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황제-2화 (2/146)

“허억!”

발작을 일으키며 상체를 곧추세웠다.

미친 듯이 흘러나오는 식은땀.

끔찍한 악몽이라도 꾼 기분이다.

“라, 라인하르트님. 괜찮으십니까?”

황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자.

익숙한 얼굴이었다.

이제 육십 대를 넘겼을 왜소한 몸집의 노인.

“······ 제르민?”

“예. 전하. 제르민이 여기 있습니다. 오늘도 많이 아프십니까?”

오늘도 많이 아프냐는 말.

괜찮냐는 말.

오랜만이었다. 누군가를 나를 걱정해주는 건.

황제에 즉위한 이후 그 누구도 내게 ‘괜찮냐’고 묻지 않았다.

살려달라거나, 저주한다는 말은 질리도록 들어봤어도.

하지만, 왜 제르민이 내 앞에 있단 말인가.

―괜찮습니다, 전하. 전하의 본성은 누구보다 착하다는 걸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자책하지 마십시오.

오늘도 많이 아프냐는 말.

하지만, 왜 제르민이 내 앞에 있단 말인가.

괜찮냐는 말.

―괜찮습니다, 전하. 전하의 본성은 누구보다 착하다는 걸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자책하지 마십시오.

오랜만이었다. 누군가를 나를 걱정해주는 건.

황제에 즉위한 이후 그 누구도 내게 ‘괜찮냐’고 묻지 않았다.

제르민은 죽었다.

살려달라거나, 저주한다는 말은 질리도록 들어봤어도.

내 손으로 죽였다.

광증이 돋아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죽어가고 있었다.

그때의 일을 단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건만.

‘죽은 뒤 온다는 지옥이 이곳이라면 나쁘지 않군.’

유일하게 나를 믿어주고 걱정해주던 사람.

죽기 직전까지 나만 걱정해주던 내 편.

사무치게 미안하고, 반가웠다.

“그대의 얼굴을 보니 없던 기운도 나는 것 같군.”

“예······?”

묘한 얼굴. 못 볼 거라도 본 듯하다.

하지만 정말로 기운이 났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머리도 아프지 않았다.

아, 죽었으니까 안 아픈 게 당연한가?

“미안하네. 짐이 많이 부족해서.”

“아, 아닙니다. 그런데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그대가 짐을 욕해도 괜찮을 정도로 아주 멀쩡해.”

“제, 제가 전하를 어찌······!”

호들갑은.

하지만 그냥 한 말이 아니다.

지금의 내 정신은 지극히 정상이었다.

두통도 없고 머릿속의 벌레도 느껴지지 않는다.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개운한 감각.

이럴 거면 진즉에 죽을 걸 그랬다.

“한 번 해보게. 짐에게 하고 싶은 욕이야 한, 두 가지가 아닐 텐데.”

“그런 불경한 생각은 추호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어허, 괜찮다니까.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해보겠는가?”

“······ 오늘은 평상시와 좀 다르시군요.”

평상시?

하기야 제르민이 나를 돌보던 시기가 어언 20년 전이다.

당시의 나는 모든 게 불만인 철없는 황태자였을 따름이다.

오히려 황제이던 시절보다 더 막살았다.

황제가 되고 나선 미친 듯이 주변국과 전쟁만 벌였으니.

제르민의 눈가에 한 줄기 빛이 떠올랐다.

“좋습니다. 불문에 부치시겠지요?”

“그럼.”

“절대로 딴소리하기 없기입니다?”

“당연하다마다.”

스읍. 제르민이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얼마나 대단한 욕을 할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쳐다보던 내게 제르민이 말했다.

“··· 베르사유 백작 영애께서 오고 계십니다. 슬슬 준비하고 내려가시지요.”

“베르사유?”

“이런, 역시 잊고 계셨군요.”

“아니······.”

잊지 않았다.

베르사유 백작가의 영애와 오찬을 먹었던 기억.

어린 시절 겪은 끔찍했던 일임은 분명하지만, 어디까지나 20년도 더 된 일이었다.

‘지옥이 아니라 현실이란 말인가?’

현실이라면, 내가 과거로 돌아왔다는 의미일 테다.

과거로의 회귀라니.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일이었다.

천하의 황제가 그런 얼토당토않은 일을 믿을 리 만무.

한데 이 미치도록 생생한 현실감은 지금이 꿈도, 지옥도 아님을 시사하고 있었다.

‘말피엘에게 죽은 뒤 과거로 돌아왔다고?’

어떻게 이게 가능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뺨을 잡아당겼다.

아프다.

어이가 없었다.

만약, 정말로 20년 전으로 돌아온 거라면······.

지금은 내가 황제가 되기 전, 광증(狂症) 돋은 황태자일 시절일 터.

모든 게 최악이던 그 시간대였다.

[뇌 활성도 6.3%]

[생체 스캔 시작···.]

