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새로운 도약
정신없이 영화를 찍고 났더니.
내 주식 총액이 2천억이 넘었다.
투자자들은 아직도 더 오를 것으로 보고 매도를 하지 않는 상황이다. 합병 직후 영화 사업만으로도 4만 원까지 간다고 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됐다. 합병 후 첫 작품이 해외에서 대박이 났고, 그게 주가에 미리 반영된 셈이다.
상장 주식 2,557만 주 중 767만 주 보유.
배당금이 주당 1,500원이라고 봤을 때.
배당금 총액이 100억가량이다.
영화를 수출해서 만약 1,000억 대 수익을 올린다면.
내 수익은 배당금 100억에 주가가 그만큼 상승한 차익으로 계산하면 될 터였다. 주식을 팔지는 않겠지만.
서연은 연신 싱글벙글 웃으며 주가를 보고 또 보았다.
그녀도 재물에 초연한 사람은 아니니, 주가가 이 정도 올랐으면 기분이 날아갈 듯한 건 당연하다.
서연이 말했다.
“영화 성적도 말해 줘?”
“아니. 일찌감치 포기했어.”
“왜? 지금 잘되는 것 같은데.”
“잘돼 봐야 500만 정도 될 거야, 아마.”
“지금 310만인데?”
2주차에 300만이면 생각보다는 더 들어왔네.
제작비 110억 작품이 500만 정도면 잘된 수준이다.
개봉 첫날 실망했다는 댓글이 좀 달리면서 영화 흥행에 제법 영향을 주었다. 논쟁이 있다는 것만으로 안 보러 가는 사람도 꽤 있었고.
앞으로도 신경 안 쓰고 싶었다.
해외 수출 대박 때문에 배가 불렀다 이거지.
정릉 북한산 주차장에 차를 댔다.
단풍 절정이 시작되는 토요일이라 그런지 등산객이 상당히 많았다. 중년 부부와 젊은 커플도 많고.
나와 서연이 차에서 내렸다.
서연이 산을 보며 말했다.
“같은 서울인데 산에 오면 공기가 달라.”
“단풍 냄새가 물씬 나는 거 같네.”
차 뒷좌석에서 점퍼와 배낭을 꺼내 멨다.
그때 막 주차한 한 커플이 나와 서연을 보고 있었다. 그냥 보는 게 아니라 우리와 차를 번갈아 보았다.
왜 그렇게 보는 걸까?
“안녕하세요.”
“아, 예. 안녕하세요.”
서연과 둘이서 걸었다.
올라가는 길에 물을 사고, 오이와 김밥도 한 줄 샀다.
“커피 가져왔지?”
“응. 공들여서 내렸어.”
“공들이면 더 맛있어?”
“그럼.”
아까 그 커플도 오이와 물 등을 사고 있었다.
북한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시작 지점이 같은지라 20대 커플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산을 올랐다.
그런데 그 커플은 오르는 내내 신기한 듯 나와 서연을 보았다. 산에서 내려오다 마주친 이들도 어? 하면서 놀랐다. 선글라스를 쓴 서연을 알아봤던 거였다.
아직 북한산은 단풍이 절정은 아니지만 나무들의 녹음과 울긋불긋하게 무척 잘 어울렸다. 공기도 좋고, 숲의 향기도 좋고.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도 좋았다.
내려가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자주 했다. 서연을 알아봐서 등산객이 먼저 인사를 해서 그런 것도 있고.
산이 제법 가팔라서 영취사에서 쉬었다.
정릉 코스에서 첫 번째로 쉬는 지점이다.
서연과 나란히 돌 위에 앉았다.
“다이어트 하느라 산에 다닌 거야?”
“아니. 힘들 때 산에 오면 힐링이 되어서. 산에 오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 없거든. 숲 냄새도 좋고.”
그래. 서연의 말이 맞다.
무명작가로 살면서 산에 다닐 정신적인 여유가 없었다.
내가 지금 산에나 다닐 땐가 싶어서.
이 소소한 행복을 왜 모르고 살았나 싶다.
다시 산을 올랐다.
한 30분 땀을 닦으며 올라가자 그 커플이 쉬고 있는 게 보였다. 또 눈인사를 하고 그들을 지났다.
나는 숨이 차는데 서연은 씩씩하게 잘 올라갔다. 현역 걸그룹다운 체력이었다. 날 배려하며 오히려 속도를 줄여 주는 그녀다.
어느 산이든 처음 산에 오를 때는 언제 다시 올지 모르기에 정상까지는 올라간다. 이후 다시 올 때는 서울 전경이 어느 정도 보이는 지점이라면 무리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북한산 정상까진 올라가지 않고 평평한 바위가 있는 곳에서 쉬었다. 정상까지 오르는 게 상당히 위험하기도 하고.
서연과 함께 풍경을 보며 커피를 마셨다.
청명한 가을 하늘과 약간은 뿌연 서울 도심.
단풍이 번져오는 저편 산마루.
보기만 해도 마음이 차분해지는 그림이다.
젊은 등산객이 우릴 알아보고 수군거리는 게 보였다. 그 바람에 중년 등산객들이 호들갑스럽게 우리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유, 이게 누구야? 안서연이?”
“탤런트가 이런 델 나오네?”
“누구야? 남자 친구야?”
“우리랑 사진 한 판 박읍시다.”
무시할 상황이 아니라서 사진을 찍었다.
아무래도 아저씨, 아주머니들은 좀 불편했다. 손을 잡으려고 하고, 마구 안으려고 그래서. 더구나 사람이 몰리면 낙사할 위험이 있어서 일단 자리를 피했다.
바로 하산을 시작했다.
서연은 이제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
이젠 그녀도 이런 인생을 받아들인 것 같고.
산을 오를 때 안 보이던 꽃이 산에서 내려갈 때는 보인다는 말이 있다. 산에 올 때마다 그 말이 늘 생각났다. 정상으로 향해 나아갈 때는 주변이 안 보이다가, 정점을 찍고 내려갈 때는 비로소 가족이나 친구, 고마운 것들이 보인다는 말.
그래서 나도 서연도 늘 산에 갈 때마다 천천히 오르려고 애썼다. 일에 빠져서 사랑하는 것들을 놓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도 서연도 소위 성공이라는 걸 했으니.
하산하는 길에 또 그 커플을 만났다.
“또 뵙네요.”
“네. 빨리 내려가시네요.”
“정상까진 안 가서요. 여자 친구세요?”
“안녕하세요.”
나도 서연도 커플과 인사했다.
그렇게 네 사람이 함께 산을 내려갔다.
남자가 말했다.
“두 분 검소하신 것 같아요.”
서연이 그 말을 받았다.
“감독님이 쓸 데는 써요. 쓸데없는 데 안 써서 그렇죠.”
우연히 친해진 김에 커플이랑 순두부 집에 갔다.
동아리에서 단체 등산을 왔는지 대학생들이 가득했다.
우리가 들어가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할 때 학생들이 힐끔거렸다. 그러나 우릴 방해한다고 여겼는지 자기들끼리 단속했다. 서연은 그렇다 치고 학생들이 날 알아본다. 내가 누군지 귓속말로 묻는 학생도 없다.
