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화 〉91화 윈프레드 셀프 조교 (3)
조니와 섹스를 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보다는 말 그대로 안기고 싶은 기분이라는 게 정확했다.
혹자에게는 그게 그거 같은 소리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윈프레드에게는 큰 차이가 있었다.
자신이 먼저 키스를 하거나 올라탈 생각은 조금도 없었지만, 조니가 해 주는 것을 받으면 어떤 기분일지 알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이다.
‘보살핌받는 기분일 것 같아. 암살자가 아니라 여자가 된 기분.’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 충동적으로입 밖에 낸 것이었는데, 의외로 조니는 허락하지 않았다.
“안 돼.”
“……어째서지? 내가 스스로 주인을 좋아하게 되는 걸 원하지 않았었나?”
의아해하는 윈프레드의 물음에 조니는 윈프레드를 끌어안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지금 안기고 나면 허망한 마음에 후회하게 될 테니까.”
“…….”
경험해 본 적은 없었지만 윈프레드는 조니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분명 기분 좋을 거라 생각해서 안기고 싶었지만 안기고 나니 생각만큼 기분 좋지도 않아서 허망하게 될 거란 소리였다.
“그런가. 그래도 주인도 남자니 거부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하고 싶어 안달 난 예쁜 노예들이 잔뜩 있는데 뭐 하러 하고 나서 후회할 노예를 안겠어? 조교에도 도움이 안 되는데.”
빈말이나 자만은 아닌 것이 정말로 초롱초롱한 눈으로 조니를 보는 노예들이 여럿 보였다. 그런데 도끼질을 당해 반한 것 같은 눈빛들은 아니었다.
“다른 노예들은 나처럼 괴롭히진 않은 건가?”
“응. 다 다른 방식으로 귀여워해 줬지.”
“……나도 좀 더 상냥한 방식으로 귀여워해 줬으면 좋았을 텐데.”
윈프레드의 미약한 투정에 조니는 피식 웃기만 할 따름이었다.
“어림도 없는 소리 하네. 그랬으면 네가 이렇게 고분고분해졌을 것 같아?”
“……그렇진 않았겠지. 아마도.”
“너한텐 특단의 대책이 필요해서 그랬던 거야. 지금은 이제 안 그래도 될 것 같으니까 안 하는 거고, 내일 가서 필요해 보이면 다시 할 거고.”
“후우. 알아서 잘하겠다. 제발 도끼질은 그만둬 줘.”
“그럼 열심히 반하라고. 나 없인 못 살겠고 나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지 다 할 수 있을 때까지.”
무시무시한 소리였지만 산 채로 팔다리가 수십 번 쪼개지는 것보다는 덜 무시무시했다. 그리고 지금 같은 분위기만 계속 이어진대도 얼마 못 가 그렇게 되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윈프레드는 체념의 한숨을 내쉬면서 조니에게 부탁했다.
“버리지만 말아 줘. 주인을 정말 마음 깊이 사랑하게 됐을 때 버림받으면 타격이 아주 클 것 같으니까.”
“내가 내 손에 들어온 것을 버리거나 놓아줄 것처럼 보여?”
“……아니. 평생 손아귀에 쥔 채로 데리고 놀 것처럼 보여. 하지만 예쁜 노예들이 많이 있으니 공평하게 예뻐해 주지는 못하겠지. 뒤로 밀려서 소외받으면 매우 슬플 것 같아서 하는 소리였어. 그리고.”
윈프레드는 잠시 조니의 눈을 쳐다보다가, 슬그머니 내리깔면서 말했다.
“질투를 하게 되면 위험할 것 같은데, 어쩌지?”
“……어, 그건 좀 그럴 수도 있겠네.”
조니도 한 박자 늦게 윈프레드가 어떤 여자인지 깨닫고 잠시 머뭇거렸다.
지금까진 딱히 질투하는 노예도 없었고 싸우지 않아 몰랐는데, 윈프레드는 S+급 암살자였다. 겉으론 화기애애하게 웃다가 자는 사이 다른 노예의 목을 딸 능력이 충분히 있었다.
“내가 하지 말래도 할 것 같아?”
