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황제-23화 (23/146)

백은의 마왕.

내가 황제에 즉위한 이후 나타난 최초의 시련.

제국의 젖줄이라 불리던 ‘리겔룽 강’을 얼려버리는 것을 시작으로 마왕의 무차별 학살이 시작되었다.

백은의 마왕과 눈만 마주쳐도 전신이 얼어붙었으며, 무영창으로 마법을 사용하는 이상자의 발생에 마탑들도 난리가 났다.

뿐만인가.

날카로운 얼음의 비를 내려 어마어마한 영역의 영토에 피해를 속출시켰다.

단 하루만에 길리쟈 백작령이 초토화 된 사건을 계기로 사람들은 그녀를 ‘백은의 마왕’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계된 사상자만 20만 명이 넘어갈 즈음, 말피엘이 등장해 백은의 마왕을 처단하였다.

삼일밤낮을 싸워서 겨우 목을 베어내었다고.

‘말피엘이 최초로 등장한 건 여섯 번째 위업을 달성하면서다.’

위업이란 신의 부탁과도 같은 것이다.

열 두가지 부탁을 수행하면 신과 같은 힘을 갖게 되지만, 하나하나의 위업이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역경과 고난으로 이루어졌다.

위업의 내용은 모두 다르나 한결같이 ‘불가능’의 영역에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런 것을 무려 여섯 개나 달성했으니 적수가 없었다.

출현 당시만 하더라도 ‘정말 여섯 개의 위업을 달성했는가’에 대한 의견은 분분했지만, 본인이 그렇게 말하고 다니는데다가 정말 미친 듯이 강했기 때문에 1:1로는 이미 적수가 없을 거라 정평이 나있는 상태였다.

‘말피엘이 최초로 등장한 건 여섯 번째 위업을 달성하면서다.’

출현 당시만 하더라도 ‘정말 여섯 개의 위업을 달성했는가’에 대한 의견은 분분했지만, 본인이 그렇게 말하고 다니는데다가 정말 미친 듯이 강했기 때문에 1:1로는 이미 적수가 없을 거라 정평이 나있는 상태였다.

위업이란 신의 부탁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 것을 무려 여섯 개나 달성했으니 적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홀로 백은의 마왕을 처단했으니 말피엘의 본격적인 ‘영웅’의 행보가 두드러지는 건 당연지사.

사람들은 마왕의 죽음과 말피엘의 영웅적 행보에 열광하며 그를 우상시했다.

모든 왕국들이 그를 포섭하길 바랐고 신성교까지 나서서 대대적으로 홍보를 도와주었다.

열 두가지 부탁을 수행하면 신과 같은 힘을 갖게 되지만, 하나하나의 위업이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역경과 고난으로 이루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홀로 백은의 마왕을 처단했으니 말피엘의 본격적인 ‘영웅’의 행보가 두드러지는 건 당연지사.

위업의 내용은 모두 다르나 한결같이 ‘불가능’의 영역에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런 것을 무려 여섯 개나 달성했으니 적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마왕의 죽음과 말피엘의 영웅적 행보에 열광하며 그를 우상시했다.

‘관심종자에게는 더할나위 없는 상황이었지.’

물론 나도 불렀다.

얼마나 잘난 놈이기에 이처럼 귀가 아프도록 이름이 들려오는지 궁금했던 탓이다.

단칼에 거절당했지만.

‘그 백은의 마왕이 에디스의 손녀였다······.’

출현 당시부터 적수가 없을만큼 강했던 말피엘과 삼일밤낮을 싸운 마왕. 그 마왕이 지금 내 눈앞에 있었다.

허나 분명히 손녀가 죽은 뒤 에디스는 마탑주의 지위를 내려놓았다.

‘사실은 죽은 게 아니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려내려고 한 것이다.’

생각을 달리해보았다.

손녀를 살리고자, 더욱 집중하기 위해 명예를 버렸다.

에디스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선택이다.

다만, 어째서 그녀가 마왕이 되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에디스가 살려냈다면 둘이 오순도순 잘 살면 됐을 텐데.

