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
기적을 일으키는 자.
일반인들의 눈에 그들은 신과도 같아 보였다.
하지만 마법사들은 달리 말한다.
“마법사란, 마나에 의지를 입히는 자다.”
빛의 마탑주 안드로센이 말했다.
마법은 기적과 같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 ‘상상해야만’ 일으킬 수 있는 도구 같은 것이라고.
마나라는 촉매에 의지를 입혀 사용하는 게 마법사였다.
농사꾼이 농기구를 사용해 밭을 일구듯 마법사 역시 마나를 이용해 마법을 사용했다.
그렇다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마나란 대체 무엇인가?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그것에 어떻게 의지를 입힌단 말인가?
“하지만 마나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진행 중이지. 대륙에 존재하는 217개의 마탑과 그곳에 등록된 274,365명의 마법사가 말이야.”
마탑에 등록된 마법사는 20만 명이 훌쩍 넘는다.
등록되지 않은 마법사의 숫자는 그보다도 더 많다.
개나 소나 마법사를 자칭해, 마탑에 등록할 수 있는 정식 마법사의 수준을 4서클로 규정해놓은 탓이었다.
“그리고 비정식 마법사까지 합치면 백만 명은 족히 되겠지. 그중, 8서클에 오르는 ‘대마법사’는 고작해야 스물 안팎이다. 나를 포함해.”
상상을 초월하는 수련과 깨달음을 통해야만 들어설 수 있는 길.
그것이 8서클의 대마법사였다.
“그런 나조차도 마나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른다. 그것을 깨달아야 9서클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니까.”
“안드로센 마탑주님. 마나는 자연과 생명의 기본적인 구성요소가 아니었습니까?”
황궁에 데려온 마법사들은 대부분 유망주였다.
마탑의 차세대 얼굴들.
모두 이른 나이에 5서클의 벽을 넘어선 천재들!
제국 황실의 사람들과 안면도 틀 겸, 바깥바람도 쐬게 해줄 겸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온 황궁이었다.
본래라면 황자들의 시연을 본 다음 날 바로 떠나기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벌써 삼일 째 그들은 황궁에 발이 묶여있었다.
빛의 마탑주 안드로센은 고개를 저었다.
이제는 진실을 알려줄 때가 되었다.
“인간이란 자신의 ‘개념’에 위반되는 지식은 본능적으로 거부하게 되어있다. 마나가 자연이며 생명이라는 건 그 때문에 인위적으로 만든 가짜지식이다.”
“모든 마법사가 그렇게 배우지 않습니까······? 그게 가짜라니요?”
“6서클의 도달은 그 의문에서부터 시작한다. ‘마나란 무엇인가?’ 말이다. 너희들에게 묻겠다. 자연은 인위적인가?”
“아닙니다.”
모두가 동시다발적으로 답했다.
자연은 자연이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아도 알아서 움직이는 게 자연이었다.
안드로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의 손을 거치면 우리는 그것을 ‘인위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인간은 본래 자연을 조종할 수 없다. 자연은 결코 인위적으로 될 수 없다.”
“그래서 마법사에게만 허락된 특혜 같은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아니다. 마나는, 자연적이지 않다. 자연발생적이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는 인위적으로 그것에 의지를 입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거다.”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
하지만, 기분일 뿐 안드로센의 말이 정확히 무엇을 정의하는지 알 수 없다.
이것은 실마리다.
이 실마리를 이용해 깨달음을 얻으면 6서클에 오를 수 있다.
안드로센이 이어서 말했다.
“마법사의 서클이란 결국 마나를 얼마나 잘 다루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친화력에 알맞으며, 심장의 서클에 새겨넣은’ 마나에 국한된다.”
마법사를 포함한 모든 ‘마나 사용자’들에게 공통되는 이야기다.
마나는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다.
하지만 적응력과 친화력이 있는 자들은 극소수의 마나를 품는 게 가능하다.
그 품은 마나를 이용해 마법이니 오러이니 하는 기예를 부리는 것이다.