“시키는 일은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하는 남자가 나 말고 다른 여자랑 노닥거리는 걸 보면 못 참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그걸 참을 수 있다면 그렇게 사랑하는 게 아닐 텐데.”
“그거야 성격이랑 성향 차이도 크지. 질투하지 말라는 것도 할 수 있어야 하잖아?”
“지금 주인이 하는 말은 채식주의자에게 고기만 좋아하라고 입맛을 바꾸라고 한 뒤에 억지로 채소를 먹일 테니 좋아해 보라는 말이랑 뭐가 다르지?”
“……그렇게 말하면 또 그러네.”
그 말을 따를 수 있다면 고기만 좋아하는 게 아닌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마디로 모순이었다.
“아직은 괜찮지만 더 깊이 좋아하게 되면 분명 질투하기 시작할 거야. 그리고 사랑할 정도가 되고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길 정도가 되면 다른 노예들과도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게 될 테고. 어떻게 해야 할까?”
조니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되물었다.
“글쎄. 그냥 팔다리를 쪼개야 하나?”
“…….”
“그건 너도 싫지?”
“당연히 싫지. 그리고 난 주인을 사랑할 거라고 이미 마음먹었어. 밥 먹여 주고 받아먹는 것도 괜찮은 기분이었거든. 품에 안기고 머리를 쓰다듬아 주는 것도 좋았고. 어차피 밖으로 나가 봐야 다시 암살이나 하면서 살 텐데 평생 먹여 주고 재워 주면서 사랑하고 사랑받아 줄 남자가 여기 있으니 무엇하러 도망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
조니는 대답할 만한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분명히 자기한테 죽고 못 사는 노예로 길들이려고 한 건 맞는데, 막상 그렇게 되겠다는 말을 들으니 섬뜩했다.
‘아니, 이게 아닌데? 이러라고 셀프 조교를 시킨 게 아닌데 어쩌다 이렇게 됐지?’
그사이에도 윈프레드의 채근은 계속 이어졌다.
“나 안 버릴 거지?”
“…….”
“날 제일 사랑해 줄 거지?”
“…….”
“병적일 정도로 주인만 사랑하고 바라보지만, 병적인 만큼 한결같은 현모양처가 될 거라 약속할게.”
“…….”
“사랑해.”
결국 조니는 슬그머니자리에서 일어나 배를 두드리며 배부른 척을 하며 자리를 떴다. 심경이 상당히 복잡했다. 뭔가 잘못 건드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금 내가 너무 배가 부르거든? 다음에 다시 얘기하자.”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릴게.”
윈프레드는 그렇게 말하며 생긋 미소 지었고조니는 대답도 못 하고그냥슬그머니 눈을 치웠다.
“저년 저거 어떻게 하지? 진짜 그냥 쪼개 버려야 하나?”
평범한 노예였다면 그냥 버르장머리를 고쳐 버리면 되는데 노예 낙인을 찍을 수 없는 상태에서 절대 복종하게 조교해야 했기 때문에 쉽게 건드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왕이 데리고 있는 아테나의 육체를 훔치러 보내는 마당에 충성심과 애정도 관리를안 할 수도 없었고.
만에 하나 삐져서 왕의 편에 붙어 버린다든가 아테나의 육체를 빼돌린 후 숨겨 두고서 협박을 한다든가 하는 경우도 완전히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공략 방향을 바꾸든가, 아니면 절대적으로 안심할 수 있는 확실한 고삐를 채워 놔야 할 것 같았다.
“후우…… 동생부터 길들여 두면 고삐 역할을 좀 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자매간의 우애는 거짓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는 했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하 감옥에 방치하고 내버려 둔 위니엘이 떠올랐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견적이 보이지 않는 강적이라 일단 입에다 손도끼 하나 던져 준 뒤에 부활시키고는 건드리지 않고 있었는데, 이제 흐름을 타서 지켜보기만 하면 되겠다 싶은 윈프레드가 예상치 못한 반격을 해 오는 바람에 순서를바꾸는 게 나을 것도 같았다.
“일단 어떤 상태인지 보러 가 보자.”
조니는 지하 감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위니엘에게 윈프레드의 고삐를 채울 만한 요소가 있기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