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6장 직감의 정체 (22/56)

제6장 직감의 정체

“와, 경치 진짜 좋다!”

제니스 멤버들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환호를 질렀다.

근처에 계곡과 울창한 삼림이 있는 펜션이다. 캠프파이어를 할 수 있는 공터가 있고, 차를 타고 나가면 청평호에서 수상스포츠도 즐길 수 있었다.

100명이 묵을 수 있는 펜션을 잡았다.

4박 5일간 통째로 빌릴 수 있고, 촬영지로 쓸 수 있는 곳을 선택했다. 촬영 중 훼손되는 곳은 보상하기로 했고.

펜션 주차장으로 로즈 엔터 식구들이 탄 차량이 줄지어 들어왔다. 관광버스 1대. 제니스와 배우들 밴 3대. 직원들 승용차와 승합차 등 모두 12대가 주차장을 가득 채워 버렸다.

지금부터 촬영 시작이다.

아비도 촬영팀 세컨드 성호와 팀원 두 명이 VJ들처럼 알아서 배우들, 제니스 멤버들, 락키와 회사 직원들을 영상에 담았다. 이들이 영화와 메이킹 필름을 모두 찍는다.

고 본부장이 외쳤다.

“일정 같은 거 없다! 마음대로 놀아! 안전사고 조심하고!”

“예!”

73명에 이르는 이들이 펜션으로 들어갔다.

이 상황에서 배우들만 연기를 했다.

“어째 분위기가 으스스한데.”

“왜 펜션을 이렇게 산 깊은 곳에 잡은 거야?”

“강헌이 형. 낚시 갈래요?”

“좋지. 낚싯대 가지고 왔어?”

“그럼요.”

김강헌과 한동원 등 배우들이 100% 애드립을 하며 펜션으로 식구들을 이끌었다. 서연을 제외한 제니스 멤버들과 락키 아이들도 나름대로 연기를 한다.

촬영팀이 펜션 안으로 들어가자 지성이를 불렀다.

“부식 리스트 뽑아놨지?”

“당연히 뽑아놨지. 4박 5일 동안 계속 밥 해먹을 거야?”

“이틀 분량만 사와. 4일 내내 고기만 구워먹을 수도 없으니까. 이틀 후에 봐서 아침에는 인근 해장국 집에 가던가, 저녁에는 매운탕 집에 가던가 할 거야.”

“알았어.”

지성이가 직원들과 함께 승합차를 타고 장을 보러 갔다.

현지 시각은 오후 2시. 3시간 정도 자유롭게 놀다가 5시에 모여 고기 파티를 한다.

간편한 차림으로 펜션에서 나온 식구들이 삼삼오오 구경을 다녔다. 정해진 일정은 따로 없으나 원만한 촬영을 위해 물놀이는 직원들 출연이 끝나는 3일째 일요일에 하라고 했다. 오늘과 내일은 그저 편하게 휴식하는 걸 권했고.

김강헌 씨와 한동원 등 배우들은 낚시하러 갔고, 제니스와 락키 아이들은 여직원들과 함께 펜션 근처 계곡에 놀러 갔다.

촬영기사 성호에게 말했다.

“영화와 메이킹을 동시에 찍어. 나중에 편집할 테니까 일단 뭐든 다 찍어 놔. 그림이 좀 아니면 알아서 쉬고. 제니스와 배우들 인터뷰도 좀 하고.”

“씬 분류 안 하고요?”

“데이터 저장할 때 날짜와 내용만 첨부해. 씬 들어갈 때는 촬영팀 얼굴을 찍어서 슬레이트를 대신하고.”

“알겠습니다.”

성호가 촬영팀과 회의하러 이동했다.

분장팀과 미술팀, 무술팀이 남았다.

“분장팀.”

“말씀하세요.”

“오늘은 좀비 초기 감염 정도로 분장하면 돼. 실핏줄 드러나고, 눈이 붉어진 정도로. 감염자가 속출하는 내일은 분장을 좀 디테일하게 하고.”

“네.”

“저희는요?”

“미술팀은 좀비 의상을 좀 만들어 놔. 나무나 길에 핏자국도 만들어 놓고. 핏물은 글리세린 색소로 가져왔지?”

“그럼요. 촬영 끝나면 저희가 다 지울게요.”

“그래. 준비해두고 너희도 좀 쉬어.”

“예.”

무술팀이 물어왔다.

“내일부터 액션이죠?”

“예. 서연과 건하, 제니스 멤버들이 촬영용 칼과 몽둥이를 사용할 겁니다. 배우분들과 미리 합을 좀 맞춰 주세요. 그 합을 촬영 전에 애들에게 가르쳐주시고요.”

“알겠습니다.”

펜션 근처 창고로 향했다.

오래되어 부식한 것처럼 시공한 세트다. 펜션 안에선 문이나 벽이 긁혀서는 안 되는지라 싸움 장면은 여기서 찍어야 했다.

세트를 확인하고 계곡으로 걸었다.

날 기다렸던지 서연이 다가와 내 팔짱을 꼈다.

말없이 둘이서 숲 산책로를 걸었다.

“너무 좋다.”

“응.”

숲 밖은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데 우리가 걷는 숲은 시원했다. 근처에선 계곡 물소리가 들려오고, 제니스와 락키 아이들 노는 소리가 들린다.

정말 힐링이 되는 곳이다.

서연이와 손을 잡고 걸었다.

“나중에 이런 데 자주 오자.”

“자주 안 와도 돼. 오빠 바쁜 거 아는데.”

“솔직히 나보다 네가 더 바쁘잖아.”

“그렇긴 하네.”

서연은 국경의 끝 촬영 이후 내내 스케줄이 있었다. 제니스 방송 출연과 행사. 연말 가요제 연습. CF와 화보 촬영. 신곡 활동 연습. 게다가 드라마도 벌써 세 편을 찍었다.

신곡 활동 끝나면 시대극에 들어가기로 했고.

“제니스 활동하고, 드라마도 찍으려니 힘들지?”

“힘들다고 하면 배부른 소리잖아. 사실 나, 2년 전에 가로숫길에서 오빠 안 만났으면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싶어.”

“배우를 했을 거야.”

서연이 걸음을 멈추고 날 물끄러미 보았다.

그녀가 날 똑바로 볼 때면 심장이 뛴다.

새삼 이 아름다운 배우가 내 여자친구인가 싶다.

서연은 가로수길 그때 이후로 훨씬 더 예뻐졌다. 나이가 조금 차면서 성숙미가 생기기도 했고.

나는 달라진 게 없다.

다른 건 몰라도 옷에는 약간 욕심이 있어서 멋은 좀 생겼다. 옷이 잘 받는 편이라 허우대로 봐선 서연에게 제법 어울리기도 하고.

서연이 말했다.

“오빤… 나 어떤 면이 마음에 들었어?”

“그냥. 감이 왔어. 내 사람이다 라고.”

“그런데 왜 표현을 안 했어?”

“말했잖아. 난 무명작가였고, 넌 걸그룹이었으니까.”

“정확히는 무명 걸그룹이지.”

