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만이 넘는 병사가 성지(聖地)를 둘러싸고 있었다.
거대한 동굴과 그 주변으로 지어진 조악하기 그지없는 돌탑들.
맞서는 북방의 전사들이라고 해봐야 고작 삼만안팎.
하지만 벌써 한 달이 넘도록 대치가 이어지는 중이었다.
북방의 전사들 중에서도 특수한 힘을 지닌 괴물들 때문이다.
인간이면서 괴물의 모습을 한 자들.
그들은 그것을 ‘신을 받은 자’라고 칭한다지.
‘이것이 신인가.’
카를로스 대공.
거구의 신체. 신력을 이어받은 그 묵직한 손으로 막사 안에 놓인 시체를 들추어보았다.
그것을 본 마법사들이 기겁했다.
“가, 가까이 가시면 안 됩니다.”
“강력한 흑마법의 기운입니다. 언제 마나벽을 뚫고 튀어나올지 모릅니다.”
카를로스 대공은 개의치 않았다.
그의 신체는 성역과도 같았다.
흑마법의 기운은 절대로 그를 침범하지 못한다.
“강력한 흑마법의 기운입니다. 언제 마나벽을 뚫고 튀어나올지 모릅니다.”
흑마법의 기운은 절대로 그를 침범하지 못한다.
카를로스 대공은 개의치 않았다.
“흠.”
그의 신체는 성역과도 같았다.
시체는 변형되어 있었다.
살이 부풀고, 내장이 튀어나오며 알 수 없는 형체가 되어버렸다.
살갗에서 기포가 터진다.
그럴 때마다 알 수 없는 가스 같은 것이 튀어나왔다.
가장 놀라운 점은 피다.
피가, 하얗다.
마법사들이 마나벽으로 막아서고 있지만, 시체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그 기운은 마나벽마저 갉아먹었다.
“흠.”
시체는 변형되어 있었다.
심지어 자신을 둘러싼 ‘성역’마저도 침범하려 하다니.
가공할 위력이었다.
‘소드마스터조차 죽이는 킬링필드라.’
시체는 대공 휘하의 소드마스터였다.
성지에 몰래 잠입한 이후 이렇게 변한 것이다.
육체의 극한에 올랐다고 칭해지는 소드마스터가 고작 10분을 버티지 못했다.
평범한 사람은 들어가자마자 죽으리라.
심지어 ‘걸어다니는 성역’이라 불리는 능력으로도 오래는 버티지 못할 듯싶다.
킬링필드.
그야말로 용의 절대마법과도 같은 것.
고대의 문헌에 적혀있는 그대로다.
‘저 성지 안에, 용이 있다.’
의심은 확신이 됐다.
북방의 특수한 체질을 가진 자들은 저 킬링필드 안으로 들어가 힘을 얻는다.
허나 그들도 성지의 끝까지 가서 용의 존재를 확인한 이는 없다고 전해진다.
깊게 들어갈수록 더 많은 신체의 변형과 힘을 얻지만, 그만큼 극도로 수명이 짧아진다는 단점 또한 있다고.
카를로스 대공은 신을 받은 자 따위에 관심이 없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신이라 불리는 용뿐.
신비이며 사라졌다 전해지는 그 전설이 저 안에 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전쟁에서도 느껴본 적 없는 강렬한 감각에 취할 지경이었다.
저 용을 취하면 세계를 발 아래 둘 것이다.
제국 하나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그러기 위한 모든 물밑작업은 끝이났다.
드디어 성지의 확인도 끝이 났다.
남은 건 정복뿐.
“대공각하. 테베우스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 테베우스가?”
테베우스. 그의 멍청한 셋 째 아들.
후방에 배치해뒀건만 그새를 참지 못하고 찾아왔다.
카를로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들라하라.”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막사를 펼치며 테베우스가 걸어들어왔다.
빠른걸음으로 다가온 테베우스가 급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버지.”
“이곳은 전장이라고 내 누누이······.”
“라인하르트가 북방에 있습니다.”
라인하르트.
그 이름이 왜 테베우스의 입에서 나온단 말인가.
언제나와 같이 궁에 칩거한 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황태자가 해야할 일이었다.
이후 북벌이 끝나면 황태자는 자신의 꼭두각시가 될 것이다.
헌데, 북방이라니.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듯 테베우스가 이어서 말했다.
