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황제-1화 (1/146)

황제 라인하르트

그를 칭하는 수식어는 크게 두 가지였다.

찡그린 폭군.

그리고 전쟁광.

그 이름처럼 끊이질 않는 전쟁 탓에 백성들은 굶주렸다.

피와 공포로 얼룩진 정치. 빈곤과 기아가 판을 쳤다.

하지만 악마 같은 황제도 결국 인간이었다.

영웅 말피엘의 반역이 성공하며 황제가 죽었다는 소식이 제국 전역에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황제 라인하르트의 죽음에 열광했다.

단 한 명도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지 않았다.

단 한 명도.

‘머리가 아프다.’

왕좌에 앉아 머리를 부여잡는다.

몸을 비틀며 애써 고통에 저항해본다.

하지만 이가 악물리는 이 두통은 도무지 적응되질 않았다.

‘이 빌어먹을 벌레.’

머릿속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기분.

나는 어릴 때부터 항상 머리가 아팠다.

하지만 전세계를 뒤져 찾은 고명하다는 의원도, 성녀와 성황에 의한 신성력 치료도 모두 부질없었다.

증세가 완화되기는커녕 악화만 되어갔다.

오직 한 경우.

극도의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전장만이 이 고통을 잊게 했다.

덕분에 제국의 영토는 번영했다.

자그마치 대륙의 절반을 제국의 지배하에 두게 된 것이다.

감히 그 어떤 황제도 이루지 못했던 위업.

찬사받고 찬양받아 마땅할 일이건만.

하지만 나는 여전히 머리가 아팠다.

“폭군 라인하르트. 죽어 마땅한 황제여.”

말피엘.

인간과 신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맨손으로 대괴수 히드라를 쓰러트리고, 저승을 지키는 개 케르배로스를 산 채로 잡아내 불멸의 몸을 얻은 자.

인간 최초로 신들에게서 ‘발할라’의 칭호를 이어받은 대영웅, 살아있는 신화!

진짜 인외의 괴물은 저놈을 가리키는 말이리라.

나와 대조적인 삶을 사는 그가 어느덧 내 앞에 당도했다.

“······ 네놈 면상을 보니 더욱 머리가 아프군.”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말했다.

황궁은 핏물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모조리 죽었다.

저 괴물 같은 말피엘에게.

하여 나는 물을 수밖에 없었다.

“무혈입성할 수 있었을 텐데, 왜 굳이 다 죽였나?”

황궁은 이미 말피엘의 손아귀에 넘어간 상태였다.

그를 따르는 수많은 귀족과 병사들은 굳이 피를 보지 않아도 내 목을 내어줬을 것이다.

그런데 말피엘은 개미 새끼 한 마리 남기지 않고 다 죽였다.

“깨끗한 인간이 이 황궁에 남아있을 리 없으니까.”

“허, 칭송받는 대영웅이 할 말은 아닌 듯한데.”

“청소가 필요하다. 이 썩어빠진 제국을, 세상을 정화하기 위해선.”

그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왜 죄 없는 아이들까지 죽였는지 그건 따로 묻지 않았다.

나도 미쳤지만, 저놈도 만만치 않았다.

놈은 가짜 정의로 위선을 일삼았다.

정의라는 이름의 결벽증 환자. 그것이 말피엘이다.

“어차피 내가 죽인 거로 기록될 테니, 속은 편하겠군.”

미친 황제가 혼자 죽기 싫어서 아이들까지 죽였다!

뻔한 내용의 가십.

안 봐도 그려진다.

말피엘이 어깨를 으쓱했다.

“역사는 승리자의 편이지.”

확실히.

승자와 패자의 명암이 명확하게 갈렸다.

나는 최악의 폭군으로, 말피엘은 그런 폭군을 죽인 구세주로 기억되리라.

‘미친 괴물 새끼.’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대륙 제일의 소드마스터도, 8서클의 대마법사도 저 말피엘 한 명을 막지 못했으니까.

그야말로 1인 군단.

‘12위업을 달성하기 전에 죽였어야 했는데.’

신에게 인정받은 자만이 행할 수 있다는 열두 위업의 수행.

인류역사상 한 명도 성공한 적 없다는 그걸 말피엘은 보란 듯이 성공해버렸다.

불멸의 몸으로 죽지도 않으니 이길 턱이 있나.

“악마 황제 라인하르트를 죽여라!”

“대영웅 말피엘을 따라라!”

한 박자 늦게 수많은 민중들이 농기 따위를 들고 궁에 들어왔다.

분노만이 가득한 눈빛.

“슬프군.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죽음이란 건.”

말과는 달리 말피엘의 입은 웃고 있었다.

쿠릉!

콰지지직!

동시에 궁을 가득 채울 정도의 엄청난 전격이 말피엘에게 몰려들었다.

뇌신 강림!

열두 가지 위업을 달성한 반인반신 말피엘의 본모습이었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선고.

그야말로 쇼맨십이다.

자신의 신화적 업적을 만인에게 선보이는 것이다.

전형적인 관심병자의 행태였다.

문득 나는 궁금해졌다.

‘머릿속의 벌레가 나를 미치게 만든 걸까, 이것이 내 본성인 걸까.’

벌레가, 고통이 없었어도 나는 미쳤을까?

아니면 이 광증이야말로 내 본성이었을지.

그 순간.

콰르르릉!

말피엘이 전격을 화살처럼 모아 내게로 쏘아냈다.

꽈아아아아아앙!

***

[··· 충전 완료.]

[······ ‘나노머신 Zero’가 기동하기 시작합니다.]

< 나노머신 Zero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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