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었다.
라인하르트가 자신의 눈을 피하지 않은 것은.
그래서 마주 보는 것 또한 처음인 듯싶었다.
‘짐의 눈을 피하지 않는다······.’
먹과 같이 검은 눈, 새까만 검은색의 머리카락.
황후를 그대로 빼닮은 특징들.
반면 자신과 닮은 점이라곤 하나도 없는 게 라인하르트였다.
라인하르트는 다른 황자들과 달리 어려서부터 모든 게 느렸다.
말을 하는 것도, 배우는 것도, 모든 게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황태자다.
―저 정도면 자폐아 아니야?
―황제의 친아들이 아니래.
황실의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황후가 죽고 난 다음부턴 대놓고 무시하기 일쑤였다.
황제 데우스 역시, 그런 라인하르트에게 정이 가지 않았다.
자신의 눈만 마주쳐도 우는 저 아이를 귀족들의 요구에 따라 황태자로 책봉시킨 다음부턴 더더욱.
‘이처럼 또렷했던가?’
그가 기억하는 라인하르트의 눈은 항상 탁했다.
흐릿하고 기운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라인하르트는 그 누구보다도 강렬한 기세를 지니고 있었다.
피하지 않는다.
되려, 여유마저 지녔다.
저런 특유의 눈빛을 한 자들을 안다.
그것은 한 번,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자리에 올랐던 인간이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정점에 올랐던 자들만이 보일 수 있는 그러한 눈빛을, 라인하르트가 하고 있었다.
그래서 데우스는 침묵했다.
이 모든 과정을 묵인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 또한 한순간의 변덕일 터.’
그러나 사람은 하루아침에 달라지지 않는다.
선천적으로 지녀온 저러한 특성은 특히 그렇다.
잠깐 완화될 수는 있으나 완치되지는 않는 것이다.
폭주를 완화하는 능력도, 어쩌면 저 광증으로 인해 생긴 것일 수도 있었다.
물론 아무런 능력도 없던 황태자보단 낫겠으나.
“소란스럽군.”
황제는 이 상황을 한 마디로 축약했다.
시끄럽고 어수선하다고.
이어, 그가 황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의 행사는 짐에게도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제국의 장래가 밝구나. 특히 1황자, 라우넬이여.”
1황자, 라우넬.
피닉스 기사단을 이끄는 무장으로서 최강의 재능을 지닌 자.
들뜬 표정으로 라우넬이 데우스에게 시선을 겨눴다.
그러자 데우스가 이어서 입을 열었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오직 수련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고 들었다. 네가 자랑스럽구나.”
“······!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폐하!!”
“특별히 황궁비고를 개방하겠노라. 원하는 것을 하나 가져가라.”
“감사합니다!!”
쩌렁쩌렁. 궁 전체에 1황자 라우넬의 들뜬 목소리가 퍼져나갔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 황제의 칭찬에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이다.
게다가 황궁비고라면 대륙의 모든 보물 중에서도 최고의 것만을 모아둔 창고다.
수백 년간 쌓인 보물들.
만들어진 이후 단 한 번도 외부의 침입을 허락하지 않은 철벽의 보안이 이루어진 곳!
거기서 원하는 것을 하나 마음대로 가져가도 된다니, 심장이 떨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황제가 2황자에게 시선을 옮겼다.
“2황자, 카잔. 여전히 만사가 귀찮다는 표정이로구나.”
“아닙니다, 폐하. 제겐 무엇을 주실지 지금 매우 흥미진진합니다.”
“직설적인 성격도 여전하구나. 좋다. 특별히 ‘바람의 보옥’을 선물하마. 7서클에 오르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아······! 감사합니다, 폐하!”
설마 그것을 내어줄 줄은 몰랐다는 듯 카잔의 두 눈이 커졌다.
바람의 보옥은 초대의 황제가 정령왕으로부터 선물 받았다는 보물 중의 보물.