순두부에 도토리묵을 먹으며 서연과 커플의 아가씨는 동동주를 마셨다. 차를 몰고 온 나와 커플의 남자는 입맛만 다시다가 결국 대리운전 부르기로 하고 동동주를 마셨다.
동동주 한 동을 비우고 다시 주문했을 때부터 식당이 왁자지껄하게 변했다. 서연이 취해서 얼굴이 붉어진 터라 사진을 찍으면 안 되었는데, 커플과는 한 번 찍었다. 그게 시작이 되면서 여기저기서 사진 좀 찍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나도 취한 터라 사진 찍자는 대로 다 찍어 버렸다. 그러면서 대학생들과 건배도 하고, 떠들며 놀았다.
“어떤 동아리예요?”
“영화 동아리요!”
학생들이 합창하듯 대답했다.
어쩐지 날 알아본다 했다.
“이동원 재미있어요!”
“거짓말.”
“진짜예요!”
학생들이 억울하다는 듯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정말일까.
“영화 본 사람?”
내 말에 학생들 대부분이 손을 번쩍 들었다.
거짓말이라도 기분은 좋았다. 이후 학생들과 더 어울리며 술을 마시다가 식당 안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잘 놀다 가요.”
“네!”
식당에서 나가면서 학생들 먹은 걸 함께 계산했다.
이왕 함께 어울렸는데 선배 노릇 좀 하는 거지 뭐.
대리운전을 불러 서연과 함께 숙소로 갔다.
정말 기분 좋은 하루였다.
* * *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 라면을 끓이고 있을 때였다.
지성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 어제 대체 뭘 한 거야?
“서연이랑 산에 갔었어. 왜?”
-포털에 지금 난리 났어.
“누가 또 스캔들 냈어?”
-누구긴 누구야, 형이지!
뭔 소리야.
포털에 들어가 보았다.
실검 1위가 안서연이었다. 2위는 나였고.
그걸 클릭했더니.
인터넷 신문 연예기사로 연결되어 있었다.
대학생들과 찍은 단체 사진. 얼굴이 붉어진 채 환하게 웃고 있는 나와 서연. 기사 내용은 이랬다.
[최신성 감독과 톱스타 안서연의 평범한 데이트. 두 사람은 등산객 모습으로 북한산을 올랐다. 하산했을 때는 대학생들과도 서슴없이 어울리며…]
-형! 서연 씨 얼굴 좀 보라고.
“얼굴이 좀 빨갛긴 하네.”
-형은 안 말리고 뭐한 건데?
“왜? 난 보기 좋은데?”
-일단 기사 내려달라고 했어. 기자가 형과 만난 것 같은데 일부러 이런 건 아니지?
“기자?”
사진을 다시 보았다.
그러고 보니 단체 사진을 찍은 사람이 그 커플 남자다.
그 친구 기자였었네.
스크롤을 내려보니 등산하는 사진과 나와 서연이 내 차에서 내리는 사진이 있었다. 모두 스마트 폰으로 몰래 찍은 모습이다. 이 사진들에는 별 멘트가 없었다.
그런데 댓글이 폭발했다.
[와. 최신성 감독 렉스턴 모네.]
[안서연이 최 감독 차를 그냥 타고 다니나 봄.]
[두 사람 진짜 소탈한 성격이네요.]
[윗분들 순진하시네. 기자가 찍은 사진임.]
[이거 언플. 학생들 얼굴 모자이크. ㅋㅋ]
[두 사람 서민 코스프레 한 거임.]
[언플도 코스프레도 아님. 그 학생들 SNS에 떴음.]
[진짜 맞음. 어제 동아리 등산 갔는데, 두 분이 식당에 딱! 우리랑 막걸리 겁나 마셨음. 밥값도 대신 내주심. 감독님, 사랑해요. ㅋㅋㅋ]
[어제 저기 있었어요. 두 분 정말 성격 좋으세요. 서연 언니는 연예인 같지 않았고요. 제 스타그램에 서연 언니랑 찍은 사진 있어요.]
[진짜네! 헐 대박!]
[이거 레알임! 사진 확인했음!]
댓글이 아래로 갈수록 찬사 일색이었다.
지성이도 못 본 댓글이다.
기자가 이런 반응을 예상하고 올린 모양이다.
악의적인 게 아니니 그냥 뒀다.
다음날에는 포털과 SNS상에서 큰 화제가 됐다.
우리와 만난 그 기자를 인터뷰한 기사들까지 떴다.
심지어 텔레비전 연예 리포터가 회사까지 찾아와서 인터뷰 요청을 했는데 사실 여부를 확인해 줬더니 내 차를 찍고 갔다.
이게 영화 흥행에도 영향을 미쳤다.
영화 흥행을 위해 나와 서연이 모두 꾸민 일이라는 음모론이 나왔을 때였다. 그 주장에 발끈한 분들이 공격적으로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내 영화에 우호적인 사람들은 누군가 ‘이동원’에 별점 테러를 해서 여론 조작을 한 게 아니냐는 주장을 했다. 흥행 1위인 전쟁 영화 제작사 측에서 댓글 알바를 쓴 게 아니냐는.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더니 결국 판이 뒤집어졌다.
평이 안 좋아서 나만 영화가 재밌었나 싶었던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던 것이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나와 서연의 북한산 데이트는 결과적으로 내 영화 흥행에 크게 작용했다. 평 때문에 안 봤는데 영화를 봐야겠다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으니.
그 기자가 결국 날 도와준 셈이었다.
컴퓨터를 보고 있는데, 구 대표가 노크를 하더니 내 방으로 들어왔다. 그의 손에 커피가 두 잔 있었다. 한 잔을 내 앞에 내려놓고 본인은 소파에 앉았다.
“기사 보시고 계셨어요?”
“네. 커플과 우연히 만났는데, 기자일 줄은 몰랐네요.”
“최 대표가 직원이었으면 저한테 한소리 들었을 겁니다. 대체 소속 연예인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고.”
“네. 지금 한소리 듣고 있네요.”
“그렇게 되나요? 하하하!”
구 대표와 내가 동시에 웃었다.
“저는 보기 좋아요. 젊은 분이라 연애하는 게 거리낌 없는 것도 보기 좋고요. 다만, 악의적인 기사 쓰는 사람들도 있으니 늘 주의를 해 주세요. 잔소리는 이번만 하겠습니다.”
“네.”
구 대표로선 할 수 있는 소리다.
내가 철없는 짓을 하고 다닐까 봐.
나와 서연이 거리낄 것이 없으니 상관없다.
구 대표가 말했다.
“요즘 참 인생이 오묘하게 느껴집니다. 최 대표와 내가 그때 합병 안 했으면 지금 어떻게 됐을까. 내가 최 대표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안 했으면 지금 난 뭘 하고 있을까. 요즘 주가를 보면 그때 생각에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합병 전 큐즈 주가는 1,670원이었다.
당시 구 대표 지분율은 15% 정도.
지금 지분율은 18%. 주가는 35,400원.
“그때 최 대표 장담을 들었을 땐 반신반의했습니다. 합병 전 15%와 합병 후 15%는 다를 거라는 말요. 그게 현실이 되었는데도 실감이 안 나네요.”
