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권-제1장 영화제 출품 (25/56)

내가 영화다 4권

글드림 현대판타지 장편소설

차례

제1장 영화제 출품

제2장 새로운 도약

제3장 음악 영화

제4장 로맨틱 멜로 엔딩

제5장 미국 생활

제6장 할리우드 스튜디오

제7장 제작비 1,478억

제8장 동쪽의 귀인

제1장 영화제 출품

마블 스튜디오에서 일한다는 이동욱 씨와 함께 코엑스 근처 호텔 라운지로 갔다. 서연도 궁금했던 터라 함께했다.

영동대로가 내려다보이는 라운지에서 맥주를 마셨다.

이동욱 씨가 말했다.

“마블에서 투자 배급 담당 관리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영화제 출품작을 골라 배급하는 책임자이기도 하고요. 9월 12일에 열리는 토론토 영화제 출품작을 찾아 한국에 왔는데, 마침 감독님이 쓰신 시나리오를 재밌게 봤습니다. 전작인 아비도와 각본을 쓰신 나는 보스다도 정말 재밌게 봤고요.”

“고맙습니다.”

“이번 작품 이동원은 미국인들이 무척 좋아할 만한 영화라고 확신합니다. 다른 좀비 영화와 아주 달라서 인상적이더군요. 세계관도 독특하고 부자 3대로 이어지는 사랑이 저는 정말 좋았습니다. 미국인이 봤을 때 정서적으로 이질적인 것도 전혀 없고요. 특히 시간에 쫓기는 좀비 액션은 감탄해서 손뼉을 칠 정도였죠.”

너무 띄워 주니 사기꾼이 아닌가 싶었다.

CG가 약간 부족해서 욕이나 먹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이번 추석은 9월 12일이다. 토론토 영화제에 출품하면 추석 전에 개봉은 어렵다. 이미 일정이 있어서 배급을 조정하기도 쉽지 않고.

“미국 개봉이 가능한 수준일지는 장담 못 합니다. 제작 예산을 줄이고자 해서 CG가 좀 있어요.”

“한국 영화 CG 수준이 높아서 그 점에 대해선 큰 걱정은 안 합니다. 감독님 연출 스타일을 봤을 때 마음에 안 드시면 개봉 연기하실 듯하고요. 만약 포스트 프로덕션 일정이 늘어나면 영화제 출품과 관계없이 마블 혹은 월트디즈니에서 배급을 추진할 수도 있습니다.”

“혹시… 나는 보스다도 배급하지 않으셨어요?”

이동욱 씨가 웃었다.

“맞습니다. 저는 아주 재밌게 봤는데, 미국인들과 웃음 코드가 맞질 않아서 흥행은 좀 저조했죠. 반면 감독님 신작은 오히려 미국인 정서에 가까운 영화라고 할까요. 미국인, 아니 서구인의 마음을 묵직하게 건드리는 부분이 상당히 많았어요. 두 세계의 동일한 가족이 교감하는 것도 좋았고요. 이점이 미국인에게는 특별하게 다가갈 겁니다. 전에는 이런 게 없었거든요.”

난 별로 모르겠다.

영화 어바웃 타임의 정서를 빌려서 그런 걸까.

이동욱 씨가 말을 이었다.

“제가 교포 3세이긴 해도 한국에서 국제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정서를 잘 알죠. 미국엔 좀비 매니아가 무척 많습니다. 그런 좀비 영화에 가족의 사랑을 자연스럽게 그려내서 희귀한 영화가 탄생한 겁니다. 어쩌면 한국 사람들은 낯설 수도 있어요.”

“저도 그 점은 아직도 신경이 쓰이는 부분입니다.”

“그럴 겁니다. 한국에선 한국식 판타지를 꺼리는 경향이 좀 있죠. 한국식 SF가 잘 안 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인이 만든 판타지는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데 말입니다. 반면 미국인은 판타지에 익숙합니다. 오히려 한국 판타지가 신선하게 다가갈 겁니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하긴 홍콩 무협 영화는 잘 보면서, 한국 무협 영화는 망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 같다. 그 탓인지 내가 쓴 신촌검호도 날아다니는 개연성을 부여했는데도 대박을 못 내고 320만 들고 간판 내렸다. 망한 것은 아니나 내 기대에 못 미쳤다.

아무리 개연성이 있어도 우리나라 관객은 아닌 건 아닌 거다. 그렇게 따지면 이번 영화 잘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꿈에서 들은 커플의 대화.

남자가 그랬다. 설정이 거슬렸다고. 재미는 있는데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는 의미다. 예측만큼 흥행은 안 될 것 같다.

이동욱 씨가 말했다.

“혹 제작비가 더 필요하시다면 마블 측에서 투자할 용의도 있습니다. CG에 더 공을 들인다면 겨울 방학 시즌에 개봉하는 방법도 있을 테고요.”

