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황제-36화 (36/146)

황제, 데우스가 황좌에 앉아 이맛살을 구겼다.

눈앞에 놓인 서신들.

이십여 장의 이 서신은 모두 카를로스 대공 측으로부터 전달된 것이다.

쓰여진 글자는 전부 다르지만 내용은 하나로 귀결됐다.

『라인하르트 황태자를 북부로 보낸 저의가 무엇이냐?』

정령이 나타난 날 라인하르트는 황궁에서 모습을 감췄다.

제르민, 에디스, 그리고 크로프트와 함께 마차를 끌고 북방으로 향했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건 크로프트였다.

그림자의 총괄이며 자신의 충실한 기사인 그가, 말도 없이 라인하르트를 따라갔다.

대체 왜, 그것도 하필 한창 전쟁중인 북방으로 향했단 말인가.

‘라인하르트. 거기서 뭘 하려는 것이냐?’

다시 광증이 돋지 않는 한 죽음만이 만연한 그곳에 발길을 할 이유가 없었다.

하라는 특급 죄수동의 관리는 안 하고 북방에 간 저의를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알 수가 없음이었다.

분명한 건 모두의 예상 밖에서 행동하고 있다는 건데.

카를로스와 라인하르트가 북방에서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 건지 알아내야겠다.

분명한 건 모두의 예상 밖에서 행동하고 있다는 건데.

‘북벌에 변수가 생겼다. 확인을 해야한다.’

카를로스와 라인하르트가 북방에서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 건지 알아내야겠다.

자신이 직접 움직이는 건 불가하다.

‘북벌에 변수가 생겼다. 확인을 해야한다.’

자신이 직접 움직이는 건 불가하다.

허나 믿을만한 사람을 보내서 북방의 정황을 직접 확인케 할 수는 있었다.

“1황자 라우넬을 조용히 불러오너라.”

*

샨은 시발점이었다.

그가 눈물을 흘리며 참회하는 순간, 지켜보던 파간들의 믿음은 더없이 굳건해졌다.

이제 더 이상 그의 신위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자는 없었다.

기적을 몰고오는자.

그것을 신이 아니면 무엇이라 부르겠는가.

‘이젠 나도 헷갈리는구나.’

며칠간 이어진 장대한 행렬을 보며 에디스는 혼란해하고 있었다.

군주들이 찾아오고, 파간들이 치료받으며 성지는 순식간에 활기가 돌았다.

다른 군주나 전사들은 몰라도 모든 파간은 라인하르트를 정말 신으로 여겼다.

겸허히 죽음을 기다릴뿐인 그들에게 라인하르트는 구원자와 같았기 때문이다.

‘전하께선 정말 신인건가?’

그런데 이젠 에디스도 헷갈릴 지경이었다.

라인하르트가 연달아 보여주는 이적들은 단순히 ‘천재’라는 단어로 정의하기엔 무리가 있었던 탓이다.

정령 칼리번의 말마따나, 처음에는 정령왕과 계약했다고 여겼다.

정령왕과 계약하면 영창 없이 마법도 사용할 수 있는 거라고 나름대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성지는 완전히 별개다.

저 저주받은 마나는 모든 것을 갉아먹는다.

자신조차도 들어가면 백중백 죽을 것이다.

그런데 라인하르트는 거침없이 성지에 들어갔다.

성지의 끝까지 도달해 용을 품고 나오는가하면 저주를 풀어내는 힘까지 생겼다.

‘천재도, 정령왕의 계약자도 아니라면.’

그것은 그럼 신밖에 남지 않지 않나.

8서클의 대마법사가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게 알려지면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직접 라인하르트 황태자를 보게된다면 이 생각이 결코 우스갯소리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었다.

“할아버지, 무슨 생각을 그렇게 열심히해요?”

“8대 신비······.”

에디스는 정의내렸다.

마법사는 정의를 내리는 존재니까.

라인하르트는 새롭게 탄생한 8대 신비다.

카이첼이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깨닫곤 폭소를 흘렸다.

“8대 신비요? 아, 설마 전하가?”

“크흠. 아니다. 그보다 너는 뭘 하고 있는 게냐?”

카이첼은 둥그런 구처럼 생긴 철제 장치 안으로 북방에서 구한 약재와 하얀색 가루 등을 집어넣어 배합하고 있었다.

저 동구런 철제 구는 연금술사들이 사용한다는 마도공학장치다.

주로 무언가를 합성할 때 사용하는데, 마법이 담긴 일종의 마도구였다.

