다.

“브리저튼 후작을 처형만 하고 끝냈느냐? 허튼 짓을 하진 않았고?”

“다정한 분이셨어요. 위대한 영혼의 인도자셨지요.”

“그럴 리가 없다. 잘못본 거 아닌가?”

라인하르트에 대해 묻자 프렐류드의 숲 사람들은 한결같은 대답만 내뱉었다.

모두 칭찬일색이었다.

하지만 라우넬은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라인하르트가 다정하다?’

형제지만 단 한 번도 라우넬은 라인하르트를 형이라 생각한 적이 없었다.

광증을 핑계로 그는 모든 걸 가졌다.

황태자의 자리도, 아버지의 관심조차도.

당연히 라인하르트는 다정함과는 거리가 먼 성격의 소유자였다.

미쳐 날뛸 때의 눈은 악귀와도 같다.

평상시에도 활화산 같은 존재가 바로 라인하르트였다.

그런 그를 어떻게 형제로 인정할 수 있겠는가.

자신과는 너무나도 다른 인간이다.

아니, 같은 인간인지조차 의심스러운 괴물이었다.

그런데 다정스러웠다니?

또 다른 이야기도 들었다.

“아모라와 아피르를 구해주셨어요. 아이들이 많이 보고싶어하는데······ 어딜 가신 건지. 다시 볼 수는 있는 건지.”

무척이나 아쉬워하는 표정이다.

들으면 들을수록 라인하르트는 아닌 것 같았다.

고개를저었다.

무언가의 착오이리라. 그냥 다른 사람이겠지.

라우넬의 목표는 라인하르트가 북방에서 허튼 짓을 하기 전에 제국으로 압송하는 것이었다.

예상 경로를 따라 추적을 시작했다.

“성지에서 신이 탄생하셨다!”

“모두 성지로 향하자!”

머지않아 라우넬은 거대한 행렬을 목격했다.

순례길.

모든 북방민들이 성지로 향하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행렬은 그야말로 장엄한 광경이었다.

‘천 년만에 나타난 대군주가 신이라니. 확인해봐야겠군.’

라우넬은 그 행렬에 조용히 끼어들었다.

*

대군주회의를 통해 치료할 파간을 선별했다.

이후 생명이 경각에 달한 파간을 순서로 방사성 물질을 제거해나갔다.

물론 100% 모두 살아날 순 없었다.

평균적인 생존률은 50% 안팎. 돌연변이의 원인을 제거할 뿐 나노머신의 재생능력까지 더해주지는 못하는 탓이다.

죽으면 죽는 대로 ‘믿음이 부족해서다’라는 핑계를 둘러대면 그만이었으니.

허나 그 절반의 생존만으로도 충분히 기적이라 할만했다.

“늦었지만 축하해요. 성지의 신비를 먹어치우고 북방의 신이 되신걸.”

늦은 저녁.

방 안으로 카이첼이 들어왔다.

그간 착실하게 에디스의 손녀로 지냈지만, 그 속내는 현자의 돌에 깃든 바알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카이첼이 아니라 바알로서 나를 대하고 있었다.

숨소리가 느껴질 정도로 가까이 다가온 카이첼이 말했다.

“자, 선물이에요.”

그녀의 손이 턱을 쓸며 이내 가슴팍으로 내려왔다.

부드러운 손길로 희롱하듯 손가락을 돌려댄다.

유혹이라도 하는 것 같지만 단순한 장난이다.

인간인 라인하르트가 그녀에게 반응하는지 보고자하는 것이다.

내게서 별다른 반응이 없자, 재미없다는 듯 손을 뗀 그녀가 이번엔 작은 물병 하나를 건넸다.

이게 진짜 선물이다.

“성공했나보군.”

“순도 99%의 악마의 죽음을 섞었어요. 기존의 것들은 기껏해야 70%정도더군요.”

물병 안에는 푸른색의 걸쭉한 용액이 가득차있었다.

악마의 죽음을 고농도로 섞은 물건. 자칫 잘못 마시면 죽을 수도 있다.

“수고했다.”

“설마 그 한 마디가 끝이에요? 밤잠 설쳐가며 만든 저와 할아버지의 노력이?”

나는 이래보여도 꽤 놀라고 있었다.

짧은 시간에 순도를 거의 끝까지 끌어올렸다.

궁의 연금술사도 해내지 못할 고난도의 기술일진대.

“돌아가면 원하는만큼 황금을 주도록 하지.”

내가 운용할 수 있는 금이 얼마나 있는지 잠시 계산해보았다.