“하이니스랑 제니스 요즘 잘 지내죠?”
“그럼요. 최 대표가 회사를 위해 열심히 하는데, 저도 질 수 없죠. 락키가 내년 3월에 데뷔를 할 겁니다. 제가 상당히 공을 들이고 있어요. 하이니스와 제니스 신곡도 아주 잘 나올 겁니다. 배우들 많이 들어왔다는 건 아시죠?”
“네. 주가가 영화만으로 오른 건 아니니까요.”
“예.”
구 대표가 그걸 좀 알아 달라고 말을 꺼낸 모양이다.
배우들이 많이 들어와서 작품 계약을 꽤 했고, 소속 아티스트들이 CF나 방송 출연도 많이 하고 있다. 거기에 영화도 잘돼서 주가가 오른 것이다.
구 대표가 나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고 일종의 ‘자기 어필’도 한 뒤 내 방에서 나갔다. 업무 강도가 나보다 몇 배는 높은 사람이 구 대표다. 열심히 사금을 모아 금덩이를 만드는 스타일. 반면 난 꾸준히 연구를 하다가 연금술로 뚝딱! 금덩이를 만들어 내는 방식이고.
그동안 미뤄 놨던 일을 하나씩 처리했다.
투자사 CT에서 온 작품 두 개를 검토했고, 신성영화사에서 보내준 시놉시스도 확인했다. 이젠 내가 시나리오 작업을 해 주진 않았다. 어차피 검토해 달라고 보내오는 시나리오는 대부분 라이터스에서 작업하기 때문에.
라이터스 작업 현황도 확인했는데 흥미로운 게 있었다.
임성희 작가가 여우야 두 번째 시즌을 기획했다.
팬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 때문이었다.
여우야의 마지막 장면이 시즌 2를 예고하기도 했고.
흥미로운 건 영화 영상미를 추구한다는 점이었다.
해서 임성희 작가가 내게 연출을 제안했다. 여우야가 한류 드라마가 되어 일본과 북미에서 대박이 났으니, 내가 연출하면 어떻겠냐고.
내가 작가였을 때만 해도 드라마는 할 생각이 없었다.
드라마 주 시청 층이 여성이고, 여성의 정서를 모르니까. 그런데 여성 작가가 쓴 드라마라면 또 모른다. 내가 프로듀서 겸 총감독으로 참여해도 되고.
그래서 임성희 작가를 만나 미팅했다.
시놉시스를 본 뒤 액션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여우야 시즌1이 꽃미남 위주의 로맨스 액션이었다면, 시즌 2는 로맨스 기본에 전쟁물을 추가했다.
영화 트와일라잇 시리즈에 가깝게 가 보자는 거다.
그렇게 16회 시놉시스 작업을 해 보라고 하고, 투자 및 편성과 해외 수출을 위해 관련 있는 모든 곳에 공문을 보냈다.
그런 뒤 드라마 대본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영화 플랫폼 제작진이었다.
-올해 말에 플랫폼 구축이 완성될 것 같습니다. 영문 사이트는 내년 2월까지는 될 것 같고요. 콘텐츠만 확보한다면 4월 중에 출시할 수 있습니다.
이번 드라마.
북미 단독 방영도 가능할 것 같다.
어쩌면 세계적인 영상 플랫폼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 * *
기쁜 마음으로 영화 플랫폼 사무실로 달려갔다.
영화 촬영 중엔 가 보질 못하고, 지성이나 수호를 통해 진행 상황만 보고받던 중이었다.
그리 크지 않은 사무실에 임직원 12명이 있었다.
10명은 기존 직원이고, 2명은 로큐에서 파견 나간 직원이었다. 다들 표정이 밝았다.
부장이 날 맞아 주었다.
“드라마 제작을 추진한다는 말을 듣고 최지성 팀장에게 연락을 보냈어요.”
“펀딩 앱은 출시 준비가 되었다는 건 들었는데, 사이트도 벌써 완성 단계인 겁니까?”
“지난 1년 간 직원들이 열심히 일했습니다. 저희도 로큐 직원인 셈인데 개발을 미적거리면 회사에 손해만 끼치지 않겠습니까. 앱은 베타 테스트까지 끝냈고, 사이트도 기반은 만들어졌습니다. 현재 한글 사이트는 거의 완성했습니다. 이렇게 시작해서 다른 언어도 추가해 나가면 됩니다.”
“한번 보죠.”
직원이 사이트를 열었다.
플래닛 케이 넷이다.
인터페이스가 심플하고 직관적이었다.
단조로운 메인 화면에 들어가면 대분류 카테고리가 나온다.
한국영화. 한국 드라마. 외국 영화. 외국 드라마 등등.
한국 영화로 들어가자 장르별, 평점 별로 다양하게 뜬다.
부장이 말했다.
“세부 카테고리는 출시 후에 데이터가 축적되어야 만들어질 겁니다. 화질은 초고화질에서 일반화질까지 다양해요.”
“결제 구조는요?”
“회원 정액제입니다. 일반은 한 달 4,900원. 프리미엄은 9,900원이고요. 영화 제작사와 계약에 따라 다르겠지만 개봉 후 6개월이 지난 영화를 상영할 수 있을 겁니다. 프리미엄 작품 소수를 뺀 나머지는 무제한 관람이고요. 관람 횟수에 따라 수익을 배분하면 됩니다. 첫 달은 무료입니다.”
“저예산 영화는 안 보겠는데요.”
“저예산 영화 관람이 확인된 회원에 한하여 기간 연장 마일리지를 주고 경품과 시사회 및 영화 관람권을 높은 확률로 추첨한다면 관람을 유도하리라 봅니다. 회원이 한 달에 20편을 볼 것으로 추정하는데, 인기 영화를 먼저 볼 거고, 평점이 높은 저예산 영화도 보리라 생각합니다.”
“흠…….”
관객이 과연 저예산 영화를 볼지 의문이다.
경품이나 시사회 초대권을 준다고 해도 사람들은 인기 영화만 볼 터다. 개봉이 끝난 새 영화가 계속 들어올 테니까.
플래닛 케이에서만 개봉하는 기발한 저예산 영화를 제작하면 경쟁력이 있을 것도 같다. 극장에선 보기 어려운 B급 장르 영화 전문으로. 어이없는데 재미있는 그런 영화.
“일단 한국과 영어권 회원이 한국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도록 시작하고, 점점 확장하는 방향으로 가야겠네요. 영화 콘텐츠는 영화를 수입하는 것과 비슷한 형식으로 확보해 주세요. 미니멈 개런티 형식으로요.”
“그렇지 않아도 콘텐츠 확보와 수익 구조에 대한 회의를 많이 했습니다. 최신 영화 기준으로 영화 한 편당 1천만 원에 구매한 뒤 1천만 원 이상 수익이 나는 경우 7대3 정도로 나누는 방식입니다. 몇 년 된 영화는 그보다 훨씬 가격이 낮고 배분 차이도 좀 있을 겁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바로 시작해 주세요.”
“예.”
드라마 여우야 2를 방송사에서 방영한 뒤 이 플랫폼을 통해 방영하기로 했다. 방송사와 협의를 해서 결렬된다면 단독 방영하는 수밖에 없었다.