“그날 널 봤을 때 알았어. 내 배우이고, 내 여자라는 걸. 네가 내 운명이라는 걸.”

서연의 표정이 애틋했다.

사랑스러운 내 여자.

계곡물이 졸졸 흐르는 숲에서.

서연과 달콤한 입맞춤을 했다.

그리고 서로 껴안은 채 숲을 다시 걸었다.

* * *

펜션 앞 공터에서 대대적인 고기 파티가 벌어졌다.

삼겹살, 목살 60인분에 그릴만 10개나 되고, 소주와 맥주는 짝째 계곡물에 담겼다.

나와 성 대표가 돌아가면서 식구들 종이컵에 소주와 맥주를 따라 주었다. 다들 아직 마시진 않았다. 락키 아이들에겐 콜라를 따라주고.

지성이가 외쳤다.

“술이 채워졌으면 이제 쌈을 싸세요!”

다들 쌈을 쌌다. 일부는 영문도 모른 채 쌈을 싸고.

왼손엔 쌈을 들고, 오른손엔 술잔을 들고.

지성이가 술잔을 들었다.

“먹고 살기, 위하여!”

“위하여!”

“하하하하!”

웃음이 터진 뒤 다들 입에 술을 털어 넣었다.

그러곤 왼손에 든 쌈을 먹었다.

지성이가 회식자리에서 만든 로즈 엔터의 방식이다.

그다음부터는 그냥 먹는 거고.

오후 5시에 시작한 고기 파티가 7시까지 이어졌다.

이제 슬슬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시간이었다.

만찬을 조금 더 일찍 끝낸 직원과 배우들은 분장을 받았다.

배우들과 서연과는 어떤 식으로 연기할 것인지 짜두었다. 첫 촬영 때는 멤버들에게 연기에 어떻게 몰입하는 것인지 체험하게 할 생각이었다.

촬영팀 성호와 조수 2명, 좀비 역할을 할 배우들과는 펜션 외부와 내부 상황 및 동선에 대해 합을 짰다. 어디서 어디까지 찍고 카메라가 빠지는지, 정확히 숙지하고 한 번에 찍을 생각이었다.

해가 지자 촬영을 시작했다.

“직원들은 모두 2층으로 가요. 8시부터 9시까지 계속 연기를 하는 상황이니, 무슨 일인가 싶어 나오면 안 됩니다.”

“네!”

배우들과 서연. 제니스 멤버와 락키 아이들은 따로 불렀다.

“정해진 동선은 없고 그때그때 반응하면 됩니다. 서연아. 갑작스러운 상황에 정신적 공황이 온 상황이야. 처음엔 자체 판단을 못 하고 내 말에 따라 움직이면 돼.”

“응.”

“잠시 뒤 좀비들이 이 펜션으로 모여들 겁니다. 실제 상황으로 여기고 집중해요.”

“알았어요.”

성호가 핸드 스테디캠을 들고 펜션 현관문 밖에서 대기했다. 이대로 펜션 안팎을 롱테이크 방식으로 찍는다.

영진이가 내 앞에 대기했다.

내가 엄지를 보이자 밖에서 성호가 자신의 얼굴에 카메라를 댔다. 메인 카메라다.

“씬 3. 테이크 1!”

성호가 찍기 시작하자 영진이를 슬쩍 밀었다.

“이제 나가.”

“예.”

영진이가 펜션 밖으로 나가 주변을 살펴보더니 담배를 입에 물었다. 성호가 걸어가는 영진이를 따라가며 찍었다. 조명이라곤 펜션 실내 등과 가로등이 전부다.

주차장에 서서 담배를 피우는 영진이.

그때 시커먼 뭔가가 영진이에게 달려든다.

“어?”

영진이가 돌아보는 순간.

시커먼 신형이 영진이를 덮치며 나자빠진다.

“읔!”

짧게 터지는 비명.

영진이가 쓰러진 쪽으로 이동한 성호가 고스란히 찍고 있었다. 좀비가 성호의 목을 물어뜯는 장면이다.

특수효과와 부상 방지 준비는 해 두었다.

잠시 뒤 흐느적거리는 존재가 슬금슬금 걸어나왔다.

성호가 뒷걸음질치며 그 존재를 카메라로 잡았다.

가로등 앞에 와서야 그 존재의 모습이 보인다.

입에 핏물이 가득 고이고 눈은 허옇게 변한 김강헌.

그가 크르르르 소리를 내며 펜션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 뒤로 휘청거리며 올라오고 있는 좀비들.

김강헌과 함께 좀비가 된 한동원과 연극배우들이다.

펜션 안에서도 연기가 시작되었다.

카메라 1은 지성이가 있는 1층에.

카메라 2는 제니스가 있는 2층에.

손뼉을 짝- 하고 쳤다.

이게 촬영 신호이자, 사운드 싱크였다.

지성이가 방에서 나왔다.

뒤쪽 카메라 1도 핸드 스테디캠이다.

이제부터는 나도 연기를 해야 했다.

“대표님. 무슨 소리 안 들렸어요?”

지성이가 나름 연기를 하는데 도저히 못 봐주겠다.

“컷. 다시 해.”

“알았어.”

지성이가 방에 들어갔다.

다시 손뼉을 치자 동생이 나왔다.

“대표님.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어요?”

“무슨 소리?”

“비명 같던데?”

그때 위층에서 서연과 멤버들이 내려왔다.

나와 지성이를 찍던 카메라 1이 그녀들을 찍었다.

“오빠. 애들이 무슨 소리 들었대.”

“난 못 들었는데?”

그때였다. 삐걱 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리더니.

좀비 김강헌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얼굴 살점이 떨어지고 피칠갑을 한!

“크르르르!”

“꺄악!”

나와 지성이가 급히 달려가 문을 닫으려 했다.

연기가 안 되려야 안 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자 김강헌이 지성의 목을 물려고 덤볐다. 급히 달려들어 문을 닫으려 했으나 다른 좀비들까지 밀고 들어왔다.

배우들이 분한 좀비 모습과 연기가 너무도 실감 나서 제니스 애들이 놀라 주저앉아 있었다. 카메라 1은 분주히 나와 지성이. 제니스 멤버들을 번갈아가며 찍고 있고.

“오빠! 도대체 뭐야!”

“서연아! 애들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가!”

그 와중에 지성이는 열연을 펼치고 있었다. 목을 물려는 좀비의 머리를 잡고 버티면서 펜션으로 들어오려는 좀비들을 필사적으로 막았다. 나도 몸으로 문을 밀었다.

그러다 지성이가 김강헌에게 팔을 물렸다. 난 한동원이 휘두르는 손을 맞고 옆으로 나가떨어졌다. 진짜로 때렸다!

문이 열리자 좀비들이 몰려 들어왔다.

지성이가 순식간에 좀비들에게 덮였다. 좀비들이 지성이의 내장을 뜯어먹는 연기! 바닥으로는 핏물이 진득하게 배어 나오고. 좀비 중 하나가 들고 있던 피 봉지가 터지기도 하고.

순식간에 지성이 얼굴이 피범벅이 된다.

“지성아!”

“형! 나 죽는 거야? 으허어억!”

