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자의 대련을 볼 수만 있다면 그게 누구든 돈을 지불할 것이다.
강자의 생사결을 볼 수만 있다면 백만금을 들여서라도 두 눈에 담고 싶어 하는 이들로 넘쳐날 것이었다.
그리고 만약 보고 싶을 때 그러한 강자들의 싸움을 ‘반복재생’ 하는 물건이 있다면 성을 통째로 갖다 바칠 귀족조차 넘쳐날 터였다.
그런데 단순 재생을 넘어, 그 동작을 재현하고 감각마저 체험할 수 있다?
‘보물 중의 보물이지.’
단언하건대 황궁비고에 있는 보물 전부를 가져와도 이 기능 하나에 미치지 못하리라.
아니, 세상 그 어떤 보물도 범접 불가다.
구오오오-.
크로프트의 오러는 이글거리는 태양과도 같이 전신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뇌의 동시 활성 영역이 18% 활성화 된 상태입니다.]
뇌를 활성화하여 시간이 느려지지 않았다면 두 눈에 담지조차 못할 정도로 빨랐다.
최대 25%까지 활성화 할 수 있으나, 최대치로 영역을 넓힐 경우 뇌가 타버리는 것만 같은 느낌과 함께 고작 몇 초 버티는 게 전부였다.
오랫동안 눈에 담으려면 18% 정도가 적당했다.
[뇌의 동시 활성 영역이 18% 활성화 된 상태입니다.]
오러와 오러가 부딪힐 때마다 공간 자체가 휘어버렸다.
뇌를 활성화하여 시간이 느려지지 않았다면 두 눈에 담지조차 못할 정도로 빨랐다.
최강이라 불리었던 검사와 현역 소드마스터의 대결.
최대 25%까지 활성화 할 수 있으나, 최대치로 영역을 넓힐 경우 뇌가 타버리는 것만 같은 느낌과 함께 고작 몇 초 버티는 게 전부였다.
전쟁통에서도 쉬이 보기 힘든 광경이다.
오랫동안 눈에 담으려면 18% 정도가 적당했다.
보는 것만이 아니다.
꽈득!
제로로 말미암아 나는 저 모든 영상을 녹화화고 있었다.
촤아아아!
크로프트만이 아닌 상대 소드마스터의 움직임까지도 세밀하게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대단하군.’
20합.
크로프트의 검에 패트릭의 목이 날아가기까지 걸린 합의 횟수다.
패트릭은 카를로스 대공 휘하의 소드마스터 중에서도 나름 실력좋은 검사였다. 그런 그가 크로프트에게 고작 20합에 나가떨어졌다.
‘다 같은 소드마스터가 아니다.’
인류가 측정하는 ‘강함’의 기준.
마법사와 달리, 검사의 경우 단순히 오러를 피워내는 것 이상의 측량 방법이 인류에겐 부족했다.
특히 크로프트 같은 ‘규격외’의 인간을 측량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할 리 만무했으니.
“사, 살려줘!”
“끄아악!”
꽈앙!
쿠아아앙!
한쪽이 소란스러워졌다.
그 크기가 산만한 얼음골렘이 병사와 기사들을 뭉개버리고 있었다.
에디스. 그는 얼음을 이용해 골렘을 연성할 수 있는 전투마법사였다.
얼음골렘의 중심부에서 마나를 조종하며 압도했다.
순식간에 상황이 정리되고 있었다.
가장 우려됐던 파간 역시도 크로우의 목을 물어뜯어 승리를 쟁취했다.
‘훌륭하다.’
그 모두를 감상한 나는 총평을 내렸다.
감히 100점짜리 전투라 평할 수 있으리라.
“태평하시군요.”
“누가 그러더군.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게 싸움구경이라고.”
카이첼의 물음에 나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테베우스의 목을 잘라내고, 두 소드마스터에게 경각심을 심어준 것만으로도 나는 내 할 일을 다했다.
실제로 크로우의 경우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무영창 마법을 경계하느라, 파간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게 다소 소홀해진 것이다.
“언제까지 카이첼의 연기를 할 셈이냐?”
나는 되물었다.
그러자 카이첼, 아니, 바알이 전장의 에디스를 바라보며 답했다.
“계약을 했어요. 이 아이의 할아버지가 죽을 때까지는 카이첼로 살기로.”