[대량의 폭주한 비인가 나노머신이 포착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나는 순수하게 놀라고 있었다.

다른 ‘폭주’의 현상에서 보았던 비인가 나노머신의 양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열 배. 아니, 그 이상.’

8서클에 다다른 에디스의 폭주한 나노머신보다 족히 열 배 이상 많은 것 같았다.

압도적인 광경에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다.

진즉에 터지거나 죽었어야 정상일 몸이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 걸까.

[강력한 바이러스 인자를 확인했습니다.]

[주의. 강력한 ‘사이오닉’ 에너지가 포착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대강 짐작은 되었다.

심장으로부터 퍼져나가고 있는 붉은 색 핏줄과도 같은 선.

마치 실로 이어놓은 마리오네트마냥 저 붉은 선이 그녀의 육체가 붕괴되지 않도록 이어놓고 있었다.

“제 손녀는 현자의 돌을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그 연금술사들의 말도 안 되는 거짓말 말이냐?”

에디스의 말에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연금술사들은 허황된 사기꾼들이다.

돌로 황금을 만든다느니, 전설의 엘릭서를 만들어 죽은 사람도 살려낼 수 있느니 하는 말들로 연구비를 뜯어갔다.

그중 가장 말이 안 되는 게 현자의 돌이다.

연금술사의 궁극적인 목표이며 ‘모든 것’으로 변할 수 있는 성질을 가진 돌이란다.

제국의 재정이 넉넉하여 지원은 하고 있지만, 내가 황제에 즉위하면 그 즉시 없애버릴 비용이 바로 저 사기꾼들에게 들어가는 지원비였다.

그런데 그 이름을 에디스가 입에 담았다.

에디스는 내 의견에 일정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연금술은 사기에 가깝습니다. 마법적인 처리를 해서 그럴싸하게 포장해놓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제 손녀의 연금술은 달랐습니다.”

그가 처연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다르다.

확실히, 눈앞에 보이는 결과물은 다른 사기꾼들에 비할 바가 못된다.

제로마저 경고를 줄 정도의 물건이다.

‘저게 진짜 현자의 돌인지는 모르겠으나.’

무언가를 만들어낸 것만은 분명해보였다.

아마도 이 세계에는 없는 물질.

신들이 부여하는 위업의 대상으로 선정될만큼 위협적인 것일 터.

“쉽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힘이 들다면, 하지 않으셔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제 손녀의 상태는 살아있는 게 기적이니까요.”

여기까지 와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에디스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 좋지 않은 예감이 듭니다.”

크로프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의 감각은 보이지 않는 마나마저 감지해낼 수준이었다.

제로도 주의를 준만큼 조심하는 게 좋겠으나.

“전하!”

“아!”

주변의 탄성에 아랑곳않고 나는 과감하게 손을 가져갔다.

얼음기둥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감각.

그와 동시에 폭주한 나노머신들이 나를 공격해오기 시작했다.

[경고! 비인가 나노머신의 침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강력한 바이러스 인자를 품은 나노머신입니다!]

[사이오닉 에너지의 발생이 확대됩니다!]

시야가 흐려진다.

정신이 멀어지는 감각.

나는 이 감각이 무척이나 익숙했다.

‘광증.’

광증이 도질 때.

‘또 다른 나’가 튀어나올 때 항상 느꼈던 거지같은 감각.

광증이 도지면 항상 나 스스로를 절제할 수가 없었다.

까무러치는 고통과 함께 모든 것을 놓게 만들었다.

‘꺼져라.’

하지만, 더 이상 나는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내 몸은 나의 것이다.

내 선택도, 내 의지도 온전히 나의 것이어야만 했다.

그러니 꺼져라.

[뇌의 순간 동시 활성 영역이 25%로 폭증했습니다.]

[사이오닉 에너지가 중화되어갑니다.]

[바이러스 인자와 결합······.]

[······.]

시간이 멈췄다.

얼음이 깨지고, 그 안에서 그녀가 걸어나왔다.