“그 점은 생각을 좀 해 보겠습니다.”

“그럼, 영화 좀 잘 뽑아 주세요. 기대 하겠습니다.”

“저희도 부탁드릴게요.”

“네. 여기 제 명함입니다.”

이동욱 씨가 명함을 내밀었다.

Investment & Distribution Dept.

Supervisor. Peter Lee.

투자 배급 부분 관리자. 피터 리.

뒷면에는 붉은색 마블 로고가 있었다.

CG에 예산을 추가하고 싶다면 편집본을 보내 달라는 이동욱 씨의 말을 마지막으로 그와 헤어졌다.

일단 CG 수준을 확인하고 결정할 문제였다.

CG가 생각보다 어색하면 시간과의 싸움을 벌이려고 했는데, 마블이 배급을 맡아 준다면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겨울에 개봉해도 되니까.

참 묘한 일이다.

한국 관객은 호불호 중 호가 우세할 거라고 보고 시작했는데, 미국 쪽에서 관심을 보일지는 생각을 못했다. 이동욱 씨 말을 듣고 보니 영화의 세계관이 외국인에게는 거부감이 덜하겠다는 생각도 들고.

다음 날부터 편집실과 CG 팀 작업실에서 상주했다.

CG 팀은 한국에서 2번째로 기술력이 좋은 업체였는데, 영화 촬영을 하는 동안 소스를 거진 다 만들어 놨다.

문제는 내가 찍은 영화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붙이느냐였다. 앵글과 안 맞는 문제가 있으면 다시 찍어야 하고, 돈을 더 들여서 한 씬 전체를 CG로 만들 수도 있었다.

편집본이 쌓이고 그 편집본으로 그래픽 작업을 하는 걸 매일 지켜보았다. 수작업으로 새로운 걸 창조하는 게 아니라, 소스를 조작하여 배치하고 붙이는 일이라 작업 자체는 고난도가 아니었다.

현장에서 영화를 찍다 보면 미처 알지 못한 구멍이 있을 수 있는데, 놀랍게도 CG 팀은 자체적으로 그 구멍을 막았다.

이를테면 블루스크린이 팽팽하지 않아서 소스를 붙였을 때 영상이 뒤틀리는 현상이 일어났다. 다른 쇼트는 합성을 했는데, 그 쇼트는 아예 다른 배경을 복제하여 붙여 버렸다. 실제 영동대로에 있는 건물이 아닌 다른 건물을 붙이는 식으로.

다른 영화 원본에도 그런 게 꽤 있었는지, CG 팀은 능수능란하게 노하우를 발휘했다. 일부이긴 하지만 작업을 해 놓은 걸 보니 딱히 어색한 부분도 없었다.

CG 팀장이 말했다.

“소스 중에 걸리는 게 하나 있어요.”

“뭐죠?”

“좀비 몹씬이 좀 단조로운 면이 있어요. 좀비끼리 깔리거나 뒤엉키는 장면, 무수히 포개지는 장면 같은 게 좀 있어야 하는데, 그건 CG로 만들기가 어려워요.”

“월드워 Z에 나왔던 이스라엘 성벽 씬 같은 거죠?”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다채로운 소스가 좀 필요해요.”

“재촬영해야겠네요.”

“그러면 저희야 좋죠.”

결국 재촬영하기로 했다.

스태프들은 재촬영이 있을 줄 예상했기에 다들 쉬고 있다가 다시 촬영장에 왔다. 남양주 스튜디오를 빌리고 좀비 역할 보조출연자 50명을 동원했다.

블루스크린이 있는 스튜디오에서 좀비들이 달려오다 마구 깔리고, 뒤엉키는 장면 따위를 찍었다. 건물에서 좀비가 떨어지는 소스 영상도 찍고, 차에 치인 좀비가 사방으로 퉁겨져 나가는 소스도 찍었다.

그렇게 다양하게 소스를 더 만든 뒤 CG 팀에 넘겼다.

CG 질과 작업 속도를 높이기 위해 CG 팀도 증원했다.

그 바람에 5억 정도 추가 예산이 들었다.

한 달이 지나고. 또 한 달이 지났다.

편집은 끝났고, CG 작업은 큰 문제 없이 진행되었다.

마블의 투자를 받을 것을 염두에 두었으나, 작업 상황을 보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붙여 놓은 좀비들이 생생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가 실수하여 좀비 그림자가 제각각인 것은 CG 팀이 일일이 손을 봐서 같은 그림자 각도와 크기로 정돈했다.

CG 보정 작업을 시작했을 때는 거슬리는 점을 체크하여 다시 손을 보게 했다. 일반 관객이 봤을 때 그리 눈에 띄지 않는 부분이지만, 그냥 두었다가 욕을 먹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8월 9일.

영상 보정까지 끝낸 마스터 본이 완성되었다.