“그럼 그 뒤는 어쩔 셈이지?”
“글쎄요. 인간세상을 탐방해볼까요? 아니면 그쪽이랑 결혼? 아, 이건 카이첼도 좋아할 것 같네요. 왜인지 호감이 가는 걸 보니, 카이첼의 취향일 수도?”
인간세상의 탐방이 아니라 인류를 멸절시키고자 그녀는 백은의 마왕이 된다.
허나 이는 훗날의 이야기.
지금으로선 딱히 인류를 증오한다거나 하는 감정은 보이지 않았다.
“위업에 대해 이야기해봐라.”
칫. 소리와 함께 그녀가 설명했다.
“······ 신들은 ‘비정상적인 존재’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어요. 예컨대 그대와 저 같은? 그래서 ‘위업’이란 이름으로 제거하려 하죠.”
말피엘이 달성한 일곱 번째 위업.
그것은 바로 백은의 마왕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나 또한 위업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말인 즉, 언제 어디서 말피엘이 찾아와 내 목을 따갈지 모른다.
놈과의 재회가 예상보다 빠를 수도 있겠다.
아니면 생각도 못한 제 3의 위업달성자가 나타나거나.
“너무 걱정은 말아요. 눈에 띄는 짓만 안 하면 모를 테니까.”
“눈에 띄는 짓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뭐지?”
“신에게 도전하는 모든 행위.”
신에게 도전한다.
그렇다면 백은의 마왕은 인류를 학살한 게 원인이 아니라, 신에게 도전하려 했다가 ‘위업’의 대상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단순히 신과 싸운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신의 영역에 침범하려는 행위 자체를 의미하는 것일 터.
‘죽은 사람이라도 되살리려고 한 건가?’
바알은 생각보다 침착하다.
위험한 일에 굳이 뛰어들지 않는 스타일이다.
도리어 나를 포섭하려하는 유연함까지 보였다.
자신의 권능을 나눠주기까지 했으니까.
그런 그녀가 위업의 대상이 되는 건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웠다.
이윽고 귀가 먹던 현상이 사라졌다.
바알이 대화소리를 숨기고자 풀어놓은 마나를 제거한 것이다.
“전하, 정리가 끝났습니다.”
마지막 잔당의 처리까지 끝낸 에디스와 크로프트가 다가왔다.
그러자 바알은 곧장 연기모드로 들어갔다.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너야말로 괜찮더냐? 어디 안 다쳤고?”
“네. 할아버지가 지켜주셔서 저는 멀쩡해요.”
눈물을 글썽이며 극진히 할아버지를 생각하는 손녀의 모습 그 자체였다.
딱히 위험은 없는 것 같으니, 놔둬도 될 듯싶었다.
억지로 A.I를 제거하려 들었다가 식물인간이 되면 겨우 얻은 8서클의 대마법사도 잃게 되는 것이었으므로.
‘내게 위협을 가하려고 하면, 그 즉시 제거해라.’
[네, 마스터. ‘A.I 제거툴’을 포함한 극소량의 ‘더미 데이터’를 덮어쓴 나노머신을 투여해놓았습니다.]
바알은 알고 있을까?
내게 나눠준 사이오닉 에너지 덕분에 더미 데이터를 만드는 게 수월했음을.
덕분에 의심없이 나노머신도 심어놓을 수 있었음을.
혹시 모를 보험이었다.
나중에 어찌 될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에디스의 마법을 이용해 시체들은 전부 땅 밑에 매장시켜버린 뒤, 우리는 마차를 타고 ‘프렐류드의 숲’으로 향했다.
북방에 존재하는 유일한 얼음숲.
이곳은 진즉에 ‘항복’하여 카를로스의 검을 피한 곳이었다.
빠른 북방의 정벌과 성지의 탈환을 위해, 카를로스는 공식적으로 ‘항복’한 곳에 한하여 침략을 하지 않았다.
또한, 전쟁 중이 아닐 때도 프렐류드의 숲은 이방인의 출입을 자유롭게 허락하고 있었다.
폐쇄적인 북방의 대부분 민족들과는 확연히 다른 진로를 택해, 그 대신 부유함을 얻은 숲.
대륙의 상인들을 상대로도 장사를 해왔으니 마차 한 대가 출입한다 하여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성지로 향할 길이 이곳에 있다.’
