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너를 원망할 것이다, 라인하르트.
어제의 일처럼 생생한 기억.
저 차가운 눈빛을 보자 그날의 참상이 내 머릿속을 채웠다.
그녀는 사지가 잘린 채 불에 타 죽었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신념을 이어나간 탓에 귀족들이 보는 앞에서 숙청당했다.
전쟁 반대파의 대표적인 인물이었고, 백성들의 편에서 봉기를 들었던 ‘성녀 이사벨라’가 바로 눈앞에 있는 그녀였기에.
그녀를 보고 있자니 입안이 썼다.
내가 황제에 즉위한 뒤 과거의 일을 그대로 진행한다면 그녀는 큰 걸림돌이 된다.
수 없는 황제 암살 기도, 궁의 화재사건, 심지어 20만 백성들을 결집해 반란을 주도하던 주도자급의 인물 중 한 명이었으므로.
물론 훗날의 이야기다.
작금의 그녀는 평범한 백작가의 영애일 따름이었다.
어른들의 욕심에 의해 팔려 나온 가련한 여자.
‘여전히 아름답군.’
과거의 나는 그녀를 보곤 한 눈에 반했다.
반년 만에 황태자궁의 칩거를 깨고 나온 건 오직 그녀를 보기 위함이었다. 아버지의 명령, 공작들의 권유도 상관없는 나의 의지였다.
어렸을 때 무도회장에서 같이 춤을 추었던 소녀.
너무 어렸던 터라, 그녀는 기억을 못 하고 있었다.
그걸 이해하지 못하고 몰아붙여서 결국 뺨을 맞았다.
그 다음엔 어떻게 됐더라?
‘뺨을 맞고 기억이 끊겼지.’
광증이 도졌다. 급격한 흥분이 이성의 끈을 끊어버린 것이다.
정신을 차렸을 땐 피바다였다.
누구의 피?
놀랍게도, 내 피로 흥건했다.
그녀의 옆에 있던 시녀 레인즈는 훈련받은 검사였다.
주인의 위험을 감지하고 나를 베어낸 것이다.
이후 레인즈는 처형당했으며, 이사벨라와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사이가 되었다.
이사벨라의 집안도 3년 치 세금을 모조리 헌납할 수밖에 없었고, 그녀의 가문 역시 몰락해버렸다.
“미안··· 으음. 미안하다. 몹쓸 모습을 보여줘 버렸군.”
솔직하게 사과했다.
그런데 사과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본능적인 저항이 있었다.
사과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서일까.
“······ 괜찮습니다.”
내가 사과하자 의외라는 눈빛과 함께 그녀도 화를 삭였다.
베르사유 백작령과 황도는 마차를 타고 쉬지 않고 달려도 한 달은 걸리는 거리.
그 거리를 달려와 처음 보는 게 피와 살점이라면 불편한 게 당연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멀쩡한 정신으로 그녀를 대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오는 길에 불편함은 없었는가?”
“황실에서 보내주신 마차 덕에 편안히 올 수 있었습니다. 배려 감사합니다.”
딱딱한 말투와 표정.
그녀도 이 자리가 여간 불편한 것이리라.
나만 불편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편안했다면 다행이군. 먼 길 오느라 피곤하고 배도 고플 텐데, 더 식기 전에 맛만 좀 보도록 하지.”
상 위에는 수프와 크림, 그리고 곁들임 요리가 30가지나 놓여있었다.
그것을 보니 미칠 듯이 배가 고파졌다.
절로 침이 고이고 동공이 확장된다.
꼬르르르륵!
배에서도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왜 이러지?’
고작 반나절 굶었다고 몸이 보일 반응과는 거리가 멀지 않나.
당황스럽지만 몸은 음식을 원하고 있었다.
평생 겪어본 적 없을 정도로 격렬하게 말이다.
“음!”
자리에 앉아 냅킨을 두르고 빵을 한 조각 입에 털어 넣은 순간 저도 모르게 신음이 나왔다.
맛있다. 단순히 맛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허한 게 채워지는 감각.
황실 요리사가 바뀌었나?
아니다. 그대로다.
그럼 허기져서 맛있게 느껴지는 건가?
손이 바빠진다. 입도 바빠졌다.
“······.”
이사벨라는 포크와 나이프를 든 채로 가만히 그런 황태자의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누가 봐도 3일 동안 굶긴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게걸스럽다는 표현이 맞다. 귀족의 식사예법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문제는 그 대상이 제국의 유일무이한 황태자라는 것이다.