* * *
며칠 후 여우야 1을 방영했던 방송사 국장을 만났다.
드라마 국장이 내 말을 듣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생판 모르는 플랫폼에서 방영하면 누가 보겠어요?”
“해외 광고비로 100억을 책정했습니다. 드라마가 방영될 무렵에는 한류 팬은 거의 다 알 겁니다.”
광고비 100억이란 말에 드라마 국장의 입이 벌어졌다.
일반 영화 마케팅 비용이 30억대다.
전 세계 광고로는 큰 액수가 아니다.
국장이 장고에 잠겼다. 내년에 런칭할 영화 플랫폼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나도 여러 방안을 생각했다.
이를테면 전 세계 시청자 5,700만을 보유한 넷플릭스와 합작하는 방법이 있다. 이 경우엔 방송사 방영이 안 된다. 여우야 시즌 2를 제작하는 이유는 국내 시청자 요구 때문인데 한국 방송사에서 방영하지 않는 건 말이 안 된다.
물론 기존 수출 방식으로 가도 된다. 이왕이면 드라마를 플래닛 케이 창립 작품으로 올려서 플랫폼의 기반을 닦아 보고 싶었다. 해외에선 한국 영화보다는 한국 드라마 시청자가 월등히 많기 때문이다.
마침내 드라마 국장이 결단을 내렸다.
“제작부터 해 봅시다. 플랫폼 구축에 힘을 좀 써 주시고, 만약 여의치 않다면 기존 방식으로 수출해야 해요. 내년 4월 방영으로 추진해 봅시다.”
“결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방송사 편성이 결정되자 이번엔 여우야 시즌 1 외주제작사를 찾아갔다. 제작사 대표가 섭섭해할 줄 알았는데, 쿨하게 우리가 제작하라고 했다. 내가 총감독인데다 시즌 1보다 대작이었기 때문이다.
여우야 시즌 2가 반 사전 제작 드라마이고, 내년 4월 편성이라 준비 기간이 조금 빠듯했다. 시즌 1을 연출한 두 PD에게 연락을 했는데, 둘 다 당연히 하겠다는 대답이 왔다.
한 명은 스튜디오, 한 명은 야외 촬영을 맡을 터였다.
난 초반 CG 부분만 연출한다.
공식 직함은 총감독이고.
두 명의 PD는 바로 다음날 로큐에 출근해서 프리 작업에 돌입했다. 그 사이 난 임성희 작가 및 라이터스 작가들과 함께 대본 작업을 시작했다.
회의를 통해 아이디어가 모이면 임성희 작가가 시놉을 쓰고, 그걸 내가 검토한 뒤 통과가 되면 다음 화 시놉을 완성해 나갔다. 워낙 돈이 많이 들어가는 드라마라 따질 것도, 고려할 것도 무척이나 많은 대본이었다.
* * *
보름 만에 16화 시놉시스가 나왔다.
대본이나 다름없는 디테일한 시놉이었다.
제작비는 회당 15억. 총제작비는 약 300억.
일반 미니시리즈 드라마 제작비의 두 배다.
여기에 PPL과 협찬을 고려해서 50억 정도는 제작비에 포함하면 되었다. 방송사가 약 100억 투입. 나머지 150억은 투자를 받아야 했다.
CT를 포함한 여러 투자사에 투자제안서를 보내고, 나도 제작 준비에 들어갔다. 드라마지만 나와 함께 이동원을 찍었던 영화 스태프를 우선으로 했다. 촬영 준비도 영화 프리 프로덕션과 흡사하게 갔다.
그러면서 영화 플랫폼 구축도 신경 썼다.
회사 회의실에 임원들과 실무진, 플랫폼 확장과 운영을 위해 스카우트한 직원들이 모두 회의실에 모였다.
“먼저 영화와 드라마 콘텐츠가 최소 1,000편은 있어야 합니다. 영화사로선 또 다른 수익이 발생하기에 조건만 맞으면 계약하려고 할 겁니다. 미국에 먼저 지사를 설립해 주시고, 유럽과 아시아, 남미 등에도 지사 설립을 추진해 주세요. 로큐 엔터의 세계 시장 거점이자, 우리 플랫폼의 서비스 창구가 될 겁니다. 각국의 플랫폼 업체와 제휴를 맺어도 됩니다.”
“넷플릭스와 경쟁하지 않겠습니까?”
“방향이 달라요. 그쪽은 미드와 자체 제작 영화가 강하고, 우린 한국 영화와 드라마 전문입니다. 넷플릭스 측에 한국 콘텐츠가 현저히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와 손을 잡으려 할 수도 있습니다. 제휴 조건이 좋다면 그렇게 진행해도 됩니다.”
직원들이 열심히 메모를 했다.
기존 직원들은 상기된 얼굴이고, 새로 온 경력 직원들은 뭔가 기대에 차 있었다. 과연 이게 되나 싶은 얼굴들도 있고.
“여우야 시즌 2에 대한 홍보와 플래닛 케이가 런칭한다는 광고를 시작해 주세요. 각국 한류 팬 사이트에도 광고를 올려주셔야 합니다.”
“예. 이미 준비 중에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내가 일어서자 직원들도 일제히 일어났다.
평소에는 친근하게 날 대하는 직원들이지만, 일을 할 때는 대표로 대해 주는 분들이다.
회의실에서 나가 내 사무실로 갔다.
책상에 문서가 잔뜩 쌓여 있었다.
총감독으로서 내가 결재해야 할 사안들이었다.
먼저 캐스팅.
여주인공은 서연이다. 지난 시즌 주인공이었던 이리나는 빠졌다. 남주인공은 서연의 상대역이었던 문성혁. 건하도 법사 가문의 사냥꾼으로 나온다. 그 외 비중 있는 역할은 대부분 캐스팅 완료다.
로큐가 제작한다고 하자 소속 배우를 출연시키려는 기획사들 로비가 대단했다. 서연도 문성혁도 여우야 한 편으로 한류 스타가 되었으니. 영화로 대박을 친 내 운을 좀 받아 보려는 의도도 있는 것 같았다.
그다음 스태프 구성.
거의 다 구성되었다.
스튜디오 촬영팀은 전원 드라마 전문 팀이고, 액션이 좀 있는 야외 촬영팀에는 내 영화를 함께했던 스태프들이 다수였다. 내가 잘 모르는 방송국 행정이나 PPL 등은 두 피디가 알아서 잘했고.
드라마 제작준비로 다들 분주할 때.
마침내 투자가 완료되었다.
방송사가 100억. CT를 비롯한 투자사가 총합 100억.
로큐가 50억. 나머지는 자동차, 보석, 시계, 의상 등등의 PPL 지원으로 채워졌다. 드라마 주역들이 워낙 거부로 나오는 터라 죄다 명품이었고, 그만큼 PPL 단가도 높았다.
새해가 되고 드라마 촬영 준비가 한창일 무렵.
마침내 내 영화 이동원의 흥행 성적이 나왔다.
신경 안 쓰려고 해도 포털 뉴스에서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어서 대충 알고는 있었다.
최종 성적 720만.
