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황제-28화 (28/146)

“아, 아파! 아프다고!”

“살려줘! 제발 살려줘!”

“미안해! 죽여서 미안해!”

시간이 지날수록 병사들에게서 금단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픔을 호소하거나 환각을 보며 공포에 떨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병사들까지 나오는 지경.

금단현상이 심한 병사들만 따로 격리조치를 취하고는 있지만 이대로 계속가다간 사기가 바닥을 칠 터.

사기가 떨어지면, 성지의 공략은커녕 역으로 사냥당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간유통 도시가 공격을 당했다.

선택의 기로였다.

당장 성지를 공략하거나, 후퇴하거나.

‘약의 보관 장소를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가.’

보관 장소를 아는 이는 극소수다.

그들 중 하나가 배신을 했다면 가능한 일이다.

배신자를 색출하고 새롭게 유통망을 구축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공격하면 성지는 차지할 순 있겠지만 북벌은 실패할 것이다.

그들 중 하나가 배신을 했다면 가능한 일이다.

결국 카를로스를 포함한 귀족들은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를 결정했다.

배신자를 색출하고 새롭게 유통망을 구축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성지를 애워싸고 있던 거대한 인의 장벽이 48일만에 걷힌 날이었다.

공격하면 성지는 차지할 순 있겠지만 북벌은 실패할 것이다.

그리고 허허벌판이 된 그 공백의 사이를, 한 마차가 여유롭게 지나가고 있었다.

제르민은 마차를 몰면서도 지금 보이는 장면들을 믿을 수가 없었다.

흔적도 없이 증발한 것만 같은 20만의 병사들.

당장 성지를 공략하거나, 후퇴하거나.

결국 카를로스를 포함한 귀족들은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를 결정했다.

‘약의 보관 장소를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가.’

보관 장소를 아는 이는 극소수다.

성지를 애워싸고 있던 거대한 인의 장벽이 48일만에 걷힌 날이었다.

그들 중 하나가 배신을 했다면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허허벌판이 된 그 공백의 사이를, 한 마차가 여유롭게 지나가고 있었다.

배신자를 색출하고 새롭게 유통망을 구축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제르민은 마차를 몰면서도 지금 보이는 장면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절대로 물러날줄 모르던 카를로스 대공을, 직접 마주하지도 않고 후퇴시켰다.

황제 데우스도 하지 못한 일을 라인하르트가 해낸 것이다.

“약의 보관장소는 어떻게 아셨습니까?”

마차 안에서 크로프트가 물었다.

그간 묻지 않았던 이유는 약을 처리하는 게 먼저였기 때문이다.

“전쟁도 결국 인간이 치르는 것이다. 카를로스 대공이 항복했다고 침략하지 않는다는 건 분명히 이상한 일이지.”

전쟁을 벌이면 완전히 짓밟아놓는 게 카를로스 대공이다.

가문끼리 전쟁을 벌여도 절대로 회생이 불가능하게끔 아예 멸문을 시켜놓기로 유명했다. 그래서 아무도 그를 건드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그가, 뒷통수를 맞을 수도 있는 북방의 도시들을 그저 ‘항복’했다고 하여 남겨둔다는 건 분명히 이상한 일이었다.

“······ 약을 숨긴 채 위장할 도시가 필요했던 거로군요.”

“그래. 항복한 도시를 찾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니.”

파르셸 행정관이나 숲의 주민들에게만 물어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 항복한 도시 중, 성지와 대륙을 잇는 중간유통망만 찾아내면 그만이었다.

허나 말이 쉽지 결코 쉽지 않은 방식이었다.

먼저 전체적인 맥락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했다.

약과 연관지어 보관장소를 찾아낸 뒤, 다른 도시와의 연결점도 단번에 파악하는 기술은 숙련자가 아니고선 불가능한 일이었다.

‘전쟁도 결국 인간이 치르는 것이다.’

크로프트는 그 말을 곱씹었다.

가장 기본이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이들이 전쟁에서 망각하는 게 바로 그것이었다.

전쟁은 인간이 치른다.

전쟁을 지휘하는 지휘자를 분석하면 다음 행동이 보이기 마련이다.

적이 치른 전쟁을 돌이키며 이유를 따지고 보이지 않는 약점부를 공략한다.

전쟁에 이골이 난 백전노장이 아니면 생각하기 힘든 수다.

아니, 생각은 하더라도 실행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을 터였다.

보통은 물자보급만 차단하려 할 테니까.

그런데 라인하르트는 결단력마저 갖추고 있었다.

모든 도시의 약을 태우는데에는 7일이면 충분했다.

약만 태우면 되는 일이니, 쓸데없이 전투를 벌일 필요도 없다.