마차를 이곳으로 이끈 건 성지로 향하기 위해서였다.
“······ 제국의 병사들이 꽤 있군요.”
에디스가 말했다.
숲과 공존하는 마을에 이질적인 존재들이 있었다.
제국의 병사들.
카를로스 대공의 명에 의해, 이곳을 감시하는 인원인 듯싶었다.
아무리 항복을 선언했다고 하더라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는게 좋았으므로.
그러나 그들도 마차에는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았다.
크로프트가 입을 열었다.
“약에 취했군.”
병사들 전부가 마약에 취해있었다.
강력한 환각제와 각성제로 말미암아 온갖 기행을 선보이는 중이었다.
바닥에 쓰러져있는 건 기본이고, 허공에 소리치며 히죽거리는 병사도 있었다.
물론 전쟁의 승리를 위해 병사들에게 마약을 투여하는 건 전쟁사에서 드물지않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황제 데우스는 이러한 행위를 강력하게 금지해놓았다.
마약의 중독성과 의존성은 신성력으로도 치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나면 대부분이 폐인이 되는 탓이다.
하물며 카를로스 대공이 병사들에게 투여한 마약은 가장 위험하다고 알려진 ‘악마의 죽음’이라 불리는 것이었다.
조세핀 황비가 몰래 섞은 ‘악마의 속삭임’은 애들 장난과도 같을 수준의 물건.
“사, 살려주세요!”
“푸하하! 들었어? 살려달라는데?”
“어이, 미개한 야만인놈들! 나와서 한 번 구해보라고!”
마을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문을 걸어잠근 채 창의 틈사이로 불쌍히 여인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브리저튼 후작님! 이년은 처음보는 년 아닙니까?”
“하여간 속이 시꺼먼 야만인놈들, 숨겨놓는 건 지랄맞게 잘해요.”
“대대적으로 한 번 더 엎어야겠는데요?”
히죽대며 광장에 모여있는 병사들.
“처녀는 다 바치라고 했을 텐데, 아직도 내 인내심을 시험하는 모양이군.”
그 가운데에서 한 남자가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반쯤 발가벗겨진 여자의 머리칼을 움켜쥐자 그 옆의 여자가 눈물을 흘렸다.
“브, 브리저튼님, 제발 제 딸아이만은 살려주세요!”
“이 더럽고 천박한 년이 어딜 붙잡아?”
발로 차내며, 마구 짓밟았다.
그럼에도 분이 안 풀리는지 검을 빼든 그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잘 봐두어라, 북방의 오랑캐들이여! 내 명령을 어기면 어떻게 되는지 말이다!”
한, 두 번이 아닌 듯 익숙하게 목을 그어버릴 준비를 하려던 그때.
제르민이 마차를 세웠다.
“······ 뭐야, 네놈들은?”
남자, 브리저튼이 인상을 구겼다.
상인들의 마차는 몇 번 보았지만 분명히 처음 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 양식도 제국식이다.
“이 새끼들이. 처음보는 마차가 활보하고 있는데도 내가 있는 곳까지 그냥 보냈단 말이야?”
아무리 약에 취했대도 처음 보는 마차가 마을의 중심부까지 왔다.
그동안 아무도 제지를 하지 않았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더욱이 어이가 없는 건, 이 상황에서 당당하게 멈춰선 저놈들이다.
보아하니 북방의 현황에 어두운 제국 상인무리인 것 같은데.
“당장 끄집어내서 내 앞에 꿇리지 않고 뭣들 하는 거냐!”
병사들이 마차로 다가왔다.
그들은 마차 안의 카이첼을 발견하곤 음흉하게 미소지었다.
“휘유!”
“브리저튼 후작님, 특상품입니다.”
“노인들은 죽일까요?”
제국 양식의 마차마저 약탈하려드는 미친놈들.
브리저튼이 다가와 마차의 내부를 살피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흐흐흐, 복이 제 스스로 걸어왔구나. 오늘밤 나를 만족시킨다면 내 특별히 살려는······.”
“크로프트, 베어라.”
서걱!
단말마조차 없었다.
크로프트는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브리저튼의 목을 베었다.
얇은 선혈과 함께 브리저튼의 목이 바닥에 떨어지자, 병사들이 얼음장처럼 얼어붙었다.
이윽고 크로프트가 마차 밖으로 나가, 병사들에게 말했다.
