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0화 〉89화 윈프레드 셀프 조교 (1) (90/95)



〈 90화 〉89화 윈프레드 셀프 조교 (1)

지상으로 올라오니 벌써 해가 어둑어둑 지고 있었다. 대낮부터 도끼질을 시작한 걸 생각해 보면 꽤 오랜 시간 동안 팔다리를 쪼갠 것이다.

평범한 노예였다면 쪼갤 것도 없이 가볍게 들이대기만 해도 겁을 먹었겠지만 전문 암살자로 태어나 길러진 윈프레드에겐 어림도 없었다. 반항은 하지 않고있었지만 완전히 굴복한건 아니었다. 단지 항거할  없음을 뼛속까지 느꼈다고 해야 할 것이었다.

반항도 상대를 봐 가면서 하는 것이고 탈출도 기회가 있을 때나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윈프레드가 볼 때 이곳에서 탈출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설령 불가능하지 않더라도 시도해서도  될 일이었다.

부활이라는 말도 안 되는 권능을 쓰는 성녀가 붙어 있으니 주인이라는 작자를 죽인다 해도 의미가 없었다. 성녀까지 같이 죽인다고 해도 부활을 쓸 수 있는 성녀가 눈앞의 하나뿐이라는 법도 없었고. 때문에 윈프레드로서는 그저 쪼개면 쪼개는 대로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시간을 두고 정보를 모은다면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실패했을 때의 불이익이 너무나 압도적으로 컸다. 이쪽은 죽어도 되살려서 다시 죽일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악랄함을 보여 줄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눈치로 봤을 때 무언가를 획책하고 도모하고 있다는 걸 안 들킨다는 보장도 없었고 만에 하나 들킬 경우에는  즉시 머리가 쪼개진 채로 살아가야 할지도 몰랐다.

윈프레드는 죽는 것에는 미련이 없었지만  수밖에 없다면 스스로 지옥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인간이 가할 수 있는 고통과 고문엔 면역이 되어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팔다리를 수십 번 생으로 쪼개져 보니 그게 아니란 걸  수 있었다.

그래서 뭘 시키든 곱게 따를 생각이었다. 원래 법이란 게 더러워서 따르는 거지 좋아서 따르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남자를 따르는  그냥 법을 지키는 것과 똑같은 일일 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부축한 채로 걸어가고 있던 작자가 입을 열었다.

“내가 뭐 하나 궁금한  있는데 말야, 솔직하게 대답할 수 있겠어?”

“뭐든지 물어봐라. 어설프게 거짓말하다 팔다리가 또 쪼개지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하하, 그래? 그럼 내게 얼마나 충성할 수 있는지 말해 봐. 1부터 100까지로.”

“…….”

윈프레드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무언가 중요한 정보나 개인적인 궁금증 같은 걸 물을 줄 알았더니 난데없이 얼마나 충성할 수 있겠느냐니.

몰라서 묻는 건 당연히 아니었다. 도끼질로 팔다리를 생으로 쪼개 놓고 진심으로 충성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테니까. 이건 거짓말을 유도해서 트집을 잡거나 아직 충성하지 않는다는 명목으로 괴롭히기 위한 수작일 따름이었다.

“100이라고 하면 밥도  주고 또 팔다리나 쪼갤 테지?”

“당연하지.  거짓말을 아주 싫어하거든.”

“훗…… 정말 어처구니없는 인간에게 팔려  것 같군. 1이다. 그래도 0은 아닌  다행이라고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 지금 당장은 어쩔 수 없는 거니까.”

“내가 하는 말은 다 들을  같은 태도더니 충성심이 밑바닥이구만? 뭐, 그래도 그 이상으로  좋아하고 있다면 봐줄 수도 있지. 얼마큼 좋아하고 있는지 얘기해 봐.”

“…….”

“뭐야, 너무 좋아서 말을 못 할 정도인 거야?”

조니의 넉살에 윈프레드는 비식비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차라리 널 쪼개고 싶은데 쪼개 달라고 애원해 보라고 하는  어때? 그런 대답은 얼마든지 해 줄 수 있는데.”

“에이, 내가 무슨 피도 눈물도 없이 도끼질만 하는 사람인 줄 알아? 아냐, 아냐,  그런 사람 아냐.”

아니라고 말하고 있고 실제로 아닐지도 몰랐지만, 얼마든지 그렇게 될 수 있는 작자란 걸 한나절 동안 충분히 느꼈다. 때문에 윈프레드는 말꼬리를 잡을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후우…… 0이다. 솔직히 피와 폭력으로 점철된 충성이라면 몰라도 좋아하라는 건 무리 아냐?”

