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93화 위니엘 구속 조교
위니엘이 구속구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단단히 구속시켜 주고 지하 감옥을 나온 조니는 짐을 하나 덜어 낸 표정으로 안도의한숨을 내쉬었다. 몸부림치면서도 절망이 아니라 점점 편안해지는 위니엘의 표정을 보니 윈프레드와 달리 제대로 조교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역시 애정 결핍이 있는 노예에겐 껴안아 주는 듯한 느낌을 주는전신 가죽 구속구가 최고라니까. 이대로 하루 정도 몸부림치게 놔둬 두면 가축의 씨받이로 팔려 간다는 절망 속에서 몸부림치다 느껴지는 아늑한 편안함에 맛을 들이게 되겠지. 그러고 나서 아예 하루 종일 구속 슈트를 입혀 놓으면 언니의 품은 생각도 안 날걸?”
구속 조교는 대부분 피학적인 쾌감을 느끼는 노예에게 하는 것이었지만 전신의 살을 빈틈없이 착 메워 주는 가죽 구속구만큼은 달랐다. 탄탄하고 부드러운 가죽이 전신을 포근히 감싸 주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포옹당하는 맛을 줄 수 있었고,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칠수록 힘이 빠져나가 전신이 노곤노곤하게 늘어지는 기분 좋은 편안함이 온몸을 지배하게 된다. 한마디로 피학감을 심어 주는 게 아니라 오로지 구속감만으로 몸과 마음을 조금씩 좀먹어 자연스럽게 굴복시키는 것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반항을 좀 해야 한다는 전제가 붙기는 했지만 고분고분한 성격이더라도 반항하게 만들면 되는 것이니, 적용시킬 수 있는 노예는 무수히 많은 셈이었다.
“맛 좀 들이는 것 같으면 전용 구속복도 한 벌 만들어 줘야지. 아니면 아예 윈프레드도 다시 조교해 버릴까……?”
색다른 맛이 있을 것 같아 셀프 조교를 시킨것이었는데 효과가 너무 지나친 감이 있었다. 말이 좋아 병적인 만큼 한결같은 현모양처지 상품으로 팔아 버리면 밤에 몰래 찾아와 왜 버렸냐며 칼침을 놓을 기세였다. 앞으로 위니엘이 얼마나 고분고분해지느냐에 따라서 윈프레드 또한 구속의 맛을 알려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진지하게 한번 생각해 봐야겠네. 말 잘 듣는 건 좋지만 신경 쓰이면 나만 피곤해지는 거니까.”
어떤 의미론 마치 말 잘 듣는 드레니카 같은 느낌이 된 것이 바로 윈프레드였다.
“어쨌든 조교 자체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니…… 슬슬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겠어.”
특급 암살 노예들의 조교가 끝나가고 있었으니 아리스톨의 피학 조교를 위해 이용했던 미노타우르스를 치울 시간이 슬슬 다가오고 있는 셈이었다.
그리고 그 미노타우르스를 상대로 암살이 성공한다는 것은 노예 도시의 밤을 지배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왜냐하면 놈은 탈주한 노예들을 잡으러 다니는 평범한 일개 순찰자가 아니었으니까.
노예 도시의 네 지배 가문 중의 하나, 타우루스 가문의 고위 귀족인 장군 미노스가 바로 놈의 진실한 정체였다.
조니는 비프스테이크를 써는 날을 생각하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어릴 적 꾸었던 꿈이 현실로 될 날이 머지않은 것이다.
“미노스만 잡으면 바로 데뷔해야지. 그누구보다도 화려하게.”
현재 보유하고 있는 노예의 면면을 보라.
오벨 왕국의 제일 기사이자 미녀로 이름난 첫째 공주 아리스톨에 천재 마법사인 넷째 공주 리즈, 다음 세대의 현자로 유망한 막내 공주 베티까지 공주만 셋인 데다 신성 제국의 성녀인 잔느와 빛의 기사단장인 달리아니, 거기다 심지어 키마이라 가문의 대귀족인 마스터 일리아스까지 있었다.
지금까지 고위 여귀족을 조교해 노예로 부린 자가 존재했었던가?
모르긴 몰라도 조니가 데뷔하는 날 일리아스에게 목줄을 채워 화이트 타운의 중앙 광장으로 데려가면 엄청난 파장이 일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조니는 일리아스보다도 잔느에게 더 기대를 하고 있었다.
무수히 도전했으나 노예 도시의 왕을 비롯해 지금까지 그 누구도 타락시키지 않고는 조교하지 못했었던 성녀를, 온전하게 조교하는 데 성공했으니까.
대귀족인 일리아스를 조교한 것이 놀라운 파장을 안겨 줄 만한 일이라면, 잔느를 조교한 것은 노예 도시에 기념비를 세울 만한 위업이었다.
“정말이지 귀여워하지 않을 수가 없는 노예라니까. 부활 같은 고위 신성 마법도 펑펑 써 댈 수 있고. 잔느가 없었다면 못 했을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야, 정말.”
데뷔를 하기 위해 필요한 준비물인 윈프레드와 위니엘의 조교도 잔느가 없었으면 이처럼 쉽게 풀어 가지 못했을 것이었고 데뷔를 하고 난 이후에는 타락하지 않은 성녀라는 지위로 지배 가문의 대귀족들에게, 나아가 왕에게 접근해 여신을 손에 넣을 단초가 되어 줄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어쩌면 신성 제국에 보낸 뒤 은밀하게 배후에서 조종해 또 다른 성녀를 손에 넣을 수 있게 될지도 몰랐다. 정벌전은 노예 도시가 무너지지 않는 한 계속해서 벌어질 테니 잔느를 이용해 다른 성녀를 배달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테니까.
희귀성도 희귀성이지만 쓸모 면에서는 그 어떤 의심할 여지 없이 다른 모든 노예를 능가하는 노예가 바로 잔느였다.
“이야…… 이거 참 생각할수록 기특하네. 상을 줘야겠는데? 하하.”
한껏 미소를 머금은 조니는 잔느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 자기 방으로 가서 헤나를 시켜 잔느를 불러오게 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포옹과 키스를 잔뜩 해 주리라 생각하면서.
똑똑.
“들어가면 돼?”
“응. 들어와, 잔느.”
노크와 함께 잔느의 목소리가 들리자 조니는 대답을 해 주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평소와는 미묘하게 말투가 다른 느낌이었다.
‘응? 잔느는 보통 경어를 썼었는데?’
그 이유는 잔느가 방으로 들어오자 알 수 있었다.
몸과 얼굴은 잔느의 것이 맞았지만, 그 얼굴에 떠올라 있는 표정과 눈빛은 잔느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조니는 이미 그런 경우를 최근에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여신 강림인가?”
냉동 보존 장치에서 깨어난 아테나의 성녀의 몸에 미네르바가 강림했을 때와 똑같았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잔느는 놀랐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요염한 미소를 지었다.
절대적으로 아름다운 천상의 미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