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6장 레저, 블루드 워 그리고 후계자 (54/56)

제6장 레저, 블루드 워 그리고 후계자

거나한 술판이 벌어졌다.

외국에선 호텔에서 샴페인을 마시며 영화제 뒤풀이를 하는데 한국에선 삼겹살에 소주다. 술집엘 가도 그냥 호프집.

이런 한국의 영화계 문화가 좋다.

넉살 좋은 배우들이 술병을 들고 돌아다니며 술을 따라주고 인사를 해 왔다. 오기성 감독과 함께 축하를 정말 많이 받았다. 다른 감독들도 나와 협업하고 싶어 하는 눈치다. 투자에 대한 근심 걱정이 없어서 그런 것도 있고.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감독이고 배우고 다들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분들이라 자존심도 강하고, 가볍지가 않다. 2류급 배우들이나 내게 잘 보이려고 아양 떨고 그럴 뿐.

어떤 남자를 좋아하면서 자기가 더 좋아하는 걸 들키지 않으려는 아가씨 같다고 할까. 눈인사만 했던 배우들이 자리를 옮겨 다니다 내 옆에 앉으면 슬쩍 차기작 이야기를 꺼내본다.

감독들도 마찬가지다. 로큐에서 자신의 작품을 연출하고 싶은 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스토리텔링에 강한 감독들은 오기성에게 그런 식으로 다가왔고.

그 바람에 나와 오기성 주변에 감독과 배우들이 잔뜩 몰렸다. 레저로 작품상과 남우주연상을 받은 이유도 있겠지만.

지금 찍고 있는 ‘후계자’에 대한 말도 자주 나왔다.

시나리오를 입수해서 읽어 보았는데 배꼽을 잡았다며.

감독들은 잔뜩 기대하는 눈치고, 배우들은 아쉬워한다.

후계자는 지금 배우들이 역할에 가장 잘 어울리기에 1순위로 시나리오를 보냈던 터다. 다행인지, 당연한 건지. 배우들은 시나리오를 보내자마자 오케이 했고.

다른 배우들에게는 기회조차 안 갔던 거지.

술이 좀 들어가자 술자리가 늘 그런 것처럼 모인 이들이 각자 술을 마시며 떠들어 댔다.

오기성이 술병을 들었다.

“고마워. 최 감독.”

“고맙기는. 다양하게 영화 만들어 보는 거지.”

“앞으로 내 작품 내가 쓴다는 오만을 버려야겠어. 라이터스 작가 그룹이 괜찮다던데, 그 친구들과 다음 작품을 시작해볼까 싶다.”

“흥행 승률이 상당히 높아. 예술적 감각도 좋고.”

“로큐 작가들에 비하면?”

“비슷해. 만능이라는 점에서도.”

“모든 장르를 다 한단 말이야?”

“작가는 원래 그래. 의뢰를 받으면 뭐든 써내는 게 작가거든. 나도 그랬고.”

오기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당신도 매번 다른 영화를 찍을 수가 있는 거구나. 상업과 예술을 넘나들면서. 그러더니 나중에는 그 경계를 넘어버리고.”

“그런 셈이지.”

청룡영화제의 밤이 무르익어 갔다.

1991년 청룡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정미희.

그녀의 수상 소감 그대로.

정말 아름다운 밤이다.

* * *

다시 후계자 촬영이 재개되었다.

이소룡처럼 노란 ‘츄리닝’을 입은 한류스타 김수형이 대기했다. 어리바리한 느낌과 뭔가 숨기는 느낌. 그리고 명석함이 공존하는 눈빛과 행동을 가진 역할이다.

영화에선 이름도 없이 그냥 양 씨다.

이 양 씨가 재벌가에 들어오면서 매일 사건 사고가 벌어진다. 해괴하기 짝이 없는 기행을 일삼고, 여주인공에게만 잘해주는 인물.

다시 식사 장면.

도입부 식사 장면과 판이하다.

회장 일가가 긴 식탁에 앉아 있고, 의자가 추가되었다.

회장이 수저를 들지 않기에 가족들도 아직 식사를 하지 않는다. 식사 하나에도 회장의 원칙이 있다. 모든 구성원이 아침 식사만큼은 함께 먹는 것.

“왜 이리 안 내려오는 게야?”

“회장님. 그자는 아직 가족이 아닙니다. 1분 1초가 바쁜 이 시간에 그자까지 이 식탁에 앉는 것은…”

차남의 말에 회장이 눈을 부라렸다.

그때 양 씨가 계단에서 터덜터덜 내려왔다.

“어머나!”

장남의 아내가 고개를 돌렸다.

서연도 ‘풋’ 웃음을 터뜨리며 시선을 돌린다.

양 씨가 팬티만 입은 채 배를 벅벅 긁으며 하품을 해댄다.

차남이 몰래 버렸던 똥 싼 팬티를 주워 입었다.

당연히 차남은 당황하고.

‘저 자식이 왜 그 팬티를 입고 있어?’ 이런 표정.

양 씨가 태연하게 식탁에 와서 앉았다.

“와, 반찬 많네. 매일 아침 이렇게 드슈?”

“흐흠.”

회장이 헛기침하며 눈치를 줘도 양 씨는 그냥 수저를 들고 밥을 먹는다. 아니 퍼먹는다. 김도 손으로 대충 집어서 밥에 싸서 먹고. 밥 먹으면서 ‘쩝쩝’대는 건 기본이고.

회장이 말했다.

“자네… 옷이라도 좀 걸치고 밥을 먹지 그러나?”

“가족끼리 뭐 어때요.”

“이봐. 누가 가족이라는 거지?”

장남이 화난 얼굴로 쏘아붙였다.

양 씨는 그러거나 말거나 고기를 입에 욱여넣고 씹는다. 서연을 뺀 나머지 일가는 몹시 당황스럽고 불쾌한 표정.

장남이 다시 말했다.

“이봐! 사람이 말을 하지 않나.”

“회장님. 이런 근본도 없는 친구가 저희와 형제일 수는 없지 않습니까? 회장님 핏줄이라면 아무리 생활이 궁핍해도 이런 날건달일 수는 없습니다.”

“흐흠.”

회장님은 다시 헛기침을 하고.

양 씨가 금세 밥 한 공기를 비우고 그릇을 들었다.

“아줌마. 밥 더 줘요.”

“네.”

밥그릇을 건네고 콧구멍을 후비는 양 씨.

그 모습을 본 회장 일가가 일제히 경악한다.

두 아이는 킥킥대며 웃고.

양 씨가 코딱지를 엄지와 검지로 조물조물 뭉치더니 식탁 아래에 스윽 붙인다. 회장 일가의 입은 더욱 벌어지고.

양 씨의 입이 떨어졌다.

“밥 안 먹고 뭘 그렇게 보셔?”

“회장님. 이 부랑자 같은 친구와 같은 식탁에서 밥 먹기가 괴롭습니다. 저 친구 밥을 따로 차려 주던가, 아니면 내보내셔야 합니다. 유전자 검사가 아직 나오지도 않았는데…”

“그만.”

“회장님!”

“잠깐만!”

양 씨가 말을 꺼내곤 앞으로 손을 뻗었다.

대화를 중지하라는 손 모양새.

일가가 일제히 양 씨에게 쳐다보았다.

뿌우우웅-

요란하게 방귀를 뀌는 양씨.

엉덩이에 부채질까지 한 뒤 다시 밥을 먹는다.

눈과 입과 콧구멍까지 벌어진 회장 일가.

눈알이 튀어나올 듯하다.

장남의 아내는 헛구역질을 하고.

“컷. 좋아요.”

“하하하하하!”

컷이 나오자마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방귀는 시나리오에 없다. 원래 트림하는 장면인데, 배우 김수형이 애드립을 한 거였다. 그걸 또 자연스럽게 받아내는 배우들이다.

“야, 수형아. 너 진짜.”

“나오는 걸 어떡해? 좀 과할까요?”

“괜찮아. 감독님이 오케이하셨는데 뭐.”