물론 조니 또한 알고 있었다. 그래서 히쭉 웃으며 말했다.

“그치? 내가 생각해도 그럴 것 같더라고. 그래서 말인데, 내가 널 조교해서 날 따르고 좋아하게 만드는 건 어려울  같으니까  스스로  봐.”

“……뭐?”

“셀프 조교 몰라? 네 스스로 널 조교해서 내게 충성하고 날 좋아하게 만들라고. 내가 시키는 건 뭐든지 다 할 수 있고  없이는 못 살 정도로.”

“…….”

말 같지도 않은개떡 같은 소리에 윈프레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 한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눈앞의 작자는 진심으로 그녀가 스스로 충성하고 사랑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자신은 손끝 하나 대지 않고.

“손도 안 대고 코를 푸시겠다?”

“오, 표현 멋진데? 아주 잘 알아들었어. 바로 그거야.”

싱글벙글 웃는 모습을 보니 윈프레드는 그 입에 비수를 쑤셔 넣어 주고 싶었다. 하지만 혹여나 눈치채고 도끼질을 해 올까 봐 빠르게 체념하고 입을 열었다.

“만약 노력은 했는데  하게 되면 어쩔 거지?”

“어쩔 거 같은데?”

“음…… 아마도 싹독싹독?”

조니는 해맑게 웃으면서 윈프레드의 뺨을 쓰다듬어 주었고 윈프레드는  소름이 돋게 하는 손길을 느끼면서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런 걸 스스로 좋아하게 만들라니, 특급 암살자가 되기 위해 받았던 훈련 중 그 어느 것도 이보다 어렵지는 않을 터였다.

하지만 할 수밖에 없었고, 또한 하고 싶었다. 또다시 도끼질을 당하는 건 사양이었으니까.

첫날이었음을 생각한다면 앞으로는 도끼질한 발목으로 걸음마를 시킬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손목을 도끼질한 다음에 물구나무를 세울지도 몰랐다. 죽어도 되살릴 수 있으니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말이 되게 만들  있음이었다.

“후우…… 충성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가?  정도로 봐준다면 정말 내 목숨을 다 바쳐 충성하겠다. 죽으라면 죽고 살라고 하면 사는 인형이 되어 주지.”

일족의 가르침이 그것이었으니 암살자로서 그렇게 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충성의 대상만 바꾸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조니에겐 부족했다.

“아, 네가 아직 노예 도시가 어떤 곳인 줄 몰라서 그러는 거구나. 내가 지금 당장이라도 미약을 먹이고 마법 낙인을 찍으면  나를 사랑하게 되고 내 말에 절대 복종하게 돼. 다른 노예들은 다 마법 낙인부터 찍고 조교하고 있고. 그런데 네게 그러지 않는 건 이유가 있어서일 뿐이야.  노예라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

윈프레드와 위니엘은 앞으로 은밀한 일들을 시킬 예정이었으니 조니의 노예라는 흔적을 남길 수가 없었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평범하게 애드베르토 세르빌리부터 찍어 버리면 될 일이었다.

또한 마법 낙인은 못 찍더라도 필터만 먹이는 방법도 있었지만, 드레니카처럼 비틀린 연애관을 지니고 있으면 방심한 순간에 비틀린 애정을 받아 일격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먹일 생각이 없었다. 겉으로는 사랑하게 되고 헌신하게 되지만 속마음은 반항하는 상태 그대로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지는 않았겠지?”

“이해했다. 노예에게는 마법적 세뇌 기능이 있는 낙인을 찍는 모양이군. 하지만 주인마다 모양이  다른가 보지?”

“맞아.”

“한마디로 날 부려서 써먹을 용도는 정해져 있지만 들키면안 되니까 낙인을 찍을  없다는 거군. 이거 자존심 상하는데?”

윈프레드 그녀가 누구인가. 대륙을 다 뒤져도  없는 특급 암살자였다. 그런데 시작도 하기 전에 들킬 것부터 상정하고 있으니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 수가 있었다.

“날 너무 쉽게 얻어서 나에 대해 잘 모르나 본데, 대륙을 다 뒤져도 나 이상 가는 암살자는 다섯이 안 된다. 그리고  동생과 함께라면 우리 자매보다 뛰어난 암살자는  한 명도 없고. 들킬  걱정된 거였다면 그냥 낙인 찍어. 그럴  없을 테니까.”