저거 왜 저렇게 연기를 잘해?

카메라 1이 계단 쪽으로 이동한 걸 확인한 뒤.

인상을 쓰며 주춤주춤 물러났다.

이내 고개를 드는 좀비 김강헌과 한동원.

으르르르 소리를 내며 내가 다가왔다.

한동원이 갑자기 허우적대며 내게 질주했다.

순간 2층 계단으로 내달렸다.

카메라 1도 날 찍으며 2층으로 뛰어오르고.

복도에 제니스 멤버들과 직원 일부가 나와 있었다.

그때 2층으로 올라온 한동원이 내게 달려들었다.

크와아아악-

내 목을 물어뜯으려는 한동원의 가슴을 힘껏 밀었다.

“방에 들어가! 빨리!”

“꺄악!”

현실인지 촬영인지 분간 못 할 상황에 락키 애들이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가 방으로 들어갔다. 좁은 복도로 진입하려는 한동원과 좀비들을 마구 밀고 나갔다.

계단 아래로 좀비들이 우르르 굴러떨어진다.

성호도 펜션에 들어와 좀비들을 찍고 있을 테고.

급히 제니스와 락키 아이들이 있는 방으로 달렸다.

“서연아! 문 열어! 나야!”

한동원이 다시 복도로 질주해왔다.

문이 벌컥 열렸다.

“오빠!”

쿵쿵쿵쿵- 우워어어-

잽싸게 방으로 들어가던 순간, 좀비 한동원이 내 다리를 물었다. 또 진짜로!

“아악!”

“오빠!”

“크르르하학!”

한동원이 내 다리를 잡고 끌어당기자, 서연과 제니스 멤버들이 내 팔을 잡고 끌어당겼다. 한동원에 이어 다른 좀비까지 내 몸에 들러붙었다. 실제로 끌어당기는 터라 문을 잡고 악착같이 버텼다.

락키 아이들은 곧 울 것 같은 표정!

서연은 안간힘을 다해 날 당기고 있고.

“서연아! 내가 끌려나가면 바로 으헉!”

“오빠, 안 돼!”

“문 잠그고 버티고 있다가 아아악! 탈출해!”

“오빠!”

“서연아… 고마워!”

잡고 있던 문을 놨다.

이내 퉁겨져 나가듯 좀비들에게 끌려나갔다.

“오빠-!”

문을 닫히기 직전 서연의 표정!

그녀가 울고 있었다.

쾅.

문이 닫혔다.

연기는 계속 이어졌다. 좀비 역할 배우들이 제니스가 있는 방문을 마구 두드려댔다. 나는 쓰러져 부들부들 떨었고, 카메라 1은 복도를 어슬렁거리는 좀비들을 찍었다.

방 안에선 서연을 중심으로 연기를 하고 있다.

몰입할 준비도 없이 바로 시작할 수 있었을 터.

그때였다.

복도 저편 다른 방에서 문이 벌컥 열리더니 서연이 유리잔을 바닥에 던졌다. 와장창 소리가 나자 좀비들이 모두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곤 다가갔다.

좀비가 이동하자 문이 슬쩍 열리더니 리즈가 밖을 보았다. 그러곤 손짓을 하더니 방에서 나왔다. 락키 아이들 먼저 하얗게 질린 채 급히 1층으로 갔다.

리즈와 미주는 정신없는 상태로 내려가고, 연희와 세라는 울먹거리며 날 보고는 소리를 죽여 내려갔다. 서연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나 보다가 자리를 떴다.

이제 직원들의 보조출연.

조용해진 이유를 살피려 방문 하나가 열리자 그 옆에 있던 한동원 좀비가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들처럼 달려들었다.

“으악!”

“문 닫아요!”

이내 방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고, 각 방에서 직원들 쏟아져 나왔다. 좀비들도 따라나오면서 엉망진창으로 뒤섞였다. 배우들 연기가 너무도 실감 나서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복도에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비명을 지르며 난리가 나던 그때.

“컷! 오케이!”

그제야 좀비도 사람도 동작을 멈추고 일어났다.

직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이게 연기였는지, 이벤트 상황극인지 모르겠다는 듯 얼굴.

피투성이가 된 한동원이 말했다.

“이런 연기는 처음이네요. 좀비 생활 연기라고 해야 하나.”

“안 다치셨죠?”

“약간요. 상황에 집중하느라 아픈 줄도 몰랐어요.”

한동원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잡고 일어났다.

그가 말했다.

“정말 재밌네요.”

“고생하셨어요. 오늘 촬영 끝났습니다.”

“한 방에요?”

“이 정도면 충분해요.”

1층에서 제니스 애들이 뛰어 올라왔다.

신이 난 얼굴들이다.

“와! 대박!”

“오빠! 너무 재밌어!”

서연이나 애들이나 표정이 정말 좋았다.

1층에서 나와 지성이가 연기를 할 때. 서연도 카메라 2가 찍는 가운데 연기 몰입을 주도했던 모양이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정말 좀비에게 공격당하는 것으로 보였으니 저절로 연기가 된 셈이다. 어째 애들 모두 연기에 눈을 뜰 것 같은데.

내일은 좀비와의 싸움이 시작된다.

그 주인공은 서연과 건하.

왜 이 좀비 영화를 찍고자 했을까.

모르겠다. 그냥 느낌이 좋았다.

코어가 전하는 직감이 그랬다.

제니스 홍보 영화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그게 뭔지는 지금은 전혀 모르겠고.

* * *

눈을 뜨고 보니 오전 10시였다.

지난밤 촬영을 끝내고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촬영이 밤에 있으니 다들 아무 때나 일어났다. 일찍 일어난 이들은 찌개를 끓여 제대로 차려 먹고, 늦게 일어난 이들은 라면으로 대충 때우고.

오전엔 다들 쉬다가 점심을 먹은 뒤엔 촬영팀과 배우들, 보조 출연하는 직원들만 따로 모여 오늘 밤 촬영 합을 짰다.

서연과 건하도 연기 동선 연습에 열중했다. 주방에서 칼을 꺼내와 좀비 머리를 찍고, 몽둥이로 쳐서 쓰러뜨린다. 이 과정에서 다치면 안 되기 때문에 연습을 좀 해 놔야 했다.

오후 6시에 분장한 그대로 저녁 식사를 하고, 촬영 준비에 들어갔다. 식사 후 분장이 더욱 디테일해졌다.

엑스트라로 나오는 이들은 특수촬영용 좀비 가면을 대여해서 썼고, 배우들은 실리콘 가면을 쓴 뒤 살이 벗겨지고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처럼 꾸몄다.

펜션 탈출 씬에 나오는 좀비는 모두 12명.

이 중 6명은 노련한 연극배우다.

건하와 12명이 리허설을 했다.

식탁 다리처럼 생긴 우레탄 몽둥이로 사정없이 머리를 친다. 좀 아프긴 할 터였다. 얼굴이 울룩불룩한 좀비는 모두 가면 안에 피 봉지가 들어 있다. 머리를 맞을 때 피가 터지도록.

열심히 리허설하던 끝에 해가 졌다.

