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내 영화의 파노라마
일요일 아침.
아내와 딸아이와 함께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매일 같은 일상이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아이와 아내와 함께 피트니스 클럽에 간다. 30분은 근력 운동하고, 30분은 유산소 운동하고.
집에 돌아와선 간단히 밥을 먹는다.
아내와 아이는 집에 있고 나는 출근.
회사에 가서 건하의 신부가 될 내 비서 희진이에게 보고를 받은 뒤 별다른 사안이 없으면 청년 재단으로 넘어간다.
로큐는 날이 다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시가총액이 3조에 육박하고 주가는 15만 1천 원.
연 매출액은 7,000억 대. 영업이익률 56%.
매출은 네오스타 영화 투자와 영화 제작, 배급 등에서 주로 나왔다. 마진율이 매우 높은 이유다. 특히 블루드 워가 대흥행을 하면서 1분기 실적이 지난해 실적 절반을 넘었다.
계열사도 늘었다.
연예기획사. 플래닛 케이. 로큐 레저.
배급사 네오스타 코리아와 투자사인 로큐 인베스트먼트.
로큐는 다섯 회사의 지분을 모두 가지고 있다. 지금은 자체 배급사와 극장 체인 사업까지 검토하고 있고.
나는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최대주주로 회사 상황 보고만 받고 있을 뿐.
명예 회장인 격이다.
회사 대표들도 바뀌었다.
구 대표는 로큐 1인 대표가 되었고, 성 부사장은 연예기획사 대표를 맡았다. 지성이는 플래닛 케이와 로큐 레저 대표.
청년재단 대표는 나와 서연이 공동으로 맡았다.
재단의 취업 프로그램도 이제는 자리를 잡아서 매년 청년들의 취업을 돕고 있다. 기부금도 해마다 늘어나고.
그렇게 회사와 재단 일을 본 뒤.
오후 4시쯤 퇴근해서 집으로 간다.
후계자를 마지막으로 한 2년쯤 쉬기로 했다.
제니퍼 로렌스와 리즈 위더스푼이 출연할 작품은 시나리오를 써서 네오스타에 보내 주기만 하면 되는 거고.
지금은 후계자 영상 보정 작업 중이라 마땅히 할 일도 없었다. 책보고 영화보고 포털이나 펀딩 사이트에 들어가서 댓글 구경하고.
아이와 함께 놀고 있을 때 문자가 왔다.
혁민이었다.
[영화 최종 성적 나왔는데 보셨어요?]
[그래. 확인할게.]
[직원들 난리 났습니다. ㅎㅎ]
박스오피스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블루드 워 : 다가오는 여명.
북미 최종 성적.
7억 8천만 달러.
9억 3천만 달러인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에 이어 역대 2위다. 7억 6천인 아바타는 넘었다. 월드와이드 최종 성적은 한 6개월 지나야 집계가 될 것 같았다. 뒤늦게 개봉한 나라도 많아서.
박스오피스의 월드와이드 잠정 집계는.
28억 달러 이상.
27억으로 역대 1위인 아바타를 넘을 것 같다.
중국과 인도만으로 북미 흥행 성적에 근접했으니.
28억 달러 중 네오스타 수익은 약 13억.
한화로 1조 5천억.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역사상 네오스타가 한 작품으로 가장 돈을 많이 번 스튜디오가 되는 셈이다. 게다가 오스카 작품상까지 덜컥 받아 버렸고.
어쩌면 역대 1위 작품이 될 것을 예상하고 아카데미가 작품상을 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혹은 네오스타 스튜디오와 좋은 관계를 맺어 두려는 포석일 수도 있고. 영화 스튜디오는 전미영화협회에 후원금도 보내고 그러니까.
웃음이 절로 나왔다.
무척 기대했는데 막상 기록을 깰 가능성이 높다 보니 실감이 안 난다. 블루드 워 광풍이 몰아치는 걸 매일 지켜봐서 그런 건지.
아내가 내 옆에 앉았다.
“기록 깰 것 같네. 기분이 어때?”
“그냥 담담하네. 조금 허탈하기도 하고.”
“왜 허탈해?”
“어째 목표를 잃은 것 같아서. 아카데미 작품상도 받았지, 흥행 기록도 깼지.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잖아.”
“좀 내려가면 어때.”
“그건 그래.”
아내가 현명한 사람이라는 걸 새삼 느낀다.
더 올라갈 곳이 없다고 여기는 것은 오만이다. 더는 해 볼 것이 없다고 여기는 건 자만이고. 영화는 무궁무진한 세계 아니던가. 꾸준히 재밌는 영화를 만들어 가면 되는 거지.
“꿈을 다시 세워야겠어.”
“어떤 꿈?”
이제 상을 받고 흥행 신기록을 위해 달리는 건 의미가 없다. 물론 하나 남아 있긴 하지만 그건 언젠가 기회가 온다. 최고라는 의미에서는 이미 이룬 셈이다.
“나이 들어서도 영화 만드는 것.”
“소박한 꿈이네.”
“가장 어려운 꿈이기도 하고.”
나이가 들면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지겠지.
나이에 걸맞게 살고 나이에 맞는 영화를 만들면 된다.
블루드 워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남을 테고.
새로운 시리즈. 새로운 혁신. 새로운 현상.
앞으로 만들어갈 것도 많고, 시도할 것도 많다.
새로움 그 자체가 도전이고 꿈이다.
감독으로서 내 인생.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지.
* * *
후계자 최종완성본이 나왔다.
사운드와 음악, 타이틀 자막까지 다 붙였다.
편집실과 영상보정팀. 사운드팀과 음악감독.
하나같이 작업을 하다가 포복절도했다는 말이 들려왔다. 작업하다가 너무 웃겨서 직원들이 구경을 오고, 다 함께 돌려 보면서 웃다가 눈물까지 났다나.
사내에 그 소문이 쫙 퍼졌다.
내가 시사회를 한다고 하자 직원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관객반응도 예상해 볼 겸.
직원들과 함께 영화를 보았는데.
영화 상영 1시간 50분 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직원들이 한 10번은 쓰러졌다. 배를 잡고 웃는 건 기본이고, 웃기지 않는 장면에서도 직원들이 입꼬리를 잔뜩 올린 채 영화를 보았다.
시사실이 밝아진 뒤 스크린 앞에 섰다.
직원들의 눈이 벌겋다. 너무 웃어서 눈물을 흘린 직원들이 절반 이상이다. 나머지 절반은 배를 잡고 늘어져 있고.
웃음의 여운이 가시질 않아서 여전히 웃는 상이다.
“영화 어땠어요?”
“너무 웃겨서 미치는 줄 알았어요.”
“회장님, 배가 너무 아파요!”
“어떤 장면이 웃기던가요?”
“차남요!”
“차남 나오는 모든 장면요!”
예상했던 바다.
“양 씨는 별로 안 웃기던가요?”
“웃기기는 하는데 좀 이상해요.”
“어떤 점이 이상하죠?”
“무척 진지한 차남은 웃기고, 웃기는 행동을 하는 양 씨는 진지한 느낌이 나요. 아, 그리고 또 하나.”
직원이 자기 분석이 맞나 싶은 눈치다.
그 직원의 말을 다들 기다렸다.
콘텐츠 분석팀 직원이라 더 그렇다.
“사모님 말이에요.”
“아내가 왜요?”
“뭐랄까. 묘한 기운 같은 게 느껴졌어요. 나쁜 의미가 아니라. 어떤 신앙 같은 거였어요. 제가 크리스찬이라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는데, 재벌가를 대할 때는 어리석은 백성을 대하는 것 같고, 양 씨를 대할 때는 예수님을 대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제가 이상한 건가요?”
다들 그 직원을 보았다.
직원은 혹시 실수한 건가 싶어 머리를 긁적인다.
다른 직원은 긴가민가 싶고.
내심 놀랐다.
작품 분석을 잘하는 직원이긴 한데 그걸 짚어 낼 줄은 몰랐다. 직원이 내가 영화에 심어 놓은 걸 포착했던 것이다.
“다른 직원은요?”
한 직원이 대답했다.
“저는 신앙은 모르겠고, 뭔가 신비로운 기운 같은 걸 느낀 건 맞아요. 사모님 연기가 그런 것 같긴 합니다. 영화 장면 중에 하얀색과 검은색 경계에 서서 양 씨와 재벌가 사람들을 바라보는 장면 있잖아요. 그때 매우 강한 느낌이 왔어요. 전 이게 뭐지 싶었는데.”
“아!”
직원들이 일제히 놀랐다.
소름이 돋았는지 자신의 팔을 만지는 이들도 있고.
다들 그 장면에서 뜻 모를 기운을 받은 모양이다.
정확히는 기운이 아니다.
영화에 은밀히 내포한 영적인 뭔가를 감지했던 거다.
종교와는 상관없다. 나부터 종교가 없으니까.
후계자에는 복층 주제가 담겨 있다.
하위 개념은 재벌가 이야기를 다루는 코미디.
상위 개념은 신과 인간의 관계다.
인간은 왜 살아가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매우 단순하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대답은 쉽지만 실천은 어려운 해답.
자신의 의지대로 사는 것.
매우 질서가 강한 집안에 무질서한 양아치가 들어와 질서를 파괴한다. 사실은 반대다.
의지가 박탈당한 질서는 무질서이며, 자유의지로 행동하는 것이 질서라는 반어법이다. 서연이 맡은 재벌가 며느리는 의지를 박탈당한 사람으로, 양아치의 행동을 보면서 질서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신이 보여 주는 진리의 세계.
인간이 보여 주는 어리석은 세계.
재벌가 며느리는 그 가운데에 서 있었던 것이다.
흑과 백이라는 경계 위에서.
그래서 고뇌했으며 번뇌에 빠졌다.
결국 신으로 뜻에 따르기로 하고 질서를 향해 간다.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으로서.
신을 은유한 양아치가 재벌가의 가족이 된다는 것.
그것은 신이 어리석은 인간 사회에 들어간다는 의미다.
반면 어리석은 인간 사회에 있었던 재벌가 며느리는 이혼을 하여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고.
따라서 며느리는 구원을 받은 자가 되고, 재벌가는 구원받아야 하는 자들이 되는 셈이다. 재벌가의 위선이 곧 인간의 위선을 의미하므로 재벌가를 통해 인간사회를 상징한 거였다.
이를테면 흑백으로 이뤄진 재벌가의 저택.
정원은 화려하고 잘 꾸며졌지만, 뒤뜰은 잡초가 무성하고 황폐해진 느낌이다. 그 뒤뜰에 마리아상이 있다.
양아치는 재벌가에 들어와서 뒤뜰을 정리한다. 어리석고 위선적인 인간들이 내버려둔 마리아상을 정성스레 닦는다. 그 모습을 본 재벌가 며느리도 뒤뜰을 가꾸기 시작하고.
내가 설명하지 않는 이상은 해석이 어렵다.
다만 인간의 무의식에 잠재된 영적인 세계에는 전달되는 것 같다. 그래서 직원들이 묘한 느낌이라고 했던 거다.