음악과 사운드가 안 들어갔으나 CG만 확인하기 위해 1차 기술 시사를 했다. 그래도 눈에 약간 걸리는 게 있지만 전체적으로 무난했다. 영화 진행 속도가 빨라서 애써 찾지 않고서는 모르는 부분이었다.

이 마스터 본에 영어 자막을 삽입했다.

미리 준비되어 있던 자막을 넣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영문 제목도 새로 지었다.

THE 2 DOORS.

이어 8월 25일에 기술 시사회를 열었다.

음악과 사운드가 들어가니 영화가 확 살았다.

영화 자체는 정말 재미있었다. CG도 나무랄 데 없었고.

이 재밌는 영화를 설정이 마음에 안 든다고 성적이 저조하면 정말 억울할 터였다. 꿈에서 봤을 때는 영화 성적이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다시 꿈을 꾸어서 뭔가 보였으면 좋겠으나, 그날 이후로는 예지몽 같은 걸 꾸지 않았다. 미간에 빛이 나야 그런 꿈을 꾸는 듯했다. 미간에 의식을 집중하면서 잠들 수도 없고.

최종본을 미국에 있는 이동욱 씨에게 클라우드 저장 방식으로 보냈다. 그가 토론토 영화제에 출품을 대행했다. 영화제 프로그래머가 영화를 보고 오케이 하면 출품이 성사된다.

통과가 되면 원본은 내가 가지고 가면 되고.

국내 개봉 날짜를 잡는 게 문제였는데, 다행히 CG E&M 측에서 10월 초 개봉으로 일정을 조정해 주었다. 추석 후는 비성수기에 들어가는 시점이지만 상관없었다. 될 영화는 언제 개봉해도 되니까. 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그로부터 5일 후.

출품이 되었다는 소식이 왔다.

마블의 영향력이었다.

제작실장과 함께 캐나다로 향했다.

* * *

영화제 출품자 자격으로 토론토의 한 호텔에서 열리는 리셉션에 참석했다. 이동욱 씨와 함께였다. 고급 어휘는 몰라도 간단한 대화 정도는 할 수가 있었다.

생각보다 영화제 규모가 훨씬 컸다. 도시 전체가 들썩이는 거대한 축제였다. 전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영화들이 주로 초청된 터라 보이는 사람이 죄다 유명 감독이었다.

이동욱 씨의 안내와 소개를 받으며 여러 사람을 만났다. 제작자와 배급사 관리자, 바이어 등등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영화인은 거의 다 모인 것 같았다. 텔레비전과 잡지에서나 보던 세계적인 감독들도 만나 간단히 인사를 했다.

놀랍게도 아비도를 본 분들이 적지 않았다. 나와 인사할 때마다 아비도를 잘 봤다고 말해 주었다. 나 역시 그 감독님들 영화를 즐겨 봤으니 덕담으로 응수했고.

출품작이 312편이고, 각 부분 수상작은 50여 편이 넘는다.

수상작은 있으나 비경쟁을 표방하는 영화제다. 이 영화제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마켓이었다. 북미 영화 시장에 노크할 수 있는 관문이기도 하고. 이 영화제에서 호평이 있으면 세계 각지로 팔려 나가는 창구 역할도 한다.

리셉션 파티를 끝내고 호텔로 돌아왔다.

13시간 빠른 한국 시각으로는 추석 당일 오전이라 부모님과 서연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 다음 제작실장과 둘이서 캐나다산 캔 맥주를 마셨다.

“분위기 어때요?”

“좀 쫄았네요. 워낙 유명한 분들이 많아서요.”

“아비도는 좀 보셨대요?”

“만나는 분들은 다 보셨다네요.”

영화 판권을 팔면 해당 국가의 IPTV나 DVD 판권까지 팔 게 된다. 영화를 본 분들은 아마도 극장 상영 이후 DVD로 보셨을 것 같다. 대부분 극장 상영이 오래가지 않았으니.

다음 날 저녁 대대적인 영화제 행사가 시작되었다.

우리나라 영화제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참석 목적에 따라 각자 따로 논다고 할까.

개막작이 상영되는 극장 앞에선 유명감독과 배우들이 레드 카펫을 걷고, 호텔에선 바이어들과 제작자 등이 담소를 나누었다.

나와 제작실장은 이동욱 씨와 함께 여기저기 불려다녔다. 돈이 안 드는 로비 활동이었다. 프로그래머도 만나고, 영화제 TIFF 고위 관계자도 만나고. 한국 영화인과 감독들도 제법 만났다.

내 영화 이동원의 상영은 영화제 후반에 상영 날짜가 잡혀서 캐나다에서 영락없이 10일을 머물러야 했다.

그래서 제작실장과 함께 나이아가라 폭포를 구경하러 갔다. 제작실장이 야구광이라 피츠버그에 가서 메이저리그 야구도 관람했다.

