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화 〉88화 윈프레드 & 위니엘 싹독싹독 도끼 조교 (2)
대체 몇 번이나 팔다리가 떨어져 나갔다가 붙었는지 윈프레드는 기억할 수가 없었다. 너무 많이 그러기도 했고 상상을 초월한 고통으로 인해 반쯤 넋이 나가 있기도 한 탓이었다.
지금까지 특급 암살자가 되기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고문 저항 훈련을 받았다고 생각했지만, 전부 착각이었다. 그녀가 받은 모든 훈련은 다 지극히 상식 내의 평범한 것들이었다. 진정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고문은 바로 이곳에 있었다.
아니, 이건 고문도 아니었다. 고문이라 함은 알아내고자 하는 바가 있어 강제로 입을 열기 위해 고통을 주는 것인데 눈앞의 작자는 아무 말도 묻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입을 열면 입에 도끼가 날아와 박혔다. 위니엘이 말 한마디 하려다가 입에 손도끼가 박혀 죽었다가 부활하는 걸 본 뒤로 윈프레드는 그저 아무 말도 할 생각 안 하고 참고 또 참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이제 한계였다. 아무리 쪼개져 떨어진 팔다리를 도로 붙이고 몸 상태를 원래대로 복구시켜도 윈프레드는 자신이 점점 죽어 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흠.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는 것 같네. 이봐, 더 버틸 수 있겠어?”
“……손도끼를 박지 않는다면 대답하지.”
“뭐야, 그것 때문에 아무 말도 안 하던 거였어? 난 또 계속 고집 부리고 참는다 싶어서 계속 쪼개던 건데, 하하.”
“……후우우.”
윈프레드는 그 순간 겨우겨우 붙잡고 있던 정신줄을 놓칠 뻔했지만, 필사적인 의지로 다시 붙잡을 수 있었다.
‘속지 말자. 이건 날 흔들기 위해 하는 말일 뿐이니까.’
호흡을찬찬히 하며 숨통을 다시 트이게 한 윈프레드는 조니를 향해 입을 열었다.
“내가 지금 죽기 싫어서 버티는 걸로 보여서 묻는 건 아니겠지? 죽으려는 걸 자꾸 고쳐 놓고 있는 게 누군데?”
“오, 아직 할 만한가 보네? 계속해도 되겠어?”
“…….”
그건 아니었다.
“오늘은 충분히 쪼갠 것 같아서 못 버틸 것 같으면 이만 쉬게 해 주려고 했는데, 팔팔하다면 뭐…….”
아쉬워하는 조니를 본 윈프레드는 황급히 말을 바꿨다.
“못 버티겠다. 오늘은 이만 쉬고 싶어.”
“그래? 허세 부려 본 거였어?”
“……후우.”
암살 대상을 분석하기 위해 수많은 성격과 심리적인 요인을 공부했던 윈프레드는 조니가 어떤 상의 인간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기분파인 데다 상대를 조롱하고 놀림으로써 뒤흔들어 빈틈을 파고드는 인간인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인간들은 일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거나 상대가 자기 생각대로 따르지 않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는 걸 알았기에 군말 없이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해 줬다.
“그래, 내가 허세를 부렸다. 앞으론 그러지 않을 테니 용서해 줘.”
“에이, 벌써 포기하면 재미없잖아. 프로끼리 이러지 말자고. 우리 서로 좋아하는 걸 하기로 했는데 벌써 그만두려고 하면 난 어떡하라고?”
“…….”
윈프레드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공부와 훈련이 짧았음을 통탄했다. 이 정도로 대책 없는 인간은 무구한 암살의 역사를 지녀 온 그녀의 일족에서도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인간상이었다.
“……오늘은 좀 쉬고 내일 다시 저항하면 안 될까? 밥도 좀 먹여 주고 체력 보존도 시켜 주면 내일은 훨씬 더 잘 저항할 수 있을 텐데. 두 걸음 전진을 위한 한 걸음 후퇴라고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하하, 말 잘하네. 좋아. 특별히 오늘은 쉬게 해 주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버틴다면.”