왜 이 영화가 내 대표작이 될 느낌을 받았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인간의 본성. 인간의 선악. 인간의 욕망 등등 인간과 사회에 천착하다 보니 신과 인간의 관계까지 들어가고 말았던 거였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고 스스로 변하기 어렵다.
그래서 신이 필요했던 것이다.
신이란 진리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고.
어쩌면 직원들이 말한 묘한 기운이라는 것이 실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게 코어를 통해 영화에 담았을 수도 있다. 영적인 힘. 그것이 이번 영화의 특별한 현상일까.
무의식에 전달되는 영적 기운.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는 성원을.
좌절을 겪는 사람에게는 용기를.
삶이 따분한 사람에게는 활력을.
우울한 사람에게는 삶의 의지를.
보통 사람들에게는 삶의 동력을.
이러한 것들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정말 특별현상의 효력이 발생한다면.
* * *
영화를 촬영했던 대저택.
이 저택의 멋진 정원에서 건하와 희진이의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호텔 영업 직전이라 내부 시설이 잘 꾸며졌다.
.
건하는 직접 손님을 맞이하고 신부 측은 내가 맞이했다. 신부 측이 죄다 내가 아는 사람이기도 하고.
건하와 희진이의 가족은 다 합쳐도 20명이 채 안 되었다. 둘의 부모님도 형제가 별로 없었고, 가까운 친척들도 왕래가 없는 상황이었던 터라.
그런데 하객은 정말 많이 왔다.
로큐 소속 연예인은 물론이고 건하와 같은 작품을 찍었던 배우들의 무척 많이 왔다. 로큐 직원들도 많이 왔고.
지성이도 지현이와 함께 왔다.
“형은 가만 보면 내가 친동생인지, 건하가 친동생인지 헷갈릴 때가 있어.”
“사업은 어떠냐? 할 만해?”
“힘들어.”
서연이 지현이에게 물었다.
“2세는 언제쯤 볼 거야?”
“형님은 만날 때마다 그 소리야? 곧 좋은 소식 있어.”
“정말? 왜 말 안 했는데?”
“오늘 말하려고.”
지성이가 히죽 웃는다.
녀석을 덥석 안았다.
“축하한다.”
“이제 고생 시작이지 뭐.”
동생 내외를 들여보냈다.
송강석 선배와 황정우 선배도 왔다.
건하를 아주 좋게 본 분들이다.
대체로 성품이 훌륭하신 분들이 사람 볼 줄 안다.
대배우는 괜히 되는 게 아닌 거지.
미국에서 제이슨도 왔다. 이동욱 대표와 혁민이가 참석한다고 하자 본인도 따라온 모양이었다. 건하와는 블루드 워 3편을 같이한 동료이기도 했고.
심지어 사토 다케루와 미와도 왔다.
“넌 또 왜 왔어?”
“건하 씨 축하도 하고 한국 여행도 할 겸 해서요.”
“미와는 오랜만이네.”
“네. 감독님을 보니까 정말 좋네요. 그런데 오스카상 시상식 때 사토 씨가 테레비에서 외치는 거 보셨어요?”
“어떻게 나왔는데?”
“일본 전역이 웃음바다가 됐지 뭐예요.”
“욕은 안 먹고?”
사토가 말했다.
“아, 그거 예능 프로그램이에요.”
“그랬어? 말을 하지? 그럼 나도 개그 좀 했을 텐데.”
“인터뷰할 시간이나 줬나. 한국 기자들하고만 한국말로 이야기하셨으면서.”
좀 미안하긴 하네.
오스카상 시상식 후 한국과 일본 기자들만 따로 불러서 인터뷰를 했다. 그때 내내 한국말만 해서 사토는 방송 망했다며 울상을 지으며 헤어졌었다.
“너 지금도 예능 출연해?”
“예. 제가 MC인데요.”
“이왕 왔으니 찍어.”
“진짜요?”
결혼식 풍경을 찍는 VJ 한 명을 불렀다.
영화 촬영 메이킹을 주로 찍는 전속 VJ다.
카메라를 대자 사토가 MC로 돌변했다.
“자, 지금 여러분은 세계적인 스타인 윤건하 씨의 결혼식 보시고 계십니다. 갓 필드의 그 꽃미남 팀장인 거 아시죠? 앗! 그런데 말입니다. 이곳에 블루드 워의 감독님이 계십니다! 우와아아아! 이게 무슨 일이야! 감독님! 저 왔어요!”
“어? 사토! 네가 여기 웬일이냐!”
사토를 덥석 안아 뽀뽀를 해 댔다.
내 능청에 서연과 미와가 입을 가리고 웃는다.
“감독님! 내가 블루드 워 4편의 주인공이라면서요!”
“무슨 소리야. 아닌데?”
“전에 그러셨잖아요!”
“아, 블루드 워가 아니라 발라드 워! 발라드 가수들이 배틀로얄을 벌이는 내용이야. 리얼리티를 위해서 실제로 죽어야 돼!”
“1편부터 해야지 왜 발라드 워 4편인데요!”
“1편부터 3편까지 배우들이 다 죽어서 개봉을 못 했어!”
“뭐예요, 그게!”
아무 말 막 던진다.
그걸 또 사토는 받아주고.
다시 하객이 와서 안내를 했다.
그러다 사토가 촬영을 하면 또 아무 말 개그를 하고.
얼마 뒤.
결혼식이 진행되었다.
저택 앞 정원에 정말 많은 사람이 모였다.
건하 쪽 하객은 이모님 부부가 앉아 계시고.
희진이 쪽 하객은 그녀의 친구들이 앉아 있고.
난 정원 옆 밴 앞에 서 있었다.
멀리서 수호가 신호를 주었다.
밴의 문을 열었다.
정말 아름다운 희진이의 모습.
착한 두 사람이 만났으니 얼마나 잘 살까.
“정말 예쁘다, 희진아.”
내 말에 희진이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어두운 미래를 떠안은 채 옥탑방에 살던 기억이 떠오른 모양이다. 날 친오빠처럼 생각하기도 하고.
“울지 마. 이제 좋은 날만 있을 거야.”
“네. 회장님.”
“오빠라고 해.”
“네. 오빠.”
“자.”
신부의 손을 잡았다.
천천히 우아하게 버진 로드에 섰다.
뒤를 보는 하객들 모두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사회는 수호가 보았다.
“신부 입장!”
희진이와 함께 건하에게 걸어갔다.
건하가 해맑은 표정으로 신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건하에게 희진이의 손을 맡겼다.
신부 측 자리로 갔다.
곱게 한복을 입은 아내 옆에 앉았다.
그녀가 전화를 받고 있다가 내게 건넸다.
“무슨 일인데?”
“들어 봐.”
전화를 받아 귀에 댔다.
영어가 들려오고 있었다.
“네. 최신성입니다. 예. 아, 그래요? 고맙습니다. 그럼요.”
전화를 끊고 아내에게 물었다.
“심사 탈락하면 어쩌려고 보냈어?”
“오빠 몰래 보내 달라고 해서 보내 준 거야. 그쪽도 탈락하면 어쩌나 해서 오빠도 모르게 한 거고. 기분 좋지?”
“나쁘진 않네.”
뒤에서 불쑥 사토가 들어왔다.
“무슨 일입니까?”
“나중에 알려 주마.”
“네.”
건하와 희진이 반지를 주고받는다.
그리고 인사하는 신랑 신부.
“신랑! 신부 행진!”
웨딩마치가 울렸다.
공중에선 온갖 꽃잎이 흩날리고.
나도 아내도 일어나서 박수를 보냈다.
모두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결혼이었다.
행진이 끝난 후 건하가 동생들과 포옹을 했다.
희진이는 그들의 여친들과 포옹하고.
사토가 다시 끼어들었다.
“감독님. 무슨 연락이었는데요?”
웃으며 말했다.
“내 영화 ‘후계자’가 칸에 가게 됐다.”
“칸? 경쟁 부분요?”
“그래.”
“우와아아! 스게~!”
톱스타 사토가 특종을 잡았네.
* * *
아내와 아이.
결혼한 건하 부부와 함께 이탈리아로 향했다.
건하 부부가 마침 신혼여행으로 유럽을 선택했던 터라 동행할 수 있었다. 후계자의 배우들은 칸으로 바로 가기로 했고.
파리에서 깐느로 가는 것보다는 이탈리아에서 깐느로 가는 게 훨씬 더 가까워서 먼저 로마로 왔다. 로마에서 밀라노로 갔다가 우린 칸으로 가고, 건하 부부는 스위스로 들어갈 예정이었다.
한데 네 사람이 한가하게 로마 시내를 돌아다니자 우릴 알아보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갓 필드가 대히트를 친 나라인데다, 최근 오스카 시상식 때 내 얼굴이 널리 알려지는 바람에.
하기야 백인과 흑인만 있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동양인 얼굴이 눈에 띄긴 했을 터다. 나 혼자 있으면 닮은 사람이겠거니 할 텐데, 옆에 세계적인 스타인 서연과 건하가 있으니 틀림없다 싶었겠지.
여행 노선은 희진이와 아내가 짰다.
아내의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로마에 도착한 첫날 코스는 바티칸 투어였다. 후계자의 영적 현상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 바티칸에 가자 뜻 모를 힘이 전달되는 느낌마저 들었다.
다시 이동하여 중국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예전에 베네치아에 갔을 때도 중국인들밖에 안 보이더니 로마에서도 그랬다. 솔직히 예의가 좀 없기는 했다.
두 부부가 밥을 먹는데 허락도 없이 마구 사진을 찍고 자기들끼리 웃고 떠든다. 트레비 분수에서 사진을 찍을 때는 좀 비켜 가주면 좋을 텐데 그냥 카메라 앞을 지나가 버리고.
식사 후에는 그 유명한 스페인 계단에서 쉬었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먹던 장소.
한껏 멋 부리며 쉬고 있는데 또 중국인들이 마구 사진을 찍어대는 통에 자리를 떠야 했다. 아이가 다칠 수도 있으니.
급히 군중 속에서 빠져나와 골목으로 들어갔다.
건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같이 다니기 어려울 것 같네요.”
“좀 그렇지?”
희진이가 말했다.
“저흰 유명 관광지에는 별로 흥미가 없어요. 차라리 시골을 다니면 편하지 않을까요? 언니도 불편하신 것 같고.”
“그럴까?”
“나도 그게 좋겠어.”
곧장 렌터카 업체로 갔다.
로마에서 차를 타고 시골을 구경하면서 북상할 생각이었다.
희진이 생각이 옳았다.
시골로 접어들고 보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나와 건하가 교대로 운전하다가 좋은 경치가 나오면 차를 세우고 구경했다. 그 마을의 작은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나와 아내는 진한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건하 부부는 에스프레소가 너무 쓰다면서 카푸치노를 마셨다. 어째 시골 카페 커피가 한국의 대형 전문점 커피보다 맛이 좋았다.
밋밋하기 짝이 없는 파스타와 얇고 토핑도 없는 피자도 정말 맛이 좋았다. 한국의 이탈리아 음식은 오랜 내공이 없어서 토핑 맛으로 먹는 느낌.
