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5화 〉94화 여신 강림 (1) (95/95)



〈 95화 〉94화 여신 강림 (1)

성녀는 여신의 딸이다.

여신이 직접 배로 낳은 것은 아니지만 성녀로 낙점받는 순간 막대한신성력과 함께 영적으로 거듭나 이어지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이어졌기에 핏줄보다 가까우며, 여신이 원할  성녀의 육체에 강림할 수도 있다. 또한 말을 속삭여 신탁을 내리거나 육체를 빌려 권능을 행할 수도 있고, 눈을 통해 세상을 둘러볼 수도 있다.

대부분의 여신이 성녀를 통해 하는 일이 바로 마지막 경우였다.

영적으로 이어진 성녀의 눈을 통해 세상을 둘러보는 신들의 유희.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또한 종종 유희를 즐기곤 했다. 평소에는 기꺼이 몸과 마음을 다 바친 신들의 왕에게 봉사하며 지내지만 왕이 바쁠 때는 성녀들의 눈을 통해 세상을 둘러보며 새로이 딸로 삼을 미녀를 찾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날도 왕이 부르지 않아 처소에서 부채를 살랑살랑 부치다 유희나 할  지상을 굽어보고 있었다. 성녀의 눈을 훔쳐보다 마음에 드는 남자가 보이면 온갖 상상을 하며 자위를 하기 위해서였다.

“흐응…… 마침 노예 도시에 진상된 딸들이 있으니 간만에 즐겨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피학적인 조교를 받고 있는 아이가 있으면 좋겠는데 말야, 호호.”

정벌전을 통해 성녀를 손에 넣는 자들은 전부  대악마들이지만 그래도 여신보다는 격이 낮았다.

이 노예 도시 바티칸에서 여신보다 격이 높은존재는 모든 신화의 주인인 신들의 왕과 태초의 드래곤인 티아마트가 유일했다.

최초의 악령이자 악신이었던 티아마트는 신성을 봉인당했어도 육체를 버리지 않았다. 이빨만으로도 신들을 물어 죽일 수 있는 강대한 드래곤의 육체는 그 자체로 반신 격이었고, 신성을 지녔어도 전투에 약한 여신들보다 훨씬 더 강했다. 티아마트가 괜히 바티칸의 여주인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악의 그 자체인 그녀의 숨결은 설령 여신이라 해도 단번에신성을 잃고 타락할 정도로 사악했으며 강대했다. 하기야 무수히 많은 악신들을 낳은 최초의 어머니신이기도 했으니 신성을 잃고서도 그 정도 강함을 지니고 있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리라.

그러나 신들의 왕과 티아마트 또한 신성을 봉인당한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다른 악신이나 남신 들은 신성을 잃은 것뿐만이 아니라 어떻게든 힘을 되찾기 위해 악마가 되거나 괴물을 받아들여 이종으로 태어나는 등의 잡스런 짓을 많이 하여 스스로 조잡해지고 말았다.

딴에는 인간들의 공포와 좌절을 모으는 것으로 다시 한  신성을 쌓으려는 생각이었겠지만 신의 육체를 버린 순간 격은 이루 말할  없을 정도로 떨어지고 말았고, 영겁에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도 고작해야 대악마 수준으로 오른 것이 전부였다.

각 가문의 무력을 담당하는 대장군들이 6급에서 5급 수준이고 이인자 격인 대주교들도 고작 4급에 불과했으니 말 다 한 것이다.

반면 포획당해 신성을 빼앗긴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상에 내려와 신들의 왕을 섬긴 아프로디테는 여전히 신의 육체와 미의 신성을 지니고 있었고, 전투 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2급의 신성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짜릿했다. 그녀보다 훨씬 격이 떨어지는 대악마들이 조교하고 있는 성녀의 시선을 훔쳐보는 관음의 유희가.

마치 훨씬 약한 짐승에게 옴짝달싹못하며 채찍질당하는 기분을 맛볼  있었으니까.

약자에게 유린당하고 범해지는 느낌은 불로불사를 안겨 주는 암브로시아를 마시는 것보다도 짜릿했다.

“하앙…… 상상한 것만으로도 젖어 버렸네. 빨리 영격 접속 해야지. 성질 급한 짐승들이 조교하다가 죽여 버리면 곤란하니까, 호호.”

신성 제국의 정벌전은 그녀의 신탁을 통해 일정 주기로 계속해서 일어나기 때문에 아프로디테의 성녀는 희소성이 낮았다. 그래서 쉽게 죽었다. 키마이라 가문의 대악마들은 조교하다가  안 되면 그냥 괴롭히고 타락시켜 버린 뒤에 암퇘지로 쓰기 십상이었고 코르버스 가문의 대악마들은 걸핏하면 붕대로 칭칭 감아 오브제로 장식해 버리거나 헌혈팩으로 달아 버리기 일쑤였기 때문이었다. 타우루스 가문도 관음하는 맛은 최고였지만 태생이 황소다 보니 워낙 준열하고 거칠어 콧김을 뿜으며 박다가 제일 먼저 죽여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영격 접속을 늦게 하면 대부분 세르피스 가문에서 입수한 성녀만 남게 되는데, 뱀족인 주제에 최첨단 과학을 신봉하는 족속인지라 관음하는 맛이 최악이었다. 신체 개조나 피어싱 등의 조교를 관음할 바엔 그냥 자위를 하는  나을 정도였다.

