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황제-11화 (11/146)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나란 보이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만든 마나가 아니라면 느낄 수조차 없다.

이곳에 모인 수많은 고위의 마법사조차 알아차리지 못했건만.

단 한 명, 크로프트는 달랐다.

그는 확신에 가득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나를 두둔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설령 알아봤다고 할지라도 그가 나를 챙길 이유가 하등 없을진대.

―황태자란 끊임없이 시험받는 자리다.

떠오른다.

황태자 책봉식이 있던 그 날, 내 성인식이 치러진 5년 전 그가 한 말이.

이후 그는 나의 ‘황태자가 지녀야 할 자질’을 끊임없이 시험했다.

당연하게도 단 하나의 통과조차 이루지 못했다.

수십, 수백 번.

이제는 완전히 포기한 줄 알았다.

‘시험. 이건, 마지막 시험이로군.’

크로프트는 알아차린 것이다.

제국 제일이라고 불리는 그는 검술 실력만 뛰어난 게 아니다.

그의 ‘직감’ 또한 무섭도록 정확하다.

황제가 있는 이 자리에서 나를 지목했다는 건 자신에게 확신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짓.

크로프트는 확신한 채 내게 문제를 던졌다.

쉽게 빠져나갈 수 없는 촘촘한 거미줄과 같은 문제를.

“크로프트 경. 그게 대체 무슨 말씀입니까? 제 아들의 폭주를 막은 게 빛의 마탑이 아니라면 누구란 겁니까?”

단상을 뛰어 내려와 카르몬을 품에 안은 조세핀 황비가 물었다.

정말 몰라서 묻는 걸까.

아니면 현실을 외면하는 것일까.

“― 라인하르트 전하. 전하께선 카르몬 황자님의 폭주를 막으셨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확정을, 지었다.

물론 쉽게 빠져나갈 순 있었다.

내가 아니라고 부정하면 그만이었다.

크로프트의 착각으로, 미친 황태자가 그럴 리 없지 않으냐는 우스갯소리로.

그냥 그렇게 넘어가면 되는 것이다.

“황태자가 한 거라고?”

“마탑주도 막지 못한 폭주를 어떻게 막는단 말이냐.”

“설령 막을 수 있더라도 하지 않겠지.”

황비를 포함한 황족들이 수군거렸다.

무능력한, 자격 없는 황태자.

귀가 닳도록 들었던 말들.

만약 가능하더라 하더라도, 미친놈이 3황자를 구하는 데 그 힘을 썼을까.

허나.

“그게.”

나는 되물었다.

“그것이 이상한 일인가?”

무엇이 이상하냐고.

“형이 동생을 구하는 게, 정녕 이상한 일이냐고 물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 왜 그런 걸 묻느냐고.

순간 크로프트의 두 눈에 이채가 지나갔다.

예전이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대답일 테지.

황제가 있는 자리. 이런 식으로 몰아붙인다면 광증이 도져야 정상이었을 테니까.

‘피할 수 없다면 기회로 삼아라.’

나는 과거의 멍청하며 미쳐있는 내가 아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황제였다.

대륙의 절반을 정복한 정복왕, 피의 황제라고 불리었던.

나는 이 자리에서 결정해야만 했다.

피하던가, 피하지 않던가.

피하면 후일을 기약할 수 있다.

내실을 다지고 귀족들에게 한 방 먹일 시간을 벌게 된다.

여전히 미친 황태자로 남겠지만 여유는 생기리라.

하지만,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면 귀족들의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내가 그들이 생각한 말이 아님을 알게 되는 순간 그들은 가차 없이 나를 폐위시킬 것이다.

그리곤 더욱 말을 잘 듣는 말을 고르겠지.

현 황제에겐 그들을 막을 힘도 명분도 없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정면돌파를 택했다.

이로 인해 적어도 크로프트를 얻을 수 있다.

문제를 던졌다는 건 완전하게 나를 놓지 않았다는 방증.

당장 내 편으로 돌릴 수는 없겠으나 ‘여지’는 만들어 두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없는 나만의 무기가 있었다.

‘승산이 있다.’

하여,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만한 무대가 준비되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이 무대를 기회로 삼을 준비가 나는 되어있었다.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전하.”

크로프트가 얕은 미소와 함께 답했다.

처음으로 그의 시험에 통과한 것 같았다.

그래 봤자 -999점에서 +10점 정도 득점한 셈이겠지만.