배우들이 웃으며 자신들의 의자에 앉았다.

이렇게 유쾌한 촬영현장은 처음이라는 듯.

난 바로 현장 편집을 해서 앞에서 찍은 장면과 이어붙여 확인했다. 연기 자체는 소소하다. 앞서 쌓아놓은 감정선과 웃음 동력이 있기 때문에 표정만 봐도 웃음이 난다.

이런 이유로 일반 영화에서 방귀가 나오면 억지웃음이 되지만, 이 영화에서 폭소의 열쇠가 된다. 앞서 너무도 경직되고 빈틈없는 재벌 일가임을 보여주었기에.

고작 방귀 때문에 충격에 빠지는 것 자체가 비정상이다. 상류층 가족의 그런 비정상이 웃음을 주기도 하고. 배우들 연기는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적절하게 잘 해주고 있다.

* * *

촬영을 시작한 지 50일.

강원도와 서울을 오가면서 여유 있게 촬영을 했다.

미국도 여러 번 다녀왔고.

후계자 촬영이 후반에 이르렀다.

양아치와 둘째 며느리는 재벌가의 약점을 캐고, 장남과 차남은 유전자 결과를 조작하느라 온갖 꼼수를 부린다.

바빠도 현장 분위기는 즐거웠다.

배우들은 중반부터 영화의 톤을 제대로 파악했다. 그때부터 온갖 애드립이 쏟아지고, 웃음이 끊일 날이 없었다.

장남과 차남이 카페에서 양 씨를 제거할 공모를 한다.

이 장면 촬영이 너무 더뎠다.

차남이 진지하게 입을 뗐다.

“형님. 그 자식이 내 뒤를 캐고 있습니다. 어리숙하고 멍청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처음부터 작정을 하고 집에 들어온 것이 분명합니다. 이놈의 자식이!”

말을 하고 주변을 돌아보는 차남.

눈치 보기가 극에 달했다.

“하하하하!”

“컷! 다시요.”

“하하하하하!”

장남 역의 이동혁이 갑자기 웃는 바람에 현장이 웃음바다가 됐다. 이게 벌써 몇 번째인지.

“아, 웃지 좀 마요! 우리는 정말 심각한데!”

“네 표정이 웃기니까, 그렇지!”

“내가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 뭘 해도 웃기는데!”

“지금 표정도 웃기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이게 지금 촬영인지 현실이지.

배우들이 배역에 몰입하면서 현실에서도 배역의 표정이 나온다. 그게 너무도 웃겼다.

수혁이가 외쳤다.

“다들 참아요! 이러면 오늘 촬영 못 끝냅니다!”

“알겠습니다!”

“다시 갈게요!”

콜이 이어지고.

“액션!”

차남이 어느새 감정에 몰입했다.

“형님. 그 자식이 내 뒤를 캐고 있어. 멍청한 놈인 줄 알았는데 말이야. 크큼. 이놈의 새끼가 처음부터…”

“하하하하!”

“아, 그만 좀 웃어! 하하하.”

“네가 먼저 연기하면서 웃고 있었잖아!”

“형이 실실 웃고 있는데 그럼 웃음이 안 나냐?”

“감독님! 죄송합니다!”

“서로 코만 보고 연기할게요!”

나도 입을 틀어막고 있었던 터라 할 말이 없다.

스태프도 배우들도 그간 ‘웃음 감정’이 쌓일 대로 쌓여서 폭발 직전이다. 하필이면 이런 때에 코믹한 형제의 위선 가득한 연기를 보고 있으니 도무지 진도가 안 나간다.

“다시 갑니다! 승운 씨 애드립 때문에 웃음이 더 나는 상황이니 원래 대사대로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근데 원래 대사가 뭐였어? NG가 20번이나 나오니 원래 대사까지 까먹었네.”

다들 심호흡을 하고 준비했다.

다시 콜이 이어지고.

“액션!”

차남의 두 눈을 희번덕거리며 말했다.

“형님. 큼… 그 짜식이, 그 짜식이 말입니다.”

“아하하하하!”

이동혁이 의자에서 굴러떨어졌다.

스태프들도, 나도 뒤집어졌다.

눈은 왜 희번덕거리고. 그 짜식은 뭐야.

두 배우는 바닥에 엎드린 채 웃고 있고, 스태프들도 모두 배를 잡고 웃는다. 눈물까지 찔끔 흘리면서.

아유, 미치겠네.

“잠시 쉬었다 갑시다!”

“30분 쉴게요.”

30분이 지났다.

두 배우가 카페에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아직 웃음기가 남아 있긴 하지만 둘 다 금세 감정 몰입을 했다.

지금 이 형제는 양아치에게 회사를 빼앗길 위기에 몰렸다. 살면서 이런 위기를 겪어본 적이 없는 형제다. 실패도 위기도 겪어본 사람이나 잘 헤쳐나가는 법. 그런 형제가 묘수를 낸다는 게 고작 교통사고 청부. 드라마에서 봤다면서.

“다시 갑니다! 웃으시면 안 돼요!”

“수혁아! 웃음이란 단어도 꺼내지 마!”

“예. 자, 레디!”

콜이 지나고.

“액션.”

우아하게 마주 앉은 형제.

“형님. 그 자식 멍청할 놈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처음부터 작정을 하고 집에 들어온 것이 분명합니다.”

“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회장님이 우리가 유전자 분석 결과를 날조했다는 걸 아신 듯합니다. 놈이 사업에 대해 뭘 알겠습니까. 놈을 제거해버립니다.”

“네 입에서 그런 천한 말이 나올 줄 몰랐다.”

“달리 방법이 있습니까?”

“어떻게 놈을 제거해?”

“교통사고로 위장합시다. 제가 알아보니 한 1억만 줘도 일을 해줄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후환은 없고?”

“제3자를 통해 청부를 하면 됩니다.”

“교통사고라… 그러면 우리…”

빠앙-

갑자기 경적이 들려왔다.

“컷! 다시 가요.”

“아, 클랙슨 뭐야?”

두 배우가 벌떡 일어나 도로 쪽을 보았다. 소음 통제를 못 한 스태프들에게 욕을 할 수도 없고. 웃음기가 싹 가셨다.

두 배우에게 갔다.

“원래 대사와 액션으로 가요. 주요 단어가 빠진 부분이 있으니까.”

“감독님.”

“네.”

“원래 대사로 가면 자꾸 웃음이 나서요.”

“어떤 부분요?”

“이놈의 자식이라는 부분요.”

“그건 빼고 가보죠.”

“예.”

수혁이가 외쳤다.

“자, 다시 갑니다! 레디!”

“액션!”

“형님. 그 짜식이… 크큼. 내 뒤를 캐고 있습니다. 바보처럼 굴던 건 다 가짜였어요. 처음부터 작정을 하고 집에 들어온 것이 분명한데. 이놈의 자… 큼.”

“크큭.”

“컷! 이놈의 자식 안 한다면서요!”

“하하하하!”

또 현장이 웃음바다가 됐다.

“죄송합니다. 아, 형 왜 웃어!”

“네가 먼저 웃었잖아!”

“형이 코를 벌름거리니까 그렇지!”

“네 표정이 웃기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하하하!”

아휴. 이거 오늘 안에 찍을 수 있겠나.

이번 씬은 어떻게 넘어간다고 해도 남은 씬은 어쩌지.

* * *

우려한 일이 벌어졌다.

서연과 양아치가 나오는 씬을 제외한 모든 장면에서 웃음이 터졌다. 배우들이 배역에 몰입하면 할수록 더했다.

캐릭터가 배우의 연기 영역을 넘어서 버린 거였다.

배우도 스태프도 촬영이 끝나지 않는 이상은 그동안 쌓인 웃음에 대한 감정이 해결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눈치 보는 모습을 딱 중단할 수도 없고.

애초에 캐릭터가 그렇게 잡혀버린 터라 차남이 나올 때마다 웃음이 터진다. 눈알 굴리는 모습. 시도 때도 없이 공허 타임에 빠지는 모습. 이 두 모습에서 나오는 말투와 표정.