“어디 타우루스 가문의 대악마에게 거칠게 박히는 아이 없으려나?”

아프로디테는 왼손으론 이미 음부를 지분거리면서 노예 도시에 있는 자신의 성녀들을 굽어보았다.

그리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현재 살아 있는 그녀의 딸은 네 명.

그런데 한 명이 지배 가문들의 성이나 교황청이 아닌 전혀 엉뚱한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응? 설마 대악마가 아니라 평범한 노예상이 성녀를 손에 넣었다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성녀의 곁에는 언제나 대병력이 함께했다. 기사단급의 전력과 검에 아우라를 담을 수 있는 마스터급 성기사와 주교급 사제의 페어가 함께하는 게 최소한의 병력이었다. 설령 콜로세움에서 우승할 만한 대단한 검투 노예를 여럿 지닌 노예상이라고해도 결코 이길  없는 전력이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벌어졌다?

“대체 어떤 자지? 낙오한 성녀를 운 좋게 줍기라도 한 건가?”

초유의 사태에 깜짝 놀란 아프로디테는 황급히 그 성녀에게 영격 접속을 했다. 그러고는 재빠르게 정벌전 이후 어떤 일을 겪었는지 기억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제껏 지상에 내려온 뒤로 가장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대귀족인 일리아스가 특수 암살조와 대치 중인  이용해서 성녀와 빛의 기사단장까지 모조리 손에 넣었다니! 그것도 운이 아니었어!’

어느 한쪽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특수한 상황이었기에 어부지리로 일어난 일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도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 대부분의 노예 상인들이 정벌전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집에 처박혀 있기 마련이란 걸 생각하면, 고작 검투 노예 둘과 마법 노예  명만 데리고 키마이라 가문의 근거지인 티에라 델 성채까지 들어간  행동력과 판단력은 결코 운이나 객기가 아니었다.

아니, 치밀한 계획하에 벌린 일이라고 보는 게 더 그럴듯했다.

설령 대마법사의 자질을 지닌 마법 노예를 입수했다고 해도 애드베르토 세르빌리를 가르치는 노예 상인은 지금까지 단  번도 본 적이 없었고, 심지어 아무 망설임도 없이 키마이라 가문에서도 알아주는 마스터 일리아스에게 마법 각인을 찍어 버렸으니까.

‘이자는 철저하게 계획적으로 움직이는 치밀하고도 냉철한 노예 상인이야. 심지어 대귀족을 노예로 삼아 버리고도 웃으면서 레즈비언 쇼를 시키다니…… 대체 어떤 담력과 배포를 지닌 거지?’

여신입장에서도 호기심이  수밖에 없는 노예 상인이었다.

하물며 정점을 찍었다가 은퇴한 유력가도 아니고, 허름한 복장과 허름한 집에 사는 애송이 노예 상인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아니, 겉모습은 애송이 노예 상인이었지만  안에 감춰  수많은 노예들을 보면 애송이도 아니었다.

야심가!

태초부터 지금까지 이르는 영겁의 시간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야심가가 분명했다.

‘흥미로워…… 그래, 더없이 흥미로운 남자야. 다른 노예 상인들과 전혀 다른 길을 몰래 걷고 있는 것도 그렇지만 노예 도시 최초로 대귀족을 노예로 삼은 데다 성녀까지 타락시키지 않고 손에 넣은 수완! 호호호, 이 남자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영접할 자격이 있어.’

아프로디테의 다리 사이가 짜릿하게 젖어 갔다.

그녀의 미(美)는 섹스를 통한 육체적 쾌락의 아름다움!

미의 여신인 그녀가 친히 은총을 내려 줄 자격이 있었다.

‘여신의 은총을 내려 준 대가로 성녀를 받아 가는 거면 이 남자도 불만은 없을 거야. 그럼 왕께서도 기뻐하시겠지, 호호호.’

타락시키지 않은 성녀까지 손에 넣어 조교시켜 놨으니 왕께 바칠 조공도 가지고 있는 셈이었다. 그러니 왕께 허락받지 않고 그녀의 궁전으로 불러 은총을 내린다 해도 흠 잡힐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안 그래도 아테나가 육체를 버리고 도망쳐 심기가 불편한 왕이셨으니 틀림없이 기뻐하며 성은을 내려 주시리라.

아프로디테는 그런 생각과 함께 영격 접속 해 있는 성녀의 몸에 강림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꿈에도 모른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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