500도 안 들 줄 알았는데 상당히 선전했다. 나와 서연의 등산 해프닝이 막판 역주행에 큰 도움이 되었다.
외국에서도 대박이 났다.
한국 영화 역사상 가장 흥행했다며 지성이가 흥분했다.
-형! 미국 총 입장 수입이 5,600만 달러래!
“알아. 신문에서 봤어.”
-뭐야? 반응이 왜 이렇게 건조해?
“영국 550만 파운드. 프랑스 430만 유로. 독일 380만 유로. 이탈리아도 그 정도. 브라질에서도 대박 났고.”
-그러면 우리한테 얼마쯤 들어오는 거야?
“아직 몰라. 개봉 안 끝난 나라도 많아. 미국만 150억이니까, 최종 수익이 1,500억 정도 될 거야.”
-헐!
“끊어. 나 바쁘다.”
미국에서 정말 초대박이 났다.
마블이 대대적인 홍보를 해 주고, 홍보만큼 미국 관객이 영화를 봤다. 미국 계약은 33억 보장이다. 총 수익 630억 중 33억 빼고, 나머지 수익의 25%가 우리에게 온다.
다른 나라에선 그 정도 대박은 아니지만 한국 영화 최고 수준으로 흥행했다. 브라질은 아직 정산이 안 되었지만 유난히 이동원을 좋아했다. 거기도 우리가 받을 최종 수익이 대략 100억은 나올 듯싶었다.
지금까지 이동원이 개봉한 영화는 모두 138개국.
평균 수익 배분이 7대3이다. 보장금 제외한 각국 영화 수입의 30%가 로큐 엔터로 들어온다. 거기에다 신규 계약으로 들어온 보장금도 500억 넘는다.
이번 영화로 해외 수익만 2,500억을 벌어들인 셈이다.
드라마 준비로 기뻐할 겨를도 없었다.
8화까지 사전 제작하는 작품이라 4월 중순 방영에 맞춰야 했다. 그리하여 2월 5일에 마침내 드라마 촬영을 시작했다.
* * *
따로 마련한 내 의자에 앉아 세팅을 지켜보았다.
영화 촬영을 끝내고 얼마 쉬지도 못한 상황에서 드라마 준비를 했다. 프리 때는 그렇게 바쁘더니 막상 촬영에 들어가자 여유가 있었다. 내가 연출하는 게 아니다 보니.
몸에 와이어를 단 돌연변이 수십 명이 남자 주인공을 향해 달려드는 장면이다. 주인공 문성혁이 가죽 코트를 입고 칼을 들었다. 그 앞에는 분장을 한 돌연변이 12명이 몸에 와이어를 달고 대기했다. 그들 뒤편에 블루스크린이 있고,
“리허설할게요!”
조연출의 말에 이어 무술 감독이 외쳤다.
“와이어!”
스턴트 와이어팀 수십 명이 와이어를 당겼다. 돌연변이 역할을 한 무술팀이 일제히 도약하며 문성혁에게 날아갔다. 문성혁도 뒤로 훌쩍 뛰어오르고.
“다시 갑시다!”
동시에 날아오르는 돌연변이 12명의 동선을 맞추는 게 쉽지 않았다. 베테랑 스턴트 팀이라고 해도 수차례 와이어를 당기면서 호흡을 맞춰야 했다.
오전 8시에 시작된 촬영이 밤이 되어서도 계속되었다.
CG가 들어가는 장면을 미리 찍어 놔야 했다.
빌딩 옥상을 건너뛰는 장면이 다수다.
자정까지 지켜보고 있다가 눈 좀 붙이러 갔다.
한숨 자고 오자 연출부가 커피를 가져다주었다.
그걸 마시면서 촬영을 지켜보았다.
시계를 보니 아침 7시.
스태프들은 서서 졸고 있다.
배우들도 다 바뀌어 있고.
지켜보는 나도 피곤한데 스태프들은 오죽하랴.
“오빠.”
“응?”
서연이 와 있었다. 뒤에는 여자 출연자들이 있고.
“안녕하세요! 신인배우 이하연입니다!”
“처음 뵈어요. 감독님!”
상큼한 여자 신인들이 줄줄이 인사를 해 왔다.
내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받자 서연이 눈을 흘겼다.
질투하는 척하는 거다.
“벌써 왔어?”
“응. 지금 몇 시간째 촬영이야?”
“소집 시간 따지면 24시간이야.”
“휴! 다들 쓰러지겠어.”
서연이 PD에게 갔다.
“감독님. 눈 좀 붙이세요.”
“어, 왔어?”
PD가 충혈된 눈으로 서연을 본다.
스태프와 스턴트팀 2진이 와 있었다.
내가 나섰다.
“손 감독님, 고생하셨어요.”
“예. 너무 강행군을 했나, 현기증이 다 나네요.”
“며칠만 고생하세요. CG 분량을 먼저 넘겨야 하니.”
“그래야죠. 그럼 저는 들어가겠습니다.”
“예.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1진은 내일 아침에 소집합니다!”
다들 대답할 힘도 없어서 고개만 끄덕인다.
스태프들이 전원 교체되고 2진이 바로 촬영 준비를 했다.
이번엔 내가 연출할 차례였다. 스태프는 2팀으로 나누었으나 PD는 더 뽑을 수가 없어서.
“스턴트팀은 배우들 리허설부터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스턴트팀이 서연의 몸에 와이어 장비를 착용시켰다. 이번에도 CG가 필요한 질주와 도약 씬이다. 도심 골목을 빠르게 질주하는 장면과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장면 등이다.
여자 사냥꾼들과 구미호 서연의 추격전.
그들 모두 5미터 높이의 비계 위에서 대기했다.
서연은 액션을 위해 트레이닝을 좀 했다. 시즌 1에서도 액션을 잘 소화했었고.
“리허설 갑니다! 와이어!”
콜이 떨어지자 서연이 주저 없이 뛰어내렸다. 바로 여자 사냥꾼들이 뛰어내려야 하는데, 신인 이하연이 겁을 먹고 바로 뛰어내리질 못했다.
“다시 갑니다!”
서연이 와이어에 매달린 채 비계 위로 올려졌다.
이하연이 그녀에게 연신 허리를 숙였다.
“선배님, 죄송합니다! 이렇게 높을 줄 몰랐어요!”
“괜찮아. 스턴트팀이 잘해 주시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서연이 이하연의 어깨를 토닥였다.
와이어 장비를 몸에 착용하면 엄청 아프다. 남자들도 몸에 멍이 드는데 근육이 약한 여자는 오죽하겠나.
그럼에도 서연은 아픈 내색을 안 했다.
그다음부터는 다들 잘했다.
* * *
5일에 걸쳐 CG 작업을 위한 스튜디오 촬영을 모두 끝냈다.
다음은 드라마 홍보를 위해 대형 전투씬을 먼저 찍었다.
서울 시청 근처인 북창동 골목.
두 구미호 집안의 남녀 주인공이 돌연변이들과 전투를 벌이는 장면이었다. 보조 출연자만 100여 명. 골목 저편에서 마구 달려오는 장면이다.
골목 안에서 서연과 문성혁이 대기했다.