그를 얻으면 황룡기사단을, 제국에서 가장 강한 검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귀족과 황족, 더 나아가 그 미친 괴물 말피엘의 등장까지 생각한다면 충분히 감수할만한 도박이었다.

“······ 빛의 마탑 마법사들은 대답하세요. 저 말도 안 되는 말이 사실입니까?”

조세핀 황비는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물었다.

빛의 마탑 마법사와 마탑주는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마탑주가 겨우 정신을 차리며 답했다.

“가, 갑자기 폭주가 멈춘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이중중첩으로 인한 마나폭주는 연구된 기록이 거의 없습니다. 황태자께서 폭주를 멈추셨다고 단정 지을 순······.”

마나란 무엇인가.

세상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다.

하지만 그것이 정확히 왜 존재하는지 마법사들은 모르고 있었다.

고작 이중중첩으로 폭주하는 상황이 왜 만들어지는지조차도.

진리의 탐구니 뭐니 떠들며 연구비만 축내는 경우가 허다했다.

‘명령어의 중첩에 의한 폭주라.’

그러나 나는 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저들이 ‘마나’라 부르는 게 ‘나노머신’임을 알고 있었다.

나노머신은 본래 이세계의 인간이 만든 것.

그런데 비인가 나노머신이 오류를 범한 채 복제되어 세계에 풀어졌다. 심지어 그것을 우리는 ‘마나’라 부르며 명령어를 입히고 사용하고 있었다.

대륙을 절반이나 정복한 시점에서도 이에 관한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오직 나만이 알고 있는 정보라는 뜻이다.

이것은 무기이며, 동시에 독이다.

쉽게 뱉었다간 이단으로 몰려 목이 잘릴 수도 있었다.

허나 은밀하게 다룰 수만 있다면 그 어떤 무기보다 강력한 것이 되리라.

‘폭주한 나노머신은 훨씬 더 쉽게, 더 많이 지배된다.’

제르민의 마법을 보고 따라 했을 때보다 폭주한 나노머신을 흡착하는 게 효율이 100배는 좋은 것 같았다.

이것을 나의 무기로 삼는다.

“나는 폭주를 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폭주를 완화한다······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빛의 마탑 마탑주가 차분하게 물어왔다.

다른 마법사들도 무척이나 흥미가 동한 눈빛이다.

지적탐구심. 마법사라면 모두가 지닌, 미지에 대한 동경과도 같았다.

다른 황자들의 시연 때보다도 집중한 모습을 보이자 나는 더욱 자연스럽게 어깨를 으쓱했다.

“잘은 모른다. 그저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니.”

10중 1만 던져도 충분하다.

모든 사실을 굳이 내 입으로 내뱉을 필요는 없었다.

중요한 건 상상력이다.

상상력만큼이나 나를 거대하게 만들어줄 요소는 없으므로.

“그럼 카르몬 황자님을 치료한 게 황태자 전하라는 거야, 아닌 거야?”

“하지만 크로프트 경께서 말씀하셨잖아.”

“8서클 마법사들도 못 잡아낸 걸 검사가 알아차리는 것도 이상하잖아.”

“아 씨, 진짜 뭐지?”

마법사들이 머리를 부여잡고 고민했다.

궁금증이 생기면 눈치를 안 보기로 유명한 게 그들이었다.

황궁이라고 그 기질이 달라지진 않는 모양.

“누가 이중중첩으로 폭주해보면 되는 거 아니야?”

이런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명령의 이중중첩은 금기다.

크든, 작든, 폭주하면 자칫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런 모험을 할 마법사가 있을 리 만무.

하지만 눈앞에서 본 것이 있으니 그들은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폭주완화는 성녀도 가능하지 않나?”

“그럼 신성력 계통인가?”

“시간이 오래 걸리잖아. 그리고 신성력 치료는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게 요즘 학계의 정설이야.”

“남부지방에서 전해 내려온다는 토테미즘은 어때? 주술사가 토템으로 폭주를 치료했다는 기록이······.”

“9서클? 마나의 지배자는 멀리서도 폭주를 치료할 수 있다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들.

그만큼 답이 없다는 뜻이다.

그때, 한 마탑주가 나섰다.

“외람된 말씀이오나 이것 또한······ 완화하실 수 있으십니까?”

얼음의 마탑 마탑주.

그가 다가와 왼손을 걷었다.

얼음처럼 얼어있는 손.

[폭주한 비인가 나노머신을 확인했습니다.]