이게 다 웃음 포인트였다.

코미디 영화이니 어쩔 수가 있나.

일정이 늘어나고 있었지만 현장 분위기는 정말 좋았다. 스태프들은 웃기는 연극 공연 보듯 배우들 연기를 지켜보고, 웃음을 참다가 컷이 나오면 마음껏 웃었다.

배우들도 적응을 해서 웃을 때와 연기할 때는 확실히 구분해서 촬영을 진행했다. 그래도 터져 나오는 웃음 때문에 수도 없이 NG가 나긴 했지만.

영화도 아주 잘 나오고 있다.

풍자 효과는 극대화되었고, 끊임없이 웃음이 나온다.

코어가 전달하는 느낌이긴 한데.

아마도 역대급 코미디 영화가 나올 것 같다.

한 번 웃고 마는 것이 아닌 여운이 긴 웃음.

웃음 속에 감춰진 인간 본성의 어둠.

그 어둠을 다시 풍자하여 예술성을 높여갔고.

그리하여 새해 첫날 하고도 이틀째.

마침내 후계자 촬영을 끝냈다.

정말 즐거운 작업이었고, 배우들도 즐기면서 찍었다.

내 대표작은 험난한 촬영일 줄 알았다.

고생한 만큼 좋은 작품이 나올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 반대였다.

이렇게 유쾌하게 찍은 영화는 처음이다.

정말이지 대만족이다.

대표작이 될 거라는 직감이 들어맞았다.

어쩌면 내 예상보다 더 잘 나올지도 모른다.

나도 배우도, 스태프들도 웃을 만큼 웃었다.

우리만 웃으며 찍었을 수도 있다.

그러니 극장에서 어떤 기류가 발생하느냐에 달렸다.

우리가 웃었던 부분에서 관객도 웃는다면 성공이다.

시나리오에선 통했다. 영화만 통하면 된다.

편집실에선 통하고 있다.

웃겨 죽겠다는 편집실장의 문자가 왔으니.

편집실에서 며칠 지낸 뒤.

후반 작업 준비를 해두고 바로 미국으로 갔다.

블루드 워 일정이 급했다.

블루드 워 3편의 후반 작업이 끝났다.

예상은 8개월이었는데 7개월에 마무리 지었다.

미국인 특유의 느긋함을 따져서 8개월이었던 거지, 한국식으로 하면 6개월 만에도 끝날 작업이었다.

서두른 이유가 있었다.

3월에 개봉하면 마블 스튜디오 작품과 경쟁하게 되는 터라 스크린 확보가 좀 어려웠다. 그쪽은 배급사가 크고 우린 이제 배급 라인을 만든 까닭이다.

해서 내가 서둘러 달라고 지시했던 터다.

하루에 1시간 정도만 일을 더하면 되니까.

수당은 넉넉하게 주고.

그동안 미국을 10번이나 갔다 왔다.

후계자 촬영도 그 탓에 넉 달 가까이 걸렸던 거고.

LA 공항에 혁민이가 마중 나왔다.

녀석의 얼굴이 상기된 상태였다.

“무슨 좋은 소식 있어?”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지금 영상 보정과 사운드 작업 중이에요. 사운드트랙이나 타이틀 등은 이미 다 끝냈고요.”

“개봉일은?”

“2월 18일로 잡았습니다. 스크린 수는 4,500개 정도 됩니다. 네오스타 제작 영화로는 최대 스크린 수예요.”

“고생했다. 한 달 조금 더 남았는데 차질 없겠어?”

“네. 영화부터 보세요. 깜짝 놀라실 겁니다.”

“내가 모르는 CG 재작업이라도 한 거야?”

“보시면 알아요.”

지금껏 CG 부분 다 확인했다.

전체 편집본도 몇 번이나 봤다.

확인 안 한 건 영화에 입힌 음악과 사운드뿐.

레저와 블루드 워 3편. 그리고 후계자.

이 세 작품을 동시에 시작한 이유가 있다.

뭔가 공통적인 느낌.

그것과 관련이 있는 걸까.

* * *

스튜디오에 도착하자마자 사운드 팀으로 갔다.

신임 한국인 사운드 팀장과 눈인사를 했다.

혁민이가 스카우트한 최고 수준의 사운드 팀이다.

사람만 데려온 것이 아니라, 사운드 장비까지 통째로 ‘인수’했다. 이제 명실상부한 원스톱 스튜디오 시스템을 갖춘 셈이다. 사운드 팀장이 말했다.

“아이맥스 14.2 채널 3D X 사운드를 기본으로 했고, 사운드 소스도 기존의 것을 쓰지 않고 새로 만든 것만 사용했습니다. 최고 수준의 사운드 소스이고, 제가 직접 만든 것도 많이 썼습니다.”

“어디까지 작업했나요?”

“기본 사운드 작업은 끝냈고, 보정 중에 있습니다.”

혁민이가 깜짝 놀랄 거라고 했던 것이 내 예상대로 사운드였다. 14.2채널 3D X사운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내가 알기로 아직 그 어떤 블록버스터 영화도 쓴 적이 없다.

1977년 조지 루카스가 스타워즈에 최초로 ‘돌비 스테레오’ 사운드를 입혀서 영화의 혁신을 일으켰다. 이어 다채널 스테레오 사운드가 점차 진화하여 14채널에 이르렀다.

한국에선 이미 14채널을 쓰지만 많은 영화가 아직도 12.1채널을 쓴다. 블루드 워 2편이 그랬다. 사운드는 그대로 가려고 했는데, 현 사운드 팀장과 혁민이가 날 위해 깜짝 선물을 준비했던 모양이다.

이번 영화는 14채널인데다, 그보다 한 단계 수준이 높은 3D X다. 3D 급의 다음 세대 버전이라는 뜻. 음향의 가상현실 방식이라고 보면 된다.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음향 시스템이 완벽하게 구현된 곳만 제대로 알 수 있겠죠?”

“그렇긴 합니다. 6채널 이상 스피커에 아이맥스 극장에서 본다면 정말 끝내줄 겁니다. 아, 플래닛 케이 전용 VR 기어를 착용하고 영화를 본다면 몰입감이 어마어마할 겁니다. 제가 테스트 해보곤 정말 깜짝 놀랐죠.”

“어디서 테스트를 했다는 건가요?”

혁민이가 말했다.

“시사실 스피커를 바꿨어요. 첨단 극장 수준입니다.”

“바꿨으면 왜 보고를 안 해?”

“서프라이즈 이벤트죠.”

“일단 점검해 봅시다.”

시사실로 이동했다.

큰 스피커 6개에 작은 스피커 9개가 사방에 있었다.

우주 교전 장면만 확인했다.

5분 분량만 보았는데, 입이 떡 벌어졌다.

12채널만 해도 음향이 몰아치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14채널 X 사운드는 음향의 폭풍이었다.

음파가 전신을 때리는 느낌이 들 정도.

음향에는 광장 서라운드 효과라는 것이 있다. 드넓은 광장에서 대통령 후보나 명사가 연설할 때 음성이 메아리치면서 쩌렁쩌렁 울린다. 연설 내용과 상관없이 수많은 스피커에서 공명하는 소리가 큰 울림을 준다.

2002년 월드컵 때 그랬다.

사촌 형과 서울 광장에 왔었는데 엄청난 인파와 천지를 울리는 소리에 압도당한 적이 있다. 당시 윤동현 밴드가 응원가를 부를 때 광장에 울리는 사운드의 힘에 전율했었다.

록밴드 공연장도 마찬가지다. 공연장에서 들리는 사운드는 직접 공연을 가보지 않으면 절대 모른다. 녹화된 라이브로는 그 현장감을 결코 알 수가 없다. 드럼 소리 하나만으로도 심장이 뛰기 시작하는 게 라이브 현장이다.

사운드는 그만큼 중요하다.

하물며 우주 교전이 벌어지는 SF 영화라면 어떨까.