“그렇게 자신 있어?”

윈프레드는 조니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래.”

그리고 조니는 피식 웃기만 했다.

“신들의 왕이 노예로 부리고 있는 여신을 빼내 와야 하는데?”

“……뭐?”

“신들의 왕이 노예로 부리고 있는 여신을 빼내 와야 한다고.”

“……그거 비유지? 신이나 여신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라는…….”

“아니, 진짜 신이랑 여신인데?”

“…….”

“어때, 그래도 자신이 넘쳐? 절대 안 들킬 테니 낙인 찍어 줄까?”

윈프레드는 그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조니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조용히 자기 이름을 말했다.

“윈프레드.”

“응?”

“절대 잊지 마라. 앞으로  사랑하게 될 여자의 이름이니까.”

“…….”

89화

잠시 조니라도 벙찔 정도로 항복인지 협박인지 구별이 안 가는 말이었다. 그만큼 윈프레드의 말은 진지하게 박력이 있었다.

‘얘가 지금 자신이 없어서 셀프 조교를 하겠다는 거야, 아니면  맘이 넘치는 목표라서 진짜 반할 것 같다는 거야?’

눈치 하나로 여기까지 올라온 조니라고 해도 어느 쪽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항복에 가까웠던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자신 없나 봐?”

한번 찔러 보자 윈프레드가 깊은 한숨을 후 하고 내쉬었다.

“후…… 인간이라면 그 누구라 해도 자신 있지만 신이나 여신은 솔직히 상상도 해 본  없다. 자신 있다고 하면 허세겠지.”

“하하. 그래서 사랑하게  거라고  거였구나. 난 또 너무 마음에 드는 목표라 너도 모르게 나한테 반한 것 같다고 고백한 줄 알았지.”

“…….”

윈프레드는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꾹 쥐었다가, 곱게 펴고는 자신의 볼을쓰다듬고 있는 조니의 손가락을 쿡 물었다.

“앙.”

깨문 것까진 아니었고 가볍게 앙다문 정도였다. 반항하면 쪼개지니 나름의 애정 표현으로도 보일 수 있을 법한 사소한 투정이랄까.

그런데 그 손가락이 입안을 누비면서 혀를 가지고 놀자 마음이 착잡해졌다. 기분 나쁘다고 표현하고 싶었던데 마치 귀여워 보이려고 재롱부리는 여자아이가 된 것 같은 처참한 기분이었다.

‘아니, 별로 다를 것도 없나?  스스로 충성하고 좋아하게 되게끔 셀프로 조교하라 그랬으니.’

다시 생각해 봐도 어처구니없는 주문이었지만 거부할 수가 없으니 어쩔까. 또다시 쪼개지는 건 사양이었으니 따르는 수밖에. 하지만 기왕이면 저항감이 덜한 대접을 받고 싶었다.

“손가락 말고 밥을 줘라. 맛있는 걸로. 나 힘들었다고.”

“그럼  충성심이 생길  같아?”

“밥만 주면 2, 맛있는 거 주면 3에서 4정도는 오르겠지.”

“하하, 그렇다면 먹여 줘야지. 뭐가 제일 먹고 싶어?”

“딱히 가리는 건 없다. 먹을  있는 거라면 있는 대로 먹을 뿐이었으니까.”

극한 환경에서 며칠이고 잠복하고 있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굶는 일도 허다했고, 탈출 도중 야생에서 먹을 것을 직접 조달하는 경우도 하루 이틀이 아니었던 만큼 입맛이 까다롭지는 않았다. 짐승이건 애벌레건 가리지 않고 뭐든 다 먹을 수 있었다. 다만 맛을 모르는 건 아니었기에 보상 심리로서 기왕이면 맛있는 게 먹고 싶은 것뿐이었다.

“그러면 헤나한테 재료를 아끼지 말고 최대한 호화롭게 차려 달라고 해 주지. 물론 매일 이렇게 먹여 줄 수 있는  아니야. 오늘은 고생도 했고 말도 잘 듣게 됐으니까 차려 주는 거고, 다음부턴 굳이 맛있는 게 먹고 싶다면 직접 차려 먹는 거라면 허용해 줄게. 물론 내 것까지 차려야겠지만.”

이제는 식료품 배달을 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재료는  충분했다. 그러나 요리 전문 노예는 없었기에 늘 헤나가 차리고 있는데, 노예 수가 수다 보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래서 조니가 먹을 것만 제대로 차리고 나머지 노예들 먹을 음식은 각자 차리거나 간단한 것으로 차려 주는 실정이었다.