품은 마나는 본능적으로 심장에 기거해, 원을 그린다. 그 원을 그들은 ‘원천’이라 부르고 있었으며, 마나가 원을 몇 바퀴 도느냐에 따라 서클을 정의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타인의 마나를 손댈 수 없다. 느낄 수조차 없다. 서클이 오르면 대지에 퍼져있는 마나에 약간의 영향은 줄 수 있을지언정 그것을 다룰 수는 없다.”
“‘폭주’를 막지 못하는 이유이겠군요.”
“그래. 마나폭주는 자신의 마나로 인한 것. 타인은 그것을 어찌할 수 없다. 타인과 대기의 마나를 다룰 수 있다고 전해지는 전설 속의 9서클 마법사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럼 황태자가 9서클이란 말씀입니까?”
안드로센은 고개를 저었다.
“황태자는 9서클이 아니다. 아무리 마법사가 타인의 마나를 느낄 수 없다고 하더라도, 경지에 오르면 마나에 대한 ‘감각’이 활성화된다. 황태자에게선 마법사의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아.”
하지만, 알아본 자는 있었다.
크로프트.
소드마스터, 검왕, 최강의 검사 따위로 불리는 그는 가장 먼저 황태자가 3황자를 치료한 걸 눈치챘다.
먼저 알고 있었다는 눈치는 아니었다.
‘일반적인 소드마스터는 7서클에 비견되곤 하지.’
마법사와 기사 간의 비교 구도는 수백 년이 넘도록 이어져 왔다.
오러를 피워낼 수 있는 소드마스터는 마법사의 몇 서클에 해당하는가.
대략 7서클이라고 하지만 개인차가 심했다.
같은 8서클 마법사라도 편차가 있듯이.
아마도 크로프트는 마법사로 따지면 가장 9서클에 근접한 인간일 것이었다.
그랬기에 폭주를 치료한 게 황태자라고 바로 알아본 건 아닐는지.
자존심이 상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황태자는 어떻게 타인의 폭주를 치료한 겁니까?”
“한 세대에 한, 두 명밖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허무 속성의 소유자이거나, 신의 위업을 달성하고 ‘마나의 신’에게 축복받은 인간이겠지. 아, 사기일 수도 있겠군.”
“······ 전부 터무니없군요.”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더 있는 인간일 수도 있다.”
네 가지 경우의 수.
전부 말이 안 된다.
허무 속성은 전설로만 전해 내려오는 특성이다.
신의 위업?
간혹 ‘별내림’을 통해 계시를 받는 이들이 있기는 있었다.
열두 가지의 위업을 달성하면 신과 같은 힘을 가질 수 있다고 전해지긴 하지만 보통 세 개쯤 깨고 포기한다.
그 3개의 위업을 달성하는 것도 천 명 중 한 명이라고.
3개의 위업만으로도 특정 신의 가호를 받고, 인간을 초월한 힘을 내보인다.
인류역사상 12개의 위업 전부를 달성한 인간은 없었다.
최고 달성자는 10개. 제국을 건국한 ‘절대자’라 불렸던 존재뿐.
마나의 신에게 축복을 받았다고 하면 가능한 이야기지만, 황궁에만 있는 황태자가 어찌 위업 달성을 한단 말인가.
사기이거나, 말 그대로 신비일 것이다.
“그래서 알아내야 한다. 어쩌면, 우리의 갈증을 풀어줄 수도 있는 존재일 테니. 그게 아니더라도······.”
폭주를 완화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은 대단한 것이다.
마법사의 연구는 언제나 폭주의 위험을 동반한다.
그로 인한 사망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그 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여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마법은 눈부신 발전을 이룩할 것이다.
수십, 수백 년을 앞당길 수 있고, 어쩌면 궁극적인 ‘9서클’로 도달하는 길에 이정표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9서클.’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그 영역에 가장 먼저 발을 디딜 수 있다면.