“크로프트 경과 함께 있습니다. 다른 속내를 갖고 찾아온 게 분명합니다.”
“그것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었느냐?”
“그, 그건······.”
테베우스가 입술을 깨물었다.
차마 라인하르트에게 압도되어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는 걸 말할 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엄청난 속도로 마차가 사라진 뒤였다.
찾으려고 했지만, 길잡이도 없어서 찾을 수가 없었다.
테베우스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제게 기회를 주십시오. 기필코 찾아내겠습니다.”
카를로스는 턱을 쓸었다.
이 시기에, 궁을 벗어나 라인하르트가 북방에 왔다.
잠자는 사자 크로프트와 함께.
‘무엇을 위해?’
무언가 눈치를 챈 걸까?
미친 황태자의 산책치고는 너무 멀리 왔다.
크로프트가 왜 라인하르트와 같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북방에서 벌어지는 일에 의구심을 갖고 찾아온 건 분명해보였다.
그리고 크로프트가 함께 있었다면, 테베우스가 라인하르트를 잡지 못한 것도 이해는 되었다.
허나 시기가 너무나도 공교롭다.
하필이면 성지를 공략하기 바로 직전.
‘그림자의 색출에 반응하는 것인가?’
성지를 정복해 용을 취하고자 그는 내부의 첩자부터 소탕했다.
자신이 용을 취하는 과정을, ‘용’이 무엇인지를 황실 측에 알리지 않기 위함이었다.
이상함을 눈치챈 황제가 크로프트를 보낸 경우의 수도 생각해보았다.
‘평화에 찌든, 무능한 황제가 움직였다?’
무능한 황제.
카를로스는 평화의 수호자라 불리는 데우스를 무능하다고 여겼다.
평화의 이면에 존재하는 괴물을 그는 모른다.
데우스로 인해 제국은 도태되고 있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결국 제국은 과거의 명성과 힘을 잃고 다른 국가에게 정복당할 것이다.
위대한 천 년 제국의 역사가 데우스로 인해 뒤안길로 사라진다.
그것만큼은 막아야하지 않겠는가.
제국을 더욱 위대하게 만들기 위한 계획은 종지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헌데.
자신이 짜놓은 판의 말이 멋대로 움직였다?
“테베우스.”
“예, 대공각하.”
“잡아오너라. 허나, 죽여선 안 된다.”
테베우스의 입이 귀에까지 걸렸다.
실수를 만회할 기회가 찾아왔다.
다시 전선에 서 공을 세울 절호의 기회.
라인하르트. 놈은 복덩이였다.
비록 굴욕당했지만, 갚아주면 그만.
“죽이지만 않으면 됩니까?”
“도망치지 못하도록 발목 하나쯤은 잘라도 되겠지.”
“명을 받듭니다, 대공각하.”
“패트릭, 크로우와 함께 가라. 둘이라면 크로프트도 능히 제압할 수 있을 터.”
“아······! 감사합니다. 반드시 잡아서 돌아오겠습니다!”
패트릭과 크로우는 대공 휘하의 소드마스터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실력자들이다.
감히 전성기 크로프트가 와도 쉬이 상대하기 힘들 수준의 강자들.
설령 변수가 존재해도 그 둘을 대동한다면 잡지 못할래야 못할 수가 없었다.
둘의 공백으로 성지의 진입이 늦어지겠지만, 그만큼 라인하르트를 잡아오는 게 시급하다는 방증이었다.
테베우스가 주먹을 바스라지게 쥐었다.
다시 없을 절호의 기회.
‘기다려라, 라인하르트.’
***
북방의 사람들은 바람과 냄새를 읽고 방향을 잡는다.
굳이 교육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었다.
두 아이의 인도에 따라 마차의 방향을 정하고 움직였다.
어미를 잃은 슬픔이 강렬했지만 자신들을 구한 게 우리라는 것을 두 아이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 도착했습니다, 전하.”
에디스가 말했다.
마침내 도착한 곳은 반파된 성당이었다.
성당의 지하로 향하는 입구. 그 위에 한 남자가 있었다.
거대한 할버드를 쥔 전사.
하지만 신체가 이상하게 변형한 이였다.
팔과 다리의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팽배했으며 자라난 털도 짐승의 그것처럼 뒤덮여있었다.
“파간!”
“파간!”