돌연변이들도 같은 골목에 들어가 있고.
PD가 외쳤다.
“스탠바이!”
메인 카메라와 지미집이 앵글을 잡았다.
“하이, 큐!”
골목에서 서연과 문성혁이 허겁지겁 달려나왔다. 이내 메인 카메라가 있는 쪽으로 내달렸다. 그 뒤로 기괴한 분장을 한 돌연변이들이 쏟아져 나온다. 일부는 와이어를 달아 훌쩍 날아오르고.
“위험해!”
문성혁이 서연을 밀치며 날아와 덮치는 그 돌연변이를 뒤로 누우며 차 냈다. 준비한 매트리스로 동시에 떨어지는 세 사람.
“컷! 좋아요! 장면 이어서 갑니다!”
골목에 돌연변이 100여 명이 대기했다.
골목을 가득 채운 그들이 한꺼번에 달리는 장면.
압도적인 박진감을 줄 터였다.
“스탠바이! 하이, 큐!”
우워어어어!
돌연변이 100여 명이 질주했다.
찍어 놓은 장면을 보니 그림이 제대로 나왔다.
영화의 퀄리티였다.
이후 촬영이 무척 무난하게 이어졌다.
야외 촬영 때부터는 내가 연출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매일 촬영장에 나가진 않았다. CG 작업 결과도 확인하고, 촬영장에도 이따금 나가는 사이.
8회분 촬영까지 모두 마쳤다.
그리하여 4월 15일.
마침내 여우야 시즌 2가 방영되었다.
300억 들인 효과가 있었다.
한국과 외국 모두에서.
궤도가 놓였으니 이제는 달릴 뿐.
* * *
[화면 색감이 시즌 1과 달라요!]
[시즌 2 대박 예감!]
[서연이 가문의 수장이 되는 건가요?]
[와, 1화부터 몰입감이 장난 아님!]
[악! 법사 가문에 배신자가 있었음!]
[남주와 여주 구미호 가문은 손을 잡고, 시즌 1 남주 법사 가문은 몰락하는 건가요?]
[아직 몰락 아님. 돌연변이 정체가 알려지면 풀림.]
[방송국이 드라마에 돈 엄청 썼네.]
[방송국 아님. 로큐에서 만든 거임.]
[어쩐지! 드라마가 영화 같더라니.]
댓글을 보고 있었다.
수목 미니시리즈. 여우야 시즌 2 ‘가문의 전쟁.’
방송 3사를 통틀어 올해 첫 화 최고 시청률이 나왔다.
1회 11%. 2회 14%.
인터넷과 SNS, 유튜브에서 폭발적인 반응이 나왔다.
전편보다 나은 속편 없다는 말은 여우야 시즌 2에는 해당되는 말이 아니었다. 꽃미남과 로맨스를 그대로 가져가면서 영화 같은 영상과 액션을 추가했다. 물량 공세의 효과였다.
물론 거의 모두 여성 시청자 반응이다.
그러고 보면 여자들은 한국형 판타지에 대한 거부감이 덜한 모양이다. 이동원 때도 그랬으니.
우리가 열심히 홍보한 덕분에 해외 팬들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 일본에선 언제 방영하나. 미국에선 언제 볼 수 있나. 동시 방영은 안 되는 거냐 등등.
해서 로큐 직원들이 유튜브나 팬 사이트 등에 여우야 시즌 2를 플래닛 케이라는 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고 알렸다.
한국과 이틀 차로 방영하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한국 시각으로 4월 17일 금요일.
로큐가 출시한 플래닛 케이가 문을 열었다.
나와 직원들이 사이트 접속 현황을 지켜보았다.
영어 접속자가 가장 많고 그다음 스페인어. 일본어가 그다음이었다. 중국어 접속자도 많은데, 거의 모두 대만이나 동남아 쪽이었다. 중국에는 접속조차 안 되었다. 그쪽엔 거대한 플랫폼이 이미 있고, 한국 동영상 사이트 접속을 정부에서 차단하기 때문이다.
지켜보던 직원이 말했다.
“1화 트래픽이 너무 증가하는데요. 영상 뚝뚝 끊기겠어요.”
“서버가 부족한 거 아니에요?”
“서버는 충분합니다. 로드 밸런싱 그러니까, 트래픽 분산했거든요. 동시 접속 50만 명도 끄떡없을 텐데 이상하네요.”
“동시 접속자 수가 문제가 아니라, 모두가 초고화질로 보려고 해서 그런 거 아니에요?”
콘텐츠 제작본부 박상희 본부장의 말이었다.
일리가 있다.
“1화, 2화만 추가해야 되겠네요. 바로 가능하죠?”
“예.”
여우야 채널에 1화와 2화를 추가로 업로드했다.
한 화면에 1화가 두 개이니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이 현상이 왜 일어났는지 그제야 알았다.
현재 접속자 수는 약 3만 명.
가입 후 첫 달은 무료다. 그 3만 명이 플랫폼 출시 후 들어오자마자 여우야 1화를 클릭하는 바람에 트래픽이 과부하 수준으로 올라가 버렸던 것이다.
게시판을 확인하자 생각보다 항의 댓글이 없었다. 일본어와 중국어 댓글만 있고. 대부분의 나라가 인터넷 속도가 느려서 스트리밍 데이터가 쌓일 때까지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우리로선 다행이고.
우리 서버와 연결된 회선이 초고속 전용이라 금방 업로드가 끝났다. 그제야 트래픽이 좀 내려갔다. 그래도 매우 높은 수치였다.
서버가 안정되자 다들 안도의 한숨을 쉬곤 저녁밥을 먹으러 갔다. 플랫폼 개시 첫날이라 플랫폼 담당 직원들은 오늘 퇴근도 안 하고 회사에서 밤을 새울 작정이었다. 혹 내 눈치를 봐서 그러는가 했더니 아니었다.
플래닛 케이는 시작은 로큐 엔터에서 하지만, 확장해서 커지면 계열사로 분리된다. 그때 담당 실무진이 모두 과장 이상의 간부가 된다. 자신의 성공과 직결되기 때문이었다.
이 플래닛 케이의 지분은 내가 80%나 가지고 있었다.
내가 차례로 투자한 10억을 가지고 개발을 했으니.
이후 로큐에서 투자 지원을 했었고.
직원들과 밥을 먹고 반주도 했다.
회사로 와서 플랫폼 접속자 수를 다시 확인했다.
회원이 5만 명으로 늘었다.
1화 조회 수만 5만 3천 건. 2화는 3만 8천 건.
조회 수 0이었던 영화와 드라마도 하나둘 조회가 오르기 시작했다.
무료기간이 끝나고 한 달 후에야 수익 집계가 된다. 드라마가 8화까지 나간 후부터다. 플랫폼 홍보용이자 창립 작품으로 올린 것이기에 여우야 시즌 2로 큰 수익을 내긴 어렵다는 건 다들 알고 있었다.
다만 회원이 드라마 방영 중 폭발적으로 늘어난다면 남은 8회만으로도 수익이 제법 될 수가 있다. 그래서 유튜브나 해외 유명 포털 등에 광고를 쏟아 부었다.