별다른 재산은 없지만, 품위유지를 위해 황실에서 운용하는 금고가 따로 존재했다.

반강제로 궁에 칩거하여 돈 쓸일이 없었으니 꽤 쌓여있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어지간한 공국의 1년 치 예산쯤은 되지 않을까?

눈길을 돌리자, 카이첼은 못 볼 걸 봤다는 표정이었다.

“친구 없죠?”

“있다.”

“개? 고양이? 하여튼 사람은 아닐 거고.”

“이사벨라. 사람이다.”

“세상에. 이제는 상상 속의 친구까지······.”

“헛소리는 집어치워라.”

“황금은 필요 없어요. 대신 저라도 친구가 되어드려야겠네요.”

카이첼이 씽긋 미소지었다.

이것도 역시, 계산된 미소다.

‘진짜로 이기고 돌아올 줄이야.’

성지 안에 있던 건 평범한 에픽이 아니었다.

굉장히 강력한, 태고의 에픽이라 불릴 수준의 폭군이 그 안에 있었다.

그런데 라인하르트는 정면으로 돌파하고 돌아왔다.

심지어 먹어치운 것 같다.

‘정체가 뭘까?’

현자의 돌.

말마따나 세상의 모든 진리가 담긴 ‘진리의 도서관’을 그녀는 이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런 에픽은 도서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뭐라고 한 마디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의 기능을 담고 있는 에픽. 전지전능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를 정도로 만능이었다.

어디가 한계인지, 아니면 한계가 없는 건지.

궁금했다.

‘재밌기도 하고.’

에픽도 에픽이지만, 저 인간 자체도 굉장히 흥미가 깊었다.

라인하르트.

마찬가지로 종잡을 수 없는 인간.

에픽에게 황금을 쥐어준다는 발언은 상식 밖이었다.

어딘가 어그러지고 비틀려있지만, 그가 발을 옮기면 그곳은 길이 된다.

“그런데 그 물건은 어디에 쓰려고 그러는 거죠? 제가 만들긴 했지만, 제 생각에 그건 독약과 다를 바가 없어요.”

순도 높은 악마의 죽음과 몇몇 재료들을 섞어 만든 용액이다.

그것들이 섞여 무슨 효과를 발휘하는지는 카이첼도 알 수 없었다.

황태자의 명령에 따라서 조합했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분명한건 잘못 음용했다간 그대로 골로 갈 거라는 사실이었다.

효과가 가루로 먹을 때보다 배로 강한 건 확실했으니.

“내가 쓸 거다.”

“······ 예?”

이건 또 전혀 예상외의 대답이었다.

에디스의 걱정처럼 저들의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고자 쓸 줄 알았다.

순도 높은 악마의 죽음으로 북방을 지배하리라 생각했건만.

“육체적인 중독성은 줄여놨지만, 정신적으로 의존하게 될 수도 있어요. 한 번 의존하게 되면 아무리 의지가 강한 인간도 결국 무너지게 만드는 게······.”

“알고 있다.”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과거, 머릿속의 벌레로 인해 고통에 몸부림칠 때.

그 고통을 줄이고자 안 써본 약이 없었다. 마약을 포함해서.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건 악마의 죽음이라 불리는 것의 원료에 가깝다. 이제는 구하는 게 불가능한 악마 교단의 잔재.

이 약에 중독되면 모든 신체기능이 비약적으로 올라가고, 고통을 느끼지 않으며 오직 즐거운 감정만 느낄 수 있게 된다.

병사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광전사로 변하는 이유다.

제국이 대대적으로 교단의 씨를 말려놓은 탓에 순도높은 물건은 구할 수 없다.

카를로스 대공도 순도 낮은 악마의 죽음에 이것저것을 섞어 비슷한 효용을 발휘하게끔 만든 것에 불과했다.

‘악마의 죽음은 포션의 주원료가 된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후에 악마의 죽음은 ‘포션’이라 불리는 물건의 주원료가 된다.

상처에 뿌리는 것만으로도 상처를 아물게 하며, 순도 높은 물약은 반 죽은 환자도 살려낼 비약이었다.

신성교의 위세가 포션의 출현으로 땅에 떨어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런 의미에서, 전쟁이 인류사의 관점에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전쟁은 인류의 기술을 대폭 발전시켰다.

포션과 같은 물건들이 다수 개발됐으니까.

‘순도 높은 악마의 죽음은 체내마나를 활성화하는 기능이 있지.’

체내마나.