[노폐물을 분해하여 단백질로 재합성 중······.]

그 순간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누구냐?”

“예?”

제르민에게는 안 들리는 것 같았다.

어쩌면 다시 광증이 도지려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노머신 Zero’입니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답이 들려왔다.

‘나노머신 제로?’

듣도 보도 못한 이름.

적어도 제국 내에 저런 이름을 가진 자는 없었다.

“마법사인가? 어디서 말을 거는 거지?”

[저는 마스터의 전두엽과 측두엽 사이에 있습니다.]

전두엽과 측두엽 사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먹겠다.

확실한 건 머릿속에서 들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마법적인 것보다 훨씬 가깝게 느껴진다.

어쩌면 내 머릿속을 휘젓던 그 벌레일 가능성도 있었다.

“······ 전하.”

동시에 제르민이 걱정스럽다는 듯 쳐다본다.

후. 저런 눈빛은 여전히 마음이 아팠다.

재빨리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음, 걱정하지 말게. 잠결이라 환청이 들린 모양이니.”

“약속을 미룰까요?”

“아니야. 그보다······ 오찬까지 시간이 얼마나 남았나?”

“오찬까지 두 시간 남았습니다.”

“그럼 30분 뒤에 준비하도록 하지. 그때까진 혼자 있고 싶군.”

30분이면 충분하다.

내 진지한 표정을 읽은 제르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30분 뒤에 시녀들을 보내도록 하지요. 혹시나 문제가 있다면.”

“그래.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바로 말하도록 하겠네.”

제르민이 무겁게 발걸음을 옮겼다.

문을 닫고 그가 나가는 걸 확인한 다음에야 내 표정은 한없이 가라앉았다.

“······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게 네놈이냐?”

싸늘하기 짝이 없는 어조로 묻자.

[그렇습니다.]

놈이 답했다.

미친.

소름이 돋았다.

수십 년간 나를 괴롭히던 존재가 느닷없이 말을 걸어온 것이다.

“왜 이제야 나타난 거지?”

제발 그만두라고 울부짖을 때조차 나타나지 않더니, 과거로 돌아온 지금 뜬금없는 순간에 나타났다.

원망하지 않는다면 거짓이리라.

최대한 차분하게 말을 하려고 해도 계속해서 엇나간다.

흥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의 광증이, 내 머릿속에 있는 벌레가, 거짓이나 망상이 아닌 진짜임이 밝혀지는 순간이었으므로.

[강력한 전기자극으로 충전이 완료되었기 때문입니다.]

강력한 전기. 떠오르는 건 말피엘의 마지막 공격이었다.

뇌신과도 같은 모습으로 번개의 화살을 쏘아낸 덕분에 충전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다만, 오랜 시간 방전된 채 방치되어 마스터의 신경섬유다발을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노머신 Zero’가 이전보다 더욱 튼튼하게 마스터의 신경세포를 재생시켰습니다!]

잘난 듯이 이야기하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내게는 의문인 단어들뿐이었다.

허나 의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 신경섬유다발이라는 걸 짓누르면 어떻게 되지?”

[측두엽과 전두엽이 손상되어 자극에 예민해지며, 인지 기능과 기억 기능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누군가를 죽이거나 그릇된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단 말이냐? 나의 천성과는 관계없이?”

[Yes.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때때로 정신분열 증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더 자세한 사항은 ‘뇌의 신경과 변화’에 관한 관련 논문을 참고하십시오.]

“아······.”

말문이 막혔다.

이 상황 자체가 내 착각이며 자기합리화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머릿속의 벌레가 영향을 끼쳐 그릇된 판단을 내린 것이라면?

나의 광증이, 광기가 온전히 나로부터 나온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순간 눈앞이 흐릿해졌다.

죽이고 싶었다.

머리를 갈라 벌레를 꺼내 죽이는 상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럴진대.

막상 벌레의 말을 들으니 가슴이 벅차오르며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너는 악마다. 태어났을 때 죽였어야 했어!

―저주받은 황태자!

―차라리 태어나지를 말지!

수많은 원망이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처럼 아직도 생생하다.

광증에 잡아먹힌 뒤로 기억나는 건 저런 원망 어린 말들뿐이었다.

때때로 정신이 돌아올 때 나는 내가 저지른 일들을 보고 후회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하여, 침을 꿀꺽 삼킨 채 물었다.

“짐이 다시 미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냐?”

[Yes! 마스터가 건강할 수 있도록 정신과 육체 모두를 저 ‘나노머신 Zero’가 평생 전심전력으로 서포팅하겠습니다.]

“짐이······ 다시 살아도 된다는 말이냐?”

과거로 돌아왔다한들 내게 무슨 자격이 있을까.

수십, 수백만을 죽인 폭군인 내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다시 살아도 되는 걸까?

그런 나의 걱정이 무색할만큼.

[Yes!]

나노머신의 대답은 명쾌하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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