서연이 말했다.
“역시 음식은 그 나라에서 먹어봐야 하나 봐. 화려하진 않지만 깊은 맛이 있네. 담백하기도 하고.”
“언니 커피 원두 좀 사갈까요?”
“그래야겠어.”
다시 밀라노로 떠났다.
도중에 서연과 희진이가 검색을 해서 밀라노에서 가장 커피가 맛있는 집도 찾아보고.
* * *
밀라노에서 건하 부부와 헤어졌다.
두 사람은 스위스 베른으로 가고, 우린 칸으로 갔다. 칸 직행 노선이 없어서 니스로 갔다가 버스를 타고 해변 도시 칸에 도착했다.
내가 봤을 때.
깐느 영화제야말로 세계 최고의 영화제 같다.
베니스 영화제는 영화제가 맞나 싶을 정도로 조용하다. 고상한 느낌도 들고. 베를린 영화제는 베니스보다는 떠들썩하지만 뭔가 딱딱한 느낌이다.
한데 깐느 영화제는 압도적으로 화려했다.
관광객이 상당히 많고 바다에는 요트가 수없이 떠다녔다. 영화제를 홍보하는 깃발도 곳곳에 걸려 있고. 깐느 영화제를 위해 존재하는 도시인 것처럼.
도착하자마자 해변을 따라 걷다가 시내로 들어가 식사를 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우리 부부를 알아보고 눈인사를 했다. 거리를 오가는 영화인이 워낙 흔하다 보니.
한국 음식점을 찾아 북쪽으로 조금 걸었을 뿐인데 시내가 끝났다. 시내가 작아서 그런지 아는 사람을 정말 많이 만났다. 명절에 용인 시내에서 동창들을 만나는 것처럼.
지금까지 내가 쌓은 인맥이 이렇게 많았나 싶다.
영화제 프로그래머. 바이어들. 평론가들. 기자들.
유명 감독과 배우들. 한국 영화인과 일본 영화인들.
리연이가 피곤해해서 아내를 호텔로 먼저 보냈다.
그런 뒤 아는 영화인들과 해변에 있는 바에서 맥주를 마시고 담소를 나누었다. 부산국제영화제 밤 풍경처럼.
깐느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감격한 감독이나 배우들도 많았다. 그만큼 깐느 영화제가 주는 명예가 컸다.
나도 그렇다.
아카데미 시상식에 갈 때보다 더 설렜다.
사실 오스카 작품상을 받은 게 얼마 전이라 큰 기대는 안 했다. 깐느는 영화 한 작품으로 평가하지 않고 영화적 공로를 높이 산다. 이제 상을 줄 때가 됐다 싶으면 초청하는 거고.
한데 난 그동안 깐느에 온 적이 없다.
이번을 기회로 인연을 만들려는 의도가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감독상이나 심사위원상정도.
주연배우 상은 잘 모르겠다.
심사위원들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차남 역의 조승운이 받을 수도 있고, 아내 서연이 받을 수도 있고.
다른 경쟁작이 어땠느냐에 달렸다.
깐느의 첫날은 그렇게 맥주와 함께 지나가고 있었다.
* * *
깐느 영화제 메인극장인 뤼미에르.
나와 서연. 후계자의 주역들이 레드카펫을 걸었다.
배우들이 곳곳에서 방송 리포터와 인터뷰를 하고 있고, 포토 라인에는 먼저 도착한 이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하자 방송 리포터들이 다가와 인터뷰를 시작했다. 다른 배우들은 카메라 한두 대가 붙어서 인터뷰를 하는데, 우리 쪽에는 카메라 10대가 붙었다.
“감독님! 칸에 오신 소감이 어떠십니까?”
“아주 좋습니다. 날씨도 참 좋군요.”
“후계자의 수상을 기대하시나요?”
“뻔한 말이지만 축제를 즐기러 왔습니다.”
“안서연 씨! 남편과의 작업은 어땠나요?”
서연도 대답했다.
“아주 편한 현장이었어요. 연기에 집중할 수 있었죠.”
“서연 씨! 오랜만에 복귀한 소감 좀 말해주십시오!”
“그냥 담담합니다. 호텔에 있는 아이 걱정이 되는 걸 보니 배우보다는 엄마 노릇 하는 게 더 어렵네요.”
리포터들이 환하게 웃었다. 일보다 가족이 우선이라는 걸 공감하는 것 같다. 보기 좋은 모습으로 봐주는 것도 같고.
“감독니이임!”
한 무리의 동양인이 들이닥쳤다.
또 사토가 찾아왔다.
이번엔 일본 개그맨들을 데리고.
“여긴 또 왜 온 거야?”
“특집 3편 찍으러 왔어요! 지난번 건하 씨 결혼식이 일본에서 시청률 대박 나서 방송사에서 보내줬죠!”
그게 벌써 방영이 되었나.
그날 찍은 게 대박이긴 했다.
영화감독이 막말을 해대니 웃기긴 했을 것 같다.
“내 개그가 통한 거야?”
“통한 정도가 아니라, 일본 열도가 뒤집어졌다고요! 안 그래도 감독님과 서연 누님은 왕자와 공주로 불리는데 왕자가 그런 괴상한 개그를 하니 얼마나 웃기냐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저렇게 진지한 얼굴로…”
사토가 경호원들에게 저지당하며 밀려났다.
영화제 취재 허가도 없이 카메라를 들이대는 바람에. 영어 발음이 엉망진창이기도 했고.
“왜 밀고 그래! 나도 배우야! 일본 톱스타라고!”
사토가 밀려나면서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개그맨들도 부당하다며 난리를 치고.
예능을 위해 참 열심히 한다.
웃으며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조승운이 말했다.
“깐느 처음이라 긴장이 좀 되네요.”
“여기 다들 처음이야. 백 선배님도 그렇고.”
“일생 칸에 못 올 줄 알았더니 이렇게 오는구먼.”
명배우들도 깐느는 긴장이 되는 모양이다.
아카데미 시상식 때는 자유분방함이 있었는데, 깐느에는 서로 모르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무척 차분했다.
넓은 로비를 연회장처럼 꾸며 놓았다.
참석한 감독들 모두가 거장이다. 경쟁 부분에 오른 신인 작품은 없다. 내 경우엔 베니스와 베를린 영화제에 출품한 경력 덕분에 바로 경쟁 부분에 올랐던 걸 테고.
샴페인을 마시며 인사를 하고 있을 때.
깐느 영화제 프로그래머가 찾아왔다.
내 영화를 초청했던 여성 분이다.
“베를린에서 한 번 뵈었는데 기억하세요?”
“그럼요. 베니스에서도 뵈었었죠.”
“기억해주시니 영광입니다. 후계자는 영화제 전야제 밤에 상영될 거에요. 일찍 귀국하시면 안 돼요.”
“좋은 일이라도 있나요?”
프로그래머가 웃었다.
“비밀이에요. 그럼 이곳 깐느에서 좋은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진행요원이나, 호텔 측에 연락하시면 됩니다. 행운을 빌게요.”
“고마워요. 미쉘.”
극장 주차장을 통해 빠져나갔다.
주차장에 영화인을 실어 나르는 리무진이 있었다.
그 차를 타고 곧장 호텔로 향했다.
호텔에 혁민이와 수혁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여자친구들까지 동행해서.
수호 커플도 와 있어서 의아했는데, 건하 부부까지 왔다.
“바르셀로나에 안 가고 왜 여길 왔어?”
“어차피 가는 길목이라 들렀다 가려고요.”
수호도 말했다.
“연희가 깐느에 가보고 싶다고 해서요. 혁민이와 수혁이도 간다고 해서 저희도 왔지 말입니다. 형님도 한 열흘 동안 놀러다닐 거 아닙니까.”
“그래, 잘 왔다. 이왕 노는 거 뭉쳐서 놀면 좋지.”
10일간 심심할 것 같았는데 잘 됐다. 다들 영화 일을 하고 있으니 이참에 세계 영화인들과 친해지는 것도 좋고.
이후 동생들과 매일 깐느 시내와 주변 도시를 돌아다니며 놀았다. 해산물 요리도 먹고, 다른 나라 배우들과 어울리며 요트도 타러 다니고. 사토 이 녀석도 예능 촬영을 겸해서 우리와 영화제 내내 어울렸다. 아예 다큐를 찍는다.
그렇게 11일간이나 놀았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호텔방에서 아이와 함께 놀다가 밤에는 술 마시러 나가거나, 영화를 보거나 했다. 나가기만 하면 아는 영화인을 만나는 터라 늘 술자리가 유쾌하고 즐거웠다.
영화제 전야제.
드디어 내 영화 ‘후계자’가 상영되는 날이었다.
동생 커플들과 함께 극장으로 향했다.
다른 경쟁 부분 영화도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영화인이 정말 많이 왔다. 일반 관객보다 영화인이나 기자들이 더 많아 보였다.
“감독님! 사진 좀 찍어 주세요!”
“최신성 감독님! 사인 좀 부탁합니다!”
“건하 씨!”
극장에 들어가려다 다섯 커플 모두 사진 찍느라 정신없었다. 수혁이 커플도 덩달아 사진이 찍히고. 몰려든 팬이 워낙 많아서 경호원들이 나선 후에야 극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다섯 커플이 자리를 잡고 있으니 수많은 기자와 영화인들이 와서 악수를 청했다. 그들도 배우이고 감독인데 먼저 사진 찍자고 청하기도 하고.
마침내 영화가 시작되었다.
관객들은 한국 최상류층 사회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유럽의 귀족 사회와 어떻게 다른가 싶었는지.
10분까지는 코미디가 전혀 없다.
코미디라고 들었는데 왜 안 웃기지. 이런 표정.
재벌가의 근엄하면서도 무거운 분위기가 이어지는데도 여기저기서 킥킥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웃는 사람만 웃는다.
관객 대부분은 왜 웃는지 모르고.
동생들도 마찬가지다.
집안에 걸린 그림을 보고 웃은 거였다. 고상하고 우아한 재벌가 저택 내부에서 위선의 ‘구멍’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초고가의 그림들이 걸려 있는데, 죄다 위작이었으니.
차남의 화장실 사건부터 웃음의 행진이었다.
회사 직원들처럼 차남만 나왔다 하면 웃음이 터졌다.
전혀 웃기지 않는 장면에서도 폭소가 터진다. 양 씨가 등장한 이후부터는 박장대소는 기본이고, 웃다가 쓰러지는 사람이 속출했다.
“하하하하!”
“세상에 저게 뭐야! 하하하하!”
“둘째 아들 표정 좀 봐!”
극장에 웃음이 가득해지자 떠드는 사람까지 생기고, 기자들도 웃는 얼굴로 영화를 관람하고 있었다. 일부 평론가와 기자들은 영화 보는 도중에 내게 엄지를 보였다.
과연 그들은 내가 심어 넣은 걸 발견했을까.
드디어 영화가 끝났다.
모든 관객이 일제히 기립했다.
“브라보!”
“최곱니다!”