“촬영갑니다!”

제니스와 락키 아이들이 계단에서 대기했다.

펜션 1층으로 내려오다 1층에 가득한 좀비를 보고 까무러치게 놀라는 장면이다. 메인 카메라가 롱테이크로 찍는다.

계단에서 대기한 제니스와 락키 멤버들에게 말했다.

“상황에 충실하면 돼. 발음이 꼬여도 뛰다가 넘어져도 상관없어. 벌어진 상황 그대로 자연스럽게 가는 거니까, NG 났다고 웃거나 멈추면 안 돼. 배우분들은 너희 행동에 따라 애드립으로 연기하실 거야.”

“네!”

이어 성호에게 신호를 줬다.

성호가 자기 얼굴에 카메라를 댔다.

“씬 4. 테이크 1.”

카메라 뒤쪽에서 내가 외쳤다.

“액션!”

계단에서 뛰어 내려오는 락키 아이들. 겁먹은 채 내려오다 1층에 가득한 좀비들을 보고 멈춘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비명도 못 지르고 뒤로 물러난다. 이어 내려오다가 깜짝 놀라 입을 가리는 제니스 멤버들. 그때 뒤늦게 내려오다 계단에서 미끄러지는 세라. 콰당탕-

그 소리를 듣고 일제히 고개를 돌리는 좀비들.

우워어어-

“언니! 어떡해!”

“침착해!”

“우리가 있는 걸 봤어!”

순간 좀비들이 빠른 걸음으로 계단으로 향했다.

“이쪽으로 와!”

“언니! 위에서도 내려오고 있어!”

계단 위와 아래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

다들 정말 겁에 질렸다.

우리 애들 정말 연기 잘한다. NG가 한 10번은 나올 줄 알았는데, 서연이 상황 설명을 잘했던 모양이다. 오히려 락키 애들의 몰입이 훨씬 더 좋았다.

헤매던 좀비 중 하나가 계단으로 내달렸다.

“꺄악!”

좀비 하나가 계단으로 달려드는 순간.

리즈가 불쑥 나오더니 그 좀비의 가슴팍을 냅다 질렀다.

“그냥 달려!”

“안 돼! 너무 많아!”

“소리 지르지 마!”

좀비 11명이 한꺼번에 계단으로 내달렸다.

이젠 가망이 없는 상황!

“안 돼!”

바로 그때 1층 방에서 건하가 튀어나왔다. 계단으로 달려가 락키 아이들을 덮치려던 좀비들을 건하가 한꺼번에 벽으로 밀어 버렸다. 벽에 부딪혀 나동그라지는 좀비들.

“모두 주방으로 가요!”

좀비들이 뒤엉켜 허우적대는 사이.

제니스와 락키 아이들 모두 주방으로 내달렸다. 건하도 일어나 달려드는 좀비들을 밀고, 발로 차며 주방으로 향했다.

서연이 외쳤다.

“무기가 될 만한 거 찾아!”

서연은 도마를 들고 어느새 다가온 좀비의 머리를 후려쳤다. 하나씩 후려쳐서 두 명을 저지했으나 좀비들이 바로 일어났다. 그 사이 건하는 식탁 다리를 돌려서 뽑아들었다.

이때부터 건하가 좀비들을 때려잡기 시작했다.

퍽- 퍽- 한 명씩 잡으며 길을 열었다.

서연과 미주도 식탁 다리를 들고, 리즈는 식칼을 들었다. 나머지 아이들은 프라이팬 따위를 들었고.

건하가 소리쳤다.

“내가 앞장설게요! 바로 따라와요!”

“예!”

건하가 달려드는 좀비들의 머리를 쳐내며 나아갔다. 그 뒤로 서연과 리즈가 물어뜯으려는 좀비들을 힘껏 밀어내고, 나머진 손에 든 걸 마구 휘두르고.

난 싸움 장면이 어색하진 않은지 보았다.

좀비들 모두 등을 돌린 채 나가떨어지고 있어서 각도 상 허술하진 않았다. 실제로 우레탄 몽둥이를 머리에 맞아서 그런지 직원들 연기도 나쁘지 않았고.

그렇게 건하와 멤버들 모두 현관 밖으로 나갔다.

“컷!”

나갔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난 성호가 롱테이크로 찍은 장면을 확인했다.

직원들 좀비 연기가 좀 어색해서 그렇지, 싸움 장면과 아이들 연기는 잘 나왔다.

무엇보다 성호가 찍은 카메라 감각이 너무도 좋다.

주방에 있는 제니스 애들을 가까이 찍다가 좀비 동선에 맞춰 빠진다. 다시 제니스 시점에서 좀비들을 찍다가 바로 빠지며 좀비들 뒤편에서 건하가 싸우는 장면을 찍고. 들어가고 빠지는 타이밍이 기가 막히다.

성호가 말했다.

“애들 연기 잘하네요. 기성배우들도 이런 장면은 원 테이크로 가기 어려운데, 제가 보기엔 좀비 움직임 말고는 딱히 흠잡을 데가 없어요.”

“이걸로 갈까?”

“저야 좋죠.”

“오케이! 다음 씬!”

카메라 1과 2가 공터 창고 쪽으로 이동했다.

한 명은 펜션과 창고 중간 즘에. 한 명은 창고 안에서 달려오는 제니스를 찍는다.

이번 장면에는 좀비 50여 명이 총출동한다. 나와 배우들도 옷을 모두 갈아입고, 기념 삼아 한 컷 찍기로 한 직원들도 동원되었다.

승철이가 좀비로 분장한 직원들을 배치했다.

“액션! 하고 감독님이 외치면 현 위치에서 좀비가 되어 걸어 다니세요. 그러다가 제니스와 락키가 공터로 달리면 그쪽으로 이동하는 겁니다! 연기 연습은 하셨죠?”

“네!”

“바로 리허설합니다!”

승철이의 콜에 따라 리허설이 4번 이뤄졌다.

어색해하던 직원들이 좀비 연기에 점점 익숙해졌다.

“바로 슛 갑니다!”

“모두 대기하세요. 자, 레디!”

“액션!”

건하가 주변을 보며 외쳤다.

“좀비가 너무 많아요! 나갈 수가 없어!”

“언니! 저기 창고!”

“모두 창고로 뛰어!”

제니스와 락키 아이들이 공터로 내달렸다. 그들 움직임에 따라 좀비들이 일제히 방향을 돌리며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그중에 나와 지성이, 영진이도 있었다. 성 대표와 고 본부장도 이번 씬에는 참여했다.

“컷! 다시 갑니다!”

일행이 원래 자리로 모두 돌아갔다.

직원들이 많다 보니 아무래도 화면에 어색하게 걸리는 부분이 좀 있었다.

이 장면은 6번이나 되풀이한 뒤에 오케이가 났다.

이어 창고 안에 들어간 멤버들 씬.

성호가 메인 카메라로 창고 안에 들어가고, 카메라 1과 2는 창고 밖에서 몰려든 좀비를 찍는다. 난 창고 뒤쪽 카메라와 유선으로 연결된 모니터 앞에 앉았다.