드라마 촬영은 이렇다 할 문제 없이 잘 진행되고 있고, 인기도 점점 올라갔다. 프리 준비 때는 총감독이자 프로듀서로서 무척 바빴지만 이제는 느긋하게 내 개인 일도 처리할 시간이 있었다.
조약돌이 제작한 디아스의 투자 수익이 들어왔다.
20억 투자로 51억 수익을 봤다.
지성이와 함께 고향 집에 가서 부모님과 새집에 대해 의논했다. 부모님이 현재 사는 집에 애정이 있으셔서 단층집을 넓은 3층으로 재건축하기로 했다. 리모델링 비용은 6억.
그리고 아버지께 국산 최고급 세단을 사 드렸다. 어머니께는 친구분들과 가시라고 관광 상품권 10매를 드렸고.
내게도 선물을 주고 싶었다.
돈이 있는데 무작정 검소하게 사는 것도 좀 궁상맞은 일이다. 모은 돈 써 보지도 못하고 병이라도 덜컥 걸리면 얼마나 억울하겠나.
해서 먼저 내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원래 살던 이태원 해방촌에서 가까운 지역을 우선 알아보러 다녔다. 차고가 있는 2층 단독주택을 찾았는데, 대부분 30억 대 이상이었다. 조금만 변두리로 가도 큰 저택을 살 수 있으나 회사와 가까워야 했다.
그렇게 사흘을 촬영장과 이태원을 오가다가 집을 찾았다.
방 5개에 이층집이었다. 작은 정원과 차고도 있고.
내가 평생 살 집일 수도 있어서 집값이 오르고 내리는 건 상관없이 샀다. 무엇보다 코어가 좋은 반응을 내서 고른 집이다. 가격은 25억.
인테리어 시공을 의뢰한 뒤 차도 사러 갔다.
고르고 고르다 랜드로버 레인지 로버를 샀다.
벤츠를 살까 했는데, 그런 고급대형차는 기사가 운전하고 차주는 뒷좌석에 타는 타입이었다. 내가 기사를 쓸 일이 없으니 운전자가 편한 차를 사는 게 맞았다.
처음엔 렉스턴과 무슨 차이가 있나 싶었다.
SUV 계의 롤스로이스라더니 타 보니 달랐다.
이렇게 조용하고 안정적인 주행이라니.
지방 촬영장에 갈 땐 렉스턴을 타고 가려고 했는데 생각을 바꾸었다. 승차감이 기막힌 신차를 두고 꿀렁대는 낡은 차를 타고 다니면 바보짓 아닌가. 해서 렉스턴은 수호에게 300만 원 받고 팔았다. 그냥 주려고 했는데, 굳이 사겠다고 해서.
새로 뽑은 차를 몰아 촬영장으로 갔다.
서연과 문성혁이 키스 씬을 찍는 날이다. 모른 척하면 서연이 오히려 서운해할까 봐 일부러 구경 갔다. 마침 서연이 생일이기도 하고.
문성혁의 구미호 가문은 대저택인데, 실제 촬영 장소는 태안에 있는 고급 리조트였다. 그 최고급 리조트 발코니에서 두 사람이 키스를 하는 장면을 찍고 있었다.
“하이, 큐!”
손 감독 콜에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마주 보고 있다가 키스를 했다. 쿨하게 보려고 했는데, 키스 장면을 보니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내가 성혁이만큼만 생겼어도.
“컷! 성혁아! 왜 그렇게 어색해 해?”
“죄송해요. 최 감독님이 오셔서.”
“최 감독?”
스태프들이 일제히 날 보았다.
서연은 민망하게 웃고, 성혁이는 넙죽 인사를 한다.
두 사람에게 외쳤다.
“어, 난 신경 쓰지 마. 혀 넣으면 죽여 버릴 거야.”
“하하하하!”
스태프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성혁이와 서연의 얼굴은 발그레해지고.
서연은 괜찮은데 성혁이가 부담스러워 해서 자리를 떴다.
서연의 밴에 올랐다.
영진이가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었다.
“오셨어요?”
“응. 오늘 몇 시까지 할 거 같아?”
“저녁에 끝날 거예요. 서연 씨 생일이라 오셨구나.”
“그래. 아직도 로드 뛰니까 힘들지?”
“힘들긴요. 서연 씨한테 로드 붙여 줄 순 없죠.”
“수호한테 인계할래?”
“걔는 아직 급이 안 되잖아요. 실장 정도면 몰라도.”
영진이 말이 맞다.
서연 정도 급이면 실장이 붙어야 한다. 영진이는 사무실에서 업무를 봐도 될 팀장인데도 여전히 로드를 뛰고 있다. 촬영 중에 문제가 생기면 로드가 결정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로드와 팀장이 같이 움직이는 건 인력 낭비고.
수호도 팀장이긴 한데 직급만 그럴 뿐 매니저로서는 실장급도 안 된다. 매니저 경험이 부족해서.
“들어가. 서연이랑 올라갈 테니까.”
“저야 좋죠. 밴 몰고 갈게요.”
“그래.”
밴에서 내렸다.
영진이가 웃으며 인사를 한 뒤 밴을 몰고 갔다.
촬영이 오후 7시쯤 끝나면 스태프들이 저녁 식사를 못 먹는다. 식사를 하면 예산이 추가되는데다, 촬영도 1시간 연기되기에 어느 촬영장이나 그렇다.
해서 인근 시내로 나가서 햄버거 세트를 주문했다.
40인분 햄버거 세트를 싣고 다시 촬영장으로 갔다.
제작실장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마침 세팅 중이었다.
배가 고팠던 조연출이 먼저 반겼다.
“20분만 쉬고 갈게요! 햄버거들 드세요!”
“와! 밥이다!”
“대박!”
스태프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손 감독도 환하게 웃으며 왔다.
“스태프들 마음을 어떻게 이렇게 잘 아세요?”
“저도 스태프였으니까요.”
“최 감독님에게 비하면 전 고생을 안 했네요. 방송국 입사해서 조연출 3년 하고 바로 연출을 맡았으니 말입니다. 스태프들 일하는 거에 비하면 촬영하고 편집하느라 밤새우는 건 고생도 아니죠.”
“안 힘든 사람이 있겠습니까?”
서연과 문성혁도 다가왔다.
성혁이 멋쩍게 웃어 보였다.
“오신다면 오신다고 말씀을 하시지 그랬어요.”
“왜? 뭐 찔리는 거 있어?”
“저 찍혀서 감독님 영화에 출연 못하면 어떻게 해요? 안 그래도 서연 누나가 철벽을 쳐서 답답한데.”
“내가 무슨 철벽을 쳐? 너 나 좋아하니?”
“누가 보면 내가 짝사랑하는 줄 알겠네.”
서연과 문성혁이 티격태격했다.
서연이 내 옆에 바짝 붙어서 씩 웃었다.
성혁은 눈꼴사납다는 얼굴로 혀를 차고.
햄버거 간식을 먹은 뒤 바로 촬영을 재개했다.
두 시간 뒤 촬영이 끝나자 서연이 바로 내 차로 왔다.
그녀가 내 차를 보더니 얼굴이 환해졌다.
“와! 오빠, 돈 좀 썼네?”