포성. 거대한 함선의 기동음. 전투기의 비행음. 폭발음과 사격음. 함선이 함선을 들이받을 때 충격음.

이 모든 사운드가 정말 어마어마했다.

영화를 보면서 사운드에 압도당한 것은 처음이다. 물론 영화의 화면과 사운드가 시너지를 일으켜서 그렇다. 로맨틱코미디에 사운드 폭풍은 필요 없으니까.

게다가 CG도 로큐 특유의 VR 기법으로 완성했다. 섬세한 입체감을 주면서 작업을 해서 현장감을 극대화했다. 사운드 팀장 말대로 아이맥스 전용관에서 보거나, 플래닛 케이 VR 기어로 보면 입체적이 느낌이 대단할 터다.

“어때요? 끝내주죠?”

웃으며 혁민이를 안았다.

“수고했다.”

“별말씀요.”

정말 큰 선물을 받았다.

사운드 하나를 바꾸었는데도 영화가 상당히 달라졌다.

12채널로 해도 큰 차이가 없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좋은 극장에서 보면 체감하는 차이가 제법 크다. 크게 울리는 소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효과가 있기에.

* * *

개봉 11일을 앞둔 금요일.

모든 후반작업을 끝내고 회사에서 시사회를 열었다.

시사실에서 영화를 네 번이나 봤다.

내 영화를 보고 내가 기립박수를 친 건 처음이었다.

오지 마을에 영화가 들어온 듯.

좌석은 만석이고 나머지 인원은 앉을 수 있는 곳이라면 빽빽하게 모여 앉았다. 퇴근 시간이라 캔맥주 박스를 들고온 직원들도 허다하다. 회사에서 맥주를 나눠주기도 했고.

블루드 워 ; 다가오는 여명.

시리즈의 마무리이면서 네오스타가 메이저 스튜디오로 발돋움하게 해준 영화다. 스튜디오의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기도 하고. 그만큼 이 영화는 기념비적인 작품이었다.

드디어 영화가 시작되었다.

시사실이 암전되고 장엄한 음악과 함께 네오스타 스튜디오의 로고가 떴다.

“예!”

“하하하하.”

직원 일부가 약속이나 한 듯 적시타 탄성을 터뜨렸다.

직원 사이에 유행어라도 된 듯.

그 바람에 다른 직원들도 웃음이 터지고.

로고가 사라지고 첫 화면이 떴다.

평화로운 하늘에서 시작했다.

감독과 배우 등 타이틀 소개 장면이다.

시점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갈수록 소음이 들려온다.

시작부터 압도적이다. 지상에 가까워질수록 평화가 아닌 지옥이 펼쳐져 간다.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전쟁에 휩싸인 도시. 수많은 폭발이 일어나고 개미떼 같은 무리가 무수히 이동하고 있다.

새의 시점과 지상 사이를 전투기들이 휙휙 날아다닌다. 미사일이 솟구쳐 오르고 연기를 뿜으려 빙글빙글 추락하는 전투기들도 있다. 지상과 공중에서 벌어지는 전쟁 상황 때문에 직원들은 시작부터 이미 몰입했다.

새가 유영하듯 지상과 공중 곳곳을 보며 이동하다 점점 아래로 내려간다. 지상으로 가면 갈수록 폭죽놀이 같았던 곳이 무섭기 짝이 없는 전쟁터로 변한다.

전쟁터의 소음도 극에 달한다.

시점이 도달한 곳은 주인공 액셀과 영웅들이 있는 곳.

액셀을 보자마자 직원들의 환호가 터지고.

액셀과 영웅들이 밀려드는 개조전사 유인 작전을 벌일 때부터 직원들은 숨소리도 내지 않고 집중했다. 초반 15분까지 계속 무지막지한 전투다.

그러다 화성 장면이 나와 배경과 인물 소개를 할 때. 비로소 직원들이 심적인 휴식시간이 왔다. 여기저기서 웃으며 속닥거린다. 맥주 캔을 따는 치익- 하는 소리도 들려오고.

그 후 약 45분까지 저항군의 반격 준비. 액셀과 영웅들의 크고 작은 전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화성 쪽 설명이 좀 길어진다 싶으면 액셀 쪽의 박진감 넘치는 장면으로 돌린다.

설명도 지루한 장면은 거의 없다.

편집을 다채롭게 하고, 화면 전환이나 흐름에 속도감을 줬다. 인물 소개도 에피소드 위주로.

악역인 줄 알았더니 좋은 사람이었네. 사고뭉치인 줄 알았더니 소개 장면만 그랬던 거네. 두 사람은 친구인가, 연인인가. 아, 부부였네. 저 사람은 대체 정체가 뭐지?

이런 식으로 인물 소개와 배경 설명을 겸했다. 새로운 전투기 무장 사태. 개조 함선의 특징. 주요 함선 함장. 그들의 사연. 작전사령부에서 전략 전술을 설계하는 장면 등등.

배경과 사건, 인물 소개는 각각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맞물려 들어간다. 그래야 수준 높은 영화다. 셔레이드는 필수로 해야 하고 씬도 줄일 수 있기에.

특히 마지막에 진한 울림을 줄 함대사령관과 그의 아들 3함장의 관계는 밝히지 않는다. 사령관과 함장의 관계로만 보여준다. 부자 관계라는 건 복선으로 깔고.

이러한 소개와 설명을 빠른 편집만으로 긴박감을 주었다. 뭔가 바쁘게 돌아가고 시간이 촉박하다는 느낌을 준다. 대대적인 전투를 앞두고 있다는 긴장감도 형성하고.

설명의 빠른 편집과 지구의 대규모 액션씬을 교차 편집하니 긴장과 이완이 저절로 되었다. 감정을 다 풀어버리지 않으므로 각 인물과 상황에 대한 감정은 계속 쌓여간다.

영화가 중반으로 넘어가면서부터 직원들의 집중력도 높아졌다. 수다도, 맥주 캔 따는 소리도 안 났다. 화장실도 안 가고. 1시간이나 우주 대전을 벌인다는 소개를 했다.

긴장감과 기대감이 동시에 온다.

과연 우주대전은 어떤 걸까.

스타워즈 식일까. 아니면 2편과 같은 분위기일까.

그 어디에도 없는 교전 장면이라 자부했다. 스타워즈에도 중세식으로 함대와 함대가 붙는 장면은 없으니.

직원들의 눈에 기대감이 잔뜩 들어찼다.

그 누구의 기대도 저버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다들 처음 볼 테니까.

“와우!”

“지져스!”

곳곳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다들 눈이 휘둥그레진 채 스크린을 보고 있었다.

31대의 함선과 60여 대 함선이 우주에서 맞붙었다.

함대와 함대 포격. 전투기와 전투기의 교전.

미사일 공격. 주포 공격.

목숨을 걸고 싸우는 모든 상황.

저마다 소임을 다하는 인물들.

큰 그림의 함대전 장면. 작은 그림인 조종사 장면.

정신없이 날아다니는 전투기들과 적함에 침투한 강습 대원들의 활약. 우주 교전에선 전원이 주인공이다.

2편과 마찬가지로 관객도 저항군의 일원이다.

다들 숨 가쁘게 돌아가는 교전 장면에 빠져 자신의 싸움처럼 어깨를 틀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간 쌓인 감정이 최고조로 올라간다. 여기서 감정을 풀어 줘야 하는데 안 그랬다.

다음 장면에서 그 역할을 했다.

지구 장면이 나오자마자 고함이 터졌다.

“오, 마이 갓!”

액셀과 영웅들이 수백만 명과 싸우고 있었다.

적의 군단 규모에 직원들의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해도 해도 너무할 정도로 적의 규모가 컸다.

그냥 인간을 상대하느냐.

아니다. 개조전사들 전원 능력자고, 반 영웅 군단은 13인의 영웅과 능력면에서 버금간다. 군단장은 액셀도 쉽지 않은 상대다.

