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7장 작전 세력 추적 (39/56)

제7장 작전 세력 추적

안성욱 씨와 친해졌다.

그의 표정도 한층 밝아졌다. 죽고자 하는 마음을 덜어내면서 마음에 평안이 온 모양이었다.

그와 함께 맨해튼에서 하루를 더 머물렀다.

센트럴파크에도 가고, 도서관 구경도 하고.

그곳에서 유명한 핫도그도 사 먹고.

뉴욕의 브룩클린 브리지에서 우연한 만남.

하나는 감독이고, 하나는 죽으려고 했던 사람.

아무리 생각해도 보통 인연은 아니었다.

그런 두 사람이 만날 확률이 몇이나 되겠는가.

네오스타는 이 대표와 권혁민에게 맡겨 두고.

나와 서연은 안성욱 씨와 함께 한국으로 향했다.

안성욱 씨는 바로 집으로 갔다.

아내가 걱정할까 봐.

그로부터 일주일 후 그가 회사에 찾아왔다.

내 한국 영화 차기작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안성욱 씨가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일반 회사와 분위기가 많이 다르네요.”

“엔터 기업이니까요. 앉으세요. 커피 드시죠?”

“네.”

유희진이 기다렸다는 듯 커피를 가져왔다.

“수호 어디 갔어?”

“연희 씨 매니저로 드라마 계약하러 갔어요.”

“계약 끝나면 회사로 들어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내가 왔으니까 며칠 쉬어.”

“네, 대표님.”

나 대신 로큐 결재를 했던 희진이다.

우아한 정장을 입은 모습이 대기업 비서실 직원 같다.

이제는 포스가 느껴질 정도로 기품이 있다.

안성욱 씨에게 말했다.

“안성욱 씨가 겪었던 일을 좀 각색해서 영화로 만들려고 해요. 그대로 가는 건 아니고 상업영화로 좀 바꿀 겁니다.”

“저나 그 친구 이름은 안 나오겠죠?”

“네. 그 친구분이 보면 놀랄 수는 있을 겁니다. 감옥에 있어서 영화를 못 볼 수도 있겠네요.”

안성욱 씨가 부담이 좀 되는 모양이다.

작전 세력이 대개는 폭력 조직이나 큰손과 연결되어 있으니. 해서 우린 노출이 안 되도록 할 참이다.

“주가 조작이나, 주식 투자. 작전하는 방식 등등 이것저것 알아볼 것이 있어서 불렀어요.”

그가 말했다.

“작전 세력을 추적하는 건 그 분야 전문가도 어렵습니다. 회사가 세력과 짤 수도 있고요. IP 추적 피하려고 계속 사무실을 옮겨요. 계좌는 전부 차명계좌이고, 배신자도 많아서 작전이 늘 성공하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들끼리 배신한다는 거죠?”

“네. 물량 털고 나갈 때 계좌 비밀번호를 바꿔 버리기도 하고, 잠적하기도 하고요. 여러 팀으로 이뤄진 경우는 특히 심해요.”

“그들 자금은 아니죠?”

“큰손 자금이죠. 대개는 운용 자금이 천억 정도예요. 기간은 길면 3년까지 갑니다. 보통 6개월에서 10개월 단위로 흐름을 바꾸거든요.”

컴퓨터를 켰다.

메모 준비를 한 뒤 물었다.

“작전은 어떤 식으로 들어갑니까?”

“리더가 종목 선정하고 설계를 해요. 그다음 멤버 구성해서 팀을 만들죠. 팀이 만들어지면 주가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지 테스트를 합니다. 그런 뒤에 큰 손 찾아가서 포트폴리오 보여주고, 자금 조달한다고 하더군요. 사무실 빌린 뒤에는 물량을 확보할 방법을 찾아요.”

“주가를 급락시키는 거죠?”

“네. 회사와 짠 경우. 신문기사, 공시 등으로 악재를 올려요. 이게 가장 최악입니다. 상장 폐지될 회사거든요. 세력 측이 먼저 그 회사에 접근해서 거래한다고 들었어요.”

“어차피 망한 회사니까?”

“그렇기도 하고, 회사 대표가 나쁜 놈인 경우도 있고요. 어쨌든 악재를 퍼트립니다. 기자들에게 고의로 알려 주기도 해요. 그런 뒤에 주가가 꾸준하게 하락하면 슬슬 매집을 시작하는 거죠.”

범죄단이 범죄 모의하는 것과 비슷했다.

성공 후 팀원 뒤통수를 치는 것도.

영화적 전개가 가능하다.

“그런 다음엔요?”

“매집이 어느 정도 끝나면 작전세력이 팀별로 나누어서 자기들끼리 사고팔면서 주가를 움직이기 시작해요. 동시에 허위공시도 하고, 호재성 뉴스도 유포하면서 슬슬 입질을 하죠.”

“개미들이 작전주인 걸 눈치채지 않아요?”

“눈치채죠. 그런데 작전주인 걸 알고 들어가는 사람도 많아요. 타이밍 맞춰서 팔고 나가면 대박이거든요.”

“안성욱 씨는 작전주인 걸 어떻게 아시죠?”

안성욱 씨가 간단한 차트를 그렸다.

세숫대야 단면 모양이다.

“대체로 작전주 개입 차트가 이런 형태를 띠거든요. 불규칙하게 진행되던 주가가 갑자기 급등하면서 거래량이 폭발해요. 그 뒤로 한두 달 사이에 훅 떨어지죠. 그런데 떨어지는 시점에는 거래량이 안 터져요.”

“작전세력이 안 나갔다는 뜻이네요.”

“그렇죠. 자기들끼리 사고팔면서 주가를 떨어뜨린 겁니다. 10개월 정도 오르락내리락 횡보를 보이다가 갑자기 상한가를 치면서 또 거래량이 터집니다. 차트만 봐선 작전주인지 모를 수도 있어요. 저는 저만의 노하우가 있긴 합니다.”

“어떤 건데요?”

성욱 씨가 자신의 노트북을 꺼내 화면을 열었다.

주식 종목 하나를 골라 보여주었는데, 그냥 봐선 어디에나 있는 흔한 차트다. 그가 차트 한 지점을 확대했다.

“여기 보시면 3년 전만 해도 1,500원에서 2,000원 박스권에 한동안 머물러 있다가 2,800원까지 고점을 찍었죠. 이후로 하락 행보를 보이는데, 여기까진 일반적인 흐름이에요. 그러다가 6개월 지나 이 부분에서 갑자기 급등했어요. 거래량 터지면서 2,750원까지요.”

“이게 작전 개입 신호예요?”

“예. 딱 이전 고점까지 찍었다는 점. 이전 고점에서 물린 개미들이 6개월 내내 팔지 못하고 가지고 있다가 본전까지 올랐을 때 대부분 털고 나갑니다.”

“가지고 있느라 힘들었겠네요.”

“그렇죠. 이게 웬 기회냐 싶을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정확히 이전 고점까지 올랐을까요? 개미는 이렇게 못 합니다. 작전 세력으로 봐야죠. 거래량 폭발한 것도 신호고요.”

“물량을 매집하는 첫 시도군요.”

“맞아요. 그때 이후 개미들이 털고 나가면서 하락하기 시작하는데 거래량은 안 터져요. 세력이 잡고 있다는 뜻이죠. 이후로 계속 하락합니다. 세력들이 팔고 사면서요.”

그림을 짚어 보았다.

“하락한 후 평지처럼 8개월을 쭉 가는군요.”

“예. 작전주 차트는 형태가 다양한데 기본이 이 그릇 모양처럼 생겼어요. 이대로 가다가 갑자기 또 급등해요. 며칠 뒤에 다시 급락하면 개미 대부분이 겁먹고 손절매하고 나가죠. 이 주식이 오를지 어떨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성욱 씨는 이때 버틴다는 거죠?”

“이게 세력이 개미들 흔드는 겁니다. 거래량 안 터지면 이 지점에서 잡고 있어야 해요. 한 달 내내 하락하고 있으니 잡고 있는 게 쉽지가 않죠. 그런데 이후를 보세요.”

세숫대야 모양을 이룬 뒤 등락을 거듭하다가 다시 급등한다. 작전 세력 개입 이후 세 번째 급등이다.