세 번의 리허설 끝에 촬영을 시작했다.

“액션!”

창고에 뛰어들어온 멤버들이 숨을 몰아쉬며 주저앉았다.

“언니! 이제 어떻게 해?”

“나도 모르겠어.”

“이 괴물들은 대체 어디서 온 거야?”

건하가 창고에 난 구멍으로 밖을 보았다.

“좀비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어요!”

세라가 벽을 만져보더니 말했다.

“이 창고 너무 부실해. 밀면 넘어질 거 같아.”

“일단 여기서 버텨봐. 소리 내지 말고.”

“쉿! 여기까지 왔어.”

우워어어-

창고 밖에 좀비들이 우글거리는 소리.

벽을 긁고 두드린다. 천장에선 돌가루가 후드득 떨어지고. 심지어 벽 한쪽이 흔들거린다.

그 상태에서 소리를 죽인 채 두리번거리는 멤버들.

“컷! 이대로 시간 경과!”

앉아 있던 멤버들이 누워 있다.

서연은 창고 밖을 주시하고.

이대로 한 10초쯤 찍은 뒤.

“다시 시간 경과! 좀비들은 5초 후에 벽을 흔들어 주세요!”

멤버들 모두 지친 기색으로 앉아 있다.

갑자기 흔들리는 벽. 무너질 듯 위태위태하다.

다시 조용해진다.

“시간 경과! 벽이 곧 무너질 거야! 극도로 긴장했어!”

“예!”

“벽이 무너지면 다시 세워야 하니까, NG 내면 안 돼! 연기가 이상해도 그냥 간다!”

“네, 감독님!”

“액션!”

겁에 질린 채 창고 벽을 두리번거리는 멤버들.

좀비들의 괴성과 함께 벽이 흔들흔들한다. 그러던 순간 벽돌 몇 개가 빠지며 구멍이 뚫린다. 그 구멍에서 팔이 쑥 들어오더니 락키 멤버 하나의 다리를 잡아챘다.

“꺄악!”

멤버들이 끌려나가는 아이를 잡아 확! 끌어당긴다. 순간 벽이 허물어지며 좀비들이 들이닥친다.

뚫리는 부분만 가짜 벽돌이다.

밀려 들어오는 좀비를 힘껏 밀어내는 건하. 혼자서 좀비들을 쳐내고 밀어내지만 역부족이다.

서연과 리즈가 닥치는 대로 좀비를 쳐냈다. 리즈는 칼로 좀비들 정수리를 꽂았다가 밀어 차고, 나머지는 무너지려는 벽을 두 손으로 버티고 있고. 순간 락키 멤버 하나의 뒤에서 손이 벽을 뚫고 들어오더니 어깨를 잡았다. 어찌할 사이도 없이 벽을 뚫으며 끌려나갔다.

“나나야!”

좀비를 때려눕히던 건하가 외쳤다.

“여기선 못 버텨요! 얼른 나가요! 내가 막고……”

말을 하던 건하가 쓰러진 좀비에게 다리를 물린다.

바로 그 좀비의 머리를 내려치는 건하. 물론 땅을 내려치고 카메라는 상반신만 찍는다. 건하가 구석에 몰린 멤버들에게 가려던 그때 한쪽 벽이 전부 무너졌다. 사고였다.

건하가 다친 줄 알고 컷을 외치려고 했으나, 건하가 그냥 갔다. 좀비들도 무너진 벽돌 더미를 넘어 진입하기 시작했다.

벽돌에 깔렸던 건하가 기어서 나오려 했지만 좀비들이 건하를 덮쳤다. 이제부턴 멤버들과 배우들이 알아서 해야 했다.

“모두 나가! 더 이상 안 돼!”

서연과 리즈가 앞장서서 좀비들이 에워싼 창고 밖으로 나갔다. 카메라가 다 찍지 못할 만큼 상황이 동시 다발로 일어났다. 성호는 액션 포인트를 스스로 판단하여 분주하게 이동하며 찍고 있었다.

카메라가 돌아갔을 때 건하가 입에 피 봉지를 문다. 다시 카메라가 왔을 때 그 피 봉지를 물어 핏물을 꿀럭꿀럭 토할 테고. 멤버들이 모두 나가자 그제야 뒤따르는 성호.

“컷! 7씬 갑니다.”

제니스와 락키 벰버들이 숨을 몰아쉬었다.

다들 연기에 몰입해서 수다도 떨지 않았다.

멤버들이 차를 타고 빠져나가려는데 타고 나갈 차 근처에 좀비들이 있다. 김강헌과 한동원을 포함한 스타 배우 5명이다.

클라이맥스의 하이라이트.

가장 열심히 합을 맞춘 씬이기도 하고.

김강헌이 알아서 멤버들과 함께 리허설을 했다.

바닥에는 매트리스가 깔렸다.

“서연 씨, 나와 동원이 머리를 강하게 쳐야 합니다.”

“아프실 텐데요.”

“괜찮아요. 한 번에 가야 저희도 좋죠.”

“네.”

리허설이 끝나고 다시 촬영을 시작했다.

“액션!”

달려오던 제니스와 락키 멤버들이 멈췄다.

리즈가 말했다.

“저 선배님들. 아니 좀비들은 유난히 빨라.”

“다른 데로 가자, 언니.”

“다른 곳도 마찬가지야. 여기서 나가려면 저 차를 타야 돼. 다들 단단히 마음먹어. 다 쓰러뜨려야 살 수 있어.”

“응.”

서연과 미주는 몽둥이를 고쳐 잡고, 리즈는 핏물이 떨어지는 식칼을 단단히 잡았다. 연희와 세라 등 동생들은 각자 손에 든 무기를 두 손으로 잡고.

겁에 질려 있던 아이들이 전사로 거듭나는 장면.

서연이 말했다.

“가자!”

멤버들이 달려왔다.

기척을 느낀 좀비들도 고개를 획! 돌리더니 질주했다.

인간과 좀비들이 서로 마주 달리다 격돌했다.

서연은 몽둥이로 좀비 김강헌의 머리를 후려치고, 미주는 달려든 한동원을 왼발로 밀어 찼다. 바로 뒤돌아 후리기로 한동원을 쓰러뜨렸다. 리즈는 잡아채려는 좀비의 팔을 걷어낸 뒤 정수리에 식칼을 꽂았다가 뽑고.

“컷! 다시요! 성호는 다양한 앵글로 찍어!”

“예!

멤버들과 배우들이 원위치로 갔다.

이어지는 똑같은 액션.

되풀이할수록 움직임과 합이 좋아졌다.

스타들이 나오는 만큼 공들여 찍었다. 다채로운 편집을 뽑기 위해 NG가 없어도 몇 더 반복했다.

그리하여 하이라이트는 8번 만에 끝냈다.

“수고하셨어요!”

배우들은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고, 제니스와 락키 아이들은 주저앉았다.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2회차 촬영은 끝났다.

가장 힘든 촬영이 끝난 터라 출연한 모든 이들이 샤워를 한 뒤 고기 파티를 벌였다. 밤 11시였다. 내일은 해질 때 배우들만 잠깐 찍고, 다음 촬영은 4일째 새벽에 있었다.