“최신성!”
나와 서연. 영화의 주역들도 일어났다.
기립박수를 보내는 이들에게 인사하고 손을 흔들었다.
극장 안이 환호와 박수의 물결로 요동치고 있었다.
희열에 눈을 번뜩이는 사람들.
두 손을 들고 열렬히 손뼉을 치는 관객들.
내게 엄지를 내보이는 평론가와 리포터들.
기립박수가 끝날 기미가 안 보였다.
후계자의 배우들과 함께 돌아섰다.
모두 손을 맞잡은 채 다시 깊이 허리를 숙였다.
더 힘찬 환호와 갈채가 쏟아지고 있었다.
* * *
다음 날.
다시 뤼미에르 극장에 모였다.
여러 부분에 오른 감독과 배우들이 모두 객석에 있었다.
극장 양옆과 뒤편에는 방송 카메라들이 늘어섰고.
막 영화제 폐막작 상영이 끝난 터였다.
곧바로 시상식이 이어졌다.
프랑스 여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사회를 맡았다.
“올해 경쟁 부분에는 20개 작품이 올라왔습니다. 이번 깐느 영화제는 수많은 별이 빛나는 아름다운 축제로 기억에 남을 것 같군요. 그럼 지금부터 시상을 시작하겠습니다.”
단편영화 등의 시상이 이어졌다.
이상하게 다른 영화제와 달리 긴장이 되었다.
어제 후계자가 상영된 후 열렬한 반응이 있었다. 그런데 매체들이 리뷰 기사도 안 내고 내게 찾아오는 기자도 없었다.
코미디 영화라 낮춰 보는 건가. 내가 부여한 은유를 읽지 못했던 것일까. 한데 평론가들의 보여준 엄지는 뭔가. 왜 리뷰는 고사하고 한 줄 평까지 안 보이는 걸까.
한국에선 내 작품의 수상을 잔뜩 기대하고 있다.
공연한 부담감 때문에 시상이 길어질수록 긴장이 되었다.
아카데미 때처럼 신고식이 있는 것도 아닐 테고.
이처럼 내 영화에 대해 조용한 건 처음이다.
마침내 여우주연상 시상.
전 세계 내로라하는 여배우들과 경쟁이다.
아내는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연기가 눈에 띄지 않기에 못 받을 것으로 본 모양이다.
“여우주연상 수상자는!”
좌중이 조용해졌다.
시상자가 외쳤다.
“후계자의 안서연!”
서연이 눈이 휘둥그레진 채 날 보았다.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누구보다 기뻐한 사람은 나였다.
엉거주춤 일어나는 아내를 안았다.
그러곤 뺨에 입을 맞추었다.
“축하해. 2관왕 여배우님.”
서연의 눈시울이 뜨거워져 있었다.
기쁨과 당황. 그리고 미안함이 눈에 담겨 있다.
한 작품이 큰상을 받으면 다른 상은 없다고 봐야 하니.
“얼른 나가 봐. 얼마나 귀한 상인데.”
“응.”
아내가 눈물을 글썽이며 무대로 향했다.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트로피를 받는 아내의 모습이 정말 예뻤다. 그녀가 수상 소감을 말했다.
“이 고귀한 상을 받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이 상의 영광을 후계자의 감독이자, 저의 남편인 최신성 감독에게 돌리겠습니다. 그 사람이 아니었으면 받지 못했을 거예요.”
카메라가 날 비추었다.
환하게 웃었다.
깐느 심사위원들이 서연의 연기를 알아봐 준 것이 너무도 기뻤다. 진정한 예술을 알아봐 줘서 고맙기도 하고.
어쩌면 당연하게도 남우주연상은 놓쳤다.
각본상도 감독상도 다른 작품에 갔다.
2위에 해당하는 심사위원대상도 다른 거장에게.
박찬익 감독이 받은 상이다.
마음을 놓았다.
더는 긴장도 없고, 기대도 없었다.
뒤에서 누가 툭툭 쳤다.
건하다. 뒤에 앉은 건하와 수호. 수혁이와 혁민이가 날 보며 활짝 웃고 있었다. 그러곤 일제히 엄지를 보인다.
“뭐하는 거야?”
그때였다.
딴짓을 하는 사이.
드디어 마지막 시상.
“대망의 황금종려상 수상자는!”
두두두두두-
고조되는 북소리와 함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설마. 전례 없는 일이 벌어지려는 건가.
동생들이 난데없이 엄지는 왜…
“후계자!”
외침을 듣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여우주연상 받았는데 황금종려상이라니!
“오빠…”
아내가 눈물을 펑펑 쏟으며 날 안고 있었다.
그녀를 안은 채 일어났다.
객석의 모든 사람이 기립하여 찬사를 보낸다.
이거… 현실인가.
* * *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종려나무잎이 새겨진 트로피를 만져 보았다.
객석에 있는 수많은 영화인들.
화려하고 눈 부신 빛이 내 눈을 때리고 있었다.
내가 서 있는 곳은 너무도 밝은 무대.
객석 저편에선 아내가 눈물을 훔치며 박수를 보내고 있고.
동생 녀석들도 감격한 얼굴로 기립박수를 친다.
정말 몰랐다.
감독상과 심사위원대상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내가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런데 황금종려상이라니.
게다가 불과 석 달 전에 오스카를 받았다.
이런 일이 현실로 일어났다는 게 믿을 수가 없었다.
전례를 깰 정도로 영화 ‘후계자’가 좋았나.
최고상과 여우주연상을 줄 정도로 다른 작품을 압도하기로도 한 걸까. 아니면 경쟁 작품이 없었나.
모든 이들이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마이크 앞에 섰다.
“정말 믿을 수가 없군요. 휴…….”
내 한숨에 다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시상자인 알레한드로 감독은 흐뭇하게 웃고 있다.
오스카 작품상 수상 선배이자, 레버넌트를 연출한 분이다.
콧잔등이 시큰해지고 가슴 속에서 뜨거움이 치밀어 올랐다. 말을 이어나가기가 어려웠다. 후계자가 내 대표작이 될 거라는 예감. 그게 황금종려상으로 이어질 줄 몰랐다. 서연이 여우주연상을 받을 줄 몰랐고, 칸영화제에서 2관왕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한 5년 전이었나.
서연이 그랬다. 살면서 정말 좋은 작품이 나오면 함께 칸에 가자고. 나도 그녀도 큰 기대는 안 하고 깐느에 왔는데 이렇게 상을 받고 말았다. 나도, 아내도 가장 받고 싶었던 상을.
간신히 말을 이었다.
“아직 젊은이에게 이 큰 상을 주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자칫 열정이 식을 수도 있고, 오만과 자만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주셨다는 것은. 제 영화 인생을 일찍 끝내라는 의미는 아니겠지요.”
“하하하하.”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노장 감독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젊은 친구가 그걸 알고 있으니 다행이라는 표정들.
“저는 앞으로도 할 일이 많고 찍고 싶은 영화도 많습니다. 이번 상은 칸이 제게 주는 보증이라고 여기겠습니다. 칸이 보증했으니 앞으로 더 좋은 영화를 만들어야겠지요. 그것이 칸에 보답하는 일이고, 대중에게 빚을 갚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박수가 나왔다.
“황금종려상의 영예를 잊지 않고. 황금종려상의 영광을 기억하며, 황금종려상의 의미를 간직한 채 앞으로도 영화를 만들겠습니다. 황금종려상이 단순히 영화를 위한 상이 아닌,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수호하는 상이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후계자를 함께 만든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과 이 상을 함께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소감을 마치고 물러났다.
다시 우렁찬 박수가 쏟아졌다.
무대로 내려가 아내에게 향했다.
서연이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런 아내를 꼬옥 안았다.
동생들도 하나둘 날 안았다.
오늘은 평생 잊지 못할 밤이었다.
* * *
깐느에서 하루를 더 보냈다.
동생들 커플과 우리 방에서 놀고 있었다.
모두 늘어져서 리뷰나 평론을 보고 있다.
칸영화제가 폐막하자 리뷰와 평론이 수없이 쏟아져 나왔다.
영화제 측에서 리뷰와 평론을 막았던 모양이다.
평론을 읽어 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심사 결과에 영향을 주거나, 결과가 예측될 수 있으니 후계자에 대한 리뷰와 평론을 자제해달라고.
놀랍게도 평론과 리뷰는 정확히 내 의도를 짚어내고 있었다. 내가 그들의 영화적 경험과 지적 수준을 무시했던 거지. 내가 넌지시 드러내거나, 숨겼던 것들을 찾아내어 자랑이라도 하듯 평론에 적고 있었다.
<영화 후계자. 재벌가에 대한 풍자라는 껍데기를 쓴, 신과 인간에 대한 영화. 놀랍기 그지없다.>
<인간의 구원을 이야기하는 후계자. 그 놀랍고도 정밀한 은유들을 발견하는 재미.>
<후계자. 재치 발랄한 코미디 아트.>
<최신성 감독은 드디어 인간에 대한 성찰을 넘어 신과 인간의 교감에 대해 접근했다. 신을 상징화하여 인간의 삶을 이야기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과장된 코미디. 신랄한 풍자. 신비로운 연기. 놀라운 은유. 상징적인 미장센. 아름다운 앵글. 코미디마저도 예술로 승화하는 최신성의 위대한 마법.>
<최 감독은 최고의 작품을 만들었고, 여주인공 안서연은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다. 놀랍게도 이들은 부부다.>
<한국 상류 사회에 놀라고, 웃기지 않은데 웃음이 터지는 코미디에 놀라고, 코미디 속에 숨은 철학에 놀란다. 주요 부분에 두 번의 상을 주는 칸의 선택마저도 놀랍다.>
<안서연. 영화 역사에 남을 연기를 선보였다. 이렇듯 담담하고 정적이면서도 모든 것을 말해 주는 연기를 본 적이 없다. 이 위대한 배우를 아내로 선택한 최신성 감독. 이제는 최 감독의 천재성에 대해 더 언급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최신성 감독 최고의 영화. 바로 후계자다.>
<전 세계 영화팬들이여. 후계자를 보라. 최 감독 특유의 현상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신성한 힘이다. 그대들은 모종의 영감을 받게 될 것이다.>
<영화에 영적인 힘을 불어넣는 기적. 최신성 감독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이제는 그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인간인지 의심이 간다.>
수혁이가 말했다.
“이 평론 말대로 영화에 어떻게 영적인 힘이 들어가게 된 건지 의문이네요. 우린 그냥 영화를 찍었을 뿐인데.”
“그러게. 나도 영화 보다가 묘한 힘이 느껴졌거든요.”
“저도요. 정신적으로 성숙해졌다고 해야 하나?”
혁민이와 연희도 한마디씩 했다.
영화에 어째서 현상이 담기고, 그 현상이 효력을 발생시키는지는 나도 모른다. 영화의 주제를 깊이 파고 들어가고, 그 주제에 맞는 구성을 해서 그런 것 같다. 코어가 어떤 현상을 일으키도록 이끌었다고 봐야지.
코어가 갈수록 진화하니 별일이 다 생긴다.