“전하께서 지시한 일이 있어서 뭘 좀 만들고 있었어요. 마침 구상이 끝나서.”

“‘악마의 죽음’을 이용해서 만들 게 있다고?”

허나 에디스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물었다.

악마의 죽음을 태우긴 했지만 전부 태우진 않았다.

상당한 양을 마차에 숨겨, 그대로 싣고 들어왔다.

라인하르트의 명령만 아니었다면 지금이라도 전부 불태워버리고 싶었다.

혹시나 누가 흡입이라도 할까 에디스는 마차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런데 불현 듯 카이첼이 그 약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이다.

카이첼은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답했다.

“이 약은 순도가 너무 낮아요. 싸구려 연금술사가 이런 싸구려를 만드니까 별별 부작용이 나타나는 거라고요.”

“아니······ 약의 순도를 높여서 뭘 어쩌려는 거냐?”

그러니까 지금 카이첼은 ‘악마의 죽음’이라 불리는 마약의 순도를 높이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악마의 죽음을 악마의 초죽음으로 만들려는 건지.

게다가 카이첼은 진짜 연금술사다.

연금술사의 세계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실력자였다.

최초로 현자의 돌까지 연성해낸, 진짜배기 말이다.

그녀가 마음먹고 손을 댄다면 연성해내지 못할 게 없었다.

“그거야 전 모르죠. 전하가 시키셔서 하는건데. 그보다 보고만 있지 말고 좀 도와주세요. 불순물을 제거하려면 북방에서 자생하는 약초 몇 개가 더 필요하거든요.”

카이첼은 한 번 빠져들면 아무도 못 말린다.

그런 성격은 여전했지만, 에디스는 여전히 걱정이 밀려들었다.

‘설마 마약을 사용해서 신성을 얻으시려는 겁니까?’

그런 곳도 있었다.

정신을 어지럽히고 환각을 보게만드는 약을 이용해, 어마어마한 속도로 교세를 넓힌 악의 교단.

악마의 죽음을 만들어낸 근원지!

제국이 악마의 죽음을 취급하는 자 모두를 사형에 처하게 만든 원인이었다.

그래서 에디스는 제발 그것만은 아니길 간절히 빌었다.

*

길고 둥그런 원목탁자의 주변으로 일곱 군주가 모두 모여있었다.

검은 곰의 탈을 쓴 샨, 그리고 나머지 여섯 군주가 동시에 나를 쳐다보는 중이었다.

그 뒤로 한 명씩 자신이 가장 믿는 전사들을 배치해 두었는데, 그 위용은 나조차도 제법 놀랄 정도였다.

‘이만한 전력이 있으면서 가만히 있었다?’

바깥에 있는 전사들을 모두 합치면 능히 카를로스 대공을 대적할 수준이다.

이만한 저력이 있으면서 뭉치지 않았다.

성지가 공격당하는 걸 그저 보고만 있었다.

왜?

‘다들 사이가 좋지는 않은 모양이군.’

적대적이다.

그들은 나만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고 있었다.

마땅히 지켜야할 장소에 모이는 것조차 꺼려할 정도로.

내가 아니었다면 저들이 이곳에 모일 일 역시 없었을 것이다.

“파간의 치료가 가능하다지?”

1군주, 거대한 거구의 전사가 말했다.

북방에서 가장 큰 파벌을 지닌 자.

거친 북방의 남자다운 기백이었다.

파간이 아니지만, 순수 실력만으로도 그 이상의 경지에 도달한 존재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군주들은 모두 강했다.

파벌 내에서 가장 강한 자가 군주가 될 테니.

특출난 전사라고 모두 파간이 되는 건 아닌 듯싶었다.

하기야, 군주는 통치를 해야하는데 수명이 짧아지면 문제가 있겠지.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믿음만이 그들을 구원하노라.”

“··· 헛소리는 됐다. 무엇을 원하냐? 금은보화? 여자? 부군주의 자리를 내어주마. 내게 협력해라.”

파간을 치료한다는 것.

그것은 장기적으로 군주의 힘을 키우는 일이다.

파벌에 속한 파간들의 수명을 늘릴 수만 있다면, 파간을 만들어도 부작용을 없앨 수만 있다면, 이 얼마나 강력한 군단이 완성되겠는가.

“내게 그것을 줄 권한이 네게 있는 건가?”

나는 나직이 물었다.

그러자 1군주가 호쾌하게 답했다.

“당연하다! 원하는 게 있다면 말만 해라.”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다. 너는 군주가 아니지 않나.”

“······.”

1군주가 말을 잃었다.

나는 놈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그 뒤로 눈길을 돌렸다.