내일이 진정한 휴가인 셈이다.

나도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신 뒤 잠자리에 들었다.

오전 10시에 일어나자 직원들 일부는 집으로 갔고, 남은 이들은 기다렸던 수상 스포츠를 즐겼다. 제니스와 락키도 일반인 관광객들과 섞여 마음껏 놀았다.

그리고 저녁엔 김강헌과 한동원이 낚시를 하다 첫 희생자가 되는 장면을 찍었다. 마지막 날 새벽엔 승합차를 타고 탈출한 제니스와 락키 멤버들이 서울로 향하는 장면을 찍었다. 라디오에선 서울도 좀비 천지라는 암담한 뉴스가 나오고.

멤버들이 승합차를 세우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좀비로 변한 내가 승합차 앞에 불쑥 나타나 흉악한 얼굴을 드러냈다. 서연은 ‘오빠, 미안해!’ 하곤 날치고 가 버리고.

그게 마지막 장면이다.

그리하여 휴가 겸 촬영을 끝냈다.

편집실에서 영화와 메이킹 영상. 뮤비를 따로 편집했다.

영화를 편집하고 보니 속도감이 장난 아니었다.

헤비메탈이 어울릴 것 같아 방준혁 작곡가에게 삽입곡과 액션 장면에 쓸 음악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연주는 세션이 하고, 보컬은 락키 아이들이 하는 것으로.

삽입곡이 생각보다 훨씬 잘 나왔다.

EDM과 펑크, 헤비메탈이 뒤섞인 ‘미친’ 곡이었다.

내친김에 락키 애들에게 애니 에반겔리온 캐릭터 같은 의상을 입히고 짧은 뮤비를 찍었다. 방방 뛰며 노래하는 락키 애들을 향해 핏물을 마구 뿌리고, 애들도 광란의 퍼포먼스를 펼쳤다.

찍은 락키 뮤비를 영화 크레딧이 오르는 화면에 삽입했다. 락키 애들 홍보 삼아 넣어 보자는 지성이 아이디어였다.

영어 자막도 넣었고, 영상 보정도 했다.

그렇게 한 달에 걸쳐 후반 작업을 끝냈다.

영화가 상당히 잘 나왔다. 쇼트를 나누지 않고 대부분 롱테이크로 그냥 찍어 버린 영화라 박진감이 넘쳤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카메라 덕분에 실제 현장에 있는 느낌이 들고, 현실적인 공포가 전달된다. 그 숨 가쁜 호흡과 속도감이 어설픈 좀비 영화의 기술적 결함을 덮어 버릴 지경이었다.

제니스가 신곡을 발표하기 10일 전.

단편 영화 공개를 하기 전에 플랫폼을 결정해야 했다. 포털 TV 캐스트와 유튜브 등에 가편집본을 전송해서 광고나 조회수 수익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신곡 발표 일주일 전에 공개하려고 했는데.

지성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

“결정됐어?”

-유튜브에서 공개하기로 했어.

“광고 붙여 준대?”

-지금 광고가 문제가 아니야.

“그럼?”

-유튜브가 메인에 걸어주겠대.

“잘됐네. 지난번 제니스 신곡도 메인에 걸려서…”

-그게 아니라 글로벌 메인!

귀를 의심했다.

“전 세계판?”

-그래! 한국 유튜브에서 추천했나 봐. 영화를 보냈는데 본사 담당자가 락키 애들한테 꽂혔어! 컨셉이 독특하고 예쁜 애들이 연주도 잘한다면서! 그래서 독점 공개 조건으로 프로모션 비디오에 올려 준대!

이런!

영화에 나오는 헤비메탈은 세션이 녹음한 곡이다.

그걸 유튜브 담당자가 락키 애들이 연주한 걸로 착각했다.

일이 어떻게 이렇게 되지?

* * *

비상대책회의에 들어갔다.

단편 영화 ‘새벽이 올 때까지’가 유튜브 글로벌 메인에 걸린다. 영화야 광고 수익이 들어와서 좋기는 한데, 락키가 문제였다.

보컬인 [키키] 소정은 피아노 전공이고, [미미] 미진은 기타를 꽤 잘 친다. 둘은 연습만 더하면 록 밴드로 데뷔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나] 은미와 [지지] 인희는 베이스와 드럼을 배운 지 8개월 조금 지났다. 아마추어 수준이다.

유튜브 담당자는 애들 실력이 뛰어난 줄 알고 있는데 속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뭐, 당장 데뷔할 것은 아니지만.

회의실에 모인 임원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일단 공개하고 난 뒤에 반응부터 보죠.”

“세션이 했다고 밝혀야 하는 거 아니에요?”

“당장 데뷔할 것도 아닌데 밝힐 필요가 있을까.”

“숨겼다가 나중에 세션들이 폭로하면요?”

대화가 잠시 중단되었다.

30대 여성인 콘텐츠 팀장이 입을 뗐다.

“유튜브 담당자에게만 밝히는 건 어떨까요? 영화 조회수와 락키 아이들 반응이 좋으면 그쪽도 좋을 거 아니에요. 유튜브 유저들은 애들이 보컬만 한 걸 알아볼 거예요. 제가 봐도 애들이 연주하는 척하는 게 보였으니까요.”

지성이가 말했다.

“박 팀장님 말대로 하죠. 락키 애들에 대한 반응이 어떻든 우리가 의도한 건 아니었잖아요. 록그룹 데뷔 니즈가 있다면 한 1년 열심히 연습해서 데뷔할 수도 있고.”

“본부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임원들 모두 날 보았다.

“박 팀장 말대로 유튜브 담당자에게만 사실대로 말해주세요. 락키 애들이 영화에 나온 곡을 연주했다고 생각하진 않을 겁니다. 이슈가 되겠다 싶었겠죠. 실제로 데뷔할 수도 있어요. 세션이 락키와 팀이 된다면.”

“락키와 세션이 한 팀으로요?”

“네. 만약 락키가 이번 기회에 글로벌 인지도가 생기면, 세계 무대에서 활동할 수도 있어요. 세션이 연주를 전담하면 애들 실력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삽입곡처럼 연주는 세션이, 퍼포먼스와 보컬은 락키가 하는 거죠.”

다들 서로 보았다.

국내 무대에선 승산이 별로 없는 구성이다.

공연할 무대도 거의 없고, 아이돌 팬들 취향도 아니다.

그러나 세계에는 활동한 무대가 상당히 많다.

락키 애들도 점점 연주 실력이 늘어날 테고.

“세션이 모두 몇 명이죠?”

“EDM을 맡은 DJ 포함해서 4명이에요.”

“8명으로 갑시다. 지성아, 세션맨들 모아.”

“알았어.”

회의가 길었던 것이 무색하게도 내가 한 방에 끝내 버렸다. 물론 의견을 듣고 있다가 결론을 낸 것이지만.

* * *

퇴근 무렵 세션과 만났다.

다행히 나이가 아주 많은 사람은 없었다.

기타와 드럼, 베이스는 20대 후반이고, DJ만 34살이다.