인원을 분배해 순식간에 처리한 것이다.

평생을 궁에만 있었던 황태자가 이런 전술은 어디서 익힐 것일까.

‘무영창의 마법도, 전장을 보는 눈과 전술도, 천재적인 재능도······.’

파고 또 파도 끝이 보이지 않는 우물같다.

그중 가장 놀라운 건 숲에 도착한 이후로 일취월장한 라인하르트의 검술실력이다.

심지어 자신을 상대로 일격을 거의 막을뻔하기까지 하였다.

‘대련에서 내 다음 움직임을 예측하고 검을 뽑았지.’

오늘 아침의 일이다.

매일 이뤄지는 검술지도.

대련으로 끝내지만, 라인하르트는 자신을 상대로 여태껏 제대로 검을 휘두르지조차 못했다.

그런데 오늘, 라인하르트가 움직였다.

자신의 기세를 읽고 검을 펼쳐들며 일격을 막을 뻔했다.

‘1황자 라우넬도 거기까지 도달하는데 1년이 걸렸건만.’

자신의 기세에 먹히지 않고, 반격의 의도를 갖는 데에만 1년이 걸렸다.

반면 라인하르트는 한 달이다.

아니, 정확히는 한 달도 아니다.

계속해서 이동하며 제대로 된 검술지도는 해주지도 못했으므로.

만약 제대로 검술을 지도한다면······.

‘모든 황자들을 압도하는 재능이다.’

황자들뿐만이 아니라, 자신조차도 넘어서는 재능이다.

욕심이 생겼다.

기본기만이 아니라 ‘제대로 된 제자’로 만들고픈 욕심이.

수많은 기사와 황자들을 가르쳤지만 단 한 명도 그는 제자로 들이지 않았다.

그의 유파는 오직 한 명만이 이을 수 있었다. 일인전승의 천 년 전통을 지닌 고대유파의 계승자가 바로 크로프트였다.

성에 차지 않았고, 악랄한 방식 탓에 굳이 제자를 두지 않았지만, 라인하르트라면 계승자의 자격으로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도착했습니다.”

순간 들려온 제르민의 음성이 모두를 현실로 데려왔다.

바깥을 보자 마차의 바로 앞에, 거대한 성지(聖地)가 있었다.

수많은 돌탑이 쌓이고 쌓여 벽을 이룬 곳.

제국의 성벽에 비하면 투박하기 그지없지만 쉽사리 손을 대서는 안 된다.

[돌 무더기에서 과다한 양의 방사능이 검출되었습니다.]

[방어모드로 전환합니다.]

방사능을 품은 돌.

성지 안에 존재하는 돌로 지은 돌탑이었다.

허락받지 않은 자가 손을 대거나, 들어오려 한다면 그 즉시 목숨을 빼앗았다.

오직 정해진 길로 들어와야만 저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다.

‘파간들.’

돌탑의 위에 서있는 파간들.

그들은 이미 방사능에 노출된 변형인간이다.

시선을 돌려, 창을 쥔 채 마차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때 마차에 있던 파간이 내리자 그들의 시선이 단번에 바뀌었다.

“융?”

“융!”

“융께서 오셨다! 문을 열어라!”

에디스의 친구인 파간의 이름이 아무래도 융인 모양이었다.

같은 파간일지라도 융은 조금 더 특별한 존재인지.

융을 본 다른 파간들이 짧게 고개를 숙이곤 문을 열었다.

‘이곳이 성지.’

나는 미소를 지었다.

북방의 성지에 직접 오는 건 나도 처음이었다.

원래라면 지금쯤 궁에 갇혀있었어야만 하니까.

몇 개의 문이 열리며 안으로 들어가자 더욱 많은 전사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은 인상이 절로 찌푸려질 정도였다.

“······ 파간이 너무 많습니다.”

에디스의 말마따나 파간이 너무 많았다.

육체변형을 일으킨 전사들.

의도적으로 숫자를 늘린 것이다.

성지의 중심부에 다다라서야, 그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거대한 동굴.

[경고. 엄청난 양의 방사능이 동굴에 잠재되어 있습니다.]

[비인가 나노머신들에 의해 유출되고 있지는 않지만 에너지가 급격하게 떨어지는 중입니다.]

[나노머신들의 에너지가 떨어지는 순간 반경 30km가 피폭지역으로 분류됩니다.]

용의 머리처럼 생긴 거대한 동굴 안으로, 전사들이 수시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열 명 중 아홉은 동굴의 입구에서 즉사했다.

단 한 명만이 더 안으로 들어가, 육체변형을 통해 힘을 얻었다.

죽은 시체들도 부풀거나 터지며 가스를 배출했다.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수준의 광경.