모든 마탑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이는 공식적으로 세워진 217개의 마탑 모두가 걸어놓은 맹약.
―모든 마탑과 마법사는 궁극에 이른 자를 주인으로 모신다.
하지만 9서클의 마법사는 천 년 동안 나온 적이 없었다.
고대의 시대에는 존재했다고 전해지지만 실체를 확인한 사람도 없다.
‘우리가 먼저 접선해야만 한다.’
다른 마탑주들이 황궁을 떠나지 않는 이유도 같았다.
모두가 눈치만 보고 있는 상태.
‘그나마 우리는 3황비와 접점이 있지.’
그나마 라인하르트 황태자가 3황자를 치료하고 있었기에, 3황비와 접점이 있는 빛의 마탑이 조금 더 유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무작정 접촉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황태자가 보여준 모습으로 말미암아 소문과 다르다는 건 알겠다.
알겠는데······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보는 눈이 너무 많아.’
하물며 황태자와 자칫 잘못 접선했다간, 황실의 미움을 살 수도 있었다.
여러모로 고민이 되는 상황.
“아, 안드로센님!”
문을 열고 들어오는 마법사를 보며 안드로센이 인상을 찌푸렸다.
“노크도 안 하고 무슨 일이냐?”
“그, 그게, 접촉했습니다.”
“접촉?”
“얼음마탑과 황태자가 접촉했습니다!”
안드로센의 표정이 더욱 굳어버렸다.
여유를 부리다가 선수를 뺏긴 것이다.
***
“그러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얼음 마탑의 마탑주, 에디스가 말했다.
어제와 똑같은 길로 산보를 하고 있을 때였다.
‘그가 직접 접촉해올 줄은 몰랐군.’
나 역시 조금 놀라고 있었다.
적어도 며칠은 더 있어야 밑의 마법사 한 명쯤을 우연을 가장해 보낼 줄 알았건만.
직접 얼음마탑의 수장이 찾아오리라곤 상상하지 못한 것이다.
아무래도 황실은 숨소리 하나도 정치와 엮여있는가 보니, 정치판을 잘 모르는 마법사들은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디스라.
80은 훌쩍 넘었을 나이.
그럼에도 젊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8서클에 이른 마법사들은 한 차례 ‘마나 샤워’를 겪으며 육체가 젊어진다고 한다. 수명이 늘어 최대 200살까지도 살 수 있다고.
권위를 위해 노인의 모습대로 사는 사람도 있지만, 에디스는 젊음을 택한 듯싶었다.
‘급했겠지.’
에디스의 손녀가 마나폭주로 죽었다.
바로 죽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오늘, 내일 하고 있을 터였다.
저 팔이 그 증거다.
그리고 손녀가 죽은 이후 그는 마탑주의 자리를 내려놓는다.
“무엇을 말이냐?”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뻔뻔하게 되묻자 에디스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마법사는 황실의 생각보다 독한 자들입니다. 그렇게 대놓고 움직이시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릅니다.”
“내가 마법사에게 그 정도의 가치를 지닌 인물인가? 황실을 척지면서까지 움직일 정도로?”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안다.
너무 잘 알아서 탈이다.
내가 폭주를 완화했다는 것. 어쩌면 그 방식에 ‘궁극’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들은 상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궁극은 없다.
나노머신만이 있을 뿐.
그것을 말한다고 믿을 리도 없겠지만, 나는 어깨만 으쓱해 보일 따름이었다.
“얼음 마탑의 마탑주가 직접 움직일 줄은 몰랐군.”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호라. 그렇다면 나와 연관되는 게 어떠한 의미인지는 잘 알고 있겠군?”
이곳, 황궁에서 나와 연관된다?
죽겠다는 거다.
고립되겠다는 뜻이다.
황실에서 마탑에 지원하는 금액은 상상을 초월한다.
어림잡아 마탑 1년 재정의 80%를 넘길 것이다.
엉덩이 무겁기로 소문난 마탑주들이 먼 황궁까지 직접 오는 이유이기도 하였다.