치유를 하고 쾌감을 주더니 영적인 힘까지.
코어에 영적인 능력이 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내가 의도한 것이 코어의 힘으로 작용하면서 영화에 스며들어 갔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코어에 대해 다 아는 것이 아니니까. 그래서 일부러 진화를 늦추고 있는 거고.
건하에게 물었다.
“황금종려상 받는 거 너희는 알고 있었어?”
“예. 혁민이가 알려줬어요. 주최 측에서 시상식 전까지 영화를 판매하지 말고 좀 기다려 보라고요 했다네요.”
혁민이가 웃으며 말했다.
“심사위원장 알레한드로 감독과 친해요. 코미디 영화로 싸게 팔릴까 봐 미리 귀띔을 해 주더라고요. 아무래도 상을 받으면 판권 가격이 다르니까요.”
“황금종려상이라고 하진 않았을 텐데.”
“사람의 어감이라는 게 있잖아요. 감독상이나 심사위원대상일까 싶었는데, 베니스보다는 큰 상을 줄 거라고 봤죠. 베니스에서 3관왕 전례가 있으니 파격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고요. 그러면 형수님이 여우주연상 받고, 형님은 황금종려상이죠.”
수혁이가 낄낄댔다.
“하여간 잔머리 하나는 알아줘야 돼.”
“잔머리라니! 내가 두뇌와 말발 하나로 네오스타 부사장까지 오른 사람이야.”
“게임 폐인이 많이 컸다.”
“게임 장인이 되었지.”
“하하하.”
동생들이 음료수를 마시며 웃었다.
건하가 말했다.
“다들 신성이 형 안 만났으면 이렇게 번듯하게 살 수 있었을까 싶네요. 저만 해도 옥탑방에서 폐인으로 살았는데.”
그 말에 동생들이 갑자기 울컥했다.
희진이도 옥탑에 살았다. 그때 생각이 난 모양이다. 그녀가 눈물을 쏟자 동생들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런 동생들의 손을 여친들이 잡아 주고.
아내도 내 손을 잡아왔다.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리연이는 내 품에 안기고.
윤건하. 양수호. 최수혁. 권혁민. 유희진. 그리고 서연.
사람의 인연은 결코 가볍지 않다.
전생에 어떤 깊은 연이라도 있었을까.
가로수 길에서 서연을 처음 만났을 때.
인연 이상의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건하를 만났을 때도 그랬고.
수호는 이름처럼 내 수호자가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수혁이와 혁민이, 희진이는 이력서만 보고 강한 감이 느껴져서 내가 개인적으로 뽑은 친구들이고.
코어가 이들의 성품을 본 것은 물론, 지금까지 이르게 될 미래도 본 거였다. 더 먼 미래까지.
“그래서 다들 혁민이 주장을 믿고 칸까지 달려왔다는 말이야? 내가 수상하는 걸 보려고?”
“다른 상도 아니고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인데 소식만 들을 수는 없죠. 만사 제쳐 놓고 와야지. 나만 여자친구가 없어서 괜히 왔다는 생각도 들고.”
혁민이 말에 다들 웃었다.
녀석만 여자친구가 없다. 마음먹으면 할리우드 배우도 만날 수 있는 놈이다. 네오스타 여직원들에게는 최고의 신랑감이고.
“건하 부부는 바르셀로나로 갈 거지?”
“네. 바르셀로나에서 3일 있다가 런던으로 가려고.”
“연희야, 우리도 갈까?”
“나야 좋지.”
수혁이도 여친에게 말했다.
“우리도 좀 더 있다가 갈까?”
“오빠 좋을 대로.”
두 커플은 결혼이 코앞이다.
내 비서들이라 출근에 매여 있지도 않고.
수혁이가 말했다.
“나 축구광이거든. 영국에 한번은 가 보고 싶었어.”
“어? 나도 축구팬인데.”
수호가 반가워했다.
“수호 형은 어떤 팀 좋아하는데요?”
“나, 바르셀로나. 넌?”
“전 리버풀요. 04-05시즌 챔피언스리그 AC밀란과 결승전 때 정말 울면서 봤습니다. 지금 성적은 좀 그렇지만.”
“캡틴 제라드가 있을 때지. 이스탄불의 기적.”
수혁이가 정말 반색한다.
잊지 못할 인생의 추억인 모양이다.
수호가 이어 말했다.
“건하야. 너희 신혼여행에 방해 안 할 테니까, 바르셀로나 같이 가자. 바르셀로나 경기 한번 보고 싶네. 희진 씨한테 미안하지만.”
“난 상관없어. 희진인?”
“괜찮아요. 저도 축구 좋아하거든요.”
결국 혁민이를 뺀 동생들은 건하 부부와 함께 바르셀로나로 함께 가기로 했다. 이어 영국 리버풀까지. 리버풀에서 비틀즈의 발자취도 구경하고.
“혁민이 넌 필름 마켓 때문에 며칠 더 있을 거지?”
“그래야죠. 후계자 많이 팔아서 목돈 좀 챙겨야죠. 이거 여자친구라도 만들어야지, 여친 없는 놈은 서러워 살겠나.”
다들 웃으며 일어났다.
난 후계자 개봉 준비를 해야 하기에 귀국하기로 했다. 리연이가 12일간 이어진 호텔 생활로 지치기도 했고.
호텔에서 나와 다들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리연이는 동생 녀석들에게 꾸벅 절을 한다.
어디서 저런 건 배웠는지.
* * *
인천공항에 무수히 많은 사람이 나와 있었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을 때보다 더 많았다.
칸의 황금종려상이 정말 대단하다 싶다.
많이 피곤했던 터라 짧게 기자회견을 하고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하고 보니 정말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 말이 정답이지 싶었다. 긴장과 피로가 한 번에 풀리는 느낌이다.
아내는 칸영화제 트로피를 조심스레 진열대에 놓았다.
나와 서연이 그동안 받은 트로피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아래에는 부상으로 받은 시계와 반지 등이 있고.
나도 서연도 부상으로 스위스 명품 피아제 시계를 받았다. 베젤에 다이아몬드가 촘촘히 박힌 수동식으로 아주 심플하고 얇다. 정장용 시계인 모양이다.
아내와 함께 그 상들을 보고 있으니 뿌듯함과 함께 아련한 옛 기억이 밀려왔다. 아직 40대도 아닌데 말이지.
“배고프지? 바로 식사 준비할게.”
“아니야. 짐도 안 풀었는데 시켜 먹자.”
“그래.”
“일단 좀 쉬자.”
안방으로 가니 리연이가 침대에 대자로 누워 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나도 아내도 활짝 웃었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저렇게 곯아떨어졌을까.
나도 아내도 그런 리연이 옆에 누웠다.
금세 졸려 왔다.
모든 것이 꿈만 같다.
아내도 금세 잠에 빠진 것 같고.
우리 세 가족은 나란히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아무래도 긴 꿈을 꿀 것 같다.
정말로 세월은 그렇게.
기나긴 꿈을 꾸는 것처럼 흘렀다.
오랜 시간이었다.
* * *
똑똑똑.
잠결에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눈을 떴다.
서재 책상에서 졸고 있었나 보다.
“왜?”
“또 책상에서 잤어? 엄마가 식사하래!”
“알았어.”
“아빠!”
“아, 왜?”
“또 잘 거지? 오늘 내 영화 개봉한다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우리 딸 입봉작 개봉하는 날이지!
마른세수를 하고 서재에서 나갔다.
아내가 점심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금도 배우로 활동하는 아내.
한 20년은 젊어 보여서 나이답지가 않다.
그녀가 날 보더니 웃는다.
“또 서재에서 주무셨어요?”
“봄도 아닌데 춘곤증이 있네.”
“여보. 책상에서 주무시면 몸 상해요. 서재에 침대 하나 놓아 드려요?”
“아니. 잠시 졸았던 거야. 밥 먹자.”
세 가족이 식탁에 앉았다.
늘 손님이 많이 오는지라 12인용 식탁이다.
딸아이가 밥 먹으면서 하품을 했다.
“어제 뭘 했는데 그렇게 하품을 해?”
“잠을 못 잤어. 너무 떨려서.”
“그래. 아빠도 작가 입봉작 때 잠 못 잤다.”
아내가 아이에게 말했다.
“넌 연기할 때도 안 떨더니.”
“연기하곤 다르지. 감독이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데.”
“밥 좀 시원시원하게 먹어라. 깨작깨작 그게 뭐냐?”
“아휴… 아빤 날이 갈수록 잔소리만 늘어.”
“리연아, 아빠한테.”
“죄송해요.”
리연이가 수저로 밥을 퍼먹었다.
반항하는 건 꼭 날 닮아 가지고.
얄밉기는 하지만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이다.
나와 아내를 반반씩 닮은 것도 묘하고.
딸아이는 미국에서 절반. 한국에서 절반 살았다.
18살 때 미국 명문대에 입학하여 영화 연출을 전공했다. 부전공으로 연기도 공부했고.
이후 본인이 쌓은 인맥으로 할리우드 영화에 배우로 출연하더니 한국에 와선 영화사 연출부에 들어갔다. 할리우드 제작 시스템은 잘 알고 있으니 한국 영화를 배워야 한다면서.
나와 아내는 일절 도움을 주지 않았다.
본인도 ‘오리진’라는 가명으로 활동했다.
아직 대중은 우리 딸인지 모른다.
리연이는 인형처럼 예쁜 외모에 몸매도 뛰어났다. 미모 때문에 늘 선입견을 받다 보니 홧김에 연기에 도전했다. 그런데 덜컥, 할리우드 감독 눈에 드는 바람에 출연까지 했다네.
“아빠, 엄마랑 가면 네 정체가 들통 날 텐데?”
“아빠, 엄마가 변장하면 되지.”
“네가 변장하면 안 돼?”
“난 언론시사회 해야 하는데 변장을 어떻게 해.”
“리연아. 아빠 농담하시는 거잖아.”
“아빠! 농담 좀 진지하게 하지 마!”
“알았다.”
“풋!”
아내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서연의 웃는 모습은 젊을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리연이 웃은 모습도 아내랑 빼다 박았고.
밥을 다 먹고 난 뒤 아내와 딸과 함께 산책 나갔다.
멀리서 30대 부부가 웃으며 인사를 했다.
저택 관리인 부부다.
12년 전에 이곳 용인에 새집을 지었다.
한국 사람들은 우리 집 일대를 최신성 타운이라 부른다.
우리 집과 비슷한 저택이 큰 원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6시 방향에 우리 집. 8시 방향에 건하네 집. 10시 방향에 수호네 집. 1시 방향에 수혁이네 집. 4시 방향에 혁민이네 집. 멀지 않은 곳에 지성이네와 연로한 부모들 집이 따로 있다.
이 다섯 가족의 집 가운데에는 밭과 아이들이 뛰어노는 공원이 있다. 부지가 매우 넓어서 골프용 전기차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저택 관리인들도 다 따로 있고.
아내와 딸이 양옆에서 내 팔짱을 꼈다.
산책을 할 때면 늘 이런 모습이다.