말인 즉, 체내 나노머신을 활성화시킨다.

활성화한 나노머신이 신체의 재생을 촉진하는 것이다.

제로가 내 세포재생을 30배 촉진한 것과 비슷한 원리다.

그리고 포션이 망가진 나노머신조차도 복구해낼 수 있다면 파간들의 생존가능성이 대폭 상승할 터.

파간만이 아니라 내게도 필요한 기능이었다.

‘닳은 나노머신의 에너지를 수급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노머신 제로의 기능은 뛰어나지만 문제는 에너지다.

성지에서도 느꼈듯이 닳은 에너지를 수급할 방법이 필요했다.

가프 덕분에 요행으로 살아났지만 그런 상황을 반복할 수도 없지 않나.

용갑주의 에너지 소모도 극심한데, 체내의 나노머신을 늘리는 건 한계가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 포션을 만들었다.

최고의 연금술사가 배합한 포션이니 그 효용은 확실하리라.

물론 상용화할 단계도, 그 흔한 실험조차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마셨다가 죽어도 하나 이상할 게 없는 위험한 물건이다.

“자, 잠깐!”

벌컥!

카이첼의 기함을 뒤로한 채 포션을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쓰다.

과거에 마셨던 포션은 꿀 같은 달콤한 맛이었는데.

“음.”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심장 뛰는 소리가 귓가로 울리며, 세상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같은 현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체내로 독성물질이 유입됐습니다.]

[유해성분을 분해합니다.]

[급속도로 뇌신경에 작용하는 향정신성 물질을 차단했습니다.]

[나노머신의 먹이가 되는 미생물 ‘나노바이오’를 발견했습니다.]

나노바이오?

그간 나노머신의 먹이는 빛과 전기인 줄 알았다.

체내에서 합성되는 생체전기를 먹고 산다고 제로가 직접 말했던 것이다.

또한 외부에서의 충격으로 에너지를 회복하려면 최소 10만 볼트 이상의 전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번개를 맞거나, 말피엘의 전격에 제로가 깨어났듯 그만한 충격 없이는 충전이 불가능하다는 거다.

그런데 생소한 이름의 ‘먹이’를 발견했다니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나노머신의 기능이 일시적으로 향상됩니다.]

[과충전된 잉여 에너지를 세포에 축적합니다.]

[뇌의 동시 활성화 영역이 확대됩니다.]

[26%]

[27%]

······.

[30%]

30%.

25%에서 멈춰있던 동시활성 영역이 30%로 확대되자 내 눈앞에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신세계가 펼쳐졌다.

*

‘파간들을 저주로부터 해방했다. 무슨 수를 쓴 거지?’

독수리가 하늘을 배회하며 성지를 관찰했다.

그 독수리를 조종하는 건 바로 데이몬이었다.

카를로스 대공의 숨겨진 조력자이며, 수백년을 살아온 리치인 그는 자신의 정신을 다른 그릇에 심어서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그는 대공의 부름에 따라 조건을 내걸고 이 전장에 참여했다.

본래라면 성지를 정복하기 전까지는 나서지 않을 계획이었는데, 성지에 나타난 ‘대신성군주’에 의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과연, 카를로스가 시간을 지연시킬만하군.’

파간을 비롯한 모든 군주들이 성지에 모여있었다.

그 숫자는 대략 8만.

제국군이 훨씬 많지만 성지의 특성상 수비가 유리하다.

8만이면 능히 20만을 상대할 수 있다.

자신이 조금 도움을 줘야할 것 같았다.

‘저게 뭐지?’

한참을 배회하자 파간들이 푸른색의 물약을 먹고 있다.

물약을 먹자 상처가 치유되고 가파르게 새살이 돋았다.

“오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아······.”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무릎을 꿇고 겸허한 자세로 푸른색 물약을 마시고있었다.

‘저 물약이 파간들을 치료한 건가?’

파간은 골치가 아프다. 생명도 짧은 주제에 힘은 무식하게 강했다.

하지만 한 번 파간이 되면 절대로 치료할 수 없다.

수백년을 산 데이몬은 수많은 생체실험을 해봤지만, 파간의 돌연변이 현상만큼은 도저히 손을 댈 수 없었다.

자신이 실패한 걸 누군가가 해냈다.

저 물약은 파간들이 잃어버린 재생능력을 되살려주었다.

단순히 수명만 늘어나는 게 아니다.

신체능력이 더욱 향상되고 감각도 예민해지기 마련이다.

재생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전투능력이 두 배는 올라가는 셈이다.