그런 적을 상대로 액셀이 엄청난 활약을 했다. 몰려오는 수만의 적들을 돌파하고 날려버리고 일격 일격에 수백 명이 쓰러져 나간다. 수백 명이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광경에 다들 할 말을 잃었다.

우주 교전보다 더한 초거대 스케일이었다.

그 넓은 네바다 모하비 사막에 적들이 가득 찼다.

반지의 제왕 3편에선 초대규모 병력과 싸우는 대규모 병력이 나온다. 군단과 군단의 싸움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선 초대규모 병력과 싸우는 게 고작 13명이다. 그 활약이야 상상만 해도 충분하지 않겠나. 싸움의 박진감은 말할 것도 없고 너무도 시원시원했다.

긴장감은 덜하다. 영웅들이 적들에게 맞지도 않는다.

쉴 새 없이 몰려오는 적들을 쳐내고 또 쳐낼 뿐.

처음엔 긴장했던 직원들도 그제야 다소 안심하고 영화를 즐겼다. 우주 교전 장면에서 팽팽해졌던 심리적 압박은 지구 장면에서 조금 풀어준다. 이완장면이다.

내 옆에 앉은 이동욱 대표가 말했다.

영화 보는 내내 얼이 빠져 있던 이 대표다.

“정말 미친 영화네요.”

“한 번도 안 봤어요?”

“네. 시나리오가 너무도 좋아서 감독님 만세까지 외쳤는데, 이건 뭐 만세가 아니라 헹가래 감이네요. 영화도 감독님도, 사운드도 미친 것 같습니다.”

감격한 이 대표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장면은 다시 우주 교전으로 넘어갔다.

여기저기서 마른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대적인 강습작전이 시작되면서부터다.

직원들 모두 숨을 죽인 채 영화를 보았다.

무모하면서도 용감무쌍한 강습부대의 ‘상륙작전’에 다들 눈을 떼지 못했다. 밋밋했던 스튜디오 촬영 장면이 CG와 합쳐지니 정말 영상이 잘 나왔다. 연기의 감정을 한층 높여준다.

우주 교전은 세 파트로 번갈아 가며 나왔다.

사령부 장면. 함선과 전투기 조종사 장면.

그리고 적함에 침투한 강습팀 장면.

이 세 파트로 전쟁의 큰 그림과 작은 그림을 번갈아 보여주며 속도감을 높였다. 메시지나 예술성은 1편과 2편에서 했다. 오직 SF와 액션에만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사운드는 또 어떤가.

폭발음과 전투기가 스쳐 지나는 소리만으로도 직원들이 움찔거리며 몸을 떨었다. 너무도 생생한 총격음. 시사실 전체를 진동시키는 거대 함선의 추진음. 발소리. 뛰는 소리. 숨소리.

압도적인 영상에 사운드까지 몰아친다.

아주 맛있는 스테이크에 최고급 와인까지 곁들인 격.

일부 스태프들은 너무도 좋아서 미칠 지경이다.

내 옆에 앉은 이 대표는 눈시울까지 붉어졌다.

“정말 가슴이 터질 것 같습니다.”

“그렇게 좋으세요?”

“왜 이렇게 복받치는지…….”

이 대표가 나와 네오스타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지금까지 영화를 만들어온 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친 모양이다. 나와 손을 잡았을 때만 해도 걱정이 컸을 터다. 마블 스튜디오에서 나온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테니까.

영화가 후반에 돌입했다.

지금까지의 속도는 속도도 아니었다는 듯 흐름이 매우 빨라졌다. 강습작전에 이어 강습부대가 적함 내부를 점령해 나가는 과정. 이어 함대 충파작전까지.

편집의 묘미를 살리며 빠르게 각 상황을 보여주었다. 직원들도 숨 한번 제대로 쉬지 못하고 극에 빨려 들어갔다. 그리하여 감정이 극에 이르러 터질 지경이 되었을 무렵.

저항군 함대가 적 함대를 들이받았을 때.

함대 수십 척이 뒤섞이며 굉장한 사운드가 터졌다.

쿵쿵쿵- 쿠쿠쿠쿵-

“예에-!”

여지없이 터져 나오는 환호!

카타르시스가 폭발했다.

거대 함선이 충돌하는 소리. 금속 긁히는 소리. 폭발음.

그와 더불어 함장들과 사령관이 외치는 고함.

시나리오만 봐선 알 수 없는 쾌감과 전율이 일어났다.

CG 작업과 편집본을 봤을 때는 감정이 쌓인 상태가 아니라서 그냥 잘 나왔다 싶은 수준이었다. 그런데 영화를 죽 보면서 이어진 감정이 터지고, 사운드까지 큰 울림을 준다.

영상과 사운드.

둘 중 하나만 있었어도 카타르시스가 일어날 지경인데, 두 부분 모두 최고의 효과를 일으켰다.

나조차도 온몸이 떨릴 지경이다.

여기서 다가 아니었다.

마침내 전해오는 사령관 3함장의 통신.

기쁨과 희열도 잠시.

화염에 휩싸인 함교.

그 함교에 피를 흘리며 혼자 앉아 있는 3함장.

그가 피를 꾸역꾸역 토하며 무전을 보냈다.

“사령관님. 3함장입니다. 제 배가 격침 직전입니다. 재수가 없었는지 함교 바로 아래를 제대로 맞았네요.”

“승무원들을 탈출시키게! 자네도!”

“저는 쿨럭! 함에 남겠습니다. 반평생을 함께한 아틸러스를 버릴 수가 없습니다.”

함장의 입에서 핏물이 줄줄 새어 나온다.

“탈출하게!”

“평생 사령관님 명령에 따랐지만 이번에는 어렵습니다.”

“무슨 소릴 하는 건가! 탈출해!”

“쿨럭. 사령관님. 실은 제가…….”

함장의 가슴에 큰 파편이 박혀 있다.

안타까움에 비명을 지르는 직원들.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인가? 잠시 기다려라! 구출팀이 아틸러스로 갈 테니!”

“그러지 마십시오. 함교가 불길에 휩싸여 있습니다.”

“사령관님! 3함이 적함으로 돌진하고 있습니다!”

“마이클! 뭘 하려는 건가?”

“적함 하나와 함께 가겠습니다.”

“마이클 안 돼! 이미 이긴 전투다!”

다시 사령관 장면.

화면에는 3함이 적함과 충돌하기 직전.

사령관의 얼굴이 충격에 휩싸인다.

다시 나지막이 들리는 음성.

“아버지, 사랑해요.”

“마이클!”

쿠콰콰쾅-

두 함선이 충돌하면서 폭발이 일어난다.

그 장면을 보고 눈을 부릅뜨는 사령관.

이내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아-!”

여기저기서 안타까움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다들 멍하게 화면만 보고 있다.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듯. 아버지 생각도 나고, 지위와 명예가 다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고. 전쟁은 이겼으나 아들을 잃은 사령관 심정도 느껴지고.

남직원들은 멍한 얼굴이 되었고, 여직원들은 눈물을 훔치고 있다. 영화 속에서 죽어간 모든 저항군을 대표한 3함장의 죽음이다. 그동안 쌓인 감정의 절정이기도 하고.

이 감정은 지구에서 벌어지는 무지막지한 전투 씬으로 하여금 승리의 쾌감으로 바꾸어 나갔다. 안타까움을 간직한 채 영화를 마무리하면 안 된다.

클라이맥스는 액셀이 맡았다.

반 영웅 군단장의 통신을 포착한 액셀이 외계인의 초대형 모선을 찾았다. 그리하여 직접 쳐들어갔다.

지상에선 12인의 영웅이 대규모 전투를 벌이고. 초대형 모선 안에선 액셀이 거침없이 뚫고 들어간다. 정말 호쾌하고 시원한 액션의 연속. 도망가려는 외계인과 호위 부대를 말 그대로 때려잡는다.

함대 전에선 긴장감이라도 있었지.

액셀의 모선 공격 장면은 통쾌함의 연속이었다.