그다음엔 느긋하게 영화를 보러 다녔다.

그러다 중소 수입사 대표인 박광수라는 분과 친해져서 매일 만나 술을 마셨다. 37살인 그의 모험극 같은 영화 수입사를 듣는 재미가 쏠쏠했다.

“29살에 1억 가지고 시작했죠. 중소 수입사는 부지런히 영화제 돌아다니면서 발품 파는 것밖에는 답이 없어요. 1억에 수입해서 100만 정도 들면 뛰어다닌 보람이 생기죠.”

“1억에 수입해서 100만이면 순수익이 얼마나 되죠?”

“극장 수입과 제작사 배분 공제 하면 약 20억 됩니다. 계약마다 다르긴 하지만 10억이라도 10배는 되는 거죠.”

“투자 대비 수익이 대단하네요.”

“대신 안목이 있어야죠. 저희 같은 중소 업체는 제2의 비긴 어게인과 위플래쉬를 찾아야 합니다. 요새는 경쟁이 심해서 시놉이나 시나리오만 보고 선점하는 수입사도 꽤 돼요. 마켓에 나오면 가격이 치솟거든요.”

박광수 씨를 통해 영화 수입사의 세계를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한국 영화 수출가격은 보통 3억에서 5억 수준. 할리우드 영화는 수십 억대이고, 미국 저예산이나 예술 영화 등은 한국 영화 수출가보다 훨씬 낮다.

그중에 찾아낸 것이 ‘비긴 어게인’ ‘위플래쉬’ 같은 이른바 아트버스트 영화다. 3억 이하로 수입해서 30배 이상의 수익을 낸 영화들이다. 이런 영화들은 몇 안 되는 스크린 수 개봉으로 장기 상영한다.

돈도 돈이지만 열정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소자본으로 영화 보는 안목이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니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그래도 숨겨진 원석을 찾아내서 보석으로 가공하는 보람이 얼마나 클지 알만했다.

* * *

영화제 9일째.

우리 영화가 심야에 상영되는지라 밤 11시에 한 극장에 들어갔다. 객석이 꽉 들어차 있었다. 관광객이 워낙 많이 오는 영화제라서 다른 영화도 만원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약간은 긴장한 채 영화를 봤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반응이 왔다.

여기저기서 ‘와우!’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제2동원이 주인공에게 찾아와 정체를 드러냈을 때였다.

이어 제2지구가 있으며 그쪽 세상엔 좀비로 가득하다는 말이 나왔을 때.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구해 이 지구에 모셔오겠다는 말이 나왔을 때 극장 안이 소란스러울 정도로 탄성이 터졌다.

조용한 사람은 나와 제작실장뿐.

우리나라 관객들은 고개를 갸웃거릴 장면인데, 여기 관객들은 좀비물에 가족애를 풀어냈다는 게 놀라운 모양이었다. 그다지 기발한 발상은 아니었다.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 차이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어 두 주인공이 잠실로 질주하는 장면으로 전개되자 관객들이 엄청 몰입을 했다. 24시간 안에 아버지와 딸을 구해서 넘어가야 하는데, 방해 조건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네 명이 잠실운동장에서 탈출하는 장면에 이르자 여기저기서 ‘지저스’를 찾았다. 그 뒤부터는 무한질주였다.

할리우드 좀비물은 물량공세나 로드 무비 형식이다. 그러나 우리 영화는 긴박한 상황과 시간으로 몰아붙였다. 거기에 가족과 또 다른 나와의 조우라는 감정을 건드린다.

이곳 관객들은 처음 보는 류의 좀비물이었다.

영화가 끝났을 때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모든 관객이 기립박수를 치고 있었다. 나와 제작실장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일어나 제3자인 양 손뼉을 치고.

온갖 말이 다 나왔다.

놀랍다. 환상적이다. 한국인은 뭘 만들어도 다르다. 이 감독의 영화를 찾아봐야겠다. 영리하게 영화를 조합했다. 등등.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반응이 열광적이었다.

나와 제작실장은 얼떨떨한 얼굴이 된 채 극장에서 나왔다.

제작실장이 물었다.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건가요?”

“글쎄요. 저는 지금도 잘 모르겠네요.”

“중후반부터 이어진 박진감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그때 기다리고 있던 이동욱 씨를 만났다.

같은 극장에 있다가 우리가 있는 걸 봤던 모양이다.

“보셨죠? 제가 예상한 반응입니다.”

“어떤 면 때문일까요?”

“두 명의 동원이 각자 삶에 대해 대화를 할 때 관객들은 자신의 내면과 대화하는 동양적 메타포라는 걸 알더군요.”

“동양적 메타포요?”

“저쪽 지구가 멸망한 건 제약사의 탐욕 때문이었죠. 감독님은 인간의 탐욕 때문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걸 단순 명쾌하게 제시한 겁니다. 영화의 서스펜스가 대단하지 않았다면 그런 의미도 퇴색되었을 거예요.”

