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황제-32화 (32/146)

알고 있었다.

용이 가프의 이름을 불렀을 때부터, 가프에게서 미묘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손을 타고 전해지는 감정은 환희와 기쁨, 그리고 역겨움이었다.

앞의 두 감정은 몰라도 마지막 감정만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을 포장하려는 이를 볼 때의 역겨움. 불쾌함.

내가 말피엘을 볼 때의 감정과 비슷했던 탓이다.

‘통했다.’

마지막 수가, 먹혀들었다.

일부러 도발하여 가프를 깨우는 작전이 성공했다.

천 년 전 용과 싸웠고 최소 무승부를 이뤄냈다면, 비록 지금의 모습은 살뭉치와 다를 바가 없으나 가공할 나노머신을 품은 그의 ‘의식’을 깨워 이 상황을 타파할 수도 있는 것이다.

[특급 프로세스 ‘폭식’을 포함한 비인가 나노머신이 대량 유입되었습니다.]

[지배가 불가능합니다.]

[자율신경 A.I로 작동하는 나노머신입니다. 특정한 조건에서만 움직이도록 조정되어, 외부에서의 강제개입이 불가능한 A.I입니다.]

[분리하여 배출할 수 있습니다.]

[공생할 경우 마스터의 신경계를 공유하여 자율적으로 움직입니다. 현상황의 타개를 위해서 일시적인 ‘공생’을 추천합니다.]

‘폭식.’

하지만, 살뭉치가 손 안으로 빨려들어오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가프의 권능.

빨려들어온 살뭉치가 용언이 담긴 나노머신을 전부 먹어치운 것이다.

백은의 마왕이 건넨 사이오닉 에너지처럼 오직 북방의 마왕만이 지녔던 나노머신의 특수한 성질이었다.

[공생할 경우 마스터의 신경계를 공유하여 자율적으로 움직입니다. 현상황의 타개를 위해서 일시적인 ‘공생’을 추천합니다.]

하지만, 살뭉치가 손 안으로 빨려들어오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빨려들어온 살뭉치가 용언이 담긴 나노머신을 전부 먹어치운 것이다.

‘폭식.’

가프의 권능.

백은의 마왕이 건넨 사이오닉 에너지처럼 오직 북방의 마왕만이 지녔던 나노머신의 특수한 성질이었다.

하지만 지배가 불가능하다.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나노머신.

[자율신경 A.I로 작동하는 나노머신입니다. 특정한 조건에서만 움직이도록 조정되어, 외부에서의 강제개입이 불가능한 A.I입니다.]

‘폭식.’

[분리하여 배출할 수 있습니다.]

가프의 권능.

[공생할 경우 마스터의 신경계를 공유하여 자율적으로 움직입니다. 현상황의 타개를 위해서 일시적인 ‘공생’을 추천합니다.]

백은의 마왕이 건넨 사이오닉 에너지처럼 오직 북방의 마왕만이 지녔던 나노머신의 특수한 성질이었다.

하지만, 살뭉치가 손 안으로 빨려들어오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배가 불가능하다.

빨려들어온 살뭉치가 용언이 담긴 나노머신을 전부 먹어치운 것이다.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나노머신.

바알과는 달리, 가프는 자신의 권능을 온전히 나에게 이양하였다.

하물며 그의 의지는 A.I처럼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현상황의 타개.

용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제로는 ‘일시적인 동맹’을 추천하고 있었다.

지배 불가능한 가프의 나노머신을 계속해서 몸안에 두는 건 독이라고 판단한 듯싶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제로가 맞겠으나, 제로도 모르는 게 있었다.

그것은 인간의 감정이다.

천 년넘게 쌓인 가프의 감정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용에 대한 분노, 복수심, 반드시 죽이고자하는 살해의 감정!

그를 위해 가프는 내게 자신의 전부를 던졌다.

“······ 깨어났느냐? 가프여.”

용의 움직임이 멈췄다.

자신의 용언이 ‘먹힌’ 것을 느낀 탓이다.

천 년 전 질리도록 상대해보았던 가프의 권능, 폭식의 출현이었다.

북방의 마왕은 자신에게 닿는 모든 사사로운 기운을 먹어치우는 권능을 지니고 있었다.

용언과 마법, 물리적인 충격까지 모조리 먹어치우는 그 권능 때문에 용은 가프에게 하반신이 잘려나가는 굴욕을 겪었다.

‘놀랍군.’

그래서 놀랍다.

그 무적의 권능을 타인에게 양도하는 게 가능한 일인가.

설령 그게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저 인간의 몸은 그것을 감당할 그릇이 아니었다.

가프의 권능을 담기엔 너무 연약했다.

즉시 터져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그릇이 가프의 권능을 온전히 담아내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가프의 권능을 담아낼 용량을 지녔다고?’