[현재 다른 나노머신들에 의해 얼려있는 상태입니다.]

[오랜 기간 폭주한 나노머신입니다. 완화와 흡착을 위해선 시간이 필요합니다.]

[근접하여 흡착할 경우 효율이 200% 상승합니다.]

[현재 있는 나노머신의 양으로는 최대 0.9%의 흡착만이 가능합니다, 마스터.]

“폭주한 마나를 몰아넣고 10년 넘게 봉인하고 있습니다.”

8서클의 위대한 마탑주 조차도 봉인이 고작인 게 폭주였다.

지금 이 시점에서 내게 보이는 건 소란을 확실하게 잠재우겠다는 의미였다.

그게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나는 고민했다.

완화와 흡착을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는 제로의 말.

당장 저 폭주한 나노머신을 모조리 흡수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러나 모두가 숨죽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0.9%.

적은 양이다.

카르몬과 달리 무려 8서클 마법사의 폭주한 마나였다.

절대적인 양과 질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주사위는 던져졌다.

나는 그의 왼손 위에 손을 얹었다.

[강제흡착을 시도합니다.]

[폭주한 비인가 나노머신의 바이러스를 제거 중입니다.]

체내의 나노머신이 움직이며 폭주한 비인가 나노머신을 내 체내로 흡입했다.

이후 제로가 바이러스를 제거하고, 지배해나갔다.

[폭주한 나노머신의 0.9%를 지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마스터, 이 이상의 실행은 불가능합니다.]

고작 0.9%임에도 심장의 고리가 절반이 찼다.

1.5서클에 해당하는 마나량.

고작 하루 만에 이만한 양을 채운 건 기적과도 같은 일.

엄청난 포만감이 느껴진다. 이 이상 억지로 하면 반대로 폭주하는 건 내 몸일 터였다.

“별 변화가 없는데?”

“역시 거짓이었나 보군.”

“쯧, 그러면 그렇지.”

황가의 사람들은 혀를 찼다.

손을 댔음에도 이렇다 할 변화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음탑의 주인은 달랐다.

“어······.”

그가 몸을 잘게 떨었다.

“어떻게······.”

믿을 수 없다는 듯.

여전히 팔은 얼어붙어 있었지만.

그는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죽어있던 감각이, 손끝이.

미약하게나마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폭주한 마나를 몰아넣고 10년이 넘도록 움직이지 못한 왼팔이다.

“감사드리옵니다, 전하.”

“시간이 좀 필요하겠군.”

“··· 아닙니다. 이만하면 충분합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몸이 치료되는 것보다, 폭주완화의 실마리를 잡은 걸 더욱 감동스러워 하고 있었다.

‘얼음탑 마탑주의 손녀가 폭주로 죽었다고 했지.’

그렇다면 저 왼팔은 손녀의 폭주를 치료해보고자 자신의 몸으로 실험한 대가일 것이었다.

이윽고 그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황태자 전하의 말씀은 사실입니다. 정말 폭주를 완화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셨습니다.”

“······!”

얼음탑의 마탑주조차 확언했다.

모두의 눈빛이, 특히 마법사들의 눈빛이 별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영원토록 풀리지 않던 폭주의 비밀.

그것을 풀어낼 사람이 눈앞에 있다!

열광할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과는 정반대의 불편한 기색을 비치는 자들도 있었다.

황가의 사람들.

특히 조세핀 황비가.

크로프트와 마탑주가 공인한 상태.

이를 부정했다간 카르몬 황자의 이미지까지 실추될 터.

“··· 고맙습니다, 라인하르트 전하.”

말만 하고 넘어갈 속셈인가?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완화일뿐, 지속해서 내게 치료를 받아야 한다. 안 그러면 죽을 테니.”

“아······.”

조세핀 황비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얼음탑의 마탑주도 증상만 완화되었을뿐 완치되진 않았다.

직접 보았으니 믿을 수밖에.

물론, 카르몬은 이미 완치된 상태였으나 그것을 굳이 사실대로 말할 필요는 없으니까.

무엇보다 카르몬을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는 게 그녀였다.

나는 지금, 그녀의 심장을 쥔 것이다.

뿐만인가.

“······.”

성왕 데우스.

철저하게 나를 외면하던 그가, 처음으로 내게 시선을 던졌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라앉을 것만 같은 눈빛.

허나 나는 이미 무저갱보다 더 깊은 심연을 겪고 왔기에.

저 눈이, 마주하는 것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 활약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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