정령과 인간의 관계가 단절된 지금, 인류에게 남아있는 정령의 물건 중 최고의 보물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이어서 의원에게 진찰 중인 카르몬을 보며 황제가 말했다.
“3황자, 카르몬. 욕심을 부렸지만, 노력이 가상하다. ‘빛의 탐구자’라 불리는 지팡이를 들고 정진한다면 이와 같은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늘 같은 은혜,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폐하.”
조세핀 황비가 고개를 숙여 답했다.
카르몬은 기절해 답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두 황자에 비하면 별 볼 일 없는 보상 같지만, ‘빛의 탐구자’는 아직 황실에서도 모든 비밀을 밝혀내지 못한 물건.
그 비밀을 밝혀낸다면 오히려 저 둘의 보상보다도 좋을 수도 있었다.
마지막.
시연조차 하지 못한 4황자는 울먹거리는 표정이었다.
“4황자의 성취는 짐이 따로 확인하겠다. 그러니 서운해하지 말라.”
“네······.”
“대신 ‘북해궁’에서 가져온 ‘얼음새의 알’을 주겠다. 잘 보듬어 키우도록.”
“앗! 좋아요!”
어린 4황자의 얼굴이 언제 울상이었냐는 듯 활짝 펴졌다.
얼음새는 대륙에 얼마 없는 ‘신화종’의 짐승.
정령의 마지막 흔적이라 일컬어지는 괴수다.
보듬어 키울 수만 있다면 어느 보물에도 꿀리지 않는 것이다.
황자들의 선물식은 끝이 났다.
“그리고.”
하지만, 아직 한 명이 남아있었다.
“황태자, 라인하르트여.”
이곳은 황가의 사람만이 아니라 마탑의 주인들도 있는 자리.
아무리 말이 많은 황태자라도 황제가 직접 책봉하지 않았던가.
그냥 무시하고 넘어간다면 제국의 근간이 무너질 수도 있는 노릇이다.
“카르몬의 폭주를 멈추고, 얼음탑의 마탑주를 치료하는 과정이 꽤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무엇을 줄 것인가.
폭주를 멈추는 능력은 다른 황자들이 보여준 것에 비하면 별 것 아니었다.
골방의 마법사들에게는 신기한 장면이겠지만 황제란 무릇 모든 신비를 다룸에도 지배적인 위치에 있었다.
저 정도의 신비야 질리도록 보았지만.
‘상이라.’
황태자에게 상을 주는 것 자체는 처음이었다.
이 자체가 데우스에겐 가장 큰 신비였다.
그래서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주어야 하는가, 주지 말아야 하는가.
주어야 한다면 무엇을 주어야 하는가.
‘그게 좋겠군.’
***
다음날.
약속한 3일째, 이사벨라가 떠나가는 황궁마차에 몸을 실었다.
“전하. 저희는 계속 친구인가요?”
친구란 어감은 무척이나 어색했다.
그만큼이나 가까웠던 인물도 없었거니와.
그나마 친구 같은 인물이라면 제르민이 전부였다.
“그대가 약속을 지켰으니 나 또한 약속을 지켜야겠지.”
계속 친구 하자는 소리다.
과거 백성들에게 성녀라고 불리었던 그녀다.
검의 성녀. 소드마스터 중 여자는 그녀를 포함한 두 명뿐이었다.
제대로 검을 배웠다면 더 빠르게 최강자로 거듭났을 것이다.
게다가 베르사유 백작가도 대흉년과 내게 상처를 낸 일만 없었다면 충분히 중앙정계로 입문할 만큼 세력이 좋았다.
아마 그것도 조만간이리라.
불모지와 같은 황실. 이렇게라도 ‘내 편’을 만들어둬서 나쁠 건 없었다.
“편견에 지지 마세요, 전하. 전하께선 그 누구보다도 대단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뭐지, 저 눈빛은.
지난 삼 일간 옆에서 나를 지켜봐 온 영향인지,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도 굉장히 달라져 있었다.
