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이 찾아들었다.
테베우스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지고도 잠시간 모두가 시간이 정지된 듯 멈춰섰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
양측 전부 갑작스럽게 잘려나간 테베우스를 보며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본능적으로 공격을 막아낸 패트릭과 크로우의 얼굴에도 당황함이 서려 있었다.
‘아쉽군.’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아쉬울 따름이었다.
기습적으로 테베우스, 패트릭, 크로우의 목을 동시에 따버리려고 했다.
가진 사이오닉 에너지 전부를 털어내 바람처럼 날카롭게 날려낸 것이다.
하지만 테베우스만 죽고 나머지 둘은 멀쩡했다.
‘소드마스터쯤 되면 마나에 대한 감각이 미친 듯이 상승한다더니. 틀린 말은 아니었나.’
크로프트야 워낙 괴물 같은 강자이니 논외로 치더라도 저 둘이 무영창의 칼날을 막아낸 건 의외였다.
극도로 발달한 기감.
감각이 좋은 이들은 느껴지지 않는 것도 피할 수 있다고 듣기는 했지만, 역시 소드마스터 둘을 동시에 보내버리려고 한 게 욕심인 듯싶었다.
‘나노머신의 양을 늘리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
감각적으로 막아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한계는 있다.
하물며 기습에 대비할 땐 100%의 힘을 활용할 수 없다.
순간적인 기지에 기대면 능률 또한 떨어지는 법.
나노머신의 양을 더욱 늘리면 기습시 충분히 소드마스터의 목숨도 앗아갈 수 있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또한, 지금 내가 지배한 나노머신의 양은 마법사로 치면 4서클을 조금 웃도는 수준. 심장을 네 바퀴 순환하는 양이었다.
마탑에 등록할 수 있는 최저의 등급 말이다.
질이 아닌 양만을 늘리는 것이라면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폭주한 나노머신을 지배하면 되니까.
툭툭.
나는 옷을 털고, 느긋하게 걸어, 마차로 들어가 다리를 꼬고 앉았다.
‘최선을 다했다. 나머진 알아서 해라.’
몸을 굴려 싸우는 건 내 체질이 아니다.
하물며 있는 나노머신을 전부 털어 쏟아낸 공격이었다.
비인가 나노머신의 에너지가 충전되려면 시간이 걸린다.
체력은 있지만 저 괴물들의 틈바구니에서 검 한자루 들고 설치는 건 정신나간 짓.
“······ 무영창?”
패트릭. 그가 크로우에게 물었다.
자신이 느낀 게 맞는지 확인코자 하는 것이다.
크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에서 느껴지는 제 3자의 인기척은 없었다.
미리 파둔 함정이라면 그 또한 느끼지 못할 리가 없었다.
무영창의 마법이라니.
대체 누가?
‘스피릿 상태의 마법사가 한 명.’
8서클의 마법사만 사용할 수 있다는 마법, 스피릿. 일종의 각성상태다.
영창의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주고 마나의 흐름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상태. 하여 다른 마법사들과 달리 8서클의 마법사는 근접전도 치러낼 수 있었다.
몇 개의 마법을 중첩시킬 수도 있고, 꼬아서 시간차로 나가게 만드는 방법도 있었다.
그 정도의 마법사와 소드마스터가 싸우면 거의 수싸움이라 보아도 무방했다.
하지만, 그런 8서클 마법사들도 기본적으로 ‘영창’은 했다.
그래서 검사들도 대비할 수 있는 것인데.
‘내 감지영역 바깥에서 쏘아냈다?’
또 다른 수는 장거리 저격이다.
허나 이 역시 말이 안 된다.
심장에 지배한 마나는 지속시간이 짧다. 기껏해야 수백미터 바깥에서 쏘아내는 게 한계다. 그리고 그 거리라면, 자신이 잡아내지 못할 리가 없었다.
무영창.
그나마의 가능성이라면 스피릿을 사용할 줄 아는 대마법사.
허나, 왜 마차로 들어가 앉은 저 황태자가 눈에 밟히는가.
이 적막과 무거움 속에서 라인하르트 황태자만은 홀로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았다.
저 여유가, 저 자신만만함이 이상하게 걸린다.
