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을 나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제르민의 얼굴을 보는 순간 마차 안은 확인도 하지 않고 통과였다.
대대로 황가를 모셔온 집사 가문.
그 위치는 어지간한 귀족보다 높았다.
무엇보다 궁 천제가 시끌벅적했다. 정령의 출현으로 인해 일개 병사들마저 ‘혹시 내가?’ 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을 시기.
별 의심 없이 관문대를 통과한 이후 마차는 길가를 달렸다.
“······.”
마차 안은 적막이 가득했다.
공기가 무겁다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전신이 짓눌릴 것만 같았다.
에디스와 크로프트.
그리고 그사이의 나까지.
“마차의 속도를 높이겠습니다.”
에디스가 원을 그렸다.
원은 진리다. 완전무결함의 상징이다.
모든 마법사가 마법을 쓰기 전에 원을 그린다.
그러면 마나가 흘러나와 원형을 이루고 의지를 증폭시키는 것이다.
“마나여, 나의 의지에 순응할지어다.”
순간 어마어마한 양의 나노머신들이 그의 심장에서 흘러나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주변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바람의 방향이 마차가 달리는 길로 바뀌었고, 땅은 더욱 평평해졌다.
마차를 끄는 말들에게도 마나가 주입되자 속도가 두 배는 더 빨라진 것 같았다.
이것이 8서클 대마법사가 이룩한 경지.
다른 명령을 입히지 않아도 의지만으로 주변에 영향을 끼친다.
상상을 초월하는 양의 마나를 필요로 하지만, 그의 심장에 있는 마나량은 바다와도 같았다.
“저 또한 거들도록 하겠습니다.”
그에 질세라 크로프트가 마차에 손을 댔다.
동시에 그의 전신을 두른 흰색의 오러가 마차와 말에게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경지에 이른 기사만이 사용한다는 오러.
나뭇가지에 오러를 입히면 강철보다 단단해지며 절삭력이 높아진다.
공격적으로 사용하는 게 보편적이지만, 크로프트의 오러를 다루는 솜씨는 진즉에 그것을 뛰어넘었다.
마차가 흔들리지 않는다.
“워, 워!”
히이이이잉!
동시에 말들이 폭주했다.
마차는 평범하지만 마차를 끄는 말들은 명마다.
갑작스러운 변화조차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며 질주해나갔다.
어찌나 빠른지 스쳐 지나가는 배경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였다.
제르민의 말을 모는 실력이 조금만 부족했더라도 사달이 났을 것이다.
덕분에 일반적으로 이틀은 걸려야 벗어날 황도를 고작 반나절도 안 되어 빠져나갔다.
황도를 벗어나 북방으로 가려거든 험준한 산맥을 넘어야 한다.
돌아가면 최소 두 달은 더 걸린다.
하지만 아무리 지름길이라 하더라도 산세가 험하고 도적이 많아 대상인들도 꺼리는 길.
그런데도 마차의 속도는 줄질 않았다.
“멈춰라! 우린 악명높은 ‘레드 후드 도적단’······!”
“피, 피해!”
“미친, 뭐야 저거!”
“허어어억!”
지금 뭔가를 밟고 지나간 것 같은데.
저기 날아가는 건 사람 아닌가?
마차는 여전히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그 자체였다.
북방과 제국 국경을 잇는 로카리 산맥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 중 한 곳으로 꼽힐 만큼 험난한 곳이었다.
도적들이라고 해봐야 산맥 초입에서 겨우 자리나 잡고 있을 뿐.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미지의 야생이 기다리고 있어 인간에겐 치명적이다.
단순한 야생동물만이 아니라 ‘마물’도 많았다.
카를로스 대공조차도 병력의 손실을 줄이고자 산맥을 두 달여간 돌아서 북방으로 진출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산주인의 피를 뿌려놓았으니 안심하고 주무셔도 됩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로카리산맥의 어느 이름 모를 산 중턱에 있었다.
크로프트는 마물의 머리를 잘라 주변에 피를 흩뿌려놓았다.
지금 우리가 있는 산의 주인인 거대하기 짝이 없는 오우거였다.
수백 개의 산으로 이루어진 산맥.
모든 산의 주인이 다르다지만 오우거라면 상급의 마물이다.
그것을 크로프트는 한 끼 간식처럼 해치우곤 돌아온 것이다.
‘도저히 모르겠군.’
크로프트 경.
그대의 생각이 잘 읽히지 않는다.
과거에 그와 대화를 나눈 적조차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하물며 그 대화라는 것도 전부 나를 질책하는 것이었고.
진심에서 우러나와 나를 따르고 있지 않다는 건 확실했다.
‘나를 의심하고 있는 거 같긴 한데.’