방금 전 피를 보았는데도 식욕이 넘쳤다.
미친 황태자라는 위명에 걸맞으나.
‘······ 맛있게 먹네.’
그렇다고 하기엔 진심으로 식을 즐기고 있었다.
꿀꺽!
황실의 요리가 대체 얼마나 맛있기에 매일 먹을 터인 황태자도 저리 즐길 수밖에 없는 것인지, 이사벨라는 궁금해졌다.
그러나 참아야 한다.
그녀 역시 식을 즐겼지만 장소가 장소였다.
우걱! 우걱!
맛만 좀 본다고 하지 않았나?
사람이 저렇게 맛있게 음식을 털어 넣은 장면을 이사벨라는 태어나서 처음 봤다.
귀족들은 예법이니 뭐니하며 깨작깨작 먹는 게 유행이었다.
덩어리째 입안 가득 씹는 건 금기시되고 있었다.
그 금기를 황태자는 너무나 맛있는 모습으로 깨버리고 있었으니.
‘참아야 해, 이사벨라.’
순식간에 서른 가지의 음식이 거의 동을 보였다.
이윽고 라인하르트와 눈이 마주쳤다.
왜 안 먹냐는 눈빛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동시에 그의 포크가 그녀의 앞에 있던 빵으로 향했다.
‘아······.’
어차피 안 먹으려고 했는데, 왜 이렇게 아쉬운 걸까.
마지막 남은 빵마저 다 먹어치운 라인하르트가 손을 들었다.
저 멀리서 뿌듯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던 요리사를 향해.
“더 내어와라. ”
“예!”
이사벨라는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
황금 기사단의 단장, 알베르토는 잘린 새끼손가락을 움켜쥐며 복잡한 눈빛을 했다.
“너무 티나게 져주신 거 아닙니까, 단장님?”
“크큭, 그래도 황태자의 얼굴에 상처를 냈으니 조세핀 황비께서도 이해하실 겁니다.”
“단장님도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그렇게 진짜 같이 연기를 하시는지.”
단원들이 시끄럽다.
잘린 손가락이 괜찮냐고는 안 물어보고 온통 저 이야기뿐이다.
‘진짜 같은 연기?’
연기가 아니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진짜다.
검을 맞대며 어느 순간 알베르토는 라인하르트에게 압도되었다.
현 황제에게도 보이지 않던 진짜 포식자의 눈빛.
백전노장이나 먹이사슬 최정상에 있는 자만이 보일 수 있는 위압감을 알베르토는 미친 황태자에게서 느낀 것이다.
착각이라 생각하지만 잊히지 않는다.
무엇보다 라인하르트는 그에게 ‘자비’를 보였다.
마치 ‘넌 내게 빚을 진 거다’라고 말하듯, 말끔하게 새끼손가락 하나만 잘라냈다.
깔끔한 단면. 오염도 되지 않아 신성력으로 붙이면 별 탈이 없을 수준이었다.
게다가 황태자의 검술도 진짜였다.
격식이 없다고 생각했으나 오직 실전에만 특화된 검술이었기에 그리 느낀 것뿐이다.
‘여태까지 미친 척을 하고 있던 건가?’
어쩌면, 황태자는 그저 ‘미친 척’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왜?
황태자로 책봉됐으니 차기 황제 자리가 확정된 상황이다.
어지간한 구설에 휘말리지 않는 한 책봉된 사실이 사라질 리 없었다.
‘젠장. 모르겠군.’
골이 아파 왔다.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안 나온다.
분명한 건 그가 예전의 그 ‘미친 황태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광증이 나은 건지, 아니면 여태까지 미친 척을 하고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후자라면······.
꿀꺽!
‘잠자던 용이 깨어났다······.’
***
일과가 끝났다.
방에 들어와 창밖을 보니 벌써 저녁이다.
거의 반나절 동안 먹기만 한 것이다.
이사벨라에게는 미안한 일이었다.
[골밀도가 높아집니다.]
[근섬유의 생산이 가속화됩니다.]
[필요 없는 지방을 태워 배출하기 시작합니다.]
[잉여 포도당을 저장합니다.]
제로는 내가 굳이 시키지 않아도 자신의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그사이에 살이 제법 붙은 기분이다.
내가 생각해도 가공할 폭식이었다.
이런 적은 처음이다.
“폭식의 원인이 무엇이냐?”
