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화 〉92화 윈프레드 셀프 조교 (4)
‘그 남자, 속을 알 수가 없어. 위험해.’
혼자 남겨진 동안, 위니엘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실제로 붙잡힌 적은 없었어도 잠입을 위해 붙잡힌 척은 여러 번 해 봤지만 지금 같은 상대는 정말처음이었으니까. 다짜고짜 손도끼를 입에 던져 박아 버리는 상대는.
처음엔 단 한 번이라도 거짓말을 한 사람은 믿지 않는가 싶어서 그냥 죽이려는줄 알았다. 그래서 뭐 이런 상또라이를 만나게 됐나 생각하며 정신을 잃었고, 몸에서 힘이 죽 빠져나가면서 확실한 죽음을 느꼈다.
그런데 되살아났다.
기절 같은 게 아니었다. 손도끼가 입에 박혀 코와 턱이 완전히 작살났으니 죽지 않고 산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정말로 죽었었던 것이었고, 정말로 되살아난 것이었다.
그때부터 머리가 복잡해졌다. 되살릴 수단이 있는 만큼 단지 귀찮아서 죽였다고 단정할 수가 없었다. 정말로 죽일 생각은 없지만 협박 수단으로 죽음을 맛보여 주는 것일 수도 있었고 아니면 살리는 데 제약이 있다거나 불확실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되살아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죽였던 것일 수도 있었다.
무슨 생각으로 단호하게 손도끼를 던져 입에 박아 버렸는지 확신을 가질 수가 없으니 어떤 사람인지도 단정 지을 수 없고, 자연스레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언니의팔다리가 수십 번 쪼개지는 것을 보면서도 입을 열지 못했다. 말리고 싶었지만 의미가 없을, 아니, 오히려 안 좋은 영향만 끼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고문 저항 훈련을 받아 웬만한 고통에는 굴복하지 않는 언니 역시 팔다리가 생으로몇 번 쪼개지자마자 완전히 굴복하고 말았지만, 그 점을 깨달았기 때문에 묵묵히 도끼질을 받아들이면서 서서히 죽어 갈 뿐 그만해 달라고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발목을 쪼갤 테니 서서 버텨 내라는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들었을 때 망설임 없이 그러겠다고 한 것도 이해가 갔다. 아마 일족을 모두 죽이라고 하거나 친동생인 자신을 죽이라고 해도 고민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따르지 않았을 때 주어지는 게 죽음이라면 곧바로 죽음을 택했겠지만, 죽어도 되살리면서 고문을 하니 그런 고통을 영원히 겪어야 할지도 몰랐으니까.
그런 언니의 상황과 심정을 절절이 이해했기에 위니엘은 언니가 어떤 선택을 하든 존중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지옥보다 더한 곳에서 탈출하는 것을 포기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언니의 마음이 꺾인 이상 언니 몫까지 분발해서 반드시 탈출할 생각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데다 죽인 걸 되살려서 다시 고문하는 그런 남자 밑에 있다면 살아도 산 게 아닐 테니까. 일단은 굴복한 척을 해서 안심하게 만든 후 어떻게든 기회를 봐야 해.’
하지만 그건 조니를 너무나 모르는 생각이었다.
위니엘은 그 사실을 조니가 지하 감옥으로 다시 내려온지 1분 만에 깨달을 수 있었다.
“저기…… 이런 거 안 하셔도 저 말 잘 들을 건데…….”
“응? 왜 벌써 협조적으로 나오려고 해? 듣지 마, 듣지 마. 난 반항하는 게 좋거든.”
“…….”
위니엘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자신에게 꽉 끼는 가죽 옷을 입히는 조니를 망연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내려오자마자 다짜고짜 입고 있던 옷을 다 벗겨 버리더니 반들거리는 검은색 가죽 옷을 입히기 시작했다.
평범한 가죽 옷은 아니었다.
입고 보니 속의 안감은 분명 튼튼하고질 좋은 가죽이었지만, 겉면은 털이 아니라 빛을 받으면 빛날 정도로 반들거리는 매끈한 재질이었고 아무런 무늬 없이 온통 새카맣기만 했다.
‘이곳의 암살자들이 입는 잠입복 같은 건가?’
그럴 생각이 들 만큼 밤에 입으면 어둠과 완전히 동화될 수 있을 정도로 새카맣기만 한 가죽 옷이었다.
하지만 은신에는 좋을지 몰라도 활동에는 썩 좋은 옷이 아니었다.
일단 지나치게 꽉 꼈다. 헐렁한 공간이 한 군데도 없을 정도로 몸에 꽉 끼어서 활동성이 좋지 않았다.
또한 무기를 숨기거나 달 공간도 없었다.
위니엘이 보기에는 오로지 어둠 속에서 들키지 않고 은밀하게 움직이는 데만 초점을 맞춘 잠입용 옷 같았다.
속옷마저 완전히 벗긴 뒤 입히는 걸 봐도 혹여 들킨다 하더라도 소속을 알 만한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으려는 게 맞았다.
‘이곳의 암살자들은 다 이런 잠입복을 입는 건가? 아니면 특별히 주문한 거?’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느 쪽이든 다 틀린 생각이었다.