“리연이 너. 입봉한 뒤에 로큐에 들어올 생각이지?”
“아니. 아빠 회사에서 영화 찍을 생각 없어. 네오스타에서 할리우드 영화 찍으면 몰라도.”
“아빠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할 텐데 어떻게 생각해?”
“뭘 어떻게 생각해. 내 돈도 아닌데.”
아내가 부드럽게 웃었다.
아이가 반듯하게 커서 참 다행이다.
슬쩍 떠보는 걸 눈치챈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영화는 언제까지 찍고 싶어?”
“아빠처럼 평생.”
“결혼은 안 하고?”
“생각 없어. 아빠 엄마랑 계속 살 거야.”
“쯧쯧. 28살이 되도록 모태솔로라니.”
리연이가 날 흘겨보았다.
“아빠까지 나 놀릴 거야?”
“넌 예쁜 애가 왜 남자를 못 사귀는 거야?”
“남자들이 접근을 못 하는데 어떡해. 그럼 내가 고백이라도 해야 해?”
“호감을 보여야 남자들이 용기를 내지.”
“호감이 보여 줘도 마찬가지라니까. 하여튼 남자들은 겁이 많아. 그냥 느낌 좋은 사람이 고백해주면 슬쩍 넘어가 줄 텐데, 난 당연히 남자가 있는 줄 알아.”
“네 눈이 높은 거지.”
“아니라니까. 꽃미남 배우들도 내 눈을 못 쳐다본단 말이야. 연기하다가도 나랑 눈이 마주치면 말을 막 더듬고.”
“하하하하!”
신은 확실히 불공평하다.
아이가 나와 아내를 반반씩 닮았는데.
하필이면 내 영화적 재능과 아내의 미모를 물려받았다.
내가 리연이 또래였으면 아이 말대로 말 한번 못 붙여 봤을 성 싶다. 미국 명문대와 할리우드 배우 출신에 미모의 영화감독. 게다가 초대형 기업의 2세라는 소문까지 났다.
남자들이 무서워할 만도 하지.
말끔한 정장 차림의 남자가 다가왔다.
“회장님. 시간 다 됐습니다.”
“리연이 먼저 극장에 데려다 주게.”
“알겠습니다. 가시죠, 아가씨.”
“성우 오빠. 아가씨가 아니라, 오 감독.”
“네. 오리진 감독님.”
“아빠, 늦지 말고 와야 해.”
“그래.”
아이가 차고로 갔다.
아이는 구형 미니 쿠페를 타고 먼저 나가고, 그 뒤에 경호팀 직원이 탄 차량이 몰래 따른다. 리연이는 그냥 평소에 입고 다니는 그대로 시사회에 갈 모양이다.
집으로 들어갔다.
안방에 들어가 아내가 골라 주는 옷을 입었다.
그냥 관객으로 가는 것이니 캐주얼한 옷으로.
거울을 보았다.
겉모습만 보아선 아직 40대 후반 같다.
요즘 세상에 62세가 어디 노인 축에나 드나.
거울을 보고 있으니 갑자기 뭉클해졌다.
세월이 어느새 이렇게 흘렀네.
난 그동안 잘 살았던가.
“여보. 그동안 나, 잘 살았지?”
아내가 미소를 보였다.
“한 30년 후에나 그런 말씀 하세요.”
“그렇구먼.”
“여보. 이번 청룡영화제가 당신 특집이래요.”
“벌써 그걸 하면 어떡해?”
“리연이가 우리 딸이라는 거 아는 거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지. 당신 닮았으니까.”
“영화제에서 무슨 이벤트라도 하려나 보네.”
아내가 미소 지으며 내 팔짱을 꼈다.
차고로 향했다.
과연 딸아이의 입봉작은 어떨까.
국경의 끝 개봉 때가 생각난다.
작가 입봉작인 그 영화 개봉할 때 어찌나 설레던지.
우리 리연이 첫 영화.
부디 잘되어야 할 텐데.
* * *
오랜만에 극장 나들이를 했다.
나이가 들고 보니 이전처럼 매년 영화를 찍긴 어려웠다.
할리우드 영화는 4년에 한 편은 찍고 있고, 한국 영화는 2년에 한 편 정도 찍는다.
돈은 이제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 그저 아직도 건재한 열정으로 영화를 찍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가 곧 관객이 좋아하는 영화다. 아직 대중의 감각을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겠지.
극장에 도착하자 경호팀이 표를 끊어서 내게 건네주고는 물러났다. 젊었을 때는 경호가 붙는 것이 불편했는데 지금은 편해졌다. 11년 전부터 그랬다.
로큐가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는데, 그 기업의 명예회장이라는 자가 경호도 없이 돌아다니면 직원들만 스트레스받지 않겠나. 로큐 대표이사인 지성이가 하도 잔소리를 해서 지금은 편하게 경호팀 도움을 받으며 지낸다.
내가 유난 떠는 걸 싫어해서 경호팀도 근접 경호는 안 하고 늘 10미터 이상 떨어져서 경호한다. 대한민국에서 내 얼굴 모르는 사람도 없고, 내가 이 사회에 할 수 있는 건 대부분 했던 터라 존경받고 산다. 해코지하는 사람도 없고.
11년 전이었나.
유명세를 타고 싶었던 정신질환자가 날 기습한 적 있었다. 그 사고 때 날 보호해 준 이들은 일반인 청년들이었다. 그때 내가 한국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지 알게 되었다. 경호팀이 생긴 것도 그 무렵이고.
우리 부부가 극장에 들어가자 관객이 인사를 해왔다.
“최 감독님. 요즘 건강하시죠?”
“네. 고마워요.”
“여전히 아름다우세요.”
“고맙습니다.”
관객이 웃으며 우리 부부에게 예를 표했다.
사진을 찍자거나 사인을 해달라거나 하는 분들은 없다. 지난 세월 동안 우리와 대중이 교감한 결과라고 할까.
좌석에 앉았다.
세상이 많이 변해서 요즘 젊은이들의 영화는 내가 젊었을 때 영화와 많이 달라졌다. 캐릭터나 배경 설명 없이 바로 이야기로 들어가 버린다. 장면전환과 전개도 너무 빠르고.
그럼에도 관객은 영화를 이해하고 감정이입도 한다.
사실 이건 내가 했던 구성방식이다. 그걸 젊은 영화인들이 자신의 색깔로 변주하고 응용하면서 이런 빠른 전개가 가능해졌다. 관객도 영화의 변화를 함께했기에 디테일한 설명이 없어도 이해가 빨라졌다.
소재도 내가 젊었을 때와는 천양지차다.
황당무계한 이야기나 한국 판타지에 아무런 저항감이 없다. 내 영화 ‘이동원’을 개봉했을 때만 해도 평행차원과 좀비 소재에 저항이 무척 컸는데 말이지.
리연이 입봉작도 그렇다.
사회의 버림을 받고 학대까지 받은 25살 청년이 국가 권력을 상대로 싸우는 영화다. 홍길동의 재해석이라고 할까.
영화 레저 이후 악인이 주인공인 영화가 수도 없이 나왔다. 그런 탓에 관객도 악인인 주인공을 통해 마음껏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여 대리만족했다.
레저 때는 악행과 양심 사이의 균형감을 맞추지 못해 다른 감독들이 그런 영화는 엄두도 못 냈다. 지금은 ‘연구’가 잘되어서 젊은 감독들도 잘 만든다.
민망하게도 전 세계 영화계에서는 내 모든 영화를 교과서로 삼아 분석하고 연구해 왔다. 그러한 교육과 훈련을 받은 이들이 지금의 젊은 감독들이고.
곧 영화가 시작되었다.
도입부부터 화려하기 짝이 없다.
컷 분할이나 연결, 액션 장면 등이 상당히 빠르다.
나야 현역 감독이니 시대의 흐름과 유행을 잘 알고 있지만, 우리 세대 관객은 따라가기 버겁다. 영화관에 잘 가지도 않지만. 아내는 그래도 딸이 만든 영화라 재밌게 보는 것 같다.
아무래도 내가 감독이다 보니 눈에 거슬리는 건 있다.
딸아이는 영화 연출 공부를 해서 그런지 스토리텔링에 단점이 좀 보였다. 감정을 좀 더 고조시켜야 하는데, 맥점에서 자꾸 감정을 끊어 버린다.
젊었을 때 오기성 감독을 닮았다.
하기야 요즘 감독들이 죄다 그렇기는 하다만.
관객부터가 킬링 타임으로 영화를 보는데 어쩌랴.
아무튼 요즘 영화는 수준이 좀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할리우드도 그렇고, 한국영화도 그렇고.
젊은 층은 영화가 원래 그렇게 가벼운 줄 알고 있고.
딸아이 입봉작인데 많은 걸 바라면 되겠나.
가능성은 보였으니 됐다.
본인이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녹아든 것을 보니, 예술적 감각도 있는 것 같다.
사회 비판과 풍자가 담긴 리연이의 액션 영화가 끝났다.
첫 작품으로 작가주의 영화를 할 줄 알았더니.
관객과 소통하려는 마음가짐이 좋다.
관객들은 빠져나가고 기자들만 남았다.
요즘은 시사회는 따로 하지 않고 개봉 날 간담회를 한다.
아이가 무대에 오르더니 인사했다.
떨리는 기색이 역력하다.
“안녕하세요. 신인 감독 오리진이라고 합니다.”
기자들이 제법 호감을 보인다.
신인 감독 영화는 대개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는데, 입봉작이 제법 괜찮았던 모양이다. 아이가 예뻐서 그럴 수도 있고.
리연이가 일부러 우리 쪽은 보지 않았다.
기자들이 혹 눈치를 챌까 봐.
딸아이가 기자들 질문에 제법 대답을 잘하고 있었다. 자신만만한 태도와 초롱초롱한 눈빛. 기자들의 질문 수준이나 태도를 보면 유망주가 나왔다고 보는 것 같다.
“오리진 감독님. 세간에 감독님이 로큐와 관련이 있다는 말이 떠도는데, 그 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네? 로큐요?”
리연이 눈이 흔들렸다.
날 슬쩍 보려다 얼른 시선을 돌렸다.
기자들도 우리 부부가 온 것을 알기에 딱히 이상하게 보지는 않았다.
“전 로큐와 관계없어요.”
“사실인가요?”
“그럼요. 관계가 있다면 로큐에서 영화를 제작했겠죠.”
“그렇긴 하네요.”
얼추 지혜롭게 넘어가는 딸이다.
로큐와 관계가 없다는 말은 맞다.
우리 딸이지 로큐 소속은 아니니까.
“이제 갑시다.”
“네, 여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제야 딸아이가 우릴 보았다.
그 짧은 순간 아이에게 윙크를 해 보였다.
리연이 픽! 하고 웃음을 짓다가 정색했다.
기자들은 뒤를 돌아보고.
우린 모른 척 극장에서 나갔다.
“중국 요리나 먹으러 갈까.”
“당신 입봉작 개봉했을 때 같네요. 그때도 제니스 멤버들이랑 중국집에 갔었잖아요.”