내가 의도한 걸 현지인 관객들이 읽었다는 뜻이다.

난 그저 상업영화에 주제 의식이 들어갈 여지가 보이길래 넣었을 뿐이다. 동양적 메타포까지는 모르겠고, 두 지구와 두 동원의 비교를 통해 삶과 인간의 본성을 투영한 건 맞다.

영화의 정서적인 면은 소 뒷걸음치다 쥐 밟은 격이다.

물론 작품성을 높이겠다고 제법 노력하긴 했지만.

다음 날 정오.

호텔 방에 누워 있는데 이동욱 씨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 작품이 수상했다는 소식이었다.

미드나이트 매드니스 상과 같은 부분의 관객상.

-TIFF에서 관객상을 받은 작품은 흥행한다는 전통이 있어요. 바이어들 반응도 좋으니 기대해 보셔도 좋을 겁니다.

“예, 고맙습니다.”

그 기대가 다음날 현실이 되었다.

정말 깜짝 놀랐다.

* * *

영화제 마지막 날 저녁.

이동욱 씨가 세일즈 대행으로서 호텔 룸에 마켓 부스를 설치했다. 거기에 한 번 갔다 온 후 계속 숙소에 있었다. 제작실장과 이동욱 씨가 바이어들과 미팅을 해서 난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이동욱 씨는 저녁이 다 되어서야 날 만나러 왔다.

영화제 내내 바이어들과 접촉하며 영화 판매를 로비했던 그였다. 우리 영화를 위해서 그런 게 아니라, 세일즈 대행 수수료가 그의 개인 수익이 되기 때문이다.

그가 그 결과를 가지고 내게 왔다.

얼굴만 봐도 좋은 소식이었다

이동욱 씨가 웃으며 말했다.

“한국인 정서가 아닌 세계인의 보편적 정서가 제대로 먹혔습니다. 하나같이 신선하다는 반응입니다. 좀비 소재와 관객상을 받은 효과도 나왔고요.”

“좀 팔렸습니까?”

“좀 팔린 정도가 아닙니다. 미국을 제외한 유럽과 남미 등 57개 영역에서 구입하기로 했습니다. 모두 미니멈 개런티 계약을 했는데 평균 11억 보장입니다.”

“미니멈인데 11억이라고요?”

“바이어들은 한국 영화 프로덕션 퀼리티가 높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같은 액션 영화라도 한국 영화를 우선 구입하는 거죠. 더구나 이번 영화는 반응이 상당히 좋았고요. 실제 흥행으로 이어지면 사겠다는 나라가 꽤 늘어날 겁니다.”

그동안 한국 영화가 해외 개척을 닦아 준 덕분이다.

믿고 보는 한국 영화라고 해야 하나.

이동욱 씨의 수완과 마블이 선택했다는 것도 크게 작용했을 것 같다. 그가 환하게 웃었다.

“감독님이 찍으신 단편 영화 영향도 있습니다. 거기에다 나는 보스다도 봤고, 아비도도 본 바이어들이고요. 제가 자신이 있어서 50만 달러로 입찰을 시작했는데 이번 영화제 상영작 중에 가장 핫한 영화로 꼽혀서 300만 달러까지 오르더군요. 한국 영화 평균 판매 가격이 40만 달러이니 꽤 고가에 팔린 셈입니다.”

띠리리리.

말을 하던 이동욱 씨가 잠시 전화를 받았다.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아비도는 11개 국가에 판권 양도 계약으로 평균 1억 원에 팔렸다. 일반 작가주의 영화는 그보다도 낮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러닝 개런티 계약인데도 평균 11억.

판권 권리 양도로 따지면 대략 50억 수준이라는 말이다. 한국에서 천만 관객이 든 뒤 팔려나간 나는 보스다 판권 가격의 다섯 배다.

이동욱 씨가 전화를 끊고는 다시 말했다.

“아직 확실치는 않지만 미국 전역 1,500개 극장에서 개봉할 수 있을 겁니다. 전체 스크린 수는 4만 개가 넘지만 아무래도 미국인은 외국 영화를 잘 안 보기에 그 정도도 많다고 보시면 돼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럼, 저희와도 계약을 완료하시죠. 이걸 보시죠.”

이동욱 씨가 내민 네 종의 계약서를 보았다.

모두 미니멈 러닝개런티 계약서다.

400만 달러 보장. 수입사 8 대 제작사 2.

300만 달러 보장. 수입사 7. 5 대 제작사 2. 5.

200만 달러 보장. 수입사 7 대 제작사 3.

100만 달러 보장. 수입사 6. 5 대 제작사 3. 5.