그릇의 크기가 미친 듯이 크다면 가능한 일이겠으나, 온전한 용이라고 해도 불가능한 일을 거의 인간에 가까운 녀석이 해낸다?

그릇에 담을 수 있는 용량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이다.

또 다른 그릇 하나를 추가해 늘릴 수는 있으나, 원본의 크기 자체를 늘리진 못한다.

그리고 권능은 원본의 그릇에만 담기는 것이었다.

원본 그릇의 크기 자체가 크지 않다면 담는 것도 불가능하다.

마왕이라 불렸던, 무려 열한 번 째 위업으로 선정된 가프의 권능을 온전하게 담아낼 그릇을 지닌 인간이라니.

‘그건 나도 불가능하다.’

열 개의 위업을 달성한 용조차도 할 수 없는 기적이었다.

용은 강력하지만 중심이 되는 용량의 그릇 자체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위업을 달성할 때마다 용은 다른 권능이나 능력을 더할 수 있는 ‘추가 용량’을 얻는데, 새롭게 그릇이 하나 더 추가되는 것일뿐 ‘중심 용량’ 자체는 늘지 않기 때문이다.

‘놈을 취하면 가프의 권능과 막대한 용량을 챙길 수 있다.’

하지만 용이 강해지는 방법은 위업 달성 외에도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열 개의 위업을 달성하며 얻은 열 개의 그릇.

그 그릇을 ‘바꿔끼우는’ 것이다.

바로, 심장이었다.

용은 자신의 것을 포함한 열 한 개의 심장을 지니고 있었다.

자신의 것을 바꿀 수는 없지만, 추가로 얻은 심장은 바꿔 낄 수 있다.

그래서 보통은 위업을 달성한 대상의 심장을 취하는 것으로 강해져왔다.

저 막대한 양의 용량과 권능을 지닌 심장으로 하나를 채워넣는다면 순식간에 12개의 모든 위업을 달성하고 신격을 얻을 수 있을 터.

‘죽였으면 큰일 날 뻔했군.’

용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가프의 권능을 이었다고 해도, 놈은 가프가 아니다.

게다가 무적의 권능을 지닌 가프도 결국 저 모양 저 꼴이 되었다.

강력한 저주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결과 인간의 형체를 잃었다.

권능은 생명을 유지시킬뿐이었다.

권능을 초과하거나, 지속시간을 넘어선 공격에 대해선 도리어 무방비해지는 셈.

이미 천 년 전에 지겹도록 겪어보지 않았던가.

“때론 분에 넘치는 선물이 독이 되는 법이지.”

푸시이익.

크리스탈과 연결 된 선들이 떼어졌다.

곧이어 막아두었던 ‘저주’가 사방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멍청한 녀석. 힘을 넘겼지만 내 ‘봉인’ 역시 깨졌다. 고작 그런 인간에게 힘을 넘긴 자신의 우둔함을, 땅을 치며 후회해라, 가프. ”

가프는 용을 이곳에 봉인해두었다.

동굴 바깥으로 저주가 퍼져나가지 못하도록.

용이 이곳에서 움직일 수 없도록.

하지만 가프가 권능을 넘기며 봉인 역시 해제되었다.

“세상을 저주하는 고룡의 진짜 힘을 보여주마.”

북방 전체를 가라앉게 만들 막대한 에너지.

동굴 전체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이 저주로 말미암아, 저 인간은 심장을 제외한 모든 걸 잃을 것이다.

다리가 아깝지만 봉인이 해제됐다면 움직이는 정도야 어렵지 않았으니.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군.’

그리고 나는 저 용이 힘을 모으는 장면이 왜인지 익숙했다.

말피엘이 전격을 모아 나를 죽이고 궁을 날려버릴 때.

유일하게 놈이 무방비했던 그 때가 떠올랐다.

온 힘을 집중해 쏘아내는 그 힘은 상상을 초월할만큼 강력했지만, 그러기 위한 몇 초의 시간 동안 공백이 생겼다.

다른 것들에 대한 ‘제어’도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

나는 시선을 옮겼다.

‘지금이다.’

그건 바로, 나를 옥죄고있는 크리스탈의 ‘촉수’들이었다.

[해킹이 완료되었습니다.]

[‘촉수’에 대한 제어권한을 획득했습니다.]

용을 제어하거나, 방사능이 저장된 저 크리스탈 자체를 어찌할 순 없지만, 지금의 관리자 권한으로도 이 촉수 정도는 해킹할 수 있었다.

“······ 뭐?”

나를 옥죄던 촉수들이 순식간에 물러나며, 이번에는 반대로 용을 옥죄었다.

용을 감싸며 떼어진 선의 역할을 대신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떻게?”

용도 당황하고 말았다.

하기야 당황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자신의 촉수가 도리어 자신을 공격하는 형상이라니.