“그랬지. 간담회 끝나면 리연이를 불러야겠어.”
“그러세요.”
아내와 용산 거리를 걸었다.
수많은 행인이 우릴 보곤 넙죽 인사를 한다.
“감독님, 안녕하세요.”
“네, 반가워요.”
“와! 감독님을 이런 곳에서 다 보네요.”
“예. 하시는 일 다 잘되시길 바랍니다.”
“감독님. 저 10년 전에 펀딩했던 사람이에요!”
“아이고, 반갑습니다.”
만나는 사람들이 웃으며 인사를 하는 이유가 있다.
영화 펀딩이나 청년 재단 등. 직간접적으로 내 덕을 조금이나 본 사람들이 수백만 명이나 된다. 청년 재단은 세계 180개국에 지부가 있을 정도로 세계적인 공익재단이 되었고.
오죽했으면 내가 한국의 종신 대통령이라는 말까지 있다. 정치, 경제, 문화 등 내 영향이 안 미치는 곳이 없는지라. 그래서 대중이 우리 부부를 대통령 보듯 한다.
경호팀이 다가왔다.
“회장님, 사모님. 찬바람이 좀 붑니다.”
“목도리나 하나 주게.”
“네.”
경호팀장이 코트와 목도리 둘 다 들고 있었다.
날 11년이나 경호한 터라 척하면 척이다.
한적한 용산 길을 걸었다.
마침 가는 방향에 로큐 본사가 있다.
“회사에 한번 들러야겠어.”
“직원들 불편하게 왜요?”
“딸아이 영화나 좀 보라고.”
“누가 딸바보 아니랄까 봐.”
손짓을 하자 곧장 차가 왔다.
그 차를 타고 회사로 향했다.
8년 전에 로큐 본사를 옮겼다.
68층짜리다. 주변에는 계열사들이 즐비하고.
본사 건물로 들어가자 보안요원이 경직된 자세로 인사를 했다. 오가는 직원들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 급히 인사하고.
콘텐츠 부분 사장인 영진이가 뛰어나왔다.
제니스와 아내 로드매니저를 하던 그 친구가 이젠 머리가 희끗희끗해졌다.
“회장님. 연락도 없이 웬일이세요?”
“그룹은 잘 돌아가나?”
“그럼요. 제가 모시겠습니다.”
“괜히 알리지 마. 업무에 방해되니까.”
“제가 형님 모신 지 몇 년인데 모르겠습니까.”
“회사 상황은 어때?”
“올해 영업이익은 간신히 10조 넘을 것 같네요.”
“벌써 그렇게 되나?”
“작년보다 적습니다. 관심 좀 가지세요.”
“그래. 하하하.”
로큐는 현재 초대형 기업이 되었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 영화 체인이 있고, 영상 서비스와 관련한 제조업만 20개가 넘는다.
지금은 극장에서 스크린으로 영화를 보지 않고 초고화질 디스플레이로 본다. 사운드도 과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발전했다. 3D 홈시어터도 이제는 텔레비전처럼 흔해졌고.
그와 관련한 모든 장비를 로큐에서 만든다.
영화용 디스플레이. 3D VR 기어. 스피커.
다양한 특수 카메라. CG용 프로그램과 엔진.
그리고 영화 촬영에 필요한 모든 장비.
전 세계로 수출하고 있다.
영화인들이 로큐 제품으로 영화를 찍고, 극장이든 일반 가정의 홈시어터든 모두가 로큐 제품으로 영화를 즐긴다. 영화를 보는 시대가 아니라 체험하는 시대로 바뀌었기 때문에.
영진이에게 말했다.
“리연이가 영화를 제법 잘 만들었더라고.”
“안 그래도 직원들이 단체로 관람할 예정입니다. 지시한 게 아니에요. 자발적으로 보겠다고 하더군요.”
“직원들이 눈치챘구먼.”
“형수님과 판박인데 모를 수가 있겠습니다. 눈매도 형님을 쏙 빼닮았고요.”
“그렇구먼.”
“형님. 그러지 말고 이제 공개하세요. 리연이는 금수저라고 욕 안 먹습니다. 형님이 그동안 이 사회에 해주신 게 있는데 누가 욕을 합니다. 오히려 기업 경영 안 하고 영화를 해서 기특하다고 생각할 텐데요.”
“거 봐요. 제 말이 맞죠?”
안 그래도 아내가 늘 하는 말이다.
리연이가 우리 딸이라고 밝혀도 욕먹진 않을 거라고.
그래. 아이가 제힘으로 영화를 찍고 개봉도 했으니 이제는 알려도 될 것 같기는 하다.
경호팀이 다가왔다.
“회장님. 아가씨께서 극장에서 나오신답니다.”
“그래. 중국집에 가지. 자넨 수고 좀 해 주게.”
“형님. 리연이 잘할 겁니다. 누구 딸인데요.”
“고맙구만.”
아내와 함께 중국집으로 향했다.
* * *
아이와 함께 중국음식점에 왔다.
리연이가 허겁지겁 짜장면을 먹었다.
“천천히 좀 먹어라.”
“아휴… 아빠는 그동안 기자 간담회를 어떻게 한 거야? 기자들이 곤란한 질문할까 봐 엄청 긴장했네.”
“처음은 원래 그래. 대답은 잘했고?”
리연이가 씨익 웃었다.
“잘했지. 나도 아빠처럼 작가주의 영화부터 시작할 걸 그랬나? 상업영화라고 은근히 무시하더라고.”
“작가영화는 자리 잡고 해도 돼. 지금 필요한 건 네 인지도와 작품성이 먼저다. 제작비도 필요하고.”
“맞아. 돈부터 벌어야 돼.”
“네 제작사를 차리는 건 어떠냐?”
리연이가 기가 차다는 듯 날 보았다.
입에는 짜장을 잔뜩 묻히고.
어릴 때 모습 그대로라 웃음이 났다.
“아빤 내가 금수저 소리를 들어야 속이 시원하겠어?”
“사실을 아니라고 할 수는 없잖아?”
“그럴수록 내 힘으로 자립해야 한다고. 아빠가 워낙 존경받는 사람이라 몇 푼 받아도 욕은 안 먹겠지만, 영화를 쉽게 만들게 되면 나도 게을러진단 말이야. 아빠한테 손 벌리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욕먹게 되는 거고.”
아내와 함께 웃었다.
어쩜 이렇게 잘 알고 있는지.
기특해서 다 큰 딸내미한테 뽀뽀라도 해 주고 싶다.
사실 내 앞에서나 어린 척을 하지 현장에서나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는 포스가 넘친다고 들었다. 예뻐서 남자들이 겁을 먹는 게 아니라, 카리스마 때문이다. 아내를 닮은 거지.
“리연아. 감독으로서 조언 하나 할까.”
“뭔데? 시행착오는 줄일 수 있을 것 같네.”
우리 딸이 이렇게 똑똑하다.
물질적인 도움과 영화는 다른 거지.
“넌 시나리오가 조금 부족해. 요즘 영화 스타일을 아빠가 모르는 바는 아니다만,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인간의 감정은 바뀌지 않아. 요즘 스타일대로 하되, 감정을 차곡차곡 쌓는 것은 잃으면 안 된다.”
“나도 알아. 초보라서 잘 안 되는 거지. 더구나 아빠는 세계 최고의 감독인데, 아빠 눈에 찰 리가 있나. 안 그러면 내가 아빠를 넘어서는 희대의 천재게?”
딸의 말에 아내가 웃었다.
난 또 아이가 모르는 줄 알았지.
그래. 이론은 알아도 적용이 힘든 게 창작이지.
서두를 것 없다. 딸아이는 이제 시작이니까.
나처럼 아이에게 코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 코어.
7년 전에 일종의 만렙을 달성했다.
코어가 계속 진화하면 어찌 되나 싶었다.
다른 변화는 없었다.
원래 가진 능력의 범위가 극으로 진화했을 뿐.
지금 미국에서 네오스타를 이끌고 있는 혁민이.
그 녀석에게 귓속말을 전할 수 있다.
누군가를 알아보고 싶다면 바로 내 눈앞에 보인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 모두.
이전에도 그랬지만 지인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안 한다. 미래를 안다면 사서 걱정하는 셈이다. 어떤 일이 있으면 코어가 감지하기 때문에 위험이 닥치면 내가 먼저 안다.
좀 과장하자면 ‘신’이 된 것 같다.
코어를 발동한 채 사람을 만나면 어디가 아픈지. 이 사람의 인생이 성공할지 실패할지. 일생에 몇 번 찾아온다는 대운은 언제 오는지. 이 사람의 기운과 맞지 않는 것은 무엇인지.
대번에 알 수가 있다.
여전히 내 대표작이라 불리는 후계자 때 징조가 있었다.
신과 인간에 대한 주제를 괜히 한 것이 아니었다.
영적 기운. 그게 정말 코어에 있었다.
코어는 물질 분석에서 점점 진보하여 정신 분석. 나아가 영적 분석까지 진화해 나갔던 것이다. 해서 기운이 몹시 나쁜 사람이 있으면 간접적으로 조언을 했다.
오래전 캄보디아에서 만난 노인.
그 노인은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었다. 수많은 사람의 흥망성쇠와 생로병사를 보며 삶의 진리를 깨달은 거였다.
인간은 원래부터 공평하다. 늘 운이 좋은 사람도, 늘 불행한 사람도 없다. 부자라고 다 행복할 것 같은가. 물질적인 풍요가 행복의 잣대가 될 수는 없다. 지금 고생한다고 인생 내내 그럴 거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고.
긍정적인 마인드. 자신감 있는 태도.
웃는 얼굴. 착한 마음. 성실한 자세.
넓게 보고 깊게 보고 멀리 보는 눈과 가슴.
이런 사람들은 미래가 좋다. 지금 당장 힘들고 절망에 빠져 있어도 이런 긍정적인 것들을 잃지 않는 사람들은 장차 큰 운이 찾아온다. 자신을 믿고 묵묵히 적성에 맞는 일을 하는 사람은 찾아온 운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만다.
우주 만물은 기운의 흐름으로 둘러싸여 있다. 밝은 기운은 밝은 곳으로 향하는 법이다. 식물에 욕을 해대면 시들어 죽는다. 좋은 말만 해주면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사람의 기운도 그와 같다.
다행히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에게 맞는 일을 하면서 산다. 사람은 누구나 코어를 가지고 있다. 직감 혹은 직관 형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 적성에 맞는 것. 좋아하는 음식. 싫어하는 음식. 그러한 취향과 호불호가 바로 코어의 영향이다. 원래 우리가 가진 뇌의 잠재능력이다.
그러니 당장 힘들지라도 좋아하는 일과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면 언젠가 풀릴 날이 온다. 의심할 필요가 없다.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일을 하고 살아야 운으로 작용한다.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자신과 맞지 않는 일을 해서 번 돈은 나중에 사라지고 만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자신과 맞아야 자신의 주변에 남는다. 이게 자연의 순리다.
살면서 공연히 느껴지는 강한 호감.
