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는, 내 기억과는 분명하게 달라진 거울 속의 나 자신.
키가 커지고 혈색이 돌아왔다. 피부에 났던 온갖 문제들이 말끔하게 사라진 상태였다.
뿐만인가.
하루아침에 머리카락과 턱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있었다.
마치 오랜 시간 잠들었다가 깨어난 사람 같지 않은가.
검은색 머리칼과 턱수염.
어머니의 유산이자, 나를 악마라 불리게 만든 그 저주받은 색깔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마스터께서 잠드신 동안 세포재생을 30배 촉진했습니다.]
나노머신 제로에 대한 기본정보에는 세포재생에 관한 것도 있었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요소가 세포이고, 그 세포의 재생을 돕는 게 나노머신 제로의 역할이다.
또한, 인간의 몸은 대략 30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으며, 하루에 재생되는 세포는 3,300억 개였다.
질량 기준 80g에 해당하는데 그 30배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고개를 돌려 침대를 바라봤다.
침대는 이미 만신창이였다.
“아침부터 시끄럽겠군.”
미친 황태자가 흑마법에 손댔다는 소문이 추가로 더 퍼질 것만 같았다.
물론 나를 향한 가십은 셀 수 없이 많다. 하나 더 추가된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었다.
[마스터. 폐와 위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장기들이 원래의 기능을 되찾았습니다. 하지만 골격계와 근육, 심장과 간의 기능을 되돌리기 위해선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하루 만에 해내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기라도 하는 말투다.
도리어 놀란 건 나였다.
“지금 상태보다 더 좋아질 수가 있단 말이냐?”
숨을 쉬는 게 이토록 편안했던 적이 없다. 몸의 가벼움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당장 바깥으로 나가 뛰어다니고 싶을 정도이건만.
이보다 더 좋아질 수 있다는 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마스터. 더욱 많은 영양분 섭취를 권합니다.]
“어려운 일은 아니로군.”
비록 이름뿐이긴 하지만 나는 황태자다.
이곳은 제국의 황실이고, 음식은 썩어날 만큼 많았다.
‘앞으로 2년간은 모든 것이 부유하고 비옥할 터.’
하지만 2년 뒤 대륙 곳곳에 대흉년이 찾아오며 지옥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현황제가 선위한 이유 중 하나로 꼽히며, 이사벨라의 가문이 세금을 감당하지 못해 몰락한 것도 바로 대흉년 때문이었다.
신성교는 신이 노해서 대륙 각지에 대흉년이 찾아온 거라고 선전했지만, 이미 그 전부터 대흉년을 예견한 사람은 있었다.
‘일개 학자의 말을 그 누가 귀담아들었겠나.’
나중에야 그 학자의 말이 맞았다는 게 증명되었으나 이미 늦을 대로 늦은 상황.
하지만 미리 준비하면 피해를 최소화할 순 있을 것이다.
적어도 현재의 나는 그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었으므로.
“제르민, 밖에 있느냐?”
“예. 전하.”
“들어오거라.”
곧이어 문을 열고 들어온 제르민의 눈이 달덩이처럼 커졌다.
빠르게 문을 닫고는 그가 말했다.
“저, 전하.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침대의 참상과 내 오물을 끼얹은 것만 같은 모습을 바라보면 누구라도 당황할 수밖에 없으리라.
“걱정하지 마라. 몸이 회복되어가고 있는 과정이니.”
제르민은 믿을 수 있다.
이 거지 같은 황실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그였다.
사실대로 말하자 제르민이 입을 꾹 다물었다.
이어 내 눈을 본 제르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 다른 시녀들이 오기 전에 먼저 치우겠습니다.”
시녀 중에는 내부의 비밀을 바깥으로 전하는 첩자가 있었다.
제르민이 아무리 골라내도 병마처럼 계속해서 생겨나는 악성 종자들.
굳이 이상한 소문을 더 더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제르민이 능숙하게 움직이며 방을 치우기 시작했다.
“짐도 돕지.”
“가만히 계시는 게 돕는 겁니다.”
“······.”
“··· 창문 좀 열어주시겠습니까?”
창문을 활짝 열자 상큼한 공기가 내부를 순환했다.
제르민은 오물이 묻은 침대보와 오염된 카펫을 한쪽에 몰아놓고는 이마를 훔쳤다.
동시에 왼손으로 원을 그리며 마법을 영창하였다.
“바람이여.”
1서클, 가장 간단한 마법 중 하나인 바람을 유도하는 마법.
마나를 깨달은 자가 제일 먼저 배운다는 기초 속성마법이었다.
제르민은 원을 두 번 더 그렸다.
“휘몰아치며 거세게 불지어다.”
2서클, 바람의 방향을 다룰 수 있게 되며 3서클은 바람의 세기를 강화한다.