“이 세 번째 상승이 또 신호예요. 그릇 모양의 오른쪽 최고점 위치를 뚫고 올라갔죠?”

“일종의 돌파네요.”

“네. 여기서부터 호재 터지고 난리가 납니다.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점점 올라가요. 현재 차트 등락 폭이 제법 크죠?”

“그러네요.”

“이게 다가 아닙니다. 그다음을 보세요.”

차트가 월 단위로 확장하는 순간.

입이 쩍 벌어졌다.

좀 전의 등락폭이 일순간에 평지가 되어 버린다.

마치 평지를 가다가 히말라야를 만난 듯한!

이전의 급등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

도대체 얼마나 올라야 이런 차트가 나오는지.

“큰 그림으로 봤을 때는 이전의 등락은 등락도 아니었던 겁니다. 1,500원에서 2,500원 사이의 등락으로 개미들 농락하던 작전 세력이 이 산맥 같은 지점 초입에서 본격적으로 작전을 시작해요. 무려 2만 3천 원까지 오릅니다.”

“거래량도 엄청 터졌네요.”

“네. 전에 몇 번 급등했을 때의 거래량을 압도해요. 여기서 세력이 털기 시작하는데, 따라온 개미들도 더 욕심내지 말고 여기서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 급등 때 매수하고 들어온 사람들은 물리게 돼요.”

“직후에 상당히 떨어지네요.”

“이 뒤로 다시 이전만큼 오르기는 하지만 몇 달 내내 하락해서 개미들은 겁을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앞날을 모르니까요.”

이 종목의 이후 주가는 이전처럼 1,500원대로 빠지진 않고 13,000원에서 19,000원까지 등락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 종목은 아직도 세력이 있나 보군요. 최근 석 달 동안 급등한 걸 보니까요.”

“아니요. 세 번 더 급등한 뒤에 물량 대부분을 매도하고 빠진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급등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거래량이 없어요. 이 기업의 진짜 호재일 겁니다.”

사후 분석이야 누가 못하겠나.

사람이 불안한 것은 미래를 모른다는 점이다.

불안하니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고.

“작전 세력들은 사람 마음을 흔들어서 돈을 버는 거군요. 팔지 않으면 안 되게끔.”

“그렇죠. 이런 말이 있습니다. 주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매매 계획과 멘탈이라고요. 기법은 그다음이라고들 하죠. 매매 계획보다 멘탈이 더 중요하고요.”

“작전주를 잘 이용하면 돈은 벌겠네요.”

“그건 맞아요. 하지만 데이 트레이드는 성공 못 합니다. 하루 수익률 1%에서 3% 먹으려고 하는 게 초단타입니다. 하루에 100을 벌었네. 200을 벌었네 하며 좋아해도, 그게 1년 내내 꾸준할 수가 없잖아요. 5일을 잘 벌다가 하루에 천만 원 날리면 무슨 소용입니다. 게다가 스트레스 받아서 병까지 얻어요.”

안성욱 씨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장기 투자는 권하고 싶습니다. 워렌 버핏처럼 20년 30년씩 가지고 있으라는 게 아니라 한 5년은 보고 투자하라는 거죠. 기업 가치만 좋으면 분명히 오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안 하는 이유가 있죠.”

“오래 걸려서요?”

“그것도 그렇지만 재미가 없어서 그래요. 주식 단기 매매는 중독성이 매우 강해요. 내 돈을 의미하는 숫자들이 게임머니처럼 여겨진다면 위험 신호입니다. 주가 흐름에 매몰되기 시작하면 정신을 못 차리게 되거든요. 돈을 벌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이 들면 오판하게 됩니다. 거기에 욕심까지 더하면 매도 시점 놓치고 말죠.”

맞다.

5년 내내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고 치자.

그 5년간 모은 돈을 한 번에 날릴 수도 있다.

안성욱 씨가 다시 말했다.

“좋은 종목 주식을 사 놓고 그냥 두면 됩니다. 매월 월급에서 한 10만 원씩 투자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공시가 어떻든, 시황이 어떻든 일절 쳐다보지도 말아야 해요. 그런 거에 휘둘리는 회사는 애초에 사질 말아야 하는 거죠.”

나도 안성욱 씨도 웃어 보였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다는 거죠?”

“네. 한국에선 제대로 된 장기 투자자가 10%밖에 안 됩니다. 그 외에는 주가가 오를 때까지 눈물을 머금고 붙들고 있는 거고요. 장기로 시작했다가 단기로 가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단기가 확실히 재미는 있거든요. 그런데 재미가 우선이 되면 주객이 전도되는 거죠. 돈 벌려고 하는 건데.”

주식 해서 돈 벌었다는 사람이 별로 없다.

작전세력 등 프로 중의 프로에 근접한 개미나 돈을 벌었겠지. 그런 분들은 깡통을 수도 없이 찼다고 한다. 다 경험이다. 운으로 수익을 내도 운이 계속 갈 것도 아니고.

“일반 투자자가 알아야 할 점이 있을까요?”

“공식은 있죠. 무조건 거래량을 봐라. 상승 후에 흘러내리는 거, 폭락하는 거 신경 쓰지 마라. 세력이 털지 않은 건 폭락이 아니다. 구름대를 뚫고 들어가는 지점이 매수 지점이다.”

“구름대는 뭐죠?”

“이 차트를 보세요.”

차트에 긴 라인들이 몇 개 있다.

그 중 라인과 라인 사이를 색칠한 부분이다.

빨간 구름과 파란 구름처럼 보인다.

“이 색깔 부분이 선행스팬1과 2의 구간입니다. 선행스팬은 현재까지의 주가 움직임을 토대로 미래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라인입니다. 라인 1은 26일을 앞서 표시한 거고, 라인 2는 26일까지 지난 52일간의 주가 중간값이죠. 상승 시에는 구름대 위에 주가가 있고, 하락 시에는 구름대 아래에 위치합니다. 이 구름대가 두꺼우면 상승과 하락의 저항이 커요.”

차트를 보니 정말 그랬다.

구름대가 두꺼우면 뚫고 오르다가 만다. 하락 시에는 구름이 두꺼우니 더 안 내려가고 반등한다. 구름이 얇으면 상승과 하락의 기세도 약하다. 구름대를 상승 돌파했는데도 얼마 못 가고 떨어지는 걸 보니.

“어쨌든 구름대를 뚫고 오르면 상승 신호군요.”

“맞아요. 매도 시점도 마찬가지입니다. 주가가 구름을 하향 돌파할 때 앞쪽 구름대가 꼬여 있어요. 선행스팬 1과 2의 라인이 역전되는 경우인데 이게 나오면 반드시 팔아야 합니다. 장기간 하락할 가능성이 매우 크거든요. 차트는 지표입니다. 차트 보고 매수, 매도하는 사람이 많아서 흐름에 따르는 게 좋아요.”

안성욱 씨가 말하는 것들을 대부분 메모했다.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대사로 칠 것 아닌가.

그가 다시 말했다.

“개미들도 이론은 잘 알아요. 그런데 마음처럼 안 되죠. 주가가 어떻게 움직일지는 신도 모릅니다. 그냥 장기 투자로 묻어 두는 게 가장 속 편합니다.”

“기법을 몰라도 되니까요?”

“그렇죠. 전혀 알 필요 없습니다. 제가 인생을 다시 살게 된다면 매월 월급의 10% 정도만 꾸준하게 주식을 사들일 것 같네요. 요즘 경기가 조금 살아나는 분위기라서요.”

마지막으로 하나 더.

“좋은 기업은 어떻게 알아보죠?”

“우선 회사의 부채비율과 PER를 봐야 해요.”

“그 유명한 PER네요.”

“네. 주가수익비율이라는 뜻입니다. 시가총액을 당기순이익으로 나눈 수치죠. 간단히 말해서, 올해 번 돈으로 몇 년이 지나면 이 회사를 하나 더 살 수 있느냐는 뜻입니다. 한 주가가 6,6000원이고 1주당 수익이 12,000원이면 PER는 5.5입니다. 이 회사를 하나 더 사는데 5년 반이 걸리는 거죠.”

“PER가 100이면 100년 걸린다?”