방준혁 작곡가와 작업을 많이 해서 다들 친했다. 기타와 드럼은 홍대에서 같은 밴드 생활도 했고.

“어떻게 생각하세요?”

리더 격인 기타리스트가 대답했다.

“이 자리 오기 전에 이미 결정은 했어요. 음악 하는 친구들에게 욕을 좀 먹더라도 한 번 해보자고요. 솔직히 음악 하는 사람치고 주류로 가고 싶지 않은 사람 없습니다. 우리나라 록 시장 저변이 워낙 안 좋아서 다들 언더에 있을 뿐이죠.”

세션맨들 모두 동의했다.

자기 음악 고집을 안 하는 성향이니 세션으로도 활동하는 거겠지. 의뢰자 요구대로 해주는 게 세션 연주자니까.

모인 이들은 코어로 분석하진 않았다.

팀에 분란이 일어나도 팀이 깨지진 않는다. 사고를 치거나 불만이 있으면 스스로 나가면 된다. 코어가 전달하는 비호감이 없는 이상은 같이 가도 되는 사람이다.

“두 가지만 주문할게요. 첫 번째. 락키는 퍼포먼스 아이돌 록그룹입니다. 파격적인 컨셉으로 활동할 거예요. 여러분도 의상이나 화장 등 좀 세게 나가야 하고요.”

“각오했습니다.”

한 멤버의 말에 다들 웃었다.

락키 컨셉은 모인 이들도 알고 있었다.

“두 번째. 음악은 크게 EDM과 메탈. 그리고 펑크입니다. 그다음 일반 대중도 듣기 쉬운 곡은 뭐든 하셔도 돼요. 록 발라드나 힙합 느낌으로 가도 되고요.”

“락키 애들 연습도 시켜야겠죠?”

“부끄럽지 않은 수준은 되어야죠. 아이들 연습할 때 곡도 틈틈이 만들어주세요. 방준혁 작곡가와 협업하셔도 되고요. 난해한 곡보다는 직관적이고 멜로딕한 음악이 나와야 합니다. 좋은 음악이라고 해도, 대중 어필이 어렵다고 느껴지면 제작이 어려울 겁니다.”

4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마디를 더 했다.

“락키는 세계 시장을 목표로 합니다.”

4명의 눈이 커졌다.

그 말은 못 듣고 나왔으니.

“여러분이 곡을 잘 만들고, 락키 애들이 열심히 해준다면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곧 그 기반이 만들어질 겁니다.”

미팅을 마치고 커피점을 나섰다.

지성이에게 연락해서 영화를 올리라고 했다.

제니스 채널에서 처음 공개하는 좀비 영화다.

영화 덕에 제니스 뮤비도 톡톡히 재미를 볼 것 같다.

* * *

단편 영화를 개봉하고 1주일 뒤.

제니스 신곡과 뮤비가 발표되었다.

공개 당일 제니스 신곡은 바로 1위에 올랐다.

인기 걸그룹의 위상이다. 함께 공개한 두 번째 신곡도 5위 안에 들었고. 뭐 이건 예상한 바였다.

놀라운 것은 영화였다.

유튜브 글로벌 메인은 한 나라의 메인과 확실히 달랐다.

첫날부터 백만 단위 조회수가 찍히더니, 할리우드 스타들의 SNS 링크가 되면서 조회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영화 자체는 그냥 잘 봤다. 수준이었다. 그런데 유튜브 담당자가 그랬던 것처럼 댓글 대다수가 락키와 제니스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 덕분에 제니스 이전 곡과 신곡 뮤비까지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했다.

내 영화에 관한 관심으로도 이어졌다.

회사로 아비도 수입 문의가 빗발쳤다.

코어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판권 수입이었다.

단편 영화가 이런 반향을 끌어낼 줄 누가 알았겠나.

락키 뮤비를 영화 크레딧에 올린 건 나도 몰랐던 신의 한 수였다. 이게 좀비 영화를 찍기 전 코어가 전달해준 직감의 실체였던 것이다.

게다가 단편 영화가 개봉되고 한 달이 지난 지금.

해외 영화제에서 아비도를 출품해달라는 연락이 왔다.

지명도가 그리 높지 않은 영화제들이라 고맙다는 답변만 보내고 출품을 하진 않았다.

신인감독 영화를 주로 초청하며, 혁신적인 작품들이 경쟁하는 스위스 로카르노 영화제에는 출품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으나 이미 날짜가 지났다.

칸, 베를린, 베니스 영화제는 아직 도전해볼 생각이 없었고, 내 기준 세계 4대 영화제에 속하는 캐나다 토론토 영화제에는 차기작을 출품해보고 싶었다. 토론토 영화제는 영화 비즈니스의 가장 큰 시장이라 불리며 영화 배급 창구로서 역할이 상당히 컸다. 돈이 되는 영화제라는 뜻이다.

영화제의 러브콜도 단편 영화 ‘새벽이 올 때까지’의 수혜다.

영화 관계자들이 그 영화를 보고 나서 아비도에 관심을 보였으니까. 솔직히 단편 영화를 찍을 때는 흥행에 상관없이 우리 식구들 휴가도 보내고, 제니스 홍보도 할 겸 해서 아무 욕심 없이 찍은 거였다.

그게 이런 결과로 이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

락키도 단박에 세계적인 지명도를 얻게 되었고.

제니스도 한류스타급에 이를 지경이었다.

신곡 뮤비의 댓글 98%가 외국어였으니.

영화를 본 사람이 메이킹 필름인 제니스 뮤비를 보고, 뮤비를 본 사람이 영화를 찾아보는 선순환이었다.

단편 영화 현재 조회수는 무려 6천4백만.

아직도 메인에 있으니 몇 달 지나면 1억이 넘어간다.

게다가 아비도 최종 흥행 성적은 563만.

내가 예상한 것보다 더 들어왔다. 재관람한 사람이 상당히 많았던 덕분이었다. 제작 및 투자 수익도 145억이나 되었고.

15개국에 추가 해외 판권이 꽤 팔렸으니 최종 수익은 아마도 160억은 넘을 듯했다.

이래저래 경사가 겹치는 날들이었다.

그렇게 아비도는 개봉을 끝내고 정산을 앞두었다.

이제는 신작 준비에 들어가야 할 때였다.

* * *

책상에 앉아 빈둥거렸다.

영화도 보고, 소설도 읽고 웹툰도 보면서 소재를 찾았다.

머리를 굴린다고 소재가 나오는 건 아니었다.

단편 좀비 영화처럼 불쑥 소재가 나오고, 이걸 해보고 싶고, 코어도 좋은 느낌을 주는 소재라야 했다.

코어는 내 의식 혹은 무의식이기도 해서 놀면서 이것저것 보다 보면 한눈에 잡히는 게 있다. 코어가 전달하는 단순한 호감이 이제는 내 영화적 감각과 융합되면서 직감 형태로 발전하는 느낌이었다. 영화와 사람에 관한 한 육감이 있다고 해야 할까.

차기작은 우선 순 제작비 70억 정도로 예산을 잡았다.

추가 예산 10억 정도는 감안한 제작비다.