“일단 후퇴······.”
“제국의 악마들이여!”
패트릭이 혀를 찼다.
오러를 피워내, 날아오는 할버드를 쳐냈다.
쿵!
바닥에 처박힌 거대한 할버드.
오러로도 잘리지 않는 특수한 재질이다.
‘젠장, 파간이······.’
그러고 보니 파간도 있었다.
빌어먹을 테베우스. 죽어서도 도움이 안 되는 놈이었다.
카를로스 대공의 아들만 아니었다면 진즉에 죽였을 멍청한 녀석.
크로프트만이 아니라 파간에 8서클 대마법사가 함께하고 있는 미친 파티다.
저런 파티를 고작 이 인원으로 잡으러 온 게 말이 안 된다.
마음 같아선 후퇴하고 싶지만 파간은 자신들을 놓아줄 생각이 없는 듯보였다.
“크로우, 너는 파간을 맡아라.”
“그러지.”
뛰어들어, 순식간에 기사들을 양 손으로 찢어버리고 있는 괴물.
파간이란 놈들은 상식과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하나같이 강력하며, 그 힘은 인간을 아득히 초월하지만, 패트릭과 크로우는 벌써 수십의 파간을 죽인 경험이 있었다.
크로우가 파간을 향해 도약했다.
눈깜빡할 사이에 파간의 등에 칼을 꼽아넣은 것이다.
“다 도륙내버리겠다! 제국의 악마들!”
하지만, 파간 답게 고통 따윈 없는 듯 보였다.
강철같이 두꺼운 저 피부는 오러로도 제대로 잘라낼 수가 없었다.
허나 크로우는 능숙하게 파간의 공격을 피해내며 타격을 축적해나갔다.
미친 듯이 날뛰는 둘을 내버려둔 채, 패트릭이 숨을 골라내며 크로프트를 바라봤다.
‘물러날 수는 없겠구나.’
테베우스가 죽었다.
눈앞에서 크로프트와 라인하르트마저 놓친다면 카를로스 대공은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크로프트 역시 자신들을 놓아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크로프트 경. 예의를 표하겠소, 지상 최강의 검사였던 자여.”
1:1의 상황으로 몰고자 패트릭이 입을 열었다.
대마법사가 끼어든다면 이 싸움, 쉽지 않을 터.
무영창의 마법도 신경쓰인다.
허나 1:1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비록 최강이었다고는 하나 그것도 옛말이다.
전성기를 훌쩍 넘긴 검사의 말로는 뻔했다.
‘크로프트가 실전을 겪은 건 족히 20년 전의 일이다. 이후 궁에만 있었던 크로프트의 실력이야 불 보듯 뻔하지.’
제대로 된 강자와 실전을 벌인 게 지금으로부터 족히 20년 전이었다.
이후 궁에 눌러앉은 그는 기사들이나 가르치며 안락한 노후를 보내고 있었다.
긴장감과 육체의 건강함마저 잃은 검사.
한때 최강이었으나 그 자리는 이제 후대에 반납할 때가 되었다.
하물며 패트릭은 매일같이 생사를 오가는 전장을 몇 번이나 겪었다.
카를로스 대공가에 전해지는 서클 단련법과 검술로 말미암아, 최강의 검사 중 한 명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 최강이었던, 검사라.”
크로프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륙은 평화로웠지만, 그와 반대로 쟁쟁한 검사들은 꾸준히 배출되고 있었다.
패트릭도 그중 하나다.
과거 자신과 비견된다 회자되는 검사들 중 한 명.
충분히 저 말을 할 자격이 있다.
크로프트는 죽어있던 세포가 되살아나는 기분을 느꼈다.
그것은 투쟁심이었다.
‘라인하르트 전하께서 선택을 하셨다.’
또한, 무영창의 마법이 누구로부터 흘러나온 것인지 크로프트는 알고 있었다.
라인하르트 황태자가 테베우스를 죽인 것이다.
그것도 일말의 여지 없이 단번에 죽여버림으로써 선택을 내렸다.
카를로스 대공과의 전면전을 피하지 않을 것임을.
이후 마차에 올라, 여유로이 전장을 관망하며 그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따를 것이냐, 따르지 않을 것이냐······ 그 선택을 지금 하란 말씀이십니까.’