“그렇죠. 종목을 고를 때는 PER 10 이하가 좋아요. 찾기가 쉽지 않지만요. 부채율은 100% 미만이 좋습니다. 그다음 영업이익률인데 매출의 10%면 좋은 회사입니다. 매출은 엄청난데 영업이익률이 3%밖에 안 되면 성장이 더디겠죠. 일단 이 정도만 분석하고 매수 시점을 찾으면 될 겁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까?”

“재무제표도 보면 좋고요. 기본적으로 제3자 유상증자. 전환사채. 인수권사채 등이 들어가 있으면 무조건 피해야 해요. 좋은 회사는 이런 게 안 보일 겁니다. 또 PER가 좋은 회사는 폭락하는 경우도 별로 없어요. 매수 시점만 잘 잡아서 들어간 뒤 그냥 잊고 살아도 될 겁니다. 누구나 아는 우량주를 사셔도 길게 보면 오를 겁니다.”

안성욱 씨가 물을 마셨다.

그가 하나 더 있다는 듯 말했다.

“아, 그리고 테마주가 있네요. 장기투자자는 이런 건 쳐다보지도 말아야 합니다. 같은 테마의 대장주가 매력이 있긴 하지만 테마주라는 게 관심이 꺼지면 주가가 떨어집니다. 정치인 테마주 이런 거요.”

오늘은 이 정도만 하기로 했다.

남은 건 영화에 필요한 상황 수집이다.

안성욱 씨 같은 분들이 한둘이겠나.

“전에 IT 회사에 다니셨다고 하셨죠?”

“네. 재무팀에서 일했습니다.”

“회계와 자금운용은 어느 정도 아시겠네요?”

“자격증만 없습니다.”

안성욱 씨 눈이 빛났다.

내심 기대를 했던 모양이다.

“제 개인 재무담당은 어떻습니까?”

“비서 말입니까?”

“비슷합니다.”

“저는 뭐라도 좋습니다.”

“그러세요. 100억 선에서 안성욱 씨가 제 자금을 자유롭게 운용해도 됩니다. 연봉 외에 자금운용 수익금의 3%를 수수료로 드릴게요.”

“예?”

“실적이 생긴다면 천억까지도 가능합니다.”

안성욱 씨의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질 않는다.

다시 말했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 자금도 있습니다.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팀을 꾸리셔도 돼요.”

“손실이 날 수도 있어요.”

“펀드매니저는 수백억 굴리면서 3% 수익을 내면 잘한다고 보겠죠? 큰손들도 그런 식으로 수익을 내고요. 다만 자금 규모가 커서 3%라도 적지 않은 돈이죠.”

“그렇긴 한데…….”

“저도 그렇게 하려고요.”

일어나 악수를 청했다.

안성욱 씨가 내 손을 잡았다.

“부탁 좀 드릴게요.”

“고맙습니다, 감독님.”

“제가 고맙죠.”

안성욱 씨가 눈물이 쏟아질 듯한 얼굴로 인사를 하곤 사무실에서 나갔다. 무리한 투자는 안 할 터다. 일반 개미가 수익률 30%를 먹겠다고 그 난리를 친다. 그러나 큰 자금으로 분산투자해서 낮은 수익률을 보고 가면 손실 볼 일이 없다.

100억을 굴려서 10억을 벌면.

안성욱 씨 수익은 3천만 원이다.

본인이 주식 할 때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빠르게 빚을 갚을 수 있다. 나는 안정적인 자산 운용을 해서 좋고.

얼마 뒤 수호가 회사로 왔다.

무슨 일인가 싶은 얼굴이다.

수호에게 문서 하나를 내밀었다.

“사람 좀 찾아. 이름 김진국. 골드문 홀딩스 대표야. 부친 김성철은 부동산투자사인 신화개발 회장이고. 김성철 집 주소는 거기 있어. 김진국은 찾아내야 한다. 본가를 비롯해 보유한 오피스텔이나 사무실 등도.”

“뭐하는 작자입니까?”

“작전 세력. 필요한 게 있으면 회사 사이버 보안팀에 가서 부탁해라. 팀을 꾸려도 좋아. 이참에 네 군대 동기 중 믿을 만한 친구를 불러서 정보팀을 구성해도 좋고.”

“알겠습니다.”

“놈들이 어딘가에 사무실을 마련해서 주가를 조작하고 있을 거야. 로큐가 추적하는 거 알지 못하게 하고. 그리고…….”

“말씀하십시오.”

“큰손 자금으로 움직이는 놈들이야. 뒤에 조폭이 있을 수 있다. 특히 부동산으로 돈을 번 놈의 부친이 조폭일 가능성이 커. 강남역 조폭들 수소문해서 그쪽 관련도 알아봐. 넌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 신상 정보는 내가 알아낼 수 있으니까.”

“어떻게 말입니까?”

“그런 게 있어.”

수호가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뭐 걸리는 게 있어?”

“무슨 작전 세력입니까? 특수부대 출신입니까?”

뭔 소리야?

“주가 작전 세력. 아까 주가 조작한다고 했잖아.”

“아, 그런 것도 있습니까?”

“주식 공부할 때 안 배웠어?”

“우리 회사 주식만 봤지 말입니다.”

수호 녀석은 잘 나가다가 삑사리가 난다.

뭐, 일은 워낙 잘하긴 하지만.

…잘한다기보다는 집요한 건가.

“찾을 수 있겠지?”

“친구들 좀 동원해야겠습니다.”

“절대 로큐가 드러나선 안 된다.”

“걱정 마십시오. 친구들이 할 겁니다.”

수호가 듬직한 모습으로 사무실에서 나갔다.

일이 커지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내친걸음이다.

이번 일의 과정을 영화 내용에 담는다.

통쾌한 영화 한번 만들어 보자.

* * *

사흘 내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작전 세력에 당한 이들이 상당히 많았다. 작전주인 걸 아는 사람도 있고, 몰랐던 사람도 있고.

사실 안성욱 씨도 작전 세력의 일부였던 셈이다.

그의 말대로 돈에 눈이 멀어 동조자가 된 거였다.

그래서 죄책감이 컸던 거고.

개미들이 당한 온갖 사연과 상황.

그냥 잘못 투자한 것도 있으나 욕심내다가 망한 경우가 태반이었다. 수익을 내는 사람들은 투자 원칙을 철저히 지킨 이들이다. 1만 원에서 사서 1만 3천 원에 판다. 더 오르건 말건 일단 판 뒤에는 후회도, 미련도 안 가진다.

누가 보면 불로소득을 노리는 인간들이라 욕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 보진 않았다. 직장생활을 해서 부자가 되는 게 너무도 어렵기 때문에. 실패를 하더라도 재테크 경험을 쌓아야 나중에 부자가 될 수 있다. 직장까지 때려치우고 투자만 하다가 실패하는 게 문제지.

주식 게시판에 올라오는 몇몇 조언이 그랬다.

주식으로 대박 나도 회사 그만두지 말라고.

깡통을 차는 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말도 있다.

인생 길게 보고 가자는 응원도 있고.

안성욱 씨는 영화 주인공 모델로 적합했다.

착한 주인공이 사기당하는 게 아니다.

자기 욕심 때문에 과욕을 부린 거 아닌가.

좀 전형적이긴 하지만 돈만 밝히던 인간이 벼랑 끝에 몰리고 나서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해 가는 것.

더구나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식 투자는 삶의 일부로 볼 수 있다. 현대인 3부작으로도 잘 맞다. 사람들이 주식 이야기만 나오면 민감해지는 것도, 그만큼 겪어 본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이건 영화에 대한 공감 부분이 될 테고.

주식 관련한 사연과 사건들을 수집한 뒤.

주식 차트를 살펴보았다.

내 능력으로는 작전주를 찾을 수가 없었다. 세숫대야 모양의 차트가 있긴 했으나 설명을 들은 것과 같은 행보를 보이지도 않고. 인터넷에 보니 금감원 감시가 심해서 이전처럼 눈에 띄는 작전을 안 한다고 하더니 그런 모양이다. 조금만 먹은 뒤 먹잇감을 바꾸는 경우도 있는 것 같고.

며칠 뒤 안성욱 씨가 회사로 왔다.