멈춰있는 내 턱을 쓰다듬으며 이윽고 그녀가 말했다.

“대단하군요. 인간은 저의 에너지를 버티지 못해야 정상일텐데.”

사이오닉 에너지.

그로 인한 광증.

나 자신을 놓아버릴 뻔한 그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대의 머릿속에 있는 것도 무척이나 흥미로워요. 제가 가진 ‘진리의 도서관’에는 없는 내용이거든요.”

나는 비로소 그녀가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바로 현자의 돌이다.

여자의 심장과 융화한 현자의 돌이, 의지를 갖고 나타난 것이었다.

“세상에 없는 것. 존재하지 말아야할 것들의 청소를 위해, 그대 또한 신들의 ‘위업’으로 선정되겠죠. 우리는 비슷한 처지인 것 같군요.”

그 끝은 파멸이라.

전신에 힘을 줬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이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발버둥치지 말아요. 어차피 못 움직일 테니까. 그대를 해칠 생각은 없······.”

“너와 내가 같다고 생각하느냐?”

“······ 진심으로 놀랐어요. 어떻게 입만 움직일 수 있는 거죠?”

달이 보였기 때문이다.

크로프트의 움직임을 ‘재현’했을 때 보았던 달.

그것이 마치 현자의 돌과 비슷한 형상으로 보였던 탓이었다.

그래서 고민없이 손을 뻗었다.

한 번 겪어본 현상.

놀라긴 일렀다.

이윽고 입, 손, 발, 모든 신체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부동영역을 타파하는 인간이라니···! 괴물인가요, 그대는?”

부동영역.

정령 칼리번이 언급했던 영혼의 안식처.

그렇다면, 그녀 역시 A.I라는 것일는지.

나는 나의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것에 대항한다.

더 이상 내 의지로 움직이지 못하는 인생을 살기는 싫었기에.

그 의지만은 신조차도 어찌하지 못할 에고였다.

A.I 따위에 굴복할 순 없었다.

“만들어진 주제에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마라.”

“재밌는 말이네요. 만들어졌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옳은 말도 아니에요.”

그녀가 웃으며 이어서 말했다.

“나는 바알. 현자의 돌에 깃든 정신생명체. 동시에 지금 이 몸의 주인이기도 하죠.”

“기생하는 건가?”

“합의를 했어요. 살기 위해. 살리기 위해. 둘이 하나가 되기로 했죠.”

생명의 유지를 위해 서로 합의를 했다.

바알이 아니었다면 에디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죽었으리라.

지금 저 모습이 바로 ‘백은의 마왕’이라는 뜻이었다.

모든 생명을 저주하며 학살을 저지른 잔악무도의 마왕!

“······ 저를 제거해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하는군요.”

그의 눈을 본 바알이 기함했다.

그럴 수밖에.

미지의 세계. 신비를 접했을 때 인간은 공포를 느끼기 마련이다.

그 신비를 ‘제거’한다는 생각은 못해야 정상이다.

제거 할 수도 없거니와, 그럴 여유조차 없다.

그런데 눈앞의 남자는 달랐다.

놀라지 않는다. 일말의 공포도 없다.

저 자는 진심으로 자신을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의지를 가진 에픽들 끼리도 서열이 있다, 이건가?’

에픽.

의지를 가진 물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말아야 할 신비.

그녀 역시 그런 신비 중 하나였다.

그리고 저 남자가 가진 머릿속의 신비는, 확실히 자신의 이해 범주를 뛰어넘고 있었다.

아직 전체를 보이지 않았음에도 그녀의 부동영역을 타파해왔다.

뿐만 아니라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융화, 제거할 움직임까지 보인다.

미친놈이 따로 없었다.

신비들 끼리의 기본적인 예의조차 없는 놈이 분명했다.

진리의 도서관에 기재되지 않은 신비. ‘태고의 에픽’ 중 하나임은 확실하나, 왜 저런 게 아직까지 인세에 나돌고 있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인사나 하려고 했더니.’

그래서 에픽끼리 통성명이나 할 겸, 자신의 세계로 불러온 것이었다.