방출하여 공격하려던 용의 기색이 강제로 멈췄다. 저주를 방출하던 구멍이 자신의 촉수로 인해 다시 막혀버린 탓이다.

“나를 따라라. 내 말을 들으란 말이다!”

촉수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알아챈 용이, 이를 갈며 외쳤다.

한순간 보인 틈.

그 틈 덕분에 촉수에 대한 권한을 온전히 내가 가져올 수 있었다.

피식 웃으며 천천히 다가갔다.

“두 번이나 다리를 잃은 기분은 어떻지? 나는 겪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만.”

용도 망각한 게 있었다.

비록 상대가 가프가 아닐지라도,

그 역시 천년 전과는 전혀 다른 상태라는 것이다.

촉수에 의지하여 움직이는 몸. 하반신이 잘린 용은 자신의 흐르는 힘을 크리스탈에 저장할 수밖에 없었다.

전성기의 힘을 모두 잃은 껍데기뿐인 용.

말피엘과 비교하는 게 민망할 수준이었다.

촉수의 제어권한만 가져올 수 있다면 놈을 원천봉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나마 대항 가능한 용언조차도 폭식에 먹혀버렸으므로.

“넌······ 뭐냐,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린 게냐!”

가까이 다가갈수록 막아서던 촉수들이 하나, 둘 자리를 비켜준다.

용과 나와의 거리는 다섯발자국도 채 남지 않았다.

“모든 마나여. 저놈을 죽여라.”

정말 멍청한 놈이다.

나노머신에 의한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아직도 깨닫지 못한 건지.

차라리 물리적인 공격을 하는 게 효과가 있을 터이나, 저 멍청한 용은 그조차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용이라고 전부 똑똑한 건 아닌가보군.’

차라리 땅을 엎어 생매장을 시킨다면 나는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삼일만 가둬두어도 탈수현상으로 죽을 텐데.

“오지마라.”

지금, 용은 겁을 먹었다.

처음이었다. 이만한 미지는 겪어본 적이 없었다.

용이야말로 가장 큰 신비이며 미지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넘어선 신비를, 용은 오랜 세월 동안 경험하지 못했다.

자신의 눈앞에 다다른 인간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멈춰······!”

“가프가 안부 전해달라는군.”

촤아아아악!

손을 댄 순간, 가프의 ‘폭식’에 의해 용은 지워지기 시작했다.

먹어치우고 있었다.

용과 크리스탈 전부를.

하지만, 용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용의 의식은 분명히 살아있었다.

‘이 몸을 차지하겠다.’

폭식에 의해 먹힌 육신을 포기하고, 찰나의 순간 용은 자신의 영혼만을 살려내는데 성공했다.

부동영역에 존재하는 용의 영혼은, 폭식과 함께 흡수되어 인간의 인지영역까지 순식간에 다다르는 중이었다.

‘다 이긴 줄 알았겠지. 그렇게 방심하고 후회해라.’

순간의 기지였으나 차라리 잘됐다.

이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몸을 차지하는 게 훨씬 나았다.

가프의 권능과 자신을 먹어치워도 멀쩡한 ‘그릇’이라니.

중심이 되는 그릇의 용량이 얼마나 큰지 상상도 되지 않을 지경이다.

‘허.’

허나, 들어온 뒤에야 알았다.

‘우주와도 같구나.’

이 몸의 그릇의 크기가 감히 우주와도 같다는 것을.

감히 신의 그릇이라 칭할 수 있으리라.

그 대해 같은 크기에 놀라면서도 용은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이 몸의 그릇에 비하면, 위업달성은 애들 장난과도 같았다. 이 몸을 차지하고 단련하는 것만으로도 능히 신의 격을 얻을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용은 인간의 인지영역의 중심부에 다다라서야 헛된 희망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뭐냐.’

자신의 부동영역에 존재하는 영혼이, 지워지고 있었다.

‘어떻게 날 지워내는 것이냐?’

자신의 존재를 깨닫고, 지워내기까지 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곧이어 그의 앞으로 무언가가 나타났다.

거대한 빛과도 같은 존재.

‘신?’

왜 인간의 영역에 신이 존재하는가.

허나, 처음보는 신이었다.

신이 맞는건지 아닌건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부동영역에 있는 자신의 영혼을 지워내는 존재라면, 그것은 신일 것이다.

‘어째서. 어째서 나를 지우는 것이냐.’

그들의 위업을, 심부름을 평생 해온 자신이다.

열 개의 위업을 달성한 용은 용들 중에서도 흔치 않았기에.

진정한 ‘용’으로 인정받는 기준이 되었다.

그런데 왜.

신이시여. 왜 제가 아닌 인간의 편을 드십니까?

‘아아.’

지워진다.

사라져간다.

자신의 존재가. 기억이. 모든 것들이.

[A.I ‘용’의 데이터가 삭제되었습니다.]

< 용(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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