“꿇어라. 라인하르트 황태자 전하께서 행차하셨으니.”
파르셸 행정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이곳 영지를 맡은 브리저튼 후작이 단칼에 죽은 것도 큰일이지만, 가장 큰 문제는 눈앞에 있는 라인하르트 황태자였다.
‘라인하르트 황태자랑 크로프트 경이 왜 북방에 있는 거야?’
북방. 하물며 이곳 프렐류드의 숲은 전장과도 한참 떨어진 곳이다.
다른 귀족이나, 카를로스 대공가로부터도 황실의 인물들이 행차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자신도 까딱 잘못하면 목이 잘릴 판국.
“라인하르트 전하. 이 먼 북방까지는 무슨 일로 걸음하셨습니까······?”
“내가 여기 있는 게 불편한가?”
“그, 그그, 그건 아닙니다. 제국의 안녕을 위해 시찰차 오셨겠지요!”
젠장. 말실수를 했다. 죽을 것 같다. 어쩌면 이미 목이 잘렸을지도 모른다.
파르셸 행정관이 목을 더듬었다.
다행이 아직 목이 붙어있었다.
“성지로 향하는 중간 보급로가 이곳이라고 들었다. 맞나?”
“예, 맞습니다.”
“물자 보급을 핑계로, ‘악마의 죽음’을 유통하는 곳도 이곳이고.”
“그, 그, 그건······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파르셸 행정관이 미친 듯이 고개를 저어보였다.
악마의 죽음은 제국에서도 엄격하게 금지하는 마약류다.
유통시키거나, 흡입하는 자는 지위를 막론하고 사형에 처한다.
카를로스 대공이 그딴걸 신경쓰진 않겠지만 하위 귀족들은 아니었다.
“오해. 오해라.”
피식 웃으며 손짓하자, 문을 열고 에디스가 들어왔다.
오크통 하나를 파간이 어깨에 들쳐메고 있었는데 그 안은 전부 ‘악마의 죽음’이라 불리는 흰색 가루가 가득했다.
“헉······!”
“파르셸 행정관. 제국의 법은 지엄하다. 악마의 죽음을 유통하는 자의 처분에 대해선, 제국민인 그대가 더 잘 알 거라 생각한다.”
“사사, 살려주십시오!”
파르셸 행정관이 무릎을 꿇었다.
현장에서 걸렸으니 설령 아니라고 잡아떼도 사형이다.
카를로스 대공은 방관할 것이다. 전부 브리저튼 후작이 몰래 한 짓이라며 이 영지의 병사들 쯤은 가볍게 수장시켜버릴 인간이었다.
그것을 파르셸 행정관 역시 알고 있었다.
‘전부 알고 왔구나!’
그래서 브리저튼 후작을 즉결처형한 것이다.
파르셸 행정관은 입이 말랐다.
“살고 싶나?”
“살려······ 주시는 겁니까?”
“아니.”
“아아······.”
파르셸 행정관이 눈물을 흘렸다.
온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다음 말을 듣고, 그의 태도가 급변했다.
“앞으로 이틀간 이곳에서 머물 것이다. 그때까지 내 명령을 잘 수행한다면, 살려주도록 하마.”
“무슨 명령이든 따르겠습니다, 전하!”
쿵! 쿵!
파르셸 행정관이 바닥에 이마를 계속해서 찧었다.
늦은 저녁.
행정관에게 안내되어 본래 브리저튼 후작이 머물던 주택에 머무르게 되었다.
‘푹신한 침대.’
방에 들어와 침대를 바라봤다.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
마치 몇 년 만에 보는 친구를 만난 기분이 이러할까 싶었다.
의복을 정리한 뒤 푹신한 침대에 눕자 수마가 몰려들었다.
그러나 잠들기 전에 먼저 해야할 일이 있었다.
‘제로. 딥 드림을 실행하도록.’
[관리자 권한이 5등급으로 격상하며 ‘증강현실, 딥 드림(Deep Dream)’이 개방되었습니다.]
[마스터의 꿈속에서 증강현실을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딥 드림을 실행합니다.]
[녹화한 영상을 바탕으로 ‘재현’을 시작합니다.]
이윽고 눈앞에 또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텅 빈 공간.
“······.”
내 앞에, 크로프트가 검을 쥔 채 서있었다.
< 증강현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