내 재무 비서이기에 정식 직원은 아니었다.

직원이 된다면 네오스타 소속이 낫기도 하고.

한데 그의 표정이 좋았다.

“아내분께 말씀드렸나 보네요.”

“네. 아내와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네요. 열심히 살기로 했습니다. 주식 투자도 다시 하고요.”

고개를 끄덕였다.

주식 투자를 다시 하겠다는 말은 일확천금을 노리겠다는 말이 아니다. 실력이 있는데 애써 멀리하는 것도 그렇고.

굴레에서 벗어나겠다는 말이겠지.

한층 성숙한 사람의 모습이다.

“그런데 작전주 찾는 게 쉽지 않네요.”

“그럴 겁니다. 제가 보여 드린 건 표시가 나는 차트였고, 대부분 눈에 잘 안 띄어요. 작전 기간이 길기에 매집 기간에는 웬만해선 안 보이게 하죠. 문자로 말씀하신 김진국이 자료를 좀 가져왔습니다.”

“어디 봐요.”

성욱 씨가 김진국에 대한 자료를 수집해서 가져왔다.

이전에 작전했던 종목들. 김진국이 벌였던 사업체들.

자주 가는 텐프로 룸살롱과 고급식당들.

“사실 가져온 자료는 별 도움이 안 될 겁니다. 작전 세력들이 작전을 끝내면 흔적을 지우거든요. 김진국이도 마찬가집니다. 심지어 이사까지 했어요. 전 처가 있는데, 그분도 진국이 놈이 어디에 사는지 모릅니다.”

“애인은 있겠죠?”

“한둘이 아닐 겁니다. 작전이 끝나면 워낙 돈을 많이 버니까요. 제가 공범으로 작전한 게 석 달 전입니다. 금감원 추적 피해서 한두 달은 잠적해 있을 거예요.”

“지금은 하지 않겠네요.”

“그건 모릅니다. 워낙 기간이 오래 걸려서 이전 작전 말미에 새 작전 공사해 놓고 빠졌을 수도 있어요. 작전 세력은 그리 많지 않아요. 큰손이 몇 명 안 되거든요.”

“작전 세력이 많지 않으면 차트 보고 김진욱이 가담한 세력을 찾을 수도 있겠군요.”

“그렇죠. 우량주 말고 하나씩 확인하면 찾을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 작전 세력이 큰돈을 벌었기 때문에 큰손 자금 없이 자기들 돈으로 하고 있을 수도 있어요.”

“리더는 빠졌을 겁니다.”

“그럴 수도 있고요.”

현실이 영화 같다고 봤을 때. 큰 건을 끝내면 리더는 대개 빠진다. 조무래기들이 욕심을 부려 한탕 더 해먹으려다 꼬리가 밟히는 영화 내용이 더러 있다.

남의 돈으로 주가 조작해서 번 돈이고, 팀이 돈을 나누기에 그 액수가 그리 많지는 않을 터다. 해서 이번에 번 돈으로 제대로 해먹으려고 들겠지. 한 명이 주가를 조작할 순 없고.

“한번 찾아보죠. 수상한 게 있는지.”

“그러려고 왔습니다.”

안성욱 씨와 함께 호텔로 이동했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추적팀을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회사에 성욱 씨가 들락날락하는 게 알려질 수도 있고.

* * *

호텔에서 꼬박 나흘을 지냈다.

차트만으로 작전주 찾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비슷한 흐름이 있으나 확신이 어려웠다.

결국 나도 안성욱 씨도 지쳐 나가떨어졌다.

그때 최수혁이 들어왔다.

“고생들 하시네요. 여기 맥주 좀 드세요.”

“고마워.”

셋이서 침대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내 비서들이 눈치도 참 빠르다.

맥주 떨어진 건 또 어떻게 알고 사 오는지.

“시놉시스는 잡아 봤어?”

“기본 줄거리만 잡았어요. 이번 추적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동력이 되는 사건은 차차 잡아가야죠.”

“어떤 영화 톤이 좋을 거 같아?”

“글쎄요. 피해 투자자가 주인공이라면 좀 무거울 겁니다. 형사라면 좀 경쾌하게 갈 수 있고요.”

“후자가 좋지?”

“저야 그렇죠.”

일반인이 주인공이면 혼자 작전 세력과 맞서 싸우기 어렵다. 형사가 주인공이면 시원하게 나아갈 수 있다.

“피해 투자자와 형사의 관계. 형사의 환경적인 갈등 구조. 악역의 캐릭터성. 모두 기존 영화와 좀 달라야 한다.”

“당연하죠. 가령 형사가 뇌물 사건으로 징계 먹고 잘릴 위기에 있을 때. 이 사건을 맡습니다. 좀 뻔하지만요.”

“경찰 옷 안 벗으려고 사건 맡았는데, 나쁜 놈들 실체를 알고 분노한다 이거지? 위에선 사건 수사 못하게 막을 거고. 그래서 또 잘릴 위기에 처하고. 그럼에도 끝까지 간다.”

“네.”

내 말에 수혁이가 싱글벙글 웃었다.

권선징악이 뻔한데도 선호하는 이유가 있다. 관객의 선한 본성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캐릭터 전형성도 마찬가지다. 익숙한 것이 나오면 감정이입이 쉽고 스토리에 집중하는 장점이 있다. 다만 전에 없던 인물이라야 한다.

“피해 투자자와 형사의 관계는?”

“형사가 뇌물을 받은 이유. 피해 투자자의 사건을 맡은 이유 등등이 중반까진 안 밝혀져요. 그러다 과거에 형사가 피해 투자자에게 투자를 맡겼다가 돈을 좀 날려 먹었다는 게 드러납니다. 그거 메꾸려고 뇌물을 받은 거였죠. 투자자도 손해 본 거 복구하려다 제대로 당한 거였고요.”

“형사의 정의가 좀 약해지는데?”

“형사가 날려 먹은 돈은 얼마 안 돼요. 주인공 형사는 사건 수사하면서 죽은 사람들까지 있다는 걸 발견합니다. 그때부터 자신의 손해 때문이 아닌, 근본을 뽑으려 하는 거죠. 모든 주가 조작 피해자들의 대리인으로서요.”

“그래, 그게 낫네.”

죽은 사람들이란 말이 나왔을 때 성욱 씨를 봤다.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듣기만 했다.

수혁이는 안성욱 씨 사정을 모르니까.

“이대로 가면서 캐릭터에 디테일을 만들어 볼게요.”

“전형성을 조금만 비틀어. 사건과 관계는 단순 명쾌하게. 주인공에게 공감이 가야 감정이입이 되니까.”

“그럼요.”

수혁이가 짠 캐릭터와 줄거리를 내가 각색한다.

두 사람의 아이디어가 모여서 영화가 된다.

다시 차트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일주일이 지나갔다.

한국 주식시장 종목 수는 2천 개가 넘는다. 그중 주가가 높은 종목을 빼고 찾았음에도 발견하지 못했다. 작전주라는 게 급등 전 행보 중이라면 찾기 어렵다.

안성욱 씨가 말했다.

“세력주는 꽤 많은데 소규모 작전주는 안 보이네요. 의심 가는 회사는 네 곳 있었습니다. 다 코스닥 종목인데 그 중 하나는 700원이던 주가를 3,000원까지 올려서 무상증자하고, 대주주가 그 지분을 할인가격으로 매각한 게 있더군요. 호재성 기사 뜨고 난 뒤 거래량이 좀 있었는데 전량 소화되었어요.”

“작전주로 보세요?”

“대주주가 무상증자지분을 매각한 게 수상한 거죠. 약 80억 대인데 의심할 만합니다. 감독님 말씀대로 리더는 빠지고 팀원 일부가 작전을 했으면 이런 양상이 있습니다. 회사 대주주와 이들이 딜을 했을 겁니다.”

“이게 나중에 오른다면 확실하네요.”

“그렇다고 봐야죠. 일거에 매집한 상황이니까요. 이런 경우는 한 방에 터뜨리고 발을 뺄 겁니다. 누가 봐도 작전주로 보이거든요. 그래서 두 번은 못 올려요.”

성욱 씨가 말한 회사를 분석해 보았다.

동물 줄기세포 관련 회사다. 호재가 솔깃하다.