“나보고 너 먹을 것까지 요리하라고?”

“노예가 주인님 먹을 것까지 챙기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

“……하수인 정도로 봐줬으면 좋겠다.”

“난 하수인의 팔다리를 쪼개는 취미가 있어.”

“…….”

윈프레드는 그냥 삶을 포기하고 싶었다.

그래도 호화로운 저녁 식사는 매우 맛있었다. 윈프레드는 이대로 먹다 죽을 기세로 끊임없이 먹어 치웠다. 굶주린 채로 체력을 워낙 소진하기도 했지만 고향에서 먹던 음식보다 훨씬 맛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잘 먹네. 마음에 드나 봐?”

“음, 정말 맛있다. 고문받았던 것이 치유되는 느낌이야.”

“에헤헤, 그 정돈 아닌데…… 많이 드세요, 언니.”

헤나가 몸을 꼬면서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본 윈프레드는 거절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차려진 음식들을 전부  먹어 치울 기세로 흡입해 갔다. 몸매를 보면 그렇게 많이 먹을 것 같지 않은데도 정말 대단한 식탐이었다.

“매끼 이렇게 많이 먹는 거야?”

보다 궁금해진 조니가 묻자 윈프레드는 고개를 저었다.

“평소엔 소식을 한다. 지금은 체력 소모가 워낙 커서 많이 먹는 거야. 맛있어서 더 먹는 것도 있긴 하지만.”

신성 마법으로 치료 자체는 완벽히 됐지만 심리적인 탈진감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도끼질을 당할 때마다 피를 한 바가지씩 쏟았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소모된 체력도 신성 마법으로 다 채워져서 원래 상태로 돌아갔을 텐데요?”

잔느가 의문을 표하자 윈프레드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피를 잔뜩 흘리고 상처만 꿰맸을 때의 느낌이랑 비슷하다. 그 신성 마법은 체력을 회복시켜 주기는 하지만 배까지 부르게 해 주는  아니잖아?”

“그건…… 그렇긴한데.”

“달려서 지친 체력은 회복시켜 줄 수 있겠지. 하지만 굶어서 배고파진 것도 회복시켜 줄  있는 건 아닐 거야. 암살자들은 신진대사를 빠르게 높여 자연 치유력을 높이는 훈련을 받는데 그것 때문에 상처를 받을 때마다 빠르게 배가 고파지지. 그것 때문이다.”

설명을 해 준 윈프레드는 다시 꾸역꾸역 음식을 입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한껏 먹었기에 이제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더 먹을 수는 있을 기분이었다. 그리고 먹을 수 있을 한계까지 계속 먹고싶었다. 이렇게 먹을 수 있는 기회가 늘 있는 게 아니기도 하고 앞으로의 생활을 생각하면 기회가 있을 때 최대한 먹어 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뭐, 잘 먹어서 나쁠 건 없지. 그래서 지금 충성도는 몇쯤인 것 같아?”

“4.5정도. 다 먹으면 5까진  것 같다.”

“호감도는?”

“……오를 만한  없었잖아? 차려 준 것도 저 아이고.”

윈프레드가 헤나를 가리키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지만 조니는 고개를 슥슥 내저었다.

“말했을 텐데?  스스로 조교하라고. 아니면 노예가 아니라 하수인이 되고 싶은 거야?”

“…….”

또다시 팔다리가 쪼개지는 것만큼은 결단코 사양하고 싶었다. 그래서 윈프레드는 두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먹여 줘.”

조니가 배꼽을 잡고 웃었다.

“푸하하하! 뭐야, 천하의 암살자가 그런 취향이었단 말야? 웃겨 죽겠네, 아하하하!”

“……받아  적은 없지만 언젠가 남자가 생기고 은퇴해서 결혼을 하면 그런 생활을 하게 되지 않을까 상상해 본 적이 있을 뿐이야. 그리고 안 먹여 줄 거면 내가 한다?”

“응?”

우적.

조니는 자기도 모르게 입속에 들어온 음식을 씹고 윈프레드를 멍하니 바라봤다. 자리에서 반쯤 일어난 윈프레드가 포크로 샐러드를 찍고 왼손으로 받친 채 강제로 입에다 넣어 준 것이었다.

“맛있어?”

“……맛은 있는데. 헤나가 만든 거지만?”

“다음엔 내가 만든  먹여 주지. 자신은 없지만.”

그렇게 말한 윈프레드는 이번엔 다른 음식을 포크로 찍어 조니의 입가로 가져갔다.