차갑기 그지없던 눈은 온정이 가득했다.
서로 세상의 편견에 맞서 싸우는 동지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대 역시.”
“······ 감사합니다, 전하.”
무언가를 결심한 눈빛이다.
맞서 싸우겠다는 투쟁의 결연함이 느껴졌다.
지난 3일간의 내 행동을 보아오며 중요한 것을 깨달은 듯.
잘 지내라는 말을 서로 주고받은 후, 이사벨라가 마차에 몸을 완전히 실었다.
‘어차피 머지않아 다시 만나게 되겠지.’
과거 최악이던 일들이 없던 것이 되었으니 이사벨라와 베르사유 백작가는 날아오를 일만 남았다.
그들이 중앙정계에 입문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마주치게 되리라.
그게 아니더라도, 내가 사교계에 오르게 되면 더 빨리 만날 수도 있었다.
어쨌거나.
‘보는 눈이 늘고 있군.’
나를 보는 눈들.
여러 이유와 견해로 나를 바라보는 이들이 늘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마법사도 있었다.
아직 마법사들이 황실을 떠나지 않았다.
저들이 떠나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황자들과 시간을 때우기 위함이 아니다.
마법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계산적인 이들이다.
그런 이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황궁에 남아있겠는가.
‘폭주를 완화할 수 있는 비밀을 알고 싶겠지.’
하나, 둘, 은근슬쩍 내 주변에 어슬렁거리는 게 보인다.
내가 황태자만 아니었다면 이미 납치당했을 것이다.
아니, 이곳이 황궁만 아니었다면 황태자건 뭐건 일단 납치했을 수도 있었다.
나는 그들의 조바심을 이용하며, 선을 대고 소문을 부풀릴 계획이었다.
이후 서로의 이해가 맞는 자들이 나를 만나길 바랄 것이다.
이는 황실과 귀족들 그 누구의 힘도 닿지 않는 ‘온전한 나의 편’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를 위해 나는 산책을 하는 척, 어딘가를 들르는 척, 일정한 루틴을 만들어 마법사들에게 접촉할 기회를 줄 계획이었다.
허나 그 외에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카르몬을 치유한다는 명목으로 조세핀 황비에게 족쇄를 채우는 것.
그리고.
‘······ 귀찮은 걸 선물받았군.’
황제의 하사품을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황태자, 라인하르트여.
설마 나를 부르며 다른 황자들과 같이 행상을 진행할 줄이야.
의외이긴 하였으나 마탑들의 시선이 신경쓴 것이리라.
―특급 죄수동의 열쇠를 하사 하마.
문제는 내용이었다.
열쇠라고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권한이다.
하필이면 특급 죄수동의 관리 권한을 내게 맡긴 것이다.
‘제국에서 가장 위험한 곳.’
황실의 사람이라면 연관되어지는 것조차 꺼려하는 지옥불구덩이 같은 곳이었다.
그런 곳을 내게 준 황제의 저의가 무엇인지.
황제의 모든 말과 행동에는 의도가 숨어있다.
예컨대 1황자에게 황궁비고를 열어준 건 안목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2황자에게 바람의 보옥을 준 것도 열정과 탐구심을 보려는 것이었다.
둘 다 그게 부족했으니까.
그런데 내게는 특급 죄수동의 열쇠를 줬다.
‘미친놈에게 미친놈들의 관리를 맡긴다. 재미있군.’
서로 죽여서 가장 강한 미친놈만 살아남으라는 뜻인가?
아니다.
황제는 나를, 나의 가치를 시험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시궁창이겠으나.’
절로 미소가 배어나왔다.
쥐어준들 다른 황족의 반발이 나올 리 만무한 시궁창.
적당한 시험장소로 내던진 것 뿐이겠으나.
‘내게는 가장 큰 선물이지.’
이 죄수동의 열쇠야말로, 다른 황자들의 선물보다 훨씬 값진 보물이었기에.
< 논공행상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