보장금은 선지급 수익금이다. 그 금액 이상 수익이 발생하면 수입사와 제작사가 수익을 나눈다. 수입사가 흥행을 믿는다면 보장액이 높고. 그 반대이면 낮다. 제작사는 흥행 가능성이 높을수록 수익 배분이 높은 계약을 하는 게 당연하다.

이동욱 씨가 말했다.

“감독님에게 유리한 계약은 100만 달러일 겁니다. 솔직한 마음으론 500만 달러 드리고 판권을 사고 싶습니다만, 회사에선 300만 달러로 계약하라고 하네요.”

마블이 배급을 맡았고, 스크린 수가 1,500개나 된다. 마블 브랜드와 이동욱 씨가 아니면 추진하기 어려운 배급이다. 그로선 회사 수익도 생각해야 하고.

더구나 미국만 배급하는 게 아니라 여러 나라와 미니멈 개런티 계약을 맺었다. 거기서 들어오는 수익도 있다.

이동욱 씨는 미국 흥행에 자신이 있으니 러닝 개런티 계약이 아닌 판권 권리를 사는 게 낫다고 보는 거고.

300만 달러 미니멈 개런티 계약을 맺었다.

이동욱 씨는 나와 악수를 하고 방을 떠났다.

2시간 뒤 제작실장이 최종 판매 현황표를 들고 내 방으로 왔다. 제작실장도 만면에 웃음을 담고 있었다.

“열광적인 반응이 실적으로 이어지네요. 권리 구매는 부담이 좀 되었는지, 모두 미니멈 개런티입니다. 한번 보세요.”

제작실장이 건네는 문서를 보았다.

평균 11억 보장 러닝 개런티다.

1억 보장에 제작사 8. 수입사 2 계약도 있다. 영화 푯값이 낮으나 인구는 많은 나라다. 옛날 한국 수입사나 현재 영세 수입사도 이런 계약을 한다.

대략 계약 수익을 따져보니 500억가량.

러닝 개런티를 뺀 액수다.

아직 한국에선 개봉도 안 했다.

안 사간 나라도 많고.

제작실장이 말했다.

“이동욱 씨 정말 대단하네요. 저는 입찰 가격이 높아서 바이어가 구매를 포기할까 노심초사했는데, 그분은 느긋하시더라고요. 자국 바이어들끼리 경쟁해서 가격이 점점 올라가는 거 보며 심장이 두근거려서 혼났습니다.”

“가격을 높여야 본인 수익도 커지니까요.”

“예. 한 15억 될 겁니다.”

이동욱 씨가 이번 세일즈 대행으로 번 돈이 그 정도다.

그가 영화제 내내 열심히 발로 뛴 이유다.

제작실장이 물었다.

“저는 최종 금액 계산해보고 숨을 제대로 못 쉬었는데, 감독님은 담담하시네요.”

“액수가 너무 커서 와 닿지가 않네요.”

“회사에 들어가서 이 소식 알리면 난리 나겠어요. 주가도 오를 테고요.”

주가가 몇 배는 오를 것 같다.

개봉도 안 한 작품으로 잭팟을 터뜨렸으니.

정작 한국에서 흥행에 참패하면 속이 쓰릴 것 같은데.

제작실장과 함께 자축 겸 맥주를 마시러 갔다.

캐나다의 마지막 밤이었다.

해외 영화제에 나오니 영화판이 또 새롭게 보인다.

세상이 참 넓다고 해야 할까.

영화 수입이라는 게 참 신묘하다.

영화 위플래쉬는 한국 수입사가 6천6백만 원에 판권 수입해서 158만 명이 들었다. 126억 매출에 극장 수입과 배급사 수수료 공제하면 60억이 수입사 수익이 된다.

도대체 몇 배 수익을 낸 건가.

물론 그 회사 대표의 노력이 있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던 신인 감독의 영화를 선댄스 영화제에서 본 뒤 제작사에 찾아가서 어렵게 계약을 따냈다고 한다. 마켓에 나왔으면 훨씬 더 비쌌을 테고. 가성비 좋은 영화를 찾아내는 안목과 부지런히 영화제를 찾아다닌 덕분이다.

이런 걸 보면 영화가 참 재밌다.

예술로도, 비즈니스로도.

* * *

한국에 돌아와서 개봉 준비를 했다.

내 영화는 10월 4일에 개봉하기로 날짜를 잡았다. 우리도, 우리 영화를 사간 수입사도 마케팅할 시간이 필요했다.

영화 데이터는 전문 업체에 복사를 맡겨 계약한 각국 수입사에 정식으로 수출했다. 그 업무는 스카우트한 영화사 경력직 해외 업무팀에 맡겼다. 우리가 부르자 냉큼 영화사를 그만두고 온 이들이다.

토론토에서 내 영화가 높은 가격에 팔렸다는 소식이 화제가 되었다. 이동원 시나리오를 읽어본 영화인들의 반응은 의아하다는 게 대다수였다. 이 영화가 과연 500억 매출을 올릴 만한 영화인가. 다른 한국 영화와 무슨 차이가 있는데? 이런 의문을 가졌다.