그런데 에픽은 나오지 않고 그 사용자가 의지를 대신하고 있었다.

‘하물며 저 남자는 신비에 먹힌 게 아니라······.’

보통의 에픽은, 자신과 같이 사용자의 정신과 융화된다.

융화 되면 다행이고 대부분 잡아먹어 지배한다.

그런데 눈앞의 남자는 신비와 융화되거나, 먹힌 것 같지 않았다.

도리어 에픽을 완전하게 지배하고 있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태고의 에픽이라면 오히려 더 자기의지가 강할진대.

강력한 에픽일수록 의지는 비대해지기 마련이다. 자신 역시도 그랬으니까.

“너를 제거하지 말아야할 이유가 있느냐?”

“제가 죽으면 이 아이도 죽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살아있긴 하겠지만 이지를 잃은 시체와 다를 바 없게 변하겠죠.”

“그것밖에 없다면 제거해야겠군.”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었다.

이 몸을 구하러 온 게 아니었나?

바알은 생각을 달리했다.

“선물을 드릴게요.”

이 신비한 인간을 아군으로 만들자고.

태고의 에픽과 인연을 쌓아놓으면 후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자신의 ‘자기의지’의 향상에도 많은 진전이 생길지도 모르고.

마음 같아선 이 몸의 주인과 같이 계약을 하고 싶지만, 저 에픽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했다.

계약이 발동되기도 전에 자신을 제거하고자 움직이겠지.

아니면 계약 자체를 무효로 되돌리거나.

“이름이 뭐죠?”

“라인하르트다.”

“좋아요, 라인하르트. 폭주하는 이 아이의 마력을 받아주세요. 이 마력은 제 권능이 섞인 것. 이로 말미암아 그대는 큰 힘을 얻게 될 거에요.”

두웅.

그 순간 커다란 물결과 함께 세상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세상이 가라앉는 느낌.

곧이어 정신을 찾았을 땐, 그녀가 눈앞에서 사라진 뒤였다.

아니, 얼음기둥에 갇힌 그대로였다.

환각이나 착각은 아니다.

‘부동영역.’

나는 바알의 부동영역 안에 있었을 따름이다.

그 영역이 깨지며 현실로 돌아온 것뿐이었다.

콰직!

콰지지직!

찰나였다.

어마어마한 양의 나노머신이 흘러들어왔고, 그와 함께 얼음기둥이 쩌적 갈라지며 내려앉기 시작했다.

“아······!”

“전하, 괜찮으십니까?”

크로프트와 제르민이 나를 챙겼다.

반면 에디스는 떨어지는 여자를 받아들고자 전력으로 달려갔다.

이어 손녀를 받아낸 에디스는 몸을 움찔거릴 수밖에 없었다.

“카이첼. 오, 카이첼!”

눈물을 지으며 그가 오열하기 시작했다.

얼음장같던 카이첼의 신체가 움직이고 있었다.

잠시 후 카이첼이 천천히 눈을 떴다.

“할아버지······?”

“그래. 에디스 할아버지다. 알아보겠느냐?”

“여, 여기가 어디에요?”

“아직 움직이지 말거라. 몸이 회복되려거든 시간이 필요할테니······!”

그 감동을 에디스는 온몸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그도 모르는 것 같았다.

지금 저 카이첼의 행동이 사실 바알에 의한 것임을.

바알은 지금 연기를 하고 있었다.

연약한 카이첼의 연기를 말이다.

[모든 ‘비허가 나노머신’을 지배했습니다.]

[관리자 권한이 5등급으로 격상합니다.]

[지배한 비허가 나노머신들이 ‘사이오닉 에너지’를 품고 있습니다.]

사이오닉 에너지.

바알의 선물이었다.

얻은 즉시, 어떻게 써야하는지도 알 것 같았다.

‘허!’

동시에 나는 전율했다.

대륙의 절반을 정복했을 때에도 느껴보지 못한 감각.

그 이상의 환희가 나를 감쌌다.

< 사이오닉 에너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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