휘이이이이잉!
덜컹! 덜컹!
창가가 흔들릴 만큼 강하게 불어온 바람이 방 내부의 모든 먼지와 머리카락을 바깥으로 가져갔다.
광증 탓에 방에 있는 거라곤 침대와 거울뿐이었으니 더 날아갈 것도 없었다.
그 모습을 나는 감탄하며 바라봤다.
“그대가 마법사였다는 걸 까먹고 있었군.”
제르민이 너털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허허, 엄밀히 말하면 저는 마법사가 아닙니다.”
“꼭 마탑에 이름을 올려야 마법사인가?”
“당연하지요. 3서클 마법사는 마법사로 취급하지도 않지 않습니까?”
그저 마나를 깨달았다고 해서 마탑에 이름을 올려주진 않았다.
마탑에 이름을 올려 정식마법사로 취급되는 건 4서클부터였다.
마탑의 기초과정을 모두 수료하면 달성할 수 있다는 4서클이지만, 이 역시도 재능이 없는 자는 닿을 수 없는 벽이었다.
그리고 제르민은 3서클까지 익힌 상태였다.
‘마법사로서의 재능이 있다고 들었는데.’
제르민은 대대로 황실의 집사를 역임하는 가문이었다.
집사 역할을 하는데 그만하면 충분하다며 가문에서 3서클까지만 수료하도록 한 것이다.
그때 제르민의 나이가 열다섯이었다.
열다섯에 3서클 마법을 익혔다면 재능이 있다는 소리다.
하지만 이후 돌아가신 어머니를 보필하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다시 마법을 배워보고 싶은 마음은 없나?”
“전하. 이제 와서 그런 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저는 전하만 건강하시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합니다.”
과연 그럴까.
나이가 들었다고 욕망이 없어지는 건 아닐진대.
하물며 재능을 억지로 포기하고 원치 않던 집사의 역할을 일임받았다.
마냥 좋았을 리만은 없었다.
‘제르민이 계속해서 건강했으면 좋겠군.’
제르민의 흰색 머리칼과 주름을 보는 게 마음이 아프다.
마음 같아선 나노머신을 나눠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노머신은 내게서 배출되는 순간 파멸된다.
이번 생에서만큼은 그가 원하는 대로 살게 해주고 싶었다.
건강은 기본이고 포기했던 꿈도 이뤘으면 좋겠다.
물론 내가 그렇게 말한다고 이곳을 떠날 제르민이 아니었기에 방법을 달리할 필요는 있었다.
“제르민, 짐에게 마법을 가르쳐주지 않겠나?”
“마법을······ 말입니까?”
“그래. 혹시 아는가, 짐이 마법에 재능이 있을지.”
“전하. 외람된 말씀이지만 전하께선 마나에 대한 재능이······.”
제르민이 끝말을 삼켰다.
마나에 대한 재능.
그것은 태어날 때 결정된다.
그리고 황제의 아들이라면 모두 태어난 그 순간 온갖 검사를 받게 되어있었다.
다른 네 명의 황자는 찬란한 마나의 재능을 타고났는데, 오직 나만 유일하게 마나의 재능이 없이 태어났다.
무능력한 황태자, 마나의 축복조차 받지 못한 반푼이.
황제가 악마에게 조정당해 나를 황태자로 책봉했다는 소문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그리고 재능이 없는 자는 마법을 배워도 소용이 없다는 게 정설.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막 내뱉은 말은 아니었다.
―안타깝군요. 허무(虛無)의 속성은 한 시대에 몇 태어나지 않는 재능. 일찍이 알아봤더라면 능히 마탑의 최상층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을 텐데.
무려 마탑주가 한 말이니 틀린 말은 아니리라.
게다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제르민이 바람의 마법을 영창 하던 그 순간 내게는 보였다.
제르민이 왼손으로 그린 원.
마나로 만들어져 일반인은 볼 수 없는 게 정상인 그 원이.
손끝으로 바람이 휘몰아치는 그 감각이!
“바람이여.”
휘이이이잉.
다시, 바람이 분다.
나를 바라보는 제르민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커졌다.
‘이게······ 되는군.’
놀라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전과는 분명히 달라진 바람의 흐름.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이 바람이 자연적인 것이라고 말하긴 힘들다.
마법을 배우지도 않은 내가 마법을 사용했다.
마법학이, 마탑이 휘청일 소식이었다.
[비활성화한 나노머신의 유입을 확인했습니다.]
[‘유도만능줄기세포’와 결합 된 비인가(非認可) 나노머신입니다.]
[지배하여, 활용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스터, 승인을 부탁드립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비인가 나노머신?
이해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렸다.
설마, 지금 내 손끝에 모인 이 ‘마나’들이 또 다른 나노머신이란 뜻인가?
< 허무(虛無)의 마나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