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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머신 황제-4화 (4/146)

“우웁!”

몸을 닦이러 들어온 시녀들이 문을 열자마자 헛구역질을 했다.

방에서 흘러나오는 역겨운 냄새에 진저리를 쳤다.

하지만 이내 자신들의 실수를 깨닫곤, 표정을 굳힌 채 엎드려 조아렸다.

“죄, 죄송합니다, 전하!”

“살려주시옵소서!”

그 역겨운 냄새의 진원지가 나임을 깨달은 것이다.

나는 상체를 드러낸 채 옷을 벗어놓고 침대에 걸터앉은 상태였다.

전신에서 흘러나온 검은색 땀이 의복을 절여버린 탓이다.

나노머신에게 몸을 치료하길 승인한 지 정확히 십여 분만에 벌어진 일.

“아아······.”

내게서 아무런 대답도 흘러나오지 않자 두 시녀가 몸을 부르르 떨어댔다.

고작 헛구역질 좀 한 것 가지고 살려달라니.

예전의 내가 이들에게 얼마나 두려운 존재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기야.’

이때의 나는 짜증의 집합체였다.

참을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인간말종.

끊이질 않는 두통과 셀 수 없이 많은 약에 절여져 정신도 몸도 온전하지 못했다.

예전의 나였다면 아마도 신경질을 부리며 시녀의 머리카락을 전부 밀어버렸을 것이다.

심하면 죽이거나.

물론, 이때엔 몰랐다.

‘나중에 알았지. 내가 먹는 약 중에 광증을 더 도지게 만드는 게 있었다는 건.’

정신착란과 환각 증세를 더욱 심하게 만드는 마약이 있었다.

그걸 정신안정제라고 속이며 먹인 인물은 다름 아닌 내 동생 중 한 명이었다.

3황자.

정확히 말하자면 3황자의 어미인 조세핀 황비의 짓이었다.

이제 고작 여덟 살인 3황자는 아직 그렇게까지 악랄하진 못했으므로.

의도는 뻔했다.

내 광증을 극대화해 폐위시키려는 수작질인 게다.

가문의 후광만을 믿고 다시 황태자 구도를 짜보겠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조세핀 황비는 모르고 있었다.

극대화한 광증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이성적이지 못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두려운 존재가 될 수 있는지 몰랐던 게 분명했다.

알았다면 약이나 몰래 넣는 게 아니라 내 손발부터 잘랐을 것이다.

“괘념치 않는다.”

그래서 말했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정신이 너무나도 멀쩡했으므로.

평범한 공기마저 상쾌하다.

숨을 마시고 내쉬는 게 이토록 편안했던 적이 있던가.

내 기억상으로는 처음이었다.

‘엄청나군.’

나노머신의 성능은 확실했다.

고작 십여 분만에 몸의 독기를 상당 부분 빼냈다.

몸이 가볍다. 가벼워서 날아갈 듯했다.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그럴진대 고작 헛구역질 정도야.

“제, 제발 용서해주십시오.”

“괘념치 않는다고 말했을 터인데.”

“저, 정말 용서하시는 겁니까?”

“그래. 그러니 일어나거라. 씻는 게 늦어 베르사유 백작가의 영애를 기다리게 한다면 그건 다 너희 잘못이다.”

겁에 질린 토끼와 같은 눈으로 두 시녀가 일어났다.

변덕이 심한 황태자가 용서한다고 말한들 믿기 힘들 것이다.

이윽고 시녀들이 쭈뼛거리며 물이 가득 찬 대야를 가져왔다.

내가 흘린 오물을 씻겨내고, 한참을 닦아낸 뒤이야 시녀들은 나뭇잎에 말린 약재를 공손히 내밀었다.

갖은 약재들이 저 안에 들어있었다.

조세핀 황비가 몰래 섞어 넣은 독약도 함께.

꿀꺽!

거침없이 삼켰다.

‘갑자기 먹지 않으면 의심을 살 테니.’

물론 조세핀 황비가 두렵진 않다. 그녀의 야욕은 진즉에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나의 뒤를 봐주는 귀족세력들이다.

지금의 온건한 원리원칙주의자인 황제가 아니라, 새로운 미친 황제를 내세워 정복 전쟁을 일으키고 싶어 하는 진짜 악마들.

‘또다시 꼭두각시가 될 생각은 없다.’

적은 많다.

귀족도, 말피엘도 해결하기 힘든 과제다.

구태여 황비에게까지 경각심을 심어줄 필요는 없다.

어그적 씹어 넘기자 목을 타고 약재가 내려갔다.

그와 동시에.

[도파민 분비를 방해하는 물질과 신체에 해로운 성분을 감지했습니다. 분해하여 배출합니다.]

나노머신 제로가 움직였다.

순식간에 가슴팍이 촉촉해진다. 노폐물이 배출되고 있었다.

‘역시나.’

오랫동안 몸에 쌓인 노폐물도 제거할 수 있다면, 들어오는 성분은 그 즉시 없앨 수 있으리라고 예상했다.

예상이 맞았다.

나노머신의 성능은 이제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수많은 명의도, 심지어 성녀나 성황조차도 뛰어넘는 치유력.