“응. 그동안 낡은 차 함께 타느라 민망했지?”
“차가 뭐가 중요해, 오빠랑 함께 있는 중요하지.”
말도 참 예쁘게 하는 그녀다.
서연을 조수석에 태우고 차를 몰았다.
바로 서울로 향했다.
* * *
호텔 레스토랑에 들어가 서연과 식사했다.
일 년에 세 번쯤은 근사하게 밥을 먹는다.
서연과 내 생일. 그리고 크리스마스이브.
서연이 말했다.
“나 요즘 매너리즘에 빠졌나 봐. 연기가 시큰둥해졌어.”
“재미가 없어?”
“이러면 안 되는데, 그냥 일 같아졌어.”
“다 그렇지 뭐.”
웃으며 식사를 이어가다 문득 생각났다.
“드라마만 찍어서 그런가?”
“나도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어.”
영화인이 상업영화만 찍어 대면 예술인으로서의 허기를 느끼기 마련이다. 서연은 연기자로서 처음 예술인의 욕구가 생긴 모양이다. 보다 창의적인 뭔가가 하고 싶은.
“영화 찍어 볼래?”
“오빠가 생각해 둔 거 있어?”
“아니. 승철이가 입봉 준비하는데, 그 녀석 생긴 거 답지 않게 멜로야.”
“승철 오빠가 멜로를 찍는다고?”
“그래, 승철이가 오래전부터 준비하던 작품이야.”
“내용이 뭔데?”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29살 여자 백혈병 환자와 27살 불치병 남자가 병원에서 탈출해서 동해로 가는 이야기.”
서연의 눈이 반짝였다.
여자 배우라면 누구나 아름다운 멜로를 꿈꾼다.
실은 서연을 염두에 두고 개발하는 시나리오다.
난 개입을 안 했다. 온전히 승철이의 작품이 될 수 있도록.
초고가 나오면 조금 손을 봐주면 된다.
서연이 말했다.
“눈물 날 것 같은데.”
“분위기는 밝아. 남녀가 가는 곳마다 사고를 쳐. 눈에 뵈는 게 없거든. 버스 탈 돈이 없어서 강도 행각을 벌이는데 매번 실패해. 둘 다 착해서.”
“귀여운 강도 커플이네?”
“응. 인상적인 장면이 있어. 맨몸으로 도피 중인 남녀가 너무 배가 고파서 식당에 강도짓을 하러 들어갔어. 밥 한 끼만 차려 주면 살려는 주겠다고 했지. 그런데 식당 아저씨가 울고 있는 거야. 오늘이 아내 기일이라면서. 그래서 남녀가 아저씨한테 밥을 차려 줘.”
“웃기면서 뭔가 뭉클하네.”
“영화 분위기가 그런 식이야.”
서연이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죽음을 앞둔 남녀의 풋풋한 사랑이야기.
그들이 일으킬 소동과 여정. 마지막에 찾아올 이별.
여자는 동해에 도착하기 전에 자꾸만 쓰러진다. 여자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면 남자가 코피를 쏟으며 쓰러지고. 그렇게 두 사람은 해가 뜨는 바다를 한 번 보겠다고 기를 쓰고 동쪽 바다로 간다. 바다란 생명이 태어난 곳이기 때문에.
영화 ‘녹킹 온 헤븐스 도어’를 멜로로 차용한 영화다.
남자 투톱인 이 영화 보고 펑펑 울었었다.
승철이가 쓴 시나리오 보고 나서도 그랬고.
마지막 여주에게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나는 거래. 슬프지 않고 예쁘니까. 고마워. 내 마음을 예쁘게 만들어 줘서.’
이 대사는 말하지 않았다.
서연이 시나리오를 보다가 울게 하려고.
주섬주섬 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서연의 눈이 커졌다.
“뭐야?”
“그냥 커플링.”
“난 또. 놀랐잖아.”
서연이 상자를 열어 보았다.
안에 심플한 금반지가 있었다.
“껴 봐.”
서연도 안다.
내가 직접 끼워 주는 건 다른 반지라는 걸.
그녀가 손에 반지를 끼고는 살펴보았다.
나도 슬쩍 반지를 껴서 내밀었다.
나와 서연의 왼손에 같은 반지가 있었다.
서연이 손을 대보며 활짝 웃었다.
“반지 불편해서 안 하고 다니는데, 이건 편해서 좋네.”
서연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고마워. 내 마음에 와 줘서.”
서연이 오글거린다는 표정을 짓더니 내 입술에 쪽 하고 입을 맞추었다. 그러곤 아무 일 없었던 척 식사를 했다.
옆 테이블의 노부부가 우릴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 * *
출근하자마자 내 사무실에서 플래닛 케이 사이트에 들어갔다. 출시 2주 사이에 회원이 20만 명에 이른다. 출시 첫날 기다렸던 한국 드라마 팬들이 몰려왔고, 그 뒤로도 광고를 본 이들이 하나둘 가입하면서 이룬 성과다.
펀딩 앱은 이제 곧 시작할 것이고, 플래닛 케이 앱도 내일이면 출시한다. 앱이 뜨면 광고 역할을 대신할 터였다.
몇 가지 결재를 한 뒤 지하로 갔다.
락키가 데뷔 준비 연습에 열중이었다.
원래 3월에 데뷔하려고 했는데, 플래닛 케이에 뮤직비디오를 올려놓으려고 일부러 데뷔를 연기했다.
타이틀 곡은 메탈 펑크다.
한국인의 귀에는 익숙하고, 외국인에게는 신선하게 들리는 곡을 찾다가 서태지의 곡을 참조했다.
참고한 곡은 ‘live wire.’ 이 곡에 EDM이 조금 섞였다.
연주 면에서 서태지의 곡만큼 좋다고 볼 수는 없으나 대중성은 조금 더 있었다. 전속 작곡가들은 다 좋다고 했고, 내가 듣기에도 곡이 무척 좋았다.
락키 아이들이 트레이닝 복을 입고 방방 뛴다. 악기 연습과 체력 훈련을 많이 해서 라이브도 된다. 회사에서 열심히 관리해준 덕분에 다들 한 미모 한다.
세션맨 출신인 남자 멤버들 실력이야 말할 것도 없고.
게다가 회사의 작곡 팀까지 붙어서 편곡했다.
징-
하는 소리와 함께 극적인 엔딩.
아이들이 숨을 몰아쉬며 내게 달려왔다.
남자 멤버들은 넙죽 인사를 하고.
“우리 노래 어때요?”
“좋아. 잘될 것 같다.”
“사장님이 잘될 것 같대!”
또 아이들이 펄쩍펄쩍 뛰었다.
제니스 영향으로 애들도 자유분방하다.
이런 애들이 에반게리온 슈트 같은 걸 입고 무대를 뛰어다닌다. 벌써 반응이 어떨지 감이 왔다.
메탈리카와 드림시어터 광팬이고, 15살부터 록음악만 들어온 나다. 골수 락팬이 들었을 때도 이번 락키 데뷔곡은 제대로다. 전혀 부끄럽지 않다. 좀 떨어지는 보컬이야 애들 미모로 홀리면 되고.
전 세계 남자들이여.
열광할 준비를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