반려견 암 치료를 위한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는 기사.

재정과 실적이 별로인데 호재로 차츰 상승한 상황.

증권 방송에서도 한 번 언급되었고.

“이 회사 망할 것 같네요.”

“그럴 겁니다. 연구가 길어지다 보니 재정이 악화되고 실적도 없는 거죠. 회사 문 닫으려고 하는데, 세력이 딜을 넣은 겁니다. 크게 먹고 한국 뜨자는 식으로요.”

“언제 오를 것 같으세요?”

“길면 잡힙니다. 지금 행보를 보니 길어야 6개월일 겁니다. 이 작전 세력이 그놈들이 맞을지는 모르겠네요.”

성욱 씨가 차트를 가만히 보다가 말했다.

“개미 일부가 작전주임을 눈치채고 조금씩 매수하는 게 보이네요. 첫 호재 이후로 호재가 안 떴는데 꾸준히 상승한 걸 보면요.”

“등락폭이 적으면서 계속 상승해서요?”

“네. 알고도 모른 척 같이 가고 있는 겁니다.”

말을 듣지 않고 보면 알 수가 없다.

호재 때문에 유연하게 상승하는 것으로 보이니까.

가난한 회사가 연구에 성공해서 투자자가 믿고 기다리는 양상이다. 그런데 그 호재가 가짜라면 작전인 거다.

성욱 씨가 말했다.

“비슷한 회사들이 몇 곳 있었으니 다 확인해 보죠.”

다시 성욱 씨가 본 회사들을 분석했다.

모두 3개 회사였다.

줄기세포 회사보다는 의심이 덜 간다.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호텔에서 나가 저녁 식사를 했다.

소주를 곁들여 순댓국을 먹었다.

“멘탈만큼 중요한 게 또 있을까요?”

“마인드 콘트롤도 중요하죠. 실패하는 이유는 늘 욕심 때문입니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의 차이라고 할까요. 그놈의 ‘조금 더’가 항상 문제예요.”

“이를 테면요?”

“급등주 올라탔다가 수익 나면 바로 빠져야 합니다. 그런데 욕심이 생겨서 더 올라가길 기다립니다. 그러다 하락하면 손절하고 빠져야 하는데, 반등하면 손절해야지. 이러고 기다리죠. 그런데 웃기는 건. 막상 반등을 하면 수익에 욕심이 생겨서 매도를 못 해요.”

“아이고!”

내 추임새에 성욱 씨가 쓰게 웃었다.

“딱 느낌이 더 오를 것 같거든요. 그러다 훅 빠지면 또 반등하길 기다리고요. 매매원칙이 무너진 겁니다. 원칙이 무너지면 고수도 어쩔 수가 없어요. 열 번, 스무 번을 잘하면 뭘 합니까. 한 번에 마이너스가 되는데.”

“수익이 있어도 문제가 있죠?”

“그럼요. 한두 번 큰 수익을 내면 자신감이 붙어요. 천만 원 투자해서 1억 벌었다고 합시다. 다음엔 1억 투자해서 10억 벌어야지.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대범해지는 거죠. 그래서 몰빵까지 가는 우를 범하고 말죠.”

“그건 고수도 어쩔 수 없나 보네요.”

“사람이니까요. 그런 분들이 호되게 당하고 난 뒤에 방송하고 책 내고 그러는 거예요. 이론은 빠삭한데 마인드 콘트롤은 평범한 인간 수준인 겁니다.”

“이런 개미의 속성을 작전 세력들이 이용하는군요.”

“애초에 손에 쥔 패가 다른 거죠. 세력은 투 페어 들고 시작하고, 개미는 노 페어 들고 뭐가 뜨기를 기다리면서 베팅하는 것과 다를 거 없습니다.”

이런 심리를 영화에 묘사할 수 있으려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쓰라린 공감을 할 것 같다.

인간 본성을 표현하기에도 좋고.

현대인 3부작의 공통 주제가 인간 본성이니.

식사를 끝냈을 때였다.

수호에게서 문자가 왔다.

[대표님. 팀을 구성했습니다.]

[어디야?]

[대표님 계시는 호텔 뒤쪽 포장마차입니다.]

[술 마시고 있어?]

[아닙니다. 떡볶이 먹고 있습니다.]

성욱 씨는 호텔로 보내고 혼자 만나러 갔다.

호텔 뒤쪽에 포장마차가 늘어서 있다.

어느 포장마차인지 물어보려던 그때.

한 포장마차에서 수호가 나왔다.

그 뒤로 웬 거한들이 줄줄이 내다본다.

손에는 어묵 꼬치와 이쑤시개를 들고.

수호도 덩치가 큰데 이들은 더 컸다.

모두 네 명. 하나같이 근육질.

네 명이 어색한 모습으로 내게 인사를 했다.

누가 봐도 특수부대원들이다.

수호가 말했다.

“제 후배들입니다. 경찰 시험 떨어진 애들입니다.”

“그 말씀은 왜 하십니까.”

“우리 회사가 경찰보다 나아. 신고 드리도록.”

“알겠습니다.”

거한들이 하나둘 나섰다.

무슨 해군참모총장을 맞이하는 듯한.

손을 내밀자 한 명이 절도 있게 내 손을 잡았다.

“처음입니다.”

처음입니다? 처음 만난다는 말이 아니고?

그다음 수호 후배도 한 발 나섰다.

“처럼입니다.”

이건 또 뭐지?

다음 친구가 나섰다.

“참입니다.”

마지막 친구가 얼굴이 붉어진 채 나왔다.

왜 얼굴이 상기된 건지 알 것 같다.

“그쪽은 이슬 씨?”

“그렇습니다.”

마지막 친구 얼굴이 시뻘게졌다.

그 옆에서 친구들은 웃음을 참고 있고.

수호는 팔짱을 낀 채 낄낄댄다.

내가 오는 동안 코드 네임을 만들었나 보다.

“이슬 씨는 가위바위보 해서 졌나 봐요?”

“그렇습니다. 아주 죽겠습니다!”

“하하하하!”

결국 웃음보가 터졌다.

수호가 후배들 데리고 장난친 모양이다.

처음. 처럼. 참. 이슬.

이슬이란 이름을 가지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 네 명이 가위바위보를 했을 테고. 이슬이란 이름이 묘하게 어울리긴 하네. 얼굴은 순하고 몸은 우락부락하니.

“이슬 씨를 비롯해서 다들 잘해 봅시다.”

“알겠습니다!”

다섯 명과 이동했다.

밥이라도 사 먹이려고 식당으로 향하는데 퇴근하는 직장인들이 하나같이 우릴 보았다. 근육질 5명이 골목을 활보하고 있으니 그림이 희한하다. 어딜 가도 눈에 띄는 친구들이 모여서 무슨 정보팀을 하겠다는 건지.

고깃집에 들어갔다.

수호가 앉으며 말했다.

“삼겹살 먹자.”

“예! 선배님!”

수호 이 자식이 누가 소고기 먹자고 했나.

군기가 안 빠진 건 아닌 거 같은데 다들 꼿꼿하게 허리를 세웠다. 원래 꼿꼿했던 수호는 늘어져 있고.

여기가 무슨 생활관인 줄 아나.

“편하게들 앉아요. 수호 너도.”

“저는 이게 편하지 말입니다. 너희도 편하게 앉아.”

“알겠습니다!”

어휴. 보는 내가 다 불편하다.

곧 고기가 나왔다.

수호에게 물었다.

“바로 아래 후배야?”

“몇 기수 아랩니다. 두 명은 놀고 있었고, 두 명은 노량진에 있던 걸 잡아왔습니다. 로큐에 입사할 수 있다고 했더니 바로 짐 쌌지 말입니다.”

“너처럼 연예인하고 사귀려고?”

“아닙니다. 보안팀에서 일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대표님 경호 업무도 담당합니다.”

“나쁜 놈들과 싸울 일 없어. 우린 추적만 하는 거야.”

“싸움 안 합니다. 후배들이 이래 봬도 도청과 감청, 수색과 추적 경험이 풍부합니다. 해군 특수전전단은 머리 나쁘면 못 들어갑니다.”

“군에서 그런 것도 배워?”