외국인은 자국에서도 통하는 익숙한 소재에서 한국적인 신선함을 발견했는데, 한국인이 봤을 때는 익숙하거나, B급 설정이 더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런 반응을 보고 확실한 걸 느꼈다.

대중문화를 외국에 수출하려면 세계인의 보편적인 정서와 소재에 한국만의 특징을 부여해야 한다는 점. 너무 한국 색만 있어도 안되고, 서구식으로 만들어도 서구인에겐 익숙한 것이기에 잘 안 된다.

한마디로 말해서 외국인에게 ‘이동원’은 기존의 틀을 깬 새로운 좀비 영화였다. 좀비물을 보고 가족애를 느끼거나, 감동했던 예가 없었을 테니까.

내 영화에 대한 화제성은 시사회에서 드러났다.

9월 27일에 언론 시사회를 했는데 기자들이 엄청나게 왔다. 연예 관련 기자는 죄다 몰려온 듯했다.

영화를 본 기자들 반응은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아비도 감독이 좀비물을 만들면 이런 영화가 나온다는 평도 있고, 액션 영화 자체만으로도 훌륭하다는 평도 있고.

설정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있었다. 굳이 그런 설정이 필요한가. 500억 매출을 올린 영화치곤 CG도 내용도 대단한 건 아니라는 평도 있고.

아비도 해석이 남달랐던 기자들은 내게 호감이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영화를 높이 평가해줬다. 특히 씨네21 기자는 현대 사회의 우화를 의도한 거냐며 내게 물었다.

난 그렇다고 했고.

간담회가 시끄러워진 건 그때부터였다.

다들 재해석을 하느라.

반면 인터넷 매체 기자들은 제작비 대비 흥행은 어려울 거라고 봤다. 어떤 기자는 자신의 SNS에 토론토 영화제 바이어들이 뭔가에 홀려서 영화를 구매했다는 악담까지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영화가 개봉했다.

서연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갔는데.

놀랍게도 꿈에서 본 것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아주 똑같지는 않았다.

꿈에선 커플의 대화를 들었는데, 현실에선 그런 대화는 듣지 못했다. 게다가 서연과 함께 간 극장에선 대체로 재밌게 봤다는 반응이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또 달라졌다.

영화 자체는 재미가 있는데, 처음 설정에서 좀 깬 뒤로는 몰입이 안 되었다는 반응들이었다. 액션과 상황의 서스펜스가 높아도 한번 거슬리고 나니 주인공의 싸움이 남의 싸움이 되고 말았다며.

반면 울었다, 감동 받았다는 여성들은 상당히 많았다.

중장년층은 남녀 모두 영화를 재밌게 봤다는 반응이고.

그 바람에 논쟁이 벌어졌다.

네티즌들의 논쟁은 영화 흥행에 별 도움이 안 되었다. 논쟁이 있는 영화는 호불호가 갈리고 재미없을 거라고 지레짐작하기 때문이다. 영화 재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무시당하기 일쑤였고.

[좀비 영화에 웬 가족애? 닭살 돋았음.]

이 한 줄 평에 ‘좋아요’가 상당히 많았다.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었다. 나도 영화나 드라마 보다가 극 중 연인의 연애 행각이나, 뻔한 가족애 같은 걸 보면 채널 돌린 적 있으니. 내 영화에 대한 객관성을 잃은 상태라 그런 가 보다 했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전쟁 영화는 현재 흥행 1위였다. 개봉 첫날부터 예매율 1위. 나도 그 영화를 봤으나 내 감각으로는 그냥 그랬다. 작위적인 감동을 주려는 점도 있었고. 그 때문에 이 영화까지 덩달아 논쟁거리가 되었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으나 어쩌겠나.

개봉 초반 네티즌의 평이 여론을 그렇게 몰아가는 것을. 재밌게 봤다는 사람도 많으니 망하지는 않으리라 믿었다.

* * *

영화 개봉 보름 후부터 판권 수입 문의가 쏟아졌다.

한국과 동시 개봉한 나라는 약 30개국.

몇 개 국가만 빼고 모두 흥행하고 있었다.

그 여파가 밀려들었다.

“대표님, 사우디가 아랍권 영역 판권을 사겠다고 합니다, 진행할까요?”

“제시한 금액은요?”

“300만 달러에 판권 양도를 제시했어요.”

수호가 서류 작성을 하다가 웃었다.

“그 나라는 돈도 많으면서 쩨쩨하지 말입니다.”

“국왕이 부자지, 영화사가 부자냐?”

지성이 말에 다들 웃었다.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등지에서 영화가 흥행해서 간을 보던 나라들이 계약 문의를 해 왔다. 입찰 경쟁하지 않고 날로 먹으려는 심보다.