그간 쌓인 감정은 여기서 다 해소한다. 시리즈의 마지막 아닌가. 1편과 2편에서부터 쌓인 감정도 모조리 씻어낸다.

액셀이 영웅이 되었던 곳도 우주선 내부.

이번엔 초대형 모선을 닥치는 대로 파괴하며 미친 듯이 날뛴다. 뭔가 때려 부순다는 행동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풀리는 법이다. 시리즈의 마무리로 이만한 것이 없었다.

그러곤 영웅이 되었을 때처럼 그대로 모선에서 뛰어내린다.

이전에 옥상에 뛰어내렸던 것처럼.

이번엔 동료 영웅들 앞에 떨어지는 액셀.

쿵-

대지에 피어오르는 먼지 구름.

늠름하게 서 있는 액셀의 뒷모습.

그리고 서쪽 하늘 저편으로 추락하는 모선.

“예-스!”

“액셀! 액셀! 액셀!”

직원들의 연호가 터져 나온다.

수백만 명의 군단을 쓰러뜨린 영웅들.

그들이 노을이 지는 서쪽으로 걸어간다.

짝짝짝짝짝-

휘익-

모든 직원이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괴성도 지르고, 휘파람도 불고.

곧 크레디트가 오르자 박수가 더욱 커졌다.

이동욱 대표가 날 덥석 안았다.

서로 등도 두드려 주고.

박수를 보내는 와중에 직원들도 하이파이브를 하고, 포옹도 하고. 한껏 영화를 즐긴 표현을 했다.

조감독 에디가 날 슬쩍 밀었다.

한마디 하라고.

미국인은 감정이 고조되었을 때.

그걸 공유하고 공감하는 문화가 있다.

지금 자신들의 심정을 누군가 건드려주길 바라는.

무대로 나가 마이크를 잡았다.

“영화 어땠어요?”

“최곱니다!”

“위대한 블루드 워!”

“나의 영웅 액셀!”

“저항군 만세!”

“바지가 젖었어요!”

“하하하하!”

에디의 권유가 적절했다.

다들 떠들고 고함지르고 난리 났다.

즐거움은 공유할수록 커지는 법.

즐거움 하나를 추가해도 좋고.

“여러분! 이 영화 7억 달러 넘을 것 같습니까?”

“물론이죠! 2편보다 더 재밌어요!”

“세계 최고의 영화가 될 거예요!”

“내 인생 최고의 영화!”

“네오스타가 자랑스럽습니다!”

환호하는 직원들을 보았다.

웃으며 말했다.

“이 영화가 7억 달러를 넘는다면!”

직원들이 일제히 소리를 죽이며 내 말을 기다렸다.

더욱 환하게 웃었다.

“전 직원에게 보너스 2000%!”

“예에-!”

“브라보!”

직원들이 그야말로 ‘지랄발광’을 했다.

미친 듯이 날뛴다. 옆 사람 끌어안고 뺨에 뽀뽀하고. 빈 캔맥주 집어 던지고. 7억 달러는 이제 우습다 이거지 뭐.

내 영화가 아니라 우리 영화다.

고생도 기쁨도 함께하는 우리들의 영화.

* * *

대대적인 시사회가 벌어졌다.

블루드 워 시리즈의 완결작 시사회이자, 네오스타 스튜디오가 7대 메이저 스튜디오로 승격한 기념이었다.

해외 80여 국에 자체 투자와 합작 형태로 배급사가 설립되었다. 이대로 무난히 이어간다면 2년 안에 120개국 직배사가 생길 터였다. 권혁민이 발로 뛰며 이뤄낸 공이다.

해외에 직배사가 있는 것과 없는 차이는 무척 컸다.

극장 수익의 46%를 네오스타가 가져가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극장 측 수입과 기타 비용으로 들어가고.

레드 카펫 앞에 차를 세웠다.

아내가 먼저 내리고, 난 아이를 안은 채 내렸다.

눈이 부실 정도로 많은 플래시가 터졌다.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던 제이슨과 영웅 12인이 길게 늘어서서 박수를 보낸다. 스승의 날에 제자들이 기다리는 것처럼.

제이슨과 악수를 했다.

“왜 안 들어가고?”

“고맙습니다. 감독님.”

“새삼스럽게.”

이어 배우들과 차례로 악수했다.

손을 잡고 눈인사를 하는 게 다다.

말 안 해도 눈만 보면 안다.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어떻게 날 생각하는지.

아내 서연에게는 사모님 대하듯 매우 정중히 허리를 굽힌다. 딸아이에게는 윙크를 보내기도 하고.

리연이는 이 많은 사람과 환한 불빛을 보고 놀랄 만도 한데 그냥 내 품에 안긴 채 가만히 있다. 엄마와 아빠가 유명한 사람이라는 걸 아는 눈치다. 1살 때부터 촬영장에서 살다시피 해서 그런 건지.

배우 13인과 함께 포토 라인에 섰다.

또 플래시가 터지자 리연이가 눈을 찡그리며 내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최신성 감독! 소감이 어떠세요?”

“제이슨! 여기 좀 봐요!”

“리연이 얼굴 좀 보게 해주세요!”

“아이는 올해 몇 살인가요?”

팬과 기자들이 실로 어마어마하게 왔다.

블루드 워는 이제 세계적인 문화의 아이콘이 되었다. 방향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스타워즈나 어벤져스와 동급 대우를 받았다. 물론 팬이 겹치진 않는다.

내가 찍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기존 블록버스터와 정서적으로 좀 다르다. 감정이나 구성, 대사와 편집 스타일이 할리우드 스타일이 아니라서 그 점을 매력으로 여기는 팬이 정말 많았다.

한국영화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한국영화는 세계에서 하나의 장르로 쳐줄 만큼 팬이 많다. 한국영화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세계인이 좋아하는 블록버스터가 합쳐졌다.

이에 더해 할리우드 영화에선 잘 하지 않는 감정의 끌어올림과 내 영화만의 특별한 영화적 현상. 내 영화에 대한 믿음. 관객과의 소통 등등. 그런 점이 무수히 많은 팬을 양산했다.

내 한국영화가 할리우드 영화만큼 관객이 많이 드는 이유도 그런 까닭이다. 한국영화도 할리우드 스타일로 만들다 보니. 상업과 예술의 경계를 넘고, 한국영화와 할리우드 영화의 경계도 넘은 셈이다. 어쩌다 그렇게 됐다.

그래서 스타워즈와 어벤져스와 동급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열광적인 팬층도 그렇고, 평론가나 대중의 지지도도 그렇고. 블루드 워 3편을 완성하고 보니 언론과 매체가 알아서 홍보해 준다. 전 세계의 영화팬이 그만큼 기다리고 있었기에.

단독 영화가 아닌. 스크린 수도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시리즈의 2편으로 역대 북미 흥행 수익 2위를 찍었다. 어벤져스도 하지 못했던 기록이다. 실제 수익 면에선 뒤진다고 해도.

하여 이번 블루드 워 3편에선 여러모로 기대가 컸다.

시리즈의 완결은 어떻게 지을 것인가. 전편보다 재미는 있는가. 전편의 흥행 기록을 깰 수 있을 것인가. 직배사 설립 이후 첫 작품인데 과연 ‘아바타’ 흥행성적을 넘을 것인가.

예고편부터 난리가 났던 우주 대전은?

이러저러한 이유와 기대로 너무도 많은 사람이 모였다.

개조전사 복장을 한 이들도 수없이 많고.

축제 한마당이었다.

“포토 콜을 마무리하겠습니다. 프리미어 상영이 끝나고 인터뷰가 마련되어 있으니 질문은 그때 해 주시기 바랍니다.”

배우들과 마무리 인사를 하고 극장으로 들어갔다.

할리우드 배우들이 상당히 많이 왔다.

그냥 시사회가 아닌 메이저 스튜디오 출범식을 겸한 데다 시리즈의 완결을 기념하기 때문이다.