마차에서 내린 두 아이들이, 그 남자의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신성한 의식과도 같이.
그 모습을 보며 에디스가 설명했다.
“‘신을 받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나도 알고 있었다.
북방의 전사들 중 가장 특출난 자들.
그들을 파간이라 불렀다.
신을 받은 자. 하나같이 기괴한 신체변형을 일으킨 괴물들.
북방의 사람들은 그들을 숭상한다. 진짜 신처럼 여겼다.
하지만 파간의 수명은 극히 짧다.
신을 받으면 길어야 1년을 살지 못한다고 한다.
북방을 오랜시간 정복하지 못한 건 저 파간들의 강력함이 존재해서다.
수명과 바꿔, 상상을 초월하는 신력을 얻은 저들의 희생으로 북방은 지켜졌다.
“놀라우십니까?”
“그들은 오래 살지 못한다고 들었는데. 저곳에 꽤 오래있던 것 아닌가?”
손녀가 폭주하고 몇 년은 지났다.
계속해서 저곳을 지키고 있었다면 신을 받고 몇 년이 더 지났다는 의미였다.
이는 파간의 평균수명을 웃도는 것이었다.
에디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파간 중에서도 유독 특수한 체질이라 하더군요. 또한 그는 제 오랜 벗입니다.”
이어 에디스가 파간에게 다가가 양 팔을 벌렸다.
진정으로 반가운 친구를 만났을 때의 표정으로.
파간 역시 양 팔을 벌려 그를 환대해주었다.
하지만 내가 놀란 건 저 파간의 기괴한 생김새 때문이 아니었다.
[‘방사능 피폭’ 수치가 한계치를 뛰어넘은 상태입니다.]
[‘비인가 나노머신’에 의해 억제되고 있으나 현재 단계에서 치료는 불가능합니다.]
[방어체제에 돌입합니다.]
만에 하나 유입될 방사능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고자, 제로가 방어태세에 들어갔다.
나노머신들이 벽처럼 나를 둘러싸기 시작한 것이다.
‘방사능?’
이윽고 그 단어를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해냈다.
그것은 이세계의 단어다.
찬란한 문명을 고작 10여분만에 몰락시킨 최종병기.
그 병기가 쏟아내는 물질이 바로 방사능이었다.
인류를 절멸시킨 진짜 악마의 이름 말이다.
그런데 왜 저 파간이 방사능에 피폭되었다는 것인가.
‘제로. 내가 방사능에 피폭되면 어떻게 되지?’
[방사능 피폭의 증상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방사능은 인간의 DNA구조를 파괴시키고, 그로 인해 돌연변이 현상을 야기합니다. 적은 수치로도 암, 탈모, 백혈병을 일으키며 조직을 괴사시키고 피를 하얗게 만드는 등 생명체에게 치명적인 무기입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 나노머신 ‘Zero’는 방사능에 피폭된 인류를 구원하고자 제작되었습니다. 제가 기동하는 한 방사능이 마스터의 신체에 해를 끼칠 가능성은 없습니다.]
돌연변이 현상이라.
파간의 저 기괴한 신체는 방사능에 의한 모습이란 뜻이다.
그리고 제로는 그런 방사능으로부터 나를 지키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내비췄다.
‘선택받아 성지에 들어간 전사들만이 파간이 된다. 성지에는 용이 있다. 용은 방사능을 내뿜는다······.’
그렇다면 용이란 무엇인가.
진지하게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에디스와 파간을 따라, 문을 열고 지하로 향했다.
지하의 너른 공동.
그 가운데에 있는 한 얼음기둥을 보고나선 모든 고민이 날아가버렸다.
“제 손녀입니다, 전하.”
에디스가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얼음기둥의 중심에 갇힌 여인.
하얀 얼굴과 하얀 피부.
대륙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백색종이다.
마나폭주로 인해 에디스가 억지로 빙결시켜두었다던 그녀였다.
내가 아는 거라곤 손녀가 죽고 에디스가 마탑주의 자리를 내려놓는다는 것뿐이었다.
그 손녀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 자인지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저 여인의 모습이, 왜인지 낯이 익었다.
용에 대한 고민을 단번에 날려버릴 만한 존재.
‘······ 백은의 마왕.’
그것은, 말피엘이 달성한 일곱 번째 위업의 이름이었다.
< 백은의 마왕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