“작전에 필요한 건 다 배웁니다.”

이 고급 자원을 고용해도 되나 싶다.

하기야 회사에 명문대 출신이 허다하긴 하지만.

식당 아주머니들이 겁을 먹었다. 이들은 조폭이고, 수호는 행동대장, 난 말라깽이 안경쟁이 두목.

수호가 다시 말했다.

“이제 말 놓으십시오.”

“너도 말 편하게 해. 언제까지 그럴래?”

“대표님 앞에서 군기 빠질까 봐 그렇습니다.”

그런 뜻이 있었나.

혹여나 날 편하게 대하다 말실수를 할까 봐.

고기를 먹으면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군사 관련 빼고 본인들이 주장하는 특기가 있었다.

처음은 통신. 처럼은 추적.

참은 위장. 이슬은 제압.

이 거구가 도시에서 위장을 해 봐야 얼마나 하겠나.

특수부대원이 따라다니면 바로 도망가겠구만.

아무튼 든든하긴 했다.

일을 배우면 수호처럼 유능한 직원이 될 것 같다.

쓰임새는 많다.

나와 소속 배우들 경호. 촬영장 진행. 미국 스튜디오 관리. 특수요원 및 총격전 감수. 그리고 전문 스턴트.

5명에게 말했다.

“뭘 하는 건지 수호에게 들어서 알 테고. 첫 번째 임무는 누가 조사하는지 모르게 조사하라는 거야. 그 덩치로 안 들키는 것만으로 인정할게.”

“안 들킵니다.”

“그래.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회사 사이버 보안팀에 물으면 알려 줄 거야. 해킹을 해서라도 알아낼 거니까. 필요한 자금은 수호에게 요청하고.”

“예.”

“두 팀으로 나눠. 한 팀은 김진국. 한팀은 김성철. 조폭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큰손은 누구인지. 연관된 작전 세력이나, 관련된 정치인과 기업들도 알아낼 수 있으면 알아내. 그리고 명심해. 우린 민간인이지 수사기관이 아니야. 오바하지 말고 움직이도록 해. 탐정 놀이도 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자, 마시자.”

다들 소주잔을 들었다.

단숨에 소주를 들이켰다.

고기를 18인분이나 먹어치운 뒤 식당을 나섰다.

수호팀에게 말했다.

“조폭 무시하지 마라. 다치는 거 보고 싶지 않아.”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상황도 고려합니다.”

“그래.”

수호와 4명이 내게 인사를 하고 나란히 걸어갔다.

저 거구들이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을는지.

난 호텔로 들어갔다.

이후 일주일 동안 호텔에서 빈둥거렸다.

차트 확인도 하고, 안성욱 씨에게서 그간 겪었던 주식 관련 이야기도 듣고. 그가 겪은 모든 일이 영화 소스였다.

그러다 연락이 왔다.

김진욱이 작전 세력 일원과 만난 것 같다며.

추적의 첫 단계를 일주일 만에 해낸 거였다.

* * *

내 차 안 조수석에 수호가 앉아 있었다.

수호팀이 일주일간 했던 일을 문서로 기록했다.

탐정 행위는 불법이지만 처벌을 감수했다. 합법적인 조사로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가 없어서. 추적 과정에서 나온 증거는 경찰에 넘기지 않는다. 우린 사람만 찾을 뿐이다.

수호가 말했다.

“강남역 웨이터에게서 김진욱이 출입하는 룸살롱부터 알아냈습니다. 돈 펑펑 쓰는 VIP라 모르는 웨이터가 없더군요.”

“김진욱과 마주친 건 아니지?”

“아닙니다. 사진만 찍었습니다. 놈이 룸살롱에 들어갔을 때 놈의 차에 GPS 위치추적기를 붙여 놨죠. 자주 가는 곳은 모두 다섯 곳이었습니다. 자택. 애인 집. 룸살롱. 일식당. 그리고 테헤란로에 있는 오피스텔이었습니다.”

“오피스텔에 들어가진 못했을 거고.”

“아닙니다. 일부 확인했습니다.”

“어떻게?”

“이걸 보십시오.”

수호가 스마트폰에 있는 동영상을 보여 주었다.

누군가가 몰래 찍은 영상이다. 젊은 남자 하나가 그릇을 받고 돈을 내민다. 금세 문이 닫혔는데 짧지만 오피스텔 내부가 잠깐 보였다. 남자 세 명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 옆에는 커튼이 있고. 꽤 넓은 오피스텔이다.

“이 커튼 안쪽이 작전 작업실일 수도 있겠네.”

“그렇습니다.”

“어떻게 찍었어?”

“오피스텔 근처 중국집 배달원에게 김진욱 사진을 보여 주니 알더군요. 몇 호실에 사는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무실에서 음식 주문이 왔을 때 돈 좀 주고 부탁했습니다. 스마트폰을 배달원 셔츠 주머니에 후면 방향으로 꽂아 놨습니다. 앞면은 검은 테이프로 빛의 노출을 숨겼고요.”

커튼만으로는 작업장인지 알 수 없다.

현재 작업 중인지도 알 수 없고.

“김진욱이 회사에 대해서는?”

“골드문 홀딩스는 금융투자 컨설팅 회사였습니다. 투자 대행 실적이 있는데 실적과 비교하여 자금이 유난히 많습니다. 작전으로 번 돈일 수도 있습니다.”

“자금 세탁 회사일 수도 있겠네.”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 외 이상한 점은?”

“의심 가는 점은 딱히 없었습니다.”

“김성철에 대한 건?”

“아직 조사 중입니다만, 김성철 회장은 조폭이 아닙니다. 조폭과도 관련이 없었습니다.”

내가 너무 영화적으로 봤던 모양이다.

사건이 워낙 영화 같아서.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 벌인 일일지도 모르겠다.

문서를 덮었다.

“큰손을 찾아야 한다. 자금이 막혀야 작전을 못해. 큰손이 기업의 사장이거나, 조폭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마. 명동에서 사채업 하는 할머니일 수도 있고, 그냥 건물주일 수도 있어. 심지어 전당포 주인으로 위장했을 수도 있다.”

“돈이 그렇게 많은데도 말입니까?”

“그래. 수소문하면서 그런 사람들을 놓치면 안 돼. 지금까지 큰손이 노출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극히 몸조심하는 사람들이야. 사건 터지면 바로 빠져나간다. 작전 세력은 얼굴도 모를 거고. 아마 설계자인 리더는 얼굴을 알 거다. 직접 만났을 테니까.”

“그 리더도 잡아야 하는 거네요.”

“어려울 거야. 무리하지 마. 누가 추적하고 있다는 것만 눈치채도 함부로 작전을 못 걸어. 큰손은 이미 돈이 많아. 무리해서 범죄에 가담하진 않을 거야. 그렇게 억지력을 가지기만 해도 충분해.”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현실과 영화가 다르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악인이 작전을 하는 게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큰돈을 벌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그 수법이 악질이라서 그렇지.

김진국과 그 일당으로 보이는 자들을 찾았으니 이제 감시만 하면 된다. 그건 수호팀에게 맡겼다. 그 과정이 어땠는지는 보고받으면 되는 거고.

안성욱 씨는 20여 일 만에 집으로 갔다.

나도 집으로 가서 한동안 쉬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영화를 실컷 봤다.

기존 주식 관련 영화들도 찾아보고, 통쾌한 영화의 구성도 볼 겸 흥행작들을 죽 훑어 봤다. 서연은 일주일에 두세 번 내 집에 와서 놀다 가곤 했다. 반찬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서연이가 신부수업을 하는 모양이었다. 올 때마다 다른 요리를 해 주는 걸 보니. 맛이 있는 것도 있고, 어째 실패한 것도 있고. ‘마누라’가 해 주시는 것이니 감사할 따름이지.

그렇게 2주가 지나는 동안.

수호가 전해 오는 정보가 하나둘 쌓였다.

놈들이 오피스텔에서 뭘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주로 차량에 설치한 도청장치로 감청했다. 같은 팀으로 보이는 3명에게 한 명씩 붙어서 미행도 하고.

주요 보고는 수호가 전화를 했다.