휴 잭맨. 엠마 스톤. 주드 로. 크리스 프랫. 제니퍼 로렌스. 새뮤엘 L. 잭슨. 마크 월버그. 윌 스미스. 밀라 쿠니스. 나탈리 포트만. 가장 몸값이 비싼 조니 뎁까지.

이 중 마크 월버그와 윌 스미스는 네오스타에서 제작하는 개별 영화 주인공으로 말이 오가는 이들이다. 다른 배우들도 축하를 겸하여 인맥을 쌓으러 왔을 테고.

그래도 이 많은 스타가 참석한 게 의아했다.

신인이나 슈퍼스타가 아닌 배우들까지 따지면 30명이 넘는다. 조니 뎁과 나탈리 포트만은 남의 영화 시사회에 참석한 적이 없다. 제니퍼 로렌스는 번잡한 걸 싫어한다고 들었고.

어쨌든 이 많은 스타가 시사회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큰 뉴스가 될 것 같다. 영화 전문 매체 외에 세계 유력지 특파원들이 죄다 모였으니까.

출연 배우들과 셀럽들이 대화를 나누다 내가 입장하자 다들 기립하며 박수를 보내왔다.

그들과 짧게 인사하며 악수를 나누었다.

먼저 휴 잭맨.

“만나서 반갑습니다. 감독님 팬입니다.”

“저도 영광입니다, 울버맨.”

휴 잭맨이 껄껄대며 웃었다.

그다음 조니 뎁.

“반가워요. 최 감독 영화를 정말 좋아합니다.”

“저도 조니 씨 팬이에요.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에 식사나 합시다.”

“그래요.”

이어 제니퍼 로렌스.

이분은 슈퍼스타임에도 수줍어한다.

“감독님을 한번 보고 싶었어요. 감독님 영화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어떤 영화를 좋아하세요?”

제니퍼 로렌스의 눈이 빛났다.

이 말을 해 주길 기다렸다는 듯.

“다 좋아해요. 특히 샌드위치와 멜로디. 최신작 레저도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정말 아이돌 소녀팬들처럼 봤죠.”

지금 모습이 딱 아이돌 소녀팬 같다.

최고의 여배우가 수줍음이 많다는 게 의외다.

눈에 어떤 기대가 잔뜩 들어찬 것도 그렇고.

다른 배우들과도 인사를 했다.

어째 상황이 역전된 것 같았다.

내가 스타를 만나 설레고 들떠야 하는데, 배우들이 나와 인사하면서 긴장하고 설레는 눈빛을 보인다.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다.

어쨌든 태도나 눈빛들을 보니 명장 대우를 해주는 느낌이다. 내가 언제 이런 자리까지 왔나 싶다.

세계의 영화 팬들이 날 어떻게 보는지는 대충 안다.

영화의 마법사.

상업과 예술을 넘나드는 미스터리한 감독.

최초로 영화에 특별 현상을 담은 감독.

인간과 사회의 통찰력을 보여주는 젊은 예술가.

전대미문의 만능 감독.

영화 역사를 새롭게 써 내려가는 천재.

인류에게 행복을 주는 엔터테이너.

민망하긴 하지만 대략 이렇다.

주변 사람들은 내게 말해주지 않으니 뉴스나 댓글을 통해서 우연히 본 것들이다. 내가 안 본 것 중에 어떤 별칭이나 평가가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사람들은 내가 대중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주고, 스트레스를 풀게 하며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해소해 준다고들 한다.

그래서 치유의 마법사란 말이 나왔다.

한데 내 영화를 봐 주는 분들도 내게 기쁨과 감동을 주고, 댓글이나 반응 등을 통해 나도 스트레스를 푼다.

영화를 통해 더불어 살아가는 거지, 뭐.

시사회를 시작한다는 멘트가 나왔다.

모든 셀럽이 자리에 앉았다.

곧 영화가 시작되었다.

* * *

호텔 라운지에 기자와 리포터 60여 명이 모였다. 평론가는 물론이고 일부 배우들도 가지 않고 인터뷰 자리에 왔다. 영화만 보고 가기엔 여운이 좀 있었던 듯.

한국의 호텔과 달리 연회장도 없고, 넓은 장소라곤 라운지밖에 없었다. 이 라운지도 그리 큰 편이 아니었고. 해서 사내 시사회 때처럼 기자들이 바닥에 그냥 앉았다.

나와 배우들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 앉은 모습이 좀 웃기면서도 포근한 느낌이 전해졌다. 다들 눈빛도 초롱초롱하고 만면에는 웃음을 담았다.

시사회 때 셀럽들 반응이 정말 끝내줬다.

회사 직원들이야 시나리오를 다들 읽었고, 본인들이 작업한 영화다. 내용을 알고 봤고 CG나 사운드만 확인하지 못한 이들이 다수였다.

반면 셀럽들은 예고편만 보고 왔다.

액셀과 영웅들이 모하비 사막에서 군단과 싸우는 장면은 일부러 예고편에 넣지 않았다. 깜짝 놀라게 하려고.

우주 교전 장면에서 듣도 보도 못한 함대 전투에 무척 놀라워하더니, 그 스케일에 적응했을 때 대평원 전투를 보여 주었다. 13 대 수백만의 싸움을 보고 셀럽들이 충격을 받았다.

서구인에게는 군단과 군단이 붙어야 그림이 된다는 어떤 선입견이 있는 모양이다. 슈퍼 히어로의 전투라고 하면 영화 후반에 그만큼 강한 상대와 싸우는 것만 봐 왔을 터다.

한데 블루드 워 3편에선 슈퍼 히어로가 군단을 상대로 어떻게 싸우는지 보여 주었다. 그 무지막지한 물량에 모든 셀럽이 압도당하고 말았다. 또 하나 놀란 것은 긴장감 없이 전투를 마음껏 즐겼다는 점이다.

사운드도 큰 몫을 했다.

전후좌우에서 밀려드는 음향의 힘이 좌석에 앉은 이들을 묶어 버렸다. 무협지에 나오는 어떤 ‘기파’처럼. 영상과 시너지를 일으키면서 심리적으로 그런 효과가 일어났다.

이것이 이번 영화에서 발생한 특별현상이었다.

스케일이 큰 영상에 광장 서라운드 효과가 있는 사운드가 관객을 옴짝달싹 못하게 에워싼 셈이다.

라이브 공연을 보듯 그에 따른 현장감이 대단히 컸고, 이번에도 저항군과 동조 현상을 일으키며 감정이입의 정도도 깊었다. 영상과 사운드가 정말 잘 맞았기 때문이다.

하여 모인 이들이 저마다 이러한 점들을 물어왔다.

사운드에 놀란 이들이 그만큼 많았던 거다.

“사운드 시스템이 떨어지는 극장에서도 이번 시사회와 같은 효과가 있을까요?”

“어느 정도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봅니다. 단지 소리가 큰 것이 아니라 녹음된 사운드의 채널이 많습니다. 따라서 6채널 사운드 시스템을 갖춘 극장에서도 충분히 전달될 것으로 보입니다.”

“채널 개념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여기에 무식한 기자들이 몇 명 있습니다.”

“하하하하”

기자의 농담이다.

“드럼과 밴드 연주로 예를 들어 보죠. 옛날에는 드럼 연주를 채널 하나로 녹음을 했습니다. 소리가 좀 단조롭겠죠? 그러다 기술이 발전하여 드럼의 각 파트에 마이크를 대서 각각 녹음하게 되었죠. 작은 드럼. 심벌즈. 큰 드럼. 이런 식으로 말이에요. 드럼만 16채널 녹음이 되죠. 5인조 밴드로 따지면 24채널 정도 됩니다.”

이미 무슨 말인지 이해한 기자들이 있다.

이어 말했다.

“각 파트를 따로 녹음하면 음질이 선명해지고 깊이가 생깁니다. 영화 사운드 채널도 그와 유사합니다. 영화 속의 수많은 소음과 소리가 하나하나 선명하게 들리게 되어 사운드가 풍부해지죠. 6개의 메인 스피커에서 같은 소리를 내기에 공명현상까지 일으키게 됩니다.”