나와 연관되면 황비들이 나서서 저 지원비를 끊으려고 작심할 터.
황실의 지원을 받고 싶어 하는 마탑은 많았으니까.
“······ 마탑주의 자리에 욕심은 없습니다. 조만간 은퇴할 생각이었지요.”
얼음 마탑과 자신은 별개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생긴 문제는 모조리 자신이 떠안고 가겠다는 거다.
“그러면서까지 나를 찾아온 이유가 있을 텐데.”
“······ 제 손녀를, 고쳐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좋다. 데려오라.”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에디스 역시 모험을 했으니 여러 가지를 잴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에디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불가능합니다.”
“어찌하여?”
“제가 전신을 얼려두었기 때문입니다.”
“설마 그 팔을 얼렸듯이 몸 전체를 얼렸단 말인가?”
“예.”
미친.
이제야 그가 직접 나를 찾아오는 도박을 건 이유를 알겠다.
내가 직접 에디스의 손녀가 있는 곳으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실을 벗어나면 나는 죽는다.
솔직한 말로 죽을 가능성이 거의 99.9%에 달했다.
“얼려둔 정도라면 옮기면 그만 아닌가?”
“생명 유지를 위해 완전히 고정해두었습니다. 만약 허투루 움직인다면······ 죽을 겁니다.”
이쪽으로 옮겨오는 게 불가능하다는 말.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황실 밖이 내게 무슨 의미인지 아는가?”
“제가 목숨을 걸고 호위하겠습니다, 전하.”
8서클 대마법사의 호위라.
정말 든든하다.
든든하기는 한데.
‘한 손으로 열 손 못 당한다.’
심지어 그 열 손도 비슷한 급의 강자들이다.
가장 우려되는 건 1황비와 4황비다.
얼음 마탑과 접촉했으니 4황비는 반드시 움직일 것이고, 나를 죽이지 못해 안달인 1황비도 내가 황궁 밖으로 나가는 순간 수작을 부릴 터였다.
3황비인 조세핀은 족쇄를 채워뒀으니 당장은 안전하겠지만, 저 둘의 공세와 다른 마탑의 움직임으로부터 그가 혼자 나를 지킬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은 버리는 게 좋다.
그런데 만약 2황비까지 움직인다면?
절망적이다.
얼음 마탑의 마탑주를 내 편으로 만들 절호의 기회인 건 분명하다.
그가 있으면 특급 죄수동을 지배하는 것 또한 한결 편해질 터이니.
“당장은 힘들겠군.”
“그렇, 습니까.”
하지만, 현실이 그랬다.
물론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나를 신경 쓰지 못할 정도의 큰일이 황실에서 벌어진다면 모를까.”
바로 황비들이 나를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큰일이 벌어지는 경우.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대가 나를 돕는다면 가능하겠지.”
동시에 오른쪽 팔을 걷었다.
“이, 이건······!”
“역시 알아보는군.”
“정령어 아닙니까?”
정령.
인간과의 접점이 아예 사라져버린 고대의 존재.
그런 정령들이 사용하던 언어가 내 오른팔에 새겨져 있었다.
‘빛의 탐구자를 부숴버렸지.’
조세핀 황비에게 빛의 탐구자 지팡이를 받아온 직후.
나는 그것을 부숴버렸다.
지팡이 내부에 있는 정령어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나노머신 제로에 의해 그 정령어를 그리고 있던 글자들, 일명 ‘비인가 나노머신’들이 내 오른팔에 기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로서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
“황실에 정령이 출현한다면 어떻겠나.”
“난리가 나겠지요. 황실만이 아니라, 대륙 전체에.”
“그대가 도와야 할 일이 뭔지 알겠군.”
옷매무새를 단장하며 미소지은 채 에디스를 바라봤다.
에디스의 두 눈이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결연한 표정으로 에디스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기필코 성공시키겠습니다, 전하.”
< 궁극으로 가는 길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