[뇌가 평균 이상으로 활성화되면 상당량의 포도당을 요구합니다. 포도당은 주로 빵이나 초콜릿 같은 탄수화물과 당에 많이 포함되어있습니다.]
어쩐지 유독 빵에 집착이 가더라니.
몸이 부족한 것을 원하게 된다는 의미다.
“그럼 뇌를 활성화할 때마다 폭식해야 한다는 소리인가?”
[섭취하고 남은 에너지를 지방으로 남기는 대신, 제 분신들이 여분의 포도당을 저장하여 효율을 극대화합니다. 다만, 현재 마스터의 육체는 근육량이 많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한동안은 최대한 많이 먹을 것을 권합니다.]
과거의 나는 맛이라는 것에 무지했다.
약에 찌들면 감각이 죽는다. 그중 가장 많이 도태되어 사라지는 게 미각이다.
배가 찰 정도만 먹고, 그마저도 끼니를 거의 챙기지 않았다.
앙상하게 뼈만 남은 몸이 그 방증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달라져야만 했다.
‘나의 것, 나의 힘을 키워야 한다.’
오늘 확실히 느꼈다.
이 황궁에 온전히 나의 것은 거의 없다는 걸.
제르민을 제외하면 내 편이 없다.
하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하나 있었다.
‘황룡기사단. 나의 직속기사단인 그들이 있었지.’
황제의 아들은 나를 포함해 다섯이다.
그리고 황제는 아들이 태어날 때마다 지키도록 직속기사단을 임명해왔다.
나 역시 마찬가지.
내로라하는 강자들로 이루어진 서른의 황룡기사단이 바로 그것이다.
다른 기사단보다 그 기술과 힘이 강력하지만, 지금은 해체되다시피 하였다.
기사단을 나가거나, 스스로 전출을 희망해 다른 지방으로 떠난 게 대부분이다.
궁에 남은 황룡기사단의 숫자는 아마 손에 꼽힐 터.
그리고 남아있는 기사들조차도 내 행보에는 관심이 없었다.
반년 만에 궁을 나선다고 하는데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공작들의 입김이 닿지 않은 유일한 기사들.’
당연하다.
첫 황자가 태어날 때 처음으로 만들어진 기사단.
그 상징성을 위해 고르고 골라 뽑은 인재들.
실력만이 아니라 성정도 보았기에 청렴하기 짝이 없었다.
외골수 집단은 함부로 건드는 게 아니다. 하물며 황룡기사단의 단장은 황제가 아직도 신임하는 자였다.
그는 내가 황제가 된 이후 궁을 떠났다.
이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가 남아있었다면, 말피엘이 그토록 쉽게 궁으로 들어오진 못했으리라.
‘황실을 수호하는 다섯의 소드마스터 중 한 명. 그중에서도 유일하게 왕의 호칭이 허락된 검왕 크로프트 경.’
다섯 소드마스터 중에서도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그가 황제의 직속근위대도 아닌 내 직속기사단의 단장으로 있었다.
검왕의 칭호마저 거머쥔 그는 대륙의 열 손 안에 들어가는 강자였다.
감히 황제가 있는 황실에서 왕의 칭호를 달 수 있는 자는 그가 유일했다.
‘그가 나의 편이 된다면 확실한 카드 하나를 쥐는 셈이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실망을 넘어 나를 혐오하고 있을 테니.
하지만, 해내야만 했다.
황제마저 주무르는 두 공작의 입김에서 벗어나려면 말이다.
아버지를 폐위시키고, 나를 황제로 만든 건 그 두 명의 공작이나 다름없다.
그들은 나의 광증을 이용해 전쟁을 부추겼다.
만약 내가 멀쩡하다는 걸 확신하면 그 순간 다른 황자를 나의 자리에 앉힐 것이다.
‘황제는 5년 뒤 그 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온다.’
그리고 나를 황제의 자리에 앉힌 뒤 죽는다.
멍청했던 나는 나중에야 두 공작에 의해 죽은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작금의 제국은 황제가 아닌 그 두 공작과 전쟁을 찬성하는 귀족들의 것.
오래된 평화로 인해 힘을 키우고 축적한 그들의 것이었다.
‘바꿔야 한다.’
미래를.
나의 가치를.
그러기 위한 첫 단추가 바로 검왕 크로프트였다.
반드시,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해내야만 하는 첫 번째 위업인 셈이었다.
***
다음날.
잠에서 깨어난 나는 거울을 보곤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 이건 대체?’
< 검왕 크로프트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