카를로스 대공이 지체할 만 하다.

허나, 자신이 전장에 참여한 이상 패배는 없다.

‘저놈이 대신성군주로군.’

마침내 찾았다.

저 물약을 배포하며 신이 된 존재.

용의 투구를 쓰고 있는 저놈이 필시 대신성군주렸다.

‘지배해주마.’

오히려 일이 쉬워졌다.

저놈의 정신을 지배해 몸을 강탈하면 북방전역을 얻게 된다.

데이몬이 영원불멸하며 살 수 있는 비결이었다.

그는 리치가 되며 에픽을 각성했다.

그 자체가 에픽이 된 것이다.

에픽에 새겨진 권능은 혼령지배.

권능을 발현하면 저 대신성군주를 지배할 수 있다.

권능을 발현하는 조건은 간단하다.

눈만 마주치면 된다.

눈만 마주치면 저 몸은 자신의 것이 된다.

그런데.

‘음?’

하늘에서 내려온 순간, 독수리에게서 신호가 끊겼다.

세상이 까맣게 변했다.

무언가가 눈깜빡할 사이에 독수리를 죽인 것이다.

‘방비가 제법이로구나. 그러나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다음은 바퀴벌레였다.

작은 굴을 따라 이동하며 놈의 방까지 침입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방에 침입한 순간 신호가 끊겼다.

‘대마법사의 마나벽?’

이 정도면 8서클 대마법사가 직접 쳐둔 마나벽이다.

24시간 보호하려거든 어마어마한 마나가 소모될텐데 그짓을 하고 있다.

수십번을 다른 대상으로 도전했지만 모조리 실패했다.

대신성군주의 옆에 있는 검사와 대마법사.

특히 검사의 감각이 너무나도 뛰어났다.

‘드디어 혼자 있구나!’

성지 내의 인간을 지배하고, 침투한 날의 일이었다.

대신성군주가 웬일로 혼자 나왔다.

마나벽도 없었다.

그는 뒷짐을 쥔채 뒤뜰에서 밤하늘을 구경하고 있었다.

다시없을 절호의 기회다.

“근래에 들어 수상한 움직임이 있다더니, 그게 네놈인가보군.”

데이몬을 발견한 대신성군주, 라인하르트가 말했다.

멍청한놈.

알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무방비하게 혼자 나왔단 건가?

‘마주쳤다.’

순간 두 눈이 마주쳤다.

데이몬은 미소지었다.

동시에 그의 권능 혼령지배가 발동했다.

데이몬의 몸이 축 늘어지고, 이어 라인하르트의 몸 안으로 정신을 욱여넣었다.

“후후. 생각보다 멍청한 놈이라서 다행이야.”

라인하르트의 몸을 차지한 데이몬이 웃어보였다.

이제 북방을 궤멸시킬 차례다.

저 물약의 비밀을 알아내고, 군주들을 와해해 카를로스가 성지에 입성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면 자신의 할 일은 끝이 난다.

“음······?”

하지만 이내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정신이 지워지고 있었다.

아니, 지워지는 게 아니다.

‘파고들고 있어?’

자신의 정신을 역으로 차지하려고 들었다.

급히 육체의 지배권을 포기했다.

그럼에도 놈은 집요하게 자신을 놓지 않았다.

‘감히 나를 빼앗겠다?’

역으로 자신을 뺏으려 한다. 어이가 없는 놈이었다.

데이몬은 모든 걸 차단한 채 본래의 몸으로 돌아왔다.

조금만 늦었다면 그대로 정신을 뺏기거나, 지워질 뻔했다.

빠드득!

‘뭐하는 놈인지는 모르겠다만, 에픽을 소유한 놈인 건 분명하다.’

놈이 에픽을 소유했다면 자신과 같은 권능을 지녔을 터.

그것도 자신과 비슷한 류의 지배적인 권능인 듯싶었다.

에픽 소유자는 오랜만이었다.

그리 생각하자 기분이 조금 홀가분해졌다.

오히려 사냥하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

‘다음에는 기필코 빼앗아주마.’

저 몸도, 그리고 에픽도.

데이몬이 고개를 저으며 퀘퀘한 방을 떠나 지하감옥으로 내려갔다.

상대가 에픽 소유자라면 더 철저하게 준비해야한다.

순간, 데이몬의 오른쪽 눈이 빙그르르 돌았다.

그러나 데이몬은 그를 인지하지 못했다.

제로에게 시야가 공유되고 있다는 걸, 전혀 알지 못했다.

< 데이몬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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