처음부터 그는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라면 제르민이 마차를 구해왔을 때 하필 그 시기를 노려서 찾아오진 않았으리라.
내가 에디스의 부탁을 받아 떠나리라고 진즉에 예상한 모습이었다.
문제는 그 이후의 행보다.
황제의 측근일 터인 그가 아무런 말 없이 혼자 나선 이유.
“크로프트 경. 그대의 의도를 알고 싶군.”
하여 물었다.
어차피 나 혼자 끙끙 앓아봤자 답이 안 나온다.
그리고 크로프트는 ‘할 말 다 하는’ 성격의 검사였다. 귀족들이 그를 질색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였다.
스릉.
순간, 그가 허리춤의 검을 뽑았다.
황궁의 바깥. 나의 목을 노리는 건 더욱 쉬운 일.
이곳 로카리 산맥이라면 시체조차 남기지 않을 수 있을 거다.
궁에선 그가 나온 사실조차도 모를 테니 살인의 장소로는 안성맞춤이었다.
에디스가 경계했지만, 근접전에서 소드마스터를 이길 순 없다.
죽음의 문턱. 그저 검을 뽑는 것만으로도 스산하기 짝이 없는 기운.
허나 나는 과거의 경험에서 이미 숱하게 겪어봤다.
강자가 약자를 죽일 때 구태여 검을 보이진 않는다는 걸.
검날이 보이기도 전에 목을 잘라 숨통을 끊어버린다는 것을.
“··· 놀라지 않으시는군요.”
의외라는 크로프트의 눈빛.
피식 웃으며 답해주었다.
“죽이려면 진즉에 죽였겠지.”
“과연, 그랬겠지요.”
크로프트도 수긍했다.
무엄하기 그지없으나 사실이었다.
죽일 기회라면 넘쳐났다.
심지어 고민조차도 하였다.
황태자를 죽여, 황실의 안정을 꾀하는 것에 대하여 말이다.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까?”
크로프트가 자신의 검을 내게 건넸다.
투박한 철검.
이름난 명검은 아니지만 그에겐 이거면 충분했다.
받아 쥐자,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음.”
“무거우실 겁니다. 무게가 일반적인 철검의 세 배는 될 테니.”
“확실히 그래 보이는군.”
일반 철검의 무게가 대략 5kg.
그 세 배라면 15kg가 넘는 무게였다.
크로프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또한, 한 달 전의 전하셨다면 들지 못했을 겁니다.”
약에 찌들어 피골이 상접한 몸.
제대로 된 철검 하나 들기 어려웠던 내가 지금은 그 세 배의 무게에 달하는 걸 대수롭지 않게 들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다.
물론 아무도 이의를 제기한 적은 없었다.
그만큼 나를 유심히 보고 있는 이는 없었으니까.
그러나 크로프트의 눈썰미를 피해갈 순 없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조금 늦게 성장기가 온 거겠지.”
“그런 것치곤 하루가 다르게 몸 상태가 좋아지시더군요.”
“튼튼한 게 죄는 아니지 않나.”
“털과 신장의 성장이 평범한 사람보다 30배쯤 빠르기도 했습니다.”
크로프트는 나노머신 제로가 신체대사를 30배 올려놓은 것까지 꿰뚫고 있었다.
예리하다. 저 혀에 몸과 머리가 잘려버릴 것만 같았다.
허나 크로프트가 어느 쪽에 선을 대고 있는지 애매한 지금, 내 모든 것을 밝힐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근육과 뼈의 형태, 피부에서 탈피하는 각질 따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전하의 체질이 근본까지 뒤바뀌어 버렸다는 것을. 도저히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말입니다.”
크로프트는 내가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건 나의 무능력함을 토로하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믿고 싶은 것만을 믿는다.
그가 나를 ‘라인하르트’가 아니라고 규정한다면 골치가 아파질 수 있었다.
금기 마법에 손을 대 악마와 빙의했다고 믿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 제로를 악마로 규정짓고, 나는 악마 추종자가 되어 목이 매달릴 가능성마저 존재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크로프트 경.”
굳이 저런 내용을 지금 입에 담은 이유.
무겁게 내리깔자 크로프트가 의외의 말을 했다.
“검을, 배워보시겠습니까.”
“······ 검을?”
검이라니. 예상조차 못했다.
크로프트에게 검을 배우는 기사는 많다.
어지간한 궁의 기사는 모두 크로프트를 한 번씩 거쳐 간다.
하지만 그가 정식으로 가르치는 제자는 없었다.
그가 누군가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는 것도 들어본 바 없었다.
“재생이 30배 빠르다는 것은 근육의 회복 또한 그만큼 빠르다는 뜻. 마음만 먹는다면 그 자체가 엄청난 재능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말 그대로다.