이건 코어가 주는 신호다.
자연의 순리가 주는 이 선물을 무시하지 않아야 좋은 일이 생긴다. 사람이든 일이든.
“아빠 무슨 생각해?”
“네 영화. 흥행할 것 같다.”
“정말? 와!”
리연이가 정말 좋아한다.
내가 빈말 안 하는 걸 아이가 잘 아니까.
* * *
턱시도를 입고 대형 거울 앞에 섰다.
아내도 리연이도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었다.
세계 유명 디자이너들이 만들어 준 옷들이다.
“아빠, 이제 가야 돼. 영화제 시작 20분 전이야.”
“너 먼저 가 있거라.”
“알았어요.”
리연이가 호텔 룸에서 나갔다.
로큐 본사 바로 옆에 있는 로큐 호텔이다.
그 옆에 한국 최대 규모의 공연장이 있는데 그곳에서 청룡영화제가 열린다. 백상도 거기서 열리고, 아카데미 시상식도 2번이나 거기서 열렸다.
아내와 함께 호텔 룸에서 나갔다.
호텔 입구에 롤스로이스가 있었다.
아내와 내가 타자 차가 미끄러지듯 로큐 아트홀로 향했다.
아트홀에 차가 멈췄다.
우리가 내리자 엄청나게 많은 플래시가 터졌다.
관중이 몇만 명은 모인 것 같다.
한국의 영화제에 취재하러 온 각국의 기자들만 천 명이 넘는다고 들었다. 폭이 20미터나 되는 3중 계단 왼쪽에는 전 세계에서 찾아온 배우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아내도 놀랐다.
모두 나와 함께 영화를 찍었던 이들이다.
미국에서, 중국과 일본에서 온 슈퍼스타들이다.
차에서 내리자 폭포수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워낙 거물이 많이 와서 그냥 걸어 올라갈 수가 없었다.
원로 배우 송강석 선배와 황정우 선배.
이젠 꽃중년이 된 건하. 대학생 아들과 함께 왔다.
세계적인 감독이 된 수혁이도 아내와 함께 왔고.
네오스타 대표인 혁민이도 왔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초대형 거물이다.
지성이도 아이돌 가수로 활동하는 조카와 함께 왔다.
로큐 계열사 대표이자 액션 배우가 된 수호도 왔다.
김판수 로큐 멀티플렉스 회장도 왔고.
이젠 상업영화 감독인 오기성도 보인다.
모두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어제 다들 만나 술을 마셨는데 인사를 하자니 좀 멋쩍다. 오기성은 내 유일한 친구다. 딸아이가 저 인간 영화의 조감독도 했었고.
사토와 미와도 왔다.
둘 다 여전히 활동한다는 게 놀랍다.
내 할리우드 영화에 자주 출연한 덕도 있겠지만.
조상미. 오천일. 박승철. 김영석 선배.
네 감독 모두 할리우드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네오스타 자회사 전속이라서.
네오스타는 할리우드 최고의 스튜디오가 되었다. 미국 공중파 방송사와 극장체인을 가지고 있고, 영화 제작 자회사가 5개. 드라마 제작사와 영상 플랫폼까지 보유했다.
네오스타가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했는데 그날부터 난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되었다. 내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나도 모른다. 세계 5위 안에 든다고 하니 한 70조 되려나.
첫 번째 계단참에 올랐다.
이번엔 할리우드 배우들이 잔뜩 왔다.
먼저 제이슨. 아직도 네오스타에서 영화를 찍고 있다.
부인과 장성한 아들딸이 함께 왔다.
제니퍼 로렌스와 리즈 위더스푼도 왔다.
그녀들과 함께 찍은 여성 악당 사기극 영화도 초대박이 났다. 전 세계 여성들이 열광했던 영화다. 그 해에 아카데미 공동 여우주연상도 받았고.
내가 그동안 찍은 할리우드 영화가 16편이다.
블루드 워 세계관 영화만 7편이고, 나머진 예술성이 짙은 개별 영화와 블록버스터. 한국영화도 14편을 더 찍었다.
모든 영화가 흥행했다.
VR 신기술을 적용하여 찍은 개별 블록버스터는 할리우드 역대 신기록을 갱신했다. 블루드 워 3편보다 약 8,000만 달러를 더 벌어들였으니.
그간 아카데미 작품상만 5번 받았고, 깐느에서 황금종려상도 한 번 더 받았다. 청룡영화제와 백상에선 6번이나 받았고.
주연상 수상은 헤아릴 수도 없다.
아내도 베를린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6년 전에는 내 할리우드 영화에서 주연을 맡아 동양인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세계 3대 영화제에 이어 오스카까지 여우주연상을 받은 전무후무한 기록을 만들었다.
내가 마지막 계단에 오르자 늘어선 모든 배우와 영화인들이 모여들었다. 뭘 하지도 않았는데 눈물을 줄줄 흘리는 배우들도 있다. 내가 키운 스타들이다.
모두 함께 아트홀로 들어갔다.
큰 극장의 객석이 가득 찼다.
나와 함께 했던 영화인들이 모두 모여서 기립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슈퍼스타급이 안 되어서 저리 앉혀 놓은 건지.
마중 나온 수많은 배우와 함께 진행 요원의 안내에 따라 하나둘 자신의 자리에 섰다. 내가 앉을 때까지 계속 기립 박수를 칠 모양이다.
“다들 앉으세요.”
“싫어요!”
“하하하하하!”
한 여배우의 외침에 웃음이 터졌다.
날 보는 이들의 눈에 진솔한 감정이 보였다. 기립박수보다 더 나은 존경의 표현이 있으면 그걸 하고 싶다는.
나도 날 안다.
영화의 새로운 혁신을 일으키고, 영화 산업을 바꾸어 버렸으며, 모든 영화인의 우상이자 롤모델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기부활동을 하고 늘 국민 편에서 영화를 만들어 왔다는 점.
모인 이들은 진심으로 날 존경하고 있었다.
리연이가 한 말이 있다.
아빠는 인류의 스승이라고.
웃어넘겼던 그 말뜻을 조금 알 것 같다.
경외와 경이를 넘은 존경.
모인 이들의 박수와 눈빛이 그걸 말하고 있었다.
내가 앉자 모두가 착석했다.
외국인은 통역 이어폰을 착용하고.
곧 영화제가 시작되었다.
로큐에서 후원했는지 무대 행사가 무척이나 화려했다. 무슨 환갑잔치를 하는 것 같아 민망하기 짝이 없다.
놀랍게도 딸아이가 신인감독상을 받았다.
자기도 놀라서 횡설수설 소감을 말하고 내려왔다.
당황하는 모습까지 어찌나 예쁜지.
입을 헤 벌리고 보는 놈들은 내가 찍어 놨다.
시상 도중에 공로상을 주던가, 아니면 내 영화 역사를 보여 주던가 할 줄 알았는데, 작품상까지 곧장 갔다.
수상자가 주인공이어야 하는데 미안하게 말이야.
곧 혁민이가 무대로 올라왔다.
“모든 시상이 끝났군요. 이번 청룡영화제에서는 최신성 감독님의 특별 회고전을 준비했습니다. 최 감독님이 아직 정정하셔서 좀 이른 감이 있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하하하하!”
정정하다니!
혁민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최신성 감독님은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기록을 만들어 오셨죠. 수많은 영화의 현상을 만들어 내셨고, 숱한 영화 기술도 개발하셨고요.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공로와 업적을 세우기도 하셨습니다. 한 손에 다 꼽기도 어렵네요.”
혁민이가 좌중을 둘러보았다.
무대 뒤 화면에는 나와 객석이 나온다.
여배우 일부는 눈물을 펑펑 쏟고 있다.
내 옆에 앉은 아내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왜들 벌써 이러는지.
혁민이의 말이 이어졌다.
“여러분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가 얼마나 위대한 일을 해냈는지. 그가 인류에게 미친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 그리고 인류가 최신성 감독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겪었는지 말이죠. 지금부터 최신성 감독님이 이루어 내신 영광의 길을 따라가 봅시다. 눈으로 보지 말고 가슴으로 봅시다. 그래야만 위대한 인류의 스승이 걸어온 발자취를 보시게 될 겁니다.”
무대 쪽 대형 화면으로 영화가 나오기 시작했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들의 몽타주.
그 처음은 내 감독 입봉작 ‘아비도’였다.
배우 김강헌의 무덤덤한 표정.
미치광이 마을 주민의 광기 어린 연기.
이동원에서 좀비와의 치열한 전투.
이어지는 내 영화의 명장면들.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받는 순간과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는 순간. 영화 후계자 촬영 때 웃음바다가 되었던 메이킹 영상도 나오고.
내 영화들이 파노라마처럼 나오고 있었다.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복받쳐 올라왔다.
아내는 이미 눈물범벅이었다.
그녀가 내 손을 꼭 잡았다.
내 영화의 모든 것이 나오고 있다.
영화의 장면. 촬영 현장. 시사회. 수상 소감.
수만 명 앞에서 메가폰을 잡고 외치는 모습.
어린 리연이와 마당에서 장난치는 광경까지.
리연이는 아예 엉엉 울고 있다.
남자들은 눈가가 뜨거워졌고, 여자들은 울고 있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감동을 주는지.
다행이다 싶다.
내가 잘살아온 것 같아서.
내 인생의 파노라마가 끝났다.
“이어서 최신성 감독님의 소감을 듣겠습니다.”
무대에 오르자 객석의 모든 이들이 다시 기립하여 박수를 보냈다. 저마다 웃음을 띤 채 눈물을 흘린다.
마이크 앞에 서자 일동이 박수를 멈췄다.
앉지 않고 서서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앞으로 할 일도, 살아갈 날도 많은데. 벌써 이런 걸 하니 어색하긴 하네요. 그러니 나중을 위해서라도 짧게 한마디 하겠습니다. 그보다 먼저.”
수많은 눈이 날 보고 있었다.
“리연아, 이리 올라오렴.”
객석에서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눈물범벅이 된 리연이가 무대로 뛰어 올라왔다.
손을 활짝 벌렸다. 아이가 달려와 내 품에 안겼다.
그제야 아!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박수가 더욱 커졌다.
리연이가 우리 딸이라는 걸 그제야 안 듯.
소문이 사실이었다는 듯.
아내도 올라와 내 옆구리를 안았다.
그렇게 딸과 아내를 안은 채 말을 이었다.
“제가 만든 영화들과 여러 영상을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군요.”
객석이 다시 귀를 기울였다.
울컥 감정이 북받쳤다.
터질 듯한 검정을 억누르며 입을 뗐다.
“내 인생이… 영화였다. 라고요.”
힘찬 박수가 터져 나왔다.
다시 눈물을 보이는 아내와 리연이를 안았다.
눈 부신 빛이 우리 세 사람을 비추었다.
극장 안을 울리는 환호와 박수.
그 진심이 아련하게 들려온다.
내가 겪은 모든 것.
내가 했던 모든 일.
그랬다. 내 인생이 한 편의 영화였다.
<내가 영화다.>
내가 찍은 영화의 모든 것이었다.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