카를로스 대공과의 전쟁은 황제는 바라지 않는 것이다.
황제 데우스는 카를로스 대공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런 데우스를 지탱하고자 크로프트는 궁에 남아, 자신을 지우며 그림자로 남았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제국은 카를로스 대공의 손에 넘어간다.
지금 라인하르트는 크로프트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가만히 침몰할 것인가, 장렬하게 싸울 것인가.
황제인가, 자신인가.
아무리 라인하르트가 달라졌다고 하더라도 이는 그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
“··· 살려 보낼 수는 없을 것 같구나.”
“한 수 배우겠소, 크로프트 경.”
패트릭이 미소지었다.
최강이었던 자를 죽이고 진정한 최강이 된다.
이 사실은 대륙 전체에 널리 퍼지리라.
신흥강자의 출현에 사람들은 열광할 것이다. 새로운 영웅이 나타났음에 모두가 하나가 되어 자신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 부르겠지.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몸이 달아올랐다.
패트릭의 검에서 오러가 솟아올랐다.
동시에.
쫘르륵!
크로프트의 전신이 부풀어오르기 시작했다.
근육이 재생되고 있었다.
뿐만이 아니다.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오러.
아지렁이처럼 피어오른 흰색의 오러는 마치 태양처럼 빛나며 크로프트를 감쌌다.
‘······ 뭐야, 저게.’
패트릭의 양 손이 잘게 떨렸다.
그것은 본능이었다.
거대한 맹수를 마주한 연약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보일 생존의 본능.
이건 말도 안 된다.
크로프트는 20년 전 최강이라 불렸으나 이제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노인이었다.
마나란 것도 신체에 장시간 쌓여있으면 부식되어 사라지기 마련.
그런데 저 양은, 저 말도 안 되는 오러의 양은 대체 뭐란 말인가.
‘마치 태양 같다······.’
저토록 눈부신 오러는 패트릭 역시 본 적이 없었다.
떠오르는 단어난 하나뿐이었다.
‘괴물.’
누가 그를 한물 간 검사라고 칭했는가.
크로프트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전성기였다.
아니, 오히려 전성기라고 불릴 때보다 더 강해보였다.
저 근육은 도저히 노인의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오러의 양도 이미 인간의 범주를 넘어섰다.
괴물이란 말 외엔 달리 설명할 게 없는 괴물.
꿀꺽!
패트릭이 침을 삼켰다.
***
폭력이었다.
강자의 일방적인 괴롭힘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크로프트의 진짜 실력은, 나 역시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가 궁에 남아있었다면 말피엘이 그토록 쉽게 궁을 침범해오진 못했겠지.’
그가 있었다면 말피엘의 손목 하나쯤은 잘라내지 않았을까.
허나 크로프트는 자신의 실력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황제 데우스가 죽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내가 황제에 즉위한 직후 조용히 궁을 떠났을 뿐이다.
이후 어디로 갔는지, 어디서 뭘 하는지 전혀 들려오는 게 없었다.
하지만 황제 데우스가 죽기 전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었다.
―크로프트를 그림자로 놔둔 것이 짐의 제일 큰 실책 중 하나다.
데우스는 크로프트를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그림자로 존재하게 놔뒀다.
아무런 선택도 못하도록.
이후 데우스가 죽자, 크로프트 역시 자신이 할 일을 하지 못했음에 후회하며 궁을 떠났다.
무엇 하나 제대로 선택하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면서.
그런데 크로프트는 지금 선택을 했다.
그림자라면 할 수 없는 선택을.
그가 보여주는 이러한 모습은, 그저 이야기로만 전해들었던 것보다 훨씬 충격이었다.
대륙을 정벌하며 치른 오랜 전쟁.
수많은 강자들을 직접 보았지만 이처럼 강렬한 느낌은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한 수, 한 수가 마치 대해와도 같았다.
물밀 듯이 밀려들어오는 자연재해.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선 초월자의 경지!
정말 저게 같은 소드마스터인가 의구심이 들 정도였으니.
‘제로. 다 녹화해 놔라.’
<네, 마스터. 녹화를 시작합니다.>
< 최강이었던 자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