요즘 웬만한 기대작은 순 제작비 90억 대 이상이며, 마케팅을 포함하면 120억이 넘는다. 그러니 대작 축에는 들지 못하는 예산이다.

흥행 확장성이 있는 순 제작 예산이 70억이다.

70억은 들어야 기본적인 볼거리가 생기니까.

마케팅 포함한 총 제작비는 100억가량.

목표를 700만으로 잡았을 때 장르.

액션. 코미디. 휴먼드라마. 시대물 정도다.

대중이 가장 편하게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장르 확장성이 있다. 그래서 천만 관객까지도 노려볼 수 있고.

멜로. 스릴러. 공포. 로맨틱코미디. 누아르 등은 잘 만들어도 600만을 넘기 어렵다. 어떤 신드롬이 생기지 않는 한 안 보는 사람은 안 보는 장르적 한계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명작은 이 장르에서 상당히 많이 나온다.

그러나 액션이 추가된 복합장르는 또 다르다.

단편 영화 때문인지는 몰라도 좀비물 계속 끌렸다.

단편이 예고편이라면, 이번엔 제대로 장편으로.

좀비물은 인류 멸망이 필수인데, 그건 좀 아니다 싶었다.

멸망이면서도 아닌 것.

시간이나 공간의 제약이 있어서 박진감이 생기는 것.

긴박감을 몰아붙일 수 있는 것.

그런 좀비물을 구상해 보았다.

가제 ‘이동원.’

회사원이고 미혼인 주인공 동원이 아버지 기일 12주년을 맞아 산소에 간다. 그리고 할머니 댁에 들러 혼자 계시는 할머니가 차려주는 밥을 먹었는데. 그때 할머니가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비밀 하나를 털어놓으셨다.

선산에 집안 장손이 아니면 들어가지 못하는 오두막이 하나 있는데 그 오두막에 이상한 문이 있다며. 12년 주기로 10월 3일이 되면 그 문이 열리며 딱 24시간 문이 열렸다가 닫힌다고 한다.

이에 할머니는 그 문에 들어가서 아버지를 만나 보라고 했다. 단, 아버지를 만나고 24시간 안에 돌아오지 않으면 12년 동안 그곳에서 살아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만 그 문의 내력을 알고 있으니 다른 사람은 절대 만나선 안 된다고도 하고.

동원은 할머니가 치매 증세를 보인다고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다 10월 3일 새벽 3시.

복면을 쓴 자가 나타나 동원을 죽이려 한다. 온몸을 베일로 두르고 소총 무장까지 한 남자. 노숙자 같은 차림이지만 맹수의 냄새가 나는 남자였다. 하지만 복면 사내는 결국 주인공을 죽이지 못한다.

그가 떠나면서 말한다.

‘어머니를 뵈러 왔다. 잘 모셔라. 후회하지 말고.’

동원은 그 남자를 잡아 누구냐고 묻는다.

그때 남자가 복면을 벗는다.

놀랍게도 그는 또 다른 동원이었다.

그러면서 놀라운 말이 나온다.

자신은 다른 지구의 이동원이며, 자신이 살던 지구는 괴 바이러스로 인해 멸망 직전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좀비가 창궐하기 시작했을 때. 이미 대피한 아버지가 전화로 말하길. 선산 오두막에 다른 지구로 가는 문이 열릴 테니, 그곳으로 넘어가서 아무도 모르게 숨어 살라고 했다.

좀비가 너무 많아서 아버지가 있는 곳까지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 말대로 이 지구로 넘어왔다. 넘어오고 나니 이 지구의 ‘나’를 죽이고 자신이 살아갈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한데 막상 죽이려고 하니 죽일 수가 없었고.

제2 지구의 아버지는 서울의 한 대피소에 있었다.

어머니는 피난 중에 돌아가셨고. 그 대피소에는 제2 동원의 아내도 있었다. 주인공 동원도 아는 여자였다. 중학교 동창이자 한때 짝사랑했던 여자.

동원은 이 지구로 아버지를 모시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제2의 동원은 아버지를 구할 수가 없다고 한다.

선산은 용인에 있고, 대피소는 잠실운동장.

차원의 문이 열린 지 3시간이 지났다.

남은 21시간 안에 아버지를 구해 선산으로 돌아가야 한다.

주인공은 또 다른 자신과 함께 아버지를 구하러 가기로 했다. 바로 차를 타고 용인으로 달렸다.

좀비 핏물을 흡입하면 바이러스에 걸리므로 둘 다 이중으로 복면한 뒤 선산 오두막이 있는 금지구역으로 진입한다.

그렇게 둘이 다른 지구로 넘어간다.

주인공이 본 다른 지구는 처참했다.

건물은 멀쩡하나 차들은 죄다 멈췄고, 수많은 좀비가 거리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좀비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도로를 질주하며 총을 쏴대는 약탈자들. 그들끼리 총격전까지 벌이는 지옥이었다. 제2의 동원은 이런 세상에서 혼자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용인에서 서울로 향하는 두 명의 동원.

전진하면서 약탈자들과 싸우고 총기를 하나씩 획득하며 나아간다. 프로 싸움꾼이 된 제2의 동원이 주인공을 보호하듯 그렇게 서울로 달렸다. 강남구를 통과할 때는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잠실에 도착했을 때 남은 시간은 12시간.

그러나 잠실 운동장 근처는 피난민이 끌고 온 수만의 좀비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완전 무장한 두 동원은 좀비의 바다를 뚫고 들어간다. 탄이 바닥나고 칼로 좀비를 쓰러뜨리며 마침내 잠실운동장 진입에 성공한다.

동일한 두 사람이 들어가면 의심을 받기에 제2의 동원만 대피소로 들어가지만 이후 소식이 끊긴다. 제2의 동원이 바이러스 보균자 판정을 받았던 것이다.

남은 시간 6시간.

동원은 대피소에 잠입한 뒤 잡힌 또 다른 자신을 구한다. 아버지와 제2 동원의 아내를 찾아낸 뒤 대피소를 탈출한다. 그 과정에서 탄약도 보충하고.

남은 시간 4시간.

선산으로 향하는 네 사람. 험하기 짝이 없는 길을 뚫는다.

급기야 한 번 마주쳤던 약탈자들과 다시 맞붙고, 그들이 따라붙으면서 시간이 더욱 지체된다. 몇 번이나 사선을 넘은 끝에 선산에 도착했다. 남은 시간은 고작 3분.

두 동원은 사람들 몰래 주인공의 지구에서 살아가려고 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제2의 동원이 좀비로 변해가고 있었기 때문에. 제2의 동원은 좀비가 되기 직전 아버지와 아내를 부탁한다. 그리고 세 사람은 차원의 문을 넘는다.

대충 이야기 핵심만 잡아 놨다.

두 지구라는 이물감이 좀 있다. 그러나 또 다른 나와의 마주침을 통해 자아와 삶에 대해 성찰한다면 감독이 의도한 판타지로 소화될 것 같다. 거기에 예술성을 조금 부여한다면 의도한 바를 관객이 이해할 테고.

호감은 일단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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