얼굴만 제외하고 발끝부터 목까지 모두 착 달라붙는 가죽 옷을 입히자 그 뒤에 가져온 것은 가죽 벨트였다.
“무릎 꿇어.”
“…….”
위니엘은 이 남자가 뭘 하려는지 짐작도 하지 못한 채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몇 개나 되는 가죽 벨트로 발목과 허벅지를 고정시키고, 이어 역시나 반들거리는 검은 가죽 한 장을 가져오더니 접힌 다리를 통째로 감고는 다시 벨트를 둘둘 말아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다.
그다음은 팔이었다. 두 팔을 뒤로 돌리게 한 뒤 팔뚝을 겹쳐 벨트로 둘둘 감아 움직일 수 없게 고정시켰다.
양팔과 양다리를 모두 움직일 수 없게 단단히 묶이고 나자, 위니엘은 그제야 이것이 잠입을 위한 용도가 아니라 신체를 구속시키기 위한 용도란 걸 알 수 있었다.
“휴우. 처음 입히는 거다 보니 꽤 힘드네. 반항을 안 하니까 구속시키는 맛이 영 없어서 흥이 안 나더라.”
“…….”
땀까지 훔쳐 가며 그리 말하는 조니에게 위니엘이 할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직도 성격을 종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또 사달을 내느니 그냥 가만히 무슨 짓을 하려는지 기다리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하지만 다음 이어지는 말에도 아무 말도안 할 수는 없었다.
“어쨌든 수고했어. 언니는 잘 키워 줄게.”
“……네?”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깜짝 놀란 위니엘을 향해 조니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면서 말했다.
“윈프레드 실력이 생각보다 좋아서 하나만 있어도 되겠더라고. 그래서 넌 팔기로 했지. 가축 시장에. 평생 그 상태로 동물들의 씨를 받아야 할 거야, 하하.”
“그, 그런……!”
“곧 널 사 갈 새 주인이 올 테니까 그때까지 얌전히 있어.”
조니는 피식 웃으면서 위니엘의 뺨을 두드려 주고는 지하 감옥을 다시 나갔다.
그리고 다시 혼자 남겨진 위니엘은 정신없이 흔들리는 눈동자로 사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무언가 이 가죽 벨트들을 끊을 만한 쇠붙이가 필요했다.
무슨 짓을 하든 받아들일 용의가 있었지만, 동물들의 씨받이로 팔아 버리는 것까지 받아들이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도망쳐야 해. 어떻게든 일단 도망친 뒤에 언니는 다음에 다시 구하러 올 수밖에 없어.’
마침 그리 멀지 않은 벽에 가죽 벨트를 비벼서 끊을 수 있을 만한 고문 기구가 눈에 들어왔다. 위니엘은 필사적으로 그곳으로 가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털썩.
하지만 두 팔과 두 다리를 모두 단단히 구속된 상태기에 몸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옆으로 쓰러질 뿐이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다면 꿈틀거리며 기어서라도 갈 텐데, 조금도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제발! 제발……!’
사방으로 몸부림을 치려 했지만 어찌나 단단하게 구속돼 있는지 몸부림치는 것마저 불가능했다. 움직여지는 부위는 오직 목 위뿐이었다.
하지만 머리로 몸을 끌고 기어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어떻게 해서든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여야만 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하고 힘을 써도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전신을 탄탄하게 감고 있는 가죽 구속구만 더 생생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처음부터 조금의 틈도 없이 꽉 끼게 입혔던 데다 양팔과 양발을 벨트로 꽁꽁 묶었기에 관절을 움직이는 것마저 불가능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줄 같은 것에 묶인 게 아니라 질 좋은 가죽에 전신을 감싸인 것이기에 몸부림을 치려 해도 아프지 않다는 정도뿐이었다.
줄로 묶인 상태에서 몸부림을 치면 피부가 찢어지는 건 예사고 심하면 살 속으로 파고드는 일도 쉽게 일어났다.
반면 이 가죽 구속구는 전신을 감싸듯 구속하고 있는 것이기에 살을 파고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전신을 단 하나의 틈도 없이 꽁꽁 싸매고 있는 것이다 보니 꽉 안겨 있는 듯한 포근한 느낌까지 들었다.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넉넉하게 받아 주는 품이라고 해야 할까.
마감도 잘돼 있는 부드러운 가죽이기에 더욱 그랬다. 질 안 좋은 싸구려 가죽이었다면 거친 표면에 쓸리고 따가웠을 테지만 워낙에 부드러운 고급 가죽이었기에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단단히 안아 주는 느낌만 들 뿐이었다.
‘마치 이 가죽 옷이 날 포근히 감싸 안아 주는 것 같은 기분이야. 어릴 적 훈련받기 싫어서 언니 품에서 앙탈을 부릴 때 내가 아무리 날뛰어도 포근히 안아 주는…… 모든 것을 내맡기고 편안히 쉬고 싶은 기분이 들게 하는 그런 느낌…….’
위니엘은 한 가닥 잠이 오는 기분까지 느낄 수 있었다.
전신의 맨살을 포근하게 감싸 안아 주는 가죽 옷이 주는 기분 좋은 구속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