하지만 상대가 크로프트인 게 여전히 걸렸다.
‘내가 제대로 검을 배운다?’
진짜 검의 천재는 1황자 라우넬이었다.
2황자인 카잔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마법적인 재능을 지녔다.
3황자 카르몬의 재능은 그 누구보다 희귀했으며,
4황자의 경우 알 수 없는 신력을 타고났다.
반면 나는 아무것도 없었다.
배우고자 하는 의지도 없었고, 광증으로 인해 무엇 하나 깊게 파고들지도 못하는 탓에 가시적인 능력을 보여준 적도 없었다.
내가 배운다고 저 천재들을 이길 수 있을까?
‘못할 것도 없지.’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의지도, 몸의 상태도.
“마음은 고마우나, 갑작스럽군.”
그러나 준다고 넙죽 받아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크로프트의 진짜 의도를 알아야만 했다.
“제가 이러는 것이 당황스러우십니까?”
“솔직히 아니라고는 못 하겠다.”
“이해합니다. 저 역시도 모르겠으니.”
크로프트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오랜 시간 황태자를 지켜봤다.
수없이 실망하며 희망을 놓았다.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영원히 저 상태일 것이라고 굳게 믿었건만.
근래에 보여준 황태자의 행보는 상상을 초월했다.
달라졌다. 아예 다른 사람 같다.
여태껏 삶에 의지를 보인 적 없던 황태자가 누구보다 밝게 빛나고 있었다.
제국의 미래를, 안녕을 생각한다면 궁 밖에서 죽여야 한다.
황태자의 광증은 모두를 파멸로 몰아넣을 것이기에.
―형이 동생을 구하는 게, 정녕 이상한 일이냐고 물었다.
그때의 그 한 마디가, 그 눈빛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
“······ 그저, 늙은이의 변덕이라고 생각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다가 내가 검의 천재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나?”
“허허, 그럴 일은 없습니다.”
즉답이었다.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는 확신에 찬 어조.
애당초 검을 가르친다는 건 거창한 뜻이 아니었다.
의지를 보려는 것뿐이다.
정말 과거의 황태자와는 달라진 건지. 그 근성 없던 황태자가 변화를 꾀하려고 하고 있는 것인지.
재능이 넘쳐흘러서 제자로 들이겠다는 말과는 거리가 멀었다.
진짜 기본기만 닦아놓을 생각이었으니까.
황태자 라인하르트가 검에 재능이 있을 거란 기대는 처음부터 없었다.
‘검을 보는 눈은 있지만 그것을 몸에 익혀낼 순 없는 둔재. 몸이 건강해졌다고 그 사실이 변하진 않는다.’
자신이 발견하지 못한 재능이 있을 지도 모르지만, 그게 검이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물론 황실의 피를 이었으니 기본은 하겠지만 그 이상을 바라진 않았다.
재생능력을 칭찬한 건 어디까지나 ‘미친 듯이 굴리겠다’는 의미.
굴리고 또 굴리다 보면 본성이 튀어나오게 되어있었다.
“흠, 냉정하군.”
“궁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만 가르쳐드리겠습니다. 참고로, 중간에 포기할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겁니다.”
전성기 시절 최강이라 불렸던 그다.
그의 검술을 직접 배울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좋다. 한 번 배워보마.”
“말 나온 김에 기본적인 동작부터 먼저 보여드리지요.”
검을 넘기자, 크로프트가 자세를 잡았다.
숨 쉬듯 자연스럽게 전신으로 나노머신이 퍼지는 게 보였다.
오러를 피우지 않았음에도, 모든 신체가 자연스럽게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스읍.
숨을 들이마신 그가 검을 내리그은다.
천천히, 너무나도 느릿하게, 그가 달을 베었다.
나무를, 산을, 세상을 베었다.
단 한 번의 동작에 얽혀있는 흐름에 압도될 지경이었다.
저게 그에게 있어선 ‘기본’이다.
누군가는 십 년, 이십 년을 투자해야 겨우 도달할 경지가.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 한 번 따라 해보시겠습니까?”
나는 검을 쥐어 보였다.
초보자가 이해하기엔 너무나도 높은 경지에 베어내기였다.
크로프트 역시 내가 한 번 보고 재현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은 일절 없어 보였다.
갓난아기가 검을 쥔다고 풍월을 읊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제로. 스캔은 제대로 됐겠지?’
[예, 마스터. 모든 생체의 움직임, 나노머신의 동향을 전부 기록했습니다. 녹화한 것을 바탕으로 재현을 시작합니다.]
관리자 권한의 등급이 오르며 생겨난 제로의 새로운 기능들.
그중 하나가 발현되기 시작했다.
< 천재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