“일단 보류하세요. 같은 국가 수입사들도 연락할 겁니다. 미리 가격 말하지 말고 제시한 가격이 높은 쪽과 협상하도록 해요. 개발도상국은 알아서 맞춰 주시고요.”

“대표님. 그러다 영화 안 팔리면요?”

수호가 묻는다.

“우린 급할 거 없어. 돈이 되는 상품이 있는데 못 사면 안달 나는 쪽은 저쪽이지 우리가 아니야. 여러 나라에서 최종 흥행 성적 나오면 결국 사게 될 거야.”

직원들이 분주히 전화도 받고, 수출 서류 문서도 작성했다. 해외사업팀이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인원이 부족해서 한 5명 더 뽑아야 할 듯했다.

난 영화 개봉 후 1주일 동안 휴가를 보낸 뒤 출근해서 업무를 보았다. 콘텐츠 제작부에서 검토하는 공연과 콘서트. 락키 아이들 데뷔 준비. 제니스와 하이니스 신곡 준비 현황 등등을 점검했다.

수호가 방금 작성한 문서를 출력해서 내게 가져왔다.

영화를 수출하고 받은 대금을 녀석이 정리했다.

몇 달 사이 이젠 별걸 다하는 놈이 되었다.

현재까지 입금된 대금은 367억.

남은 대금이 140억쯤 되고, 석 달쯤 지나면 각국의 흥행 정산을 해서 수익배분도 들어온다. 현재 대부분의 나라가 한국 영화치고는 꽤 흥행을 해서 어쩌면 총 수익이 1,000억이 될 가능성도 있다.

이쯤 되니 영화 제작 방향을 고민해야 했다.

한국 정서가 강한 영화.

세계 보편적 정서를 담은 영화.

작품성과 흥행성만 따진 영화.

저예산 작가주의 영화.

사실 작정하고 만들면 오히려 안 될 수도 있다.

박찬익 감독 작품은 매 작품이 세계 160개국 이상에 팔린다. 감독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 정도 되면 딱히 보편적 정서를 따지고 영화를 만들지 않아도 세계의 팬들이 영화를 본다.

첫 수출 영화가 운 좋게도 흥행이 되고 있다.

이후엔 내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사가지 않을까.

한국 정서와 상관없이 내 영화라서 사간다는 것.

그런 이미지를 만드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이왕이면 보편적인 정서가 담기면 좋고.

회사를 나섰다.

오랜만에 서연과 데이트를 하러 나갔다.

* * *

차에서 기다리자 등산복을 입은 서연이 나왔다.

그녀가 조수석에 올랐다.

“오빠, 오늘 북한산에 사람 많겠지?”

“그럴걸. 이제 단풍이 절정이 될 시기니까.”

“내려갈 때 막걸리에 순두부 먹자.”

“좋지.”

차를 몰아 나갔다.

어르신들처럼 단풍 구경을 가기로 했다.

서연의 유일한 취미가 가벼운 등산이었다. 멤버들과 청계산을 자주 다녔는데, 나도 서연 덕분에 산이 좋아졌다. 해서 북한산과 관악산 둘레길을 제법 돌아다녔던 터다.

북한산 쪽으로 차를 몰았다.

서연은 스마트 폰으로 계속 뭔가 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확인해?”

“이것저것.”

그녀가 내게 폰 화면을 보여준다.

주식 현황 앱이었다.

“일주일 전에 상한가였는데, 오늘 또 그래.”

이동원이 수출 대박을 친 후로 로큐 엔터 주가가 대폭 오를 거라는 건 예상했다. 난 신경을 안 썼다. 팔 것도 아니고 영화 찍느라 바빴으니. 거의 10개월이 지났다.

“지금 얼마야?”

서연이 날 본다.

“왜? 확인 안 했어?”

“수호한테 보고하지 말라고 했거든.”

“너무 무심한 거 아니야? 난 매일 보고 있었는데. 회사 합병할 때 내가 보유한 주식 총액이 얼마였는지 알아?”

“24억이었잖아. 그래서 지금은 얼만데?”

서연이 씩 웃더니 말했다.

“230억.”

“뭐?”

너무 놀라서 숨이 멎을 뻔했다.

전에 주식 때문에 마음을 졸인 경험이 있다. 주식이 오르고 내릴 때마다 사람 피를 말려서 일부러 신경을 안 썼다. 지성이가 말해주려고 해도 애써 안 들었다. 한 번 신경 쓰면 계속 들여다보게 되는 게 주식이라. 영화 촬영 때문에 바쁘기도 했고.

“어디 봐.”

서연이 내미는 폰을 보았다.

또 숨이 턱 막힌다.

R&C엔터. 35,400원.

3,700원일 때 내 지분 총액이 270억이었다.

그럼 지금 얼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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