“몸을 두드리는 음향 때문에 소름이 돋았다는 분들이 많던데 그 역시 의도한 부분입니까?”

영화 보면서 전율한 셀럽이 정말 많았다.

“앞서 말씀드린 공명 현상의 일종입니다. 증폭 음파가 실제로 몸을 자극한 부분도 있고, 소리 자체만으로도 심장박동에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영상과 함께 쓰이면서 상승효과가 일어난 것이죠. 반만 의도했습니다. 12채널로도 효과가 있었을 테니까요.”

다른 기자가 화제를 돌렸다.

“최 감독님은 관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기대를 어떻게 충족시키는지 잘 아십니다. 대중도 이제는 믿어 의심치 않고요. 개인적으로는 시리즈가 갈수록 더 재밌어지는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시리즈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셨는데, 다음 작품은 무엇인지요?”

“차기작은 아직 결정된 바가 없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다른 기자도 물어왔다.

“할리우드에선 블록버스터만 하실 생각입니까? 최신성 감독님 특유의 예술성에 목말라하는 배우들이 무척 많습니다. 한국에서만 예술 하시면 섭섭합니다.”

“하하하하!”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이다.

“저는 처음 들어 보는데요?”

“오늘 오신 나탈리 포트만 씨만 해도 감독님과 일을 해보고 싶다고 하셨죠. 영화 ‘샌드위치’나 ‘아비도’, 최근 작품인 ‘레저’와 같은 영화를 찍고 싶다는 말이겠지요.”

배우들이 나와 인사할 때 설레어 하던 이유가 그거였네. 내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서 참석한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조니 뎁과 제니퍼 로렌스도 내 작품에 출연하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일단 이렇게 참석을 하고 나면, 나중에 식사라도 한번 하자는 연락이 자연스러우니까. 이미 돈을 많이 번 배우는 예술에 대한 갈증이 생기기 마련이다. 배우에게 예술은 명예이니.

생각해보니 그럴 만했다.

일반 작가주의 영화와 내 영화는 좀 다르다.

예술성의 비중이 크더라도 상업성 있게 만드는 편이다.

돈도 벌고, 예술적 성취감도 주는.

내 영화에 출연한 할리우드 스타는 주드 로밖에 없다. 제이슨은 내가 신인을 키운 셈이고. 나와 영화를 하고 싶은데 지금까지 기회가 전혀 없었던 거였다.

블록버스터는 다른 스튜디오에서 하면 되니, 나와는 예술성이 있는 영화가 하고 싶었던 거겠지. 어쩌다 보니 할리우드 배우들 사이에 내 가치가 무척 높아져 버렸다. 출연하고 싶어도 도무지 기회를 안 주는 감독이 되어 버렸으니.

기자들에게 말했다.

“한국에서처럼 예술성이 있는 작품도 고려해 볼 생각입니다. 네오스타에는 감독이 저만 있는 것이 아니니, 같은 시리즈의 히어로 영화와 개별 영화도 제작할 겁니다.”

“네오스타에서 히어로 연합 영화를 기획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어벤져스와 같은 컨셉인가요?”

“그렇습니다. 블루드 워 시리즈와 같은 세계관의 영화는 이미 여러 편 마련되어 있습니다. 점차 확장되어 가는 세계관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또 다른 기자가 물었다.

“감독님은 현재 영화 역사상 유례가 없는 혁신과 현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최신성 감독님의 영화를 분석하고 따라 하는 연출가가 무척 많다고 합니다. 그러한 움직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분석해도 잘 안 될 겁니다.”

“하하하하!”

농담 반 진담 반이다.

미국에선 겸손보다 자신감을 더 높이 쳐준다.

“제가 만든 영화는 저만의 구성 방식과 영화적 흐름. 제 고유의 예술적 취향과 감각. 대중과 소통을 늘 염두에 두기 때문에 저만의 영화가 나온다고 봅니다. 분석은 하되,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서 자신의 세계관을 만들어 낼 수는 있을 겁니다.”

“감독님은 누구에게 영향을 받았나요?”

“글쎄요.”

난 누구의 영향을 받았을까.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꼽아보니.

스타워즈의 조지 루카스. 백투더퓨처의 로버트 저멕키스.

킬 빌의 쿠엔틴 타란티노. 대부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데이비드 핀처. 장 피에르 주네. 혹은 짐 자무쉬.

상업영화, 작가영화 따지질 않고 영화를 봤다.

딱히 누굴 더 좋아하는 것 같진 않다.

장점만 따서 배우려고 한 것은 있지만.

“세상의 모든 감독이 저에게 가르침을 주었고, 모두가 저의 스승입니다. 영화는 그렇게 선대에서 후대로 점차 발전하며 나아가겠죠. 저 또한 감독님들이 걸어간 길을 걸어왔고, 이제 저만의 오솔길도 하나 만들었습니다. 각자 길은 달라도 방향은 같을 것입니다.”

모인 이들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제 마칠 때도 됐고.

“그 방향의 끝에는 좋은 영화가 있을 겁니다. 영화 예술에 공헌하고, 대중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것. 수많은 물줄기가 바다로 향하듯 수많은 길은 한곳으로 향할 겁니다.”

짝짝짝짝짝.

누군가가 박수를 보내자 모인 이들도 박수를 쳤다. 인터뷰를 끝냄과 동시에 시리즈를 완성했다는 축하의 의미도 있었다. 실제로 인터뷰는 이것으로 끝났고.

내가 일어서자 누가 외쳤다.

“단체 사진 한번 찍읍시다!”

“애들도 아니고 무슨 단체사진이야!”

“누가 알아요? 이번에 찍은 사진이 역사에 남을지.”

“묘하게 설득력이 있는데?”

“하하하하!”

뜬금없이 기자들과 단체 사진을 찍게 되었다.

안 그래도 옹기종기 모인 터라 구도는 좋았다.

혁민이가 외쳤다.

“최신성을 외치면 ‘치즈’ 효과가 있어요!”

“굿 아이디어!”

모두 모였다.

다들 밝게 웃던 그때.

“하나, 둘, 셋!”

“최신성!”

찰칵.

사진을 찍었다.

정말 이 사진이 역사에 남을까?

* * *

일주일 뒤.

영화가 개봉했다.

직배사 덕분에 전 세계 동시 개봉이 가능했다.

미국 집에서 아내와 함께 흥행 성적과 초기 반응 등을 살펴보았다. 레저가 한국에서 개봉했을 때와 비슷한 반응이 일어났다.

충격과 쾌감.

관객 반응이 이러했다.

2편의 재미를 몇 배는 뛰어넘는다는 말도 있고.

반응보다 언론이 대서특필했다는 점이 놀라웠다.

블루드 워 시리즈 완결편인데다, 인터뷰 때 분위기가 좋아서 기자 대부분이 호의적으로 기사를 냈다. 거의 모든 신문과 방송의 문화면에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서연이 말했다.

“이번엔 평론이 좀 늦게 올라오네.”

“어떻게 써야 할지 골치가 아픈가 봐.”

“관객들 반응을 보고 방향을 잡으려는 걸지도 몰라.”

“그렇기도 하겠네.”

“오빠 영화 잘못 평가하면 지구적으로 욕먹거든.”

그냥 웃고 말았다.

아내는 정말 영화 재밌게 봤다.

리연이 때문에 집중하기 어려웠는데도 그랬다.

어쨌든 북미 개봉 첫날 성적은 신기록이다.

잠정집계 6천만 달러.

블루드 워 2편 성적은 넘었고, 어벤져스는 물론 아바타 첫날 개봉 성적까지 넘었다. 블루드 워 팬들의 열광적인 지지 덕분이다. 여전히 아바타보다는 스크린 수가 적었으니 조금은 공평하다고 봐야 할까.

첫 주말만 반짝하지 않는다면.

아바타 기록을 깰지도 모른다.

아바타의 전 세계 최종 성적은 29억 7천만 달러.

한화로 3조 4천억 원이다.

과연 넘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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