“융, 드디어 오셨군요. 위대한 전사시여.”

치렁치렁하게 목걸이를 단 한 여자가 지팡이를 든 채 다가왔다.

그녀는 융을 보곤 환하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융의 표정은 굳어버린 채였다.

“그런데 왜 제국의 악마들과 함께 오신 거죠? 아, 인질인가요?”

“지금, 뭘 하는, 거냐? 성녀.”

그녀가 바로 성녀였다.

성녀는 환희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반격의 때입니다. 저 간악무도한 제국의 악마들이 도망치고 있어요. 우리는 놈들의 뒤를 잡아야 합니다.”

“미쳤, 군.”

도망친 게 아니다.

약의 공급을 위해 잠시 물러난 것이다.

지금 저 뒤를 잡으려고 했다간, 역으로 몰살당하겠지.

“위대한 전사시여. 우리에게 힘을 보태주시옵소서. 제국의 악마들을 몰살시켜야 합니다. 신께서, 제게 신탁을 내렸습니다.”

제정신이 아니다.

전쟁이 모두를 미치게 만들었다.

그녀는 신탁이라는 이름으로 전사들을 소모품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열에 아홉을 죽이고, 남은 한 명의 수명을 담보삼아 파간을 만들어서.

“신이라는 것이 다 자살하라는 신탁이라도 내린 모양이군.”

“······ 감히 인질 주제에 말을 해?”

성녀의 표정이 단번에 일그러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마차에서 내렸다.

“너희가 말하는 악마들은 힘을 잃어서 후퇴한 게 아니다. 지금 뒤를 치려 들었다간 진짜 악마를 보게 될 거다.”

“저 어린 악마는 누구죠, 융?”

융이 나를 쳐다봤다.

그리곤 잔뜩 힘을 주어 말했다.

“성자(聖子).”

성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뭐······ 라고요? 융, 미치신 겁니까? 어떻게 제국의 악마가 성자일 수가 있다는 거죠?”

성자.

성녀가 선택받아 신의 의도를 전하는 자라면, 성자는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자리에 오른 이를 뜻하는 말이었다.

홀로 오롯이 거룩하기에 그 위치는 파간이나, 성녀보다도 높다.

성녀가 반발했으나 융은 자신의 말을 철회하지 않았다.

보았기 때문이다.

마나의 역행을 격으며 폭주한 여자를 치료하는 모습을.

친구 에디스의 염원이 불러낸 기적을.

의지만으로 마나를 일으켜 상대를 죽이는 모습을.

마나는 신성한 것이다.

세상을 지탱하는 기둥이다.

그 기둥을 마음껏 다룰 수 있는 자.

그자는 성자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20만 제국의 병사들을 전투 없이 물렸다.

자격과 지혜를 갖췄으니 이는 분명 성자였다.

“융. 아무리 그대가 위대한 전사의 일원이라 해도, 이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말입니다. 저 악마들을 당장 죽이십시오.”

성녀의 주변으로 파간들이 몰려들었다.

그 숫자가 족히 백을 넘어갔다.

성녀의 얼굴이 더욱 표독스러워졌다.

“융. 지금이라도 철회하고 악마들을 죽인다면, 용서해드리겠습니다. 그래요. 악마에게 세뇌라도 당했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성자는 성스러운 존재입니다. 감히 그 거룩한 단어를 악마 따위에게!”

융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말을 절대로 철회하지 않겠다는 의지.

그나저나, 성자라.

나는 고개를 주억이며 말했다.

“내가 성자의 자격을 증면하면 되는 일 아닌가?”

“닥쳐라, 악마야. 네 따위가 자격을 증명한다고?”

“그래. 마침 자격을 증명할 방법이 저기에 있지 않나.”

동굴을 가리켰다.

수많은 전사들이 계속해서 죽어나가고 있는 저 장소.

“하! 설마 성지 안에 악마가 발을 들이겠다는 소리냐?”

“전하, 아니될 말씀이십니다.”

크로프트 역시 결사반대의 입장이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그시, 성녀의 눈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차라리 잘 됐다.’

성녀는 생각했다.

위대한 전사 융이 성자를 언급했다.

절대로 좌시해서는 안 될 일이다. 전사들에게 동요를 일으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증명할 방법이 없진 않았다.

성지로 들어가는 것.

감히 제국의 어린 악마 따위가 전사들도 힘들어하는 성지에 도전한다.

백중 백 죽을 것이다.

그야말로 자살행위.

곧이어 성녀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 좋다. 비록 신성에 반하는 일이나, 신께서 허락하셨다. 저 악마에게 직접 벌을 주시겠다고 말이다.”

< 용(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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