“아무리 봐도, 네놈은 군주의 그릇이 아니다. 그러기엔 너무 약하군. 차라리 너의 뒤에 있는 자라면 모를까.”

북방의 군주를 모두 아는 건 아니다.

하지만 품은 나노머신의 적고 많음은 확실하게 구분해낼 수 있었다.

지금 1군주라고 떠들고 있는 거구의 남자는, 다른 군주들에 비해 너무 약했다.

나노머신의 양도 형편없었고.

하지만 바로 뒤에 있는 전사는 이들 모두를 아우를 정도였다.

감히 비교가 안 된다.

강자의 법칙에 의해 군주가 정해진다면 저 뒤의 전사야말로 군주의 그릇이었다.

“······ 제법이군. 한 눈에 알아볼 줄은 몰랐는데.”

역시나.

이것도 일종의 시험이었다.

진짜 1군주가 자리에 앉은 거구의 전사에게 말했다.

“비켜라.”

“죄, 죄송합니다. 군주님.”

거구의 전사가 땀을 뻘뻘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자리에, 진짜 1군주가 새로이 앉았다.

얇상한 몸. 두터운 눈썹. 검은색 머리칼.

젊어보이지만, 젊지 않다.

‘마나샤워.’

1군주는 마나샤워를 통해 젊어졌다.

저만한 양과 질의 나노머신이라면 달리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가 앉자 군주들도 혼란의 도가니였다.

“뭐?”

“······ 잠깐. 네가 1군주라고?”

“죽어서 자리를 계승한 게 아니었나?”

다들 몰랐나보다.

마나샤워를 겪고 젊어진 이후 죽은 걸로 해둔 모양이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저력은 에디스나 융 이상이다.

크로프트와 싸우면 좋은 그림이 그려질 것 같았다.

1군주가 어깨를 으쓱했다.

“보다시피, 내가 진짜 군주임은 내 직속의 둘을 제외하면 아무도 몰랐던 사실이다. 적어도 네가 ‘신’을 자처할만한 눈을 지닌 건 인정하마.”

여유가 있었다.

진정한 강자의 여유였다.

또한, 그는 그럴 자격이 있었다.

정말로 강했으니까.

“다시 시작하지.”

다른 군주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눈빛.

오로지 나를 쳐다보며, 그가 말했다.

“북방의 절반을 너에게 주마. 원한다면, 그 이상의 것도 쥐어주겠다.”

자신에겐 그럴 자격이 있다는 듯.

다른 군주들이야 밀어버리면 그만이라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그럴 힘이 있는 건 이해하지만.

‘하.’

이제야 알겠다.

북방의 저력이 상당함에도 카를로스 대공에게 순식간에 밀려버렸던 이유.

7군주인 샨의 문제는 성지에 대한 증오심이었다면.

1군주의 문제는 바로 저 자신감이었다.

혼자 다 해쳐먹을 수 있다는 자신감.

카를로스는 자신의 상대가 아니라는 저 미친 자신감!

‘이 머저리같은 놈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바로 저 자신감을 부숴버리는 것이리라.

“크로프트.”

나는 나직이 크로프트를 불렀다.

뒤에 서있던 그가 조용히 답했다.

“예.”

“누가 이길 것 같은가?”

“제가 이기겠지요.”

즉답이었다.

그래. 크로프트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런 것이다.

우리 둘의 대화를 듣고 이해한 1군주가 고개를 갸웃했다.

“설마 나보다 그가 강하다는 뜻인가?”

“제대로 들었군.”

“······.”

“크로프트는 나의 분신이며, 나의 사자다. 그의 승리는 나의 승리이고, 그의 패배는 나의 패배다. 그러니 크로프트를 이긴다면 너의 말을 들어주마.”

“어이가 없군.”

1군주가 크로프트를 바라봤다.

평범하기 이를데 없으나, 범상치 않은 기운이 갈무리되어있다는 건 느껴졌다.

자신과 같이 축복을 받은 자.

허나 1군주의 저력은 그 이상이었다. 하늘 아래 적수가 없다고 자신했다.

“반대로 크로프트가 이기면 내 말을 들어야 할 것이다.”

“내가 이 말도 안 되는 싸움을 받아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자신 없나?”

조악한 도발이다.

하지만 1군주는 생각했다.

아무것도 내어주지 않고, 그저 싸워서 이기면 저 신성자를 얻을 수 있다.

이기기만 한다면 한참 남는 장사인 셈이다.

“······ 좋다. 그 도발, 받아주지.”

< 대군주회의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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