“후우…… 알았다. 네 즐거움을 위해 최대한 열심히 버텨 보도록 하지.”
조니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응. 근데 이번엔 팔다리가 아니라 두 발목을 쪼갤 거야. 그대로 넘어지지 않고 잘 버티고 서 봐.”
“……후훗, 후후후훗.”
잘려 나간 발목으로 체중을 버티고 설 바엔 죽는 게 낫겠지만, 죽음이 허락되지 않으니 어쩔 것인가. 못 하겠다고 하면 하겠다고 말할 때까지 계속 팔다리를 쪼갰다가 붙여 줄 테니 이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선택지였다.
동시에 단순히 더 큰 고통을 주며 괴롭히려는 게 아니라 시키는 대로 따를 것인지 따르지 않을 것인지를 묻는 말이기도 했다.
자존심과 저항하려는 생각 자체를 완전히 지움으로써 말 잘 듣는인형으로 만들려 한다는 걸 암살자인 그녀가 모를 리가 없었다. 어릴 때부터 지독히 많이, 오래도록 받아 온 훈련이었으니까.
그래서 윈프레드는 단호하게 말했다.
“반드시 버텨 보지. 잘라 줘.”
저항할 생각 따윈 눈곱만큼도 없어진 지 오래였으니까.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더라도 죽을 수가 없으니 덜 고통스럽게 사는 길이 최선이었다. 지독히 비합리적이지만 그래도 그나마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게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다른 수가 없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래, 이제 말이 좀 통하는 것 같네. 잘 참고 버티면 내일부턴 대화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하하.”
“하겠다는 게 아니라 할 수도 있겠다는 건가? 후후후…….”
난 대화해 줄 생각이 없지만 넌 그런 희망을 갖고 있다가 안 해 주겠다고 할 때 절망하는 모습을 보여 달라는 걸 못 알아들을 리가 없었기 때문에 헛웃음만 나왔다.
수법 자체는 그녀도 잘 알고 여러 번 써먹어 봤지만, 이쪽은 죽어도 되살리는 능력이 있었으니 효율과 효과가 차원이 달랐다. 인간이 아니라 설령 신이라 해도 이런 건 못 버틸 거라 장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의 마지막이 될 도끼질이 휘둘러지는 걸 윈프레드는 눈을 감았다.
퍽. 퍽.
툭.
“끄흐으으으으으으으으읍!”
발목이 생으로 쪼개지는 고통?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잘린 발목 단면으로 체중을 버티고 서는 건 지금까지 겪어 본 어떤 고통, 아니, 모든 고통을 다 합친 것보다도 끔찍했다.
그건 의지로 버텨 낼 있는 고통이 아니었다. 단숨에 무릎이 굽혀지고 몸이 무너졌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정신이 날아갔다.단 1초도 버텨 내지 못하고 그대로 균형을 잃고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도 일순간만 느껴졌던 그 작열하는 고통은 윈프레드를 생지옥에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했다. 몸이 미친 듯이 덜덜 떨리고 눈물과 콧물로도 모자라 침까지 줄줄 흘러내렸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여기가 어딘지, 자신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두 발목에서 느껴지는 지옥 같은 고통만이 존재했다.
윈프레드의 상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심각하자 조니는 바로 잔느를 불렀다.
“잔느.”
“네.”
곧바로 신성 치유가 윈프레드에게 쏟아지고 두 발목이 도로 붙었다. 그러나 윈프레드의 떨리는 몸은 진정될 줄을 몰랐다.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아픈가 보네. 이건 조교 과정에서 빼야겠다.”
“……이게 조교였어요? 고문이 아니라?”
잔느의 물음에 조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싹독싹독 도끼 조교. 어감 귀엽지 않아?”
“…….”
잔느는 조니가 하는 건 다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이 의견만큼은 반대였다.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조니…….’
“그리고 뭐, 못 버티긴 했지만 그래도 노력은 했으니 오늘은 쉬게 해 줄게. 밥부터 먹으러 가자.”
조니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윈프레드를 대충 들쳐 매고 위로 올라갔다.
위니엘에게는 아무 말도 걸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고서.