-박 형님이라는 사람이 리더 같습니다. 조폭 같은 사람은 아니고, 그냥 주식 전문가로 보입니다. 조직원들이 말을 조심스럽게 하는 걸 보면 카리스마는 좀 있는 것 같습니다.

“큰손은?”

-아직입니다. 아, 현재 작전주 작업 중일 확률이 좀 있습니다. 김진욱과 3명이 매일 오피스텔에 들어갑니다.

“알았다. 좀 더 수고해 줘. 대범하게 가지 말고.”

-예. 대표님.

수혁이가 내 집에 왔다.

둘이서 이제 시놉시스 작업을 할 터였다.

“뭐가 좀 나왔어요?”

“응. 작전했던 회사 대표와 전화 통화한 적 있고, 어느 회사의 대주주와 통화를 몇 번 했다.”

“회사와 짜고 한 거네요.”

“그래. 펀드매니저도 있는 거 같아. 좀 더 디테일하게 알아보고 싶은데 그것까진 좀 어려울 것 같네.”

“현실과 아주 똑같을 필요는 없죠.”

“영화는 영화니까.”

수혁이와 함께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형사가 주인공이고 피해 투자자는 주연급 조연. 두 사람이 나와 안성욱 씨가 한 것처럼 작전주를 찾는다. 티격태격하는 부분에 개그를 강화하기로 했다. 둘이서 우리가 지금 하는 것처럼 주가 조작 세력을 추적한다.

악역도 매우 중요했는데 이 부분에서 고민이 많았다.

작전팀 리더로 할 것인가, 큰손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작전 세력과 짠 기업 대표로 할 것인가.

결국 큰손으로 확정했다.

그냥 큰손이 아닌 대기업 가문의 차남. 그룹이 형에게 대부분 넘어가는 것이 짜증 나 온갖 극악무도한 짓을 한다. 그룹 후계자인 형이라는 작자도 악인인 건 마찬가지고.

작전팀 리더는 펀드매니저 출신으로 큰 빚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작전을 주도하게 되고, 자신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나가자 큰 괴로움에 사로잡혀 있다.

작전 팀원들은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며, 작전이 끝났을 때 자금을 댄 대기업 차남이 그들을 제거해 버린다. 리더 역시 죽을 위기에 처하지만 살아남는다. 증거 인멸을 위해 죽일 것을 예상했기에. 이 리더가 나중에 증인으로 등장한다.

관건은 악역이 전혀 악인처럼 보이지 않게 그린다는 점이다. 유능한 재벌가의 자식이며, 자원봉사도 한다. 그룹 경영에는 별 뜻이 없는 것으로 보이고.

오히려 리더가 악의 중심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말이 많은 팀원들과 달리 냉혈한에 음흉한 느낌. 그것이 악인이어서가 아니라 고뇌였음이 나중에 드러나도록.

또한 리더는 큰손이 누구인지도 몰랐다. 리더가 만난 큰손은 대기업 차남이 내세운 가짜다. 중반까지 이 가짜 역시 리더와 함께 악의 축으로 보이게 한다.

자금을 댄 큰손이 알고 봤더니 진짜 악당이었고, 그 악행이 인간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것들이어서 충격을 준다.

모든 악행이 은폐되고 돈으로 해결된다. 죽은 사람을 조롱하고 중소기업 대표에게는 작전에 가담한 뒤 회사 포기하라고 압박한다. 병상에 있는 창업주 아버지에게 협박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대외적으로는 아주 훌륭한 재벌가 후계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늘 존댓말을 하며 경비원에게도 친절하다. 한 기자가 자꾸만 찾아와 조사하자 웃으며 말한다.

‘그 기자분 휴가 좀 가셔야겠네.’

그렇게 휴가를 떠났다가 돌아오지 않은 사람이 전처를 비롯해 수십 명이다. 악행이 드러날 것 같으면 거액으로 회유하고 협박하며 회사 차원에서도 수습한다. 회사에는 ‘어둠의 일’을 처리하는 전담반이 있다. 이 전담반 역시 때가 되면 모두 제거한다.

그 철저한 가면과 이중생활은 형사와의 마지막 대결 때까지 벗겨지지 않는다. 재벌가의 차남은 끝까지 형사를 조롱하고, 형사는 이 악당의 실체를 파면 팔수록 분노한다. 어떻게 인간이 이럴 수가 있는가. 하며

대략의 줄거리를 짰다.

수혁이에게 말했다.

“컨셉이나 소재가 특별한 게 아니라서 감정과 갈등에 집중해야 돼. 초반부에는 경쾌하게. 작전 세력 때문에 죽어나간 사람들 사연과 유가족 이야기로 묵직하게 깔아 놓으면 영화 동력이 강하게 발생할 거다.”

“개그가 좀 들어갈 것 같은데 그 사연이 너무 빨리 나오면 안 될 것 같네요. 한번 무거워지면 그 뒤로 개그를 칠 수가 없으니까요.”

“그래. 120분으로 봤을 때. 무거워지는 지점을 70분 지점으로 하자. 그전까지는 형사와 투자자가 작전 세력 추적하는 것으로 가고.”

“재벌가 차남은 왜 작전주 자금을 댔을까요?”

“거대 비자금을 만들어서 형이 인계받을 그룹의 지주사 지분을 확보하려고. 리더가 그렇게 하라고 유혹했던 것으로 가. 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진 리더가 악당이니까.”

“원래는 재벌가 차남이 리더를 협박한 것이고요?”

“그렇지.”

“인물의 목적이 분명해지네요.”

수혁이가 메모했다.

줄거리만 짰지 세부 설정은 아직 안 했다.

“그러니까, 중반까지는 경쾌한 수사극으로 가다가 형사가 대기업 차남이 진짜 큰손이라는 걸 알아내면서 무게가 실리면 될 것 같네요. 그 뒤로 온갖 악행을 찾아내게 되고, 죽은 사람도 많았다는 점도 알게 되고요.”

“그래. 형사와 관객이 동시에 분노하는 시점이 되겠지.”

“그런데요. 형사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 뭐라도 좀 얻을 순 없을까요?”

“마냥 악을 징벌하는 인물로 가긴 그렇다는 거지?”

“네. 애초에 형사가 속물적인 인간이기도 하니까, 어느 정도 챙겨 먹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가령 재벌가 차남의 비자금 금고를 찾았다든가. 눈먼 돈이 있었다든가.”

“그것도 괜찮네. 다만 피해자들의 돈은 아니어야 한다. 혹은 워낙 거액이라 피해자들에게 나눠 주고 일부를 가진다든가. 본인이 피해자이기도 하니까.”

수혁이가 다시 메모했다.

“일단 그렇게 정리하고 시놉시스를 써 보자. 각본은 네 이름으로 해. 회사에 가서 계약하고.”

“예, 감독님.”

수혁이가 웃으며 집에서 나갔다.

난 코미디 부분과 대사 등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 * *

김진욱 일당을 추적한 지 50일째.

‘블루드 워’ 상영이 마무리되었다.

박스오피스 사이트가 추정한 성적보다 약간 더 나왔다.

북미 수입 5억 2천만 달러.

월드와이드 수익은 약 7억 3천만 달러.

모두 합쳐 약 12억 5천만 달러.

차기작은 두 편을 동시에 하기로 했다.

하나는 블루드 워 2편이고 하나는 다른 감독이 맡아서 같은 세계관의 히어로 영화를 찍는다. 개별 영화를 먼저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시리즈 2편이 그 히어로의 프리퀄이 되기 때문에.

해서 감독을 섭외하고 시나리오 작업을 하라고 이동욱 대표에게 전했다. 시놉시스는 이미 있다. 내가 쓴 시놉시스로 감독과 작가가 개발하고 나도 각색에 참여할 생각이었다.

제이슨은 액셀 역할로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시리즈 2편 주인공은 당연하고, 개별 히어로 영화에도 까메오로 출연한다. 벌써 여러 스튜디오에서 캐스팅 제안이 온다고 하는데, 제이슨은 시리즈에 집중하겠다며 거절했다.

제이슨은 내가 만든 시리즈 세계관의 전체 내용을 대략이나마 알고 있었다. 중년이 되도록 우리 영화만 찍어도 될 지경이다. 그러니 배우 이미지 고착은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한 가지 기분 좋은 소식이 있었다.