“아 해.”

“……아.”

우적우적.

어째 경건해 보이기까지 하는 태도로 자신에게 밥을 먹여 주는 윈프레드를 본 조니는 처음 받아 보는 행위에 감정이 싱숭생숭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여러 노예들을 통해 이런저런 서비스를받아 봤지만 밥을 먹여 주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애정도가 만땅인 리즈조차도 밥을 직접 먹여 주는 짓은 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야 내가 시키지 않았으니까 그런 탓이기도 하지만, 생각해 보니 이렇게 자발적으로 표현하는 애들이 없었네?’

자신은 노예 상인이고 애인이 아니라 노예를 갖고 싶었던 것이기에 잘못된 것은 없었지만, 왠지 이상하게 느껴졌다.

“야옹아.”

“야옹?”

“나 먹여 줘 봐.”

“야옹야옹~”

리즈는 예쁘게 웃으면서 스테이크를 썰어 자기 입에 물고는 조니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무릎에 앉으면서 목을 껴안고 입에 물고 있는 스테이크 한 점을 조니에게 키스하며 건네주고는 혀를 밀어 넣는 키스까지 했다.

그 서비스에 조니는 흡족해하는 미소를 지었다.

“역시 우리 야옹이가 최고라니까.”

“그쵸? 후후. 앞으로도 많이 많이 귀여워해 주세요~”

“그럼, 그래야지.”

그리고 조니는 무엇이 문제인지  수 있었다.

‘조교하면서 내가 시키는 일만 절대 복종하게 만든 게 문제였구나. 그러고 보니 아리스톨 때도 애교도 부리고 응석도 부렸지만 애인 행세하지 말고 노예로서 주제를 알고 행동하라고 하기도 했었고.’

그땐 그게 맞았었다. 자존감 높은 아리스톨의 콧대를 꺾고 온전히 예속시키기 위해선 철저하게 짓밟아 피학적인 쾌감을 느끼는 노예로 만들었어야만 했었다.

그러나 노예로서는 완전히 굴복하게 됐지만, 동시에 자존감이 너무 많이 무너지고 기가 죽은 나머지 먼저 해 오는 애정 표현이 없어진 것도 사실이었다.

좋게 말하면 건방 떨지 않고 응석 부리지 않는 것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자율적인 행동이 아예 사라짐으로써 조건 반사적인 인형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한마디로 시키는 것을 잘 따르는 노예로서는 적합하지만 생동감은 사라진 것이었으니, 잘 깎고 다듬어 광채가 나는 보석이 마모되어 빛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조교 방식을 수정할 필요가 있겠네. 노예마다 성격과 소질이 다른 만큼 다루는 방식 전체를 다르게 했어야 하는데, 지금까진 조교법에만 신경 쓰고 가장 빛나는 상태로 보존할 수 있는 것엔 신경을 쓰질 않았어.’

리즈와 일리아스, 잔느는 지금 방식대로 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전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가까이는 아리스톨이 아니었고, 멀리는 페넬로페가 아니었다. 페넬로페 역시 조금만  손길을 주고 신경  주면 지금보다  배는 더 빛나는 노예가 될 수 있었다.

단순한 검투 노예가 아니라 남편보다 주인님을 더 사랑하게 된 기특한 유부녀 노예가.

지금까진 너무 노예로 굴복시키는 것에만 초점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노예로서의 가치를 떨어트리고 만 실수였다.

“윈프레드.”

“응?”

“아해 봐.”

“……아?”

조니가 갑자기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음식을 먹여 주려고 하자 윈프레드는 당황했다. 하지만 따뜻한 눈빛으로 채근하자 조심스럽게 입을 벌리고 먹여 주는 것을 받아먹었다.

거부할 권리 따윈 없었으니까.

하지만…… 기분은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거기다 부드럽게 머리까지 쓰다듬어 줄 때는 살짝 움츠러들기는 했지만 약간의 말랑말랑한 기분마저 느낄 수 있었다.

‘이 인간이 갑자기  이리 부드러워졌지? 부담스럽게.’

싫은 건 아니었다. 그저 해맑게 웃으며 팔다리를 도끼로 쪼갤 때와 비교하자면 훨씬 인간적이었고 괜찮았다.

아니, 좋았다.

“맛있어?”

“……응.”

그래서 윈프레드는 이래서는 정말로 점차 빠져들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요구했다.

“더…… 먹여 줄래?”

이것은 단지 스스로 하는 조교라고 마음속으로 되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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