이를 잘 활용한다면 나 스스로가 벽을 넘을 가능성조차 있지 않을는지.

“어맛! 땀이······.”

의복이 재차 젖자 시녀들이 난리를 피웠다.

하필이면 배출된 부위가 양쪽 겨드랑이와 사타구니 쪽이었는지라 더욱 눈에 띄었다.

대비할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촉촉해졌다.

이에 나도 잠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왜 하필 많고 많은 부위 중에 저 두 곳이란 말인가.

[노폐물을 땀샘이 가장 많은 곳으로 배출하는 게 효율이 높습니다.]

땀샘은 땀이 나오는 몸의 구멍이다.

말하자면, 내 겨드랑이와 사타구니 쪽에 땀샘이 가장 많다는 건데.

“······ 배출되는 부위를 바꿀 순 없나?”

[변경 가능합니다.]

이건 꼭 바꿔야겠다.

“예?”

“아니다. 다시 씻어야겠군.”

시녀의 물음에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조금 늦을 것 같았다.

***

“황태자 전하께서 입장하십니다!”

나팔소리를 듣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생각해보니 이런 일도 있었던 것 같다.

당시의 나는 병사들의 환영식을 보고 도리어 뿌듯 해했다.

‘놀리고 있는 건지도 몰랐지.’

저 멀리, 3황자가 사는 ‘황금사자궁’의 꼭대기.

정원을 내려다보며 실실 웃고 있는 어린 3황자가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조세핀 황비도 있었다.

호들갑을 떨며 내가 차이는 걸 구경하려는 것이다.

베르사유 백작 영애의 성격을 미리 파악한 뒤 쳐놓은 그물.

그녀, 이사벨라는 유세를 떨거나 오만한 것을 극도로 혐오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황금 기사단이 광대가 된 거지?”

하여 말했다.

일반병사의 복장을 하고 있지만, 이들은 기사다.

그것도 무려 제국 서열 3위의 황금기사단이었다.

“예? 저, 저희는······.”

“평화가 너무 길었나 보군. 제국의 보배라 불리는 기사단이 광대 짓이나 하고 있다니. 아니면 옷 바꿔입기 놀이라도 하는 건가?”

기사단 단원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었다.

지금은 태평성대였다.

30년간 이렇다 할 전쟁 한 번 겪지 않았다.

덕분에 검은 녹슬고 이상한 명예욕만 커졌다.

흔히 말하는 기사도다.

그런 기사도를 모욕했으니 얼굴이 굳을 수밖에.

물론 저들은 내가 아예 못 알아볼 거로 생각했겠지만.

“······ 말씀이 너무 지나치십니다, 황태자 전하.”

“지나치다? 내게 하는 말인가, 알베르토 기사단장?”

알베르토 기사단장이 흠칫했다.

내가 설마 자신의 이름까지 알 줄은 몰랐겠지.

물론 과거 이때의 나는 몰랐다.

조세핀 황비와 3황자의 목을 벨 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저희는 전하의 반년만의 외유를 진심으로 축하했을 뿐입니다.”

“일반병사의 옷을 입고 말인가?”

“그건······.”

일반병사와 옷을 바꿔입는 기사는 세상에 없다.

그런데 축하를 위해 바꿔입었다?

개가 짓는 소리다.

“알베르토 기사단장. 전장에선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는 병사는 목을 잘라야 한다. 왜인 줄 아나?”

“··· 왜, 입니까?”

“병사가 생각이라는 걸 갖게 되면 전쟁의 부조리함을 깨닫게 되지. 그런 병사는 지휘체계를 무너트리고, 나아가 전쟁을 패배하도록 만든다.”

시키지도 않은 짓을 했으니 목을 잘라도 할 말이 없다는 의미다.

하물며 그게 사령관을 욕보이는 광대 짓이라면 사지를 잘라 개에게 먹여도 부족하지 않다.

“지금은 전시가 아닙니다, 전하. 그리고 전하께서 무슨 전쟁을 아신다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알다마다.

피와 살점이 난무하는 그 지옥을 어찌 모르겠나.

그 지옥을 웃으며 헤쳐온 게 나라는 사람인데.

도리어 모르는 건 저들이다.

30년이 넘는 평화.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기사들이 대부분이었다.

결국 귀족가의 자제들.

작금에 이르러서 기사란, 놀고먹는 빈대와 다를 바 없는 존재들이었다.

황태자라는 이름이, 나의 존재가 얼마나 무시당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정식으로 책봉된 황태자의 면전에서 고작 기사단장 따위가 대드는 건 다른 왕국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황제가 되고 나선 더더욱.

스릉!

“헛!”

나는 알베르토의 옆에 선 기사의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그렇게 빠르지도 않은 동작.

기사가 목숨처럼 여겨야 할 검을 고작 내게 뺏기다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검을 뺏겨 어쩔 줄 몰라하는 저 표정도 멍청하기 그지없었다.

이딴 게 기사라.

나는 알베르토 기사단장에게 검을 겨눈 채 말했다.

“검을 들어라, 알베르토 기사단장. 버르장머리를 고쳐주마.”

< 버르장머리를 고쳐주마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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