권혁민이 우리 스튜디오 자체 배급을 위해 밤낮없이 뛰어 다니고 있었는데, 그 물꼬를 튼 모양이었다. 전미극장협회장을 만나 긍정적인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제 시작이다.

미국 시장만 제대로 자리 잡으면 그 뒤에 해외 배급사를 차례로 세워나가면 되니까. 다른 스튜디오의 견제는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배급까지 가능한 메이저 스튜디오는 6개뿐이다. 그 여섯 회사에서 1년에 제작하는 작품이 몇 안 된다. 1년 중 스크린 확보 때문에 싸울 일이 없다는 뜻이다.

아무튼 그 50일 동안.

수호팀에게서 온 정보가 제법 쌓였다.

대범한 일벌이지 말라고 했는데 사고를 쳤다.

김진욱과 팀원 하나를 동시에 납치해서 자백을 받았다며.

눈살을 찌푸리며 보고서를 읽다가 깜짝 놀랐다.

리더가 누구인지 찾아냈던 것이다.

나와 수혁이가 쉬고 있을 때.

수호가 모든 정보를 정리해서 집으로 왔다.

“목표한 조사를 마쳤습니다. 과격한 방법을 써서 죄송합니다. 놈들이 눈치채는 바람에 시간이 없었습니다. 다만 우리가 누구인지는 전혀 모릅니다. 큰손 측에서 입막음을 시도한 것으로 몰아갔습니다. 놈들도 믿는 것 같았고요.”

수혁이가 물었다.

“일지가 왜 이렇게 많아요?”

“놈들 동향을 빠짐없이 기록했어. 별일 아닌 것 같은 게 나중에 증거나 단서가 될 수 있으니까. 실제로 한 여자를 만난 적 있는데, 그 여자가 리더의 연락책이었거든.”

“리더가 오피스텔에 왔었다며?”

“팀원들이 따로 작전하고 있다는 걸 알았나 봅니다, 오피스텔에서 점잖게 훈계하는 걸 포착했어요. 그 뒤에 놈들이 오피스텔을 옮겼고요.”

“정리한 거 좀 보자.”

“예.”

추적 일지가 책자 한 권이다.

별의별 것이 다 적혀 있었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김진국과 팀원들이 개별 작전을 진행 중이었다.

놀랍게도 그 회사는 성욱 씨가 찾은 복제세포 회사다.

김진국이 한 중년 남자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 남자를 미행했더니 그 회사가 나왔다고 한다.

개별 작전을 벌인 걸 안 ‘리더’가 오피스텔에 찾아와서 중단하라고 했으며 그때 놈들이 사무실을 옮겼다. 당시 리더 얼굴을 사진으로 찍었다.

지극히 평범한 40대 중반 남자였다.

박 형님이라는 사람이다.

그 남자를 미행했는데 도중에 놓쳤다. 눈치를 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놈들이 잠적할 수도 있기에 과감한 수를 쓰기로 했다. 그것이 납치다. 놈들에게서 받아낸 게 고급 정보였다. 한데 자백을 받아낸 솜씨가 놀라웠다.

작전 팀원 하나를 납치한 뒤 큰손이 보낸 것처럼 꾸며서 다른 작업은 하지 말라고 겁을 줬다. 그때 어느 분이 보냈느냐는 말이 나왔다. 큰손이 두 명이었던 거다.

그 시간에 김진국도 납치했다. 놈의 눈을 가린 채 심리전을 펼쳤다. 군에서 고문 기술이라도 익히는 모양이다.

현실에 영화가 끼어든 격이다.

“김진국이 자백한 게 맞아?”

“예. 그 상황이 되면 웬만한 사람은 엄청난 공포에 빠집니다. 돈 많이 벌어놓은 놈은 더합니다. 미끼를 슬쩍 던지면 놈들이 덥석 물죠.”

“어떻게?”

“이런 거죠. 누가 보냈는지 아나?”

나와 수혁이 웃었다.

수호가 말했다.

“처음엔 모른다고 하죠. 그럼 다시 안 묻습니다. 한 시간 뒤에 놈 뒤에서 칼을 갈기 시작합니다. 슥삭. 슥삭. 슥삭. 바닥에는 비닐을 깔아요. 그 소리 듣고 놈이 기겁합니다. 놈이 그랬답니다. 살려 주세요! 절대 어디 가서 말 안 합니다! 바닥에 비닐은 왜 까는데요!”

또 웃음이 났다.

죄지은 놈이 자기 죄를 아는 거다.

이게 현실에서 벌어졌다고 생각하니 더 무섭다.

수호가 말했다.

“과정은 좀 긴데 간단히 말씀드리죠. 큰손은 두 명이며 리더만 두 사람을 안다고 합니다. 큰손끼리도 알고요. 큰손 하나는 동대문에서 사채업을 하는 70대 노인이고, 다른 큰손은 증권가에서 유명한 50대 투자자라고 합니다. 각자 역할이 달랐다고 합니다.”

“어떻게?”

“동대문 큰손은 언론사와 회사를 컨트롤했고, 50대 투자자는 증권사를 움직였다고 합니다. 펀드매니저 출신 같다고 했습니다.”

“어느 증권사?”

“증권사는 모르겠습니다. 펀드매니저 1인 이상이 가담한 것으로 보입니다. 간부급일 겁니다.”

수호팀 두 명이 자백을 받아낼 때.

나머지 두 명은 놈들이 옮긴 사무실을 급습해서 자료를 확보했다. 이번에도 리더가 사주한 조폭으로 위장했다. 리더가 개별 작전을 하지 말라고 경고했던 터라.

현재 수호팀은 큰손과 리더를 찾고 있다.

여기서 중단해도 된다.

찾으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동대문의 사채업자는 탐색하면 누군지 알아낼 수 있다.

리더 박 형님의 얼굴도 확보했고.

이들이 잡히면 두 번째 큰손도 잡힌다.

“수고했다. 이제 손 떼도 돼.”

“알겠습니다.”

“너흰 곧장 미국으로 가. 내 집에서 지내도 된다.”

“예.”

수호가 인사를 하곤 집에서 나갔다.

다행히 무사히 끝이 났다.

수호팀의 활동과 회사 조사. 감청 과정 등을 영화적으로 녹여 낼 수가 있다. 거기에 작전 자금 규모. 이전 작전으로 벌어들인 수익. 리더의 작전 방법 등도 나왔다.

수혁이가 일지를 보더니 말했다.

“팀이 셋이었는데 한 팀은 PC방에서 주가를 조작했다는 게 놀랍네요. 리더는 집에서 거래 지시를 했다는 것도 그렇고요. 이 리더가 뭐하는 사람인지 궁금하긴 합니다.”

“보통 사람일 거야. 영화에서나 악인으로 나오는 거지.”

“그렇겠네요.”

다음 날부터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다.

시퀀스 별. 씬 별 구성을 정말 꼼꼼하게 했다.

소재가 약하고 내용과 인물에 전형성이 있는 만큼 최대한 오락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일주일 만에 초고가 나왔다.

그걸 내가 코어를 발동하여 각색을 하고.

그리하여 한 달 만에 최종본을 뽑았다.

같은 상업영화인 나는 보스다에선 주인공이 나쁜 놈들 뒤통수를 치는 호쾌함이 흥행 포인트였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탄다. 개그에서 시작하여 울분과 분노. 그리고 무소불위의 재벌 권력을 쳐부수는 통쾌함까지.

영화 자체의 힘과 폭발력이 그만큼 컸다.

수혁이가 말했다.

“시나리오가 이 정도로 나올 줄은 정말 몰랐네요.”

“잘 나왔으면 다행이지 뭐.”

“감독님과 작업하면서 매번 놀라긴 했지만 이번엔 진짜…….”

“재밌지?”

“재밌는 정도가 아닙니다. 감독님은 마치…….”

“마치, 뭐?”

수혁이가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껏 같이 작업을 해 놓고 새삼스럽게.

그런 수혁이도 만만치 않다.

나와 공동 작업하면서 밀리지 않았으니까.

코어가 갈수록 진화하는 까닭일까.

코어에 경험이 추가된 덕분일까.

이번 영화, ‘플랜.’

내 상업영화 중 최고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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